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근을 마친 후 곧장 집으로 와 나이키 깔맞춤으로 갈아입고 문을 박차고 나왔다. 지금 뛰어야 살 수 있다는 절박한 마음으로 아파트 단지를 시계 반대방향으로 돌기 시작했다. 줄넘기를 돌리는 시간마저 포기한지 어엿 반년이 지나가는 시점이다. 보통 1500개는 거뜬히 해내는 관절이지만 지금은 그리 했다간 온 뼈마디가 작살이 날 것 같아 일단 러닝으로 운동의 가닥을 다시 잡아보기로 마음 먹었다. 이 아파트 단지를 돌아본 적이 없으니 우선 오늘은 다섯 바퀴를 뛸 다짐으로 무거운 몸뚱아리를 이끌었다.

 

입사 후 2년이 다 되어 가는 지금, 나는 10키로가 쪘다. 숨이 막힐 듯히 차오르는 가스배는 이제 점차 살로 굳어져 그러려니 하는 뚱보의 길로 접어들어 가고 있다. 서른 중반의 나이에 그럴 수 있다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운동량을 점차 줄여가며 먹고 싶은 음식을 마음껏 먹었다. 특히 술을 입에서 거의 떼지 않다시피 마셨다. 덕분에 올 4월, 나는 주말이 되면 팔 하나도 제대로 가누지 못할 정도로 쇠약해져 버렸다. 평일 업무 시간의 집중력은 눈에 띄게 떨어졌고, 급기야 나의 고질병인 '왼쪽 저림' 현상이 심각해졌다. 오늘 아침, 왼쪽 두통으로 시작한 나는 본능적으로 꺠달았다. '이러다 죽겠구나'

 

정말이지 살기 위해 뛰어 나왔다. 운동하기 좋은 계절이 돌아와서라거나, 비가 마침 그쳐서라거나 그런 것이 아니라 이러다가 뒷목 잡을 날이 머지않았다는 위험 감지 신호를 강력하게 받고 나온 것이다. 샤워를 마치고 나온 나는 매우 만족스러운 기분으로 평을 남긴다.

 

첫 바퀴는 생각 없이 뛰었다. 원래 운동 시에는 별 생각 없이 신체만을 단련할 수 있어 정신이 쉬기에 아주 적절하다. 두 바퀴 째부터는 심장 박동수가 점차 돌아오는 것이 느껴졌다. 평소 의자에 앉아 있으면 뭔가 무거운 돌이 심장 위를 짓누르는 것 같은 답답함을 종종 느끼곤 했는데 그 증상이 점차 사라졌다. 산소가 공급되고 있기 때문이리라.

 

세 바퀴부터는 후각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최근 나는 왠간한 냄새를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는 다소 둔감한 상태로 빠져 들어가고 있었다. 세찬 밤공기가 콧속으로 밀려 들어오며 뇌근육을 자극하고 곧 회로 장치가 작동됐다. 유감스럽게도 가장 와닿은 냄새들은 악취였다. 이 지점은 하수구가 지나가는 곳, 이 웅덩이 옆은 쓰레기 분리수거장, 공원 옆은 누군지를 모를 사람이 세 바퀴 째 줄담배를 피고 있는 곳이라는 사실이 코 깊숙이 다가왔다.

 

그 냄새를 맡기 싫어서라도 점차 뛰는 속도를 높였다. 네 바퀴부터는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처음엔 줄곧 서서 전화를 하던 여성이 세 바퀴를 넘어가니 이내 쭈구려 앉아 핸드폰을 만지작 거리고 있다. 수위 아저씨는 불법 주차 차량이 없는지 후레쉬를 간간이 비추며 천천히 단지를 돌고 있다. 사람이 끼어드니 운동 맛이 떨어지는 건 사실이었다. 난 운동할 때 누군가 곁에 있는게 싫다. 완전 무결한 나만의 절대적 시간으로서 만들기 위해서는 일단 인간이 없어야 마땅하다.

 

다섯 바퀴는 조금 전력을 다해 뛰었다. 이 때부터 안쓰던 허벅지와 종아리 근육이 조여들며 오늘의 운동 적정량을 넌지시 알려주었다. 거친 숨을 다스리고 현관 입구로 와 가벼운 스트레칭으로 몸을 진정시키고 큰 숨을 들이켰다. 그리고 다시 문을 박차고 들어와 입고 있던 운동복을 쓰레기처럼 세탁기에 집어 던지고 샤워 물줄기에 몸을 맡겼다. 모락모락 김을 빠져 나오니 이제 배가 고프다. 하지만 고통의 시간은 돌아오고 말았다. 나는 이제 더 이상의 무리한 음식 섭취는 위험하다. 적게 먹고 많이 뛰는 것으로 당분간의 위안을 삼아야만 하는 시간이 돌아오고야 만 것이다. 

 

내일도 살기 위해 뛸 것이다. 나와 나의 가족을 위해 더 건강히 살 것이다.  - 사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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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하기 하나.


내가 일하는 곳은 주로 술을 파는 곳이긴 했지만 초저녁이면 종종 식사를 목적으로 가게를 찾는 손님들이 있다. 워낙 분위기가 ‘술 먹자!’하는 분위기라 많지 않지만 찌개라는 메뉴 때문인지, 가게이름 때문인지 백반집으로 착각해 들어오는 손님들이 더러 있다. 물론 자리에 앉았다가도 식사거리가 없다는 것을 판단하고는 다시 일어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몇 없는 식사 손님들 중에서도 혼자오시는 분들도 종종 있는데 주로 나이가 좀 많아 보이는 남자손님이었다. 그런 분들 역시 자리에 앉았다가도 다시 나가시는데 그런 모습을 보면 왠지 알 수 없는 짠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불쌍해서가 아니라 힘든 하루를 정신없이 보내고 가벼운 술 한 잔으로 자신을 달래려하는 가장의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한 직원은 그런 모습을 보며 “혼자 오는 손님은 분위기 망치니깐 받지 말자”라는 제안을 했다. 언제부터 우리나라에서 혼자 밥을 먹으면 분위기가 나빠지는지 모르겠지만 그 친구에게 있어서 혼자 밥 먹는 사람은 가게의 분위기를 망치는 사람이었던 것 같다. 


사실 우리나라에서 혼자 밥을 먹는 것에 대해서 많이들 부정적으로 생각한다. 혼자 밥 먹는 것이 나쁜 것도 아닌데 말이다. 물론 나도 어렸을 적엔 혼자서 밥을 먹거나 한 적은 없다. 누가 가르쳐서가 아니라 사회분위기가 그랬던 것 같다. 

 

이웃마저도 사촌이라 칭할 정도로 오지랖 넓은 나라이다 보니 혼자 식사를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인지도. 더불어 결혼을 하지 않으면 불효요, 사회문제인 세상에서 혼자 밥을 먹는 것은 한 인간의 성격문제이자 하자로까지 발전한 것 같다. 



혼자하기 둘.


