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위가 사그러졌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너무 춥다. 시베리아 벌판을 우리 동네 밑장에 깔았나보다. 밤이면 밤마다 울어대던 길 고양이들도 자취를 감췄다. (아마 그들의 아지트에 모여앉아 고래고래 욕을 하고 있을 거다). 그러나 고양이처럼 마냥 춥다고 집에서 웅크릴 수만은 없는 법. 카페라도 나와 앉아있어야 책이라도 한 줄 볼 것 같아 추운 밤 할리스로 향했다. 허허, 역시 연말은 연말이다. 할리스 4층까지 사람들이 바글바글하다. 다행히 4층 가운데 빈자리 하나 남아 있어 냉큼 앉아 가방으로 영역 표시를 하고, 우당탕 내려가 라떼 한잔 시켜 올라왔다. 할리스는 회원카드만 있으면 사이즈 업 또는 샷 추가를 무료로 해준다. 야호, GRANDE 사이즈! 맛있게 냠냠. 





 자리에 앉아 이것저것 공부거리를 펼치고 앉아, 손깍지를 끼고 기지개를 한번 주욱 펴본다. 주위를 둘러보니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모여 A, B, C, D, E, F, G ~ Z까지 다양한 이야기들을 나누고 있다. 굳이 보려고 보는 것은 아니요, 굳이 들으려고 듣는 것은 아닌데, 2시 방향의 커플이 매우 매우 매우 눈에 띈다. 둘의 몸이 찰흙처럼 엉키고 섞여 스크류바를 이루었다. 아나콘다 같기도 하고, 아무튼 죽어 못산다. 두 눈이 마주칠 때마다 번갯불이 번쩍번쩍 일면서 쪽쪽 입맞춤을 나누고, 신났어 아주 그냥 신났어 ㅋㅋㅋㅋㅋ.


 남자가 무얼 발견한 듯 여자의 긴 머리를 손으로 쓸어 넘기며 가만히 그녀의 귀를 들여다본다. 그리고 물어본다. 


“어, 못보던 귀걸이네? 귀걸이 샀어?”

“아냐, 언니가 준거야. 나 별로 악세사리 하는거 안 좋아하잖아.”

“아...난 또, 너 귀걸이 잘 안하는데 웬일로 샀나 했지. 근데 왜 했어?”

“아 몰라 진짜, 아침에 나오는데 언니가 이거 하고 나가라고 하면서 끼워주잖아. 해주는데 또 싫다고 하기도 그렇고 냅뒀어 그냥.”


 그냥 보기에도 휘황찬란한 귀걸이. 수수한 롱코트에 니트와 청바지 차림의 여자. 헐, 귀걸이만 무지하게 튀어 보인다. 브랜드는 스와로브스키. 귀 밑으로 길게 드리워진 깨알 같은 보석들이 반짝 반짝대며 무도회 입장을 준비하고 있었다. 귀걸이만 보면 그녀는 지금 영화제 시상식이라도 갈 기세다. 언밸런스하다는 게 요런 걸 두고 이야기하는 거다. 남자가 꽤나 관심이 가는 모양이다. 





“언니는 되게 화려한 거 좋아하나보다?”

“우리 언니 이런 거 되게 좋아해. 귀걸이, 목걸이, 반지, 팔찌, 반지 다 해. 지가 무슨 클레오파트라인줄 알아. 나 참.”


 여자가 큭큭 대며 웃는다. 무슨 사연이 있나보다. 


“우리 언니 대따 특이해. 어렸을 때 우리 엄마가 언니 때문에 고생 엄청 했어. 하하하. 생각하니까 진짜 욱기다 ㅋㅋㅋ.”

“왜왜, 뭐가 웃기는데?”

“우리 언니가 옛날에 어렸을 때 툭하면 없어졌거든? 그게 다른 애들처럼 길에서 가다 잃어버리고 그러는 게 아냐. 어떻게 잃어버리는 거냐면, 우리 언니가 지금도 진짜 나대거든? 옛날에도 똑같았는데, 집에만 나가서 놀면 다른 집 초인종을 막 누르고 그냥 다짜고짜 ‘안녕하세요 저는 모모모에요’ 꾸벅 인사하고 들어가서 저녁 7시고 8시고 그 집에서 계속 노는거야. 그러니까 집에서는 잃어버렸다고 난리가 나는거지!”

“모르는 집에 그냥 들어가서?”

“어어, 미친거지 ㅋㅋㅋㅋㅋ. 그러니 우리 엄마 속이 안 타들어가겠어? 그래서 우리 엄마가 짱구를 굴렸어. 요 기집애를 어떻게 해야 안 잃어버리나 하다가 생각한 게 악세사린거야.”

“악세사리로 뭘?”

“인제 언니한테는 ‘예쁜 악세사리를 하고 다녀야지 사람들이 이쁘다고 하는 거에요, 길도 안 잃어버리고’ 얘기해주면서, 팔찌랑 목걸이를 해줘. 근데 그 팔찌랑 목걸이에 집 주소랑 전화번호, 엄마 아빠 이름, 애 집에 보내주세요 메시지 딱 적힌 꼬리표를 거기다 같이 붙여주는거야. 찾은 사람이 보라고. 사람들 눈에 잘 띄라고 또 보석 이따 만한거로 해주고, 화려한 거 막 이런 걸로 해주고. 웃기지 않아? ㅋㅋㅋㅋㅋㅋㅋ”

“아~~그래서...언니는 지금도 악세사리 다 하고 다니는 거야?”

“어어, 언니는 진짜 꼬맹이때부터 온 몸에 보석치장 한 거지. 지가 맨날 그러고 다니니까 커서도 이게 버릇이 된거야. 나중엔 엄마가 안 사줘도 자기가 알아서 다 사. 고등학교 때 엄마 몰래 카드 갖고 백화점 가서 50만원 긁어서 뒤지게 맞은 적도 있어.ㅋㅋㅋㅋㅋ”

“아 진짜? 대박이네...”

“지가 하다가 또 질리면 나를 줘. 나보고 하라고. 근데 난 뭐 어렸을 때부터 언니가 그러고다니는 거 보니까 별로 악세사리 하고 싶지가 않더라고.”

“그래서 너가 악세사리 별로 안좋아하는구나. 핫핫.”

“무슨 목걸이가 위치추적 장치도 아니고 그게 뭐야. 그냥 보기에도 답답해. 그래서 안해. 그냥 오늘같이 억지로 끼워주면 해. 해준다는 거 안한다고 그러면 완전 삐지거든. ㅋㅋㅋ”

“진짜 특이하네 하하”





  우와. 악세사리도 다 여자 나름의 구구절절한 사연이 있구나. 스와로브스키에도 ‘세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속담을 넣을 수가 있는 거구나. 


Written by 선장


[스와로브스키 사진: 대림미술관 스와로브스키 展]  


Posted by 해적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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