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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alog

플레이스테이션 그리고 새턴 vol.2



내가 이 경이적인 물건을 갖기 위해 가장 먼저 한일은 은행에 간 것이다. 국민학교 내내 모아왔던 돈은 뽑기 위함인데 플레이스테이션(이하 플스)의 가격은 대략 20만원 선. 싼 가격은 아니었다. 더군다나 정식 수입이 안 되서 돈이 있어도 물건이 없다면 못 살 수도 있었다. 꼭 불법적인 물건을 사는 것만 같았다. 뭐 그렇다고 합법적이지도 않았지만.


플스 구입과 함께 정식 절차처럼 행해졌던 것이 플스에 복사칩을 다는 것이었다. 몇 만원만 더 주면 달 수 있었던 복사칩은 불법으로 복사한 게임시디를 돌리기 위함이었는데 원활한 게임생활을 즐기기 위해서는 반드시 행해야하는 절차였다. 그리고 복사시디를 사용하는 이유는 단 하나. 싸기 때문이었다.


플스를 갖고 있다 해도 10만원 가까이하는 정품시디를 구입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 화장실 5개쯤 달린 집에 살고 있으면 또 모를까 일주일 용돈 오천원을 받는 나로서는 불가능했다. 이런 나에게 복사칩은 불법이 아니라 오히려 합법이었고 구세주였다.

시디를 구입 할 때도 보면 진열대의 시디는 정품이었고 복사시디는 직접 볼 수 없었다. 클리어파일에 프린트된 시디커버를 정리한 리스트를 보여주고는 했다. 조직의 은밀한 뒷거래 같은 느낌으로 말이다.


은밀한 뒷거래가 성립되면 주인아저씨는 알 수 없는 보물창고에 다녀오시더니 시디를 가져다주고는 했다. 만원 선이었던 불법복사시디는 게임을 하고자하는 이에게는 합법이었고 정품이었다. 더불어 복사시디라 할지라도 나중에 5천원만 내면 다른 시디로 교환이 가능했다. 이 얼마나 나눔이 뿌리 깊게 박힌 사회란 말인가.

복사시디는 불법이었으나 그것이 없었다면 과연 우리나라에서 플스가 얼마나 팔렸을까? 나름 숨은 공모자라 생각된다. 나 역시 그 혜택을 누리며 많은 게임을 할 수 있었다.


Written by 선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