친구로 보이는 여자 셋이서 온 손님이 있었다. 즐거운 분위기에서 영화이야기가 오가는 중 한 친구가 영화를 혼자 보고 왔다는 것이다. 그러자 반대편에 앉아 있던 친구가 “왜 영화를 혼자 봐?”라며 그 친구를 이해 못하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면서 자기는 영화를 좋아하지만 절대로 혼자선 영화를 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른 한 친구가 이유를 묻자 주변은 다 여럿이서 오는데 자신만 혼자 보는 건 이상하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영화관은 왠지 혼자서 가면 뭔가 이상하다는 것이 그녀의 이야기였다. 



같이 일하고 있는 한 친구도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요즘 영화를 통 못 봐서 영화가 보고 싶다는 것이다. 그래서 쉬는 날 가서 보라고 답해주자 혼자서는 영화를 안 본다는 것이다. 그 친구는 원래 생활하던 집보다 조금 먼 곳에서 생활하다보니 주변에 친구가 없었다. 그래서 혼자는 영화관에 갈 수가 없어 영화를 볼 수가 없던 것이다.


그런데 재밌는 건 이 친구가 집에서는 혼자 영화를 잘 본다는 것이다. 출근해서 어제는 뭐했냐고 물으면 곧잘 집에서 영화 봤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래서 “집에선 혼자 보는데 왜 영화관에서는 혼자 못 봐?”라고 물었더니 그 친구는 단순히 “그냥 혼자서는 영화관을 안 간다.”라고만 답했다. 


혼자 영화관을 갈 수 없는 두 사람의 이야기를 정리하면 혼자 영화를 보진 않지만 집에서는 혼자 볼 수 있다. 다르게 이야기하면 주변에 아무도 없을 땐 혼자 뭔가를 하는 것이 상관없지만 사람이 많은 곳에서 혼자 뭔가를 하는 것은 곤란하다는 것이다. 쉽게 생각하면 그냥 혼자 영화를 못 보는 게 아니라 사람 많은 영화관에서 혼자 영화를 못 보는 것이다. 주변이 신경 쓰여서.


대한민국이란 나라에서 무엇인가 혼자 한다는 것을 조금은 측은하게 여기는 것이 정서인건 사실이다. 내 주변의 이야기나 상황을 봐도 그렇다. 하지만 정작 혼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이유는 ‘주변의 정서’가 아닌 ‘사람들이 나를 어찌 생각할까하는 쓸 때 없는 생각’ 때문은 아닐까. 정작 세상 사람들은 아무도 나라는 사람을 신경 쓰지 않는데 말이다.



혼자하기 셋.


얼마 전 일이었다.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 녀석과 그의 여자 친구와 함께 술자리를 가졌다. 그 자리에는 우리 세 사람 말고도 처음 보는 3명의 사람도 함께였다.

초면인지라 인사가 서로 오가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술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나는 별 생각 없이 “집에서도 종종 술을 마신다.”라는 말을 했다. 그러자 내 말을 들은 한 친구가 ‘널 이해할 수 없어’라는 표정과 함께 “집에서 왜 혼자 술을 마셔?”라는 반문을 해왔다. 그래서 대답했다. “집에 있을 때 술이 생각날 때가 있잖아. 그래서 술을 마셔. 소주 한 병 정도 마시는데 꼭 누군가를 붙잡고 술을 먹어야하는 것은 아니잖아?”라고. 하지만 이 말은 들은 친구는 더 경악을 하며 “소주를 마신다고?!”라고 소리를 질렀다.


뭐가 문제였는지는 몰랐지만 나중에 생각해보니 집에서 혼자 술을 마시는 것도 이상한데 거기에 소주를 마신다니 이건 알코올중독자나 할 짓이었던 것이다. 집에서 혼자 맥주를 먹는 것은 이해할 수 있어도 소주는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 그 친구의 생각이었던 것 같다. 아마 집에서 가끔 소주랑 맥주랑 섞어서 먹을 때도 있다고 하면 기절했을 지도 모르겠다. 


사실 나도 예전엔 ‘소주’라는 술과 ‘혼자’라는 것에 대한 선입견이 있었다. 맥주를 집에서 혼자 먹는다고 하면 샤워를 마친 후 조금은 근사한 거실의 소파에 앉아 축구를 보며 마시는 모습을 상상하게 된다. 반면 소주라고 하면 폐인 같은 모습으로 찌질하게 방바닥에 앉아 안주도 없이 먹는 모습을 상상하고는 했다. 


이런 선입견 대부분은 미디어를 통해 각인된 이미지인데 매번 드라마에서는 사업에 실패한 아버지는 혼자 소주를 마시고, 잘나가는 젊은 이사님은 집에서 맥주나 양주를 먹는 모습만 보여주니 이런 선입견이 생기는 것도 이해가 가는 부분이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오면 그 친구도 예전의 나와 비슷한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소주는 혼자 마시면 안 되는 것이라는. 사실 그 친구가 나를 이상하게 생각한 것이 혼자 술을 먹기 때문이었는지, 혼자서 소주를 마시기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저 난 내 자신의 욕구에 충실히 행했을 뿐이었는데 말이다.


대학시절 나보다 어린 친구는 집에 가다 가끔 혼자 술을 한잔하고 들어간다는 이야기를 한적 있다. 들었을 당시엔 ‘이상한 아인데?’라는 생각을 했다. 시간이 흘러 서른을 넘긴 지금 생각해보면 그 아이는 아무것도 혼자 할 수 없던 나보다 정신적으로 훨씬 성숙했던 아이였다. 


우리는 많은 것을 혼자하기 두려워한다. 혼자 할 수 없는 이유는 단순하다. 주변의 시선 때문이다. 내가 이것을 혼자 하면 어떻게 생각할까하는 무의미한 생각으로 정작 하고 싶은 것은 못하고 산다. 바보같이. 

그리스의 철학자 디오게네스는 주변의 시선에 대해 신경 안 쓰기로 유명했다. 시장 한복판에서 성욕을 해결하기 위한 자위행위도 서슴없이 할 정도로 그는 주변시선을 의식하지 않았다. 주변에서는 이해하지 못했겠지만 본인 욕구에 충실했던, 그리고 주변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 삶을 산 디오게네스는 행복했을 것이다. 오죽했으면 알렉산더 대왕이 다시 태어난다면 디오게네스로 살고 싶다고 했겠는가. 

뭐든 혼자 한번 해보자. 생각보다 아무것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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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6.06.17 02:49 신고

    알찬 정보 좋네요~


서투름 하나.


살아오면서 알바를 많이 했지만 지금처럼 직접적으로 음식을 했던 적은 없었다. 찌개를 끓이고, 고기를 삶고, 볶고, 정해진 레시피에 따라 만드는 음식은 사실 어렵지는 않았다. 단지 요리를 많이 해본 적 없는 난 요리를 하는 것이 서툴렀다.


