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10.31 03:30




어릴 적 내가 먹어서는 안 되는 음식이 딱 두 가지가 있었다. 육회 같은 생고기류가 하나였고 또 하나는 바로 커피였다. 어머니는 유독 이 두 가지 음식을 못 먹게 했었는데 생고기야 면역 약한 아이들에게 안 맞을 수도 있다 치고 커피는 왜 그랬나 모르겠다.

항상 어머니의 말로는 커피는 아이들이 먹는 음식이 아니란다.”라고 어린 나를 설득하고는 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어린 녀석이 커피를 마시고 잠을 못 잘까봐 걱정하셨던 것 같다. 뭐 카페인이 몸에 좋은 것도 아니니 말이다. 더불어 지금과 다르게 인스턴트 커피 밖에 없던 시절, 절대로 인스턴트는 입에 못 대게 하셨던 어머니 의지의 한부분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1 때 맞췄던 교복도 작아질 만큼 시간이 지났을 때 무렵 같은 반 친구 녀석이 커피를 마시는 모습을 봤다. 지금 생각하면 쓰기 밖에 안했던 커피를 뭐 맛있다고 그 아이는 먹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당시 내 기분은 흡사 선생님 몰래 담배를 피는 거 같은 기분까지 들었다.

어릴 적부터 커피는 먹어서는 안 되는 음식이라고 인식이 박혀 있어서 그랬던 거 같은데 한번 먹어보고 싶은 생각은 굴뚝같았지만 그래도 유혹을 잘도 이겨내고 먹지 않았다. , 그렇다고 내가 동글 안경에 바른생활만 하는 답답한 학생은 아녔는데 아마도 고등학생 때 하지 말아야할 흡연을 하면서 커피까지는 먹을 수 없다는 생각이었던 것 같다. 지금에야 생각해보면 커피보다 안 좋은 것이 흡연인데 말이다.


그 와중 나에게 커피의 맛을 조금이나마 느끼게 했던 것이 커피우유였다. 자기합리화이자 절충안이었는데 커피우유는 우유라는 이유만으로 내 자신에게 용서를 구했던 거 같다. 그래도 당시엔 커피를 먹을 수 있다는 생각에 커피우유를 참 좋아했던 거 같다. 나름 어른 흉내 내는 것 같기도 했고 말이다. 커피도 아니고 우유도 아닌 것을 가지고 말이다.

시간 지나 회사에 출근하자마자, 일하는 도중, 누구를 만달 때 시도 때도 없이 커피를 마시는 나이가 됐을 때 나에게 커피우유는 그냥 이도저도 아닌 음료가 돼 버렸다. 그 후로 나는 한동안 커피우유를 마신 적이 없다.

누군가 나에게 왜 커피우유를 안마시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그 때 나는 커피우유는 이도저도 아닌 거 같아요. 어차피 라떼 한잔 시키면 우유가 들어가는데 커피우유는 뭔지 모르겠어요.”라고 대답한 적이 있다. 라떼가 아니고서야 커피우유는 백날 먹어도 커피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인 것 같다.

커피도 잘 먹지 않는 지금에서 종종 커피우유를 먹자면 생각보다 맛있다는 생각이 든다. 너무 쓰지도 않고, 달달하고, 속도 불편하지 않고. 오히려 주구장창 먹어댔던 믹스커피나 아메리카노보다 낫다는 생각도 든다. 어린애 입맛일진 모르지만 말이다.


보면 옛날 보다 종류도 많다. 비닐 팩에 빨대 잘못 꽂아 질질 흐르던 커피우유밖에 없던 때 와 다르게 종류도, 크기도, 맛도 많이 생겨났다. 편의점 유제품 코너에 가선 커피 전문점처럼 무엇을 먹을까?’하고 고민도 한다.

어릴 적 아빠의 구두를 신기 위해 빨리 어른이 되길 바랐던 것처럼, 나도 커피를 마시기 위해 빨리 어른이 됐으면 했다. 정작 어른이 됐을 땐 자리 때문에 먹는 커피가 뭐 좋다고 그리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나하는 생각이 든다. 어린아이의 호기심 때문이었겠지만 커피우유가 아닌 진짜 커피를 먹을 나이가 빨리 왔으면 하고 바랬다. 그 시절이 소중한지도 모르고 말이다.


내일이 되면 커피 대신 커피우유 하나를 먹을 생각이다. 커피도 아닌 이도저도 아닌 것이긴 하지만 쓴 소리만 가득한 세상, 달달한 커피우유로 한번 달래보려고 말이다. 그리고 이도저도 아닌 것이 나랑 비슷한 것 같기도 하고


written by 선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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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해적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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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많은 민간요법들이 존재한다. 배 아픈 아이에겐 배탈 약보다 빠른 할머니나 엄마의 따뜻한 손이 있듯이 게임 세계에서도 여러 민간요법들이 존재한다.

나의 첫 게임기였던 패밀리 경우 이라는 소프트웨어를 사용했는데 슬롯에 팩을 끼워 넣는 형식이었다. 지금의 SD카드랑 비슷한 형식인데 지금 생각해보면 굉장히 원시적인 느낌이다. 때로는 팩의 케이스, 즉 플라스틱이 부셔져서 PCB보드 체로 게임에 꽂아 넣을 때도 있었는데 그래도 게임은 팔팔 잘만 돌아가곤 했다. 이런 점이 팩의 장점이기도 했다.


패밀리의 이야기를 조금 더 하자면 패밀리 최고의 민간요법은 바람이었다. 게임기에 팩을 꽂아 넣을 때 유독 인식이 안 되는 게임들이 있었다. 다시 꽂아도 인식이 안 되는 건 똑같았는데 이럴 때 최고의 방법은 팩과 게임기에 입을 대고 후후바람을 불어 넣는 것이었다.

바람을 불고 다시 꽂으면 이상하리만큼 인식이 갑자기 되고는 했다. 원인을 따지자면 그냥 먼지가 쌓여서 안 되던 게 바람을 불어서 먼지가 제거되어 인식이 됐다고는 밖엔.


여담으로 대학시절 여자 친구와 함께 당시 최고의 휴대용 게임기인 닌텐도DS를 같이 산적이 있다. 당시 닌텐도DS는 국내에 정식 유통되어 한글로 만나 볼 수 있었는데 내가 게임 팩을 넣기 전에 입으로 후후불자 여자 친구는 오빠 여기 입으로 불면 안 된다고 쓰여 있는데 왜 자꾸 바람을 부는 거야?”라며 핀잔을 주는 것이었다.

어릴 때 팩을 꽂을 때면 바람을 불던 것이 익숙한 나로썬 당연한 절차였는데 그 아이에겐 이숙하지 않은 행동이었던 것 같다. 그것도 그럴 것이 게임기에 보면 주의 사항으로 입으로 바람을 불지 마세요라고 적혀있었기 때문이었다.


사실 나는 이해가 잘 안 되는 부분이었는데 게임기를 오래 만들어 온 닌텐도에서 이런 민간요법도 모르고 그런 주의 사항을 적어 놓는 게 이해가 안됐다. 그럼 도대체 닌텐도 직원들은 그 주의사항을 지키며 어떻게 팩을 인식시키는지 참으로 궁금하기까지 했다. 그래도 나는 그 후로도 아랑곳 안고 계속 입으로 바람을 불고 팩을 넣고는 했다.


