록맨의 전설


패밀리라는 게임기인 하드웨어를 가졌다고 하나 소프트웨어인 게임팩이 한없이 부족한 게 현실이었다. 그렇다고 한 게임만을 계속할 수도 없는 것 또한 현실이었다. 그래서 이것의 대안책이 바로 합본팩이었다. 

합본팩은 팩 하나에 여러 가지 게임이 들어있는 것을 말하는데 작게는 몇 개에서 많게는 백단위의 합본팩도 있었다. 대게 합본팩은 1~2개의 메인 게임과 나머지 잡다한 게임으로 되어 있는데 사실 메인게임을 제외하고 나면 나머지 잡다한 게임은 거의 쓰레기 수준의 게임이었다. 간혹 쓰레기 게임 속에서 조금은 할 만한 게임을 발견할 때도 있지만 그런 일은 드물었다. 


합본팩의 또 하나의 문제점은 팩 겉면에 붙어있는 그림이나 게임명이 실제 게임과 다를 때가 있다는 점이었다. 한번은 겉면에는 상당히 괜찮은 게임이 붙어있어 단숨에 샀더니 정작 게임을 돌렸을 때는 다른 게임이 나오는 것이었다. 헷갈릴 수도 있겠다 싶을 정도도 아닌 게임이 들어있었는데 그 게임하나 보고 산 나로서는 허탈하기 그지없었고 바로 오천원을 주고 팩을 교환했다.


합본팩의 현실이 그렇다보니 대게는 그냥 단일팩을 사는 것이 더 효율적이었다. 다행히 나는 처음 패밀리를 샀을 때 단일팩을 하나 함께 구입 했었는데(물론 어머니가 사주신 거지만) 그 팩이 바로 록맨(Rockman)6였다. 





일본 캡콤(Capcom)사에서 만든 액션게임인 록맨은 지금에서도 명작으로 뽑히는 작품인데 작은 파란색의 로봇인 록맨이 나와 스테이지를 정하고 각 스테이지의 보스를 클리어 하는 방식의 게임이었다. 

록맨의 재미중 하나는 각 보스마다 지닌 속성과 무기가 있는데 록맨이 그 스테이지의 보스를 물리쳤을 때 물리친 보스의 능력을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각 보스마다 상성을 잘 이용하면 보스공략을 쉽게 할 수 있었다. 이런 상성을 찾아내면 쉬웠지만 사실 못 찾을 경우 보스 공략은 지옥이었다.


이밖에도 로봇이라면 최강의 메리트인 합체도 가능했는데 록맨의 친구(?)인 랏슈(개의 모양을 하고 있는 로봇이다)와 합체해 비행모드나 헤비모드로 변형해 비밀통로를 찾아 이동할 수 있었다. 

이 비밀통로를 잘 찾아내는 사람이 동네 아는 형 중엔 꼭 한명씩은 있었는데 나는 그 형이 플레이하는 모습을 유심히 지켜봤다 집에서 내가 직접 해보고는 했다.


록맨은 재미있는 게임이 확실했지만 어려운 게임인 것도 확실했다. 특히 횡스크롤 액션 게임인데도 불구하고 에너지에 굉장히 인색했다. 웬만하면 보스 만나기 전에 큰 에너지 하나 정도는 주는 것이 인지상정이거늘 이 게임은 그런 게 없었다. 에너지 없으면 그냥 보스를 만나서 죽는 게 속편했다. 그러면 보스 바로 앞에서 에너지가 가득 찬 체로 시작했기 때문이다.


사실 에너지가 가득 차있어도 문제였는데 록맨이 가장 무서워하는 것은 강력한 적도 아니고 거대한 적도 아니었는데 바로 ‘가시’였다. 

침모양의 가시던 성게모양의 가시든 닿기만 하면 한방에 죽었다. 에너지가 아무리 많이 차있어도 삐융삐융하며 터졌다. 이게 나는 참 죽을 맛이었는데 컨트롤이 정교하지 못했던 어린 시절이라 게임을 진행하는데 있어 가장 고비는 바로 가시였다. 


한번은 위와 아래 모두 가시로 되어 있는 곳을 지나가야 했는데 적당히 점프버튼을 눌러 넘어가야했다. 근데 이게 쉽지 않았다. 그래서 이곳에서만 수십 번을 죽었고 나중엔 게임팩을 던질 번하기도 했다.



또 패스워드도 문제였다. 당시 록맨은 게임 저장방식이 아닌 패스워드 입력방식이었다. 스테이지를 깼을 때나 죽었을 때 패스워드를 보여주는데 이것이 상당히 복잡했다. 나는 도대체 이것을 어떻게 적어 놔야 할지도 걱정이었다. 지금처럼 핸드폰이 있어 사진을 찍을 수도 없었다. 그래서 록맨을 할 땐 항상 공책과 연필을 준비해놓고 스테이지를 깼을 때 마다 공책에 적어놨었는데 이를 보고는 어머니께선 “공부를 그렇게 해봐라!”하며 핀잔을 주시고는 했다. 


게임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우리나라에서 너무 티내며 게임하는 게 볼썽사나운데 좀 더 쉽게 패스워드를 만들었다면 그나마 눈치는 덜 받았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8비트 게임 속에서 진주를 발견하듯이 록맨은 빛나는 역작이었고 재미와 몰입도가 높은 게임이었다. 그 후 슈퍼패미콤, 플레이스테이션 등등 고사양 게임기에서 록맨이 나올 때마다 나는 소프트웨어를 구입해 플레이하고는 했는데 단 한 번도 나를 실망시킨 적은 없었다.


written by 선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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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해적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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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ine(1996)]


"아버지는 없지만, 난 살아있어. 세월은 가고 절대 영원한 건 없지. 하지만 중요한 건 인생은 멈춰 있지 않다는 거야. 포기하지 말고 결국 살아가야 해. 모든 순간에서 이유를 찾아야 해."


현존하는 천재 피아니스트 데이빗 헬프갓의 일대기를 그린 명화, Shine의 마지막 명대사다. 아내 길리언의 도움으로 중년의 나이에 피아니스트로서의 인생을 되찾은 데이빗은 성공적인 콘서트 데뷔 후 고향에 잠든 아버지 피터 헬프갓의 무덤을 찾아간다. 수많은 고통과 시련의 과정을 거쳐 독보적인 피아니스트 한 사람으로 재기하기까지, 그의 혹독하고 아름다운 삶에 대해 이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너무나도 지독하리만큼 '아빠와 아들'의 애증스러운 관계의 틀에서 이야기를 풀어나아가고 있다. 


영화의 시작부는 8살의 데이빗이 마을에서 열린 어린이 연주대회에 참여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사람들의 박수를 받으며 입장하는 데이빗이 혼잣말로 중얼거린다. "I'm gonna win, gonna win, win, win, win..." 반드시 이겨야 한다는 다짐의 다짐을 머릿속에 각인시키며 차분히 피아노에 앉아 쇼팽의 폴로네이즈를 연주하기 시작한다. 아이들의 형편없는 연주실력에 지쳐 떨어진 심사위원 벤 로덴이 데이빗의 놀라운 연주에 감고 있던 눈을 번쩍뜬다. 뒤이어, 데이빗이 연주하는 피아노의 바닥바퀴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피아노가 앞으로 점점 밀려간다. 연주 중 불상사가 일어난 것이다. 그러나 데이빗은 당황하지 않고 의자에 왼발을 걸어 죽죽 앞으로 끌고 나가면서 연주하더니 나중엔 아예 일어서서 곡을 끝까지 완주해낸다. 사회자가 "완벽해요. 완벽한 연주입니다." 감탄을 하자. 데이빗의 아버지 피터는 자랑스러운 얼굴로 읊조린다. "제 아들입니다. 제 아들."






그러나 데이빗은 그 연주회에서 우승하지 못했다. 집에 돌아와 아빠와 아들은 조용히 체스를 두기 시작한다. 아들이 체스에서 수세에 몰리자 아버지는 체스판을 쾅쾅 내리치며 이야기한다.  


"또 지겠구나 또 지겠어. 항상 이겨야 돼! 이겨야 된다구! 데이빗, 내가 너만한 나이 때였단다. 아주 예쁜 바이올린을 샀단다. 참 아꼈는데 그게 어떻게 된 줄 아니?"

"네, 박살났어요."

"그래! 박살났지!. 데이빗, 넌 운이 매우 좋은 녀석이야. 할아버진 음악을 싫어하셨단다. 넌 아주 운이 좋은 애야. 말해봐."

"전 아주 운이 좋아요."

"그래, 아주 좋아. 이거나 치워라."


