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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ation

기묘한 동거 1. 베개에서 타인의 향기를 느끼다

 

   앞에서 이어짐 -  [비싸니깐 집이다] - 기묘한 동거 0. 막힌 변기로 발각돼

 

 

 

  기묘한 동거 1. 베개에서 타인의 향기를 느끼다 

 

 

 

  자신의 베개에서 타인의 향기를 느껴본 적이 있는가?

 

 

  가족과 함께 사는 집에서는 있을 법한 이야기이다. 늦은 오후, 집안일에 지친 어머니는 걸레질을 하다 아들녀석 침대에서 깜빡 잠이 든다. 잠시 후 집에 돌아온 아들은 뛰어든 침대에서 타인의 향기를 느낀다. 파마약 냄새가 뒤섞인 아련한 향기. 범인을 알아차린 매정한 탐정은 벌떡 일어서며 소리친다. ‘엄마, 왜 내 침대에서 잤어?’ 발뺌을 해도 소용이 없다. 향기가 명백한 증거다.

 

 

  베개에서 낯선 향기를 맡았다.

 

 

  에로틱한 표현이다. 강남의 한 모텔에서 청담동의 아파트까지 가는 동안 줄곧 자신의 여성편력을 과시하던 지난밤의 사장님이 이 말을 들었다면, ‘자네 부인이 남자를 아주 집까지 들였구만이라고 했을지 모를 일이다. 차라리 그런 일이라면 좋았을지도 모르겠다.

 

 

  이 칙칙하고 냄새나는 아파트에 나 아닌 누군가가 마지막으로 들어왔던 적이 언제였지? 올겨울 막힌 변기를 고치러 온 수리공이 마지막 손님이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때 내가 잠시 화장실에 간 사이 수리공이 침대에 누웠고, (왜?) 냄새는 열 달동안 잠복해있다가 (어떻게?) 기온이 내려감과 동시에 분출하기 시작했다? 도대체 이 집에서 무슨 일이 일어난거지?

 

 

  오늘 하루를 더듬어 봤다. 평소와 다름 없는 하루다. 어김없이 편의점 도시락으로 저녁을 때우고 집을 나섰다. 이른 저녁부터 술에 취한 사람을 무사히 귀가시키며 가정의 평화를 도왔다. 새벽 세시부터는 동네사람의 건강을 위해 신선한 우유를 각 가정에 배달했다. 대리운전과 우유배달을 마치고 상가 편의점에서 불고기도시락을 사는 것도 있지 않았다. 집에 돌아와 불고기도시락을 전자레인지에 넣어 230초를 데워서 먹었다. 아침밥인지 저녁밥인지 모를 밥을 먹고 나서 편의점 알바생의 불친절을 불평하며 침대에서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잠에서 깨어날 때까지 특이한 점은 없었다. 아니, 지긋지긋할 정도로 똑같은 패턴이다. 다른 점이 있기는 했다. 어렸을 때부터 꿈을 상실하고 깊은 잠에 빠져드는 것이 유일한 자랑거리였다. 오늘은 꿈을 꾸었다. 단지 꿈을 꾼 것이 이상하다면 이상하다. 

 

 

  현관문 도어락의 잠금을 해제하고 집에 들어서면 상가 편의점 알바생이 나를 맞는다. 그것도 허리를 숙이고 어서 오세요라며 다정하게 인사를 건넨다. 입이 , 다녀왔어라는 말을 읊조린다. ‘전자레인지는 안쪽에 있습니다 그녀를 스쳐지나갈 때 어딘가에서 희미한 향이 풍긴다.

 

 

  이때 잠에서 깨어났다. 처음에는 아직 꿈속인줄 알았다. 여전히 코끝으로 꿈속의 향이 스며들고 있었다. , , 겨드랑이 순으로 코를 들이밀었다. 몸에서 나는 것이 아니다. 꿈에서 깬 것인지, 냄새에 익숙해진 것인지 희미한 향기는 더 이상 나지 않았다. 꿈이 정말 리얼하다고 생각하는 순간이었다. 꿈이나 다시 꾸자며 베개에 얼굴을 파묻는 순간이었다. 범인은 잡았다. 밀려오던 잠이 저멀리 달아났다.

 

 

  코를 베개에 들이대고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 집안 가득해서 특별할 것이 없는 홀아비냄새와 담배냄새 사이로 달큰한 향이 풍겨온다. 비누, 샴푸, 스킨, 로션, 방향제, 세제......아니다. 지금까지 이 집에 살면서 맡아본 적이 없는 향기다. 내 냄새는 아니다. 나는 아니다.

 

 

  이곳에 나아닌 다른 누군가의 냄새가 존재한다.

 

 

 

to be continued~~

 

 

Written by 요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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