근데 나중에 보니 여자 친구도 나랑 똑같이 입으로 후후불더니 팩을 넣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 아이의 말로는 게임이 인식이 안 되서 오빠가 하는 대로 바람을 후후 불었더니 인식이 아주 잘돼는 거야라고 말하며 웃었다. 그 후로 그 아이도 나처럼 팩을 꽂을 때 최고의 민간요법인 바람을 불어 넣고 게임을 하곤 했는데 손녀딸의 배를 낫게 한 할머니처럼 볼 때마다 흐뭇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플스에도 여러 민간요법이 존재했다. 게임이 인식이 안 되기로는 패밀리 저리가라였던 플스는 툭하면 시디가 인식이 안 되서 메모리카드 관리 화면으로 넘어가기 일수였다. 그래도 패밀리의 경우 게임하던 도중 멈추는 일이 그나마 없었는데 플스는 게임 중에 수시로 시디를 읽다가 못 읽어 다음 화면으로 넘어가지 않고 하루 종일 시디를 읽는 경우도 있었다.

이럴 때 하는 민간요법이 있었는데 바로 플스 본체에 무거운 책 올리기, 뒤집어 놓기, 옆으로 세워 놓기 등이었다. 나는 주로 본체 뒤집기를 사용했는데 성공률은 대략 80% 이상이었다. 이정도의 성공률이니 누구든 안하려 해야 안할 수 없는 민간요법이었다. 내 친구는 주로 옆으로 세우는 방법을 취했는데 그래서 나중에 플스2가 나왔을 땐 옆으로도 세울 수 있게 만들어졌는지도 모르겠다.


시디를 못 읽는 경우는 시디의 표면에 스크래치가 많을수록 심했는데 이 스크래치를 해결하는 방법으로 한 친구는 시디에 치약을 바른 적이 있다. 치약이 시디의 표면을 얇게 벗겨내어 스크래치를 없어준다는 이유였는데 나도 해본 적 있지만 효과는 그다지 눈에 띄지 않아 후로 사용해 본적은 없다.


플스는 초창기 시디플레이어 마냥 조금의 충격만으로도 게임이 멈추기 일 수였다. 그래서 각자의 노하우인 민간요법으로 해결했고 플스를 가진 사람이라면 방법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written by 선의


Posted by 해적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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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루먼 대령 : 다 끝났어 존!!! 다 끝났다구!!!

람보 : 아무것도 끝나지 않았어요!!! 아무것도!!! 대령님은 절대 끝낼 수 없어요!!! 이건 내가 시작한 전쟁이 아니라구요!!!

 

람보는 총을 냅다 집어던졌다. 그리고 주저앉아 흐느껴 울었다. RAMBO FIRST BLOODⅠ의 마지막 명대사 명장면이다.

 

람보는 베트남 참전용사다. 그 중에서도 적 주요인물 암살, 중요시설 폭파와 같은 고도의 게릴라 임무를 수행하는 그린베리 특수요원 중 단연 에이스로 손꼽히던 군인이었다. 전쟁이 끝나고, 그는 제대 후 전우가 살고 있는 록키산맥의 어느 한적한 마을을 찾아갔다. 그러나 전우는 만나지 못했고, 그가 고엽제로 인해 생긴 피부암으로 끝내 숨을 거두었다는 소식만 전해 듣고 온다. 그래도 거기까진 괜찮았다. 오는 길이 문제였다. 그는 그 지역일대 모두를 그야말로 초토화시켜 버렸다. 그것도 수천 명의 미국 군경을 상대로 말이다.

 

람보Ⅰ의 가장 흥미로운 발상은 전쟁 장소와 대결 방식이다. 베트남 격전지에서의 미군 대 현지군의 대결이 아닌, 미국 내에서 벌어진 아군 대 아군의 전쟁을 주제로 다룬 것이다. 게릴라 특수요원 한 명과 떼거지 군경이 록키 산맥에서 대치하는 상황을 그려냈다. 람보가 마을을 쑥대밭으로 만들어버린 배경은 간단하다. 베트남전에서 겪은 극심한 고통과 트라우마, 돌아온 조국으로부터의 철저한 소외와 냉대 이 두 가지다. ‘세계평화수호’라는 조국의 대의명분을 걸고 목숨 내 놓고 싸운 참전용사 람보 존 제이에게 돌아온 보상은 아무것도 없었다. 오히려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살인마’라는 피켓을 든 자국민의 우글우글한 시위현장을 지켜봐야 했고, 친구를 만나기 위해 찾아간 한 마을에서는 ‘갈 곳 없는 더러운 부랑자’라는 개 취급을 받아야만 했다.


조국에서 그는 참전용사가 아니었다. 참전용 소모품이라고 ‘쿵!’ 낙인찍힌 오고 갈 데 없는 쓸쓸한 ‘괴물’이었다. 전쟁에서 겪은 고통을 어느 누구에게도 호소할 수 없는 극심한 외로움에 벌벌 떠는 한 인간이었다. 그런 그를 작은 마을의 보안관 윌 티즐이 건드렸다. 그것도 매우 비인격적인 가혹행위를 통해서 말이다. 윌은 람보를 얕봤고, 결국 그의 뿌리깊은 트라우마를 일깨워 록키산맥의 새로운 ‘참전용사’로 만들어버렸다. 람보를 계속 자극하면 전쟁이 벌어질 것이라 경고한 트루먼 대령의 충고를 무시하고 윌은 결국 람보를 끝까지 잡아내겠다는 무모한 결심을 한다. 결국 윌에게 돌아온 것은 ‘괴물 포획’의 기쁨이 아닌 ‘괴물’로부터의 총알 세례였다. 그가 람보의 포획망에 걸려들어 죽기 일보직전, 트루먼 대령이 나타나 람보를 말리지 않았다면 대갈통이 산산조각 났을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람보 영화 한 편의 대흥행으로 인해 미국에서 베트남 참전용사에 대한 인식이 바뀌기 시작했다고 한다. 원래 이 영화의 마지막 앤딩은 두 가지였다. 람보가 자살하는 것 하나, 대령의 설득을 받아들이고 묵묵히 교도소로 가는 것 하나. 시사회에서 두 가지 장면을 보여준 결과, 람보를 살려줘야 한다는 대중의 의견이 압도적이었다고 한다.

 

당시 대중들이 주인공 람보를 살려야 한다고 입을 모아 이야기한 것은, 단순히 실버스타 스텔론이 보여준 화려한 액션과 육중한 근육, 현란한 무기술 때문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이 영화에서 ‘베트남 참전용사’라는 타이틀은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군인으로서가 아닌 한 개인, 한 인간이 겪었을 사회로부터의 소외와 외로움의 아픔을 대중도 똑같이 느꼈던 것이다. ‘사회가 요구해서, 사회가 이렇게 하면 된다고 해서 나는 이렇게 했는데 왜 지금 나는 사회의 소모품, 아니 그보다도 못한 쓰레기 취급을 받아야 한단 말인가’하는 그 가슴저림의 공감 말이다.

