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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od

스타벅스는 가격을 내리지 않는다



[스타벅스는 비싸다, 그리고 맛있다.]


친구와 함께 식사를 한 후 커피를 마시기 위해 스타벅스에 들렀다. 나는 카라멜 마끼아또,  친구는 프라프치노를 시켰다. 뭔가 입이 심심해서 디저트로 초코 케익도 하나 주문했다. 커피 두 잔에 케잌 하나의 가격은 대략 1만 7천원. 참고로 이날 친구와 먹은 점심은 6천 원짜리 냉면이었다.


나는 대학시절 내내 커피숍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보냈다. 단순 서빙이 아니라 직접 커피를 만드는 일을 했다. 그래서 커피 맛이라면 간 정도는 제법 볼 줄 안다. 내가 커피 만들던 당시까지만 하더라도(제대 무렵이니 2005년 쯤이다) 커피숍은 그리 많지 않았다. 고작해야 작은 영세 브랜드가 동네에 몇 군데 있었을 뿐이다. 커피숍을 찾는 사람도 그렇게 많지 않았다. 커피 문화라는 자체가 사실상 전무했던 시절이다. 


2007년, 2008년 쯤 부터였을까. 스타벅스, 커피빈, 할리스, 엔젤리너스, 투썸플레이스 등 유명브랜드 커피숍이 대로변 곳곳에 두각을 내기 시작하더니 나중에는 동네 PC방 생겨나듯이 동네 온 천지에 우후죽순 퍼져 나갔다. 동네길 한 구간에 스타벅스만 4곳이 몰려 있는 것도 봤다. ‘이 정도면 경쟁이 아니고 같이 망하자는 건데...’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내 예상과는 반대의 결과가 나타났다. 찾아오는 사람들은 점점 늘어나기만 했다. 평일에 가나 주말에 가나 한 자리 차지하고 앉아 있기가 그렇게 힘들었다. 


멈출 줄 모르고 전국 각지로 무섭게 번져가는 커피숍 열풍. 이쯤해서 경쟁사를 물리치기 위해 가격을 내리거나 파격적인 혜택을 줄 법도 한데 여전히 그들은 가격에서만큼 요지부동의 자세를 취하고 있다. 오히려 최근 몇 달 사이 모든 유명브랜드 커피숍이 가격을 인상했다. 언론의 공격을 피해갈 수는 없는 법. 공영방송을 비롯한 각종 매체에서 ‘커피가 이유없이 비싸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들끓기 시작했다. 


시사프로에서는 커피 원가와 해외 브랜드의 가격을 비교하면서 우리나라 커피가격에 거품이 지나치게 크다는 점을 지적했고, 교양프로그램에서는 각양각색의 커피브랜드를 놓고 브랜드를 뗀 상태에서 맛을 비교하여 사실상 가격과 상관없이 ‘맛에서 큰 차이가 없다’는 결론을 내리기도 했다. 결국 ‘맛의 변별성도 없으면서 브랜드 값만 취하고 있다’는 점을 비판한 거다. 


이제는 직장인 점심 한 끼보다 프라프치노 한잔이 더 비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점심시간만 되면 커피숍은 직장인들로 늘 북적 북적댄다. 언젠가 스타벅스 50% 할인행사를 했던 날이 생각난다. ‘그래도 비교적 한적한 스벅에 가면 사람들 별로 없겠지?’라는 생각에 직장인이 몰리지 않을 3시쯤을 노리고 버스 타고 시청 쪽 구석탱에 있는 스타벅스로 향했다. 나의 엄청난 오산.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는 줄이 꼬리를 물고 물어 건물 밖까지 이어지고 있는 광경에 그만 넋을 잃었다. 모두들 1시간이건 2시간이건 기다려서 반드시 먹고간다는 그 불타는 의지하나로 한여름의 땡볕을 견디고 있었다. 그들의 머릿속에 ‘기왕에 먹는 거 유명브랜드에서 먹지뭐’ 이런 간단한 생각이었다면 벌써 줄을 이탈하고도 남았을 것이다. 이 모습을 지켜보며 나는 대중이 반드시 브랜드의 품격만을 따져 커피를 마신다고 볼 수 없다는 결론을 냈다. 


각종매체에서의 거듭된 가격 공격, 거품 마케팅의 이슈화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끊임없이 스타벅스를 찾아간다. ‘퇴근하고 7시 스타벅스에서 만나’, ‘영화보고 스타벅스가서 커피한잔 마실까’, ‘집에 가면서 스타벅스 들러 테이크아웃하자’. 길거리 여기저기에서 쉽게 들려오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왜일까? 왜 스타벅스를 이렇게도 고집하는 걸까? 한방에 정리할 수 있다. 맛있으니까.