찌개를 끓일 땐 소금을 너무 많이 넣어 짜게 만들었고, 볶음 요리를 할 땐 팬을 돌리는 게 서툴러 데이기 일쑤였다. 고기는 너무 오래 삶아 다 흐물흐물해질 때도, 너무 불을 일찍 꺼 덜 익히기도 했다. 상품으로 내놓는 요리가 처음인 나였기에 서툴러 벌어진 일들이었다. 특히 내가 가장 서툴렀던 것은 칼질이었다.


집에서 어머니가 해주는 밥 꼬박꼬박 먹고 다녔던 난 칼질이라고는 피자나 스테이크 먹을 때 써봤던 것이 고작이었다. 그랬던 내가 요리를 하기 위해 양파를 썰고 파를 다지고 하니 내 손은 남아나질 않았다. 툭하면 베이고 긁혔고 손에 반창고가 떨어진 날이 없었다. 한번은 칼에 베인 상처를 그냥 두고 일을 했다가 세균이 침투, 감염되어 깁스를 하기도 했으니 이쯤하면 칼은 나에게 있어 흉기나 다름없었다. 서투른 칼질은 나를 힘들게 했지만 한편으로는 익숙해져가는 칼질을 보며 뿌듯함과 재미를 주기도 했다.


지금은 칼에 베이는 일도 없어졌고 칼질 속도도 엄청 빨라졌다. 찌개는 짜지 않게 끓이게 됐고, 고기는 적당히 잘 익어 맛이 좋았다. 처음엔 모든 것이 너무 서툴기만 해 힘들고 어려워 그만두고 싶은 생각이 한 가득이었다. 베인 손가락에서 나오는 피를 보면서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건가?’하는 생각도 들고 괜한 재능 탓도 하곤 했다. 


하지만 처음엔 모두들 그렇게 서툴다. 지금에서 생각해보면 서툴렀기 때문에 재미있었고, 웃을 수 있는 일도 많았다. 모든 것이 능숙해져 심심해진 지금, 오히려 서툴렀기에 즐거웠던 그때를 생각하며 웃고는 한다.



서투름 둘.


세상살이가 난 항상 서툴렀다. 일도 사랑도 모든 것이 서툴렀던 것 같다. 처음이었기에 ‘그럴 수 있어.’라고 달래보아도 실수했던 것들을 생각날 때면 그저 기억을 지우고 싶다. ‘그땐 왜 그랬지?’, ‘그러지 말걸.’이라며 스스로 반성도 해보지만 뒤늦게 드는 후회일 뿐이었다.


스무 살이 되어 처음 사귄 여자 친구가 있었다. 첫사랑은 아니었지만 정식으로 이성과 교제한 것은 처음이었을 것이다. 그때 내가 그 사람에게 했던 행동들을 돌이켜보면 정말 ‘쓰레기가 아니었을까?’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서투른 연애를 했다. 


술에 취해 늦게 전화하기도하고 했고 알바 때문에 힘든 것을 알면서도 제대로 된 따뜻한 말 한마디 해준 적 없었다. 내가 싫어하는 행동을 하면 그걸 그 자리에서 고치려 했다. 배려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서투른 연애는 당연히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처음이었기에 서툴렀어.’라고 말하기에는 잘해준 것이 너무 없어 지금 생각해도 미안함과 후회뿐이다. 지금 어디에서 우연이라도 만나게 된다면 꼭 사과를 하고 싶을 정도다.

후회만 남긴 첫 연애가 약이 됐는지 다음 연애는 조금이나마 배려라는 것을 갖게 되었다. 물론 그 안에서도 또 다른 실수를 하고 같은 이별을 반복하며 다시 후회를 했다. 


나의 20대는 ‘잘했다!’라는 뿌듯함 보다는 ‘왜 그랬지?’하는 후회가 더 많다. 30대가 된 지금 생각해도 이불 뻥뻥 찰 정도의 부끄러운 실수도 많았다. 그래도 후회가 많다는 것은 그만큼 치열한 삶을 살았다는 반증이라 생각한다. 서투른 실수 속에서 난 많은 것을 배웠고 성장했다.


서투름은 항상 실수를 부른다. 하지만 세상에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은 없다. 우리는 실수를 통해 배우고 성장해 간다. 어쩌면 서툴다는 것은 성장할 기회가 많다는 것이다. 그래서 모든 것이 서툴러 실수투성이였던 그 시절이 더 그리운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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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4.10.08 10:59

    비밀댓글입니다

 

  

직장인이라면 어느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월요병. 지옥같은 일주일의 시작. 당장 월요일 아침만 생각해도 머리가 지근거려 온다. 대한민국 수천만 직장인들이 매주 일요일 밤만 되면 고단한 마음에 잠을 설친다. 일요일 아침부터 증상이 찾아와 휴일 전체를 망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이런 악순환의 반복은 곧 직장생활에 대한 염증과 회의, 이직 고민으로 번지기 마련이다. 내 삶을 야금야금 갉아먹는 월요병. 무엇이 문제일까?

 

월요일이 문제인가, 회사가 문제인가, 아니면 내가 문제인가?

 

일단 월요일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 만약 당신이 프리랜서라고 해보자. 월요일이 두려울 이유가 없다. 근무시간이 정해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아니 그걸 누가 몰라서 이래요?' 고함치는 분들 계실지도 모르겠다. 맞다. 프리랜서로 멀쩡하게 생활할 수 있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다. 나도 안다. 하지만 프리랜서로 살 수는 없어도 프리랜서의 마음가짐으로는 살 수 있다는 점 수많은 사람들이 놓치고 있다.

 

당신은 회사를 위해 사는가, 아니면 나를 위해 사는가. 거의 모든 사람이 나를 위해 산다고 하지만 정작 따져보면 회사를 위해 사는 사람이 99%이다. 머리는 내 위주로 돌아가지만, 내 모든 생활은 회사를 위주로 돌아간다. 여기에서 근본적인 충돌이 일어난다. 겉으로 대충 보기에는 '아 출근하기 싫어'이지만 그 말을 자세히 파헤쳐보면 '나를 위해 살고 싶은데 회사가 시키는대로만 살고 있는게 싫어'라는 짜증이 깊게 박혀 있다. 그렇다면 당신은 왜 자신을 위해 살지 못하고 회사라는 감옥 갇혀 사는가? 바로 여러분 스스로가 선택한 철창이기 때문이다.  

 

누구도 여러분에게 회사에 충성하라고 말하지 않는다. 단지 여러분이 회사에 충성하면 무엇인가 좋은 결과가 나올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에 젖어 있을 뿐이다. 이렇게 해서 내 삶은 크게 두 가지로 분류되어 버렸다. 수동적 회사일과 수동적 휴식.

 

내가 회사를 다니는 것이지, 회사가 나를 다니는 것이 아니다. 회사가 여러분을 착취하는 만큼 여러분은 그에 응당한 모든 댓가를 뻔뻔하게 누려야 한다. 월요병은 예방도, 극복도 필요없다. 여러분은 불금에서부터 일요일 밤까지 노동에 대한 정당한 휴일의 즐거움을 능동적으로 즐겨야 한다. 회사 눈치를 보면서 쉰다고 해서 회사가 내 연봉을 올려준다거나 상사가 칭찬해준다는 이야기는 어디에서도 들어본 적이 없다. 예능을 보고 싶으면 퍼질러서 신나게 보고, 놀고 싶으면 신나게 놀아라. 공부하고 싶으면 알차게 해라.