 

람보가 마지막에 흐느끼며 트루먼 대령에게 이야기한다. 매일같이 동료들과 함께 전쟁이 끝나면 조국에서 신나게 드라이브를 하기로 했다고, 그런데 하루는 귀여운 꼬마가 와서 구두를 닦지 않겠냐고 재촉하며 물었다고, 동료는 마지못해 승낙을 했고 구두통을 여는 순간 지뢰가 터지며 그의 살점이 다 떨어져 나갔다고, 그의 살점이 내 몸에 튀었을 때 그 느낌을 아느냐고, 나는 지금도 매일같이 그 때의 악몽을 꾸면서 살고 있다고. 그의 마지막 울부짖음은 30년이 지난 지금 이 순간에도 절대 절명의 목소리로 내 귀에 꽂힌다.

 

 

얼마 전 한 친구가 찾아와 밤늦게 술을 청했다. 열심히 공부해서 서울의 좋은 대학을 졸업했고, 기업이 그토록 원하는 외국어 실력과 대학성적, 자원봉사, 갖가지 사회활동을 모두 갖추어 내밀어 봤지만 나에게 진정 손을 내민 기업은 단 한 곳도 없었다고. 자신의 면접 방법에 문제가 있는지 면밀히 살펴보고 있다고 했다. 그래서 요즘은 ‘면접, 이렇게 하면 성공한다’에 관한 책이란 책은 모두 사서 읽어보고 있다고 했다. PPT 프레젠테이션 연습에 목소리 가다듬기, 거울을 보며 억지로 스마일 짓기 등 갖가지 원맨쇼를 준비 중이라고도 했다. 게다가 정신과에서 심리 치료를 통해 근근이 버틴다고, 빌어먹을. 조금만 더 힘내면 될 수 있을 거라고 이야기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그냥 아무 얘기도 하지 않았다. 나까지 거짓말을 할 순 없었기 때문이다. 차라리 엿이나 먹으라고 얘기해 주는 편이 나았을지도 모르겠다.

 

여러분 카톡에 올라와 있는 친구들의 대화명을 유심히 살펴보기 바란다. “내 인생 어디로 가나”, “휴”, “고독의 언덕”, “어디까지 추락하나”, “비에도 쓰러지지 않고, 바람에도 지지 않고”, “이게 사는 건가”, “우울”, “나는 개처럼”, “공부는 스트뤠스”, “암흑기”, “그저 그렇지 않은 사람”. 아주 가관이다. 미니홈피에도 들어가 보라. 당신의 친구들이 남긴 다이어리를 읽어보기 바란다. 우울함과 외로움의 N극S극을 치달려가는 글들이 수면 위에 떠오르고 있다. 어떤가? 정말 그들이 순간적인 감정에 의해 복받쳐 그런 글귀를 남긴 것 같은 그런 느낌이 나는가?

 

최근에 책 하나 나왔더라. 1000번 흔들려야 어른이 된다나? 내가 그 어른에게 묻겠다. 당신 세대들은 정말 천 번 흔들려서 ‘어른’이 되었는가? 내가 알기론 50번, 아니 10번 정도 흔들리고도 좋은 자리, 좋은 환경 잘 찾아간 사람 꽤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묻지마 살인, 말 못할 자살, 무개념 지하철녀와 버스남, 무차별 폭행, 청소년 왕따 등, 그 어른이 청년이던 시절에 보기 힘들었던 비이상적 사회현상들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당신 말대로 1000번 흔들렸기 때문이다. 그 때의 고도 성장기 시절이 아니란 말이다. 굶어죽는 ‘올곧은 어른’. 적어도 나는 거부하겠다. 나는 람보Ⅰ의 마지막 대사가 이렇게 들리더라.

 

권력자 : 모두 끝났어. 자네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어. 모두 자네가 열심히 하지 않은 탓이라고!!!

88만원 세대 : 아무것도 끝난 건 없어요!!! 절대 아무것도!!! 난 조국이 하라는 대로 열심히 공부를 했고, 스펙을 쌓았어요!!! 그런데 내게 돌아오는 건 뭐죠??? 난 괴물이 아니라구요!!!

 

돈에 굶주리고, 사람에 굶주린, 부모님에게 얼굴조차 들지 못하는 수천만 대한민국의 젊은이들아. 조국을 떠나라. 뼈빠지게 일해 준 대가로 소외와 냉대, 100만원 한 장 쥐어주는 그런 나라는 너의 조국이 아니다. 권력을 쥔 그들도 우리와 같은 소모품으로서의 고통을 느껴볼 최고의 기회를 주도록 하자. 대신, 투표는 하고 가라. 그래야 나중에 우리가 행복해질 수 있다. 분명한 자기 의사를 보여주고 지워지지 않을 우리의 족적을 남겨두고 떠나자.

 

우린 해적이니깐. 


Written by 선장

Painted by 사샤


Posted by 해적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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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묘한 동거, 막힌 변기로 발각돼

 

 

  2012년 10월 27일

 

  서울 강북경찰서는 26일 수차례 빈집에 침입해 음식물을 무단 취식한 이모(30)씨를 가택침입, 절도 등의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집안으로 침입한 이씨는 마치 자기 집처럼 익숙하게 행동했다. 이씨는 냉장고에서 음식을 꺼내 요리를 하고 소주나 막걸리를 마셨다. 이씨는 마치 주인처럼 집안을 돌아다니며, 라면을 끓여먹고 자장면을 시켜먹는 등 대담한 행각을 벌였다. 배를 채우고 난 후에는 침대에서 태연히 잠을 자다 집주인이 귀가하는 시간에 맞추어 집을 나섰다. 

 

  이씨는 보통 혼자 사는 직장인의 아파트를 범행대상으로 삼았다. 피해자의 생활패턴을 파악하여 피해자가 직장에 출근한 시간을 틈타 집안으로 침입했다. 마음에 든 집에는 반년이 넘게 침입했음에도 피해자들은 알아차리지 못했다고 한다. 이씨는 자신이 사용한 물건을 원래대로 되돌려 놓고 이웃주민에게도 인사를 하는 등 상당히 주도면밀하게 행동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렇게 이어진 이씨의 범행행각은 변기가 막힌 것을 이상하게 느낀 집주인이 경찰에 신고를 하면서 발각되었다. 경찰에 잡힌 이씨는 ‘전날에 많이 먹긴 했지만 그렇게까지 굵게 나올 줄은 몰랐다’면서 ‘흔적을 남기지 않는 것이 같이 사는 사람으로서의 예의인데 그러지 못해 너무 미안하다’며 집주인에게 사과의 말(?)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갈수록 1인 가족이 늘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기묘한 동거’를 방지하기 위한 혼자 사는 시민들의 주의가 요구된다.

 

 

[해적일보 로빈슨 기자(robatsea.tistory.com)]

 

 

to be continued~~

 

 

Written by 요리사


Posted by 해적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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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중에 진짜 특이한 놈이 있다. 각종 동물을 다 따라하는 이상한 재주를 가진 인간이다. 우, 마, 견의 소리는 물론이요, "꺄악꺄악" 까마귀 소리에 "꿔기어~~"하고 닭 울음소리까지 섭렵했다. 어느 수준이냐면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그 흉내소리를 듣는 사람들은 정말 그 동물이 자기 주변에 있는지 이리저리 살필 정도다. 더 대단한 점은 동물의 소리 뿐만 아니라 몸짓, 동작 하나하나까지 정말 똑 닮게 한다는 사실이다. 어슬렁 어슬렁 먹이를 겨냥해가는 표범의 걸음걸이 흉내를 낼 때는 정말 '저 인간 모글리 아냐?' 할 정도로 등골이 오싹하다. 


