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12. 20. 02:54

 

 

오늘따라 바람이 잘 분다. 15노트. 그야말로 쾌속선이다. 하늘은 별무리로 가득하고, 파도는 잔잔하다. 바다와 하늘이 검푸른색으로 뒤엉켜 분간하기 힘들다. 하늘에 배가 두둥실 떠가는 것 같다. 심심한 마음에 갑판에 나오니 오늘은 사샤가 없고 요리사가 앉아 있다. 무얼 쥐고 있는지 가만히 손바닥을 쳐다보고 있다. 그리고 하늘을 한번 쳐다본다. 다시 손바닥을 들여다본다.

 

"뭐해 안자고?"

"그냥요."

"그냥 뭐하는데?"

"그냥 있어요."

 

가까이 가서 보니 손에 온통 허연 가루다. 아아, 그제 아침에 마데이라 섬에 들러 샀던 그 설탕이구나. 설탕은 달콤해서 얼른 팔아넘겨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사샤가 차를 마신다, 빵에 발라먹는다 별 핑계로 야금야금 다 갉아먹을 것이다. 그것에 대비해서 요리사에게 잘 지키고 있으라고 했더니 아직까진 큰 문제가 없나보다.

 

"왜 그렇게 그걸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어?"

"하얀 게 신기하네요."

"뭐가 신기한데?"

"별이랑 비슷한 것 같아요."

"그런가?"

"그럼요. 반짝반짝한게 그렇지 않아요?"

"음...썩 그래보이지는 않는데;;;"

"제가 육지에 있을 때였어요. 어떤 할아버지한테서 재미난 이야기를 들었어요."

"재미난 이야기? 뭔데?"

"시장에서 생선을 파는 할아버지였어요. 옷차림은 남루했는데, 눈이 굉장히 맑은 분이었죠. 범상치 않다는 건 당장에 알아볼 수 있었어요. 매일 그 시장에 놀러가곤 했는데, 어느 순간 그 할아버지와 친구가 됐죠. 그 할아버지가 얘기해주기를 별은 사람의 영혼이랬어요. 사람이 죽으면 몸은 썩지만 영혼은 씨앗이 되서 하늘로 올라간대요."

 

"오호, 별이 씨앗이라...그럼 꽃도 피나?"

"그럼요. 그 사람이 살아생전에 얼만큼 훌륭한 일을 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선행을 베푸느냐에 따라서 별의 밝기도 달라진대요. 마음에 드는 별을 몇 개 골라서 매일 같이 살펴보면 별빛이 달라지는 걸 금방 알 수 있어요. 점점 빛의 기운이 세지는 건 별이 꽃을 활짝 피우는 거라고 했어요"

"별꽃이 핀다...꽃이 피면 지기도 하나?"

"물론이죠. 그게 바로 혜성이죠. 저기 봐요. 하나가 떨어지잖아요."

"떨어지면 영혼도 사라지나?"

"아뇨. 거꾸로죠. 별이 떨어진 그 자리에서 새로운 생명이 태어난대요. 별꽃을 활짝 피웠던 사람은 그만큼 좋은 가정과 좋은 환경에서 태어난다고 하네요. 타고난 복이라고 해야하나. 결국엔 모두가 돌고 도는 거죠."

"죽어서 별이 되고, 꽃을 피운다...그리고 꽃잎이 지면 혜성으로 떨어져 다시 살아난다...저기 활짝 핀 꽃들 중엔 내 조상님들도 있겠군. 그치?"

 

"있을 거에요. 언젠가 선장도 저기 어딘가의 별이 되겠죠. 얼마나 빛이 날진 모르겠지만 ㅎㅎㅎ"

"그렇겠군. 그럼 저기 어딘가엔 내 할아버지 할머니 별도 있겠구만."

"그럼요. 그래서 옛날 사람들은 저 별들이 자신의 조상들의 영혼이라고 믿었대요. 왜 밤 12시에 제사를 지내는지 아시겠죠?"

"별이, 아니지. 조상님들이 가장 잘 보이는 때라서?"

"그렇죠. 죽은 영혼들의 기운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때라고 하네요. 영혼과 교감을 나눌 수 있는 가장 좋은 시간."

"나름 일리가 있군."

 

그렇게 생각을 해보니 웬지 신비로운 느낌이 든다. 나의 조상들을 별꽃의 모습으로 만날 수 있는 밤이라...요리사 옆에 우두커니 앉아 몇 시간이고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요리사 손에는 작은 메모가 적혀 있었다.

 

 

<별>

 

                                        박영신

 

지상에서 심은 씨앗 중에

가장 멀리에 심은 것이 별이다.

 

떡잎 자라는 가슴이 푸릇푸릇해지는 밤.

 

오늘도 어느 별에서는 꽃이 피고 있다.

 

 

Written by 선장

 

Posted by 해적단

댓글을 달아 주세요

 

지금까지 해적라디오의 DJ 세이렌이었어요.


끝 곡으로 전설 속으로 사라진 밴드 부아나 비디따 술샤 클럽의 노래를 보내드릴게요.


이 노래를 마지막으로 해체하고, 행방이 묘연한 그들을 추모하며 들어볼게요.


어딘지 모를 바다의 밑바닥에 잠들어 있을지도 모를


부아나 비디따 술샤 클럽의 애니팡을 남기고 저는 이만 물러날게요.


