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어려서 게임을 좋아했다. 어린 시절엔 학교 끝나고 잠시나마 꼭 오락실에 들리고는 했다. 중고등학생이 되어서는 블리자드사의 스타크래프트(이하 스타)를 하기 위해 PC방을 가기도 했다. 스타의 인기는 E-스포츠라는 또 하나의 문화를 만들었고 프로게이머라는 스타를 만들어 냈다. 나도 그렇게 E-스포츠를 문화로 생각했고 게임도 즐기며 어른이 됐다. 근데 언제부턴가 난 약쟁이가 되었다.


작년 4월 30일. 새누리당 신의진 의원 외 13명은 게임을 술, 마약, 도박과 같은 중독물이라고 자기 마음대로 규정해버리더니 이것을 관리하는 ‘중독 예방, 관리 및 치료를 위한 법률안’을 발의 했다. 순식간에 난 마약사법과 같은 등급의 범죄자가 됐다. 


게임업계가 무슨 죄를 지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들을 들쑤신 것이 처음 아니다. 셧다운제(16세 미만의 청소년에게 게임을 할 수 없도록 밤 12시부터 오전 6시까지 인터넷 게임의 접속을 강제로 막는 조치) 강화를 시작으로 게임업계 매출 1% 징수, 게임중독법까지 다양했다. 물론 제대로 발효된 것은 없지만 소식만으로도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됐다.



  그들이 말하는 게임의 문제점



공청회에서 그들이 말하는 게임의 문제는 술, 마약, 도박과 같은 중독물질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법안을 발의한 신의지 의원은 게임을 ‘행위 중독’이라고 규정하며 보건복지부의 관리가 필요한 행위라 말했다. 더불어 게임에 중독될 경우 게임을 따라 범죄를 저지르는 모방범죄의 우려가 있다고 주장했다.

보건복지부 최영현 실장은 “게임은 개인과 가정의 행복을 위협하고 있다고 주장, 국민 개개인의 건강한 삶을 위해서 4대 중독은 해결되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들이 말하는 게임의 문제점은 크게 두 가지다. 중독성이 심한 게임을 하는 것은 가정의 행복을 빼앗아 간다는 점과 그 아이들이 커서 모방범죄를 저지를 수 있다는 점이다. 더불어 게임의 선정성은 아이들의 정서를 불안정하게 만들며 인터넷 게임 과몰입은 사회, 경제적 폐해를 줄 수 있다는 것이다.


게임이 언제부터 사회, 경제적으로 폐해를 주고 아이들의 정서를 침해 했으며 어떤 모방범죄가 일어났는지 모르지만 그들에게 있어서 게임은 사회악 같은 존재라는 것이다. 특히 황우여 새누리당 의원의 경우 “술, 마약, 도박, 게임 중독으로부터 사회를 구하겠다.”라고 말하며 게임은 마약 술보다 심각하다고 주장했다. 



              ▲ 황우여 새누리당 의원



더불어 황 의원은 지난 7일 국제친선 조찬 기도회에서 “하나님 이외에는 어떤 것에도 메여서는 안 된다. 중독은 하나님 이외에 메이는 것. 신앙으로 중독문제를 해결해가자.”라는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하며 다시 게임중독법을 도마에 올렸다.



  말하고 있는 그들의 문제점



그들을 만날 기회가 있다면 가장 먼저 묻고 싶은 것은 “게임을 해본 적 있는가?”이다. 게임을 사회악이라 말하는 그들은 과연 그것을 해본 적이 있냐는 것이다. 물론 마약사범을 검거하는데 있어서 마약을 해볼 필요는 없다. 하지만 마약은 ‘하면 안 되는 것’이라는 인식은 어린아이도 갖고 있다. 마약과 게임을 같은 선상에 올려놓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 


게임중독의 심각성을 이야기하는 이들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어른, 즉 기성세대다. 사실상 그들이 커감에 있어서 게임을 접할 기회는 없었다고 생각된다. 인터넷이나 컴퓨터도 제대로 못하는 양반들이 무슨 게임을 해봤겠는가. 

게임을 한번이라도 해봤다면 알겠지만 게임을 했을 때 중독되는 경우는 쉽지 않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적당히 게임을 즐긴다. 그 와중에 몇몇이 심하게 중독되어 사회생활도 접고 게임에 몰두하는 사람이 있는 것이다. 이것이 문제라면 낚시의 중독도 굉장히 심각하며 당구중독도 생각해봐야한다. 중독은 개인의 차이고 절제의 문제다. 게임중독인 사람은 다른 어떤 무엇인가에 빠졌을 때에도 헤어 나오지 못 할 것이다. 비단 게임만의 문제는 아닌 것이다.


