친구 중에 진짜 특이한 놈이 있다. 각종 동물을 다 따라하는 이상한 재주를 가진 인간이다. 우, 마, 견의 소리는 물론이요, "꺄악꺄악" 까마귀 소리에 "꿔기어~~"하고 닭 울음소리까지 섭렵했다. 어느 수준이냐면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그 흉내소리를 듣는 사람들은 정말 그 동물이 자기 주변에 있는지 이리저리 살필 정도다. 더 대단한 점은 동물의 소리 뿐만 아니라 몸짓, 동작 하나하나까지 정말 똑 닮게 한다는 사실이다. 어슬렁 어슬렁 먹이를 겨냥해가는 표범의 걸음걸이 흉내를 낼 때는 정말 '저 인간 모글리 아냐?' 할 정도로 등골이 오싹하다. 


그런데 그 보다 더 무시무시하게 카피하는 동물이 있다. '동물의 왕국'을 틀면 빠지지 않고 꼭 나오는 단골손님, 바로 미어캣이다. 늘 몇몇의 보초병들이 땅굴 앞에 나와 두 발로 꼿꼿이 버티고 두 손은 꼭 모은채 사방의 동태를 살피는 그 족속들말이다. 이 놈들 몸짓의 포인트는 발, 손, 고개다. 늘 적이 오나 안오나 살피기 때문에 시력과 시야 모두 매우 뛰어난 녀석들이다. 내 친구놈은 그들의 특성을 정확하게 알고 있다. 가끔 내가 심심할 때 "그 미어캣 흉내 좀 내봐!" 하면 갑자기 까치발로 바짝 서서 두 손을 딱붙여 꺾고서는 잽싸르게 고개를 휙휙 돌려대는데, 그 광경을 보고 있노라면 '와...미친놈이다 이놈은!!!'하는 생각밖에 안든다. 그냥 빵 터져 버린다. 적지 않은 시간을 지켜본 나로서 판단컨대, 이건 연습으로 할 수 있는 게 절대 아니다. 이 면밀하고 정확한 관찰력에서 나오는 행동은 지극히 본능적이라고 할 수 밖에 없다. 나는 그 놈이 갖고 있는, 아니 본래 인류 전체가 갖고 있었을지 몰랐을 그 매서운 '눈'의 원초적 본능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다.


한 때 나도 '매의 눈'이라는 소리를 들었다. 누군가와 무리지어 버스를 기다릴 때면 그들은 버스가 오고 있는지의 여부를 꼭 나에게 물었다. 내가 가장 시력이 뛰어났기 때문이다. 양쪽 시력 모두 1.5. 컨디션이 좋을 때는 2.0을 찍을 때도 있었다. 좀 과장을 덧붙이자면, 100미터 떨어진 거리에서 오는 버스의 번호도 알아맞출 수 있을 정도다. 친구들은 그런 나를 늘 부러워했다. 특히 안경만 벗으면 장님과 다를 바 없는 그런 아이들은 더더욱 그랬다. 그런 내가 스스로 대견스러워 그런 것인지는 몰라도 나는 거리를 걸을 때나 버스를 타고 창밖을 볼 때 항상 멀리 떨어진 산의 능선이라든지 높은 빌딩 위에 달린 안테나라든지 그런 것들을 주로 보곤 했다. 보니깐 보이는 것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멀리서 달려오는 버스 번호가 흐릿흐릿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우연의 일치인지 몰라도, 스마트폰을 쓰기 시작하면서부터 그런 증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스마트폰에는 참 친절한 기능이 많은데, 그 중의 하나가 바로 교통수단의 현재 위치를 확인해주는 앱이다. 내가 굳이 햇볕을 손으로 가려 가며 멀리서 오는 버스의 번호를 확인하지 않아도, 바로 앞의 손에 들고 있는 스마트폰의 앱에서 알아서 그 위치를 알려준다. 그저 폰만 쳐다보고 있으면 정확히 몇 분 후에 내가 타고자 하는 버스가 도착할지를 알 수 있다. 몸이 고생할 이유가 하나 더 줄어든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또 하나의 포인트는 스마트폰을 씀으로써 자연스레 고개를 숙인다는 점이다. 어느 순간부터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마치 죄 지은 것 마냥 모두들 고개를 푹 숙이고 다닌다. 굳이 그 죄명을 대라면 스마트폰 중독죄라 할 수 있겠다. 특히 최근 애니팡이 전국방방곡곡으로 퍼져 나아가면서 대다수의 국민이 '고개숙인 남자', '고개숙인 여자'가 되었다. 버스를 타든. 지하철을 타든, 자가용을 타든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목을 90도로 꺾고 눈에 힘 빡 주고 연신 폰만 들여다보고 눌러대고 흔들어대고 있다. 그게 어떠한 이유에서건, 우리는 내 코 앞에 닥친 가상의 공간에 더욱 더 몰두함으로써 실체의 주변을 살펴보게 될 기회를 잃게 되었다. 시력의 쇠퇴 뿐만 아니라 시야까지 매우 근시안적으로 좁혀지게 된 것이다. 


