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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공간의 음악, 시간의 미술 - PLAYTIME, 문화역서울284



2012년 가을, 길에서 서울역을 만났다. 거대한 현재의 驛舍가 아닌 舊역사 말이다. 입구가 활짝 개방되어 있었다. 몇달 전까지만 해도 닫혀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歷史에 한자리를 마련하고서 말이다.


호기심을 가지고 기웃거리니 안쪽에서 북소리가 흘러나온다. 북소리에 이끌려 역사 안으로 걸어들어간다. 마지막으로 이 문을 지난 것이 언제였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부모님과 함께 시골에 다녀올 때가 아닌가 싶다. 여행에 지친 몸을 이끌고 문을 나섰을까.


중앙홀로 들어서니 오가는 사람들이 눈에 띈다. 사람들의 행선지에 대해 궁금해 하다가 얼른 정신을 차린다. 홀의 중앙에서 공연자가 큰북을 치고 있다. 천장이 높은 홀에 북소리가 울린다. 홀로 연주하는 북공연은 지루하다는 생각이 든다.


중앙홀을 지나 예전에는 대합실이었을 공간으로 들어간다. 설치미술들이 전시되어 있다. 예술 문외한에게도 흥미로운 전시들이 펼쳐진다. 처음에는 '이게 뭐야'라는 생각을 한다. 찬찬히 구성요소들을 뜯어보고, 구성요소가 결합한 방식을 찾아내고, 결합하여 이룬 전체형태를 파악한다. 적어도 나의 경험 안에서 나만의 의미로 즐길 수 있다.


이 와중에도 북소리는 귀를 울린다. 지금 공간을 통해 전해지는 것인지, 아니면 10분전의 북소리가 남아있는 건지.


익숙하지 않은 미술을 감상하는 것에 지쳤는지. 서울역의 예전 모습을 찾고 있다. 흔적 발견하는 것은 쉽지 않다.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철로 위에 KTX가 정차해 있는 것이 보인다. 흑백사진 속에서 증기기관차가 있던 철로에 지금은 고속열차가 있다.


섹소폰을 부는 사람이 좁은 복도를 오가고 있다. 여전히 귓가를 맴도는 두둥둥소리에 맑은 멜로디가 섞인다.


잠든 아이가 아빠 품에 안겨있다. 엄마의 손을 잡고 표를 끊는 아빠를 기다리는 꼬마가 있다. 한 가족이 뛰어와 간신히 열차에 오른다. 기차 출발 전에 가락국수 사오면서 아빠가 웃는다. 요이땡을 감싼 비닐 벗겨 소년에게 주는 엄마도 보인다. 시간이 여기에 동시에 설치된다.


기억을 지나 어느 방안에서 비올라-혹은 첼로-의 선굵은 소리가 추가된다. 그리고 문을 지나 어느 순간에 바이올린을 켜는 사람을 만난다. 시간 혹은 공간의 차이를 두고 펼쳐지는 4중주.


기묘한 4중주는 다시 중앙홀에 들어서자 끝이 났다. 움직이지 않고선 연주되지 않을, 걷기도 완성되는 음악은 거기서 끝이 난다. 나는 관람자인 동시에 연주를 완성시키는 가장 중요한 플레이어다.


다른 플레이어의 음악을 상상해본다. 누군에게는 타악음악이고, 다른 이에게는 바이올린과 큰북의 2중주이다. 또 다른 조합의 3중주도 있을 것이다. 브레이크 타임의 연주자는 침묵의 음악을 완성시키지 않았을까. 동선에 따라 음악은 무한히 늘어난다.


1925년 완성된 이후로 서울역사는 이미 하나의 공연장이자 전시장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사는 것이 연주고, 기억이 미술이다. 우리는 누구나 거대한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는, 아주 긴 음악을 연주하는 예술가가 아닐까?


구 서울역사가 문화역서울284로 다시 태어난 것이 반갑다. 과거 한 시점으로의 복원도 좋지만, 한 아이가 누군가의 음악에 감격하고, 새로운 연주를 이어나갈 수 있는 공간이면 좋겠다.



왼쪽 건축초기 1, 2등 대합실, 오른쪽 복원 후 전시실1로 활용



  o 구 서울역사가 문화공간 문화역서울284로 개장한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 같다. 2011년 서울역 복원을 마치고, 2012년 4월부터 복합문화공간으로 탄생했다. 개장이후 19개의 전시, 공연, 강연, 축제 등이 열리는 등 활발한 연주활동을 하고 있다. 현재는 아직 예정된 연주가 없는 상태이다.

최근까지 6주동안 55인의 작가와 함께하는 150여회의 퍼포먼스 전시 '플레이타임'이 연주되었다. 본문은 6주중 하루에 연주된 음악의 기록이다.

홈페이지(seoul284.org)에서 프로그램 소개와 함께 과거와 현재의 공간 비교, 서울역과 서울에 대한 자료 등을 볼 수 있다.


Written by 여행비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