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근을 마친 후 곧장 집으로 와 나이키 깔맞춤으로 갈아입고 문을 박차고 나왔다. 지금 뛰어야 살 수 있다는 절박한 마음으로 아파트 단지를 시계 반대방향으로 돌기 시작했다. 줄넘기를 돌리는 시간마저 포기한지 어엿 반년이 지나가는 시점이다. 보통 1500개는 거뜬히 해내는 관절이지만 지금은 그리 했다간 온 뼈마디가 작살이 날 것 같아 일단 러닝으로 운동의 가닥을 다시 잡아보기로 마음 먹었다. 이 아파트 단지를 돌아본 적이 없으니 우선 오늘은 다섯 바퀴를 뛸 다짐으로 무거운 몸뚱아리를 이끌었다.

 

입사 후 2년이 다 되어 가는 지금, 나는 10키로가 쪘다. 숨이 막힐 듯히 차오르는 가스배는 이제 점차 살로 굳어져 그러려니 하는 뚱보의 길로 접어들어 가고 있다. 서른 중반의 나이에 그럴 수 있다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운동량을 점차 줄여가며 먹고 싶은 음식을 마음껏 먹었다. 특히 술을 입에서 거의 떼지 않다시피 마셨다. 덕분에 올 4월, 나는 주말이 되면 팔 하나도 제대로 가누지 못할 정도로 쇠약해져 버렸다. 평일 업무 시간의 집중력은 눈에 띄게 떨어졌고, 급기야 나의 고질병인 '왼쪽 저림' 현상이 심각해졌다. 오늘 아침, 왼쪽 두통으로 시작한 나는 본능적으로 꺠달았다. '이러다 죽겠구나'

 

정말이지 살기 위해 뛰어 나왔다. 운동하기 좋은 계절이 돌아와서라거나, 비가 마침 그쳐서라거나 그런 것이 아니라 이러다가 뒷목 잡을 날이 머지않았다는 위험 감지 신호를 강력하게 받고 나온 것이다. 샤워를 마치고 나온 나는 매우 만족스러운 기분으로 평을 남긴다.

 

첫 바퀴는 생각 없이 뛰었다. 원래 운동 시에는 별 생각 없이 신체만을 단련할 수 있어 정신이 쉬기에 아주 적절하다. 두 바퀴 째부터는 심장 박동수가 점차 돌아오는 것이 느껴졌다. 평소 의자에 앉아 있으면 뭔가 무거운 돌이 심장 위를 짓누르는 것 같은 답답함을 종종 느끼곤 했는데 그 증상이 점차 사라졌다. 산소가 공급되고 있기 때문이리라.

 

세 바퀴부터는 후각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최근 나는 왠간한 냄새를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는 다소 둔감한 상태로 빠져 들어가고 있었다. 세찬 밤공기가 콧속으로 밀려 들어오며 뇌근육을 자극하고 곧 회로 장치가 작동됐다. 유감스럽게도 가장 와닿은 냄새들은 악취였다. 이 지점은 하수구가 지나가는 곳, 이 웅덩이 옆은 쓰레기 분리수거장, 공원 옆은 누군지를 모를 사람이 세 바퀴 째 줄담배를 피고 있는 곳이라는 사실이 코 깊숙이 다가왔다.

 

그 냄새를 맡기 싫어서라도 점차 뛰는 속도를 높였다. 네 바퀴부터는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처음엔 줄곧 서서 전화를 하던 여성이 세 바퀴를 넘어가니 이내 쭈구려 앉아 핸드폰을 만지작 거리고 있다. 수위 아저씨는 불법 주차 차량이 없는지 후레쉬를 간간이 비추며 천천히 단지를 돌고 있다. 사람이 끼어드니 운동 맛이 떨어지는 건 사실이었다. 난 운동할 때 누군가 곁에 있는게 싫다. 완전 무결한 나만의 절대적 시간으로서 만들기 위해서는 일단 인간이 없어야 마땅하다.

 

다섯 바퀴는 조금 전력을 다해 뛰었다. 이 때부터 안쓰던 허벅지와 종아리 근육이 조여들며 오늘의 운동 적정량을 넌지시 알려주었다. 거친 숨을 다스리고 현관 입구로 와 가벼운 스트레칭으로 몸을 진정시키고 큰 숨을 들이켰다. 그리고 다시 문을 박차고 들어와 입고 있던 운동복을 쓰레기처럼 세탁기에 집어 던지고 샤워 물줄기에 몸을 맡겼다. 모락모락 김을 빠져 나오니 이제 배가 고프다. 하지만 고통의 시간은 돌아오고 말았다. 나는 이제 더 이상의 무리한 음식 섭취는 위험하다. 적게 먹고 많이 뛰는 것으로 당분간의 위안을 삼아야만 하는 시간이 돌아오고야 만 것이다. 

 

내일도 살기 위해 뛸 것이다. 나와 나의 가족을 위해 더 건강히 살 것이다.  - 사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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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보그 잡지에서 폴리니의 화보를 본 적이 있다.비에 젖은 겨울의 도심 거리, 롱 코트 사이로 담배불을 감추며 무심하게 카메라를 바라보는 한 남자.

1960년, 폴리니는 열아홉살에 쇼팽 콩쿨에서 우승했다. 우승 심사곡은 피협 1번. 쇼팽이 대중에게 이 곡을 선보였던 것도 열아홉살 때였다.

심사결과 만장일치로 폴리니는 1위를 차지했는데, 심사위원이었던 루빈스타인은 이렇게 탄식했다. "우리 중에서 저 사람보다 기교에서 앞설 수 있는 사람 있을까?"

그 때의 분위기는 어땠을까? 1960년이면 그래도 실황앨범이 남아있지는 않을까? 꼬리에 꼬리를 물고 시간을 거슬러 파고 내려갔다. 작년 봄, 결국 해외 사이트에서 폴리니 첫 데뷔 쇼팽 실황앨범을 찾아냈다. 하지만 몇 달이 지나도 사이트로부터 주문한 앨범은 도착하지 않았고, 답신도 오지 않았다.

며칠 전, 그 때의 아쉬움에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인터파크 앱에 들어갔다가 '해외수입'코너에서 짜잔 그 앨범을 찾아냈다. 늦은 퇴근 후, 샤워를 마치고 나와 씨디를 돌렸다. 쾌속질주의 1악장부터 단 침을 삼켰다. 3악장이 끝나고 오디오에서 쏟아지는 관중들의 갈채 박수에 내 박수도 보탰다. 1960년으로 돌아갔다.

-사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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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하기 하나.


내가 일하는 곳은 주로 술을 파는 곳이긴 했지만 초저녁이면 종종 식사를 목적으로 가게를 찾는 손님들이 있다. 워낙 분위기가 ‘술 먹자!’하는 분위기라 많지 않지만 찌개라는 메뉴 때문인지, 가게이름 때문인지 백반집으로 착각해 들어오는 손님들이 더러 있다. 물론 자리에 앉았다가도 식사거리가 없다는 것을 판단하고는 다시 일어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몇 없는 식사 손님들 중에서도 혼자오시는 분들도 종종 있는데 주로 나이가 좀 많아 보이는 남자손님이었다. 그런 분들 역시 자리에 앉았다가도 다시 나가시는데 그런 모습을 보면 왠지 알 수 없는 짠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불쌍해서가 아니라 힘든 하루를 정신없이 보내고 가벼운 술 한 잔으로 자신을 달래려하는 가장의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한 직원은 그런 모습을 보며 “혼자 오는 손님은 분위기 망치니깐 받지 말자”라는 제안을 했다. 언제부터 우리나라에서 혼자 밥을 먹으면 분위기가 나빠지는지 모르겠지만 그 친구에게 있어서 혼자 밥 먹는 사람은 가게의 분위기를 망치는 사람이었던 것 같다. 


