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이 시대의 해적이다] 늑대소년, 그 시절을 향한 무한긍정, 그리고...

 

 

 

 

용산에서 늑대소년을 보고 나오는 길이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생각하고 있었다.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리고 있는데 어르신들이 눈에 띄었다. 동창회 부부동반 모임인 듯 했다. 오랜만에 만난 동창들과 반갑게 인사하며 서로의 안부를 묻는 모습이 정겨웠다.

 

신호가 얼른 바뀌지 않아 어르신들의 대화를 듣게 되었다. 어르신 한 분이 또다른 어르신에게 핀잔를 준다.

 

"뭘 그렇게 두리번거려?" 안그래도 그 어르신이 뭘 그렇게 찾으실까 궁금해하던 중이었다. 자연히 귀를 쫑긋 세웠다.

 

"입대할 때 용산에 모였잖아. 육이오 때. 육십년만에 처음 오는 것 같네."

 

대답을 하면서도 어르신은 계속 무언가를 찾았다. 핀잔을 줬던 어르신도 이해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인다.

 

스물도 안된 소년이 전쟁터에 나가기 전의 심정이란...그가 마지막으로 본 용산의 풍경은 참으로 남달랐겠지. 구름 한 점, 들꽃 하나, 돌맹이 한 개 조차 평소와 다른 느낌이었을 것이다. 증기기관차에서 용산역을 바라보며 '돌아올테니 기다리고 있어.'라고 다짐하지 않았을까. (306보충대에 입소할 때의 느낌조차 세상 다 끝난 것 같은 기분이라는데...)

 

1953년 용산역 플랫폼의 증기기관차

 

용감했지만 미숙했던, 순수했지만 불안했던, 앳된 청년은 열차를 타고 떠났다가 60년이라는 세월을 거쳐 다시 용산역 앞에 섰다. 몸을 실었던 증기기관차는 고물이 되어버린지 오래고, 지금은 KTX가 다니는 세상이다.

 

연륜있지만 쇠잔했고, 현명하지만 겁많은, 주름진 노인은 역전에서 무얼 찾고 있는 걸까?

 

60년 전 길가에 피어있던 이름 모를 들꽃일 수도 있다. 어쩌면 마지막으로 먹었던 국밥집을 찾고 있다. 많이 먹고 힘내서 살아오라며 한그릇 더 말아주던 주인아주머니는 살아계실까. 혹시나 해서 찾아들어간 60년 전통 원조 할매 국밥집에서 눈물과 함께 했던 그 맛을 느낀다면...

 

순수했더라고, 좋았더라고, 두렵고 불안해서 미처 알지 못했다고, 이제는 알았노라고 그 시절을 한없이 긍정하지 않을까? 그리고,

 

먹고 살기 위해, 삶에 힘들어서, 생활에 지쳐 잊고 있었는데, 나에게도 변하지 않은 무언인가 있다며, 지금의 자신을 긍정할 수 있지 않을까.

 

...미묘한 장면의 교차, 가끔 이럴 때 주변을 의심하곤 한다...

 

송중기는 잘 생겼구나, 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여자가 아닌지라, 영화의 클라이막스로 치들을 때에도 무언가 부족한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치열한 소중함의 경험이 부족한 탓이라는 생각도 해보았다.

 

마지막 10분에서 부족한 감정은 채웠졌다. 그리고 깨달았다. 영화의 주인공은 어린시절의 철수와 순이가 아니라 나이들어버린 순이일지도 모른다고...

 

때론 모르는게 용감한거야. 나이가 들면 들수록 아는것이 많아져서 겁쟁이가 되버려.

나이 들어 어른이 되면 눈에 안 보이던게 많이 보여. 그렇게 아는게 많아져서 못하는게 많아져.

인생에 딱 한 번 뿐이야. 그 때가 지나면 다신 안 와.

- 늙은 순이가 젊은 손녀에게 -

 

[이미지 출처]

http://wolfboy.interest.me/

http://donsdepot.donrossgroup.net/dr141.htm

 

written by 요리사


Posted by 해적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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