난파당하지 말고 좋은 항해 하세요.~~~굿 럭~~~

 



 

오랜세월 모아왔던 논문 파일들을 지워 버리고

목숨같은 나의 책들을 헐값에 팔아버렸지 예~

미안해 멤버들아 나는 더이상 인문학을 하지 않을거야

함께 울며 웃으며 공부한 추억을 가슴속에 남길게

 

돌이켜 생각해보니 나는 쓸데없는 개멋에 취해 (개멋에 취해)

미련하게 청춘을 소모하고 있었던 것 같아

하지만 이제야 깨달았다네

이런 비호감적인 학문을 해봤자 더이상

여자들이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늦지 않았어 그 책들을 팔아버리고 스마트폰을 사 (그리고)

카페에서 연습한 애니팡을 그녀에게 보여줘 레디고~ 팡~

다시는 도서관에서 책을 들고 폼 잡지 않을거야

함께 해봐 애니팡

라스트 파앙

 

아직도 학교 안 도서관 구석에서 피땀 흘려 공부하고있을 (라스트 파앙)

이시대의 모든 학생들에게 이 노래를 바칩니다 (라스트 파앙)

세이 애니팡 (애니팡) 세이 애니팡 (애니팡) (라스트 파앙)

소리 질러 팡~ (팡~) 팡팡팡~ (팡팡팡~)

 

돌이켜 생각해보니 그동안 지켜왔던 신념만 믿고 팡~

다른 학문은 철저한 자본주의 상술이라 믿었지 팡~

하지만 이제야 깨달았다네

모두 부질없는 짓이었다는 것을 나는 지금

구직난에 빠져 있기 때문에

 

늦지 않았어 그 책들을 팔아버리고 스마트폰을 사 (그리고)

카페에서 연습한 애니팡을 그녀에게 보여줘 레디고~

다시는 도서관에서 책을 들고 폼 잡지 않을거야

함께 해봐 애니팡 (애니팡)

라스트 파앙~ 타임오버~

 

 



 

원곡 - 불나방 스타 쏘세지 클럽' 알앤비

http://youtu.be/-bTxmu75tYQ    <<<<<---노래 링크

 

Written by 낡은 라디오


Posted by 해적단

댓글을 달아 주세요

 


 

우리 동네에는 빵집이 하나 있는데 그 가게에는 아리따운 아가씨가 한 명 있다. 매일 저녁 퇴근길, 동네 어귀에 이르면 빵집 쇼윈도 너머로 항상 그녀를 볼 수 있다. 이 순간만큼은 단순히 내가 퇴근하는 길에 그녀를 본 것인지, 그녀를 보기 위해 일하러 갔다 온 것인지 헛갈릴 때도 있다. 달코롬한 빵 냄새에도 홀려 자연스럽게 눈길이 향할 만도 하니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무리가 아닐 듯하다.
 
언젠가는 턱을 궤고 TV를 보고 있고, 언젠가는 폐장 준비로 막대걸레질을 하고 있고, 언젠가는 그냥 서 있기도 한다.
 
그녀는 몇 살일까? 얼핏 보면 나보다 나이가 있어 보이기도 하다. 주인일까, 주인네 딸일까? 내가 스쳐가는 지금 그녀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날 감지하기는 할까?
 
궁금함도 잠시 내가 그녀를 유리창 너머로 스쳐 지나가는 순간은 단지 1~2초 정도에 불과하다. 다가가려고 노력하지는 않는다. 빵을 사면서 대화도 걸어볼 수 있고 가까이서 얼굴도 볼 수 있지만 그러지 않는다. 단지 지금이 좋아서이다. 쇼윈도 너머에 비친 그녀의 모습이 그냥 좋다. 쇼윈도 얼룩 때문에 선명하진 않지만 어떤 목소리인지 들리진 않지만 그래서 더 좋다. 가게에 들어가서 얼굴을 마주 보거나 이야기를 하게 되면, 왠지 나의 환상은 깨질 것 같기 때문이다. 마치 가게 문을 열 때의 알림종 소리에 환상이 깨어지듯이.

 

짝사랑이라는 게 이런 거 아닐까. 쇼윈도 사이에서 그 사람의 실재가 아닌 단지 ‘상상적 이미지’에서 만들어진 이상(理想)과의 사랑. 하지만 그러한 인식이 더 위력을 가하는지도 모르겠다.

 

유리창 문을 열고 들어가느냐의 여부는 전적으로 나에게 달려있다. 하지만 그 선택이 옳았는지 아닌지의 판단은 내 손에서 벗어나 있다. 아직 나에게 빵집 아가씨는 빵집 아가씨일 때가 좋다. 빵집 아가씨를 완벽한 여인으로(정작 본인은 엄청 부담스러워 할) 만든 것은 내가 만든 것이지 그녀의 잘못은 아니기 때문이다.
 

Written by 동전오배건


Posted by 해적단

댓글을 달아 주세요



언제쯤이었을까? 친구한 녀석이 새로 나온 아이폰을 처음 들고 내 앞에 나타났다. 평소 애플사의 아이팟을 애용하던 나는 아이폰이라 하여 별다른 감흥은 없었다. 단지 아이팟 터치에 전화기 기능을 더한 새로운 제품 정도로 인지하는 정도? 그러나 친구 녀석이 나에게 보여준 다양한 어플들은 콜롬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했을 때도 이랬을까? 보지 못했던 새로운 세계를 보는 듯 신기함 그 자체였다. 그중 여자 목소리로 대신 욕을 하던 어플은 지금도 잊을 수 없을 정도로 신기하고 재밌었다. 차후 내가 스마트폰을 구입하자마자 가장 먼저 설치한 어플도 그 욕 어플이 었을 정도다. 거기에 지금은 국민 어플이 된 ‘카카오 톡’은 더욱 신기했다.