사실 우리나라에서 혼자 밥을 먹는 것에 대해서 많이들 부정적으로 생각한다. 혼자 밥 먹는 것이 나쁜 것도 아닌데 말이다. 물론 나도 어렸을 적엔 혼자서 밥을 먹거나 한 적은 없다. 누가 가르쳐서가 아니라 사회분위기가 그랬던 것 같다. 

 

이웃마저도 사촌이라 칭할 정도로 오지랖 넓은 나라이다 보니 혼자 식사를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인지도. 더불어 결혼을 하지 않으면 불효요, 사회문제인 세상에서 혼자 밥을 먹는 것은 한 인간의 성격문제이자 하자로까지 발전한 것 같다. 



혼자하기 둘.


친구로 보이는 여자 셋이서 온 손님이 있었다. 즐거운 분위기에서 영화이야기가 오가는 중 한 친구가 영화를 혼자 보고 왔다는 것이다. 그러자 반대편에 앉아 있던 친구가 “왜 영화를 혼자 봐?”라며 그 친구를 이해 못하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면서 자기는 영화를 좋아하지만 절대로 혼자선 영화를 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른 한 친구가 이유를 묻자 주변은 다 여럿이서 오는데 자신만 혼자 보는 건 이상하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영화관은 왠지 혼자서 가면 뭔가 이상하다는 것이 그녀의 이야기였다. 



같이 일하고 있는 한 친구도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요즘 영화를 통 못 봐서 영화가 보고 싶다는 것이다. 그래서 쉬는 날 가서 보라고 답해주자 혼자서는 영화를 안 본다는 것이다. 그 친구는 원래 생활하던 집보다 조금 먼 곳에서 생활하다보니 주변에 친구가 없었다. 그래서 혼자는 영화관에 갈 수가 없어 영화를 볼 수가 없던 것이다.


그런데 재밌는 건 이 친구가 집에서는 혼자 영화를 잘 본다는 것이다. 출근해서 어제는 뭐했냐고 물으면 곧잘 집에서 영화 봤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래서 “집에선 혼자 보는데 왜 영화관에서는 혼자 못 봐?”라고 물었더니 그 친구는 단순히 “그냥 혼자서는 영화관을 안 간다.”라고만 답했다. 


혼자 영화관을 갈 수 없는 두 사람의 이야기를 정리하면 혼자 영화를 보진 않지만 집에서는 혼자 볼 수 있다. 다르게 이야기하면 주변에 아무도 없을 땐 혼자 뭔가를 하는 것이 상관없지만 사람이 많은 곳에서 혼자 뭔가를 하는 것은 곤란하다는 것이다. 쉽게 생각하면 그냥 혼자 영화를 못 보는 게 아니라 사람 많은 영화관에서 혼자 영화를 못 보는 것이다. 주변이 신경 쓰여서.


대한민국이란 나라에서 무엇인가 혼자 한다는 것을 조금은 측은하게 여기는 것이 정서인건 사실이다. 내 주변의 이야기나 상황을 봐도 그렇다. 하지만 정작 혼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이유는 ‘주변의 정서’가 아닌 ‘사람들이 나를 어찌 생각할까하는 쓸 때 없는 생각’ 때문은 아닐까. 정작 세상 사람들은 아무도 나라는 사람을 신경 쓰지 않는데 말이다.



혼자하기 셋.


얼마 전 일이었다.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 녀석과 그의 여자 친구와 함께 술자리를 가졌다. 그 자리에는 우리 세 사람 말고도 처음 보는 3명의 사람도 함께였다.

초면인지라 인사가 서로 오가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술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나는 별 생각 없이 “집에서도 종종 술을 마신다.”라는 말을 했다. 그러자 내 말을 들은 한 친구가 ‘널 이해할 수 없어’라는 표정과 함께 “집에서 왜 혼자 술을 마셔?”라는 반문을 해왔다. 그래서 대답했다. “집에 있을 때 술이 생각날 때가 있잖아. 그래서 술을 마셔. 소주 한 병 정도 마시는데 꼭 누군가를 붙잡고 술을 먹어야하는 것은 아니잖아?”라고. 하지만 이 말은 들은 친구는 더 경악을 하며 “소주를 마신다고?!”라고 소리를 질렀다.


뭐가 문제였는지는 몰랐지만 나중에 생각해보니 집에서 혼자 술을 마시는 것도 이상한데 거기에 소주를 마신다니 이건 알코올중독자나 할 짓이었던 것이다. 집에서 혼자 맥주를 먹는 것은 이해할 수 있어도 소주는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 그 친구의 생각이었던 것 같다. 아마 집에서 가끔 소주랑 맥주랑 섞어서 먹을 때도 있다고 하면 기절했을 지도 모르겠다. 


사실 나도 예전엔 ‘소주’라는 술과 ‘혼자’라는 것에 대한 선입견이 있었다. 맥주를 집에서 혼자 먹는다고 하면 샤워를 마친 후 조금은 근사한 거실의 소파에 앉아 축구를 보며 마시는 모습을 상상하게 된다. 반면 소주라고 하면 폐인 같은 모습으로 찌질하게 방바닥에 앉아 안주도 없이 먹는 모습을 상상하고는 했다. 


이런 선입견 대부분은 미디어를 통해 각인된 이미지인데 매번 드라마에서는 사업에 실패한 아버지는 혼자 소주를 마시고, 잘나가는 젊은 이사님은 집에서 맥주나 양주를 먹는 모습만 보여주니 이런 선입견이 생기는 것도 이해가 가는 부분이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오면 그 친구도 예전의 나와 비슷한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소주는 혼자 마시면 안 되는 것이라는. 사실 그 친구가 나를 이상하게 생각한 것이 혼자 술을 먹기 때문이었는지, 혼자서 소주를 마시기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저 난 내 자신의 욕구에 충실히 행했을 뿐이었는데 말이다.


대학시절 나보다 어린 친구는 집에 가다 가끔 혼자 술을 한잔하고 들어간다는 이야기를 한적 있다. 들었을 당시엔 ‘이상한 아인데?’라는 생각을 했다. 시간이 흘러 서른을 넘긴 지금 생각해보면 그 아이는 아무것도 혼자 할 수 없던 나보다 정신적으로 훨씬 성숙했던 아이였다. 


우리는 많은 것을 혼자하기 두려워한다. 혼자 할 수 없는 이유는 단순하다. 주변의 시선 때문이다. 내가 이것을 혼자 하면 어떻게 생각할까하는 무의미한 생각으로 정작 하고 싶은 것은 못하고 산다. 바보같이. 

그리스의 철학자 디오게네스는 주변의 시선에 대해 신경 안 쓰기로 유명했다. 시장 한복판에서 성욕을 해결하기 위한 자위행위도 서슴없이 할 정도로 그는 주변시선을 의식하지 않았다. 주변에서는 이해하지 못했겠지만 본인 욕구에 충실했던, 그리고 주변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 삶을 산 디오게네스는 행복했을 것이다. 오죽했으면 알렉산더 대왕이 다시 태어난다면 디오게네스로 살고 싶다고 했겠는가. 

