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2학년 시절이 떠오릅니다. 한 친구가 급하게 교실문을 박차고 들어오면서 아이들에게 소리치더군요. "야! 이○○ 죽었대!!! 절벽에서 떨어져서 죽었대!!!" 학급 전체가 술렁였습니다. 단순히 죽었다는 점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자살일 가능성이 높다는 부검결과 판정이 나왔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친구가 이야기 한 이○○란 아이(줄여서 L)는 중학교 3년 동안 단 한번도 전교 1등을 놓쳐본 적이 없는 '초특급 울트라 에이스 영재'였습니다.  

 

L은 중학교 졸업 직후에 우리 고등학교로 진학하지 않고 인도로 유학을 갔습니다. 아버지가 인도에서 사업을 크게 확장하시면서 고등학교도 그 쪽으로 선택했다는 이야기까지는 들어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갑작스레 L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번뜩 떠오르는 에피소드 하나가 있었습니다.

 

농구시험.

 

총 열 번의 슛 가운데 얼마나 많은 공을 넣는가에 따라 체력장의 점수가 갈리는 체육시험이었습니다. 뭐 사실 당시의 청소년들에게 그 농구시험이라는 것은 미래를 결정하는 어떤 중대한 사건이라든지 남자의 자존심을 건 마지막 승부 같은 그런 비장한 성질의 것이 전혀 아니었습니다. 어설프게 본 것들은 많아서 만화 주인공의 슛폼을 따라한다던지, 아니면 우스꽝스러운 포즈로 슛을 해서 반 아이들에게 큰 웃음을 선사한다든지, 별 생각없이 던지다가 단 한 점도 성공을 못한다든지 하는 별의별 녀석들이 다 있었죠. 운동신경이 둔한 저로서는 말할 것도 없구요.

 

그러나 L은 달랐습니다. 농구시험마저도 너무나 진지했죠. 작은 체구지만 단단한 몸집, 검은 뿔테 안경 사이에 잔뜩 구겨진 신경질적인 미간, 꽉 다문 이빨에서 '반드시 다 성공하고야 말겠다'는 목숨을 건 사투의지가 활활활 느껴졌습니다. 처음 던진 공은 실패. 공이 링을 맞고 튕겨 나가자 L은 머릿칼을 움켜 쥐고 몸부림을 치더군요. 참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다시 한번 던졌습니다. 이번엔 다행히 들어갔습니다. 하지만 다음 슛은 실패. 그렇게 성공과 실패를 몇 번 반복하니 10개의 슛 중 6개의 공이 성공했습니다. 그 친구는 얼굴부터 목까지 새빨개져서는 물을 마신다는 핑계로 황급히 시험장을 빠져나가더군요. 성공이 아니라고 생각했던거죠. 일등만을 줄곧 외쳐오던 L에게 있어서는.

 

늘 그 친구의 삶은 그랬던거죠. 남들은 쉬는 시간이 되면 매점으로 달려가 빵과 우유를 허겁지겁 먹었지만, 이 녀석은 전 수업의 과목을 복습하거나 아니면 뒤에 이어질 수업의 과목을 예습하는데 열중했습니다. 늘 맨 앞자리를 떠날 줄 몰랐죠. 그의 책상 주변을 지나갈 때면 뭐라고 딱히 집어 말할 수는 없는 무언가 불편한 아우라가 느껴졌어요. 손가락이 부러질듯이 움켜쥐고 있는 그의 연필을 보고 있자면 그 연필마저도 '뭘 꼴아봐. 니 눈에 부정이 끼어있다. 꺼져버려!'하고 나를 째려보는 것 같았어요. 양 손에 단단히 고정되어 있는 교과서와 문제집은 무슨 마법의 책이라도 되는냥 눈에서 쉬 떼질 않더군요. 혹여라도 실수로 어깨라도 치면 그 신경질적인 미간에서 레이져 빔이라도 발사될 것 같았어요. 아무리 힘깨나 쓴다는 친구들도 그 친구만은 건드리지 않았어요. 그는 명실공히 학교를 빛낼, 그리고 장래의 대한민국 인재가 될 보물이기에 선생님들의 두터운 비호를 받고 있었거든요.

