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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od

호빵은 따뜻하다



뭐랄까. 차가운 바람이 볼이 아리도록 불어도 겨울은 따뜻하다고 말한 것 같다. 하지만 겨울은 따뜻하지 않다. 춥고 쓸쓸함의 대명사다. 그래도 나에게 겨울은 따뜻했다. 정확히는 나를 따뜻하게 했던 것들이 많았다. 호빵도 그중 하나다. 나를 따뜻하게 하는 것. 

겨울을 가장 먼저 알리는 것이 호빵이다. 내 입에서 호호 입김 나올 때쯤 슈퍼든 편의점이든 모락모락 피어나는 호빵이 겨울을 알린다. 


거리 걷다 호빵 연기 피어나면 ‘이제 겨울이 오나’한다. 그리고 그 즈음이면 어머니가 장보며 호빵 한 봉지를 사오시고는 한다. 그러면 확실한 거다. 겨울이 왔다고.

사실 호빵은 찐빵이다. 맛도 비슷하고 만드는 형태도 비슷하다. 달달한 단팥을 넣은 동글동글한 흰 빵에 넣은 모양이 딱 찐빵이다. 단지 사회가 발달함에 따라 가정에서 쉽게 만들어 먹을 수 있는 찐빵이 필요했고 삼립의 창립자인 허창성이 일본을 방문해 만든 것이 호빵이다. 

호빵이라는 이름 자체도 예쁘다. ‘뜨거워서 호호 분다’, ‘온 가족이 웃으며 함께 먹는다’는 의미란다. 어쩌면 호빵의 사회적 탄생이 찐빵의 매출을 떨어지게 만들었는지 모르겠지만 찐빵세대가 아닌 나에겐 새로운 추억이요 트렌드였다. 또는 찐빵 세대인 어머니와의 대화를 이어줄 작은 통로였는지도 모르겠다. 


내 나이쯤 된 사람이라면 호빵하면 다른 것 보다 당시 TV에서 울려 퍼지던 CM송을 기억할 것이다. 가수 김도향씨가 부른 노래인데 “찬바람이 싸늘하게 두 뺨을 스치면…”하는 노래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이 노래가 TV에서 나오곤 했는데 요즘엔 통 못들은 거 같다. 한간에는 이 노래 때문에 매출이 늘었다고 하니 호빵하면 생각나는 것이 당연한지도 모르겠다.

언제였을까? 내방 없이 단칸방에 세 식구 함께 살던 시절 이유는 기억 없지만 아버지께 굉장히 혼난 적이 있다. 책도 날라 오고 매도 오가던 사이 나는 나름 살겠다는 심정으로 옷도 갖춰 입지 못하고 슬리퍼만 신고 도망 나온 적이 있다. 한 겨울이니 추운 건 당연했다. 흔한 잠바대기 하나 못 걸쳐으니 말이다. 


도망 나와 갈 곳도 딱히 없어 동네 이곳저곳 돌아다녔는데 너무나 추웠다. 손발은 이미 꽁꽁 얼어 손발이 떨어져 나갈 것 같았고 전쟁 난민만큼이나 처량하고 불쌍했다. 추위피해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보니 주머니에 동전 몇 개 있는 것이 천만 다행이었다. 정확힌 기억 없지만 아마도 삼백원 정도였던 거 같은데 삼백원으로 할 수 있는 건 세상 어디에도 없었다. 

친구네 골목 어귀를 돌 때 쯤이었을까? 구석에 있는 구멍가게에서 피어나는 호빵 연기에 귀신 홀린 것 마냥 동전을 털어 호빵을 샀다. 그리고 집으로 다시 돌아가 장독대에 쪼그리고 앉아 호빵의 온기로 손을 녹였다. 호빵을 샀지만 먹을 수 없었다. 먹으면 그 온기를 느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혹여 아버지께 들킬까 장독대 뒤에 숨어서 호빵의 온기로 추위를 잊기 위해 양손으로 꼬옥 붙잡고 있었다. 조금 지나 어머니 퇴근길에 숨어 있는 나를 보고 집에 데리고 들어갈 때 그때서야 나는 호빵을 먹을 수 있었다. 그 호빵은 이미 나에게 모든 온기를 전해주고 난 뒤라 차갑기 그지없었지만 말이다.


매번 생각난다. 호빵 연기 피어날 때면 그 시절 도망쳐 나와 샀던 따뜻했던 호빵을 말이다. 그때 그 호빵은 나에게 세상에서 제일 따뜻한 것이었다. 세상 어디에도 없는 가장 따뜻한 것. 

지금도 겨울이 따뜻하다고 느끼는 이유도 겨울에 호빵이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춥지만 따뜻한 호빵. 그래서 호빵의 따뜻한 기억에 내 겨울은 올해도 따뜻하다.


written by 선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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