 

월요일이라고 크게 다를 것은 없다. 내 스케쥴에 맞추어 월요일을 편성해라. 내 몸상태에 맞추어 회사일을 분배해라. 모든 것은 내 위주로 돌아간다. 가장 멍청한 짓은 월요일부터 파김치가 되어 퇴근하는 일이다. 내 인생은 내 것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자, 월요병 퇴치 일곱가지 계명을 알려주겠다.

 

1. 월요일 아침은 1시간 일찍 일어나라.

- 내 인생 찾기의 가장 기본이 되는 일이다. 1시간 일찍 일어나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해라. 회사 가기 싫어서 이불 속에서 뭉개지 말고, 1시간이라도 내 시간으로 시작해 보자. 그게 훨씬 더 이득이다. 무엇을 하든 좋다. 나에게 가장 득이 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고 '나에게 투자한다'는 생각으로 그 한 시간을 보내보자.

 

2. 쳐낼 수 있는 모든 일을 뒤로 미루어라.

- 월요일부터 기운 뺄 필요 없다. 회사가 명령한 일 중 뒤로 미룰 수 있는 것들은 가급적이면 다 미루어라. 금요일까지의 시간은 생각보다 길다. 회사가 나를 함부로 착취할 수 없게끔 수많은 방어막을 설치해두어라. 수단방법 가릴 것 없다. 남에게 부탁을 하든, 남에게 떠넘기든 월요일은 일을 많이 하지 마라.

 

3. 회사에서 단 30분이라도 공부해라.

- 일이라는 것은 언제든지 수가 틀어지면 때려칠 수 있는 가변적인 성질의 것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진짜 노후대비는 공부다. 내 위주로 라이프스타일을 진정 꾸미고 싶다면 약아 빠진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하루에 단 30분이라도 회사에서 공부를 해라. 10분을 세 번으로 쪼개든, 5분을 여섯번으로 쪼개든 당신 마음이다. 회사가 나를 착취하는 만큼 나 또한 회사를 이용해 먹어야 한다.

 

4. 회사에서 단 30분이라도 혼자 쉬어라.

- 이것은 건강관리에서 필수의 문제이다. 나 혼자 있는 시간을 필사적으로 만들고, 그 시간만큼은 일에서 해방감을 맛보아라. 음악감상도 좋고, 가벼운 스트레칭도 좋다. 중요한 건 나 혼자서 쉰다는 사실. 누군가와 회사 뒷담을 한다던지, 동료들과 모여 야구 중계를 짬짬히 본다든지 하는 것은 쉬는 것에 포함되지 않는다. 그 또한 회사 눈치 보는 것과 다르지 않다.

 

5. 최대한 맛있는 걸 먹어라.

- 짜증이 폭발하지 않도록 최대한 맛있는 음식들을 섭취해라. 아침에 나올 때 초코렛을 먹든, 점심 식사 후에 정말 맛있는 캬라멜 마키아또를 마시든 여러분들만의 최고 맛난 음식들을 선정해서 월요일에 집중 포격해라. 점심도 가급적이면 비싸고 맛있는 메뉴로 고르자. 다이어트 생각은 일단 개에게 넘겨줘라. 나를 달래준다는 마음으로 먹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 단, 술은 금물이다.

 

6. 약속 잡지 말아라.

- 월요일 퇴근 후 약속은 독이다. 몸은 휴일에서 근무일로 급격하게 넘어와 이미 피로도가 몹시 올라와 있다. 월요일 약속은 한 주의 체력을 갉아먹는 독 중의 독이다. 집에서 쉬든지, 카페에 혼자 가서 책을 보든지, 영화관에서 혼자 즐거운 명화를 보든지 가급적 혼자 누릴 수 있는 것을 찾아라. 그리고 핸드폰을 멀리해라.

 

7. 퇴근 후, 따듯한 물에 오랫동안 샤워해라.

- 샤워만큼 몸의 긴장을 풀어주는 것도 없다. 따듯한 물로 오랫동안 몸의 구석구석을 적혀주도록 하자. 평소보다 오랜 시간 동안 샤워해라. 그리고 욕조에 누워 오늘 하루도 수고했다고 마음 속으로 위안해주자. 오늘 하루도 나를 위해서 열심히 살았다고. 나를 위로해 줄 가장 위대한 친구는 나다. 그리고 깊은 잠을 청해보자.

 

 

Written by 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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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3.14 22:43




겨울은 잔인한 계절이다. 여유롭고 있는 자야 설경이 아름다고 낭만적인 계절일지 모르지만 겨울은 없으면 없을수록 잔인해진다. 특히 백수에게 겨울은 더욱 혹독하고 잔인한 계절이다. 겨울이 백수들에게 지옥인 건 일단 춥기 때문이다. 


추워서 어딜 나갈 수가 없다. 날이나 따뜻하면 산책도하고 공원에 앉아 여유로운 시간을 보낸다지만 한겨울에 공원가면 얼어 죽을 수도 있다. 그러니 자연스레 집에 뒹구는 시간이 많아진다. 그럼 뒹굴고 있는 모습을 본 어머니는 “방구들 무너져 이놈아!!”하시며 등짝 스매시를 날리신다. 


여기서 어머니의 잔소리 강도는 백수 생활이 길어지면 길수록 강도가 높아진다. 초기에는 넋두리 식으로 “이제 나이도 있는데 빨리 좋은 자리 잡아야할 텐데.”, “너만 취직을 하면 내가 걱정이 없겠다.” 정도의 잔소리다.

 

백수기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자식 존재 자체의 부정을 시작하시며 생사에 대한 이야기를 하신다. 예를 들어 “어휴~ 귀신은 뭐하나 몰라 저놈 안 잡아가고” 식으로 사신에게 죽음을 요청하기도 하며 “내가 저걸 낳고 미역국을 먹었으니 내가 미쳤지”, “으휴~ 저런 게 도대체 어디서 튀어나왔나 몰라!” 식의 자식존재를 부정하신다. 물론 이런 잔소리를 들을 때쯤이면 이미 백수생활에 익숙해졌기에 큰 멘탈의 손상은 없다.


백수생활이 장기화되었을 땐 오히려 어머니의 잔소리가 줄어든다. 다만 얼굴만 보면 그저 한숨만 쉬신다. 이쯤 되면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 죄인이 따로 없다.

본론으로 돌아와 어머니의 잔소리를 피해 잠시 외출이라도 하려면 옷이 문제다. 밖에 나갈 일이 많이 없다보니 옷을 살 일도 없다. 여름이면 그냥 천 쪼가리 몇 개 걸고 나가겠지만 겨울엔 답이 없다. 언제산지도 기억 없는 옷들로 꽁꽁 싸매고 나가도 갈 곳이 없으니 춥다. 돈 없고 갈 곳 없는 백수에게 겨울은 뭘 어떻게 해도 추울 뿐이다.