 

"죽도록 공부해도 죽지 않는다". 고등학교 2학년 때 학급 칠판 옆에 걸려있던 급훈이었습니다. 각진 얼굴에 딱 벌어진 어깨로 로보트 변신을 할 것 같았던 우리 담임 선생님이 손수 붓글씨를 쓰셔서 걸어두신 '위대한 교훈'이었습니다. 초일류 S대를 졸업한 자신의 무용담을 늘어놓기를 즐겨하셨죠. 수업 시간에 졸고 있는 학생이 보이면 뚜벅뚜벅 말굽소리를 내면서 다가가 귀를 꼬집어 잡아올립니다. 토끼처럼 귀가 늘어나도록 동서남북으로 흔들어대면서 심하게 꾸짖곤 하셨죠. "졸음이 오냐? 죽도록 공부해도 대학에 갈까 말까 하는데 지금 눈이 감겨? 너희들 잘 들어. 죽도록 공부해도 안죽는다. 엄살부리지 말고 제대로 정신차리고 공부해 알았어?"

 

그리고는 또 하나 물으십니다. "너희들 아인슈타인이 몇 시간 잤어?" 그럼 우린 기계처럼 대답하죠. "3시간이요", 또 묻습니다. "에디슨은?". 이젠 기계가 대답합니다. "2시간이요." 단호한 명령이 떨어집니다. "너흰 4시간 이상 자지 말고 공부해 알았어? 알았냐고!" "네~~~" 큰 소리로 대답하고 정자세를 취합니다. 냉냉한 공기에 입김마저 나올 것 같았어요. 선생님은 늘 위인들의 위대한 삶을 이야기해주셨어요.

 

아마 L도 그런 위대한 인물이 되길 원하고 또 원했나 봅니다. 어떤 친구의 말에 따르면 '인도에서 제대로 적응하지 못해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렸다'는 슬픈 이야기도 들려오더군요. L의 잣대에서 따지고 본다면 적응은 기본이고 그곳에서도 최고가 되어야 자기 직성에 풀렸겠죠. 하물며 농구시합에서까지도요. 사업가로 국제적 명성을 날리는 아버지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서라도 하루바삐 '전교 1등'이라는 고지에 다다라야만 한다는 강박관념도 그의 죽음에 한 몫 했겠다는 생각도 해봅니다.

 

제 나이도 이제 서른이 훌쩍 넘었습니다. 가끔 우연찮게 헌책방을 지날 때면 어렸을 적 읽었던 그 위인전들이 빼곡하게 늘어서 있는 광경을 보곤 하죠. 그런데 저는 그 수많은 위인전기 중에서 인상에 남는 사람이 한 명도 없습니다. 그냥 이름과 내용 정도만 기억날 뿐이죠. '이 수많은 사람들 중 누군가를 롤 모델로 삼아 나는 앞으로 이렇게 살아야겠다'는 막연한 목적 하나 없이 그냥 위대해져야겠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던 겁니다. 그냥 무엇을 하든 남들이 위대하다고 평가해주기만을 원한 건 아닐까 하는 매우 1차적인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한 겁니다.

 

선생님이 위인전을 이야기해주실 때 한 가지 빠뜨린 점이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습니다. '위인은 평범하지 못하다'. 인류의 역사에는 길이 남을 수 있어도 내 가족과 주변 친구와 함께 '평범한 삶'을 공유하기에는 그가 맡은 세기의 임무가 너무나도 막중했다는 사실. 대다수의 위인들은 결코 행복한 삶을 살지 못했습니다. 죽도록 공부만 했거든요. 그리고 평범한 사람과 어울리지 못해 외로움과 병으로 단명하는 사례도 결코 적지 않았구요. 쓸쓸한 인생이었단 말입니다. 평범하지도 않았고 행복하지 않았고 게다가 단명까지 했다니. 차라리 바보로 사는 게 나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냥 '나는 바보다' 하고 생각하니 한결 마음이 가볍습니다. 진작에 저에게 그걸 알려주셨다면 이렇게 '죽도록' 공부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는 미련아닌 미련도 남습니다.

 

우린 대체 무엇을 위해 여기까지 뛰어온 것일까요?

꼭 그렇게 몇 권 안에 손꼽히는 위인이 되었어야만 했나요?

