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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엄마, 딸, 손녀 그리고 헌 신



  대학로 혜화로터리를 건너 한성대 입구 사거리에 접어들어 좌회전을 받으면 곧장 성북동 길로 이어진다. 사거리 주변에는 과일장수, 과자장수, 떡장수, 김밥장수 누구 할 거 없이 이런저런 상인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손님들과 흥정을 벌인다. 성북동 길을 따라 조금 더 올라오면 오래된 철물점, 문방구, 사진관, 쌀집, 추어탕집이 보이고 그 뒤로 빽빽하게 살림집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다. 이쪽저쪽에 고등학교, 중학교도 보인다. '서울에 아직도 이런 동네가 있나' 싶을 정도로 7080년대의 냄새가 폴폴나는 그런 동네라고나 할까. 암튼 와보면 '아 여기가 성북동이구나'라는 필이 딱 느껴진다. 


  중간 쯤 올라오면 큰 길가에 조그마한 구멍가게와 당장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매우 올드한 국수집이 눈에 들어온다. 그 앞 횡단보도을 건너 세탁소와 의류점 사이로 난 골목길로 올라오면 아담한 한옥집 한 채가 보인다. 주민들은 이곳을 최 선생님 댁이라고 부른다. 집 대문에는 '최순우 옛집'이라고 쓰여진 현판이 걸려있다. 제 4대 국립중앙박물관장을 역임했던 한국미의 실천자 혜곡 최순우 선생이 살았던 곳으로, 시민들의 따듯한 성원과 모금으로 '시민문화유산 1호'로 되살아난 집이다. 이렇게 설명해도 우리 90-00세대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니 하나 더 붙이겠다. 간혹 교과서와 문제집의 지문으로 나오는 '무량수전 배흘림 기둥에 기대서서'의 저자라고 하면 '아 그 사람!'하고 무릎 칠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다.

 

 



  대문을 열고 뜰에 들어서면 선생이 생전에 심어 둔 감나무, 밤나무, 모과나무, 소나무, 산수유 나무가 알맞게 자리를 잡고 있으며, 곳곳에는 청죽, 벌개미취, 옥잠화, 바위취와 같은 한국의 야생화가 소담스레 피어있다. 선생이 머물던 사랑방에는 도톰한 보랏빛 보료와 조그마한 서안이 있고, 간결하게 짜여진 사방탁자가 놓여 있다. 서안 위에 놓여진 낡은 원고지가 바람에 펄럭인다, 김환기 선생과 박수근 선생의 그림도 보인다. 선생의 친필이 담긴 사랑방 현판에는 '두문즉시심산'이라 적혀있다. '문을 닫으니 이곳이 곧 산속과 같다'라는 뜻이다. 뒤뜰에 펼쳐진 고동빛깔 툇마루에 앉아 수국차를 마시며 이 고요한 풍경을 마주하고 있자면 도심 속 한복판이라는 사실을 어느덧 잊게 되는 묘한 감정이 싹튼다. 


  언제였던가. 최순우 옛집에 엄마, 딸, 손녀 셋이 놀러왔다. 하얗게 머리가 센 엄마를 부축하고 딸이 모셔온 모양이다. 대여섯살 되어보이는 손녀아이는 벌써 깡총깡총 온 집을 뛰어다니고 있다. 엄마와 딸이 쑥차를 시켜놓고 툇마루에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손녀아이가 무얼 발견했나보다. 막 뛰어가서는 "엄마 이게 뭐야?"를 연신 외쳐댄다. 손녀아이가 손에 들고 있는 건 검정 고무신이었다. 딸이 이야기해준다. 


"요건 옛날 사람들이 신었던 고무신이라는 거야, 고무로 만든 신발!"

"엄마 나 이거 사줘!!!"

"이걸 사서 뭐하게~ 다시 제자리에 갖다두세요~~"

"엄마 나 이거 사줘!!!"

"이거 이제 안 팔아. 못사요. 갖다두세요~~"

딸과 손녀아이가 몇 차례 실갱이를 벌이고 있으니, 엄마도 한 술 거든다. 