친구의 말에 따르면 “이 어플은 전화번호가 있고 상대방도 이 어플이 있으면 자동으로 친구등록이 되지”라고 설명했다. 정말 신기했다. 내가 친구를 찾아서 친구등록을 할 필요가 없고 전화번호만 있으면 친구추가가 된다니? 이건 영화에서나 될법한 일들이 현실에서 이용되는 듯했다. 거기에 문자를 보내는 것도 꽁짜라고 하니 스마트폰이 더욱 더 위대해 보였다. 그 외에도 버스의 도착시간이나 컴퓨터 못지않은 게임 퀄리티 등 스마트폰의 매력은 넘쳐흘렀다.


그 매력에 빠져 차후 스마트폰인 아이폰을 구입했으나 익히는데 꾀나 고생했다. 나는 지금껏 얼리어답터 수준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최신식 전자기기를 다루는데 어려움은 없었다. 그러나 스마트폰은 조금 달랐다. 

처음 아이폰을 접했을 땐 전화를 끊는 것도, 문자를 쓰는 것도 조차 힘들었다. 더군다나 어플을 받기위한 앱스토어의 가입절차가 뭐 이리 복잡한지 한동안 친구의 아이디를 도용하며 살아가기도 했다. 그때 가장 많이 들었던 생각은 ‘나이가 들어서 이제는 새로운 것 하나 알아가는 것도 힘든 건가?’였다. 사실 지금 생각해보면 읽고 이해하는 것이 귀찮았던 것일 뿐이지만 말이다.


스마트폰이 조금 익숙해진 후에는 거짓말 조금 보태서 일한 시간보다 스마트폰을 들여다본 시간이 더 많은 것 같다. 별달리 할 것도 없는데 이것저것 보고 먹이를 찾는 승냥이 마냥 앱스토어를 뒤지고 다니고는 했다. 그렇다보니 배터리의 소모량이 엄청나서 항상 방전될까봐 걱정했었다. 그래서 보조 배터리까지 구입하기도 했다. 그러나 결국 스마트폰도 그냥 핸드폰이었다.


할 일없으면 들어갔던 앱스토어 덕에 밀리지 않았던 업데이트는 이제는 업데이트 하라고 숫자 뜨는 것조차 귀찮고 무섭다. 심심하면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말 걸었던 카카오 톡도, 혹시나 방전될까봐 샀던 보조 배터리도 가방 한 켠에서 먼지만 쌓여 가고 있다. 집에 오면 충전해달라고 빨갛게 들어오던 배터리도 80%이상 남아 있을 때도 있고, 가끔씩 바쁠 때면 90%이상 남아있어 다음날까지 사용해도 무방할 정도로 남아있고는 한다. 한때는 책을 집어던지고 매달렸던 스마트폰도 시간이 지나자 결국 예전에 사용하던 핸드폰이 됐다. 예전보다 조금 영리한(?) 핸드폰 정도랄까?

이런 스마트폰 마냥 나도 언젠간 나이를 더 먹고 서서히 사람들 관심 밖으로 사라질 것을 생각하니 조금 씁쓸하기도 하다.


written by 선의


Posted by 해적단

댓글을 달아 주세요



꼬마 주인이 사라지면

잠에서 깨어나 움직이는 장난감 병정들과 같이

 

교수님께서 퇴근하시면

어김없이 연구실의 책들은 나에게 말을 걸어온다.

 

마음껏 그들과 함께 상상의 나래를 펼쳐본다.

좁은 연구실에서 드넓은 세상을 만나고, 

그렇게 꿈을 키워 간다.




어렸을 적에는 몰랐다, 교수님께서 본인의 연구실에 제자를 들여놓는 그 진정한 의미를. 돌이켜보면 나도 모르게 가장가까이에서 나의 미래를 바라보며 성장할 수 있었던 것 같다. 


학생들이 찾아와서 고민을 털어놓으면 따뜻한 차를 타주시며 정성스레 그네들의 고충을 들어주는 교수님의 모습, 논문과 수업 준비를 하느라 컴퓨터 자판을 치는 모습, 교수님이면 세상 모든 것을 다 아는 것 같았지만 끊임없이 책과 싸움하며 고뇌하는 모습, 한강이 바라보이는 창문에 서서 사색하는 모습, 학회에서 발표를 하는 모습, 대학원생 제자들과 세미나에서 토론하는 모습, 책 출판을 위해서 원고를 쓰는 모습, 동료 교수들과 식사하면서 근래 고민하는 주제에 대해서 대화하는 모습 


모든 것들을 생생하게 곁에서 지켜볼 수 있다는 것, 그만큼 구체적으로 나의 미래를 꿈꿔볼 수 있는 기회였던 것이다. 제자를 아끼는 마음이 담긴 교수님의 최고의 선물이었다. (감사합니다.)


당신이 현재 꿈을 갖고 있다면, 당신이 꿈꾸고 있는 그 일을 현재 하고 있는 그 사람에게 직접 찾아가 보기 바란다. 그 사람의 모습이 바로 미래의 당신이 될 수도 있으니깐 말이다. 그 사람이 당신의 멘토가 되어줄 수 있다면, 그것은 더없는 선물이 될 것이다. 


Written by 동전오배건


Posted by 해적단

댓글을 달아 주세요

2012. 12. 16. 20:34



“겨울이면 무엇이 생각나세요?” 이렇게 누군가 나에게 묻는다면 Wham의 ‘Last christmas’가 가장 먼저 생각난다고 대답할 것이다. 내 나이만큼이나 오래된 노래지만 내가 처음 들었을 땐 나의 첫 스무 살의 겨울이었다. 