뭐든 혼자 한번 해보자. 생각보다 아무것도 아니다.


written by 선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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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해적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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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6.06.17 02:49 신고

    알찬 정보 좋네요~


성룡이라 하면 80년대에 태어난 이들에겐 영웅이자 최고의 스타였다. 물론 나도 어렸을 적 성룡의 액션 하나하나에 열광했고, 친구들과 비디오를 함께 시청한 뒤 성룡의 액션을 따라하며 뛰놀고는 했다. 우리의 윗세대에게는 이소룡이 있었다면 우리세대에는 성룡이었다. 


나는 특히 아시아판 ‘인디아나 존스’라고 불렸던 ‘용형호제’를 좋아했는데 특유의 성룡식 생활형밀착형 코믹액션이 잘 살아난 작품이었다. 이와 더불어 내 머리 속에 성룡하면 떠오르는 작품이 있으니 바로 ‘폴리스 스토리’였다.

영화의 제목처럼 폴리스 스토리는 성룡의 경찰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맨몸으로 나쁜 조직에 맞서 싸우는 성룡의 모습을 보고 어린 시절 경찰의 꿈을 가진 아이들이 종종 있었고, 나도 그 아이들 중 하나였다. 그랬기에 폴리스 스토리 2014는 기대가 컸다.



Take 1. 액션 없는 폴리스 스토리



전반적인 내용을 보면 사회적으로는 영웅이었으나 정작 자기 가정을 못 돌본 종 반장(성룡)은 사이가 좋지 않던 

딸과의 만남을 위해 ‘우’ 클럽을 찾게 된다. 그리고 이곳에서 딸을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괴한들에게 납치를 당하게 되고 종 반장은 딸을 구하기 위해 인질이 된다. 인질이 된 종 반장은 클럽 내 납치된 사람 모두는 클럽 주인인 ‘우 사장’과 연관이 있었음을 알게 되며 자신도 그 일원임을 확인하게 된다.



이번 작품은 액션영화의 단골 소재인 납치와 이를 구하는 내용이다. 그러나 이번 폴리스 스토리가 기존의 작품과 크게 다른 점이 있다면 액션에 중점을 두지 않았다는 것이다. 정확히는 액션은 있으나 성룡식 액션은 없다. 

영화 초기 딸을 만난 종 반장은 딸을 납치한 동일범에게 공격을 당해 감금당하게 되고 의자에 몸이 묶인 체 감시를 당하게 된다. 여기서 탈줄 장면을 살펴보면 묶고 있던 철사를 풀고 몇 차례의 공격으로 가볍게 탈출에 성공하게 된다. 그러나 이 모습은 성룡의 액션이 아니다. 


기존 성룡의 폴리스 스토리에선 완벽한 액션은 사실 없었다. 어딘가 어수룩한 모습으로 주변 사물을 이용한 액션을 펼쳤고, 이것에 많은 사람들이 열광했다. 예전 성룡이었다면 의자에 묶인 철사를 풀고 싸우는 것이 아닌 묶인 체 의자를 이용한 액션을 선보였을 것이다. 


이것을 증명이나 하듯이 폴리스 스토리 2014의 스토리 전개는 대부분 대화로 풀어간다. 기존의 폴리스 스토리에서 액션으로 스토리를 풀어가던 것과는 다른 모습이다. 영화중반부 긴 액션장면이 있으나 이는 크게 중요한 장면은 아니다. 후반부에 이르러서 액션 장면은 거의 찾아볼 수 없으며, 대부분 대화를 통해 이야기 전개시킨다.


기존의 액션을 통한 빠른 스토리 전개에 비해 이번 작품은 대화를 통한 느린 스토리 전개를 선보인다. 이 영화가 지루하고 답답하게 느껴지는 이유도 바로 이 점 때문일 것이다.



Take 2. 1인 영웅물의 전형적 메타



영화 초반 성룡은 택시를 타고 번화가로 가게 되는데 뒷좌석에 앉아 있는 성룡은 매우 피곤한 모습으로 잠들어있다. 성룡이 피곤한 모습으로 번화가를 찾은 이유는 바로 딸의 연락을 받고 딸을 만나기 위해서였는데 이 장면은 2007년에 개봉한 ‘다이하드 4.0’의 초반 부분과 굉장히 비슷한 느낌이다. 


다이하드에서의 존 맥클레인은 사회적인 영웅이지만 정작 자기 가정은 잘 돌보지 못해 아내와는 이혼한 상태이며 딸과는 사이가 좋지 못하다. 폴리스 스토리 2014 역시 사회적으로는 영웅이지만 정작 본인의 아내는 지키지 못했고 딸과의 사이가 좋지 못하다. 


사실 이런 유형은 과거 유행을 주도 했던 1인 영웅물 시리즈의 전형적 메타다. 주인공의 늙음과 함께 ‘사회적으로는 영웅이지만 정작 본인의 가족은 지키지 못했다’라는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결국 아버지라는 희생과 사랑으로 가족을 구하며 사회적으로나 가정적으로 영웅이 되어 감동을 안겨준다. 


폴리스 스토리 2014 역시 딸과의 오해-불화-납치-구출-행복 식의 전형적인 흐름을 취하고 있고 이 점은 ‘이 영화에선 성룡식의 화려한 액션은 볼 수 없다’라고 선고하고 있다. 아무래도 딸이 납치된 상황에서 우스꽝스럽게 싸울 수는 없을 테니 말이다. 


덕분에 이번 폴리스 스토리 2014는 굉장히 어중간한 모습을 하고 있다. 시원한 액션이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탄탄한 반전 시나리오가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거기에 홀로 테러 집단과 싸우는 모습은 ‘다이하드’의 모습을 띄고 있고, 딸을 구하는 모습은 ‘테이큰’의 모습을 보이고 있어 계속해서 어디선가 본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것은 성룡의 특유의 액션의 부재가 가져온 결과였다. 



Take 3. 아쉬운 그래서 더 아쉬운




기존 폴리스 스토리의 재미는 성룡의 액션의 다양화였다. 액션의 정석이 이연걸이라면 성룡의 액션은 주변사물을 이용한 액션이었다. 지금처럼 화려한 CG로 무장된 액션이 아닌 성룡이라는 배우 그 자체의 액션이었다. 그러나 폴리스 스토리 2014에서는 이러한 액션을 조금은 찾아보기 힘들다. 그나마 종종 있는 액션장면도 둔탁하고 무겁다. 그것을 커버하기에 스토리 라인은 허술했다.


그도 그럴 것이 올해 성룡은 60세의 나이다. 당연히 예전 전성기의 액션을 선보이기는 이미 너무 많은 세월이 지났다. 성룡의 액션을 따라하던 꼬마 역시 30대의 나이가 됐다. 어린 시절 영웅의 늙음은 나의 늙음이기도 했다. 그래서 나의 늙음을 부정하기위해 그의 화려한 액션을 더 기대했는지도 모르겠다.


written by 선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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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4.05.17 17:12 신고

    전 굉장히 감동깊게 봣습니다, 평이 너무안좋아 늦게나마 봤니요~ 딸의 초반 대사 하나하나가 가슴에 와닿네요, 액션영화로는 별로나,,, 경찰영화로는. 손색없는것 같네요

    • 2014.05.18 17:00 신고

      아마 폴리스스토리라는 전작들에 대한 기대가 큰 만큼 거기서 오는 실망도 있었던 거 같습니다. 저 역시 시원시원한 성룡의 액션을 크게 기대했기에 조금은 아쉬운 마음이 컷던 거 같고요.


