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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해적단

바람 엄마에게는 작은 바람이 있었다.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즈음 우리 집은 방 한 칸, 부엌 하나에 화장실도 딸리지 않은 작은 집이었다. 주인집을 중심으로 세 가구 정도가 함께 사는 공동주택이었는데 우리 것은 아니었지만 마당에 텃밭도 있는 그런 집이었다. 당시 엄마는 돈벌이가 썩 좋지 않았던 아빠를 대신에 근처의 작은 공장에서 일을 하셨다. 아침이면 가족들의 아침을 다 준비하고 출근을 하셨고, 퇴근 후에는 쉬지도 못하고 저녁을 준비하셨다. 그렇게도 엄마를 부지런히 살게 했던 것은 작은 전셋집이라도 얻기 위해서였고, 그것은 엄마의 작은 바람이기도 했다. 나는 어려 전세와 월세의 차이는 몰랐다. 하지만 지금 살고 있는 집이 ‘우리 집’이 아니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살면서 ‘누구누구네 집에 세 들어산다.’라는.. 더보기
[힐링 클래식]3. 내가 클래식을 듣는 이유 "그 놈의 클래식은 도대체 왜 듣는거야?" 친구들이 종종 내게 묻는 질문이다. 묻는 투로 봐서는 질문이라기보다는 거의 질타에 가깝다. '그 졸음오는 재미없는 음악을 들으면 니가 잘난 것처럼 보여서 그런거야?'라는 비아냥도 꽤 담겨있는 것 같다. 아예 없다고 한다면 그건 분명 거짓말일 거다. 실제로 클래식을 들어서 주변으로부터 덕 아닌 덕을 본 적도 몇 번 있으니 그것도 아주 조금 첨가되었다고 하면 맞겠다. 재즈 클래식도 아닌 주로 18-19세기의 낭만주의 음악을 선호하는 까닭에 늙은이라는 소리도 적지 않게 들었다. 노친네라고 놀려도 나는 할 말이 없다. 남들 홍대 클럽가서 최신 음악에 흔들대며 젊음을 만끽할 시기에, 지산 롹 페스티벌 가서 두 손 치켜 올려들고 반 정신나간 놈처럼 헤드빙 해도 시원치 않을.. 더보기
[힐링필링] 3.죽도록 공부하면 죽는다. 고등학교 2학년 시절이 떠오릅니다. 한 친구가 급하게 교실문을 박차고 들어오면서 아이들에게 소리치더군요. "야! 이○○ 죽었대!!! 절벽에서 떨어져서 죽었대!!!" 학급 전체가 술렁였습니다. 단순히 죽었다는 점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자살일 가능성이 높다는 부검결과 판정이 나왔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친구가 이야기 한 이○○란 아이(줄여서 L)는 중학교 3년 동안 단 한번도 전교 1등을 놓쳐본 적이 없는 '초특급 울트라 에이스 영재'였습니다. L은 중학교 졸업 직후에 우리 고등학교로 진학하지 않고 인도로 유학을 갔습니다. 아버지가 인도에서 사업을 크게 확장하시면서 고등학교도 그 쪽으로 선택했다는 이야기까지는 들어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갑작스레 L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번뜩 떠오르는 에피소드.. 더보기
[커피이야기#1] 믹스커피의 등장 요즘 한집 건너 볼 수 있는 것이 커피숍이자 카페다. 작은 동네인 우리 동네도 벌써 들어선 카페만 해도 4개나 된다. 언제부턴가 확실히 우리 생활 한자리 잡고 있는 것이 커피가 됐다는 소리다. 그렇다고 커피라는 음료가 갑자기 우리나라에 뚝 떨어진 것은 아니다. 예전에도 집 찬장 같은 곳을 보면 병에 담겨있는 인스턴트커피가 있었고, 그 옆에는 항상 ‘프리마’가 함께 있었다. 티스푼으로 커피를 몇 숟갈 담고 프림을 넣고, 설탕도 넣어 물을 부어 마셨다. 프림은 우유 대신이라고 볼 수 있는데 가끔 프림만 물에 타 먹어도 고소하니 맛이 좋았다. 인스턴트커피는 오래전부터 가정집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래서 예전 드라마를 보면 조금 있는 집에서 식사 후 커피를 마시는 영상을 보면 갈색의 인스턴트커피가 담겨 있었다... 더보기
[힐링 클래식] 2.쇼팽의 정석, 폴리니 기교가 무엇인지 보여주마- 쇼팽 연습곡 쇼팽 이전에도 연습곡은 존재했다. 오늘날까지도 피아노 학원의 바이블로 우뚝 서 있는 체르니가 대표적인 선구자다. 쇼팽과 피아노에서 양대산맥을 이루고 있는 '피아노의 귀신' 리스트도 어렸을 적 체르니에게 탄탄한 기본기를 사사했다. 피아니스트에게 연습곡은 다소 지루한 과정이지만 반드시 넘어가야 하는 필수 코스다. '피아노의 시인' 쇼팽은 연습곡의 수준이 어디까지 나아갈 수 있는지 단단히 보여주었다. 그야말로 연습곡의 끝판을 완성한 것이다. 그의 연습곡은 결국 공연장 연주곡의 반열에 올라섰다. 쇼팽이 활약하던 시기는 낭만주의 시대로, 피아노가 독립된 악기로 인정받아 이제 막 기악으로서 꽃을 피우던 시기였다. 쇼팽과 리스트의 초절정 기교의 곡들을 들어보면 딱 그 생각 밖엔.. 더보기