그래도 백수가 겨울 내내 집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여름보다 겨울에 공식적인 외출이 많을 수 있는데 바로 연말연시 모임들 때문이다. 그러나 백수에게 연말모임은 그리 즐거운 자리는 아니다. 


동네서 가볍게 친구들과 만난다면 얼굴에 철판 깔고 친구들에게 빌붙기 쿠폰을 사용하겠지만 공식적인 자리에서의 회비는 차마 피할 수가 없다. 물론 모든 상황을 아는 친구들이야 회비보다 얼굴 한번 비춰주는 선에서 모든 걸 용납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는 참 자리하기가 어렵다. 이와 비슷하게 지인의 ‘결혼’이라는 비보를 들을 때면 한숨이 절로 나온다.

 


백수에게 겨울이 잔혹한 건 명절이 있는 탓도 있다. 신정이야 그냥 넘어간다지만 온 친인척이 다 모이는 구정연휴엔 심한 고행의 길을 걷게 된다. 만나는 친척어른들은 하나 빠짐없이 “취업은 했니?”라며 물어오게 되는데 여기서부턴 마음을 비우는 것이 정신 건강에 좋다.


그래도 백수인 본인의 선에서 끝내는 잔소리는 그저 “알겠습니다.”하면 넘어갈 일이지만 간혹 부모님을 언급하시며 “이제 부모님 나이도 있는데 니가 이러고 있으면 되니? 집에만 있지 말고 뭐라도 좀 해라!”라고 하실 때면 잘 잡고 있던 멘탈이 흔들리기 마련이다. 거기에 함께 온 사촌이 꽤나 근사한 직장에 들어 갔다면 어느새 세상에서 가장 큰 죄인이 되어 있다.



예전 뉴스에서는 청년 실업에 대한 기사를 자주 다뤘다. 그러나 요즘은 이런 기사를 본지 꽤 지난 거 같다. 생각해보면 세상에 이슈가 될 정도의 문제인가 싶다. 사실 백수짓도 젊었을 때 아니면 언제 해보겠는가? 근데 언제부턴가 우리는 백수를 사회적 문제로 다뤘는지 이해가 안 된다. 


백수는 죄인이 아니다. 빈둥거릴 수 있을 때 빈둥거려야한다. 하루 종일 잠만 자도 좋고 게임을 해도 좋다. 갈 곳 없어도 그냥 버스를 타고 종점까지 가도 좋다. 백수 때 아니면 이런 일들은 할 수도 없다. 그리고 언젠간 이 시간들이 삶의 힘이 되고 위로가 된다. 


다시 말하지만 백수는 죄인이 아니다. 그래도 어머니의 잔소리는 피할 수 없으니 감내하고 상황이 조금 힘들더라도 당당지자! 백수에게도 겨울이 지나면 봄은 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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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함 하나.


인간은 적응하는 동물이다. 인간 모두는 어떤 상황 속에서도 시간이 지나면 그 상황에 적응하게 된다. 우리는 이것을 보고 ‘익숙해졌다.’라고 말한다. 나 역시 평범한 사람인지라 알바를 하는 동안 너무도 힘들었던 것들에 대해 익숙해져 갔고, 그중 가장 ‘익숙해졌다.’ 혹은 ‘요령이 생겼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있는데 바로 설거지였다.


누군가 “설거지가 힘들어?”라고 말할 수 있지만 설거지야 말로 지구상 남아있는 그 어떤 일보다 귀찮고 짜증남과 함께 엄청 힘든 일이라 자부할 수 있다. 아무튼 설거지는 내가 알바 하는 동안 나를 가장 괴롭힌 일중 하나였다.
내가 일하는 곳은 조리실이 작아 식기세척기가 없다. 그래서 음식과 함께 나갔던 그릇들은 고스라니 사람 손을 거쳐 설거지를 해야 한다. 그러니 바쁜 날이면 일하는 내내 싱크대 앞에 보낼 때도 있다.


 

설거지가 힘든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 하나만 이야기 하자면 싱크대의 높이를 들 수 있다. 우리나라 주방 기구를 설계할 때는 대부분 대한민국 여성 평균 키에 맞춰 제작한다. 내가 일했던 주방도 다르지 않은데 177cm인 내가 싱크대 앞에 설 경우 싱크대는 내 골반 정도의 높이밖엔 안 된다. 그래서 설거지를 할 때면 자연스럽게 허리가 구부정하게 되고 이 자세를 장시간 유지하고 있을 경우 집에서는 기어 다니게 되는 기이한 현상을 경험할 수 있게 된다. 그렇다고 무작정 손으로 들고 설거지를 하면 옷이 다 젖기 태반이었고, 무거운 철판들을 몇 십 개를 들고 닦다보면 한쪽 팔이 꼭 떨어져나갈 것 만치 아팠다.


설거지 더미만 보면 이가 갈리고 치가 떨리던 나였지만 3개월이 지나고 6개월이 지나자 나름의 요령이 생겼고, 한참을 구부정하게 있어도 견딜 만 했다. 내 허리는 구부정한 자세에 익숙해져 많은 양의 설거지를 해도 집에서 기어 다니는 일은 없었고, 오히려 나중엔 설거지 자체가 익숙해진 나머지 아무생각 없이 설거지를 하고 있을 때가 편할 때도 있었다. 그렇게 이가 갈리도록 힘든 일이었지만 그것도 익숙해지자 한편으로는 마음편안 일이 되었다.


인간은 어떤 상황이나 환경 속에서도 적응하게 마련이고 익숙해진다. 단지 익숙해지고 적응하기 전에 ‘포기하느냐’ ‘마느냐’를 고민하게 될 뿐이고, 사회는 그것으로 한 사람의 근성이나 책임감을 말하는 척도가 되기도 한다.

  

 

익숙함 둘.
설거지의 고됨이 익숙해질 무렵 나의 알바생활도 많은 시간이 흘렀다. 친구가 사장인 곳에서 일한다는 것이 이래저래 불편했는데 이제는 익숙해져 마음 한편이 편했다. 한마디로 모든 게 익숙해졌다.

 

익숙함은 지금 처한 상황이나 환경 그리고 내 앞의 일들에 대한 것도 있지만 사람에 대한 익숙함도 존재한다. 나와 같이 일을 했던 아이는 나보다 3살 어린 남자였는데 이곳에서 알바를 하면서 알게 됐다. 처음에야 서로 잘 알지 못하기에 조심스러움이 많았다.

 

어리다고 함부로 부리지도 않았고, 시킬 일이 있다면 정중히 부탁을 했다. 그렇게 시간을 흘러 나는 그 아이에게 점점 익숙해 졌고, 그 아이도 내가 익숙해졌다. 그리고 우리는 서로 소홀해졌다.