 

Written by 사샤.

Posted by 해적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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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07.10 19:03 신고

    잘보고 갑니다.행복한 한주가 되세요.

  2. 2016.03.31 16:39

    아인슈타인은 잠꾸러기였답니다. 11시간 이상을 잤고, 또 나폴레옹도 잘 나갈 때는 4시간 이하로 자던 인물이였는 데, 6시간 이상 자는 사람을 바보라고 했다는 데, 월터루 전투 패배 이후에는 작전회의도 불참하며 잠을 잤다고 합니다. 스트레스로 인한 불면증에 시달렸죠. 열심히 공부하는 것은 맞지만, 12시 이전에는 자야하고 새벽 3시를 넘기면 몸이 결국 무너집니다. 몸이 한번 무너지면 되돌리기가 어렵습니다. 잠, 몸이 원하는 만큼 자세요. 깨어있을 때 무엇을,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한 것이죠.

    나폴레옹 잠을 정복했냐 ? 결국 잠에 정복 당했지 !!! 어부보다 못한 최후
    http://softwant.com/cgi-bin/kimsq/softwant/itgi.php?mid=240&r=view&uid=2542



요즘 한집 건너 볼 수 있는 것이 커피숍이자 카페다. 작은 동네인 우리 동네도 벌써 들어선 카페만 해도 4개나 된다. 언제부턴가 확실히 우리 생활 한자리 잡고 있는 것이 커피가 됐다는 소리다. 그렇다고 커피라는 음료가 갑자기 우리나라에 뚝 떨어진 것은 아니다.


예전에도 집 찬장 같은 곳을 보면 병에 담겨있는 인스턴트커피가 있었고, 그 옆에는 항상 ‘프리마’가 함께 있었다. 티스푼으로 커피를 몇 숟갈 담고 프림을 넣고, 설탕도 넣어 물을 부어 마셨다. 프림은 우유 대신이라고 볼 수 있는데 가끔 프림만 물에 타 먹어도 고소하니 맛이 좋았다.



인스턴트커피는 오래전부터 가정집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래서 예전 드라마를 보면 조금 있는 집에서 식사 후 커피를 마시는 영상을 보면 갈색의 인스턴트커피가 담겨 있었다. 그리고 ‘커피잔’에 마셨지 원두커피처럼 ‘머그잔’에 먹는 모습은 없었다. 


시간이 지나 세상의 편리함도 인스턴트커피에 적용이 됐는데 그게 바로 ‘믹스커피’의 등장이었다. 믹스커피는 말 그대로 커피, 프림, 설탕이 믹스되어 있는 제품인데 윗부분을 살짝 뜯어 컵에 넣고 물을 넣으면 한번 저어주면 커피가 완성됐다. 인스턴트커피가 또 한 번의 가공을 통해 ‘믹스커피’라는 커피의 종류가 탄생한 것이다. 


믹스커피가 등장하면서 조금씩 많은 것이 변했다. 우선 다방의 쇠퇴다. 예전에 복덕방이라고 불리던 부동산을 보면 동네의 어르신들이 모여 장기나 바둑, 혹은 고스톱을 치시면 꼭 다방에서 커피를 배달시켰다. 그럼 다방에서는 끓인 물과 커피, 프림, 설탕을 보자기에 잘 싸서 배달을 왔다. “오빠! 오빠는 프림 몇 개?”라는 대화를 통해 그 사람의 커피취향에 맞춰 그 자리에서 커피를 탔다. 소위 말하는 ‘다방커피’였다. 사실 복덕방에서 직접 인스턴트를 타도 맛은 똑같겠지만 사실 남자들에게 그것도 귀찮은 짓일 뿐이라 대게 시켜 마셨다. 아님 다른 목적(?)이 있었을 지도.



‘다방커피’라는 말은 나중에도 많이 쓰였다. “커피 어떻게 드릴까요?” “난 다방커피로 부탁해” 다방에서 커피를 시켜달라는 의미로 보일지 모르지만 그 뜻은 아니다. 다방커피의 의미는 커피와 프림, 설탕의 비율에 있는데 커피2, 프림3, 설탕3(숫자는 스푼의 개수)의 비율로 타는 것을 의미한다. 취향에 따라 조금씩은 달라지겠지만 아무튼 다방커피라는 메뉴(?)는 확실히 존재했다. 