아버지 피터는 거실 끝에 조용히 앉아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의 연주를 듣기 시작한다. 데이빗에게 피아노 연주를 가르치는 피터의 마음 한 켠에 자신이 아버지에게 받았던 음악에 대한 냉대와 멸시의 아픔이 깊게 깔려 있음을 서두에서부터 비춰준다. 그날 밤, 데이빗은 새벽에 피아노 앞에 앉아 낮에 들었던 라흐마니노프 피협 3번을 조그마한 손으로 떠듬떠듬 연주한다. 그 소리에 깬 아버지가 나와서는 아들을 자랑스럽게 쳐다본다. "아빠, 저도 이 곡을 칠 수 있을까요?" "물론이지, 언젠간 칠 수 있을거다." 아들을 꼬옥 껴앉는 아버지의 모습. 라흐마니노프의 위대함을 데이빗을 통해 완수해 내겠다는 피터의 보상심리가 짙게 드리워져 있는 장면이다.  


피터는 연주회 당일에 특별상을 주러 집까지 찾아왔던 심사위원 벤 로덴을 떠올린다. "우승이 아니니 패자가 된거죠."라고 일축하여 그를 돌려보내긴 했지만, 데이빗이 라흐마니노프를 연주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실력을 뛰어넘는 교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찾아간 벤 로덴은 데이빗을 따듯하게 맞아준다. 벤은 데이빗의 천재성을 감지하고, 어떤 레슨 비용도 받지 않고 그의 기본기부터 차근차근 완성시켜 나아간다. 피터는 라흐마니노프를 계속 요구했지만 벤은 일언지하에 거절하며 기본기인 모차르트부터 가르친다. 그리고 천재의 탄생. 데이빗은 각종 피아노 대회에서 수도없는 상을 거머쥐며 클래식계의 단연 스타덤에 오르게 된다. 이런 데이빗을 세상이 그냥 놔둘리가 없다. 한 대회에서 미국 장학금 유학의 기회가 찾아오고야 만다. 그러나 데이빗은 여기서 아버지의 강력한 반대라는 난관을 만나게 된다. 피터는 데이빗에게 이야기한다. "미국엔 갈 수 없다. 우린 한 가족이야. 가족은 함께 있어야 돼. 이게 가장 현명한 길이란 걸 안다." 단호한 아버지에 무릎을 꿇을 수 밖에 없었던 데이빗은 큰 시름에 빠지게 된다. 




곧이어 영국 왕립학교 전액 장학금 입학이라는 또 한번의 기회가 찾아온다. 두 번째는 달랐다. 데이빗은 아버지의 혹독한 반대를 뿌리치고 집을 떠난다. 무작정 문을 박차고 나가는 데이빗에게 피터는 소리친다. "지금 나가면 다시는 못돌아 온다. 데이빗, 가지마라 부탁이다." 그 말을 뒤로 한 채 데이빗은 떠났고, 자신을 버렸다고 생각한 피터는 그동안 아들의 수상에 관한 기사 스크랩을 꺼내 모두 불태워 버린다. 


천재에게는 천재를 알아주는 스승이 있다고 했다. 영국 왕립학교에서 새로운 음악의 삶을 연 데이빗은 제 2의 아버지 파크스 교수를 만난다. 만남의 시작은 Franz Liszt의 La Campanella의 연주로 열린다. 피아노 건반을 땅!땅! 누르며 파크스가 외친다.  


"잘봐, 데이빗! 공격적으로 쳐봐! 악마처럼!" 

"줄이 끊어지기라도 하면 어쩌죠?" 

"리스트도 줄을 끊어먹었지." 

"네 맞아요"

"딴 데를 보지 말고 악보에 시선을 고정시켜."




파크스가 데이빗에게 '악마의 연주'를 요구한다. 기본의 단계에서 이제는 한 단계 더 나아가 한 인간의 개성을 폭발적으로 뿜어내는 격상의 단계임을 암시한다. 위대한 스승 파크스의 지도 하에 데이빗은 점점 천재 본연의 기질을 뿜어내기 시작하고, 그는 곧이어 다가올 오디션 연주회의 곡을 결심하게 된다. 그의 아버지 피터가 그렇게도 간절히 원했던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제 3번. 


"라흐마니노프...정말인가? 3번은 불멸의 곡이야. 미치지 않고서야 연주할 수 없네."

"전 충분히 미쳤다고 생각하는데요 선생님, 그렇지 않나요?"




끝없는 노력의 노력, 연습의 연습. 쉬지 않고 반복되는 악보와의 사투, 건반과의 전쟁.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반미친사람의 모습으로 라흐마니노프 곡을 완성해가는 데이빗의 마음 한 켠에는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있었다. 연습하는 피아노 앞에는 아버지와 다정하게 피아노 연습을 하고 있는 신문기사 스크랩이 붙어있다. 데이빗은 이 불멸의 곡을 완주함으로써 아버지를 떠난 죄스러움을 만회하겠다는 의지 하나로 연주회 당일을 맞게 된다. 그리고 파크스는 음악적으로 자신의 대를 계승할 최고의 제자 데이빗에게 말한다. "내일은 없다고 생각하고 연주하게." 스승과 제자가 연주하는 라흐마니노프 곡의 카텐차 부분이 흘러나온다. 이 곡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사람에겐 그야말로 소름 그 자체의 씬이다. 




오디션 연주회에서의 데이빗의 환상적인 손놀림은 이 명작의 하이라이트다. 이 곡은 데이빗 헬프갓이 직접 녹음한 것을 내보낸 것인데, 대단히 특출하다고까진 말할 수 없겠지만 유명 연주가들과 비교했을 때 적어도 내공면에서는 결코 부족함이 없다. 보드랍게 건반을 어루만지며 선율의 능선을 넘어가다가도 급히 꺾어지는 협곡을 만난 것처럼 굽이굽이 쉴새없이 몰아치는 연주로 이 곡이 가지고 있는 악마와 천사의 대비성을 면밀하게 그려낸다. 오케스트라의 화려한 협연으로 타건의 정점을 찍은 데이빗. '브라보', '앵콜'. 사방천지에서 갈채박수가 쏟아진다. 지구 한편에는 아버지 피터가 서 있다. 아들의 완벽한 연주를 듣고 끝내 눈물 한 방울을 떨어뜨린다. 그의 손엔 아들의 어렸을 적 수상메달과 녹음곡이 꼭 쥐어져 있다. 




그러나 데이빗은 연주 직후 심각한 정신분열에 빠져 천재 청년으로서의 꽃을 제대로 피워보지도 못한 채, 정신병원에서 갇혀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파탄의 지경에 이른다. 유아기로의 퇴행. 피아노를 쳐서는 안된다는 의사의 경고에 그는 매일같이 피아노가 있는 쉼터 앞에 가서 차마 들어가진 못하고 그저 하염없이 바라보기만 한다. 하지만 데이빗은 병원의 피아노 재능기부로 온 한 여교사에 의해 발견되어, 곧장 퇴원수속을 밟게 되고 병원 인근의 한적한 마을의 한 집에서 생활하게 된다. 그리고 그의 두 번째 인생의 서막을 알리는 절대절명의 기회가 찾아온다. 


'길잃은 개'로 마을사람들에게 홀대받던 데이빗. 집안의 피아노를 연주할 수 없게 되자, 인근의 피아노가 있는 작은 레스토랑을 찾아간다. 사람들의 멸시어린 눈빛과 비난을 뒤로 하고 피아노 다리에 왼발을 걸고 앉는다. "데이빗, 제발." 만류하는 레스토랑 주인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피아노 전체를 단숨에 훑어내듯 림스키코르사코프의 '왕벌의 비행'을 연주하여 대중을 격렬의 도가니로 몰아넣는다. (이 곡은 데이빗 역을 맡은 레프리 러쉬가 직접 연주하여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 때부터 레스토랑은 데이빗 헬프갓의 명연주를 들으러 오는 관객들로 언제나 만원을 이루게 된다. Liszt의 '탄식'이 흘러나온다. 모두 숨을 죽이고 곡에 빠져있다. 차분히 내려앉는 마지막 건반에 관객은 모두 마음을 내려놓는다.  




한편, 신문기사에서 데이빗의 소식을 접하게 된 피터는 그날 밤 레스토랑을 찾아간다. 수십년만의 아버지와 아들의 재회. 여전히 아버지는 달라지지 않았다. "무슨 일이 있었는 줄 아니? 어떻게 된 줄 알지?" 어린 시절 그 때의 데이빗에게 매일같이 던졌던 그 질문으로 자신과 아들과의 관계를 확인하려 한다. 하지만 아들을 달라졌다. "아뇨, 어떻게 됐어요? 어떻게 됐는지 몰라요." 애써 아버지의 간곡한 질문을 외면한다. 아버지의 아들 데이빗으로서가 아닌, 인간 데이빗으로 살고자 하는 심정이 바로 이 장면에 잘 나타나 있다. 