스타벅스가 우리 동네에 처음 들어섰을 때, 그리고 친구로부터 스타벅스의 프라프치노가 그렇게 맛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속으로 ‘그게 맛있어봐야 커피지 뭐 별거 있겠냐?’ 내심 비웃었다. 하지만 직접 먹고 난 후 사정이 달라졌다. 생각 그 이상으로 너무 맛이 좋았다. 감탄의 감탄을 하면서 ‘그래, 이 정도는 만들어야 마실만하지’라는 맛의 감동이 혀에 각인됐다. 그 후 나는 달달한 게 생각날 때마다 스타벅스를 찾아가 프라프치노를 시켜놓고 천천히 그 맛을 즐기는 취미가 생겼다. 


스타벅스 뿐만 아니라 다른 대형 프랜차이즈 커피숍들도 각자만의 개성 있는 맛을 갖고 있는 것은 마찬가지. 내 생각과 지인들의 생각을 조합하여 몇 개 회사의 캐릭터를 얘기해보면 이렇다. 




[스타벅스] 거의 다 맛있다. 프라프치노는 기본이고, 한 여름철의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원두가 좋고, 맛의 기복이 덜하다. 어떤 메뉴든 레시피가 안정적이어서 일단 길에서 눈에 띄면 들어간다. 따듯한 아메리카노는 핸드드립으로 마실 것을 추천한다. 


[커피빈] 뜨거운 아메리카노는 스타벅스보다 낫다는 평이다. 카페모카도 대표적인 심볼이다. 스타벅스의 바닐라라떼를 먹느니 커피빈 카페모카를 마시는 편이 더 낫다는 평도 많다. 


[폴 바셋] 카페라떼는 이 이상으로 맛있을 수 없다. 어떤 레시피를 썼는지 정말 궁금하다. 두 말할 필요가 없다. 스타벅스와 커피빈을 모두 능가한다. 


[할리스] 커피빈 만큼은 아니지만 카페모카가 꽤 맛있다. 아메리카노도 중상 정도의 점수를 줄 수 있다. 


[이디야] 역시 카페모카다. 조금 인스턴트한 맛이 나긴 하지만 ‘달달한 어린이 입맛’을 추구하는 사람들에게 제격이다. 


[투썸 플레이스] 어떤 커피음료든 굉장히 진하다. 카페인 섭취에 역점을 두는 사람은 좋아하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싫어한다. 뭣 모르고 에스프레소 시켰다가 호되게 당한 외국인도 본 적이 있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투썸 커피를 ‘독약커피’라고 부르기도 한다. 개인의 성향에 따라 평가의 호불호가 명확히 갈리는 곳이다. 


언젠가, 맥도날드에서 한 때 자사의 2000원 짜리 커피와 유명브랜드 커피를 비교하는 광고를 엄청나게 때린 적이 있다. 한편으로 궁금하기도 해서 햄버거는 입에 대지 않은 채 맨 입으로 한번 마셔봤다. 하하, 맛이 그야말로 가관이었다. 보리차도 아니고 숭늉도 아닌 것이 일종의 ‘숭늉커피’ 같았다. ‘구수하다’라는 표현이 딱 맞다. ‘소비자를 물로 아나?’라는 생각도 들었다. 커피의 수요가 많지 않던 당시에는 그런 가격 마케팅이 일부 먹혀들어가기도 했겠지만 이제는 사정이 다르다. 커피 소비자 역시 바리스타 만큼 맛에 대한 분별수준이 상당히 높아졌다. 더 이상 낮은 가격으로의 ‘뻥’ 마케팅은 안 통한다는 거다. 





어느 사이 커피 가격을 문제시 삼는 기사와 뉴스들이 하나 둘 고개를 숙이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거론조차 되지 않는다. 대중이 기꺼이 그 가격을 감수하고 먹는데 언론이 가타부타 이야기를 해 봐야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언론보다 똑똑한 것은 대중이다. 굳이 여기서 언급하지 않았지만 대형 프렌차이즈 가운데에서도 몇 군데는 '최악의 맛‘으로 소문이 난 곳도 있다. 어디 대형뿐이랴. 유명 바리스타가 큰 꿈을 가지고 만든 커피숍들도 채 1년을 버티지 못하고 주저 않는 사례들도 즐비하다. 마케팅 면에서 압도적으로 밀리는 것이 사실이지만 결국 대중이 원하는 ’보편적인 맛‘의 레시피를 강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선물의 포장지도 중요하지만 선물의 내용이 말짱 꽝이면 대중의 시선에서 멀어진다는 사실부터 알아야 한다. 일단 맛이 좋고 볼 일이다.  


Written by 선장 & 선의

Photo by 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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