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도 해는 뜬다] 해는 기다리지 않는다

 

  ....어윽!

 

  변기에 앉아 힘을 준다. 쾌변이다. 잠시 행복감을 느낀다. 며칠 규칙적인 생활을 했더니 장운동이 좋아진 모양이다. 물을 내리고 옷매무새를 추스르다 문득 생각한다.

 

  '잠깐 내가 지금 뭐하고 있는거지...아, 맞다. 해돋이 보러 하늘공원에 온거지.'

 

  그렇다. 나는 해가 뜨는 것을 보려고 하늘공원에 왔다. 시계를 본다. 오전 7시 53분이다.

 

  새벽에 휴대폰 알람소리에 잠이 깼다. 몇 번을 고민하다 '일.어.나.자.'라고 중얼거리며 정신을 차렸다. 잠이 덜 깬 상태에서도 용케 옷을 찾아 입고 집을 나섰다.

 

  녀석의 기운을 느낀 것은 그때였다. 용트림을 하는 녀석을 달랬다. 괜찮아, 라며 녀석을 잠재웠다. 그게 어떤 결과를 불러오는지 그때는 미처 알지 못했다.

 

  버스를 타고 하늘공원에 왔다. 커피와 음악도 빠뜨리지 않았다. 공원 동쪽에 있는 하늘계단을 오르며 상쾌한 설렘을 느꼈다. 어제와 달리 날씨가 좋았다. 별이 보였다. 오늘은 기필코 해돋이를 보리라 다짐했다.

 

  하늘계단 꼭대기의 전망대에 자리를 잡았다. 하늘공원까지 갈까 고민하기도 했다. 높이 차이도 크지 않아 보이고, 무엇보다 시야를 가리는 나무가 없어 마음에 들었다.

 

  시계를 보니 오전 7시 20분, 해뜨기 24분 전이었다. 기다리기만 하면 되었다. 몸을 움직여 추위를 녹이기도 하고, 해가 뜨리라고 생각되는 곳을 향해 휴대폰 카메라의 셔터를 누르기도 했다. 조금 추운 것만 빼면 아주 완벽했다.

 

  사건은 항상 중요한 순간 직전에 터진다. 사건은 오전 7시 41분에 일어났다, 범인은 녀석이다. 추운 날씨 탓으로 녀석이 잠을 설친 모양이었다.

 

  '이런, 3분, 3분이다. 제발 좀 가만히 있어.'

 

  아까와는 달리 온몸의 기운을 끌어모아 녀석을 무력진압했다. 순순히 말을 듣는 듯 하더니, 녀석은 방심한 순간을 놓치지 않고 포박을 풀고 달아났다.

 

  7시 43분이었다. 절체절명의 순간, 선택을 해야 했다. 해돋이냐, 팬티냐. 결정은 빨라야 했다. 순간 화장실이 있으리라고 생각되는 곳을 향해 냅다 달렸다. 선택은 팬티였다.

 

  장소는 하늘공원 입구이고, 방향은 북서쪽이다. 북동쪽만 되었어도 달리며 해가 뜨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아니 정북만 되었어도 고개를 오른쪽으로 살짝 돌리기만 하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불행히도 북서쪽이다.

 

  뒤를 돌아볼 틈도 없다. 시계를 볼 틈도 없다. 머뭇거릴 틈이 없다. 잘못하면 해가 고개를 내미는 것을 눈으로 보는 대가로 녀석이 고개를 내미는 것을 온몸으로 느낄 터였다.

 

  이 순간에도 등뒤의 해를 상상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나는 여유따윈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다시금 확인했다. 그뒤는 앞에서 이야기 한대로다. 화장실을 찾아 들어갔고, 기분 좋게 녀석을 떠나보냈다.(녀석은 과연 그럴만한 녀석이었다.)

 

  7시 56분에 해와 마주한다. 해는 기다려주지 않았다. 해는, 맨 뒤에서 기회를 기다리다 절묘한 코너링으로 무섭게 치고 나가는 3000미터 쇼트트랙 선수처럼, 고개를 내밀자마자 순식간에 하늘로 치고 올라갔다. 가슴 졸이며 지켜보다 잠시 화장실 간 틈에 중요한 순간을 놓친 시청자가 바로 나다. 1위과 2위의 차이는 벌써 2바퀴 반, 무난히 우승할 것이다.

 

  섭섭한 마음으로 해를 쳐다본다. 해는 부드러운 햇빛을 내비친다. '허허, 또 뜨잖아. 내일 보면 되지. 아니면 모레도 있고.' 라고 말하는 듯하다. 그래.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뜨니까.

 

  그래 내일은 기필코 보리라. 꼭 화장실은 들릴 것이다. 내일은 어떤 일이 벌어질지 자못 기대된다.

 

written by 요리사


Posted by 해적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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