내가 가장 빛나던 시절이었고 성인으로서 발돋움의 설렘과 겨울의 푸근함이 만나 한껏 들떠있던 때였다. 오는 눈만 봐도 두근거림에 밖을 뛰다닐 정도로 풋풋함이 남아있던 시절이었다. Last christmas를 처음 들었을 당시에도 그 풋풋함과 두근거림 그리고 설렘이 함께했다. 


눈 오던 스무 살 겨울. 내가 좋아하는 누나와 함께 탄 버스에서 난 누나의 이어폰을 통해 Last christmas를 들었다. 누나가 듣고 있던 이어폰 한쪽을 뺏어 내 귀에 꽂자 처음이지만 참으로 따듯한 멜로디가 나오고 있었다. 잘 알아듣지도 못하는 영어지만 그래도 똑똑히 잘 들리는 단어는 ‘Last christmas’라는 단어. 고개를 돌려고 나는 누나에게 물었다. “아직 크리스마스도 아닌데 왜 캐럴을 듣고 있어?” 누나는 어린아이 달래듯 “이 노래는 캐럴이 아니고 팝송이란다.” 팝은커녕 국내 가요도 잘 안 듣던 나로선 크리스마스가 들어가니 당연히 캐럴인줄 알았던 것 같다. 


그 해 겨울. 그 사람과 난 연인이 됐고 함께 오고가는 버스 안에서 Last christmas를 함께 듣고는 했다. 지금 생각해도 스무 살 밖에 안 된 나로서는 가장 따뜻한 겨울을 보내고 있었던 것 같다. 첫 성인으로 맞는 겨울, 첫 여자 친구 그리고 첫눈. 하는 대부분이 처음이어서 인지 모든 것이 새롭고 신기하고 설랬다. 그리고 행복했다.

그 해 겨울이 끝날 때쯤 나는 그 사람과 이별을 했다. 수원 어딘가에 있는 커피숍에서 이별을 통보 받았다. “우리 그냥 누나 동생사이로 지냈으면 좋겠어.” 아이러니하게도 이별통보를 받은 그 커피숍에서도 Last christmas가 따뜻하게 흘러나오고 있었다. 


음악이 한 바퀴 돌아 다시 그 노래 나올 때쯤 우리는 자리에서 일어났고 나와 그 사람은 이별을 했다. 첫 이별인 만큼 많이도 아팠다. 죽을 만큼. 이별 후 나는 Last christmas를 듣지 않았다. 

다음 해 더운 여름날 나는 입대를 했다. 이별에 대한 홧김은 아니었지만 예정보다 빠른 입대였다. 입대 후 선임 절반 정도를 전역시켰을 때 쯤 Last christmas를 다시 들을 수 있었다. 겨울은 아니었지만 그 노래를 듣고 있자니 그리움에 잠시 먹먹했다. 그 사람에 대한 그리움인지 통칭 싸제의 겨울에 대한 그리움인지는 잘 몰랐지만 아무튼 노래엔 그리움이 가득했다.


상당히 선임이 된 후에도 나는 줄곧 Last christmas를 듣고는 했다. 잘 때도, 내무실에서 쉴 때도. 그러자 어느 날 한 후임이 내게 물었다. “겨울도 아닌데 왜 이렇게 캐럴을 들으십니까?” 나는 어린아이 달래듯 말했다. “이 노래는 캐럴이 아니고 팝송이란다.” 


예비역이 끝난 지금에도 내 이어폰에는 여지없이 Last christmas가 흘러나오고 있다. 그 사람 이어폰에서 따사로이 흘러나왔던 멜로디처럼 올 해 겨울도 여전히 흘러나오고 있다. 그 해 겨울처럼.


written by 선의


Posted by 해적단

댓글을 달아 주세요



[책좀읽자] 1. 서른살엔 미처 몰랐던 것들/ 김선경 지음


요즘 우리 세대를 격려하는 수많은 글들을 접하고 있다. 대부분의 글이 '실패해도 괜찮다', '용기를 잃지 마라',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가라', '불굴의 의지로 나아가라, '자신만의 강점을 최대한 살려라' 등등 자신들이 헤쳐나간 역경의 스토리를 열심히 펼치는 데 열을 올린다. 책의 주인공은 이미 그 역경을 이겨내고 사회적으로 크게 성공한 이들이다. 결국 실패의 늪에서 최후까지 살아남아 성공한 몇몇의 사람들이 말해주는 실패의 아픔과 극복의 스토리인 셈이다.


모두들 이렇게 해야 성공한다. 저렇게 해야 성공한다, 나만의 비법을 알려주마 등등 모두들 '성공해라 그리고 성과를 내라' 외치며 우리를 끊임없이 독려한다. 완곡하게 얘기해주는 글도 있고, 승질내며 얘기해주는 글도 있다. 내 입장에서 보기엔 그 얘기가 다 그 얘기로 보이는데, 결론은 어쨌든 '성공해라'다.