"야, 이거 아직도 신고 다니는 사람이 있나부다. 남대문 시장 이런데 가면 아직두 이런거 팔기는 팔텐데..."

"엄마 근데 나도 보기만 했지 그러고 보니까 신어본 적이 없네?"

"야, 내가 너 어렸을 적에 니 딸 마냥 새신발새신발 노래를 불러서 맨날 시장만 가면 신발만 사고 아주 된통 혼났다"

"나두 그랬나? ㅋㅋㅋㅋㅋ"

"난 아주 고무신만 보면 울화가 치민다 야"

"왜 엄마?"

"느의 할아버지 있지? 그 양반이 어디 여자 사람취급이나 해줬냐? 오빠들은 서울가서 공부해야 된다고 구두니 운동화니 장만 가시면 사오는 걸 나는 한번도 신어보지도 못했다 야. 맨날 오빠들이 신던거 떨어지고 그러면 그거 주워다 신고 그랬지뭐. 오빠가 하두 그래보이니까 그래도 나중에 나 부득부득 우겨서 고등학교 갈 때 아빠 몰래 구두 한 켤레 사줘서 내가 그냥 신이 나가지구 온 동네방네 다 신고 다니고 친구들한테 자랑하고 그랬어. 어이구, 난 고무신하면 치가 떨린다."


  가만히 보니 할머니가 지금 신고계신 구두도 예사로워 보이지 않다. 럭셔리한 게 딱 누가봐도 '와우! 명품이네!' 써 있다. 그러고보니 그 딸도, 그 딸의 딸도 죄다 신발이 고급스러워 보인다.  


"넌 아주 행운인 줄 알어. 내가 아주 이 신발에 한이 맺혀가지구 내 딸은 그렇게 안키운다 해서 사달라는 대로 사준거지. 그 때 값으로 구두니 운동화니 다 비쌌다구. 누가 이런 걸 함부로 사줘."

"하하, 알았어알았어 엄마. 내일 백화점이나 갑시다."

"그러지 뭐. 아니 근데 얘는 뭐가 좋다구 이걸 가지고 이런다냐?"


  손녀아이는 고무신이 정말 마음에 들었던지 들었다놨다 신었다 벗었다를 반복하면서 장난감 갖고 놀듯 삼매경에 빠져있다. 손에서 놓지를 못하니 아이엄마가 마지 못해 사무실로 찾아와 묻는다.


"이거 여기서 팔아요?"

"아뇨, 저희들만 신는 겁니다. 한옥 분위기에 맞게 신발도 고무신으로 맞춘 거에요."

"아, 네 근데 참 한옥이랑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 저랑 딸이랑 신고 사진 찍어도 되죠?"

"아 그럼요. 그리고 이거 남대문 시장에서 팔아요. 가시면 아마 따님 사이즈도 있을 거에요"

"아네, 잘 알았습니다. 고맙습니다."


  고무신 두 켤레를 딸과 손녀아이가 신더니 나에게 사진 좀 찍어달라 부탁을 한다. 고무신이랑 한옥이랑 잘 좀 나오게 찍어달란다. 나름대로 그림이 잘 나오는 자리에 앉혀놓고 찍으니 제법 그럴싸해 보인다. 두 사람도 모두 만족한 얼굴이다. 딸이 엄마에게 묻는다. 


"엄마도 한 번 신고 찍어. 언제 또 신어보겠어?"

"아이구 난 됐다. 니들이나 많이 찍어라. 쟤 좀 이쪽저쪽 가서 많이 찍어줘 예쁘게 꽃이랑 나무랑 같이."


  그렇게 세 모녀는 고무신을 두고 한참을 이리저리 옮겨다니다가 해 질 무렵이 되서야 돌아갔다. 정말 할머니는 끝까지 고무신을 신지 않았다. 딸은 사진만 찍어댔다. 손녀아이는 신고 놀기에 바빴다. 엄마에게 고무신이란 '다시는 보기 싫은 헌 신', 딸에게는 '기념으로 남길 추억거리'. 손녀아이에게는 '꼭 갖고 싶은 신발 장난감'이었다. 그 날 헌 고무신이 세 모녀에게 제대로 헌신했다. 



Written by 선장

Painted by 사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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