제주도로 향하던 세월호가 침몰했다. 지인에게 여객선이 침몰했다는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땐 사실 별일 아닌 줄 알았다. 그런데 제대로 소식을 접하고 ‘290명 실종’이라는 상황을 알았을 땐 할 말을 잃었다. 특히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떠나는 고등학생들이 타고 있었다는 말에서 세월호의 침몰은 더 참담하게만 느껴졌고, 그저 아이들이 빨리 돌아오기만을 기도했다.



이상한 나라의 기자들



이미 많은 수의 인명사고가 발생한 참담한 사고였지만 이를 더 참담하게 만들었던 건 소위 대한민국 언론이라고 말하는 기자들이 하는 짓거리를 보았을 때였다. 그들은 사람이 아니었다. 그들은 짐승이었고 괴물이었다.


한 기자는 이번 사고를 영화 ‘타이타닉’과 ‘포세이돈 어드벤처’를 빗대어 기사를 썼다. ‘선박사고를 소재로 한 영화가 화재를 모으고 있다.’식의 기사는 계속 영화에 대한 정보를 담았고 마지막으로 ‘이 영화는 흥행했다’식으로 마무리했다. 물론 이 기사는 얼마 지나지 않아 삭제되었지만 이미 수많은 사람들에게 질타를 받았다.




이뿐만 아니었다. SKT가 긴급 구호 물품을 보낸다는 기사의 제목엔 SKT의 광고에 나오는 장난스러운 멘트인 ‘잘 생겼다’를 집어넣었다. 한 기자는 생존자에게 직접 SNS를 보내 배 안을 찍은 사진이 있냐고 물었으며 한 쪽에선 사망자가 받을 보험료에 대해 써 내렸다. 소위 메이저 언론이란 곳은 생존자에게 물어선 안 될 질문이나 쏟아냈다.

과연 이들이 사람일까? 길에서 돌아다니는 짐승도 이러지는 않을 것 같다. 하물며 인간이라는 족속이 이러고 있는 것 자체가 믿어지지 않으며 이것들이 대한민국의 언론이라는 점은 더욱 끔찍하다. 그냥 이것들은 쓰레기다.


그들에게 왜 그랬냐고 물으면 그들은 아마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국민의 알권리를 운운하며 ‘기자의 임무에 최선을 다했다.’라고. 하지만 그들은 기자이기 전에 인간이다. 그들이 인간이라면 같은 인간을 먼저 보호했어야한다. 그것은 국민의 알권리보다 우선이다. 그것을 포기한 그들은 이제 인간이 아님을 말하는 것일 뿐이다.


대한민국 언론은 썩었다. 아니, 이미 한참 전에 썩고 썩었다. 그리고 대통령의 방문이나 속보라고 내보내는 그들은 그저 기레기일 뿐이다.



이상한 나라의 어른들



사고소식과 함께 이상한 소식들은 계속 전해졌다. 사고 당시 배안에 사람이 많이 남아있었던 것은 “움직이지 말고 그대로 있어라”란 안내방송 때문이었다. 그리고 정작 가장 배안에 오래 남아있어야 할 선장과 기관사들은 가장 먼저 배에서 빠져나갔다.


이게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는 행동인가? 하긴 이런 행동은 처음이 아니다. 초기 대통령인 이승만 대통령도 서울 시민들에게 ‘안심하라’고 방송한 뒤 먼저 서울을 탈출하고 한강 다리를 폭파했다. 안타깝게도 썩어빠진 정신만 그대로 이어졌다.


하지만 아이들과 젊은이들은 달랐다. 본인보다 약한 사람을 먼저 생각했다. 6살인 오빠는 한 살 어린 여동생에게 구명조끼를 입혀줬다. 22살의 어린 승무원은 끝까지 남아 승객들의 대피를 도우다 목숨을 잃었다. 선원이라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22살의 어린나이의 승무원은 알았지만 가장 어른인 선장은 몰랐다.


침몰한 세월호를 보면 꼭 이 사회의 한 단면을 보는 듯하다. 귀감이 되어야할 어른들은 그저 남을 희생시키고, 본인은 더 나은 삶과 더 좋은 대접을 받길 원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사회가 이 같은 사고를 만들었고 ‘나만 아니면 돼!’하는 어른이란 괴물이 나라의 어린희망들을 집어 삼켰다.


마지막으로 이 이상한 나라의 지도층은 알아뒀으면 좋겠다. 사고현장에서 쓸 때 없이 가 있을 거면 내려가지 마라. 그냥 제발 가만히 있어라. 구조에 방해만 되니깐.


written by 저격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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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해적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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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4.04.18 00:30 신고

    잘읽고 공감누릅니다 백번 맞는말이세요
    이거 혹시 페이스북같은곳에 옮겨담고싶은데 괜찮은가요? 또 어떻게 하는지 아시나요?

    • 2014.04.18 00:57 신고

      링크하셔도 상관없습니다.
      링크하는 방법은 글 아랫쪽 공유 손가락 옆을 보시면 구독 옆, 공유가 있습니다. 이곳을 누른 후 페이스북을 클릭하시면 링크가 가능하십니다.

      부족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후 7시쯤 친구 녀석에게 한통의 전화가 왔다. “블랙데인데 짜장면 먹어야하지 않겠냐?” 블랙데이라고 해서 4월 14일 날 솔로인 사람들이 짜장면을 먹는 날이라고 한다. 언제부터 이런 것이 생겼는진 모르겠지만 솔로인지라 짜장면은 맛있게 먹었다. 


생각해보면 짜장면은 우리나라 음식도 아닌데 이런 기념일이 있다는 것 자체가 조금 이상하지만 한편으로는 한국에서 먹을 수 있는 대표적인 음식이기에 이런 기념일도 생겼을 거란 생각이다.

짜장면이라 함은 채소와 고기를 넣고 기름과 춘장을 넣어 볶아서 만든 양념을 면과 비벼먹는 한국식 중화요리다. 중국에서 처음에서 만들어졌지만(중국에서는 작장면이라 불린다) 한국인의 입맛에 맞춰진 후 대중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다. 원작보다 리메이크가 더 성공한 사례라고나 할까?


중국식 짜장면인 작장면은 우리식 짜장면과 다르게 단맛보다는 짭짤한 맛이 강해 춘장을 사용하기는 하나 많이 넣지 않는다고 한다. 최초의 한국식 짜장면은 1905년 인천에 거주하는 화교들에 의해서 처음 만들어졌는데 최초의 중화요리집인 ‘공화춘’에서 개발되었다고 한다. 이후 50년대 중반 춘장에 카라멜을 첨가하면서 지금의 우리 입맛에 맞는 짜장면이 탄생했는데 당시 정부에서 펼친 ‘분식장려운동’과 맞물린 짜장면은 급속도로 퍼지며 대표적 국민음식이 됐다.


짜장면의 가격도 시대의 변화에 따라 변해갔다. 60년 초엔 15원, 70년도엔 200원, 80년도엔 500~700원, 90년도에 들어서 1,300원을 돌파했으며 90년도 말에는 2,000원을 기록, 현재에 들어서 4,500원 정도의 가격으로 인상됐다. 오랜 시간동안 가격도 많이 올랐지만 그래도 한 끼 식사로는 가장 싼 음식일 것이다. 만원을 줘도 치킨 한 마리 제대로 시킬 수 없는 요즘 같은 세상에 5천 원 정도의 돈으로 한 끼를 배불리 먹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따름이다.