그러나 우리가 여기서 분명히 알아두어야 할 사실은 '그 성공자의 지침과 메뉴얼'대로 해서 성공한 사람은 어림잡아 10만분의 1도 채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우리가 의지가 부족해서도 아니고, 우리의 전략이 잘못되어서도 아니다. 또한, 게을러서도 아니고 멍청해서도 아니다. 단지, 우리는 '우리'일 뿐이기 때문이다. 각자가 타고난 기질과 성향은 천차만별로 다를 수 밖에 없다. 마치 숲속에 핀 수백수천만의 풀들이 제각기 다른 위치에서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는 이치와 같다. 지금의 세태를 비유하자면, 라일락으로 예쁘게 피어난 사람이 고목나무 밑에서 할미꽃으로 핀 사람에게 더욱더 예쁜 라일락으로 성장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과 다르지 않다. 라일락은 라일락이고, 할미꽃은 할미꽃일 뿐인데도 말이다.


그렇다면 꼭 라일락으로 피어야만 성공한 삶인 것일까? 조그맣고 소박한 할미꽃으로 살아가는 것은 젊음으로서의 가치를 포기했거나 상실한 것일까? 왜 모두가 성공자의 실패 극복 이야기만 듣는 것일까? 실패자의 실패 이야기는 가치가 없는 것일까? 이는 우리 사회가 겉으로는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다'라고 이야기하고 있긴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성공하지 못한 실패자의 실패담은 가치가 별로 없는 것으로 치부하고 있음을 은연중으로 드러낸 것이라 본다. '실패자는 어디까지나 실패자일뿐이다'라는 패배자 낙인의식이 자리잡혀 있는 것이다. 박주영이 동메달 전에서 그 골을 넣지 못했다면 지금쯤 네티즌 수사대에 의해 SNS 단두대에 올라갔을 것이 틀림없다.


여기에 딴지를 걸고 나온 책 한권이 있다. '서른 살엔 미처 몰랐던 것들'. 군대에서 수도 없이 봤던 [좋은생각]을 출간했던 김선경씨의 회고담이다. 자칭 실패자로서 자신이 겪은 실패담을 너무나도 담담하게 서술하고 있다. 작가는 '도대체 성공의 잣대가 무엇이고 살패의 잣대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에서부터 글을 풀어 나아간다. 저자의 관점은 '생긴대로 사는 것', '수백 번씩 바꾸려 노력해도 바뀌지 않는 나를 용서해주는 것', '있는 그대로의 모습에서 남이 아닌 나의 삶의 바운더리를 만들어 나아가는 것'에 머물러 있다. 이 머물러 있음이 독자로 하여금 너무나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


사실 살면서 가장 두려운 점은 '지금의 내 방식이 과연 옳은 것일까? 맞게 가고 있는 것일까?'라는 자신만의 뿌리깊은 의구심이다. 늘 우리는 우리가 선택한 길에 개운치 못한 뒷맛을 느끼며 어정쩡하게 앞으로 한 걸음 한 걸음 내딛고 있다. 이에 저자는 그 발걸음의 결과가 사회적 인식에서 본 실패가 되었던 성공이 되었든 그것은 아무런 의미도 없음을 이야기한다. 내가 행복하다면, 내가 가는 길이 정말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원하는 것이라면 또는 그것이 정말 원하는 것인지 확신이 가지 않더라도 지금 나아가고 있는 내 모습 자체를 꾸짖지 말자고 한다. 더 나아가 걷다가 그만둬도 좋고, 돌아가도 좋고, 쉬었다가 나중에 하고 싶으면 또 해도 된다라고 한다.


이것이야말로 아주 리얼함을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성공해라'가 아니라 '니 마음대로 살아라'라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흔히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그 흔해빠진 '성공', 수백만달러를 움켜쥔 나의 모습을 상상하는 불꽃과도 같은 그 '성공'은 어쩌면 매일같이 로또를 손에 쥐고 토요일을 기다리는 허무함 같다는 생각이 든다. 결국 '진짜 성공'이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남이 그어준 잣대로서가 아닌 내 스스로가 계획한 설계도에 의한 '작은 성공'인 셈이다. 저자는 즐겁게 그리고 열심히 해서 얻은 실패의 결과라면 그 역시 나름의 성공이 아니겠느냐라고 위트있게 휘파람을 불어준다.


어려우면 어려운대로 문제를 풀어나가면 된다. 아니, 풀지 않아도 좋다. 단지 내 선택에 대한 책임은 내가 지는 것 뿐이다. 어떤 길을 선택하던 기회비용에 의한 후회는 남기 마련이다. 후회보다는 선택의 스위치를 누르고 문을 열고 앞으로 나아간 나 자신을 북돋아주자. 그리고 위로해주자. 이리저리 치이고 까이다가 차곡차곡 쌓인 아픈 실패와 보류의 축적물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어느덧 계획했던 그 '작은 성공'의 문 앞에 나를 데려다줄지 누가 알겠는가. '성공했다'는 나의 판단에서 성립되는 것이지 남의 판단에서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그저 나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것 뿐이다. 막히면 돌아가고, 험하면 쉬어간다. 다만 나는 그 길의 끝에 무엇이 있는지 꼭 보고 싶은 인간 중 하나일 뿐이다.


Written by 선장


'Book' 카테고리의 다른 글

[책좀읽자]2. 마키아벨리 군주론  (1) 2014.03.18
[책좀읽자]1. 서른살엔 미처 몰랐던 것들  (0) 2012.12.16
Posted by 해적단

댓글을 달아 주세요

[주방에서] 지구 멸망과 동지 팥죽의 관계


1221? 세상이 망하는 날이잖아. 지구 종말, 마야사람들 똑똑해요. 진짜로 멸망할거야? 사과를 심을까? 여긴 배잖아. 그럼 배를 심어야지.”

 

요리사가 불안해하네요. 선장이라는 사람이 한소리 하니 요리사가 아까부터 저러고 있습니다. 어쩌면 오늘은 요리사에게 밥 얻어먹기 힘들 수도 있겠어요. 나쁜 선장 같으니라고.