17년 전 우리 사회에 타마고치(たまごっち: 애완동물을 기르는 휴대용 게임기로 가상의 애완동물을 키우는 것이 목적이다.)가 처음 등장했을 때 아이들은 열광했다. 아이들은 이 게임기를 구하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했고 2명에 1명꼴로 타마고치를 했다. 그리고 매스컴에선 연일 타마고치가 아이들을 망치고 있으며 교권을 침해한다고 보도했다. 더불어 아이들의 성장에 방해가 되며 정서가 불안정해진다고 떠들어 됐다. 



당시 아이들은 정말 타마고치에서 못 헤어 나올 정도로 게임을 했지만 수십 년이 지난 지금 타마고치는 추억속의 장난감이 됐고 타마고치가 죽으면 많은 아이들이 자살을 할 것이라는 소리는 개소리가 됐다.



 그들이 모르는 문제점



게임에도 큰 문제가 있다며 단연 언어폭력이다. 이미 인터넷을 포함한 온라인 언어폭력은 사회적 문제다. 게임 내에서의 언어폭력도 심각한 사태다. 먼저 해야 할 것은 게임을 규제가 아니라 온라인상에서의 언어폭력에 대한 처벌이다.


온라인 언어폭력 상황은 생각보다 굉장히 심하다. 많은 이들이 악성댓글과 언어폭력으로 고통 받고 있으며 심하게는 자살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다. 이런 상황은 좌시한 체 왜 애먼 게임만 잡는지 이해할 수 없다. 솔직히 게임 때문에 자살한 사람은 없지 않은가?


게임 모방범죄가 무섭다면 게임 모방범죄에 관한 처벌을 강화해야지 게임을 못하게 하는 것은 너무 과도한 처사다. 바바리맨 잡겠다고 바바리코트 못 입게 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정녕 아이들의 게임하는 것을 막고 싶다면 아이들에게 게임보다 재미있게 놀 수 있게 세상을 만들어 주면 된다. 그럼 게임을 하라고 해도 하지 않을 것이다. 제대로 놀지도 못하는 아이들에게 게임은 그저 스트레스 해소용이자 친구들과 어울릴 수 있는 하나의 수단일 뿐이다. 


프랑소와즈 사강은 마약으로 인해 법정에 섰을 때 이렇게 말했다. “나를 파괴할 권리는 나에게 있다.” 아이들과 청소년들에게도 그것이 옳은 선택이든 나쁜 선택이든 선택할 권리가 있다. 그 권리마저 그들이 박탈할 이유는 없다. 

마지막으로 공부만 하는 아이들을 보고 싶으시면 본인들 자제분들만 시켰으면 좋겠다. 나는 내 아이들과 게임하면서 키울 테니까.


written by 저격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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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니콜로 마키아벨리
    
  저자 마키아벨리는 피렌체의 가난한 귀족 집안에서 태어나 1498년부터 피렌체의 제2서기관장직으로 내정과 군사를 담당하였으며, 대사로도 활약하였다. 1512년 메디치가(家)가 피렌체로 복귀하게 되자, 한때 음모의 죄명으로 체포된 후 관직에서 물러났으며, 실의 속에서 독서와 저술활동에 전념하였다.
  주요저서로 《군주론》(1532) 《로마사론》(1531) 《전술론》(1521) 《피렌체사》(1532)가 있으며, 또한 이탈리아 연극사상 획기적인 작품이라는 《만드라골라》(1524) 등이 있다.
  특히 《군주론》은 그의 대표작으로 마키아벨리즘이란 용어가 생기게 되었으며, 이 책은 군주의 자세를 논하는 형태로서 정치는 도덕으로부터 구별된 고유의 영역임을 주장하였고, 더 나아가 프랑스 및 에스파냐 등 강대국과 대항하여 강력한 군주 밑에서 이탈리아가 통일되어야 한다고 호소하였다. 이 저서는 근대 정치사상의 기원이 되었다.

 

2. 군주론

 

  마키아벨리가 「군주론」을 집필하게 된 직접적인 동기는, 메디치 가에 자신의 정치적인 식견과 능력을 입증하는 책을 헌정함으로써 그들의 환심을 사 공직에 복귀하는 것이었다. 그의 정치적 바람은, 만약 그들이 자신의 조언을 따른다면 그들의 가문에는 명예를, 이탈리아인 모두에게는 이득을 가져오는 결과를 성취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군주론은 마키아벨리의 헌정사(니콜로 마키아벨 리가 위대한 로렌초 대 메디치 전하께 올리는 글)로 시작하여, 총 26장으로 이루어진 글이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26장을 크게 4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고 본다. 첫째, 군주국을 다스리는 방법. 둘째, 군사에 관한 처신. 셋째, 바람직한 군주상. 넷째, 이탈리아에 대한 조언이다.