믹스커피가 등장하고 더 이상 커피를 배달시킬 필요가 없어졌다. 이유는 단순했다. 편리해졌기 때문이다. 스푼으로 커피를 넣다 알갱이를 떨어트릴 이유도 없어지고 프림을 쏟을 염려도 없어졌다. 그저 물만 끓이면 커피를 먹을 수 있게 됐다. 그래서 귀찮은 것을 지지리도 싫어하는 남자들도 커피를 탈 수 있게 됐다. 거기에 물 조절만 잘하면 모든 커피의 맛이 동일했다. 다른 목적이 있지 않고서야 비싸게 다방커피를 시킬 필요가 없게 된 것이다.


믹스커피의 등장으로 집에서는 더 이상 커피가 들어있던 유리병은 발견하기 힘들어졌다. 커피를 자주 먹는 집도 편리한 믹스커피를 두고 먹었지 번거로운 인스턴트커피와 프리마를 두진 않았다. 

믹스커피는 집안에서도 커피를 쉽게 먹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줬지만 믹스커피의 등장으로 큰 혜택 본 곳도 다름 아닌 현장직에 종사하는 많은 분들이 아닐까 한다. 예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잠시 공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는데 쉬는 시간이면 꼭 믹스커피를 마셨다. 




쉬는 시간이 그리 길지는 않았지만 믹스커피 한잔 마실 시간은 충분했다. 만약 믹스커피가 없었다면 현장에서의 커피는 귀찮아서라도 먹지 않았을 거 같다. 물론 커피가 좋아 번거로운 걸 감수하고 먹는 사람도 있었을 지도 모르지만 확실히 믹스커피는 장소, 시간의 제안을 줄였다. 언제 어디든 컵과 물만 있으면 먹을 수 있게 됐고, 더불어 티스푼도 필요 없었다. 그냥 커피 넣고 남은 봉지로 휘휘 저으면 그만이다. 


비위생적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오랫동안 씻지 않고 내버려둔 티스푼보단 위생적이다. 나는 집에서도 설거지 귀찮아 봉지로 저을 때도 있는데 이것도 나름 믹스커피가 생기면서 생긴 재미있는 문화라고 생각한다.


믹스커피는 나이, 성별, 국적을 넘어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믹스커피를 한번 맛본 외국인은 극찬을 날렸고, 머리가 백발이신 할머니 할아버지도 즐겨 마신다. 한편으로 믹스커피는 우리나라의 커피 대중화를 이룩한 일등공신이 아니었을까? 믹스커피 없이 원두커피와 커피숍이 우리에게 왔다면 이를 받아들이고 대중화되기까지는 시간이 더 걸렸을 테니 말이다.


written by 선의

Posted by 해적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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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04.01 15:12 신고

    4월에도 사랑과 행복이 넘치는 시간이 되시길 빕니다.

 


기교가 무엇인지 보여주마- 쇼팽 연습곡

 

쇼팽 이전에도 연습곡은 존재했다. 오늘날까지도 피아노 학원의 바이블로 우뚝 서 있는 체르니가 대표적인 선구자다. 쇼팽과 피아노에서 양대산맥을 이루고 있는 '피아노의 귀신' 리스트도 어렸을 적 체르니에게 탄탄한 기본기를 사사했다. 피아니스트에게 연습곡은 다소 지루한 과정이지만 반드시 넘어가야 하는 필수 코스다. '피아노의 시인' 쇼팽은 연습곡의 수준이 어디까지 나아갈 수 있는지 단단히 보여주었다. 그야말로 연습곡의 끝판을 완성한 것이다. 그의 연습곡은 결국 공연장 연주곡의 반열에 올라섰다.

 

쇼팽이 활약하던 시기는 낭만주의 시대로, 피아노가 독립된 악기로 인정받아 이제 막 기악으로서 꽃을 피우던 시기였다. 쇼팽과 리스트의 초절정 기교의 곡들을 들어보면 딱 그 생각 밖엔 들지 않는다. '어디 쳐볼 수 있으면 쳐봐라'. 락으로 따지면 잉위 맘스틴과 임페리테리의 끝을 모르는 속주를 듣는 느낌이다. 가공할만한 속도감, 그 가운데에서도 씨알머리하나 엇나가지 않는 정교함. 이 정점에서 쇼팽은 생각한 것 같다. '어? 그러고 보니 피아노 기본기 교재는 있어도, 피아노 기교 교재는 없네?' 