 

충분히 내가 할 수 있는 일도 그 아이를 시키게 됐고, 말투는 어느새 명령조로 바뀌었다. 그 아이도 가끔 내게 짜증을 내기도 했고, 정색을 하기도 했다. 서로 익숙해졌기에 소홀해진 것이다.

 

사장인 친구와 나도 서로가 익숙해졌다. 오래 알고 지낸 사이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친구로서의 관계였고, 지금은 같이 일하는 동료였다. 동료로서 우리는 익숙해졌고, 역시나 소홀해졌다.
정중히 해오던 부탁은 어느새 반강제가 됐고, 친구가 못나오는 날에는 당연히 내가 대신 일하는 게 됐다. 어느새 내가 친구를 도와서 알바를 하는 것은 원래 그랬다는 듯이 당연해졌다.  나 역시 친구의 가게라 해서 조금씩 늦는 것이 태반이었고, 말투는 까칠함이 가득했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 익숙해 졌고, 서로는 서로에게 익숙해진 만큼 소홀해져 갔다.


어쩌면 ‘익숙해진다’ 것의 또 다른 말은 ‘소홀해진다’일지도 모르겠다. 익숙함은 소홀함을 부른다. 그리고 그 익숙함에서 온 소홀함은 가까운 이마저 점점 멀어지게 만드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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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4.01.17 13:07 신고

    도망가~~~~


내가 일하는 곳은 보쌈을 메인메뉴로 하는 퓨전 주점이다. 즉, 술을 파는 것을 주력으로 하는 곳이다. 그렇다보니 본의 아니게 많은 사람들의 취한 모습을 보고는 한다. 사람마다 성격이 각각 다르듯이 사람마다 취한 모습도 정말 다양한데 살펴보면 대충 이렇다.


가장 대중적 유형은 고성방가형이다. 취기가 오른 사람들의 가장 보편적 유형으로 잔이 돌면 돌수록 목소리가 커진다. 술도 먹고 귀도 함께 먹은 건지 점차 대화의 데시벨은 높아져 아주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다. 한 테이블의 목소리가 커지니 조용히 대화하던 다른 테이블은 서로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게 된다. 그러니 자연스레 다른 손님들도 목소리가 커진다. 이는 연쇄반응처럼 조금씩 퍼져 나중엔 술 마시는 사람 모두가 소리를 지르는 상황까지 이르는 경우도 있다. 이런 상황까지 오면 혹여 옆에 있는 손님과 싸움이라도 날까 조마조마하다. 



다음으로 호랑나비형. 사람이라면 술을 마시게 되면 자연스레 비틀거리게 마련이다. 그러나 심하게 비틀거리다 못해 제대로 의자에 앉아 있지도 못하는 경우도 있다. 잠시 졸았는지 뒤로 넘어가는 사람, 화장실 갔다 와 의자에 앉으려다 비틀거려 넘어지는 사람, 일어나다 넘어지는 사람 등 아주 다양하다. 그나마 넘어져도 본인의 테이블에 피해를 주면 상관없지만 넘어지는 사람 대부분이 주변 다른 테이블에 피해를 주곤 한다. 이 역시 손님 간 싸움이 날까 조마조마하다. 더불어 넘어진 손님을 보면 일으켜 줘야하는지 쪽팔릴지도 모르니 모른 척 해야 할지 참 애매하다. 이 두 가지 유형은 가장 보편적인 유형으로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광경이다.


취한 모든 손님이 꼭 다른 손님에게만 피해를 주는 것은 아닌데 파괴지왕형의 경우 일하는 직원에게 막대한 피해를 준다. 파괴지왕형은 말 그대로 테이블에 놓여있는 기물을 다 파괴한다. 아주 파괴왕이 따로 없다. 술잔, 술병, 메뉴판, 수저통 그들에겐 자비란 없다. 일부러 그러는 것은 아니겠지만(일부러 그러는 경우도 종종 있다) 파괴된 기물을 채우고 정리하는 직원만 죽어난다. 병이 깨지면 마녀처럼 빗자루를 들고 나타나 영혼 없이 “다치신 곳은 없으세요?”를 읊어 주며 비질하는 모습은 영락없는 종이나 노예다. 그나마 죄송하다며 사과하는 손님들의 경우 웃으며 치울 수 있지만 너무도 태연히 “잔하나 더 주세요!”, “여기 좀 치워주세요!”하는 사람을 보면 가져다주던 잔을 던져버리고 싶을 때도 있다.


술에 취한 사람을 상대하는 건 보통사람을 상대하는 것보다 많은 힘이 든다. 그렇다고 위에서 말한 대로 술에 취한 사람들이 주변을 피곤하게 하는 것은 아니다. 보통의 술자리는 술잔을 중심으로 자기들만의 세상이 열리고는 하는데 자기들만의 정치철학, 사회비판을 논하고는 한다. 이러한 경우를 100분토론형, 또는 끝장토론형으로 분류하는데 가만히 이야기를 듣고 있자면 청와대, 여야당 대변인이 따로 없다. 


주로 현 정부에 대한 비판이나 자기가 추구하는 정치색깔을 들어내는데 간혹 서로의 의견의 맞지 않을 경우 과열된 토론양상을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대부분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의 자리인지라 서로 뜻이 맞아 함께 현 정부를 욕하고 사회를 비판하며 막을 내리고는 한다. 드물기는 하지만 정치나 사회가 아닌 철학이나 문학을 논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주로 책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한번은 온갖 진상을 다부리는 손님들이 김수영에 대해 논하는 모습을 본적이 있는데, 대화는 고상할지 모르지만 하는 행동은 그냥 개차반이니 김수영이 웬 말인가 싶었다.


술은 사람의 감정을 끌어내는데 묘한 힘이 있다. 그리고 술은 사람을 용감하게 한다. 그래서 술기운에 용기를 얻어 평소 하지 못한 말들을 하는 경우도 있는데 취중진담형이 바로 그 경우다. 

취중진담형의 경우 남여 단둘이 온 손님들 사이에서 많이 보이는 유형인데 어떤 진솔한 이야기를 했는지는 모르지만 꼭 한명이 운다. 대게 여자가 우는 경우가 많은데 분위기가 좋다가도 돌아보면 여자가 펑펑 울고 있다. 울음을 그치고 다시 분위기가 좋아지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한명이 자리를 뜨고 다른 한명이 쫓아가는 상황으로 마무리되고는 한다. 그리고 가게 밖에서 한참을 서서 이야기를 하는데 그저 우리는 ‘싸웠나?’하고 유추할 뿐이다. 그렇게 울고 짜고 한 손님들이 다시 가게에 찾는 일은 거의 없다. 아마도 쪽팔려서 그런 게 아닐까 싶다.



누구나 술에 취한다. 술 앞에 장사 없다는 말처럼 술에 취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단지, 술을 절제 할 수 있는 사람과 절제 할 수 없는 사람이 있을 뿐이다. 절제에 실패한 사람은 잠시 자기 자신을 잃어 행동하고 주변에 본의 아니게 피해를 주기도 한다. 우리는 그것을 보고 취했다고 말한다. 