[힐링필링] 2. 악관절증상 스스로 고치기. 어느날 카페에 가서 책 보고 있는데 옆에서 문득 얘기하는 소리가 들리더라구요. 악관절 때문에 밥도 못먹는다구요. 아, 나만 그런게 아니구나. 티비에서도 룰라 김지현이 악관절 때문에 귀가 안들리는 증상까지 생겨서 양악수술 받았다는 소식도 들었어요. 생각외로 많은 사람들이 저와 비슷한 고통을 겪고 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사실 저는 악관절이라는 증상을 겪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방치해둔 대표적인 케이스라고 할 수 있죠. 이러다 말겠지, 저러다 말겠지 하다가 이빨 끝 다 나갔구요.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턱에서부터 머리까지 깨질것 같은 고통 때문에 하루 종일 두통약 달고 지낸 적도 한 두번이 아니었습니다. 어느날 몸살이 나니까 악관절부터 나빠지더라구요. 너무 아파서 이건 도저히 안되겠다 싶어서 스스로 증상을 지켜.. 더보기
[힐링필링] 1. 마음도 이불이 필요해요 요즘 직장인들, 많이 변했어요. 황금같은 점심시간 쪼개서 헬스클럽 다녀오는 사람들, 회식 자리 줄이고 주말 등산 가는 사람들, 틈틈히 배운 요가로 아침 저녁 스트레칭으로 몸의 긴장을 풀어주는 사람들. 일에 찌들고 지쳐버린 자기 몸을 적극적으로 돌보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어요. 그런데 이렇게 열심히 운동해도 스트레스 지수가 쉽게 떨어지지 않는 분들이 있습니다. 오히려 운동을 하면 할수록 더 체력이 떨어지는 분들이 적지 않아요. 왜 그럴까요? 몸은 돌보지만 정작 마음은 돌보지 않기 때문입니다. 마음도 몸과 똑같아요. 일의 몰입에도 한계가 있고, 마음의 방어벽에도 일정한 두께가 있습니다. 정적수준을 넘어가면 집중력이 현저하게 떨어지고, 방어벽은 허물어져 의기소침과 우울증에 쉽게 노출되는 것이죠. 몸살은 신경쇠약.. 더보기
[편의점 도시락 어디까지 먹어봤니?#4] 등심 돈까스 편 우리나라 식탁엔 반드시 젓가락이 올라야 한다. 포크도 아닌 젓가락이어야 하는데 유치원 다는 아이들에게도 젓가락을 가르칠 정도면 우리나라 식사문화에 미치는 영향이 꾀나 큰 것 같다. 일본과 한국의 도시락문화 발달에 한 영향도 젓가락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일단 젓가락은 도시락에 담기 편하다. 포크나 나이프처럼 덩치가 큰 것도 아니고 굴곡진 것도 아니다. 그냥 밥 위에 놓아도 있는 듯 없는 듯하다. 더불어 젓가락은 나무로도 만드는 것이 가능하다. 먹고 그냥 버리고 올 수 있다는 소린데 작은 반찬용기 안 반찬들 집어 먹기에도 편하다. 지금에서야 플라스틱 나이프와 포크도 있다 치지만 옛날엔 생각지도 못할 부분이었다.사실 젓가락 하나만 있어도 잘 사용하는 사람은 잘라 먹을 거 다 잘라먹고 밥도 먹을 .. 더보기
삼국지 쉽게 읽기- 나는 게임부터 했다. 삼국지는 중국 후한시대 말, 위ㆍ촉ㆍ오가 천하를 두고 치열하게 다툰 전쟁사다. 역사의 시간으로 재본다면 백년이 채 되지 않은 다소 짧은 스토리다. 중국사 전체의 비중에서 따져 봐도 삼국시대가 자치하는 역사적 의의는 사실 그다지 높지 못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국지는 동양의 남자들을 흥분과 열광의 도가니로 빠뜨려버린 고전 중의 ‘TOP’으로 손꼽히고 있다. ‘삼국지를 열 번 읽은 사람과는 논쟁하지 마라’는 말까지 전해져 오고 있다. 여하튼 삼국시대가 실제 어떻게 벌어졌는지 정확히 몰라도, 삼국지가 나에게 미친 파급력이란 매우 깊고 진하다. 내가 처음 삼국지를 접한 것은 책이 아니라 게임을 통해서였다. 국민학교 4학년 때 동네친구 집에 놀러갔다가 일본 KOEI사에서 출시한 ‘三國志 Ⅲ’ 게임을 알게 됐다... 더보기
이러지도 저러지도 세상엔 참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것들이 많다. 내 경우엔 물건 사고 난 후의 포장 상자와 사용설명서가 꼭 그렇다. 물건을 꺼내고 그냥 버려도 되는 상자를 이상하게 나는 잘 버리지 못한다. 이유는 별다른 게 없다. 꼭 어딘가에 쓸 수 있을 거 같기 때문이다. 그렇게 매번 방에 한 구석에 두었다 나중에 엄마의 잔소리를 한차례 듣고 나서야 버린다.버린다고 버려도 아직도 방 한구석엔 많은 상자들이 있다. 얼마 전에 정리하다 안 사실인데 스마트폰 이전의 휴대폰 상자부터 처음 산 스마트폰의 상자, 얼마 전 새로이 바꾼 상자까지 다 있었다. 누가 보면 대리점 하냐고 할 것 같다. 물론 이 상자들은 활용성보단 예뻐서 남아있었지만 지금도 ‘버려야하나?’하고 고민한다. 상자도 상자지만 함께 있는 설명서도 상황은 비슷하..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