 

총 24곡으로 이루어진 작품이다. 이 곡들이 작곡된 시기는 정확치 않지만 작품 10은 1829년~1936년 사이에, 작품 25는 1832년에서 1936년 사이에 작곡된 정도로 추정하고 있다. 그는 1810년에 태어났다. 그러니까 다 20대에 쓰여진 곡이다. 이미 그는 청년 시기에 피아노의 꼭대기에 올라서서 후학을 염두한 연습곡을 지은 것이다. 리스트가 그랬던 것처럼 쇼팽 역시 파가니니의 영향을 크게 받아 이 연습곡을 완성했다. 화려한 연주기교에 더해 '피아노의 시인' 특유의 시적 표현을 톡톡히 담아냈다. 당대 보수파들에게 '예술의 파괴'라고 욕 꽤나 먹었지만, 슈만과 리스트에게는 오히려 극찬받았다. 낭만주의가 무엇인지 교육적으로 몸소 보여준 쇼팽의 결정체라 하겠다.

 

냉철한 해석, 연습곡은 연습곡으로 끝나야 한다- 마우리치오 폴리니

 

'클래식 초보자'도 들어보면 어디서 들어본 듯한 곡들이 여러 개 걸릴 것이다. 그만큼 대중들에게 사랑을 받아왔다고 보면 되겠다. 작품의 명성에 걸맞게 수많은 음반이 출시되어 있다. 그 중에서도 전문가들이 단연 탑클래스로 손꼽는 명반이 있다. 마우리치오 폴리니의 연주다.  

 

1942년 출생, 올해 나이 일흔 하나, 백발이 성한 할아버지다. 이 분도 천재다.(세상엔 참 천재도 많다;;;) 불과 15살에 제네바 콩쿠르에서 2위로 입상하는 기염을 토한다. 그렇다면 그 때 1위는 누가 했을까? 혜성처럼 등장한 '피아노의 여신' 마르타 아르헤리치다. 이 두 사람이 공식적으로 '우리는 라이벌이다'라고 이야기한 적은 한번도 없다. 그러나 대중의 시선은 이미 그와 그녀를 세기의 라이벌로 정의내렸다.

 

아르헤리치가 열정의 심볼이라면, 폴리니는 냉철의 아이콘이다. 똑같은 쇼팽을 연주해도 완전히 다른 해석이 나온다. 아르헤리치가 연주한 쇼팽 피아노협주곡 2번 3장을 들어보라. 듣는 사람이 제압당한다. 엄청난 카리스마로 시작부터 좌석에 앉아있는 청중을 꽁꽁 묶어버린다. 폴리니는 다르다. 열정으로 대중을 휘어잡기보다는 표준적인 감성으로 작품의 실체를 밝고 명확하게 이끌어낸다. 그가 서른살에 녹음한 쇼팽의 연습곡도 다르지 않다.

 

한 치의 오차 없이 톱니바퀴처럼 딱딱 맞아 굴러간다. 손이 기계같이 느껴질 정도다. 음량 배분에서도 절대적인 안정감을 추구하고 있고, 핑거링 역시 냉정함을 고수하고 있다. 앨범 쟈켓의 표정을 봐도 알 수 있다. 주어진 곡을 주어진 대로 칠 뿐이라는 담담한 얼굴을 짓고 있다. 혹자는 의구심을 품어 볼 수도 있다. '감성과 서정을 중시했던 쇼팽도 과연 이렇게 연주했을까요?' 폴리니의 연주를 듣고 난 나의 대답은 이렇다. '연습곡은 연습곡일 뿐이다'. 