아버지의 틀을 벗어나 새로운 인생을 꿈꾸고 싶어하는 데이빗. 그에게 혜성같은 여성이 나타났다. 휴가 차 친구의 레스토랑에 놀러온 점성술사 갈리안은 데이빗을 만나게 되고, 그의 순수한 열정과 감성에 푹 빠지고 만다. 짧았던 휴가 동안, 그녀는 그 대신 편지를 써주기도 하고, 데이빗의 라이벌 로저 우드의 연주회에 데이빗을 데려가기도 하고, 바닷가에 그를 데려가서 마음껏 뛰놀게 해주었다. 고심끝에 결국 그녀는 자신의 손가락에 끼어있던 약혼자의 선물반지를 뺀다. 그리고 평생 데이빗의 반려자로 살기로 결심하고, 그의 피아니스트 재기를 알리는 콘서트를 후원한다. 





연주회 마지막 곡은 자신의 스승 파크스와 처음 호흡을 맞췄던 그 곡,  Franz Liszt의 La Campanella로 장식한다. 청년시절 라흐마니노프 피협 3번을 완주했을 때 쏟아졌던 그 갈채의 환호가 다시 터져나온다. 세상을 떠난 아버지는 그 자리에 없었다. 마음의 안식처인 자신의 아내, 오랜 세월을 묵묵히 기다려 준 그의 어머니와 형제들, 자신의 기본기를 닦아준 벤 로덴이 힘찬 박수를 보내주고 있었다. 가족과 스승이 그를 다시 일으켜 주었다. 


"당신 잘못이 아니에요" 


정신질환 후 데이빗이 늘 중얼거리던 말이다. 아버지에게 냉대받은 그 아들 밑에서 자란 아들의 삶은 결코 행복하지 못했다. 아버지, 나아가 자신의 가족을 버리고 떠났다는 죄책감의 반대급부로 인해 데이빗의 뇌 속에는 '나의 잘못이다'라는 명제가 깊게 뿌리박힌 한 인간의 모습이 서 있다. 우리의 삶에서 가족이 차지하는 비중과 그 영향력이라는 것이 얼마나 한 사람의 인생을 좌우하는지 돌아보게 만든다. 그는 거꾸로 '나의 잘못이 아니에요'라는 말을 너무나 듣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피아노를 통해 세상과 소통하고 싶었던 데이빗 헬프갓. 결국 그는 가족과 그의 소중한 지인의 도움으로 새 삶을 얻었다. 


라흐마니노프 제 3번은 아무나 칠 수 있는 곡이 아니다. 이 불멸의 곡이 탄생하기까지 라흐마니노프 역시 작곡 실패에 대한 뼈아픈 기억에서 붉어진 트라우마를 벗어나기 위해 온 힘을 다했다. 결국 그 곡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여전히 감동과 즐거움으로 다가온다. 혹독한 시련을 겪고, 그것의 아픔과 절실함을 곡에 쏟아붓지 못하면 이 곡은 주저앉아 버린다. 모두들 애초에 연주하지 않을 것을 권고한다. 하지만 결국 데이빗은 아버지에 대한 트라우마를 극복했고, 트라우마에서 허우적댔던 지난날의 외로움과 고통, 자아분열의 응어리를 혼신을 다해 연주에 담아냈다.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는 그렇게 만만히 볼 성질의 것이 아니다. 나의 인생 전반에서, 나의 마음 어딘가에서 꿈틀대고 있는 그 무언가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되는 되돌아봄의 시간이 필요할 때다.  


Written by 선장



Posted by 해적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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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누구나 무엇인가에 대해 익숙해진다. 이것은 사람이 학습하고 숙달하는 것에 대한 하나의 증명이기도 하다. 낯선 것을 낯설지 않게 만드는 사람의 기능. 익숙해진다는 것은 그만큼 사람이 사는데 참 편리한 것이다. 


담배를 처음 피기 시작한 무렵, 옷에 밴 담배 냄새에 엄마는 매번 잔소리를 하셨다. 방에 들어오실 때마다 “이놈의 담배 냄새 때문에 니 방엘 못 들어오겠다.”라며 핀잔을 놓으셨다. 그런데 이것도 10년 가까이 되자 그 냄새에 익숙해지셨는지 언젠가부터 잔소리가 멈춰섰다. 나쁜 담배에 엄마가 적응한 것이다. 


어디 담배 뿐 만이랴. 통증도 익숙해진다. 얼마 전 운동을 하다 다친 손목이 계속 시큰하다 싶더니 나중에는 움직일 때마다 통증이 왔다. 손을 딛고 일어 설 때마다 신경이 무척 거슬렸는데 그 때 마다 ‘병원가야지’라는 생각보다 그냥 ‘아프구나, 이러다 말겠지.’하며 내버려뒀다. 아픈 손목에 익숙해지니 그것도 원래부터 아팠던 것처럼 치부해버리고 만다. 아픈 손목에 내 자신을 이해시킨 것이다. 


예전 처음 아이폰4를 샀을 때 금이야 옥이야 상처 날까 케이스를 구매하러 다닌 적이 있다. (당시에는 굉장히 초반이라 케이스가 별로 없었다) 케이스 하나 사러 용산까지 갔는데 케이스 하나에 1~2만원을 넘어 비싼 것은 3~4만원까지 했다. 결국 “무슨 케이스하나에 몇 만원이나 하는거야?” 투덜대며 그냥 빈손으로 돌아왔다. 궁여지책으로 액정 필름을 인터넷으로 구매를 했는데 그것도 무려 2만 4천원을 주고 구매했다. 결제 클릭을 누르는 손이 덜덜 떨렸다. 물론 비싸서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흘러 스마트폰이 대중화되었을 때,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 몇 만원씩이나 하는 케이스를 자연스럽게 사서 아무렇지 않게 착용하고 다니고 있었다. 몇 년이 지나고 보니 ‘케이스는 원래 비싸잖아?’로 생각이 굳어졌다. 높은 가격에 내 자신을 맞춘 것이다. 


최근 TV에서 가수 현아를 본적이 있다. 배를 훤히 드러낸 짧은 티에 짧은 핫팬츠를 입고 흡사 성행위를 연상시키는 춤을 격렬하게 추고 있었다. 지금으로부터 12년 전, 2000년도에 가수 박지윤이 성인식으로 가요프로그램에 나왔을 때 배를 드러내는 옷을 입고 나온 장면이 기억난다. 당시 공영방송에서 배를 노출했다는 이유로 시정조치 명령을 받았고 나중엔 천으로 배를 슬며시 가린 채 ‘씁쓸하게’ 노래를 했다. 하의실종이 대세인 지금에서 생각해보면 그때는 무슨 조선시대였나 싶겠지만 노출에 썩 익숙하지 않던 당시는 그랬다. 노출이 익숙한 지금, 우리는 현아의 몸 털기 춤을 봐도 몸짓에서의 야한 느낌은 받아도 그 옷차림에서 예전과 같이 ‘아니 이런 노출을 하다니 말이나 돼?’하는 생각은 별로 들지 않는다. 격렬해져 가는 매스컴에 내 자신의 눈을 맞춘 것이다. 


근래에 있던 내곡동 사저 문제가 터졌을 때 사회는 충격에 휩싸였다. 사실 대통령의 비리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지만 이렇게 집권 중에 그 비리의 온상이 표면으로 솟아오른 것은 처음이다. 그야말로 충격적이었다. 그러나 당연하다는 듯 ‘물타기’가 시작되었다. 이후 대통령 친인척 비리가 줄줄이 표면에 올라왔을 때 나를 포함한 주변 사람들은 ‘충격 또 충격’이라는 느낌으로 연결되기 보다는 오히려 ‘당연하다’라는 말이 떠올랐다. 최근 검찰비리 역시 비슷하다. ‘떡검이 그렇지 뭐’ 하는 생각 먼저 들었다. 고위 간부층의 악랄한 비리에 내 윤리기준을 맞춘 것이다. 


나영이 사건 이후, 초강력 아동성범죄가 아니면 뉴스에 제대로 잡히지도 않는다. 그 정도로는 이슈거리도 안 된다 싶은가보다. 성범죄 뿐 만일까? 이젠 웬만한 살인사건은 ‘저 죽일놈’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세상이 흉흉하니까’로 체념의 선을 긋고 TV 채널을 돌려 버린다. 한 30명 쯤 죽이면 ‘오, 신기록 갱신!’ 감탄하며 뚫어지게 감상하려나? 미국에 버금가는 초강력 연쇄살인은 아직 대한민국 시민에겐 익숙하지 않으니 말이다.


익숙해진다는 것은 편리한 거다. 뇌의 신경을 천천히 무마시켜 가면서 확실히 단순하게 생각하도록 해준다. 그래서 편안해지기 위해 반사회적, 반인륜적 범죄에도 함께 익숙해져버린다. 정확히 말하면 ‘익숙해져야 한다’는 표현이 맞겠다. 그래야만 온갖 나쁜 것들이 판치는 작금을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written by 선장 & 선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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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해적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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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을 타다] '사'가 '공'을 이기다. 

