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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6.04.19 [나는 생오이가 싫다] 달리기, 살리기

야근을 마친 후 곧장 집으로 와 나이키 깔맞춤으로 갈아입고 문을 박차고 나왔다. 지금 뛰어야 살 수 있다는 절박한 마음으로 아파트 단지를 시계 반대방향으로 돌기 시작했다. 줄넘기를 돌리는 시간마저 포기한지 어엿 반년이 지나가는 시점이다. 보통 1500개는 거뜬히 해내는 관절이지만 지금은 그리 했다간 온 뼈마디가 작살이 날 것 같아 일단 러닝으로 운동의 가닥을 다시 잡아보기로 마음 먹었다. 이 아파트 단지를 돌아본 적이 없으니 우선 오늘은 다섯 바퀴를 뛸 다짐으로 무거운 몸뚱아리를 이끌었다.

 

입사 후 2년이 다 되어 가는 지금, 나는 10키로가 쪘다. 숨이 막힐 듯히 차오르는 가스배는 이제 점차 살로 굳어져 그러려니 하는 뚱보의 길로 접어들어 가고 있다. 서른 중반의 나이에 그럴 수 있다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운동량을 점차 줄여가며 먹고 싶은 음식을 마음껏 먹었다. 특히 술을 입에서 거의 떼지 않다시피 마셨다. 덕분에 올 4월, 나는 주말이 되면 팔 하나도 제대로 가누지 못할 정도로 쇠약해져 버렸다. 평일 업무 시간의 집중력은 눈에 띄게 떨어졌고, 급기야 나의 고질병인 '왼쪽 저림' 현상이 심각해졌다. 오늘 아침, 왼쪽 두통으로 시작한 나는 본능적으로 꺠달았다. '이러다 죽겠구나'

 

정말이지 살기 위해 뛰어 나왔다. 운동하기 좋은 계절이 돌아와서라거나, 비가 마침 그쳐서라거나 그런 것이 아니라 이러다가 뒷목 잡을 날이 머지않았다는 위험 감지 신호를 강력하게 받고 나온 것이다. 샤워를 마치고 나온 나는 매우 만족스러운 기분으로 평을 남긴다.

 

첫 바퀴는 생각 없이 뛰었다. 원래 운동 시에는 별 생각 없이 신체만을 단련할 수 있어 정신이 쉬기에 아주 적절하다. 두 바퀴 째부터는 심장 박동수가 점차 돌아오는 것이 느껴졌다. 평소 의자에 앉아 있으면 뭔가 무거운 돌이 심장 위를 짓누르는 것 같은 답답함을 종종 느끼곤 했는데 그 증상이 점차 사라졌다. 산소가 공급되고 있기 때문이리라.

 

세 바퀴부터는 후각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최근 나는 왠간한 냄새를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는 다소 둔감한 상태로 빠져 들어가고 있었다. 세찬 밤공기가 콧속으로 밀려 들어오며 뇌근육을 자극하고 곧 회로 장치가 작동됐다. 유감스럽게도 가장 와닿은 냄새들은 악취였다. 이 지점은 하수구가 지나가는 곳, 이 웅덩이 옆은 쓰레기 분리수거장, 공원 옆은 누군지를 모를 사람이 세 바퀴 째 줄담배를 피고 있는 곳이라는 사실이 코 깊숙이 다가왔다.

 

그 냄새를 맡기 싫어서라도 점차 뛰는 속도를 높였다. 네 바퀴부터는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처음엔 줄곧 서서 전화를 하던 여성이 세 바퀴를 넘어가니 이내 쭈구려 앉아 핸드폰을 만지작 거리고 있다. 수위 아저씨는 불법 주차 차량이 없는지 후레쉬를 간간이 비추며 천천히 단지를 돌고 있다. 사람이 끼어드니 운동 맛이 떨어지는 건 사실이었다. 난 운동할 때 누군가 곁에 있는게 싫다. 완전 무결한 나만의 절대적 시간으로서 만들기 위해서는 일단 인간이 없어야 마땅하다.

 

다섯 바퀴는 조금 전력을 다해 뛰었다. 이 때부터 안쓰던 허벅지와 종아리 근육이 조여들며 오늘의 운동 적정량을 넌지시 알려주었다. 거친 숨을 다스리고 현관 입구로 와 가벼운 스트레칭으로 몸을 진정시키고 큰 숨을 들이켰다. 그리고 다시 문을 박차고 들어와 입고 있던 운동복을 쓰레기처럼 세탁기에 집어 던지고 샤워 물줄기에 몸을 맡겼다. 모락모락 김을 빠져 나오니 이제 배가 고프다. 하지만 고통의 시간은 돌아오고 말았다. 나는 이제 더 이상의 무리한 음식 섭취는 위험하다. 적게 먹고 많이 뛰는 것으로 당분간의 위안을 삼아야만 하는 시간이 돌아오고야 만 것이다. 

 

내일도 살기 위해 뛸 것이다. 나와 나의 가족을 위해 더 건강히 살 것이다.  - 사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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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해적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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