 

폴리니는 '쇼팽'의 연습곡보다는 쇼팽의 '연습곡'에 초점을 둔 것이다. 아무리 쇼팽이라고 해도 기교와 시적 감정의 표현을 담아내는 교재에서는 표현의 중립을 지켰을 것이라는 확신이 폴리니의 곡에 그대로 담겨있다. 이렇게 얘기해도 이건 너무 차갑고 이성적이지 않냐고 불평하는 혹자 있을지 모른다. 그래도 할수없다. 아무리 따져봐도 이 이상 쇼팽 연습곡을 바이블의 관점에서 해석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 같다. 마음이 갈피를 못잡고 싱숭생숭할 때 중립과 냉정을 찾고 싶다면 이 곡 한번 들어봐라.

 

[쇼팽 에튀드 Op. 10/25/DG 413794-2]

 

Written by 사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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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해적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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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카페에 가서 책 보고 있는데 옆에서 문득 얘기하는 소리가 들리더라구요. 악관절 때문에 밥도 못먹는다구요. 아, 나만 그런게 아니구나. 티비에서도 룰라 김지현이 악관절 때문에 귀가 안들리는 증상까지 생겨서 양악수술 받았다는 소식도 들었어요. 생각외로 많은 사람들이 저와 비슷한 고통을 겪고 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사실 저는 악관절이라는 증상을 겪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방치해둔 대표적인 케이스라고 할 수 있죠. 이러다 말겠지, 저러다 말겠지 하다가 이빨 끝 다 나갔구요.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턱에서부터 머리까지 깨질것 같은 고통 때문에 하루 종일 두통약 달고 지낸 적도 한 두번이 아니었습니다. 어느날 몸살이 나니까 악관절부터 나빠지더라구요. 너무 아파서 이건 도저히 안되겠다 싶어서 스스로 증상을 지켜봤습니다. 어디서부터 문제가 발생하는지를요.

 

1. 상체에 힘빼라

가만히 지켜보니 쓸데없이 상체에 힘을 주고 있는 경우가 많더라구요. 가령, 조금만 긴장하거나 스트레스를 받으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이빨을 악 다물고 있습니다. 어깨에 힘 잔뜩 들어가 있구요. 당연히 어깨가 올라갑니다. 상체 전체에 힘이 들어가게 되죠. 하루에도 몇 십번을 반복하고 있는 모습을 봤습니다. 그 때마다 힘을 빼는 연습을 했어요. 계속 반복될 때마다 온 몸에 기운이 빠졌다는 생각으로 어깨를 내리고 큰 숨을 들이쉬었죠. 이 동작만 2주 정도를 했는데도 악관절이 몰라보게 줄어들었습니다. 이게 제일 중요합니다. 상체에 힘 빼는 연습부터 하세요.

 

2. 다리 꼬지 마라.

회사에 앉아 있다보면 다리를 꼬거나 비틀고 있는 경우가 적지 않아요. 결과적으로 이 행동이 상체에 힘을 가중시키는 결과로 이어지더라구요. 의자에서 허리 꼿꼿히 피고 똑바로 앉아 있는 연습하세요. 다리는 90도 각도로 편하게 내려놓는다는 생각으로 힘빼고 앉으시구요. 책상과 의자 높이 조절도 필수에요.

 

3. 운동 부족도 원인이다.

악관절의 근본적인 원인은 스트레스입니다. 누구나 스트레스는 있어요. 그런데 이걸 풀지 못하니까 결국 몸 안에서 돌도 돌다가 턱으로 갑니다. 운동 안하지, 자세 나쁘지, 스트레스가 체내에 그대로 쌓여 뇌를 자극합니다. 뇌는 잠재된 스트레스를 이겨내기 위해서 자는 도중에 무의식적으로 평소의 이겨내는 행동을 일으키죠. 이 악물고 버티는 그 습관 말이죠. 격한 운동을 하라는 소리가 아닙니다. 오히려 격한 운동은 악관절을 더 악화시킵니다. 가볍게 땀 흘릴 수 있는 정도의 운동을 규칙적으로 하세요. 스트레스를 뽑아낸다는 마인드 컨트롤을 하면서 운동하면 효과가 배가 됩니다.

 

4. '빼쨰라'는 마음가짐으로 살아라.