 

 

3. 군주론의 마키아벨리즘

 

  1. 이익지향적 사상

 

  마키아벨리는 군주의 신민들 및 동맹들에 대한 처술 고찰에서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다른 사람들이 제안한 원칙들과 특히 이 문제에 관해서 크게 다르기 때문에, 내가 건방지다고 생각되지 않을까하는 두려운 마음이 앞서기도 한다”고 말하면서, “그러나 나는 이 문제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유용한 것을 쓰고자 하기 때문에, 이론이나 사변보다는 사물의 실제적인 진실에 관심을 경주하는 것이 낫다”고 얘기한다.

  마키아벨리는 국가통치술을 설명하는 데에 있어 이전 시대부터 존재해 왔던 도덕적 이론과 규범에 근거한 정치사상에서 독립하고자 하였으며, 이익과 부합되지 않는 것들은 일체 정치 행동원리에서 배제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기존 정치행위의 원리인 도덕적인 원리를 추방한 것은 정치행위의 비도덕성을 전제로 깔겠다는 의도로서, 합리적이고 계산적인 이익의 개념을 정치에 적용시켜 불안한 정국 속에서 일정한 예측 가능성과 안정성을 확보하겠다는 것이다.
  이익지향적 행동은 심지어 그의 폭력관에서도 보인다. 마키아벨리에게서 놀라운 점은 격동의 정국속에서 빈번하게 일어나는 잔인한 폭력마저도 마치 의사가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서 필요약을 처방해주듯이 적당한 양을 적절한 시기에 사용할 것을 권하고 있다는 것이다. 「군주론」곳곳에서도 보여지듯, 소수에 대한 폭력을 통해 다수의 행복을 보장할 수 있다면 그러한 과정에서 사용된 폭력이라는 것은 악덕이 아닌 덕으로 봐야 한다고 역설한다. 고정된 진리보다 상황에 맞는 덕을 추구하는 그의 생각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하지만 이러한 이익에 근거한 정치는 자신의 정치영역의 안정성을 확보하는데에는 효과적이겠이지만 궁극적으로 공동체적인 성격을 띤 정치구조를 만드는 데에는 한계점이 있지 않겠냐라는 의문을 가지게 한다. 마키아벨리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메디치가에게 마지막으로 ‘공동체적 성격’을 띤 이탈리아 민족을 위한 국가통일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해본다. 


  2. 현실주의적 사상  

 

 마키아벨리 사상에서 빠질 수 없는 부분이 있다면 바로 정치사상의 독자성이라고 할 수 있다. 고대 그리스에서야 정치사상의 자유가 보장되고, 정치영역의 독자성이 익숙한 관념이었겠지만, 중세에 들어서는 모든 정치사상은 교회로 수렴된다. 정치사상에서 개인의 독자성을 인정받지 못하고 어디까지나 기독교라는 하나의 통일된 종교적 사상아래 머물러 있어야 한다는 얘기이다. “기독 사상외에는 어떤 것도 인정할 수 없다.” 
 그러나 르네상스 시대에 접어들면서 이탈리아의 정치적 성격이 기독교의 영향력을 조금씩 벗어나면서 그 나름대로의 독자성을 만들어가기 시작한다. 이런 흐름 가운데 나온 것이 바로 마키아벨리의 정치 사상인데 그는 자연법 사상과 같은 중세적 사고방식을 거의 배제시켜 버린 채, 철저하게 현실을 중심으로 권력의 문제만을 두고 현상들을 분석해 나아가기 시작했다. 다시말해 종교적 가치나 윤리적 고려를 배제하고 순수하게 권력의 획득, 유지, 확대의 차원에서만 정치를 살피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물론 그러한 그의 생각은 정치현실의 복잡하고 다양한 부분들을 모두 살피지 않고 따라서 어떤 편협된 시각으로 흐를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의 사상대로라면 종교적, 윤리적, 문화적 얘기를 다 제쳐두고 정치와 권력이 함께하고 있는 곳이라면 모두 다 적용될 수 있다는 매력적인 점도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의 사상은 ‘덕’의 개념에서 가장 크게 드러난다. 기독교 사상가들은 신에 대한 경건함, 정직함, 겸손함 즉 기독교적인 의미의 덕만을 군주들에게 요구했다. 그러나 그런 기독교적인 덕은 마키아벨리 저자 말대로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의 문제만을 답해줄 뿐, “인간이 어떻게 사는가”에 대한 실제적인 설명은 해 줄 수가 없다. 따라서 그는 군주에게 필요한 덕으로써 ‘남성다움’, ‘용맹스러움’,‘단호함’등을 요구했다. 이러한 마키아벨리만의 덕 사상은 윤리에서 말하는 덕과 확실히 구분된다는 점을 명확히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마키아벨리는 진정한 덕이 반드시 윤리적 덕과 부합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그는 ‘도덕적 덕에 입각한 기술’보다 ‘권력의 기술’문제에 치중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공적인 덕에서 윤리적인 덕이 적용되는 부분이 적은 것일 뿐이지, 사적인 관계에 있어서는 여전히 윤리적인 덕이 효력을 발휘한다고 했다. 그러한 그의 생각들은 15장 <사람들이, 특히 군주가 그 때문에 칭찬받거나 비난받는 일들>에서 잘 보여진다 하겠다.

