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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사람이 집이다


나의 큰집, 큰아빠 큰엄마가 계신 큰집은 대전 석교동에 있다. 마당이 멋들어지게 자리 잡고 있으며 드라마에서나 올 법한 멋진 이층집이었다. 나무 바닥으로 되어있던 넓은 거실은 한 발, 한 발 내 걸을 때마다 삐걱삐걱하며 기분 좋은 소리를 내고는 했다. 내 방하나 없던 작은 집에 살았던 나에겐 큰집은 나에게 정말 큰집답게 커다란 집이었다. 이런 큰집은 갈 때마다 놀이터였다. 특히 온갖 신기한 물건들이 많았던 큰집은 나에게 보물창고였다.


자상하셨던 큰엄마는 항상 정원을 아름답게 꾸미셨는데 흡사 일본식 가옥처럼 너무 과하진 않았지만 절제가 있었던 그런 품위 있는 정원이었다. 이런 정원의 식물들을 신기해하며 바라보기도, 마당의 강아지와도 함께 뛰놀았다.


거실에서 이층으로 이어지는 계단은 한발 한발 옮길 때마다 호기심으로 가득 찬 날 설레게 했다. 물론 이층엔 세를 주어 다른 세대가 살아 끝까지 올라가보진 못했다. 그래서 더 궁금해 했던 거 같다.


넓은 거실에 장식되어 있던 수석들은 항상 빛이 났다. 그중 동물모양을 닮았었던 수석들은 나의 장난감이 되었고, 거실은 세렝게티가 됐다. 출판사에 근무하시던 큰아빠 덕에 집에는 많은 책들이 있었는데 이런 책을 몇 개 들고 나와 윤이 반질반질 나는 나무거실에 앉아 읽으면 거실은 오래된 도서관이 됐다. 조금은 낡았을 지도 모를 집이었지만 워낙 꼼꼼하셨던 큰엄마는 이 집을 품위 있는 보물창고로 만들어 놓으셨다. 멋진 고성 같이.

 

콩알만 한 키에서 대한민국 남자 평균키를 넘겼을 때 큰어머니는 세상을 떠나셨다. 남겨진 집은 사촌형과 큰아버지께서 계속 사셨다. 그 집에서 바뀐 건 큰어머니가 안 계신 것뿐이었다.


내가 호기어린 20대를 넘어 능글맞은 30대가 되었을 때 나의 고성 같고 보물창고였던 큰집은 고성은커녕 아무도 살지 않는 폐허가 되어갔다.


품위 있던 정원의 풀과 나무들은 모두 말라 죽어 얼마 전에 모두 잘라냈다. 하얀 흙만을 드러낸 채 정원은 사막이 되었다.


이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은 온갖 집안의 안 쓰는 물건으로 채워져 한 계단 오르기도 힘들었고 기분 좋은 소리를 냈던 나무 거실은 윤기를 잃어 낡은 나무 판때기를 깔아 놓은 거 같았다.


거실의 수석들은 빛을 잃어 수석이라고 부르기도 아까울 정도로 돌덩이가 되어버렸고 처치 곤란으로 남았다. 집은 흡사 폐허 같았다.


큰집에서 바뀐 것이라곤 큰어머니가 안 계신 것뿐이었다. 그렇게 집을 아끼고 가꾸셨던 큰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집도 죽었다. 집의 주인은 있지만 집의 실질적 주인은 큰어머니였던 것이다.


내가 어릴 적 어머니께 전세에 대해 물어본 적이 있다. 어차피 돌려줄 돈인데 전세는 왜 주는 것이냐고 물었다. 그러자 어머니가 말씀하시길 집을 혼자 그냥두면 죽기 때문에 사람을 들이는 것이란다.”라고 하셨다. 물론 어린 나는 이해 못할 말이었다. 집이 죽는 다는 것이.


사람이 곧 집이고 집이 곧 사람이었다. 사람도 혼자 못살 듯이 집도 혼자 살 수 없었다. 큰어머니 애정과 사랑을 잃은 큰집은 지금도 조금씩 조금씩 죽어가고 있다.


Written by 선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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