그런데 그 보다 더 무시무시하게 카피하는 동물이 있다. '동물의 왕국'을 틀면 빠지지 않고 꼭 나오는 단골손님, 바로 미어캣이다. 늘 몇몇의 보초병들이 땅굴 앞에 나와 두 발로 꼿꼿이 버티고 두 손은 꼭 모은채 사방의 동태를 살피는 그 족속들말이다. 이 놈들 몸짓의 포인트는 발, 손, 고개다. 늘 적이 오나 안오나 살피기 때문에 시력과 시야 모두 매우 뛰어난 녀석들이다. 내 친구놈은 그들의 특성을 정확하게 알고 있다. 가끔 내가 심심할 때 "그 미어캣 흉내 좀 내봐!" 하면 갑자기 까치발로 바짝 서서 두 손을 딱붙여 꺾고서는 잽싸르게 고개를 휙휙 돌려대는데, 그 광경을 보고 있노라면 '와...미친놈이다 이놈은!!!'하는 생각밖에 안든다. 그냥 빵 터져 버린다. 적지 않은 시간을 지켜본 나로서 판단컨대, 이건 연습으로 할 수 있는 게 절대 아니다. 이 면밀하고 정확한 관찰력에서 나오는 행동은 지극히 본능적이라고 할 수 밖에 없다. 나는 그 놈이 갖고 있는, 아니 본래 인류 전체가 갖고 있었을지 몰랐을 그 매서운 '눈'의 원초적 본능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다.


한 때 나도 '매의 눈'이라는 소리를 들었다. 누군가와 무리지어 버스를 기다릴 때면 그들은 버스가 오고 있는지의 여부를 꼭 나에게 물었다. 내가 가장 시력이 뛰어났기 때문이다. 양쪽 시력 모두 1.5. 컨디션이 좋을 때는 2.0을 찍을 때도 있었다. 좀 과장을 덧붙이자면, 100미터 떨어진 거리에서 오는 버스의 번호도 알아맞출 수 있을 정도다. 친구들은 그런 나를 늘 부러워했다. 특히 안경만 벗으면 장님과 다를 바 없는 그런 아이들은 더더욱 그랬다. 그런 내가 스스로 대견스러워 그런 것인지는 몰라도 나는 거리를 걸을 때나 버스를 타고 창밖을 볼 때 항상 멀리 떨어진 산의 능선이라든지 높은 빌딩 위에 달린 안테나라든지 그런 것들을 주로 보곤 했다. 보니깐 보이는 것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멀리서 달려오는 버스 번호가 흐릿흐릿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우연의 일치인지 몰라도, 스마트폰을 쓰기 시작하면서부터 그런 증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스마트폰에는 참 친절한 기능이 많은데, 그 중의 하나가 바로 교통수단의 현재 위치를 확인해주는 앱이다. 내가 굳이 햇볕을 손으로 가려 가며 멀리서 오는 버스의 번호를 확인하지 않아도, 바로 앞의 손에 들고 있는 스마트폰의 앱에서 알아서 그 위치를 알려준다. 그저 폰만 쳐다보고 있으면 정확히 몇 분 후에 내가 타고자 하는 버스가 도착할지를 알 수 있다. 몸이 고생할 이유가 하나 더 줄어든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또 하나의 포인트는 스마트폰을 씀으로써 자연스레 고개를 숙인다는 점이다. 어느 순간부터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마치 죄 지은 것 마냥 모두들 고개를 푹 숙이고 다닌다. 굳이 그 죄명을 대라면 스마트폰 중독죄라 할 수 있겠다. 특히 최근 애니팡이 전국방방곡곡으로 퍼져 나아가면서 대다수의 국민이 '고개숙인 남자', '고개숙인 여자'가 되었다. 버스를 타든. 지하철을 타든, 자가용을 타든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목을 90도로 꺾고 눈에 힘 빡 주고 연신 폰만 들여다보고 눌러대고 흔들어대고 있다. 그게 어떠한 이유에서건, 우리는 내 코 앞에 닥친 가상의 공간에 더욱 더 몰두함으로써 실체의 주변을 살펴보게 될 기회를 잃게 되었다. 시력의 쇠퇴 뿐만 아니라 시야까지 매우 근시안적으로 좁혀지게 된 것이다. 


스티브 잡스의 획기적인 발상으로 인해 우리는 손바닥 안에서 세상의 무한한 가능성을 보게 되었다고 모두가 입을 모아 그를 칭송한다. 인간이 일일이 손발을 쓰고 눈으로 찾아다니며 해야 할 대부분의 일을 전화통 하나가 아웃소싱으로 한데 묶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아웃소싱의 범위가 점점 넓어질 수록 우리의 오감이 담당해야 할 몫은 점점 좁아지고 줄어든다. 인간 테크놀로지의 진화로 인해 인간 스스로의 퇴화가 급격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 생각해본 적 있는가? 


당신이 직접 넘기고 갈피를 끼워가며 감각적으로 특별한 대목을 기억해 내던 묵직한 책이 가상 공간으로 쏙 들어갔다. 당신의 몸에서 움직일 것은 이제 손가락 하나 뿐이다. 동네 주민들에게 묻고 물어 이쪽 저쪽 사방을 살피며 찾아가던 그 옛길도 이제 폰 하나만 들고 있으면 굳이 묻거나 두리번 거릴 필요조차 없다. 은행도 갈 필요없다. 폰에 은행이 있는데 발이 뭐하러 고생하겠는가. 우리는 그저 폰이라는 사이버 플레이스가 만들어주는 편의의 지침서대로 따라가면 되는 것 뿐이다. 흘러간다. 그리고 인류의 오감은 점점 무뎌진다. 


사과의 한 광고를 본적이 있다. 화면에 쓱싹쓱싹 손가락으로 몇번 끄적대면 멋진 풍경그림이 나오는 그 광고 말이다. 그림 그리는 사람들은 다 안다. 책을 솔솔 넘겨 보는 맛이 있듯 그림을 쓱싹쓱싹 그리는 맛이 있다. 4B연필, 색연필, 물감, 파스텔, 목탄을 집어들고 매서운 눈에 감을 잡아가는 나만의 몸집을 더하고, 거기에 더불어 감성을 불러일으키는 음악의 귀까지 동원하여 이리저리 손을 놀려대면 그 뭉쳐진 촉이 손가락을 타고 종이와 캔버스에 서서히 번져 하나의 꿈틀대는 작품이 이루어지는 모습을 지켜보는 그 특유의 맛 말이다. 그 맛을 사과와 세개의 별이 어느 순간부터 앗아갔다. 멀리 보이는 저 가을의 단풍산을 바라보며 날카롭게 펜을 갈기고 그림을 그려대던 나의 '매의 눈'을 그들이 앗아가 버렸다. 


오직 육체의 철저한 사용에 의해서만 비롯되던 정신적 특혜들이 기계 하나로 인해 하나둘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다람쥐가 이빨을 날카롭게 갈 듯, 인간도 몸을 쓰지 않으면 닳게 되어 있다. 조그마한 기계 하나가 육체를 장악하기 시작한 지금으로부터 10년 후, 아니 당장 5년 후가 궁금하다. 매우 두렵기도 하다.   



