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과천에 살고 있는 평범한 직장인 주부이자 두 아이의 엄마. 몇 주 전부터 대형 프로젝트에 올인하며 밤낮없이 분주한 남편이 마냥 안쓰럽기만 한 요즘이었다. 다행히 성공리에 프로젝트를 맞추고 꿀맛 같은 휴식을 기다리고 있는 그가 마냥 부러웠단다.

“자기야, 근데 월요일엔 뭐 할 거야?”

다가오는 월요일이 그의 휴가인지를 지난주부터 알고 있던 그녀다.

“나? 민정이 만나기로 했는데?”

“민정이?!”


하마터면 ‘그게 어떤 X이야?’하고 반자동으로 나올법한데, 아니 진심 나올 뻔 했단다. ‘민!정!이!’ 오랜만에 자신의 이름이 남편에게서 불렸던 것이 참 낯설었고 한편으론 설렜단다. 이 이야기를 해줄 때 그녀의 표정을 상기시켜 보면 굉장히, 무지하게, 더없이 설렜던 것 같다. 


40대 아줌마의 얼굴에서도 이런 표정을 볼 수 있구나, 하고 잠시 생각했던 나였다. 그렇다, 여기서 잠시 내가 또 잊었던 것이 있는데 아줌마도 여자인 것이다(내가 나의 엄마를 객관적인 여자로 보게 된 계기를 조만간 번외로 올리도록 하겠다). 그녀가 평소 들었던 호칭을 나열해 보면 대략 다음과 같다. 아줌마, ○○이 엄마, 안성댁(친정이 안성이다), 김 실장님, 김 집사님…어디에서도 그녀의 아름다운 이름을 불러주는 곳은 없었더란다. 대한민국 보편적인 아줌마들도 이와 비슷한 처지이지 않을까. 


하지만 그녀들이 본인의 이름을 잊어버릴 수가 없는 것은 참 친절하게도 세금 고지서, 각종 지로용지와 카드 명세서에 정확하게 기재 되어 있는 이름, 그리고 인터넷 쇼핑몰 할 때의 실명 확인과 각종 소비 상담에 관련된 통화들 때문일 것이다. 물론 안전한 거래를 위해서 실명 확인은 필수지만 어딘가 씁쓸한 마음도 든다. ‘언제부터 소비자 각각 개인에게 관심이 있었다고, 그 정체성의 상징인 그녀의 이름을 반갑게 낭랑한 목소리로 ○○○고갱님! 하고 부를 수 있다니‘, 이렇게 생각한다면 배알이 너무 꼬인 건가.


같은 그녀의 이름 석 자인데, 남편에게서 불리는 그 이름. 무뚝뚝하기만 하고 이제는 너무 아저씨 같기만 한 그에게서 뜻밖에 불린 그 이름으로 인해서, 그녀는 20대 그들의 사랑스럽던 연애시절이 떠올랐고, 그동안 시누이와 시어머니께 쌓였던 남모를 감정, 남편과 아이들에게 치이며 쌓인 속상함이 눈 녹듯이 사라졌다고 한다. 하루 종일 그녀에게서는 웃음이 사라질 수가 없었더란다. 도통 알 수 없는 것이 여자의 마음이라지만 이 얼마나 단순한가.

 

그렇다면 이번 주말에는 그대의 아내 손을 지그시 잡고 그녀의 아름다운 이름을 한 번 불러보자. 아니, 시도해보자(그대를 위한 적절한 표현인가?) 그동안 참 고마웠다고. 하지만 개인차에 따라 역반응이 나올 수도 있다는 점을 간과하지는 말자(너무 안 그러던 사람이 갑자기 그러면 오해를 살 수도 있는 법)


Written by 앵무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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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해적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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