주변에 피해를 주면서까지 술을 마셔야할까 싶지만 한편으론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빡빡한 세상에서 술마저도 없다면 어찌 살까 싶으니 조금은 이해가 가는 심정이다. 


어쩌면 우리가 술에 취하는 것도 지독히도 빡빡한 생활 속에서 잠시 자신을 잊을 수 있기 때문은 아닐까.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너무 답답한 세상이 됐으니 말이다. 아! 그래도 만취는 주변을 힘들게 하니 술은 적당히가 좋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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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1.19 02:02

 

 

엄마에게는 작은 바람이 있었다.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즈음 우리 집은 방 한 칸, 부엌 하나에 화장실도 딸리지 않은 작은 집이었다. 주인집을 중심으로 세 가구 정도가 함께 사는 공동주택이었는데 우리 것은 아니었지만 마당에 텃밭도 있는 그런 집이었다.
당시 엄마는 돈벌이가 썩 좋지 않았던 아빠를 대신에 근처의 작은 공장에서 일을 하셨다. 아침이면 가족들의 아침을 다 준비하고 출근을 하셨고, 퇴근 후에는 쉬지도 못하고 저녁을 준비하셨다. 그렇게도 엄마를 부지런히 살게 했던 것은 작은 전셋집이라도 얻기 위해서였고, 그것은 엄마의 작은 바람이기도 했다.
나는 어려 전세와 월세의 차이는 몰랐다. 하지만 지금 살고 있는 집이 ‘우리 집’이 아니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살면서 ‘누구누구네 집에 세 들어산다.’라는 말을 종종 듣고는 했는데 이 말이 어렸지만 우리 집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었다.


엄마의 바람은 10년이 지나고서야 이뤄졌다. 내가 중학교 2학년이 되자 근처의 작은 빌라 3층으로 이사를 하게 됐는데 엄마의 바람대로 매달 집세를 내지 않아도 되는 전셋집이었다. 작지만 내방도 생겼고, 앉아 공부할 수 있는 책상도 생겼다. 우리 가족만 사용할 수 있는 화장실도 있었고, 뜨거운 물이 나오는 부엌도 있었다. 주인집 아들놈 눈치를 볼 필요도 없었고 더 이상 ‘세 들어 산다.’라는 말을 듣지도 않았다. 왜 그리도 엄마가 “전셋집 전셋집”했는지 조금은 알 것도 같았다. 하지만 엄마의 첫 전셋집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우리 집 주변으로 재개발이 결정되면서 다시 이사를 해야 했기 때문이다. 다시 집을 얻는 건 쉽지 않았다. 재개발 소식이 동네에 퍼지자 집값은 물론 전셋값도 올랐기 때문이었는데 지금 집과 비슷한 크기의 집을 구하기에는 보증금이 터무니없이 모자랐다. 어쩔 수 없이 엄마가 택한 곳은 조금 떨어진 한 빌라의 반지하였다.


반지하였지만 기존의 집과 크기는 비슷했고 건물도 그나마 깨끗한 편이었다. 그러나 반지하는 불편한 점이 참 많았다. 밖에서 집안이 보일까 쉽사리 창문을 열지 못했고, 창문을 연다 해도 창문이 땅에 가깝게 있다 보니 흙먼지가 그대로 창문을 넘어 들어오곤 했다. 그러니 아무리 더워도 창문을 한 뼘 이상 여는 것은 엄두도 못 냈다. 베란다도 없어 빨래는 항상 거실에서 말려야했는데 이것도 햇빛이 들어오는 때를 놓치면 잘 마르지 않아 한참을 널어놓아야했다. 비가 오는 날엔 방바닥이 눅눅해져 한여름에도 보일러를 틀어야 할 때도 있었는데 날도 더운데 보일러까지 트니 찜질방이 따로 없었다.


이렇게도 불편한 점이 많았지만 엄마가 이집을 선택했던 이유는 예전처럼 전셋집이었기 때문이었다. 반지하였지만 그래도 전세는 전세였다. 그 점이 조금은 엄마의 마음을 편안하게 했는지 이 집에서 엄마는 오랫동안 살았고 덕분에 나도 전학 없이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마쳐 대학까지 졸업하게 되었다.
엄마는 원했던 전셋집에 살게 되었지만 내가 대학을 졸업해 첫 번째 직장을 가질 때 까지도 단 한번 쉼 없이 계속 일을 하셨다. 조금은 쉬엄쉬엄 할 수도 있었을 텐데 엄마는 부단히도 열심히 일을 하셨다. 엄마가 일을 멈출 수 없던 것은 전세도 결국은 ‘내 집’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이 집도 언제 가는 이사를 가야 한다.”며 이사를 가지 않아도 되는 ‘내 집’을 갖기 위해 예전보다 더 열심히 일했고, 그것은 엄마의 또 다른 바람이었다.


내가 두 번째 직장을 그만둘 때쯤 엄마는 오랫동안 살았던 반지하에서 조금은 오래된 빌라의 1층 전셋집으로 이사를 했다. 그렇게 열심히 살았지만 무엇이 부족했는지 엄마는 결국 ‘내 집’을 갖지 못했다. 그래도 엄마는 반지하를 벗어난 것만으로도 만족해 하셨다.
더 이상 비가와도 보일러를 틀지 않아도 됐고, 창문을 활짝 열어도 밖에서 보이지 않았다. 베란다에서 빨래를 말릴 수도 있었고, 세탁기를 베란다에 놓을 수도 있었다. 그렇게 엄마는 세 번째 전셋집으로 이사를 했고, 어느새 칠십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셨다.

 

엄마에게는 작은 바람이 있었다. 월세를 내지 않아도 되는 전셋집을 얻는 것, 그리고 아직 이루지 못한 ‘내 집’을 갖는 것. 어쩌면 처음부터 엄마의 바람은 전셋집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그저 사는 솜씨 없었던 엄마에게 ‘내 집’이란 것은 너무도 큰 바람이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written by 선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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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바를 시작했다직장이 아닌 알바를 선택하게된 건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다우선 생계로 하는 일에 많은 시간을 쏟고 싶지 않아서였다아무래도 직장을 잡게 되면 본의 아니게 많은 시간을 직장에 쏟게 된다그 점이 싫었다그나마 알바는 시간조절도 자유로운 편이고 책임감면에서도 자유로울 테니 직장보단 나을 거 같았다또 한 가지는 친구의 부탁이 있었기 때문이다.


친구 녀석이 작년에 주점을 오픈했다급하게 일손이 필요했고 잠시 가게 좀 도와 달라 부탁을 해왔다모르는 곳에 알바를 하는 것보단 그래도 아는 사람과 함께 일하는 것이 편할 것 같아 그 제안을 수락했고그 때부터 생계를 위한 알바가 시작됐다.