Written by 선장

Painted by 사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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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해적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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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0.22 04:39

 

 

 

대학 졸업 후 쉴 틈도 없이 직장을 얻고, 혹 넘어질까 걱정하며 달리니 벌써 이립(而立)이다. 뜻을 세울 나이라는데 정작 뜻 보다는 항상 주머니에 돈이 떨어질까 걱정하며 살았다. 그러니 정작 결혼은 친구 청첩장에서나 보는 단어이자 의미다.

명절이면 이제 결혼해야지라는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듣는 말에 매번 건조하게 아직 할 것도 많고, 돈도 없고요. 아직 아니에요라고 대답한다. 내가 대답을 하고도 이 아이러니에 웃음이 난다.


결혼은 본디 사랑하는 이성과 평생을 약속하는 성스러운 의식. 이 성스런 의식에 대한 대답에 애인이라는 이성은 빠진 체 돈도 없고요로 대답하다니. 결혼을 위한 가장 우선 조건은 평생을 같이 할 애인 아닌가? 그럼 현재 만나는 사람이 없는 내 답도 애인이 없어서 결혼을 못한다는 답이 맞는 거다. 내 답대로 해석하자면 나는 돈이 없어서 결혼을 못하는 거지 돈만 있으면 얼마든지 여자를 만날 수 있어. 근데 이 아이러니한 돈이 없어 결혼을 못 한다라는 대답에 반론을 재기할 30대 미혼 남자들이 몇이나 될까? 구역질나는 현 사회 상태에 대해 분하고 열 받지만 나도, 결혼을 못한 수많은 30대 남자들도 수긍한다.


결혼에 돈이 필요한 것은 예식도 그렇지만 남자는 을 장만해야한다. 이 거지같은 공식이 언제부터 우리사회에 깊게 뿌리 박혔는지는 나도, 우리 엄마도 모르겠지만 남자는 집을 장만해야한단다.

어르신들 이야기로는 단칸방부터 시작해서 하나하나 얻으면 된다고 한다. 참 바보 같을 정도로 훌륭한 말이다. 이 대답에 나는 훌륭히 대답할 수 있다. 그런 여자는 이미 한참 전에 나보다 더 능력 있고 잘생긴 녀석과 결혼 했을 것이라고. 그럼 전세로 시작해보자.


전세? 대한민국 땅 덩어리가 좆만 해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수도권 웬만한 아파트 전세 값은 억대다. . 무슨 판타지 소설에나 나올 법한 단위다. 그럼 내가 지금 판타지 소설의 주인공인가? 차라리 주인공이라면 어떻게는 드래곤을 쳐 잡아 억을 얻어 결혼할지 모르겠지만 대한민국이라는 판타지 소설에서 나는 주인공이 아니다. 그냥 평범한 판타지 속 작은 마을의 여관집 아들, 무기상, 아이템상의 아들일 뿐이다. 판타지 속이라도 나는 을 얻을 수 없다.


남자는 집이다. 남자가 집을 얻지 못하면 결혼도 못한다. 너무 자학적이고 비관적이라고? 근데 좆같이도 사실 아닌가? “미안해. 나는 아직 돈을 많이 모으지 못해 아파트 전세는커녕 작은 단칸방부터 시작해야할 것 같아라고 말하면 여자가 괜찮아. 함께 벌어서 마련하면 되지. 우리가 사랑하는데 집은 중요하지 않아라고 대답해 줄 것 같은가? 군대서 읽은 워크 투 리멤버(Walk to Remember)에서나 나올 듯한 대사다.


대학 시절로 가 나는 대학 학비를 어머니께서 부지런히 일을 해 마련해 주셨다. 그 큰 자혜로운 희생 덕에 나는 졸업 후에도 빚은 없었다. 그러지 않은, 혹은 못한 많은 주변 친구들은 알바를 해서 학비를 벌었을까? 아니다. 대부분 학자금 대출을 통해 등록금 및 학비를 마련했고 정작 알바를 통해서는 개인의 용돈 정도를 썼다.

대학 등록금은 방학을 통해서도 마련할 수 없다. 휴학을 해 학비를 마련하지 않는한 불가능하다. 시간당 오천원도 안 되는 알바비 받으며 500만원이나 되는 학비를 마련한다고? 방학기간인 3개월 동안에 500만원을 버는 곳이라면 나는 대학 때려치우고 지금 그곳에서 일을 했을 거다.


졸업 후 달라지는 것은 없다. 직장인이 된 학생은 몇 년간 학자금 대출을 갚기 위해 땅만 보며 달린다. 그리고 허리 좀 피고 하늘 좀 바라볼 때쯤이면 서른, 결혼할 나이. 모아 논 돈 따위는 없다. 근데 사랑하는 여자와 결혼을 하기위해 집을 마련해야한다. 그래서 다시 은행을 찾아간다.

융자와 대출을 끼고 집을 얻는다. 남자는 작은 사회라 불리는 대학에 들어가면서 빚을 지고, 진짜 사회에 나와 부단히도 아끼고 졸라매 빚을 갚고, 2의 인생이라 불리는 결혼을 하면서 다시 빚을 진다.

대한민국에서 대학을 다니려면 학자금 대출을 받아야하는 것처럼 대한민국에서 집을 갖기 위해선 빚을 져야한다. 학비를 부모님이 내 주시는 것처럼, 집도 부모님이 해결해 주시지 않으면 30대에 집을 가질 수 있는 방법은 빚을 내는 것이다.


대학생이 알바로 학비를 마련할 수 없듯이 직장인도 월급을 모아 집을 마련할 수 없다. 역겹게도 대한민국이라는 판타지 속에서는 말이다.


written by 저격수

 

Posted by 해적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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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0.19 03:41


나의 큰집, 큰아빠 큰엄마가 계신 큰집은 대전 석교동에 있다. 마당이 멋들어지게 자리 잡고 있으며 드라마에서나 올 법한 멋진 이층집이었다. 나무 바닥으로 되어있던 넓은 거실은 한 발, 한 발 내 걸을 때마다 삐걱삐걱하며 기분 좋은 소리를 내고는 했다. 내 방하나 없던 작은 집에 살았던 나에겐 큰집은 나에게 정말 큰집답게 커다란 집이었다. 이런 큰집은 갈 때마다 놀이터였다. 특히 온갖 신기한 물건들이 많았던 큰집은 나에게 보물창고였다.


자상하셨던 큰엄마는 항상 정원을 아름답게 꾸미셨는데 흡사 일본식 가옥처럼 너무 과하진 않았지만 절제가 있었던 그런 품위 있는 정원이었다. 이런 정원의 식물들을 신기해하며 바라보기도, 마당의 강아지와도 함께 뛰놀았다.


거실에서 이층으로 이어지는 계단은 한발 한발 옮길 때마다 호기심으로 가득 찬 날 설레게 했다. 물론 이층엔 세를 주어 다른 세대가 살아 끝까지 올라가보진 못했다. 그래서 더 궁금해 했던 거 같다.