  그는 ‘악덕’이라고 불리는 덕을 실천하는 것이 “결과적으로 자신의 입장을 강화시키고 번영을 가져오는 경우가 있”다고 말하고 있지만, 그 전제로 “군주가…좋다고 생각되는 성품들을 모두 갖추고 있다면 그야말로 가장 찬양받을 만하며, 모든 사람들이 이를 기꺼이인정할 것이라는 점을 나는 알고 있다”라고 분명히 이야기를 하고 있다. 다시 말해, 그는 윤리적인 덕은 분명히 존재하고 일부 사회 내에서 효력을 발휘하지만 그것이 정치구조 안에서는 사용되기 힘들다는 점을 꼬집어 주장하는 것이다.

 

  3. 외양추구적 사상


  그는 급변하는 정치 상황 속에서 내부적 역량에 기초한 군주의 덕목들은 상대방을 설득시키기까지 너무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하고 또 효력을 발휘하기가 힘들다고 보았다. 따라서, 군주는 겸손함, 신실함, 경건함과 같은 덕목을 가져야 할 필요는 없지만 가지고 있는 것처럼은 보여야 한다고 역설한다. 이러한 외적 측면의 강조는 여러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는 정치라는 것이 윤리적 사상과 맞닿는 본질의 공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외적인 공간 속에 포함되어 있다고 봤다. 중세의 철학가들은 종교적 진리를 정치라는 틀 안에서 구현시키고자 노력했지만, 마키아벨리는 정치구조 속에서 그러한 행동들이 결코 효력을 볼 수 없다고 생각했다.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는 권력판 속에서 군주가 추구해야 할 것은 여유있을 법한 진리의 완성이 아니라 ‘영광’과 ‘명예’라고 생각했다. 
  그의 외적추구 사상은 눈물도 피도 없는 정치구조판 속에서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역할과 기능을 한다. 대부분 정치상황이 적자생존의 법칙으로 돌아가고 있는 판국에서, 순수한 도덕률에 입각한 행동들을 보여주게 되면 그 자신은 적들에게 쉽게 그 약점이 노출되어 심각한 정치적 데미지를 입을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따라서 자신의 적으로부터 일단 꼬투리를 잡히지 않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최소한의 외양적 덕목만을 갖출 필요가 있다고 본 것이다. 
  외적 사상과 결부되는 ‘가장’과 ‘위선’은 위험한 정치구조 속에서 인민과 귀족의 지지를 확보할 수 있는 강력한 무기가 된다. 그는 정치자가 일반적인 윤리의 치침에 잘 따라 하는 것처럼 교묘히 위장하라고 조언함으로써, 대중에게 보여주는 퍼포먼스에서는 정치적 윤리보다 일반적 윤리가 더 우월하고 효력이 크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4. 결과주의적 사상


  이탈리아 정치에서 마키아벨리에게 중요했던 것은 “결국 그러한 행동이 어떠한 결과를 낳을 것인가?”하는 것이었다. 그는 “외양상 덕으로 보이는 것이 악덕이 되고, 외양상 악덕으로 보이는 것이 덕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예를 들면 16장에서는 정치상황에서 통치자가 일반적인 관후함을 보인다는 것은 불만을 품은 세력에게 끊임없는 관심을 보여준다는 것이고, 그것은 곧 국고탕진, 다시 말해 인민의 세금부담을 증가시키는 결과를 가져와 관후함은 곧 악덕으로 전환이 된다. 반면 통치자의 인색함은 불만을 품은 소수 세력만을 배제할 뿐 그것은 신민의 재산을 온전히 지키는 것이 됨으로 결국 공적으로는 덕으로 이어진다.