짜장면이 대중의 입맛을 사로잡는 동안 한편으로 매콤하고 속까지 확 풀리는 시원한 국물을 주무기로 한 짬뽕이 대중에게 사랑을 받았다. 달콤하고 부드러운 짜장이냐? 시원하고 얼큰한 짬뽕이냐를 놓고 누구나 한번쯤은 심각히(?) 고민했을 것이다. 오죽하면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라는 질문 다음으로 고민되는 것이 짜장, 짬뽕 선택이었을까. 그래서 차후 사람들은 이 고민을 해결하고자 ‘짬짜면’, ‘짜볶면’ 등 두 가지 음식을 동식에 먹을 수 있는 메뉴를 만들어 냈고 큰 인기를 끌었다.


짜장면이 많은 이들에게 사랑을 받았던 것이 저렴한 가격과 맛뿐이었을까? 짜장면하면 짬뽕과 더불어 떠오르는 것이 있으니 바로 철가방이다. 즉, 배달이 가능했다는 건데 우리나라의 배달문화를 이끈 장본인이라고 봐도 무색할 정도로 음식 배달계의 선두주자라 할 수 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짜장면이 대중적으로 사랑을 받았던 것도 이 철가방과 배달이 있었기 때문이다. 짜장면은 빨리 배달을 하지 않으면 면이 불어 맛이 떨어지는데 그 어떤 음식보다 빠른 배달을 요했고, 한국인의 급한 성질과도 잘 맞아 떨어져 대표적 국민음식이 된 것은 아닐까싶다. 



이제 수많은 먹거리의 풍요 속에서 짜장면은 전화만 하면 오는 가벼운 음식이겠지만 나의 어린 시절 짜장면은 졸업식이나 가족외식으로만 먹었던 분위기 있는 음식이었다. 지금은 다른 여러 음식에 자리를 내주었지만 여전히 나에게 있어 짜장면은 귀하고 분위기 있는 음식임은 틀림없다. 더불어 치솟는 물가 속에서 여전히 저렴한 가격으로 남아준 짜장면에게 그저 감사할 뿐이다.


written by 선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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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휘자 정명훈을 알게 된 것은, 그가 이끄는 서울시향과 피아니스트 김선욱의 베토벤 황제 실황 음반을 통해서였다.

'빰~~~'하고 시작하는 오케스트라의 첫 음에서부터 '아 협연이구나'를 알 수 있다. 관현악의 소리를 강하게 뿜어내지 않고 자연스럽게 끌어내고 있다. 이렇게 하면 피아니스트는 온전히 자기 색깔대로 연주를 이끌어갈 수 있다. 정명훈은 곡의 전체 구도에서 조화와 균형에 큰 비중을 두는 스타일의 지휘자였다.

세네번 정도 들었을 때 음반 하나가 머릿속을 스쳐갔다. 줄리니와 미켈란젤리의 황제 음반. 정명훈의 '첫 음'과 줄리니의 '첫 음'이 굉장히 흡사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당장 인터넷에서 '줄리니 정명훈'을 검색해봤다. 하하 이런, 두 사람은 정말 인연이 있었다.

정명훈은 줄리니가 이끄는 로스엔젤레스 교향악단의 어시트턴트로 3년을 근무했다. 그는 3년 내내 줄리니를 보좌하면서도 말 한 마디 제대로 걸어보지 못했다고 하니, 젊은 날의 그는 꽤나 내성적인 학생이었던 모양이다.

어느 날 너무나 난해한 곡을 접한 정명훈이 답답하다 못해 드디어 줄리니에게 찾아가 곡의 해석에 대한 답을 물었다. 그런데 줄리니는 해결책 대신 내일 다시 오라는 짧은 말만 남기고 정명훈을 돌려 보냈다.

다음 날 줄리니의 방을 찾아갔을 때, 줄리니는 역시 답을 알려주지 않았다. 대신 이런 말을 남겼다.

"정명훈 군,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이다"

이 말 한 마디가 정명훈 지휘인생에 지대한 영향력을 끼쳤다. 줄리니는 정명훈이 스스로 답을 찾아가길 원했다. 그는 정명훈이 가지고 있는 지휘자로서의 자질과 미래에 대한 확신이 있었다. 그는 1978년, 로스엔젤레스 오케스트라의 부지휘자로 스물다섯살의 정명훈을 발탁했다.

정명훈은 평생 줄리니를 정신적 스승으로 삼고 지휘에 임했다고 한다. 베토벤 황제의 첫 음에는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의 깊은 사연이 담겨 있었다. 나는 이 계기를 통해 집에 묵혀 두고 있었던 줄리니의 브람스 협주곡 전집을 꺼내들게 되었고, 그가 얼마나 위대한 음악가였는지 깨닫게 되었다.

무언가 하나씩 들리는 것을 보니 이제 서당개 노릇을 해볼만도 하겠다. 무언가를 이루는 데에는 그만큼 시간이 걸리는 것이다. 초조한 것은 내 욕심일 뿐이다.

Written by 사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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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투름 하나.


살아오면서 알바를 많이 했지만 지금처럼 직접적으로 음식을 했던 적은 없었다. 찌개를 끓이고, 고기를 삶고, 볶고, 정해진 레시피에 따라 만드는 음식은 사실 어렵지는 않았다. 단지 요리를 많이 해본 적 없는 난 요리를 하는 것이 서툴렀다.


찌개를 끓일 땐 소금을 너무 많이 넣어 짜게 만들었고, 볶음 요리를 할 땐 팬을 돌리는 게 서툴러 데이기 일쑤였다. 고기는 너무 오래 삶아 다 흐물흐물해질 때도, 너무 불을 일찍 꺼 덜 익히기도 했다. 상품으로 내놓는 요리가 처음인 나였기에 서툴러 벌어진 일들이었다. 특히 내가 가장 서툴렀던 것은 칼질이었다.


집에서 어머니가 해주는 밥 꼬박꼬박 먹고 다녔던 난 칼질이라고는 피자나 스테이크 먹을 때 써봤던 것이 고작이었다. 그랬던 내가 요리를 하기 위해 양파를 썰고 파를 다지고 하니 내 손은 남아나질 않았다. 툭하면 베이고 긁혔고 손에 반창고가 떨어진 날이 없었다. 한번은 칼에 베인 상처를 그냥 두고 일을 했다가 세균이 침투, 감염되어 깁스를 하기도 했으니 이쯤하면 칼은 나에게 있어 흉기나 다름없었다. 서투른 칼질은 나를 힘들게 했지만 한편으로는 익숙해져가는 칼질을 보며 뿌듯함과 재미를 주기도 했다.


지금은 칼에 베이는 일도 없어졌고 칼질 속도도 엄청 빨라졌다. 찌개는 짜지 않게 끓이게 됐고, 고기는 적당히 잘 익어 맛이 좋았다. 처음엔 모든 것이 너무 서툴기만 해 힘들고 어려워 그만두고 싶은 생각이 한 가득이었다. 베인 손가락에서 나오는 피를 보면서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건가?’하는 생각도 들고 괜한 재능 탓도 하곤 했다. 


하지만 처음엔 모두들 그렇게 서툴다. 지금에서 생각해보면 서툴렀기 때문에 재미있었고, 웃을 수 있는 일도 많았다. 모든 것이 능숙해져 심심해진 지금, 오히려 서툴렀기에 즐거웠던 그때를 생각하며 웃고는 한다.