넓은 거실에 장식되어 있던 수석들은 항상 빛이 났다. 그중 동물모양을 닮았었던 수석들은 나의 장난감이 되었고, 거실은 세렝게티가 됐다. 출판사에 근무하시던 큰아빠 덕에 집에는 많은 책들이 있었는데 이런 책을 몇 개 들고 나와 윤이 반질반질 나는 나무거실에 앉아 읽으면 거실은 오래된 도서관이 됐다. 조금은 낡았을 지도 모를 집이었지만 워낙 꼼꼼하셨던 큰엄마는 이 집을 품위 있는 보물창고로 만들어 놓으셨다. 멋진 고성 같이.

 

콩알만 한 키에서 대한민국 남자 평균키를 넘겼을 때 큰어머니는 세상을 떠나셨다. 남겨진 집은 사촌형과 큰아버지께서 계속 사셨다. 그 집에서 바뀐 건 큰어머니가 안 계신 것뿐이었다.


내가 호기어린 20대를 넘어 능글맞은 30대가 되었을 때 나의 고성 같고 보물창고였던 큰집은 고성은커녕 아무도 살지 않는 폐허가 되어갔다.


품위 있던 정원의 풀과 나무들은 모두 말라 죽어 얼마 전에 모두 잘라냈다. 하얀 흙만을 드러낸 채 정원은 사막이 되었다.


이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은 온갖 집안의 안 쓰는 물건으로 채워져 한 계단 오르기도 힘들었고 기분 좋은 소리를 냈던 나무 거실은 윤기를 잃어 낡은 나무 판때기를 깔아 놓은 거 같았다.


거실의 수석들은 빛을 잃어 수석이라고 부르기도 아까울 정도로 돌덩이가 되어버렸고 처치 곤란으로 남았다. 집은 흡사 폐허 같았다.


큰집에서 바뀐 것이라곤 큰어머니가 안 계신 것뿐이었다. 그렇게 집을 아끼고 가꾸셨던 큰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집도 죽었다. 집의 주인은 있지만 집의 실질적 주인은 큰어머니였던 것이다.


내가 어릴 적 어머니께 전세에 대해 물어본 적이 있다. 어차피 돌려줄 돈인데 전세는 왜 주는 것이냐고 물었다. 그러자 어머니가 말씀하시길 집을 혼자 그냥두면 죽기 때문에 사람을 들이는 것이란다.”라고 하셨다. 물론 어린 나는 이해 못할 말이었다. 집이 죽는 다는 것이.


사람이 곧 집이고 집이 곧 사람이었다. 사람도 혼자 못살 듯이 집도 혼자 살 수 없었다. 큰어머니 애정과 사랑을 잃은 큰집은 지금도 조금씩 조금씩 죽어가고 있다.


Written by 선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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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해적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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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첫 게임기는 패밀리(일본에서는 패미콤이라 불렸다)라는 게임기였다. 어린나이에 힘들게 일하시는 엄마를 졸라 산 게임기였다.

팩이라고 불리는 게임 소프트웨어를 끼워 사용하는 게임기였는데 당시 만해도 패밀리가 있는 친구의 집은 항상 많은 친구들이 모이고는 했다. 사실 지금 생각해보면 패밀리는 친구와 같이 할 게임도 거의 없었는데 뭐 그리 많이들 모여 앉아 있었는지 모르겠다. 옛날 TV있는 집에 사람이 모이는 것과 비슷한 거였을까?


플레이스테이션(이하 플스)도 마찬가지였다. 플스가 있는 친구 집엔 학교 끝나자마자 많은 아이들이 몰려가고는 했다. 그래도 플스는 패밀리와 다르게 함께 할 수 있는 게임이 많았다. 더불어 32비트 최신 게임기답게 패드의 여유만 있다면 멀티탭이라는 액세서리를 사용하면 무려 4인용, 두개를 사용하면 무려 8인용까지도 가능했다. 단지 8인이 함께할 게임이 없어서 문제였지만 그래도 게임은 함께 하는 거라는 이미지는 새긴 것 같다.

멀티탭도 놀라웠지만 플스의 독특한 점이라면 메모리 카드라는 저장장치였다. 메모리 카드는 게임의 전반적인 데이터를 저장하는 장치였는데 주로 게임 세이브 데이터를 저장하고는 했다. 용량이 한정되어 있는 팩과는 달리 메모리카드만 있다면 얼마든지 세이브 데이터를 옮기고, 복사하고, 보관이 가능했다. 툭 하면 세이브 데이터가 공중분해 돼 버리는 팩과는 비할 바가 아니었다.


게임 세이브 데이터가 한번이라도 날아가 본 사람은 알 것이다. 열심히 노력해도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다는 세상의 진리를 어린나이에 알게 해주곤 했다. 내 경우 세이브가 중간에 날아가자 그 게임자체를 접은 적도 더러 있었다. 아무튼 메모리카드는 친구의 데이터를 받을 수도, 내 데이터를 나눠 줄 수 있어서 세이브가 날아간다 해도 처음부터 해야 하는 수고는 덜 수 있었다.

나는 매달 게임 잡지를 사고는 했는데 일어로 된 게임 공략을 위해서였다. 이 게임 잡지에는 복사게임시디에 붙일 수 있는 스티커와 메모리카드에 붙일 수 있는 스티커가 함께 들어있었다. 인기 있는 게임의 스티커가 들어있었는데 때로는 공략을 위해 사는 게 아니라 스티커 욕심 때문에 산적도 더러 있었다.


메모리카드에 스티커를 붙이는 것은 '내 것'이라는 하나의 인식표이자 다른 사람과의 차별화였기에 놓칠 수 없는 게임 생활의 한 부분이었다.


Written by 선의

Posted by 해적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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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학로 혜화로터리를 건너 한성대 입구 사거리에 접어들어 좌회전을 받으면 곧장 성북동 길로 이어진다. 사거리 주변에는 과일장수, 과자장수, 떡장수, 김밥장수 누구 할 거 없이 이런저런 상인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손님들과 흥정을 벌인다. 성북동 길을 따라 조금 더 올라오면 오래된 철물점, 문방구, 사진관, 쌀집, 추어탕집이 보이고 그 뒤로 빽빽하게 살림집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다. 이쪽저쪽에 고등학교, 중학교도 보인다. '서울에 아직도 이런 동네가 있나' 싶을 정도로 7080년대의 냄새가 폴폴나는 그런 동네라고나 할까. 암튼 와보면 '아 여기가 성북동이구나'라는 필이 딱 느껴진다. 


  중간 쯤 올라오면 큰 길가에 조그마한 구멍가게와 당장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매우 올드한 국수집이 눈에 들어온다. 그 앞 횡단보도을 건너 세탁소와 의류점 사이로 난 골목길로 올라오면 아담한 한옥집 한 채가 보인다. 주민들은 이곳을 최 선생님 댁이라고 부른다. 집 대문에는 '최순우 옛집'이라고 쓰여진 현판이 걸려있다. 제 4대 국립중앙박물관장을 역임했던 한국미의 실천자 혜곡 최순우 선생이 살았던 곳으로, 시민들의 따듯한 성원과 모금으로 '시민문화유산 1호'로 되살아난 집이다. 이렇게 설명해도 우리 90-00세대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니 하나 더 붙이겠다. 간혹 교과서와 문제집의 지문으로 나오는 '무량수전 배흘림 기둥에 기대서서'의 저자라고 하면 '아 그 사람!'하고 무릎 칠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다.