4호선 당고개행 열차에 중년 남자 넷에 여자 한 분이 지하철에 들어섰다. 족히 50대가 넘어보이는 분들로, 동창모임인지 굉장히 시끌법적하다. 노약자석칸을 모두 점령했다. 껄껄대며 뭐라뭐라 고래고래 큰 소리로 이야기를 주고 받는다. 10대 무개념 청소년 무리처럼 장난식으로 욕을 주고받더니 급기야는 남자 대 남자 시비로 이어진다. 지하철에 스피커를 달아놓은냥 쩌렁쩌렁 울린다. 여자까지 나서서 말리지만 어림도 없다. 불쾌해진 사람들이 하나둘씩 내리고 옆칸으로 옮겨간다.


멱살을 잡고 싸우기 직전, 한 사람이 제대로 약점 잡혔다. 공격자가 친구 체육교사라는 점을 이용, 대중에게 '이놈이 체육교산데 이렇고 있다'며 대외적으로 욕을 한다. 체육교사 친구가 그때서야 흠칫하고 주위를 둘러본다. 이를 부득부득갈지만 몸짓은 좀전같지 않다. 교사는 상대 친구에 대해 사회적 지위로 공격할 건덕지가 없는지 딱히 그에 맞는 대응은 못하고 "으이구, 띠띠자식 너!!!"만 반복비트로 돌린다. 그리고 사람들이 혹여나 자신을 영상이나 사진으로 담고 있는지 예의주시한다.

상대는 '너 이 놈 잘 걸렸다' 쾌재를 부르며 "여러분! 이 체육 교사라는 인간이 자기보고 양아치니까 덤벼보랍니다. 덤벼! 한판뜨자 여기서! 이 띠띠띠야!!! 예라이 이 띠띠띠야! 하하나원참!" 반복비트를 돌린다. 이제는 여유롭게 주머니에 손을 넣고 치려면 쳐보라는 식의 느긋한 제스처를 취해보이며 싱긋 웃기까지 한다.

친구들이 뜯어 말리고 말려 결국 약 올리는 친구를 질질끌고 먼저 하차한다. 교사는 못내 찝찝한 듯 내리지는 못하고 결국 노약자석에 다시 주저앉아 씩씩댄다. 몇 분 가지 않아 서서히 정신을 차린다. 그리고는 일어나서 "죄송합니다 여러분! 실례가 많았습니다!" 큰 목소리로 90도로 허리숙여 사죄의 인사를 한다. 이쪽 저쪽에서 "그러게 죄송할 짓을 왜 해요!", "나이 먹고 왜 저래 쯧쯧...", "아 그냥 내려요!" 볼멘 소리가 터져 나온다. 

어른들 세계의 최대 공격 포인트는 갈등이 생겼을 때 상대의 공적, 사회적 지위를 대중에 노출시켜 전의를 상실케 하는 것이다. 무엇이든 소식이라면 나누어 갖는 한국사회에서는 매우 유효한 전략이다. 단순한 싸움 하나가 일단 SNS에 번지면 입소문으로 이야기에 살이 붙고 붙어 나중에 돌이킬 수 없는 설화가 되어 돌아온다. 그리고 그의 신변과 가족의 안위에 심각한 타격을 준다. 공인인 그는 그게 가장 두려웠던 것이다. 


[지하철에서 내리다] '공'이 '사'를 이기다. 

안국역 지하철에서 인사동 방향으로 나가는 출구길목에 무려 네 명의 거지가 앉아있다. 가장 안쪽의 거지는 할아버지다. 선비처럼 흰 수염을 길게 늘어뜨렸다. 낡은 베낭과 몇 개의 비닐봉지, 여정에 필요한 지팡이도 있다. 통조림 철통 하나를 덩그러니 던져두고 느긋하게 깍지를 끼고 누워 휴식을 취하고 있다. 구걸보다는 노숙에 비중을 뒀다. 


두 번째 거지는 50대가 좀 넘어보이는 중년 남자다. 옷으로 온 바닥을 휘젓고 다녔는지 지하철 바닥과 옷 색깔이 비슷해졌다. 사람이라기보다 조형물 같다. 모자를 벗어 사람들에게 "도와주세요~도와주세요~"를 계속 외친다. 그러나 구호소리가 절실해 보이진 않는다. 대충대충 한다. 쓸쓸하게 사람들이 그 앞을 지나간다. 


세 번째 거지는 할머니다. 상대적으로 바깥에 앉아있어 추울 법도 하다. 두터운 외투에 모자를 꾹 눌러 쓴 채 잠이 들었다. 작고 하얀 그릇 하나만 갖고 나왔다. 동전 500원짜리 한 개, 백 원 짜리 한 개만 덩그러니 들어있다. 


마지막 거지는 비교적 젊어보이는 중년 남자다. 공장에서 입을 법한 엔지니어 작업복을 입고 있다. 원래 직업이 그것인지, 아니면 어디서 주워입었는지는 알 수 없다. 엄동설한의 바깥쪽 계단에 착 엎드려서는 두 손을 정성스레 모아 하늘로 치켜 올렸다. 그러나 그의 손에 올려져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칼바람이 쌩쌩분다. 언제까지 저 자세로 견딜 수 있을지 궁금하다. 


그들 모두 12월 대목을 알고 있고 이곳에 모였다. 그리고 인사동에서 삼청동을 오가는 사람들을 공략해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렇지만 한 길목에 네 명은 너무 많다. 이래서는 사람들에게 호소하기 어렵다. '고객'은 누굴 선택해야 할지 난감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제각기 다른 포즈와 다른 옷을 입고 있어도 대중의 입장에서는 변별력이 느껴지지 않는다. 부랑자건 노숙자건 거지건 사기꾼이건 알길이 없다. 육해공 군인이 휴가 때 모두 군복에 칼 다리미질로 말끔히 다려입고 나와도 대중의 눈에는 그냥 '군인' 두 글자로 통하는 것과 같다.  


결국 사람들은 맨 끝자락에 서서 종을 흔들고 있는 아저씨에게 다가가 공인구호기관의 구세군 함에 지폐를 넣는다. 지금은 불경기다. 두 번 돈을 넣지 않는다. 경쟁이 아니라 공멸이다. 


Written by 선장


Posted by 해적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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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11. 30. 09:02



한적한 일요일 초저녁. 초등학교 동창 녀석 결혼식 다녀온 남자 셋은 헤어지기 아쉬워 당구장에 들어섰다. 당구 한 게임이야 1시간이면 충분하고 다시 길을 나선 세 남자는 번화가 한 커피숍에 들어갔다. 다 큰 사내 셋이 모이면 당연하듯 술자리가 마련되는 것이 상정이겠지만 잔 기울이기엔 이른 시간이요 저녁을 먹자니 아쉬운 시간이었다. 

사내 셋이라 해도 자리가 없어 말 못했지 자리만 있다면 여자들 못지않은 수다다. 이 날 오랜만에 모인 세 남자의 화두는 음식이었다.


: 요즘 장사는 어떠냐? 손님은? 


: 자꾸 나이가 있으신 손님들이 와서 걱정이다. 우리 집 컨셉은 젊은 여성인데 말이야. 연세가 있으신 분들이 와서 이러쿵저러쿵 말이 많아. 보쌈에는 왜 김치가 없냐? 찌개는 너무 달다. 아무래도 어르신들에게 우리 집 음식은 입맛에 안 맞는데 말이야.


: 확실히 너희 가게는 젊은 층 입맛이지. 보쌈만 봐도 쌈보다는 샐러드 형식으로 나오니깐 어른들에게는 안 맞겠지.


: 그러고 보면 요즘 나가도 음식점은 많은데 먹을 만한 곳은 없어. 예전에 여자 친구가 한번 빕스를 가자고 한 적이 있는데 그 많은 음식 중에서 손이 가는 음식이 없는 거야. 그래서 그냥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나왔는데 며칠 뒤에 여자 친구가 빕스를 또 가자고 하는 거야! 그래서 내가 그랬어 “너 혼자 올라가서 먹고 와. 난 밑에 순대국밥 집에서 먹을게. 먹고 이 앞에서 만나자.”라고.


: 크. 그건 좀 심하다!


: 어쩔 수 없는 게 도저히 못 먹겠는데 어떻게 해. 난 스파게티 먹기 시작한지도 얼마 전이야. 확실히 국밥이 최고인거 같아. 하긴 이걸 젊은 애들이 보면 우리더러 늙었다고 하겠지. 입맛도 그렇고.