  17장의 ‘진정한 자비’에서는 통치자가 자비로워서 쉽게 죄인을 용서하면 기강이 문란해져 질서를 유지키 힘들고, 그것은 거꾸로 엄격한 통치로 이어지기 때문에 궁극적으로는 악덕이 된다고 말한다. 반면 일정한 잔인함을 보여주어 국가의 기강을 바로세운다면 그것은 소수의 희생을 통해 많은 사람들을 온전히 생활할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진정한 덕이 될 수 있다고 하였다. 결론적으로 이득을 더 많이 가져오는 결과만이 진정한 덕으로 귀결될 수 있다는 그의 면모를 엿볼 수 있는 것이다.

 

  5. 운명개척 사상


  25장에서 말하는 운명론에서도 기독교와는 반대되는 그의 사상을 엿볼 수 있다. “모든 일은 신이 주관하고 신의 뜻에 따라 일어나며 신의 뜻으로 종결된다”고 보는 기독교적 사상과는 달리 그는 “운명이란 우리 활동의 반만 주재할 뿐이며 대략 나머지 반은 우리의 통제에 맡겨져 있다는 생각에 이끌린다”라고 말하면서 “자신의 행동을 시대에 잘 적응시키는 사람들”은 “운명의 범람”을 통제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또한 운명을 통제하기 위해서는 그 상황에 순응하는 것보다 대담함과 용기를 가지고 과단성있게 행동해야 한다고 말하면서 적극적인 운명개척 정신을 가질 것을 독자에게 호소한다.

 

Written by 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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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해적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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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4.04.14 22:52 신고

    논문 : vir

 

  

직장인이라면 어느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월요병. 지옥같은 일주일의 시작. 당장 월요일 아침만 생각해도 머리가 지근거려 온다. 대한민국 수천만 직장인들이 매주 일요일 밤만 되면 고단한 마음에 잠을 설친다. 일요일 아침부터 증상이 찾아와 휴일 전체를 망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이런 악순환의 반복은 곧 직장생활에 대한 염증과 회의, 이직 고민으로 번지기 마련이다. 내 삶을 야금야금 갉아먹는 월요병. 무엇이 문제일까?

 

월요일이 문제인가, 회사가 문제인가, 아니면 내가 문제인가?

 

일단 월요일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 만약 당신이 프리랜서라고 해보자. 월요일이 두려울 이유가 없다. 근무시간이 정해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아니 그걸 누가 몰라서 이래요?' 고함치는 분들 계실지도 모르겠다. 맞다. 프리랜서로 멀쩡하게 생활할 수 있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다. 나도 안다. 하지만 프리랜서로 살 수는 없어도 프리랜서의 마음가짐으로는 살 수 있다는 점 수많은 사람들이 놓치고 있다.

 

당신은 회사를 위해 사는가, 아니면 나를 위해 사는가. 거의 모든 사람이 나를 위해 산다고 하지만 정작 따져보면 회사를 위해 사는 사람이 99%이다. 머리는 내 위주로 돌아가지만, 내 모든 생활은 회사를 위주로 돌아간다. 여기에서 근본적인 충돌이 일어난다. 겉으로 대충 보기에는 '아 출근하기 싫어'이지만 그 말을 자세히 파헤쳐보면 '나를 위해 살고 싶은데 회사가 시키는대로만 살고 있는게 싫어'라는 짜증이 깊게 박혀 있다. 그렇다면 당신은 왜 자신을 위해 살지 못하고 회사라는 감옥 갇혀 사는가? 바로 여러분 스스로가 선택한 철창이기 때문이다.  

 

누구도 여러분에게 회사에 충성하라고 말하지 않는다. 단지 여러분이 회사에 충성하면 무엇인가 좋은 결과가 나올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에 젖어 있을 뿐이다. 이렇게 해서 내 삶은 크게 두 가지로 분류되어 버렸다. 수동적 회사일과 수동적 휴식.

