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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ciety

개천의 용은 없다



얼마 전 참 구미가 당기는 드라마를 발견했다. 주말드라마인 ‘청담동 앨리스’가 그것인데 현재 3화분밖엔 방영되지 않았지만 시작부터 아주 흥미로웠다. 특히 여자의 허영심과 된장녀로 화두를 던져 신랄하게 비난하는 모습은 아주 신선했다.

줄거리는 대략 신데렐라 스토리다. ‘노력이 나를 만든다’라는 신조를 굳게 믿고 사는 한세경(문근영 분)과 세계적인 명품유통회사 아르테미스의 최연소 한국회장인 차승조(박시후 분), 이 두 사람의 사랑이야기다. 그런데 일반적인 신데렐라 스토리라고 하기엔 이 드라마는 너무 현실을 잘 반영하고 있다.


노력형 긍정녀인 세경은 온갖 노력으로 취업에 모든 것을 내건다. 하지만 사회에서 돌아오는 것은 처음부터 가지지 못한 부에 대한 차별이다. 이에 반해 세경보다 못한 고등학교 동창인 윤주(소이현 분)는 남자 잘 만나 스물일곱이라는 나이에 사모님이 됐다. 

드라마 속 지금까지의 결론은 구질구질 노력보단 ‘인생은 한방이다’를 보여주고 있다. 사실 이 말엔 남자인 나로서는 동감할 수 없다. 왜? 이젠 한방도 없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옛말에 ‘개천에서 용 났다’라는 말이 있다. 이젠 이 말도 틀렸다. 예전 소 팔아 대학 다니던 시절엔 가난한 집 장남 공부시켜 사법고시에 합격하면 집안도 살아나고 모든 것이 해결됐다. 개천에서 용이 난 것이다. 


하지만 요즘은 돈이 없으면 공부를 할 수가 없다. 법조인이 되기 위해선 필수적으로 로스쿨에 가야한다. 로스쿨 중 등록금 가장 싼 곳이 975만원이다. 거기에 이천만원이 넘는 로스쿨도 25곳 중에서 12곳이나 된다. 이천만원. 강남의 30~40평되는 아파트 사는 사람이면 모를까 부엌하나, 방 한 칸에 온가족 모여 사는 집에선 그런 돈을 마련할 수 있을까? 난 불가능하다고 본다. 그래서 차선책으로 학자금 대출에 손을 벌린다. 그리곤 학기동안 잠 아끼며 아르바이트를 한다. 학자금 대출을 갚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음 학비를 위해서. 근데 최저임금 오천 원도 안 되는 나라에서 과연 한 학기 동안 다음 학기 학비를 마련한다는 것은 가능할까? 자기 용돈이나 벌면 다행이다.


학비를 마련 못한 학생은 휴학을 한다. 휴학을 하니 졸업은 늦어지고, 졸업이 늦어지니 취업도 늦어진다. 갚지 못한 학자금 대출은 점점 이자가 불어가고 한번 피어보지도 못한 꽃다운 청춘은 이미 신용불량자가 되어있다. 이젠 개천에서 용 따위는 나지 않는다.


한방의 대명사인 로또도 다를 바 없다. 523회 로또 1등 당첨자는 총 7명. 이들에게 돌아간 1등 당첨금은 17억 8026만원. 17억 가지고는 강남에 아파트 하나 못산다. 한방이라고 말하기에는 집 한 채 못 사지만 그래도 평생 월급쟁이 생활로는 이 돈도 못 모을 거 같으니 그 운수에 감사할 따름이다. 한 평생 놀고먹을 만한 한방도, 방법도 이제는 없다. 드래곤 볼을 모아 소원을 빌지 않는 한 없다.


“한방을 노리지마라. 매사에 최선을 다하고 노력해라. 그럼 인정받고 성공할 수 있다” 어느 책의 이야기처럼 성실히 노력하면 성공할 지도 모르겠다. 나도 그렇게 믿고 싶다. 근데 지금 현실에서 노력은 최선의 선택도 성공의 지름길도 아니다. 가진 것 없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들의 어쩔 수 없는 발악이다. 공든 탑이 안 무너질 것 같은가? 성실과 노력으로 쌓아 올린 공든 탑 따윈 돈 쳐 바른 대기업 굴삭기 한방이면 끝이다. 지금 세상의 노력은 운보다 못한 존재고 노력만으론 아무것도 안 되는 시대다.


그러고 보면 ‘청담동 앨리스’는 현실을 잘 반영하고 있지 않다. 어떤 짓을 하던 노력만으로 주인공은 성공을 이룰 테니까. 오히려 지금 사는 세상이 더 드라마 같다. 노력만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거지같은 시나리오의 막장 드라마.


written by 선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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