: 얼마 전에 보니깐 옛날통닭이라고 해서 배달해주는 집이 있더라고. 다 잘라서 나오는 것도 아니고 그냥 통째로 튀겨서 배달해 주더라. 신기했어.


: 옛날이었으면 그냥 거기에 신문지 싸서 줬겠지. 예전에 나 서울 살았을 때 아버지가 퇴근길에 종종 사다주셨어. 다른 것도 없이 튀긴 닭만 신문지에 싸서 가져오셨지. 그 치킨 집이 아직도 있어 이수에 가면. 그리고 이사 와서도 우리 집 바로 옆에서 닭을 튀겼는데 거기도 통째로 주는 식이었어.


: 왜 기억 안나? 그 약국 건너편에 정육점에서 옛날에 닭 튀겨 줬었잖아. 거기가 그렇게 해 줬어. 기억 안 나냐?


: 난 왜 기억이 하나도 안 나냐? 어쨌든 우리가 어릴 적에 먹던 것이 벌써 ‘옛날’이라는 수식어를 붙이게 될 줄이야. 아무튼 이래저래 요즘은 먹거리 풍요시대야. 먹을게 얼마나 많냐? 


: 그래도 먹을 것은 없어. 


: 어릴 때 사실 외식이라는 게 있었냐? 거의 없었지. 해봐야 그냥 나가서 밥 한 끼 먹는 거지.


: 갈비. 돼지 갈비! 아니면 삼겹살. 이거 아니면 없었지. 


: 맞아. 지금처럼 회가 있어 레스토랑이 있어 그냥 외식이면 고기 집이었지. 너네 혹시 갱시기이 아냐? 


: 갱시기가 뭐야?!


: 나는 종종 어렸을 때 집에서 끓여 먹었는데. 갱시기라고 아버지 어렸을 때 드시던 건데 국에 이것저것 나물 넣고 끓인 거야. 그 뭐냐 꿀꿀이 죽 비슷한 건데 우리 집은 종종 끓여 먹고는 했어.


: 혹시 그거 옛날에 배고파 먹던 음식이냐?


: 그렇지. 지금에서야 그냥 겨울철 별미지만 아버지 어릴 적만 해도 배고파서 먹을 거 없어 먹었던 음식이지. 근데 지금 먹어도 맛있어.


: 그런 음식이 한둘이냐. 옛날에 보리밥도 보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먹은 음식이었지 지금처럼 건강 챙기려 먹는 음식 아니잖아. 잡곡밥도 마찬가지고.


: 우리 엄마 어릴 적만 해도 겨울이면 먹을 게 없어서 산에게서 이것저것 캐 와서 먹고는 했데. 밥 할 때 가운데는 쌀밥 주변은 보리를 넣어서 했데. 그리고 할아버지는 쌀밥으로 드리고 나머지 삼촌이나 이모들은 가운데 조금만 쌀밥을 넣어주고 주변은 보리밥으로 채워주고. 그래서 밥그릇 보리를 조금 뒤적뒤적하면 그 안에 쌀밥이 조금 나오곤 했다나.


: 하긴 우리도 보릿고개 세대는 아닌데 요즘 애들은 어떻겠어. 우리보다 더 심하겠지. 


: 그러니깐 고도 비만이 판치는 거야. 음식도 다 기름진 것만 있으니깐.


: 그건 먹는 것도 그렇지만 요즘 애들이 놀이 문화도 문제지. 우리는 아침 먹고 나가 구슬치기하고, 점심 먹고 축구하고, 저녁 먹고 망까기, 팽이치기하고 그러니 살이 찔 세가 없지. 항상 몸으로 뛰어 노니깐. 요즘 애들은 맨날 붙어서 게임만 하니깐 더 그럴 거야.


: 근데 아마도 우리 먹는 거 보면서 어른들도 먹을 게 없다고 그랬을 거야. 그래봐야 햄버거 피자가 고작이었지만.


: 우리에겐 그게 최고였으니깐. 우리처럼 어른들도 다방에 모여서 그랬겠지. “요즘 애들은 무슨 맛에 그걸 먹는지 모르겠다. 니글니글 빵조가리 뭐가 좋다고 그리 먹나. 그러니깐 살이 찌지”라고 말이야.


: 맞다. 아마도 그랬겠지. 아, 먹는 거 이야기 하니깐 슬슬 배고프다. 가자 매장으로. 불고기나 해먹자.



추억이 담긴 갱시기는 맛있다. 우리는 오늘도 추억을 먹고 살아간다. 그래서 갱시기도 옛날통닭도 잡곡밥도 맛있다. 추억이어서.




[갱죽]

지역 : 충북, 경북

이칭 : 갱시기, 갱싱이죽(충북), 콩나물갱죽(경북), 갱이죽(제주도)


밥과 김치 등을 넣고 끓여 죽처럼 만든 음식이다. 찬밥에 고구마, 감자, 기침, 콩나물, 물을 붓고 끓이다가 풋고추, 붉은 고추, 대파를 넣어 한소끔 더 끓이며, 된장을 푼 물이나 멸치장국국물을 이용하고 수제비를 떠 넣기도 한다. 갱죽은 갱시기라도 불리며, 충북에서는 갱싱이죽, 경북에서는 콩나물갱죽이라고도 한다.  - 네이버 백과사전 -


written by 선의


Posted by 해적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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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11. 30. 01:29



  몇 시쯤 되었을까. 해가 뜨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지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다. 파도소리가 멀리서부터 밀려온다. 누구의 명령으로 육지에 내렸던 말인가. 당장 눈앞에는 먼지자국이 가득히 쌓인 허름한 벽과 바람 치는 소리에 덜컹대는 나무 창틀이 들어온다. 하늘엔 기러기 떼가 줄지어 날아가고 있다. 도무지 어딘지 가늠할 수 없다. 뒷골이 뻑적지근하다. 귀도 먹먹하다. 해머로 뒤통수를 실컷 두드려 맞은 기분이다. 아마 극심한 두통에 시달리다 실신하듯 잠든 것 같다. 몸을 일으켜 보려 했으나 머리를 드는 순간 포기한다. 아직 두통기가 뇌를 지배하고 있다. 


“그냥 누워 있어요.”


문을 열고 레나스가 들어온다. 평소와 다름없이 잘 다려진 검은 가운을 입고, 머리에는 검은 두건을 깔끔하게 접어 올렸다. 어둑어둑한 곳에서 제법 큰 검은 남자를 마주하고 있자니, 이 놈이 의사인지 저승사자인지 쉽게 구분되지 않는다. 의자를 끌고 와 앉더니 이내 손과 발에 뜨거운 수건을 감아준다. 


“며칠이나 누워 있었지?”

“이틀, 아니 오늘로 3일째군요. 좋은 아침입니다.”

“왜...이렇게...?”

“선장이 직접 느껴지지 않아요? 두통입니다. 선장의 가장 큰 적이죠.”

“그렇군. 다른 사람들은?”

“멀쩡해요. 요리사는 과일 씻고 있고, 사샤는 마을에 이것저것 사러 내려갔어요. 이번 전투에서 얻은 수확이 많지 않아요. 다들 사기가 떨어져 있어요. 더구나 선장까지...”

“여기는...?”

“세빌리아 인근 마을이에요. 기억 안 나죠?”

“글쎄...알제리항에서 나와서...이스탄불 함대 1척과 붙었고, 배의 전리품을 확인하는 중이었는데...거기까지야.”

“거기부터 선장의 두통이 심해졌죠. 늘 달고 다니는 두통이라고 해도 이렇게 심해지는 경우는 극히 드물죠. 나중엔 헛소리도 하더군요. 어쩔 수 없이 긴급 상륙을 명령했어요. 당분간 선장은 쉬어야 돼요. 가짜로 쉬는 거 말고.”

“가짜든 진짜든 쉴 틈이 어디 있나.”

“그 생각에서부터 두통을 차곡차곡 쌓아온 거에요. 뇌가 일방적인 명령을 내리고서 한 방에 보낸 거죠. 생각을 정지시켜 버린 겁니다.”

“뭐 그렇다고 해도...다들 기분이 좋지 않겠군.”

“기분들이야 각자 알아서 챙길 거에요. 그런 건 의사인 나로서도 충분히 챙길 수 있으니 지금은 신경 꺼요. 선장이 죽으면 다 무슨 소용이죠? ㅋㅋㅋ 약초를 달였어요. 이 물부터 마셔요.”


  물이 뜨겁고, 쓰다. 마신지 10분 정도 지나니 차가웠던 손과 발에 점점 열기가 돈다. 꽉 막혔던 뒷머리와 위장이 서서히 풀려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가파른 숨이 점점 고르게 흐른다. 두통에 못 이겨 채 뜨지 못했던 왼쪽 눈꺼풀이 서서히 문을 연다. 살 것 같다. 


“이 때가 가장 기분이 좋아.”