 

내가 회사를 다니는 것이지, 회사가 나를 다니는 것이 아니다. 회사가 여러분을 착취하는 만큼 여러분은 그에 응당한 모든 댓가를 뻔뻔하게 누려야 한다. 월요병은 예방도, 극복도 필요없다. 여러분은 불금에서부터 일요일 밤까지 노동에 대한 정당한 휴일의 즐거움을 능동적으로 즐겨야 한다. 회사 눈치를 보면서 쉰다고 해서 회사가 내 연봉을 올려준다거나 상사가 칭찬해준다는 이야기는 어디에서도 들어본 적이 없다. 예능을 보고 싶으면 퍼질러서 신나게 보고, 놀고 싶으면 신나게 놀아라. 공부하고 싶으면 알차게 해라.

 

월요일이라고 크게 다를 것은 없다. 내 스케쥴에 맞추어 월요일을 편성해라. 내 몸상태에 맞추어 회사일을 분배해라. 모든 것은 내 위주로 돌아간다. 가장 멍청한 짓은 월요일부터 파김치가 되어 퇴근하는 일이다. 내 인생은 내 것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자, 월요병 퇴치 일곱가지 계명을 알려주겠다.

 

1. 월요일 아침은 1시간 일찍 일어나라.

- 내 인생 찾기의 가장 기본이 되는 일이다. 1시간 일찍 일어나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해라. 회사 가기 싫어서 이불 속에서 뭉개지 말고, 1시간이라도 내 시간으로 시작해 보자. 그게 훨씬 더 이득이다. 무엇을 하든 좋다. 나에게 가장 득이 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고 '나에게 투자한다'는 생각으로 그 한 시간을 보내보자.

 

2. 쳐낼 수 있는 모든 일을 뒤로 미루어라.

- 월요일부터 기운 뺄 필요 없다. 회사가 명령한 일 중 뒤로 미룰 수 있는 것들은 가급적이면 다 미루어라. 금요일까지의 시간은 생각보다 길다. 회사가 나를 함부로 착취할 수 없게끔 수많은 방어막을 설치해두어라. 수단방법 가릴 것 없다. 남에게 부탁을 하든, 남에게 떠넘기든 월요일은 일을 많이 하지 마라.

 

3. 회사에서 단 30분이라도 공부해라.

- 일이라는 것은 언제든지 수가 틀어지면 때려칠 수 있는 가변적인 성질의 것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진짜 노후대비는 공부다. 내 위주로 라이프스타일을 진정 꾸미고 싶다면 약아 빠진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하루에 단 30분이라도 회사에서 공부를 해라. 10분을 세 번으로 쪼개든, 5분을 여섯번으로 쪼개든 당신 마음이다. 회사가 나를 착취하는 만큼 나 또한 회사를 이용해 먹어야 한다.

 

4. 회사에서 단 30분이라도 혼자 쉬어라.

- 이것은 건강관리에서 필수의 문제이다. 나 혼자 있는 시간을 필사적으로 만들고, 그 시간만큼은 일에서 해방감을 맛보아라. 음악감상도 좋고, 가벼운 스트레칭도 좋다. 중요한 건 나 혼자서 쉰다는 사실. 누군가와 회사 뒷담을 한다던지, 동료들과 모여 야구 중계를 짬짬히 본다든지 하는 것은 쉬는 것에 포함되지 않는다. 그 또한 회사 눈치 보는 것과 다르지 않다.

 

5. 최대한 맛있는 걸 먹어라.

- 짜증이 폭발하지 않도록 최대한 맛있는 음식들을 섭취해라. 아침에 나올 때 초코렛을 먹든, 점심 식사 후에 정말 맛있는 캬라멜 마키아또를 마시든 여러분들만의 최고 맛난 음식들을 선정해서 월요일에 집중 포격해라. 점심도 가급적이면 비싸고 맛있는 메뉴로 고르자. 다이어트 생각은 일단 개에게 넘겨줘라. 나를 달래준다는 마음으로 먹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 단, 술은 금물이다.

 

6. 약속 잡지 말아라.

- 월요일 퇴근 후 약속은 독이다. 몸은 휴일에서 근무일로 급격하게 넘어와 이미 피로도가 몹시 올라와 있다. 월요일 약속은 한 주의 체력을 갉아먹는 독 중의 독이다. 집에서 쉬든지, 카페에 혼자 가서 책을 보든지, 영화관에서 혼자 즐거운 명화를 보든지 가급적 혼자 누릴 수 있는 것을 찾아라. 그리고 핸드폰을 멀리해라.

 

7. 퇴근 후, 따듯한 물에 오랫동안 샤워해라.

- 샤워만큼 몸의 긴장을 풀어주는 것도 없다. 따듯한 물로 오랫동안 몸의 구석구석을 적혀주도록 하자. 평소보다 오랜 시간 동안 샤워해라. 그리고 욕조에 누워 오늘 하루도 수고했다고 마음 속으로 위안해주자. 오늘 하루도 나를 위해서 열심히 살았다고. 나를 위로해 줄 가장 위대한 친구는 나다. 그리고 깊은 잠을 청해보자.