 

2012 1221일이 무슨 날인줄 알아?

 

선장이 이렇게 말했는데요. 그날에 요리사에게 무슨 큰일이 벌어지는 걸까요? 걱정입니다. 요리사가 없어지면 제가 굶어 죽을 수도 있거든요.

 

옆에서 숙취를 이기기 위해(?) 해장술을 마시고 있던 선의가 끙끙거리면서 물어보네요. 그리고 선장은 대답을 하고요.

 

선의 선장이 지구 멸망 같은 거 기다릴 사람 같지는 않고. 그럼 20121221, 그날이 무슨 날인데요?”

 

선장 밤이 가장 길고, 낮이 가장 짧은 날, 해가 다시 길어지기 시작하는 날, 팥죽 먹는 날!!!!

 

선의 맞다. 그날이 동지(冬至)군요. 그래서 아까 요리사한테 팥을 씻으라고 했군요. 그런데 의미심장하네. 지구 종말과 해가 가장 짧은 날이라. 뭔가 연관이 있나 봐요?

 

 저는 치즈 먹는 것을 그만두고 싱크대에 있는 요리사를 봤어요. 아까부터 달콤한 냄새가 풍겨 나오고 있더라니, 팥죽이라는 것이 뭔지 모르지만 굉장히 맛있을 것 같아요. 제가 그러거나 말거나 둘은 대화를 계속 합니다. 누구보고 들으라는 건지.

 

선장 동지를 한해의 끝으로 보기도 해. 해가 가장 짧은 날이니까.”

 

선의 , 그래서 마야사람들이 그 날을 지구 멸망의 날로 생각했던 거군요. 어둠이 제일 긴 날이니 그럴 법도 하네요.”

 

선장 부활에 더 의미를 두지 않았을까? 해가 가장 짧다는 것은 다시 길어진다는 말이니까. 크리스마스가 말야, 크리스마스랑 동지랑 며칠 차이 안 나잖아, 원래는 페르시아, 유럽 등지에서 태양신, 농경신 등을 기리는 축일이었다고 해. 말하자면 태양의 생일이라는 거지. 나중에 예수의 생일이라는 의미가 덧씌워진 거거든.”

 

선의 그러면 왜 사람들은 마야 사람들이 지구 멸망을 예언했다고 하는 거죠? 선장 말대로 라면 1221일은 멸망의 걱정하는 날이 아니라 시작을 축하하는 날이잖아요. 새해처럼

 

선장 지금 마야에서 지구멸망을 예언 했니 어쩌니 하는데 사실 그건 다 구라야. 마야사람들은 멸망을 예언한 게 아니야. 그냥 자기들이 쓸 달력을 20121221일까지만 만들었던 거지. 달력 만드는데 93일까지 만들겠어? 아니면 한해 넘어가서 112일까지 만들겠어? 12 31일까지 만들지. 마야에서는 20121221, 올해 동짓날이 자기들이 생각하는 한 시대의 마지막 날인거야. 그리고 새 시대의 시작이기도 하고.

 

선의 . 기술력이 대단하네요. 몇 백 년 뒤 태양 위치도 계산하고. 그래도 이상하네요. 왜 굳이 2012년인 거죠. 2013년도 아닌.”

 

선장 마야 사람들 기준으로 한 시대가 5125년 정도였다고 해. 세상이 창조된 날, 즉 한 시대의 시작부터 5125년이 흐른 날이 바로 서기로 20121221일인거지.

 

선의 , 1365일도 길다고 생각한 적이 있는데, 그쪽은 말하자면 1년이 5125년이라는 말이군요. 그 사람들은 정말 엄청나게 긴 세월을 생각하는 사람들이군요.”

 

선장 우리가 새해부터 새 달력을 쓰는 것처럼 마야 사람들도 그때부터 새로운 달력을 쓰려고 했겠지. 500년 뒤의 달력을 뭐 하러 미리 만들겠어. 그 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고.”

 

선의 . 말하자면 내년에 한글날이 휴일인지 아닌지 확정되지 않아서 달력제작업자가 2013년 달력을 늦게 인쇄하는 거나 마찬가지네요.”

 

 

선장 오 괜찮은 비유. 마야문명이 침략자들을 물리쳤다면 올해부터 새로운 달력을 만들어 사람들한테 나눠준다고 부산을 떨었겠지. 아니면 기존에 쓰던 달력을 그대로 사용하지 않았을까? 마야달력은 해, , 행성의 운행을 모두 고려해서 만들었다고 하자나. 그러니까 마야사람들은 5125년마다 정확히 반복되는 천체운행의 비밀을 알았던 거지. 믿거나 말거나.”

 

선의 쓸 자리가 모자랐을 수도 있겠네요. 아쉽네요. 마야문명이 남아있었으면 5125년 만에 오는 새 시대를 맞이하는 축제를 크게 했을 텐데. 우리도 가서 신년음식 먹으면서 축제를 즐겼을 거고, 술도 먹고......아침 먹고 술, 점심 먹고 술, 저녁 먹고 술, 창문을 열어보니 술이 오네요. 술고래 세 마리가 비틀거리는데 아이구 좋아라 술꾸러기.”


선장 그놈의 술타령 그만 해라. 안 그래도 우리끼리 동짓날 축제라도 벌이자고 하던 참이었어. 팥죽도 먹고, 선의가 좋아하는 술도 먹고. 그만 둘까보다.”