“어떤 때요?”

“고통에서 회복할 때, 몸에서 열이 풀리고, 손끝과 발끝에 촉감이 뱅글뱅글 돌 때가 가장 몸의 오감이 잘 느껴져.”

“두통의 맛을 제대로 보여줄까요?”

“너도 사샤 닮아가는 거냐? 아무튼...괜한 지병에 모두에게 피해만 줬군.”

“선장의 그 피해의식에서부터 벗어나는 게 피해를 주지 않는 겁니다.”

“피해의식?”

“두통의 원인이 뭔지 아세요?”

“여러 가지가 있겠지. 난 지병이니 유전이라고 할 밖에.”

“두통이 났다는 건 지나치게 신경을 썼다는 거죠. 그런 면에서 두통은 게으른 사람들에게는 절대 나타나지 않는 증상입니다.”

“성실한 나를 칭찬해줘야겠군.”

“그런 뜻이 아니구요. 두통을 겪는 사람들의 특징은 두 가지로 압축됩니다. 정리정돈과 편식입니다.”

“내가 평소에 음식을 가려서 먹었나?”

“내가 말한 편식은 음식만 해당되는 게 아니에요. 사람 편식, 기호 편식, 술 편식, 등등.”

“그래서?”

“선장 같은 사람들은 순결주의자란 말입니다. 사람을 사귀고 꾸리는 데서 잘 나타나죠. 체력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니에요. 선장은 더러운 것, 특히 본인이 생각하는 개 같은 인간들을 보았을 때 1차적으로 충격을 받고, 그것을 정리하거나 제거하지 못했을 때 2차 충격의 잔해가 남죠. 그리고 그와 같은 인간들의 행동범위에 선장의 행동이 겹쳤다고 판단했을 때 가장 큰 3차의 충격으로 이어지죠. 3차 충격에 휩싸이고 이것이 해소되지 않은 채 응어리로 남으면 바로 이런 두통의 결과로 이어지는 것이구요. 제가 지켜 본 관찰결과입니다.”

“순결주의자라는 소리는 처음 듣는군.”

“너무 그렇게 순결, 고결을 고집하지 말아요. 물론 그 생각이 저를 배에 타게 만든 이유이기도 합니다만. 그렇다고 해서 그 생각을 늘 유지하고 살면 본인의 삶이 힘들어져요. 너무 무언가를 정리하려고도, 그렇다고 너무 사람을 가리고 챙길 필요도 없어요. 기본에만 충실하면 그 뿐입니다. 기본을 완전으로 가져가려고 하지 마시구요. 완전이라는 것은 단어 상에만 있지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단어라구요.”

“이젠 심리테스트도 하는군.”

“선장이 생각한 완전의 범주에서 놓쳤다고 판단되는 것들, 놓칠 수 있지 않을까라고 걱정하는 것들, 다 주우고 정돈하려 하지 마세요. 여기 선장 말고도 여러 사람들이 있습니다. 나눠 갖고, 같이 가는 거에요. 이렇게 누워 있어도 되는 거라구요. 면도도 당분간 하지 말아요. 사샤처럼 턱수염도 더부룩하게 내버려둬야 얼굴도 숨을 쉽니다.”


  잠시 떠든 사이, 창가에 해가 걸렸다. 따스한 햇볓이 내려앉으니 한결 낫다. 요리사가 오더니 레모네이드를 건네주고 간다. 레나스가 몸을 부축해 일으키더니 컵을 입에 물려준다. 새콤한 물이 들어오니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난다. 사샤가 왔나보다. 마을에서 무슨 요리를 봤는데 그걸 해달라고 요리사에게 계속 조르고 있는 것 같다. 그렇다. 알아서 조르고, 알아서 만들고, 알아서들 잘 하고 있다. 나는 회복하는 데에 주력하면 되겠다. 조만간 레나스에게 배의 역사에 대해 설명해 주지 않으면 안되겠다. 다시 이불을 깊게 감고, 눈을 덮는다. 


Written/Photo by 선장

Photo: 인천역 카페 팟알


Posted by 해적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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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11. 27. 01:03



우여곡절 끝에 영화 ‘26년’이 곧 개봉을 앞뒀다. 26년은 강풀의 웹툰인 ‘26년’을 영화한 작품이다. 영화 26년은 1980년 광주 민주화운동을 소재로 한 만큼 제작이 쉽지 않았다. 

특히 이 영화는 영화제작에 어려움이 더 많았다. 영화제작을 앞두고 갑자기 투자자들이 등을 돌리는 통에 영화가 무산될 위기였다. 하지만 26년은 시민들의 자발적인 투자인 제작두레를 통해 스크린 상영을 앞두고 있다.


5.18이라는 소재로 처음 영화가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2007년에 개봉한 ‘화려한 휴가’ 역시 광주 민주화운동을 다룬 영화였다. 하지만 아쉽게도 화려한 휴가는 ‘그 사람’에 대한 언지는 없었다.


80년대 생인 나에게 5.18은 한줄 요약이 가능하다. “신군부 세력은 병력을 동원하여 군권을 차지하였고 5.18 민주화 운동을 비롯한 국민들의 민주화 요구를 무력으로 진압한 뒤 통치권을 장악하였다.” 이것이 80년대 생인 내가 책으로 배운 5.18이고 학교에서 배운 광주 민주화운동이다. 정확힌 학교에서 가르친 내용은 이것뿐이다.

내가 처음 5.18을 알게 된 건 사실 굉장히 어린 나이었다. 아마 10살 때였나? 당시 우리 집은 마당이 딸린 집 한 켠에 세 들어 살고 있었다. 주인집의 막내아들이 나와 나이 때가 비슷해 종종 주인집에 가서 놀고는 했는데 주인집답게 우리 집엔 없는 비디오가 있었다. 


어느 날 여느 때와 다름없이 주인집 막내와 나는 방에서 놀고 있는데 공 비디오테이프가 하나 있어 별 생각 없이 비디오를 틀었다. 지금 나이에서 그런 테이프를 발견했다면 뭐 좋은(?)게 들어있을 수 있다는 기대감으로 열어 봤겠지만 그런 것도 모르던 시절이라 단순 호기심이었다. 그 테이프엔 광주 민주화 운동의 영상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탱크 옆으로 지나가는 시민에게 총격을 가하는 군인, 이미 군인에게 맞아 피 흘리는 시민, 적붉은색으로 얼룩진 하얀 천을 덥고 누워 있는 사람들, 인정사정없이 군화발로 찍어 내리는 계엄군들. 그 테이프엔 이런 장면들이 여과 없이 담겨 있었다.


보는 내내 무서웠다. 어릴 적 가장 무섭게 봤던 나이트메어보다 더 무서웠다. 어린나이라도 나이트메어는 허구요 진실이 아니란 걸 알았지만 지금 보는 건 현실이고 지금이라는 게 무서웠다. 나에겐 민주주의를 외치는 것보다 총 칼에 찔려 쓰러지는 장면만 보였고 이런 게 있을 수 있나 싶었다. 불법인 것처럼 가지고 있으면, 알고 있으면 안 될 거 같았고 당시는 그랬을지도 모른다. 이것이 내가 처음 접했던 광주 민주화 항쟁이었다.



테이프는 끝까지 다 보지는 못했다. 아마 어린나이에 주구장창 그런 장면만 나오니 재미가 없었던 거 같았다. 그 후 잊고 지냈다. 이후 나도 세상도 5.18은 그냥 보통 날이었다. 

아무것도 아닌 날. 그냥 예전 광주에서 민주화 운동이 일어났던 날. 그렇게 사회는 치부해왔다. 오죽했으면 어릴 적 노태우 전 대통령이 굉장히 훌륭한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고 ‘그 사람’은 코미디의 대상이었을 뿐이었다. 항상 그렇게만 떠들었기 때문이다.


학교에선 “수능에서 근현대사는 중요하지 않다”라며 가르친 적이 없다. 특히 5.18에 대해선 더욱 그랬다. 예전엔 그래야 했고, 지금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수능에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 현실도 예전과 별반 다를 바 없다. 


하지만 언젠가는 다시 역사를 바로 세울 수 있는 기회가 오리라 생각된다. 그래야만 우리는 억울하게 죽어간 5월의 영령들에게 부끄럽지 않을 수 있다. 그리고 그 시절이 올 때까지 반드시 기억하고 있어야한다. 바로 세우고 단죄시키기 위해서 말이다.


written by 선의


Posted by 해적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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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11. 24. 01:02



두 남자의 커피를 마신 기억은 군대를 기점으로 나뉜다.


A(31세): 글쎄, 군대 전에 뭘 마셨는지 기억이 전혀 안나요. 그냥 믹스커피 정도는 마신것 같기도 하고. 그만큼 별 생각이 없던 거겠죠.