 

 



  대문을 열고 뜰에 들어서면 선생이 생전에 심어 둔 감나무, 밤나무, 모과나무, 소나무, 산수유 나무가 알맞게 자리를 잡고 있으며, 곳곳에는 청죽, 벌개미취, 옥잠화, 바위취와 같은 한국의 야생화가 소담스레 피어있다. 선생이 머물던 사랑방에는 도톰한 보랏빛 보료와 조그마한 서안이 있고, 간결하게 짜여진 사방탁자가 놓여 있다. 서안 위에 놓여진 낡은 원고지가 바람에 펄럭인다, 김환기 선생과 박수근 선생의 그림도 보인다. 선생의 친필이 담긴 사랑방 현판에는 '두문즉시심산'이라 적혀있다. '문을 닫으니 이곳이 곧 산속과 같다'라는 뜻이다. 뒤뜰에 펼쳐진 고동빛깔 툇마루에 앉아 수국차를 마시며 이 고요한 풍경을 마주하고 있자면 도심 속 한복판이라는 사실을 어느덧 잊게 되는 묘한 감정이 싹튼다. 


  언제였던가. 최순우 옛집에 엄마, 딸, 손녀 셋이 놀러왔다. 하얗게 머리가 센 엄마를 부축하고 딸이 모셔온 모양이다. 대여섯살 되어보이는 손녀아이는 벌써 깡총깡총 온 집을 뛰어다니고 있다. 엄마와 딸이 쑥차를 시켜놓고 툇마루에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손녀아이가 무얼 발견했나보다. 막 뛰어가서는 "엄마 이게 뭐야?"를 연신 외쳐댄다. 손녀아이가 손에 들고 있는 건 검정 고무신이었다. 딸이 이야기해준다. 


"요건 옛날 사람들이 신었던 고무신이라는 거야, 고무로 만든 신발!"

"엄마 나 이거 사줘!!!"

"이걸 사서 뭐하게~ 다시 제자리에 갖다두세요~~"

"엄마 나 이거 사줘!!!"

"이거 이제 안 팔아. 못사요. 갖다두세요~~"

딸과 손녀아이가 몇 차례 실갱이를 벌이고 있으니, 엄마도 한 술 거든다. 

"야, 이거 아직도 신고 다니는 사람이 있나부다. 남대문 시장 이런데 가면 아직두 이런거 팔기는 팔텐데..."

"엄마 근데 나도 보기만 했지 그러고 보니까 신어본 적이 없네?"

"야, 내가 너 어렸을 적에 니 딸 마냥 새신발새신발 노래를 불러서 맨날 시장만 가면 신발만 사고 아주 된통 혼났다"

"나두 그랬나? ㅋㅋㅋㅋㅋ"

"난 아주 고무신만 보면 울화가 치민다 야"

"왜 엄마?"

"느의 할아버지 있지? 그 양반이 어디 여자 사람취급이나 해줬냐? 오빠들은 서울가서 공부해야 된다고 구두니 운동화니 장만 가시면 사오는 걸 나는 한번도 신어보지도 못했다 야. 맨날 오빠들이 신던거 떨어지고 그러면 그거 주워다 신고 그랬지뭐. 오빠가 하두 그래보이니까 그래도 나중에 나 부득부득 우겨서 고등학교 갈 때 아빠 몰래 구두 한 켤레 사줘서 내가 그냥 신이 나가지구 온 동네방네 다 신고 다니고 친구들한테 자랑하고 그랬어. 어이구, 난 고무신하면 치가 떨린다."


  가만히 보니 할머니가 지금 신고계신 구두도 예사로워 보이지 않다. 럭셔리한 게 딱 누가봐도 '와우! 명품이네!' 써 있다. 그러고보니 그 딸도, 그 딸의 딸도 죄다 신발이 고급스러워 보인다.  


"넌 아주 행운인 줄 알어. 내가 아주 이 신발에 한이 맺혀가지구 내 딸은 그렇게 안키운다 해서 사달라는 대로 사준거지. 그 때 값으로 구두니 운동화니 다 비쌌다구. 누가 이런 걸 함부로 사줘."

"하하, 알았어알았어 엄마. 내일 백화점이나 갑시다."

"그러지 뭐. 아니 근데 얘는 뭐가 좋다구 이걸 가지고 이런다냐?"


  손녀아이는 고무신이 정말 마음에 들었던지 들었다놨다 신었다 벗었다를 반복하면서 장난감 갖고 놀듯 삼매경에 빠져있다. 손에서 놓지를 못하니 아이엄마가 마지 못해 사무실로 찾아와 묻는다.


"이거 여기서 팔아요?"

"아뇨, 저희들만 신는 겁니다. 한옥 분위기에 맞게 신발도 고무신으로 맞춘 거에요."

"아, 네 근데 참 한옥이랑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 저랑 딸이랑 신고 사진 찍어도 되죠?"

"아 그럼요. 그리고 이거 남대문 시장에서 팔아요. 가시면 아마 따님 사이즈도 있을 거에요"

"아네, 잘 알았습니다. 고맙습니다."


  고무신 두 켤레를 딸과 손녀아이가 신더니 나에게 사진 좀 찍어달라 부탁을 한다. 고무신이랑 한옥이랑 잘 좀 나오게 찍어달란다. 나름대로 그림이 잘 나오는 자리에 앉혀놓고 찍으니 제법 그럴싸해 보인다. 두 사람도 모두 만족한 얼굴이다. 딸이 엄마에게 묻는다. 


"엄마도 한 번 신고 찍어. 언제 또 신어보겠어?"

"아이구 난 됐다. 니들이나 많이 찍어라. 쟤 좀 이쪽저쪽 가서 많이 찍어줘 예쁘게 꽃이랑 나무랑 같이."


  그렇게 세 모녀는 고무신을 두고 한참을 이리저리 옮겨다니다가 해 질 무렵이 되서야 돌아갔다. 정말 할머니는 끝까지 고무신을 신지 않았다. 딸은 사진만 찍어댔다. 손녀아이는 신고 놀기에 바빴다. 엄마에게 고무신이란 '다시는 보기 싫은 헌 신', 딸에게는 '기념으로 남길 추억거리'. 손녀아이에게는 '꼭 갖고 싶은 신발 장난감'이었다. 그 날 헌 고무신이 세 모녀에게 제대로 헌신했다. 



Written by 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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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해적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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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가을에 접어들고 있는 10월의 첫째 주 일요일. 아침공기가 제법 쓸쓸해진데다가 창으로 내리쬐는 햇살도 한결 차분해졌다. 이글이글 아스팔트 기운에 맥을 추지 못하던 담쟁이들도 때를 만났다는 듯 슬그머니 잎새 끝에 물을 들이기 시작했다. 늦여름 태풍이 쓸고 간 하늘 판에는 푸른 물감만 잔뜩 뿌려져 있고, 실낱같은 흰 구름들은 있는 듯 없는 듯 무심히 지구 반대편으로 흘러가고 있다. 창밖 프레임 속 풍경을 구경하고 있노라면 어느덧 1회용 플라스틱 잔에 얼음 꽉꽉 채운 아메리카노 보다는 하얀 머그잔에 따끈한 달콤 라떼 한잔을 내려 마시면서 몸 안의 생기를 북돋아 주고 싶어진다.