 

 

Written by 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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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해적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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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3.14 22:43




겨울은 잔인한 계절이다. 여유롭고 있는 자야 설경이 아름다고 낭만적인 계절일지 모르지만 겨울은 없으면 없을수록 잔인해진다. 특히 백수에게 겨울은 더욱 혹독하고 잔인한 계절이다. 겨울이 백수들에게 지옥인 건 일단 춥기 때문이다. 


추워서 어딜 나갈 수가 없다. 날이나 따뜻하면 산책도하고 공원에 앉아 여유로운 시간을 보낸다지만 한겨울에 공원가면 얼어 죽을 수도 있다. 그러니 자연스레 집에 뒹구는 시간이 많아진다. 그럼 뒹굴고 있는 모습을 본 어머니는 “방구들 무너져 이놈아!!”하시며 등짝 스매시를 날리신다. 


여기서 어머니의 잔소리 강도는 백수 생활이 길어지면 길수록 강도가 높아진다. 초기에는 넋두리 식으로 “이제 나이도 있는데 빨리 좋은 자리 잡아야할 텐데.”, “너만 취직을 하면 내가 걱정이 없겠다.” 정도의 잔소리다.

 

백수기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자식 존재 자체의 부정을 시작하시며 생사에 대한 이야기를 하신다. 예를 들어 “어휴~ 귀신은 뭐하나 몰라 저놈 안 잡아가고” 식으로 사신에게 죽음을 요청하기도 하며 “내가 저걸 낳고 미역국을 먹었으니 내가 미쳤지”, “으휴~ 저런 게 도대체 어디서 튀어나왔나 몰라!” 식의 자식존재를 부정하신다. 물론 이런 잔소리를 들을 때쯤이면 이미 백수생활에 익숙해졌기에 큰 멘탈의 손상은 없다.


백수생활이 장기화되었을 땐 오히려 어머니의 잔소리가 줄어든다. 다만 얼굴만 보면 그저 한숨만 쉬신다. 이쯤 되면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 죄인이 따로 없다.

본론으로 돌아와 어머니의 잔소리를 피해 잠시 외출이라도 하려면 옷이 문제다. 밖에 나갈 일이 많이 없다보니 옷을 살 일도 없다. 여름이면 그냥 천 쪼가리 몇 개 걸고 나가겠지만 겨울엔 답이 없다. 언제산지도 기억 없는 옷들로 꽁꽁 싸매고 나가도 갈 곳이 없으니 춥다. 돈 없고 갈 곳 없는 백수에게 겨울은 뭘 어떻게 해도 추울 뿐이다.


그래도 백수가 겨울 내내 집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여름보다 겨울에 공식적인 외출이 많을 수 있는데 바로 연말연시 모임들 때문이다. 그러나 백수에게 연말모임은 그리 즐거운 자리는 아니다. 


동네서 가볍게 친구들과 만난다면 얼굴에 철판 깔고 친구들에게 빌붙기 쿠폰을 사용하겠지만 공식적인 자리에서의 회비는 차마 피할 수가 없다. 물론 모든 상황을 아는 친구들이야 회비보다 얼굴 한번 비춰주는 선에서 모든 걸 용납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는 참 자리하기가 어렵다. 이와 비슷하게 지인의 ‘결혼’이라는 비보를 들을 때면 한숨이 절로 나온다.

 


백수에게 겨울이 잔혹한 건 명절이 있는 탓도 있다. 신정이야 그냥 넘어간다지만 온 친인척이 다 모이는 구정연휴엔 심한 고행의 길을 걷게 된다. 만나는 친척어른들은 하나 빠짐없이 “취업은 했니?”라며 물어오게 되는데 여기서부턴 마음을 비우는 것이 정신 건강에 좋다.


그래도 백수인 본인의 선에서 끝내는 잔소리는 그저 “알겠습니다.”하면 넘어갈 일이지만 간혹 부모님을 언급하시며 “이제 부모님 나이도 있는데 니가 이러고 있으면 되니? 집에만 있지 말고 뭐라도 좀 해라!”라고 하실 때면 잘 잡고 있던 멘탈이 흔들리기 마련이다. 거기에 함께 온 사촌이 꽤나 근사한 직장에 들어 갔다면 어느새 세상에서 가장 큰 죄인이 되어 있다.