서투름 둘.


세상살이가 난 항상 서툴렀다. 일도 사랑도 모든 것이 서툴렀던 것 같다. 처음이었기에 ‘그럴 수 있어.’라고 달래보아도 실수했던 것들을 생각날 때면 그저 기억을 지우고 싶다. ‘그땐 왜 그랬지?’, ‘그러지 말걸.’이라며 스스로 반성도 해보지만 뒤늦게 드는 후회일 뿐이었다.


스무 살이 되어 처음 사귄 여자 친구가 있었다. 첫사랑은 아니었지만 정식으로 이성과 교제한 것은 처음이었을 것이다. 그때 내가 그 사람에게 했던 행동들을 돌이켜보면 정말 ‘쓰레기가 아니었을까?’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서투른 연애를 했다. 


술에 취해 늦게 전화하기도하고 했고 알바 때문에 힘든 것을 알면서도 제대로 된 따뜻한 말 한마디 해준 적 없었다. 내가 싫어하는 행동을 하면 그걸 그 자리에서 고치려 했다. 배려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서투른 연애는 당연히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처음이었기에 서툴렀어.’라고 말하기에는 잘해준 것이 너무 없어 지금 생각해도 미안함과 후회뿐이다. 지금 어디에서 우연이라도 만나게 된다면 꼭 사과를 하고 싶을 정도다.

후회만 남긴 첫 연애가 약이 됐는지 다음 연애는 조금이나마 배려라는 것을 갖게 되었다. 물론 그 안에서도 또 다른 실수를 하고 같은 이별을 반복하며 다시 후회를 했다. 


나의 20대는 ‘잘했다!’라는 뿌듯함 보다는 ‘왜 그랬지?’하는 후회가 더 많다. 30대가 된 지금 생각해도 이불 뻥뻥 찰 정도의 부끄러운 실수도 많았다. 그래도 후회가 많다는 것은 그만큼 치열한 삶을 살았다는 반증이라 생각한다. 서투른 실수 속에서 난 많은 것을 배웠고 성장했다.


서투름은 항상 실수를 부른다. 하지만 세상에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은 없다. 우리는 실수를 통해 배우고 성장해 간다. 어쩌면 서툴다는 것은 성장할 기회가 많다는 것이다. 그래서 모든 것이 서툴러 실수투성이였던 그 시절이 더 그리운지도 모르겠다.


written by 선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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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4.10.08 10:59

    비밀댓글입니다


난 어려서 게임을 좋아했다. 어린 시절엔 학교 끝나고 잠시나마 꼭 오락실에 들리고는 했다. 중고등학생이 되어서는 블리자드사의 스타크래프트(이하 스타)를 하기 위해 PC방을 가기도 했다. 스타의 인기는 E-스포츠라는 또 하나의 문화를 만들었고 프로게이머라는 스타를 만들어 냈다. 나도 그렇게 E-스포츠를 문화로 생각했고 게임도 즐기며 어른이 됐다. 근데 언제부턴가 난 약쟁이가 되었다.


작년 4월 30일. 새누리당 신의진 의원 외 13명은 게임을 술, 마약, 도박과 같은 중독물이라고 자기 마음대로 규정해버리더니 이것을 관리하는 ‘중독 예방, 관리 및 치료를 위한 법률안’을 발의 했다. 순식간에 난 마약사법과 같은 등급의 범죄자가 됐다. 


게임업계가 무슨 죄를 지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들을 들쑤신 것이 처음 아니다. 셧다운제(16세 미만의 청소년에게 게임을 할 수 없도록 밤 12시부터 오전 6시까지 인터넷 게임의 접속을 강제로 막는 조치) 강화를 시작으로 게임업계 매출 1% 징수, 게임중독법까지 다양했다. 물론 제대로 발효된 것은 없지만 소식만으로도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됐다.



  그들이 말하는 게임의 문제점



공청회에서 그들이 말하는 게임의 문제는 술, 마약, 도박과 같은 중독물질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법안을 발의한 신의지 의원은 게임을 ‘행위 중독’이라고 규정하며 보건복지부의 관리가 필요한 행위라 말했다. 더불어 게임에 중독될 경우 게임을 따라 범죄를 저지르는 모방범죄의 우려가 있다고 주장했다.

보건복지부 최영현 실장은 “게임은 개인과 가정의 행복을 위협하고 있다고 주장, 국민 개개인의 건강한 삶을 위해서 4대 중독은 해결되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들이 말하는 게임의 문제점은 크게 두 가지다. 중독성이 심한 게임을 하는 것은 가정의 행복을 빼앗아 간다는 점과 그 아이들이 커서 모방범죄를 저지를 수 있다는 점이다. 더불어 게임의 선정성은 아이들의 정서를 불안정하게 만들며 인터넷 게임 과몰입은 사회, 경제적 폐해를 줄 수 있다는 것이다.


게임이 언제부터 사회, 경제적으로 폐해를 주고 아이들의 정서를 침해 했으며 어떤 모방범죄가 일어났는지 모르지만 그들에게 있어서 게임은 사회악 같은 존재라는 것이다. 특히 황우여 새누리당 의원의 경우 “술, 마약, 도박, 게임 중독으로부터 사회를 구하겠다.”라고 말하며 게임은 마약 술보다 심각하다고 주장했다. 



              ▲ 황우여 새누리당 의원



더불어 황 의원은 지난 7일 국제친선 조찬 기도회에서 “하나님 이외에는 어떤 것에도 메여서는 안 된다. 중독은 하나님 이외에 메이는 것. 신앙으로 중독문제를 해결해가자.”라는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하며 다시 게임중독법을 도마에 올렸다.



  말하고 있는 그들의 문제점



그들을 만날 기회가 있다면 가장 먼저 묻고 싶은 것은 “게임을 해본 적 있는가?”이다. 게임을 사회악이라 말하는 그들은 과연 그것을 해본 적이 있냐는 것이다. 물론 마약사범을 검거하는데 있어서 마약을 해볼 필요는 없다. 하지만 마약은 ‘하면 안 되는 것’이라는 인식은 어린아이도 갖고 있다. 마약과 게임을 같은 선상에 올려놓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 


게임중독의 심각성을 이야기하는 이들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어른, 즉 기성세대다. 사실상 그들이 커감에 있어서 게임을 접할 기회는 없었다고 생각된다. 인터넷이나 컴퓨터도 제대로 못하는 양반들이 무슨 게임을 해봤겠는가. 

게임을 한번이라도 해봤다면 알겠지만 게임을 했을 때 중독되는 경우는 쉽지 않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적당히 게임을 즐긴다. 그 와중에 몇몇이 심하게 중독되어 사회생활도 접고 게임에 몰두하는 사람이 있는 것이다. 이것이 문제라면 낚시의 중독도 굉장히 심각하며 당구중독도 생각해봐야한다. 중독은 개인의 차이고 절제의 문제다. 게임중독인 사람은 다른 어떤 무엇인가에 빠졌을 때에도 헤어 나오지 못 할 것이다. 비단 게임만의 문제는 아닌 것이다.


17년 전 우리 사회에 타마고치(たまごっち: 애완동물을 기르는 휴대용 게임기로 가상의 애완동물을 키우는 것이 목적이다.)가 처음 등장했을 때 아이들은 열광했다. 아이들은 이 게임기를 구하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했고 2명에 1명꼴로 타마고치를 했다. 그리고 매스컴에선 연일 타마고치가 아이들을 망치고 있으며 교권을 침해한다고 보도했다. 더불어 아이들의 성장에 방해가 되며 정서가 불안정해진다고 떠들어 됐다. 