 

선의 반드시 해야해요. 술 때문이 아니라 마야인들을 추모하기 위해서, 술을 먹, 아니 축제를 해야 해요. 그들이 못다한 축제를......”

 

선장 어쩌다보니 마야 이야기만 길게 했는데. 우리나라에서도 동지를 한해의 시작으로 생각하기도 했어. 동지를 작은설이라고 부르고, 동짓날에 다음해 달력을 나눠주기도 했대. 떡국같은 새해음식인 팥죽도 쑤어먹고. 팥죽은 겨우내 허해진 기운을 보충해준대. 또 팥죽이 악귀를 쫓아서 죽음이나 나쁜 일도 예방 한다고 하고.”

 

지루한 연극 같은 대화를 이제야 끝났어요. 누가 쓴 대본인지 진짜 연극이었으면 망했을 걸요. 적어도 저는 저런 이야기에 관심 없거든요. 팥죽이라는 음식에는 조금 관심이 가지만요. 이때 지금까지 말이 없던 요리사가 입을 열었어요. 


요리사 그럼. 팥죽 먹으면 지구 멸망 안 해? 안 죽는 거야?”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선장이 대답합니다.

 

선장 그래그래. 팥죽 먹으면 안 죽어. 다 살아. 멸망 안 해.”

 

요리사 신난다. 팥죽 만들어야지. 1221일은 팥죽 먹는 날이다!!!

 

선장 그래그래. 1221일은 멸망하는 날도, 해가 가장 짧은 날도, 동지도 아니다. 그냥 팥죽 먹는 날이야. 팥죽 먹는 날.”

 

착한요리사가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저도 기분이 좋아집니다. 오늘 저녁은 거하게 먹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선장과 선의가 계속 말을 합니다. 저는 관심 없지만요.

 

선의 그나저나 마야사람들 말대로 새시대가 왔으면 좋겠어요.”

 

선장 제발 좀 왔으면 좋겠어. 우리 해적질도 좀 잘되고.”

 

선의 1221일에 다 같이 해 뜨는 거 봐요. 다시 길어지는 태양 보면서 술이나 마시죠. 맛나게.”

 

선장 새시대의 태양이라. 좋지."


요리사가 커다란 솥에 무언가를 끓이고 있어요. 아마도 저게 팥죽이라는 건가 봅니다. 보글보글 끓는 소리가 들리고, 달콤한 냄새가 나네요. 배가 고프네요. 조용히 있던 앵무새가 크게 울음소리를 냅니다. 앵무새도 배가 고픈 모양입니다. 빨리 요리사가 팥죽을 만들었으면 좋겠네요.


-Fin-

 

Written by 주방의 새앙쥐

 

Posted by 해적단

댓글을 달아 주세요



114로 걸려오는 전화의 양이 줄었다고 한다. 이유인 즉, 스마트폰이 대중화되면서 114의 역할을 스마트폰이 대신하고 있기 때문이란다. 114로 전화하여 전화번호를 물어보기보다는 직접 스마트폰의 애플리케이션이나 인터넷 검색을 이용하여 알아보기 때문이다.


그 전 시절엔 집에 하나씩은 가지고 있던 전화번호부를 이용해 전화번호를 찾고는 했다. 물론 이 전화번호부도 시간이 지나면서 114 때문에 차츰 없어지기 시작한 것 중 하나다. 그런데 전화번호부를 없어지게 만든 114도 스마트폰이라는 최첨단 장비로 인해 서서히 없어져 가는 것이다. 디지털 첨단 장비의 출현으로 인해 점차 사라져가는 것들이 비단 114뿐일까?


집에 한 권씩 가지고 있던 전화번호부에 우리 집 전화번호를 찾아 줄긋던 시절 ‘삐삐’라고 불렸던 무선호출기의 등장은 사회적인 큰 이슈를 낳았을 뿐만 아니라 사회생활에 조금이나마 편리함을 제공해 주었다. 

개인이 소지하고 있는 무선호출기에 연락받을 전화번호를 남겨 연락을 취하는 방식인 무선호출기는 지금 생각하면 아주 불편하고 상상도 못할 방식이지만 그 당시엔 정말 획기적이고 사회에 큰 이슈를 자아낼 만했다.


무선호출기를 이야기하자면 공중전화 또한 빼놓을 수 없다. 지금은 1인 1 휴대폰 시대라 공중전화가 어디 있는지조차 모르지만, 그 당시 없어서는 안 되는 것 중 하나였다. 공중전화의 위치까지 기억하는 사람도 있었고, 무슨 통화를 그리 길게도 하는지 기다리는 사람들을 짜증나게 했던 사람도 있었다. 더불어 공중전화부스 안에는 꼭 쇠사슬에 묶여 있던 전화번호부도 함께 있었는데 사람들이 필요한 부분을 찢어가 항상 너덜너덜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공중전화를 사용하기 위해 동전을 바꾸러 다니는 사람들, 공중전화 위에 지갑을 올려놓고 갔던 사람들 그리고 전화카드. 공중전화에 관한 에피소드를 나열하자면 끝이 없다. 전화번호부나 공중전화, 무선호출기 등 한때는 생활하면서 꼭 필요한 것들이었지만 휴대폰이라는 첨단 장비의 보급으로 점차 잊혀가는 시대의 유물이 되어가기 시작했다.

휴대폰의 대중화는 진정한 디지털 시대의 시작이라고 해도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사회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휴대전화의 등장은 전화번호를 휴대폰에 저장함으로써 더 이상 개인적으로 전화번호부를 가지고 다니지 않게 됐고, 공중전화는 비바람을 피하는 용도 정도로 사용되고 있으며, 무선호출기는 ‘아! 내가 이걸 사용하던 시절도 있었지’하고 추억을 되짚어볼 만한 물건이 됐다.