예전 뉴스에서는 청년 실업에 대한 기사를 자주 다뤘다. 그러나 요즘은 이런 기사를 본지 꽤 지난 거 같다. 생각해보면 세상에 이슈가 될 정도의 문제인가 싶다. 사실 백수짓도 젊었을 때 아니면 언제 해보겠는가? 근데 언제부턴가 우리는 백수를 사회적 문제로 다뤘는지 이해가 안 된다. 


백수는 죄인이 아니다. 빈둥거릴 수 있을 때 빈둥거려야한다. 하루 종일 잠만 자도 좋고 게임을 해도 좋다. 갈 곳 없어도 그냥 버스를 타고 종점까지 가도 좋다. 백수 때 아니면 이런 일들은 할 수도 없다. 그리고 언젠간 이 시간들이 삶의 힘이 되고 위로가 된다. 


다시 말하지만 백수는 죄인이 아니다. 그래도 어머니의 잔소리는 피할 수 없으니 감내하고 상황이 조금 힘들더라도 당당지자! 백수에게도 겨울이 지나면 봄은 오니까.


written by 선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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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해적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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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성원을 알게 된 것은 라흐마니노프 베스트 앨범[EMI]을 통해서였다. 첼로 소나타. 활시위를 켜는 첫 음부터 온몸에 전율을 불러일으켰다. 단숨에 빠져들었다. 한달 정도 이 곡만 주구장창 들었던 기억이 난다.

양성원을 더 알고 싶어 인터넷을 이리저리 뒤적이던 찰나, 때마침 EMI에서 양성원 전집 한정반이 출시되었다는 꿀같은 정보를 알게 되었다. 주저없이 서점으로 뛰어가 집어들고, 신주단지 다루듯 집으로 모셔와 오디오에 귀를 묻었다.


양성원만의 매력을 딱 집어 말한다면 남성미 넘치는 현의 군무가 아닌가 싶다. 특히 졸탄 코다이의 첼로 독주는 상당히 독보적이다. 타연주가와 비교해 들어봐도 수준에서나 색깔에서나 부족함이 없다. 활시위를 당길 때마다 뱉어내는 숨소리와 적막 속에 퍼지는 송진냄새가 음반 속에 자욱하다. 인간의 냄새가 진동한다.

양성원씨에게는 형이 있다. 형이 그냥 형이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손꼽히는 바이올리니스트 양성식씨다. 소니에서 발매한 양성식씨의 시벨리우스 바이올린 협주곡을 들어본 사람은 안다. 음악의 신을 만날 수 있도록 해주는 타고난 천재. 노력해서 얻을 수 있는 수준의 예술세계가 아니다. 활날에 서슬이 시퍼렇다. 척추가 저리다.

실례를 무릎쓰고 평하건대, 동생은 그런 과는 아니다. 지독한 노력을 통해 재능을 만들어낸, 너무나 인간적인 첼리스트이다. 아다지오 소스테누토라는 말이 어울리는 연주가. 한 음 한 음에 신중에 신중을 기한다. 그것이 느껴진다. 듣는 이가 숙연해질 정도의 노력의 기운이 서려있다. 이 사람은 준재이다.

유명잡지의 인터뷰에서 양성원은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남겼다.

"저는 연주를 망치면, 때로는 잠을 못 이룰만큼 예민해집니다. 한 밤 중에 집밖을 뱅글뱅글 돌기도 하고, 무대에서 틀린 곳을 부질없이 방에서 혼자 연주해보기도 합니다. 그 '혼자 있고 싶은 시간'이 두렵다면 연주자가 되기 힘들 겁니다. 하루라도 첼로를 잡지 않으면, 다시 감각을 되돌려야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힙니다. 그러다 첼로를 잡게 되면, 조금 촌스러운 표현이지만, 좋습니다."

촌스럽지만 좋단다. 작은 실수 하나에도 아파하면서도 그 아픔마저도 즐거움의 자양분으로 빨아먹는 한 인간의 절실함이 묻어난다. 아흔살의 파블로 카잘스가 죽는 그날까지 연습에 매진했던 것처럼, 이 사람 역시 손에 활을 쥘 수 있는 그 날까지 우리에게 인간적인 경이로움을 선사해 줄 것이다.

                                                                                                            Written by 사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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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해적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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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4.07.15 02:50 신고

    단정한 느낌의 양성원교수님의 연주모습에 반했다. 열정적으로 연주하시는 정경화님은 항상 존경하고 ..한밤에 tv예술무대를 보다가 양교수님을 알기 위해 .... '좋습니다' 양교수님다운 진솔한 표현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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