당시 아이들은 정말 타마고치에서 못 헤어 나올 정도로 게임을 했지만 수십 년이 지난 지금 타마고치는 추억속의 장난감이 됐고 타마고치가 죽으면 많은 아이들이 자살을 할 것이라는 소리는 개소리가 됐다.



 그들이 모르는 문제점



게임에도 큰 문제가 있다며 단연 언어폭력이다. 이미 인터넷을 포함한 온라인 언어폭력은 사회적 문제다. 게임 내에서의 언어폭력도 심각한 사태다. 먼저 해야 할 것은 게임을 규제가 아니라 온라인상에서의 언어폭력에 대한 처벌이다.


온라인 언어폭력 상황은 생각보다 굉장히 심하다. 많은 이들이 악성댓글과 언어폭력으로 고통 받고 있으며 심하게는 자살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다. 이런 상황은 좌시한 체 왜 애먼 게임만 잡는지 이해할 수 없다. 솔직히 게임 때문에 자살한 사람은 없지 않은가?


게임 모방범죄가 무섭다면 게임 모방범죄에 관한 처벌을 강화해야지 게임을 못하게 하는 것은 너무 과도한 처사다. 바바리맨 잡겠다고 바바리코트 못 입게 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정녕 아이들의 게임하는 것을 막고 싶다면 아이들에게 게임보다 재미있게 놀 수 있게 세상을 만들어 주면 된다. 그럼 게임을 하라고 해도 하지 않을 것이다. 제대로 놀지도 못하는 아이들에게 게임은 그저 스트레스 해소용이자 친구들과 어울릴 수 있는 하나의 수단일 뿐이다. 


프랑소와즈 사강은 마약으로 인해 법정에 섰을 때 이렇게 말했다. “나를 파괴할 권리는 나에게 있다.” 아이들과 청소년들에게도 그것이 옳은 선택이든 나쁜 선택이든 선택할 권리가 있다. 그 권리마저 그들이 박탈할 이유는 없다. 

마지막으로 공부만 하는 아이들을 보고 싶으시면 본인들 자제분들만 시켰으면 좋겠다. 나는 내 아이들과 게임하면서 키울 테니까.


written by 저격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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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니콜로 마키아벨리
    
  저자 마키아벨리는 피렌체의 가난한 귀족 집안에서 태어나 1498년부터 피렌체의 제2서기관장직으로 내정과 군사를 담당하였으며, 대사로도 활약하였다. 1512년 메디치가(家)가 피렌체로 복귀하게 되자, 한때 음모의 죄명으로 체포된 후 관직에서 물러났으며, 실의 속에서 독서와 저술활동에 전념하였다.
  주요저서로 《군주론》(1532) 《로마사론》(1531) 《전술론》(1521) 《피렌체사》(1532)가 있으며, 또한 이탈리아 연극사상 획기적인 작품이라는 《만드라골라》(1524) 등이 있다.
  특히 《군주론》은 그의 대표작으로 마키아벨리즘이란 용어가 생기게 되었으며, 이 책은 군주의 자세를 논하는 형태로서 정치는 도덕으로부터 구별된 고유의 영역임을 주장하였고, 더 나아가 프랑스 및 에스파냐 등 강대국과 대항하여 강력한 군주 밑에서 이탈리아가 통일되어야 한다고 호소하였다. 이 저서는 근대 정치사상의 기원이 되었다.

 

2. 군주론

 

  마키아벨리가 「군주론」을 집필하게 된 직접적인 동기는, 메디치 가에 자신의 정치적인 식견과 능력을 입증하는 책을 헌정함으로써 그들의 환심을 사 공직에 복귀하는 것이었다. 그의 정치적 바람은, 만약 그들이 자신의 조언을 따른다면 그들의 가문에는 명예를, 이탈리아인 모두에게는 이득을 가져오는 결과를 성취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군주론은 마키아벨리의 헌정사(니콜로 마키아벨 리가 위대한 로렌초 대 메디치 전하께 올리는 글)로 시작하여, 총 26장으로 이루어진 글이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26장을 크게 4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고 본다. 첫째, 군주국을 다스리는 방법. 둘째, 군사에 관한 처신. 셋째, 바람직한 군주상. 넷째, 이탈리아에 대한 조언이다.

 

 

3. 군주론의 마키아벨리즘

 

  1. 이익지향적 사상

 

  마키아벨리는 군주의 신민들 및 동맹들에 대한 처술 고찰에서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다른 사람들이 제안한 원칙들과 특히 이 문제에 관해서 크게 다르기 때문에, 내가 건방지다고 생각되지 않을까하는 두려운 마음이 앞서기도 한다”고 말하면서, “그러나 나는 이 문제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유용한 것을 쓰고자 하기 때문에, 이론이나 사변보다는 사물의 실제적인 진실에 관심을 경주하는 것이 낫다”고 얘기한다.

  마키아벨리는 국가통치술을 설명하는 데에 있어 이전 시대부터 존재해 왔던 도덕적 이론과 규범에 근거한 정치사상에서 독립하고자 하였으며, 이익과 부합되지 않는 것들은 일체 정치 행동원리에서 배제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기존 정치행위의 원리인 도덕적인 원리를 추방한 것은 정치행위의 비도덕성을 전제로 깔겠다는 의도로서, 합리적이고 계산적인 이익의 개념을 정치에 적용시켜 불안한 정국 속에서 일정한 예측 가능성과 안정성을 확보하겠다는 것이다.
  이익지향적 행동은 심지어 그의 폭력관에서도 보인다. 마키아벨리에게서 놀라운 점은 격동의 정국속에서 빈번하게 일어나는 잔인한 폭력마저도 마치 의사가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서 필요약을 처방해주듯이 적당한 양을 적절한 시기에 사용할 것을 권하고 있다는 것이다. 「군주론」곳곳에서도 보여지듯, 소수에 대한 폭력을 통해 다수의 행복을 보장할 수 있다면 그러한 과정에서 사용된 폭력이라는 것은 악덕이 아닌 덕으로 봐야 한다고 역설한다. 고정된 진리보다 상황에 맞는 덕을 추구하는 그의 생각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하지만 이러한 이익에 근거한 정치는 자신의 정치영역의 안정성을 확보하는데에는 효과적이겠이지만 궁극적으로 공동체적인 성격을 띤 정치구조를 만드는 데에는 한계점이 있지 않겠냐라는 의문을 가지게 한다. 마키아벨리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메디치가에게 마지막으로 ‘공동체적 성격’을 띤 이탈리아 민족을 위한 국가통일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해본다. 


