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10.22 04:39

 

 

 

대학 졸업 후 쉴 틈도 없이 직장을 얻고, 혹 넘어질까 걱정하며 달리니 벌써 이립(而立)이다. 뜻을 세울 나이라는데 정작 뜻 보다는 항상 주머니에 돈이 떨어질까 걱정하며 살았다. 그러니 정작 결혼은 친구 청첩장에서나 보는 단어이자 의미다.

명절이면 이제 결혼해야지라는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듣는 말에 매번 건조하게 아직 할 것도 많고, 돈도 없고요. 아직 아니에요라고 대답한다. 내가 대답을 하고도 이 아이러니에 웃음이 난다.


결혼은 본디 사랑하는 이성과 평생을 약속하는 성스러운 의식. 이 성스런 의식에 대한 대답에 애인이라는 이성은 빠진 체 돈도 없고요로 대답하다니. 결혼을 위한 가장 우선 조건은 평생을 같이 할 애인 아닌가? 그럼 현재 만나는 사람이 없는 내 답도 애인이 없어서 결혼을 못한다는 답이 맞는 거다. 내 답대로 해석하자면 나는 돈이 없어서 결혼을 못하는 거지 돈만 있으면 얼마든지 여자를 만날 수 있어. 근데 이 아이러니한 돈이 없어 결혼을 못 한다라는 대답에 반론을 재기할 30대 미혼 남자들이 몇이나 될까? 구역질나는 현 사회 상태에 대해 분하고 열 받지만 나도, 결혼을 못한 수많은 30대 남자들도 수긍한다.


결혼에 돈이 필요한 것은 예식도 그렇지만 남자는 을 장만해야한다. 이 거지같은 공식이 언제부터 우리사회에 깊게 뿌리 박혔는지는 나도, 우리 엄마도 모르겠지만 남자는 집을 장만해야한단다.

어르신들 이야기로는 단칸방부터 시작해서 하나하나 얻으면 된다고 한다. 참 바보 같을 정도로 훌륭한 말이다. 이 대답에 나는 훌륭히 대답할 수 있다. 그런 여자는 이미 한참 전에 나보다 더 능력 있고 잘생긴 녀석과 결혼 했을 것이라고. 그럼 전세로 시작해보자.


전세? 대한민국 땅 덩어리가 좆만 해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수도권 웬만한 아파트 전세 값은 억대다. . 무슨 판타지 소설에나 나올 법한 단위다. 그럼 내가 지금 판타지 소설의 주인공인가? 차라리 주인공이라면 어떻게는 드래곤을 쳐 잡아 억을 얻어 결혼할지 모르겠지만 대한민국이라는 판타지 소설에서 나는 주인공이 아니다. 그냥 평범한 판타지 속 작은 마을의 여관집 아들, 무기상, 아이템상의 아들일 뿐이다. 판타지 속이라도 나는 을 얻을 수 없다.


남자는 집이다. 남자가 집을 얻지 못하면 결혼도 못한다. 너무 자학적이고 비관적이라고? 근데 좆같이도 사실 아닌가? “미안해. 나는 아직 돈을 많이 모으지 못해 아파트 전세는커녕 작은 단칸방부터 시작해야할 것 같아라고 말하면 여자가 괜찮아. 함께 벌어서 마련하면 되지. 우리가 사랑하는데 집은 중요하지 않아라고 대답해 줄 것 같은가? 군대서 읽은 워크 투 리멤버(Walk to Remember)에서나 나올 듯한 대사다.


대학 시절로 가 나는 대학 학비를 어머니께서 부지런히 일을 해 마련해 주셨다. 그 큰 자혜로운 희생 덕에 나는 졸업 후에도 빚은 없었다. 그러지 않은, 혹은 못한 많은 주변 친구들은 알바를 해서 학비를 벌었을까? 아니다. 대부분 학자금 대출을 통해 등록금 및 학비를 마련했고 정작 알바를 통해서는 개인의 용돈 정도를 썼다.

대학 등록금은 방학을 통해서도 마련할 수 없다. 휴학을 해 학비를 마련하지 않는한 불가능하다. 시간당 오천원도 안 되는 알바비 받으며 500만원이나 되는 학비를 마련한다고? 방학기간인 3개월 동안에 500만원을 버는 곳이라면 나는 대학 때려치우고 지금 그곳에서 일을 했을 거다.


졸업 후 달라지는 것은 없다. 직장인이 된 학생은 몇 년간 학자금 대출을 갚기 위해 땅만 보며 달린다. 그리고 허리 좀 피고 하늘 좀 바라볼 때쯤이면 서른, 결혼할 나이. 모아 논 돈 따위는 없다. 근데 사랑하는 여자와 결혼을 하기위해 집을 마련해야한다. 그래서 다시 은행을 찾아간다.

융자와 대출을 끼고 집을 얻는다. 남자는 작은 사회라 불리는 대학에 들어가면서 빚을 지고, 진짜 사회에 나와 부단히도 아끼고 졸라매 빚을 갚고, 2의 인생이라 불리는 결혼을 하면서 다시 빚을 진다.

대한민국에서 대학을 다니려면 학자금 대출을 받아야하는 것처럼 대한민국에서 집을 갖기 위해선 빚을 져야한다. 학비를 부모님이 내 주시는 것처럼, 집도 부모님이 해결해 주시지 않으면 30대에 집을 가질 수 있는 방법은 빚을 내는 것이다.


대학생이 알바로 학비를 마련할 수 없듯이 직장인도 월급을 모아 집을 마련할 수 없다. 역겹게도 대한민국이라는 판타지 속에서는 말이다.


written by 저격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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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해적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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