스티브 잡스의 획기적인 발상으로 인해 우리는 손바닥 안에서 세상의 무한한 가능성을 보게 되었다고 모두가 입을 모아 그를 칭송한다. 인간이 일일이 손발을 쓰고 눈으로 찾아다니며 해야 할 대부분의 일을 전화통 하나가 아웃소싱으로 한데 묶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아웃소싱의 범위가 점점 넓어질 수록 우리의 오감이 담당해야 할 몫은 점점 좁아지고 줄어든다. 인간 테크놀로지의 진화로 인해 인간 스스로의 퇴화가 급격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 생각해본 적 있는가? 


당신이 직접 넘기고 갈피를 끼워가며 감각적으로 특별한 대목을 기억해 내던 묵직한 책이 가상 공간으로 쏙 들어갔다. 당신의 몸에서 움직일 것은 이제 손가락 하나 뿐이다. 동네 주민들에게 묻고 물어 이쪽 저쪽 사방을 살피며 찾아가던 그 옛길도 이제 폰 하나만 들고 있으면 굳이 묻거나 두리번 거릴 필요조차 없다. 은행도 갈 필요없다. 폰에 은행이 있는데 발이 뭐하러 고생하겠는가. 우리는 그저 폰이라는 사이버 플레이스가 만들어주는 편의의 지침서대로 따라가면 되는 것 뿐이다. 흘러간다. 그리고 인류의 오감은 점점 무뎌진다. 


사과의 한 광고를 본적이 있다. 화면에 쓱싹쓱싹 손가락으로 몇번 끄적대면 멋진 풍경그림이 나오는 그 광고 말이다. 그림 그리는 사람들은 다 안다. 책을 솔솔 넘겨 보는 맛이 있듯 그림을 쓱싹쓱싹 그리는 맛이 있다. 4B연필, 색연필, 물감, 파스텔, 목탄을 집어들고 매서운 눈에 감을 잡아가는 나만의 몸집을 더하고, 거기에 더불어 감성을 불러일으키는 음악의 귀까지 동원하여 이리저리 손을 놀려대면 그 뭉쳐진 촉이 손가락을 타고 종이와 캔버스에 서서히 번져 하나의 꿈틀대는 작품이 이루어지는 모습을 지켜보는 그 특유의 맛 말이다. 그 맛을 사과와 세개의 별이 어느 순간부터 앗아갔다. 멀리 보이는 저 가을의 단풍산을 바라보며 날카롭게 펜을 갈기고 그림을 그려대던 나의 '매의 눈'을 그들이 앗아가 버렸다. 


오직 육체의 철저한 사용에 의해서만 비롯되던 정신적 특혜들이 기계 하나로 인해 하나둘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다람쥐가 이빨을 날카롭게 갈 듯, 인간도 몸을 쓰지 않으면 닳게 되어 있다. 조그마한 기계 하나가 육체를 장악하기 시작한 지금으로부터 10년 후, 아니 당장 5년 후가 궁금하다. 매우 두렵기도 하다.   



Written by 선장

Painted by 사샤



'Life' 카테고리의 다른 글

두통의 원인  (0) 2012.11.30
겨울은 살아 온 날에 대한 추억이다  (0) 2012.11.11
대한민국 진상보고서  (0) 2012.11.10
스마트폰, '매의 눈'을 앗아가다  (0) 2012.10.26
사람이 집이다  (0) 2012.10.19
엄마, 딸, 손녀 그리고 헌 신  (0) 2012.10.15
Posted by 해적단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