  2. 현실주의적 사상  

 

 마키아벨리 사상에서 빠질 수 없는 부분이 있다면 바로 정치사상의 독자성이라고 할 수 있다. 고대 그리스에서야 정치사상의 자유가 보장되고, 정치영역의 독자성이 익숙한 관념이었겠지만, 중세에 들어서는 모든 정치사상은 교회로 수렴된다. 정치사상에서 개인의 독자성을 인정받지 못하고 어디까지나 기독교라는 하나의 통일된 종교적 사상아래 머물러 있어야 한다는 얘기이다. “기독 사상외에는 어떤 것도 인정할 수 없다.” 
 그러나 르네상스 시대에 접어들면서 이탈리아의 정치적 성격이 기독교의 영향력을 조금씩 벗어나면서 그 나름대로의 독자성을 만들어가기 시작한다. 이런 흐름 가운데 나온 것이 바로 마키아벨리의 정치 사상인데 그는 자연법 사상과 같은 중세적 사고방식을 거의 배제시켜 버린 채, 철저하게 현실을 중심으로 권력의 문제만을 두고 현상들을 분석해 나아가기 시작했다. 다시말해 종교적 가치나 윤리적 고려를 배제하고 순수하게 권력의 획득, 유지, 확대의 차원에서만 정치를 살피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물론 그러한 그의 생각은 정치현실의 복잡하고 다양한 부분들을 모두 살피지 않고 따라서 어떤 편협된 시각으로 흐를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의 사상대로라면 종교적, 윤리적, 문화적 얘기를 다 제쳐두고 정치와 권력이 함께하고 있는 곳이라면 모두 다 적용될 수 있다는 매력적인 점도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의 사상은 ‘덕’의 개념에서 가장 크게 드러난다. 기독교 사상가들은 신에 대한 경건함, 정직함, 겸손함 즉 기독교적인 의미의 덕만을 군주들에게 요구했다. 그러나 그런 기독교적인 덕은 마키아벨리 저자 말대로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의 문제만을 답해줄 뿐, “인간이 어떻게 사는가”에 대한 실제적인 설명은 해 줄 수가 없다. 따라서 그는 군주에게 필요한 덕으로써 ‘남성다움’, ‘용맹스러움’,‘단호함’등을 요구했다. 이러한 마키아벨리만의 덕 사상은 윤리에서 말하는 덕과 확실히 구분된다는 점을 명확히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마키아벨리는 진정한 덕이 반드시 윤리적 덕과 부합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그는 ‘도덕적 덕에 입각한 기술’보다 ‘권력의 기술’문제에 치중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공적인 덕에서 윤리적인 덕이 적용되는 부분이 적은 것일 뿐이지, 사적인 관계에 있어서는 여전히 윤리적인 덕이 효력을 발휘한다고 했다. 그러한 그의 생각들은 15장 <사람들이, 특히 군주가 그 때문에 칭찬받거나 비난받는 일들>에서 잘 보여진다 하겠다.

  그는 ‘악덕’이라고 불리는 덕을 실천하는 것이 “결과적으로 자신의 입장을 강화시키고 번영을 가져오는 경우가 있”다고 말하고 있지만, 그 전제로 “군주가…좋다고 생각되는 성품들을 모두 갖추고 있다면 그야말로 가장 찬양받을 만하며, 모든 사람들이 이를 기꺼이인정할 것이라는 점을 나는 알고 있다”라고 분명히 이야기를 하고 있다. 다시 말해, 그는 윤리적인 덕은 분명히 존재하고 일부 사회 내에서 효력을 발휘하지만 그것이 정치구조 안에서는 사용되기 힘들다는 점을 꼬집어 주장하는 것이다.

 

  3. 외양추구적 사상


  그는 급변하는 정치 상황 속에서 내부적 역량에 기초한 군주의 덕목들은 상대방을 설득시키기까지 너무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하고 또 효력을 발휘하기가 힘들다고 보았다. 따라서, 군주는 겸손함, 신실함, 경건함과 같은 덕목을 가져야 할 필요는 없지만 가지고 있는 것처럼은 보여야 한다고 역설한다. 이러한 외적 측면의 강조는 여러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는 정치라는 것이 윤리적 사상과 맞닿는 본질의 공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외적인 공간 속에 포함되어 있다고 봤다. 중세의 철학가들은 종교적 진리를 정치라는 틀 안에서 구현시키고자 노력했지만, 마키아벨리는 정치구조 속에서 그러한 행동들이 결코 효력을 볼 수 없다고 생각했다.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는 권력판 속에서 군주가 추구해야 할 것은 여유있을 법한 진리의 완성이 아니라 ‘영광’과 ‘명예’라고 생각했다. 
  그의 외적추구 사상은 눈물도 피도 없는 정치구조판 속에서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역할과 기능을 한다. 대부분 정치상황이 적자생존의 법칙으로 돌아가고 있는 판국에서, 순수한 도덕률에 입각한 행동들을 보여주게 되면 그 자신은 적들에게 쉽게 그 약점이 노출되어 심각한 정치적 데미지를 입을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따라서 자신의 적으로부터 일단 꼬투리를 잡히지 않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최소한의 외양적 덕목만을 갖출 필요가 있다고 본 것이다. 
  외적 사상과 결부되는 ‘가장’과 ‘위선’은 위험한 정치구조 속에서 인민과 귀족의 지지를 확보할 수 있는 강력한 무기가 된다. 그는 정치자가 일반적인 윤리의 치침에 잘 따라 하는 것처럼 교묘히 위장하라고 조언함으로써, 대중에게 보여주는 퍼포먼스에서는 정치적 윤리보다 일반적 윤리가 더 우월하고 효력이 크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4. 결과주의적 사상


  이탈리아 정치에서 마키아벨리에게 중요했던 것은 “결국 그러한 행동이 어떠한 결과를 낳을 것인가?”하는 것이었다. 그는 “외양상 덕으로 보이는 것이 악덕이 되고, 외양상 악덕으로 보이는 것이 덕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예를 들면 16장에서는 정치상황에서 통치자가 일반적인 관후함을 보인다는 것은 불만을 품은 세력에게 끊임없는 관심을 보여준다는 것이고, 그것은 곧 국고탕진, 다시 말해 인민의 세금부담을 증가시키는 결과를 가져와 관후함은 곧 악덕으로 전환이 된다. 반면 통치자의 인색함은 불만을 품은 소수 세력만을 배제할 뿐 그것은 신민의 재산을 온전히 지키는 것이 됨으로 결국 공적으로는 덕으로 이어진다.

  17장의 ‘진정한 자비’에서는 통치자가 자비로워서 쉽게 죄인을 용서하면 기강이 문란해져 질서를 유지키 힘들고, 그것은 거꾸로 엄격한 통치로 이어지기 때문에 궁극적으로는 악덕이 된다고 말한다. 반면 일정한 잔인함을 보여주어 국가의 기강을 바로세운다면 그것은 소수의 희생을 통해 많은 사람들을 온전히 생활할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진정한 덕이 될 수 있다고 하였다. 결론적으로 이득을 더 많이 가져오는 결과만이 진정한 덕으로 귀결될 수 있다는 그의 면모를 엿볼 수 있는 것이다.

 

  5. 운명개척 사상


  25장에서 말하는 운명론에서도 기독교와는 반대되는 그의 사상을 엿볼 수 있다. “모든 일은 신이 주관하고 신의 뜻에 따라 일어나며 신의 뜻으로 종결된다”고 보는 기독교적 사상과는 달리 그는 “운명이란 우리 활동의 반만 주재할 뿐이며 대략 나머지 반은 우리의 통제에 맡겨져 있다는 생각에 이끌린다”라고 말하면서 “자신의 행동을 시대에 잘 적응시키는 사람들”은 “운명의 범람”을 통제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또한 운명을 통제하기 위해서는 그 상황에 순응하는 것보다 대담함과 용기를 가지고 과단성있게 행동해야 한다고 말하면서 적극적인 운명개척 정신을 가질 것을 독자에게 호소한다.

 

Written by 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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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해적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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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4.04.14 22:52 신고

    논문 : vi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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