B(30세): 대학동기 두 사람과 어딜 놀러가던 중 동료 한 사람이 마트에서 음료수를 사겠다며 뭘 마실지를 물었어요. 그 때 두 사람은 캔커피를 택했고, 저는 베지밀을 선택했죠. 전 군대가기 전까지 한번도 안 마셔본 것 같아요.


두 남자의 커피와의 인연은 군대에서부터 시작된다.


A: 특수한 보직이었죠. 적기를 레이더로 감시하고 보고하는 뭐 그런 보직이라. 새벽12시부터 아침 7시반까지 근무하는 일이 잦았죠. 그 때 마침 에스프레소 정도를 마실만한 육군호랑이가 그려진 컵을 누군가가 줬죠. 아마도 간부였던 것 같은데. 그리고 그 땐 에스프레소가 뭔지도 몰랐고. 일단 그 컵에 믹스커피를 진하게 타서 마시면 효과가 있을 것 같아서 마셔봤어요. 실제로 대단하더라구요. 적어도 12시부터 3시반까지는 말똥말똥하게 버틸 수 있게 해줘요. 단 한잔으로 말이죠. 전 사실 카페인의 효과 때문에 마셨어요. 커피라기보다는 각성제의 기능에 더 끌렸다고 해야 하나요?


B: 그 때 처음 커피를 마셨죠. 근데 정확히 말하면 커피를 마신 건 사실 아니에요. 우유에 달달한 무언가를 타서 마신다는 그 자체가 저한텐 더 중요했죠. 그렇게 커피우유는 마셨어도 믹스커피만 즐겨 마셨던 것 같진 않아요.


믹스커피에서 벗어나 프렌차이즈의 커피를 마시게된 배경도 들어보자.


A: 매일 같이 한잔한잔 새벽마다 마셔대니 부사수가 커피 이야기를 해주더군요. "요새 밖에서는 에스프레소 전문점에서 아메리카노 이런 커피들이 유행하기 시작했으니까 휴가 나가시면 꼭 드시고 오십시요." 이렇게 말이죠. 하 그런데 왠걸요. 에스프레소, 아메리카노 이 두 개만 기억하고 있던 저는 그만 일병 휴가를 나가서 에스프레소를 시켜버렸어요ㅠㅠ 사이즈도 작은 것이 왠지 모르게 군대에서 먹던 것과 비슷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들더군요. 마셨는데 엄청나게 쓰더군요. 물릴수도 없고, 쪽팔리기도 하고 그냥 앉아서 먼 창밖을 보면서 최대한 우아하게 마셔보려고 노력했어요. 아메리카노 마셔볼 생각은 하지도 않고 그냥 부대를 복귀해버렸어요. 그 때가 2004년 4월 정도가 되겠네요.


B: 딱히 이유는 기억도 안나고 모르겠어요. 그냥 제대하고 복학하니 후배들이 우르르 커피 전문점 가길래 따라가서 마셨고. 아, 그 기억이 나요. 후배 한명과 커피숍을 가서 무얼 먹겠냐고 물어서 달달한 것 없냐 물었더니 캬라멜 마키아또를 시켜주더군요. 그게 아마 처음으로 커피숍에서 커피를 마시게 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네요.


A: 전 달달한 맛보다는 카페인이 얼마나 쎈가를 더 따졌던 것 같아요. 그래서 진한 아메리카노 이런 것들을 제대 후부터 즐겨마셨던 것 같아요. 근데 자꾸자꾸 마셔보고 여기저기 가보니 똑같은 아메리카노라도 맛이 다른 것도 알겠더라구요. 그때부터 진짜 커피맛을 따지기 시작하고 호불호가 세졌어요. 요새 그 M사가 최근에 자기네들 커피랑 스/커/할과 같은 회사의 커피를 비교해서 맛의 차이 없다라고 말하는데 그건 쌩뻥이에요. 적어도 제 입장에선 말이죠. 분명히 커피 자체를 즐겨마시지 않는 샘플을 데려다가 시음을 시킨거에요. 사람들이 왜 스 회사에서 할인행사한다하면 길게 줄을 서서 끝까지 기다려 마시고 가는 이유가 뭔지. 그건 커피 좋아하는 사람들만 알죠.


Written by 선장

Painted by 사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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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해적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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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11. 21. 04:43



뭐랄까. 차가운 바람이 볼이 아리도록 불어도 겨울은 따뜻하다고 말한 것 같다. 하지만 겨울은 따뜻하지 않다. 춥고 쓸쓸함의 대명사다. 그래도 나에게 겨울은 따뜻했다. 정확히는 나를 따뜻하게 했던 것들이 많았다. 호빵도 그중 하나다. 나를 따뜻하게 하는 것. 

겨울을 가장 먼저 알리는 것이 호빵이다. 내 입에서 호호 입김 나올 때쯤 슈퍼든 편의점이든 모락모락 피어나는 호빵이 겨울을 알린다. 


거리 걷다 호빵 연기 피어나면 ‘이제 겨울이 오나’한다. 그리고 그 즈음이면 어머니가 장보며 호빵 한 봉지를 사오시고는 한다. 그러면 확실한 거다. 겨울이 왔다고.

사실 호빵은 찐빵이다. 맛도 비슷하고 만드는 형태도 비슷하다. 달달한 단팥을 넣은 동글동글한 흰 빵에 넣은 모양이 딱 찐빵이다. 단지 사회가 발달함에 따라 가정에서 쉽게 만들어 먹을 수 있는 찐빵이 필요했고 삼립의 창립자인 허창성이 일본을 방문해 만든 것이 호빵이다. 

호빵이라는 이름 자체도 예쁘다. ‘뜨거워서 호호 분다’, ‘온 가족이 웃으며 함께 먹는다’는 의미란다. 어쩌면 호빵의 사회적 탄생이 찐빵의 매출을 떨어지게 만들었는지 모르겠지만 찐빵세대가 아닌 나에겐 새로운 추억이요 트렌드였다. 또는 찐빵 세대인 어머니와의 대화를 이어줄 작은 통로였는지도 모르겠다. 


내 나이쯤 된 사람이라면 호빵하면 다른 것 보다 당시 TV에서 울려 퍼지던 CM송을 기억할 것이다. 가수 김도향씨가 부른 노래인데 “찬바람이 싸늘하게 두 뺨을 스치면…”하는 노래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이 노래가 TV에서 나오곤 했는데 요즘엔 통 못들은 거 같다. 한간에는 이 노래 때문에 매출이 늘었다고 하니 호빵하면 생각나는 것이 당연한지도 모르겠다.

언제였을까? 내방 없이 단칸방에 세 식구 함께 살던 시절 이유는 기억 없지만 아버지께 굉장히 혼난 적이 있다. 책도 날라 오고 매도 오가던 사이 나는 나름 살겠다는 심정으로 옷도 갖춰 입지 못하고 슬리퍼만 신고 도망 나온 적이 있다. 한 겨울이니 추운 건 당연했다. 흔한 잠바대기 하나 못 걸쳐으니 말이다. 


도망 나와 갈 곳도 딱히 없어 동네 이곳저곳 돌아다녔는데 너무나 추웠다. 손발은 이미 꽁꽁 얼어 손발이 떨어져 나갈 것 같았고 전쟁 난민만큼이나 처량하고 불쌍했다. 추위피해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보니 주머니에 동전 몇 개 있는 것이 천만 다행이었다. 정확힌 기억 없지만 아마도 삼백원 정도였던 거 같은데 삼백원으로 할 수 있는 건 세상 어디에도 없었다. 

친구네 골목 어귀를 돌 때 쯤이었을까? 구석에 있는 구멍가게에서 피어나는 호빵 연기에 귀신 홀린 것 마냥 동전을 털어 호빵을 샀다. 그리고 집으로 다시 돌아가 장독대에 쪼그리고 앉아 호빵의 온기로 손을 녹였다. 호빵을 샀지만 먹을 수 없었다. 먹으면 그 온기를 느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혹여 아버지께 들킬까 장독대 뒤에 숨어서 호빵의 온기로 추위를 잊기 위해 양손으로 꼬옥 붙잡고 있었다. 조금 지나 어머니 퇴근길에 숨어 있는 나를 보고 집에 데리고 들어갈 때 그때서야 나는 호빵을 먹을 수 있었다. 그 호빵은 이미 나에게 모든 온기를 전해주고 난 뒤라 차갑기 그지없었지만 말이다.


매번 생각난다. 호빵 연기 피어날 때면 그 시절 도망쳐 나와 샀던 따뜻했던 호빵을 말이다. 그때 그 호빵은 나에게 세상에서 제일 따뜻한 것이었다. 세상 어디에도 없는 가장 따뜻한 것. 