  공기가 얼어붙고 태양빛이 멀어져 간다는 것은 그만큼 일상생활의 뜨거움도 한층 식어간다는 것을 뜻한다. 싸이의 강남 스타일 공연의 열기로 붉게 달구어졌던 시청광장에는, 푸른 셔츠를 커플룩으로 맞추어 입은 연인과 아빠 엄마 손을 잡고 초록잔디밭을 노니는 꼬마들이 자리를 채웠다. 분수대의 물대포를 맞아가며 뛰놀기에 분주했던 여학생들은 어느 새 도톰한 춘추복 차림으로 변신하여 잔디밭에 모여앉아 겨울용 코트나 피부건조 방지용 화장품 이야기로 대화의 수를 놓는다. 멀찌감치 나무의자를 두고 앉아 슬금슬금 곁눈질로 그녀들의 스케치를 완성해가고 있는 사과모자 아저씨를 보고 있자면 이내 가을이 오긴 왔나보다 하는 생각도 든다. 우리들의 옷차림도, 생각도, 사랑도 가을의 나침반에 따라 키의 방향을 차츰차츰 바꿔가고 있다.


  온도계가 내려갔다고 해서 우리들의 마음까지 덩달아 식어버린 것은 아니다. 오히려 우리들은 그 동안 더운 열기로 인해 제각각 미루어두었던 시시콜콜한 소망거리들을 하나둘씩 끄집어내고, 표현하고, 공유하고, 소비하고 있다. 그런 것들은 아침 산책길에서도 쉽게 볼 수 있다. 공원 평상에 단체로 모여 앉아 기를 수련하는 사람들이라든지 또는 배낭을 메고 서울성곽 정상을 향해 오르는 노인 부부의 걸음걸이는 한여름 쨍 내리쬐는 불볕 속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풍경이다. 공원 숲에 숨어 들어가 달콤한 혀를 섞고 있는 남녀 지간의 모습은 앞으로 외부에서의 애정 행각이 더욱 뜨겁게 달아오를 것을 예고하고 있다. 떨어진 숲의 온도를 연인들이 알아서 맞춰 주고 있는 것이다. 또 다른 한편에서는 삼삼오오 줄을 지어 자전거의 페달을 돌리고 있는 레이서들의 숨 가쁜 질주가 점점이 스쳐간다. 이 모두가 계절의 색깔을 바꾸어 나아가는 풍경들이다.


  작년 이맘때쯤엔 그림 그리기에 미쳤는데, 올해는 펜과 키보드가 손맛을 자극하고 있다. 손가락 지문에 가을의 형상이 도돌도돌 새겨져 묘한 생각의 자기장에 이끌려 펜을 끄적 대고 키보드를 연신 두드리고 있다. 모니터 앞에는 따듯한 테이터스 초이스 아메리카노 한잔, 무라카미 하루키의 [노르웨이의 숲], 그리고 막 연인과 문자를 끝낸 달달한 아이폰이 놓여 있다. 커피를 마시며 사랑을 즐기고, 책을 끼고 앉아 나만의 잡동사니 글을 풀어내고 있는 꼴이란 흡사 된장남을 연상케 한다.


  독서란 무릇 글을 쓴 자와 글을 받는 자의 진지하고 차분한 대화이다. 작가와 독자의 커피 한잔의 대화에 남이 함부로 끼어드는 것을 나는 제일 싫어한다. 여기서 ‘남’은 나를 알고 있는 타인 모두를 지칭한다. 그래서 집안에서 진지하게 책을 읽는 경우는 거의 없다. 화장실 청소하는 소리, 쓰레기통 비우라는 엄마의 잔소리, TV 속 걸그룹의 숨 넘어갈 듯한 라이브 소리의 하모니는 마치 나에게 ‘니가 좋아하는 그 쓰레기 책 따위 개나 줘버려’하고 비웃는 것만 같다. 가족들이 잠옷 차림으로 퍼질러 앉아 깔깔대며 쇼 프로를 보고 있는데 나는 한 쪽에서 와타나베와 나오코가 뜨겁게 섹스하는 대목을 읽는다고 해보자. 이건 도저히 말이 되지 않는 것이다.


  적막함이 느껴지는 넉넉한 공간에 숨어들어가 책과의 대화를 시작한다. 너무 시끄럽지도 그렇다고 너무 쓸쓸하지도 않은 카페의 한 구석자리라든지 운동장의 먼 함성소리가 창가를 가볍게 두드리는 학교 연구실의 책상 이런 곳이 딱 제격이다. 나는 책에게 무엇을 가르쳐 줄 수 있냐고 묻고 책은 나에게 무엇을 찾고 있느냐고 되묻는다.


  끊임없는 대화가 이루어지는 가운데 커피와 초콜릿 간식은 필수 아이템이다. 특히 대화의 내용이 점점 깊어지고 높은 고열량의 지식을 짜내야 할 때 초콜릿의 농도는 점점 더 달아오르고 카페인은 고독하게 깊어진다. 달콤한 설탕과 카페인의 마취성분으로 뇌를 달래주면서 나는 옷장 속을 뒤지듯 흥미로운 이야기 거리를 끄집어낸다.


  독서를 넘어 글쓰기로 이어질 때 카페인과 초콜릿 소비는 최고점을 찍는다. 특히 데드라인을 턱밑에 두고 논문이나 보고서 따위의 딱딱한 내용을 쓸 때 나는 보통 1일 기준 오리지널 콜라 5캔, 아메리카노 3잔, 자판기 믹스커피 2잔, 트윅스 3개, 기타 초콜릿 과자류 3봉지 이상을 먹어치운다. 무한한 카페인을 소비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씩씩대는 증기기관 열차 속에 시커먼 석탄 덩이를 탈탈 부어가며 불구덩이의 기세를 올리는 것과 같다.


  카페인 과다 중독으로 이상 증세가 나타나지 않느냐고 묻는 사람도 있는데 꼭 그렇지만은 않다. 아직까지 이런 인스턴트 생활로 인해 곤욕을 치러본 경험은 없다. 다만 카페인 수준이 일정량 수준을 넘으면 조금씩 피로감이 몰려오고 집중력이 떨어진다는 단점은 있다. 하지만 먹지 않고 마시지 않은 채 초조한 긴장감을 이어가는 것보다는 훨씬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점에서 나는 이 생활이 좋다. 데스노트에서 L이 설탕류 과자를 탑처럼 쌓아두고 밤낮으로 먹어가며 범인 키라를 추적하는 그런 짓거리와 비슷하다고도 할 수 있겠다.


  해가 지니 바람이 서늘하다. 창문을 닫고 스탠드 불을 켠다. 또 다시 입안에 초콜릿을 살짝 머금고, 딸그락 딸그락 머그잔을 구슬리며 커피를 솔솔 마셔댄다. 그리고 한량 놀음하듯 이글 저글을 이리썼다 저리썼다를 몇 번이고 반복한다. 그러다 간혹 내 앞에 놓인 아이폰으로 연인과 문자를 주고받으며 다음 만날 데이트 날짜를 정해본다.

 

  커피, 초콜릿, 독서, 사랑은 이렇게 묘한 동거를 이루고 있다.


Written by 선장

Painted by 사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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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해적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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