휴대전화가 보급되고 나서 우리 생활에 가장 많은 변화를 가져온 것 중 하나가 바로 ‘약속장소의 결정’이 아닐까 한다. 휴대전화가 보편화되면서 약속장소를 미리 정하지 않아도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게 됐다. 하루 전 혹은 미리 연락해 “어디서 몇 시에 만날까?”라고 했던 것들이 이제는 휴대폰을 통해 바로바로 정하고는 한다. 그러나 이런 변화와 함께 실종된 것도 있으니 바로 ‘약속 시간’이다.


명확히는 ‘잘 지켜지지 않는 약속시간’이겠지만 언제부터인가 약속시간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던 것 같다. 오죽하면 코리아 타임이라는 말까지 있을까? 휴대전화가 없던 시절은 약속시간에 늦게 되면 상대방이 마냥 기다려야 한다는 책임감 덕뿐인지 약속시간이 잘 지켜졌다. 휴대폰의 보급된 후부턴 늦더라도 연락이 가능하니 조금은 늦어도 된다는 생각이 약간은 생겼나 보다. 물론 휴대폰으로 인해 엇갈리고 답답한 마음도 사라졌다고는 하나 핸드폰이라는 최신식 기기 덕에 사람이 지켜야할 기본적인 것조차 잊고 사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휴대폰의 진화는 멈추지 않고 계속되어 작고 휴대하기 편하게 발전하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부터는 전화기의 개념을 떠나 사진, 동영상 촬영 등 어느새 생활필수품으로 자리 잡아갔다. 휴대폰이 손에 없으면 불안하기도하고 허전하기도 하며 휴대폰도 없는데 괜히 문자소리가 귀에 맴도는 경우를 한 번쯤은 느껴봤으리라…


오늘날 휴대폰과 스마트폰으로 인해 많은 것들이 편해졌다. 그러나 지하철이나 친구들끼리 만나서도 스마트폰만 쳐다보고 있는 것을 보자면 삭막한 느낌이 들 때도 있다. 그래서인지 배고파 끓였던 라면의 받침이었던 그을린 전화번호부가 그립고 따뜻했음을 느낄 때가 있다.


written by 선의


Posted by 해적단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2012.12.14 15:04

    kbs에서 인간의 조건이라는 예능하는데 그거 보면서 핸드폰 없애고 싶다는 생각 많이 했어요. 전화번호부까지는 몰라도 ㅋㅋ 요즘 '기억', '감성' 이런게 핫이슈인듯요.

2012. 12. 13. 16:50



나에게는 그런 사람이 있습니다. 

대학에 입학했을 때, 군 입대했을 때, 휴가 나와서, 제대하고, 졸업했을 때, 취업할 때, 친구 결혼식 때, 그리고 상갓집에서…그럴 때마다 어김없이 만나는 사람이 있습니다. 아니, 꼭 만나고 싶어서 불러냈던 사람이 있습니다. 


나에게는 그런 사람이 있습니다.

십년을 넘게 알아왔으면서도 만난 횟수가 반년 사귀다 헤어진 지난 여친과의 만남보다도 적은 사람 말이죠. 그러고 보니 그 사람은 저의 연애사를 모두 알고 있네요. 


그런 날이 있습니다. 꼭 그 사람을 보고 싶은 날.

그날은 돌이켜 보면 제게는 인생의 통과의례라는 주요관문이었더군요. 저를 보여주고 싶었나 봅니다. 그러나 그보다, 그런 중요한 날이면 그녀를 보고 싶어 하는 제 마음을 들키지 않고 불러낼 수 있었으니까요.

    

“잘 지내?”

“…(잘 지내냐고? 너는 지금 내 얼굴을 보면서 그런 말이 나오지? 네가 그 사람과 웃고 행복하게 지내니깐, 야윈 내 모습 따위는 보이지 않는 거겠지. 뭐, 잘 지내냐고? 그동안 보고 싶어서 혼났지, 임마. 페이스북이랑 미니홈피 글 보면서 참았다. 글은 또 왜 그렇게 뜸하게 올리니? 사진은 참 행복해보이더라. 그 사람이 너한테 아주 잘 해주는 것 같네. 야, 너만 잘 살았는지 알지? 나도 열심히 살았어. 너한테서 성공한 모습 보여주려고 이를 아득바득 갈면서 산다, 내가 아주. 야, 그리고 나도 요즘 여자 만나. 불쌍한 눈빛으로 쳐다보지 마. 너 아니래도 나 멋지다고 하는 여자 많아…참…보고 싶었다, 많이. 여전히 예쁘구나, 너란 여자.)”

“뭐 해? 잘 지냈냐니깐?”

“응…그…그냥.”          

 

그동안 그녀에게 들려주고 싶은 수천수만 가지 이야기 대신, 그녀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은 한 단어뿐이었습니다.

 

Written by 동전오배건

 

'Creation' 카테고리의 다른 글

[보물섬] 꿈꾸는 연구실  (0) 2012.12.17
지구 멸망과 동지 팥죽의 관계  (0) 2012.12.15
[500원] 안부인사  (0) 2012.12.13
아내의 이름을 불러보다  (0) 2012.12.12
[500원] Intro。500원 짜리 남자  (0) 2012.12.08
그림으로 말하는 남자  (0) 2012.11.19
Posted by 해적단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