알바를 시작한지 수일이 지나자 나는 특이한 질문을 받고는 했다사장이 친구인 관계로 가게를 찾은 사장 지인들은 대부분 나와 동갑내기 친구들이었다그 지인들은 나를 한번 보고는 사장 녀석에게 누구냐는 질문을 던졌고친구는 내 친군데내가 급해서 도와달라고 했어라고 설명하곤 했다친구의 설명만으로는 부족했는지 설명을 들은 이들은 가끔 나에게 특이한 질문을 던지 곤 했다. “여기서만 일하세요?”라는.


친구 녀석이 옆에 있었다면 나를 대신해 직장잡고 일할 나이에 이곳에서 왜 알바를 하고 있는지 전후사정을 설명해주고는 했지만 혼자 이 질문을 받을 때면 내입으로 설명하기 민망할 때가 많았다.


한번은 비슷한 상황에서 이 일만하세요?”라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그래서 왜 이 일만하면 안돼요?”라고 되물어봤다대답하기 귀찮아서라기 보단 나도 정말 궁금했다왜 이런 이상한 뉘앙스의 질문을 자꾸 받는지 말이다돌아온 대답은 그게 아니고 이 일만 할 것 같지 않아서요라는 시원찮은 답이었다지금도 궁금증은 풀리지 않았지만 사실 왜 이런 질문을 하는지 대충은 알 것 같기도 했다. ‘왜 그 나이 먹고도 아직 알바를 하세요?’, ‘어디부족하세요?’ 뭐 이런 거 아니었을까?


알바를 한 기간이 지날수록 나를 알아보는 이가 늘면서 이 요상한 질문들은 줄어들었지만 아직도 종종 비슷한 질문을 받곤 한다그때면 그냥 웃으며 제가 잉여라서 친구가 일 시켜 주는 거예요라고 해버리고 만다그 편이 다음질문도 없고 편했다.


어쩌면 나이를 먹고 알바를 한다는 건남들에겐 조금은 능력이 부족한 사람으로 인식되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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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카페에 가서 책 보고 있는데 옆에서 문득 얘기하는 소리가 들리더라구요. 악관절 때문에 밥도 못먹는다구요. 아, 나만 그런게 아니구나. 티비에서도 룰라 김지현이 악관절 때문에 귀가 안들리는 증상까지 생겨서 양악수술 받았다는 소식도 들었어요. 생각외로 많은 사람들이 저와 비슷한 고통을 겪고 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사실 저는 악관절이라는 증상을 겪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방치해둔 대표적인 케이스라고 할 수 있죠. 이러다 말겠지, 저러다 말겠지 하다가 이빨 끝 다 나갔구요.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턱에서부터 머리까지 깨질것 같은 고통 때문에 하루 종일 두통약 달고 지낸 적도 한 두번이 아니었습니다. 어느날 몸살이 나니까 악관절부터 나빠지더라구요. 너무 아파서 이건 도저히 안되겠다 싶어서 스스로 증상을 지켜봤습니다. 어디서부터 문제가 발생하는지를요.

 

1. 상체에 힘빼라

가만히 지켜보니 쓸데없이 상체에 힘을 주고 있는 경우가 많더라구요. 가령, 조금만 긴장하거나 스트레스를 받으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이빨을 악 다물고 있습니다. 어깨에 힘 잔뜩 들어가 있구요. 당연히 어깨가 올라갑니다. 상체 전체에 힘이 들어가게 되죠. 하루에도 몇 십번을 반복하고 있는 모습을 봤습니다. 그 때마다 힘을 빼는 연습을 했어요. 계속 반복될 때마다 온 몸에 기운이 빠졌다는 생각으로 어깨를 내리고 큰 숨을 들이쉬었죠. 이 동작만 2주 정도를 했는데도 악관절이 몰라보게 줄어들었습니다. 이게 제일 중요합니다. 상체에 힘 빼는 연습부터 하세요.

 

2. 다리 꼬지 마라.

회사에 앉아 있다보면 다리를 꼬거나 비틀고 있는 경우가 적지 않아요. 결과적으로 이 행동이 상체에 힘을 가중시키는 결과로 이어지더라구요. 의자에서 허리 꼿꼿히 피고 똑바로 앉아 있는 연습하세요. 다리는 90도 각도로 편하게 내려놓는다는 생각으로 힘빼고 앉으시구요. 책상과 의자 높이 조절도 필수에요.

 

3. 운동 부족도 원인이다.

악관절의 근본적인 원인은 스트레스입니다. 누구나 스트레스는 있어요. 그런데 이걸 풀지 못하니까 결국 몸 안에서 돌도 돌다가 턱으로 갑니다. 운동 안하지, 자세 나쁘지, 스트레스가 체내에 그대로 쌓여 뇌를 자극합니다. 뇌는 잠재된 스트레스를 이겨내기 위해서 자는 도중에 무의식적으로 평소의 이겨내는 행동을 일으키죠. 이 악물고 버티는 그 습관 말이죠. 격한 운동을 하라는 소리가 아닙니다. 오히려 격한 운동은 악관절을 더 악화시킵니다. 가볍게 땀 흘릴 수 있는 정도의 운동을 규칙적으로 하세요. 스트레스를 뽑아낸다는 마인드 컨트롤을 하면서 운동하면 효과가 배가 됩니다.

 

4. '빼쨰라'는 마음가짐으로 살아라.

악관절은 보통 예민한 사람 또는 예민한 직업을 가진 사람에게 잘 나타납니다. 꼼꼼한 작업을 요하거나 항상 데드라인에 쫓기는 그런 류의 직업군 말이죠. '오늘 안되면 내일 해도 세상 안망한다'는 생각을 오늘부터 품어 보세요. 그리고 메모장이나 다이어리에 반복해서 씁니다. 성질 뻗치거나 누군가와 마찰이 생겼을 때 반복해서 생각해보세요. '에라이 배째라' 그냥 이런 마음으로 그냥 편하게 말이죠. 예민한 사람이 그렇게 생각해야 보통 사람처럼 생각하게 됩니다.

 

5. 잘 때 조심해라.

잘 때 머리맡에 내일 할 일이나 그런 거 다 치우고 자세요. 그리고 자기 직전에 격하게 두뇌 쓰는 일은 절대 하지 마시구요. 잠재의식이라는 건 하루 이틀에 만들어지는 게 아닙니다. 자기 전을 항상 조심하세요. 가급적 재미있는 예능이나 짤막한 코미디극, 아니면 조용한 자기만의 취미를 즐기다가 편한 자세로 잠드세요. 그리고 반드시 자기 전에 '나는 잘 때 악관절을 일으키지 않고 좋은 마음으로 잠들 거다'라고 생각하세요. 우습게 보일지 모르지만 돈 드는 거 아니니까 한번 해보세요. 이것도 2주에서 길게 한 달 정도 연습하면 분명히 효과가 나타납니다.

 

이 다섯가지를 한 달 정도 지킨 결과, 현재 2주 동안 한번도 턱을 깨물고 자는 증상이 나타나지 않았어요.

 

대한민국에 악관절 환자들, 수술 생각하기 전에 스스로 고쳐보겠다는 마음가짐 한번 가져봅시다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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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해적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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