악관절은 보통 예민한 사람 또는 예민한 직업을 가진 사람에게 잘 나타납니다. 꼼꼼한 작업을 요하거나 항상 데드라인에 쫓기는 그런 류의 직업군 말이죠. '오늘 안되면 내일 해도 세상 안망한다'는 생각을 오늘부터 품어 보세요. 그리고 메모장이나 다이어리에 반복해서 씁니다. 성질 뻗치거나 누군가와 마찰이 생겼을 때 반복해서 생각해보세요. '에라이 배째라' 그냥 이런 마음으로 그냥 편하게 말이죠. 예민한 사람이 그렇게 생각해야 보통 사람처럼 생각하게 됩니다.

 

5. 잘 때 조심해라.

잘 때 머리맡에 내일 할 일이나 그런 거 다 치우고 자세요. 그리고 자기 직전에 격하게 두뇌 쓰는 일은 절대 하지 마시구요. 잠재의식이라는 건 하루 이틀에 만들어지는 게 아닙니다. 자기 전을 항상 조심하세요. 가급적 재미있는 예능이나 짤막한 코미디극, 아니면 조용한 자기만의 취미를 즐기다가 편한 자세로 잠드세요. 그리고 반드시 자기 전에 '나는 잘 때 악관절을 일으키지 않고 좋은 마음으로 잠들 거다'라고 생각하세요. 우습게 보일지 모르지만 돈 드는 거 아니니까 한번 해보세요. 이것도 2주에서 길게 한 달 정도 연습하면 분명히 효과가 나타납니다.

 

이 다섯가지를 한 달 정도 지킨 결과, 현재 2주 동안 한번도 턱을 깨물고 자는 증상이 나타나지 않았어요.

 

대한민국에 악관절 환자들, 수술 생각하기 전에 스스로 고쳐보겠다는 마음가짐 한번 가져봅시다 화이팅!!! 

 

Posted by 해적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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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직장인들, 많이 변했어요. 황금같은 점심시간 쪼개서 헬스클럽 다녀오는 사람들, 회식 자리 줄이고 주말 등산 가는 사람들, 틈틈히 배운 요가로 아침 저녁 스트레칭으로 몸의 긴장을 풀어주는 사람들. 일에 찌들고 지쳐버린 자기 몸을 적극적으로 돌보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어요.

  

그런데 이렇게 열심히 운동해도 스트레스 지수가 쉽게 떨어지지 않는 분들이 있습니다. 오히려 운동을 하면 할수록 더 체력이 떨어지는 분들이 적지 않아요. 왜 그럴까요? 몸은 돌보지만 정작 마음은 돌보지 않기 때문입니다. 마음도 몸과 똑같아요. 일의 몰입에도 한계가 있고, 마음의 방어벽에도 일정한 두께가 있습니다. 정적수준을 넘어가면 집중력이 현저하게 떨어지고, 방어벽은 허물어져 의기소침과 우울증에 쉽게 노출되는 것이죠. 몸살은 신경쇠약에서부터 시작됩니다. 마음도 몸과 같이 세심한 관심과 관리가 필요해요.

 

하루 중 마음 정리가 가장 필요한 시간은 언제일까요? 바로 잠들기 전입니다. 잠자는 시간은 의식의 세계에서 무의식의 세계로 넘어가는 시간입니다. 그런데 의식의 세계에서 차곡차곡 쌓여버린 마음의 수많은 오물과 찌꺼기들, 정리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요? 그대로 뇌 속 어딘가에 버려집니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썩어 곪아버리죠. 상태가 심각해지면 그 오염물들이 무의식의 세계로까지 뿌리를 뻗습니다. 순식간에 줄기와 가지가 솟아오르고 잎이 무성해집니다. 깨끗했던 마음 속 공간이 온통 독소의 숲으로 변해버리는 거죠.

 

'내일 출근하면 해결해야 할일이 산더미같은데...잘 될까?', '아, 오늘 그 사람은 정말 이기적이었어.', '아침 출근길 생각하니 정말 끔찍하다.', '과장님한테 욕먹은게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아.' 이런저런 잡생각이 부풀어오르다보면 잠이 올리가 없죠. 스탠드를 다시 켜고 이불에서 나옵니다. 핸드폰을 열어 스케쥴을 살펴봅니다. 가방에 넣어둔 서류철도 들춰내죠. 걱정은 태산같이 높아져만 갑니다. 온통 머릿속이 뒤죽박죽이 되어버린 채 잠이 들어버립니다. 숙면이 이루어질리가 없죠. 당연히 아침이 피곤합니다. 무의식의 세계엔 온통 마음의 쓰레기들 뿐이거든요.