지금도 겨울이 따뜻하다고 느끼는 이유도 겨울에 호빵이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춥지만 따뜻한 호빵. 그래서 호빵의 따뜻한 기억에 내 겨울은 올해도 따뜻하다.


written by 선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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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해적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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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해일지 - 그림으로 말하는 남자.]


요리사가 즉석에서 잡은 물고기를 내동댕이치더니 곧바로 슥슥 회를 떠버린다. 멍때리던 선원들이 고기를 보니 저글링처럼 달려든다. 물고기 크기가 엄청크다. 허리만큼 오는 정도의 길이에 늘씬하게 빠진 몸매. 프리즘이 빛나는 비늘이 온 몸을 덮고 있는 녀석인데, 힘이 그야말로 장사다. 펄떡펄떡 뛰더니 꼬리로 요리사 엉덩이를 힘껏 후려친다. 요리사도 지지 않고 물고기의 몸뚱이를 힘껏 내동댕이친다. 저편으로 떨어져 나간다. 물고기 이름이 뭐냐고 물어봤더니 자기도 모른다고 그냥 먹으랜다. 적어도 독은 없으니까 맘 편히 먹으라는 말에 삽시간에 몸뚱이 살점이 사람들의 입으로 흡수된다. 자연은 돌고 도는 법. 초고추장이 모자르다. 나가사키산 와사비가 물고기의 눈가에 점점이 번져 있다. 이 녀석의 눈은 아직도 껌뻑대고 있다. 눈물을 흘리는 것 같다. "맛 있냐?" 최후의 한 마디를 던지고 끝내 눈을 감지 못한 채 저 세상으로 떠났다. 마음씨 고운 사샤가 녀석의 눈을 가만히 감겨준다. 뭐라고 중얼중얼 기도를 한다. 종교도 없으면서. 그냥 곱게 먹지 않는다. 


"왜 살려줬어요?"

"뭐?"

"왜 살려줬냐구요?"

"누구?"

"그 때 있잖아요. 그 남자, 멀쩡하게 생긴 허연 사람."

"아."


괜한 질문으로 또 시비를 건다. 딱히 할 말도 없거니와 뭔가 대응하기도 꺼림직한 마음에 입을 잠근다. 질문을 한 건 맞는건지, 그새 손으로 회를 집어 입 안에 가득 넣는다. 또 지껄인다. 


"선장은 그런 사람 싫어하잖아요. 왜 살려줬어요?"

"그러게, 나보고 치료는 또 왜 해주라고 했지? 우리 약품도 별로 없어요. 다음 번 육지 때 사야돼요."


의사 레나스도 거든다. 파도가 잔잔해지니 입도 살아났다. 몸이 안좋은건지, 먹는게 불편해서인지 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땀을 비오듯이 흘리면서도 쩝쩝 잘 먹는다. 몸져 누워있던 시체가 살아나 활동을 하니 보기에도 좋다. 좀비 같다. 웃긴 마음에 갑자기 대답을 해주고 싶다. 


"아, 그 사람. 재밌더라구."

"뭐가?"

"그냥, 말하는 게 꽤 흥미로웠어. 아니지, 말은 별로 안했지. 그 사람 직업이 교사더라구."

"교산데 왜 이런데 잡혀오고 그러지? 교사 구라아냐?"

"글쎄, 자세한 건 모르겠는데 고향에 갈 모양이었던 것 같아. 배를 갈아타고 가는 길에 우리한테 걸린 것 같아."

"그래서 뭐가 잼있었어요?"


요리사도 묻는다. 손이고 몸이고 온통 시뻘건 피투성이다. 야생적인 인간. 


"먹으면서도 잘도 묻는구만. 뭐 딱히 집어 말하면...음..."

"뭔데요 빨리 말해요!!!"


셋이서 일제히 달려든다. 


"뭐야 이 분위기는;;; 그래, 그 놈. 대화를 그림으로 하더라고."

"그림??? 무슨 그림???"


사샤의 눈이 빛난다. 왜 나에게 진작 말하지 않았냐고 묻는 것 같다. 


"아, 보통 잡혀들어오는 놈들은 눈도 제대로 못마주치고 늘 땅만 보잖아? 근데 그 놈은 아니었어. 나를 편하게...지긋이...바라보더라구."

"형이랑 잘해보고 싶었던 거에요."

"닥쳐. 입에 총알 박아 줄까? 그런 게 아니고. 뭔가...뭔가 모르게 별종이었어. 열의 아홉은, 아니지. 열의 열은 다들 살고 싶어 안달을 내잖아? 돈을 주겠다는 둥, 육지에 누구를 안다는 둥, 별 개소리 다 하고, 가족이 아프다느니 누가 어쨌다느니 착 엎드려서 다들 말이 많다구. 나한테 얘기해야 뭐 통하겠어? 근데 그 놈은 달랐어. 눈이 뭔가가..."

"눈깔이?"

"어, 눈깔이 굉장히 편안해 보였어. 넌 파랗잖아? 그 인간은 붉갈색이었는데, 눈이 말해주더라구."
"뭘?"

"억울할 것도 없고, 무서울 것도 없다."

"어떻게 알아요?"


속주머니에 넣고 있었던 그 교사의 그림을 보여줬다. 그가 남긴 작은 노트. 소금기에 그새 눅눅해져 버렸다. 그가 그린 집이며, 사람, 동물, 나무, 편지지, 궁전 등등 단 3일만에 제법 여러 가지를 그리고 떠났다. 


"스페니쉬 계열의 사람이었던 것 같아. 요 쏘이 뭐 어쩌고 하는 거 보니까. 가까이 가서 얼굴을 쳐다봤더니 웃더라고."

"웃어요? 선장을 보고?"

"깔깔 웃는 거 말고, 그냥 희미하게 웃더라구. 근데 어쩐지 정겨운 느낌이 들더라구. 그래서 손을 풀어줬더니 주머니에서 노트랑 펜을 꺼내던데?"

"그냥 보기엔...뭐 별거 없는데?"


사샤가 기분이 나빠진 모양이다. 그림의 실력도 형편 없거니와 뭔가 자신과 비교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아서인지 눈썹 가운데에 한자로 '내 천'자가 뚜렷하게 나타난다. 


"그림이 잘났다는 건 아니고 ㅋㅋ.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걸 진작에 알고는 그냥 그림을 그리더라고. 근데 신기한 건 그림 하나 가지고도 이 놈이 어디 사람이고 가족이 누구고, 누구를 가르쳤는지 다 알겠는거야."

"그래서, 어딜 가던 길이었대요?"

"리스본, 아테네에서 10년 정도 무슨 귀족 아들을 가르쳤던 모양이야."

"그걸 그림을 보고 알았어요?"

"그러니까 신기하단 거야."

"그래서???"


물고기는 이미 끝장이 나 있는 상태였다. 요리사가 일어나더니 포도주를 가져온다. 다들 목이 탔는지 벌컥벌컥 마셔댄다. 다들 얘기에 관심이 많다. 


"아...그래서. 리스본이 지 고향인데, 결혼하러 가는 길이었대."

"그래서 놔준거에요?"

"아니, 우낀 건 결혼한 사람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대. 단 한번도."

"........"

"우연한 기회에 편지를 주고 받았는데, 그게 인연이 되어서 거진 8년 동안 편지만 주고 받았다는거야."

"희한한 사람도 있네요."

"그 편지 하나를 보여줬어. 근데 편지지에 별 얘기도 없어. 글씨 몇 자 없는거야. 그게 뭘 의미하는 줄 알아?"

"이미 서로 마음이 통했다는 거잖아요."

"그래, 나중엔 둘이서 글을 쓰지 않고 그림을 그려서 마음을 전했다 그러더라고. 정말 별 게 없어. 그냥 단순한 드로잉이야. 그 녀석이 산 새 책장. 여자가 가꾸는 화분, 화장대. 그냥 일상의 이런저런 것들을 간단하게 그려서 서로 그림으로 대화를 나누더라고. 그 그림을 보여주는데...그 사람의 얼굴 표정을 너희들이 봤어야 해."

"나 배에서 내릴까요?"

"어디 헤엄쳐서 가봐. 어쨌든, 한번도 보지 않은 사람을 편지로...더군다나 그림으로 소통하는 그 방법이 꽤 흥미롭더라고. 그게 나한테도 먹혔으니 그 놈은 목숨을 건진거고."

"역시, 남자는 한방이 필요하군요."

"여기 다 한방씩은 갖고 탔잖아?"

"죽빵 한 방 드릴까요?"

"먹었으면 치우고 가서 닥치고 잠이나 자."


날이 슬슬 어둑어둑 저물어 간다. 다 먹고 남은 물고기의 잔해를 햇볕에 널어놨더니 갈매기들이 훨훨 날아와 조근조근 쪼아 먹는다. 그래, 다같이 사는 세상. 너희도 그림같이 아름답구나. 

 Written by 선장

Painted by 사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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