 

마음에도 따듯한 이불을 덮어주세요. 잠들기 전 잠시 생각했던 것들이 꿈에 나오는 경우, 결코 적지 않습니다. 그만큼 '마음의 이불덮기'는 나만의 중요한 힐링이에요. 자신이 좋아하는 조용한 음악 하나 틀어보세요. 그리고 눈이 맑아지는 아름다운 그림책이나 풍경 사진첩을 찬찬히 훑어 보세요. 자세히 보지 말고 그저 즐기듯이 책장을 넘기세요. 눈을 편안하게 만들어 주자구요.

 

차분한 음악으로 귀를 씻어주고, 푸근한 그림과 사진으로 눈요기도 했습니다. 누웠나요? 잡생각을 펼치는 대신 스스로에게 위안어린 한 마디 남겨주세요. 오늘도 정말 수고했노라고. 실수한 것들, 놓쳐버린 것들, 이제 그만 용서하고 좋은 마음으로 잠들자고. 힐책거리, 나쁜 생각은 하루에 하나씩 종이비행기에 날려 보내요. 칭찬거리를 그 자리에 채워넣자구요.

 

'마음의 이불덮기'가 하루이틀 지나고 한달두달이 계속되면 마음 속 깊은 어딘가에서 서서히 용기가 샘솟는 걸 느낄 수 있을 거에요. 상대방을 대하는 나의 마음도 훨씬 부드러워지구요.

 

세상에 쫓기듯 잠들지 말고, 세상과 나 모두를 보듬어주고 잠들자구요. 오늘도 좋은 하루, 좋은 밤입니다^^

 

Written by 선장

Posted by 해적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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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02.28 02:24

    그래요 제생각이그래요
    마음을 돌봐야하죠 완전 공감

우리나라 식탁엔 반드시 젓가락이 올라야 한다. 포크도 아닌 젓가락이어야 하는데 유치원 다는 아이들에게도 젓가락을 가르칠 정도면 우리나라 식사문화에 미치는 영향이 꾀나 큰 것 같다. 

일본과 한국의 도시락문화 발달에 한 영향도 젓가락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일단 젓가락은 도시락에 담기 편하다. 포크나 나이프처럼 덩치가 큰 것도 아니고 굴곡진 것도 아니다. 그냥 밥 위에 놓아도 있는 듯 없는 듯하다. 


더불어 젓가락은 나무로도 만드는 것이 가능하다. 먹고 그냥 버리고 올 수 있다는 소린데 작은 반찬용기 안 반찬들 집어 먹기에도 편하다. 지금에서야 플라스틱 나이프와 포크도 있다 치지만 옛날엔 생각지도 못할 부분이었다.

사실 젓가락 하나만 있어도 잘 사용하는 사람은 잘라 먹을 거 다 잘라먹고 밥도 먹을 수 있다. 나이프와는 범용성의 크기가 다르다. 군용숟가락이라고 해서 숟가락과 포크가 하나로 되어 있는 포크숟가락을 어렸을 땐 많이 이용했지만 나이 먹고는 이것도 영 불편하다. 군대에서는 젓가락을 사용할 수 없는데 진짜 불편했다. 젓가락의 편리함을 몸소 느낀 셈이다. 


어릴 적 젓가락 사용은 두뇌개발에도 좋다고 하니 젓가락은 두루두루 좋은 아이템인 셈이다. 자, 오늘 소개할 도시락은 GS25 김혜자 도시락 중 하나인 ‘등심 돈까스 도시락’이다. 가격은 3천원으로 적정수준의 가격이다. 우선 바쁜 이들을 위한 세줄 요약 들어간다.


+세줄 요약+

돈까스, 카레, 볶음 김치로 구성. 김혜자 도시락답게 밥의 상태는 양호하다. 이름답게 돈까스를 주력으로 내놓은 도시락이라 돈까스의 비율이 큰 편. 하지만 편의점 도시락의 단점 중 하나인 바삭함은 부족하다. 카레도 수분이 많이 부족한 편. 여러모로 아쉬운 도시락.

*별점 : ★





GS25 등심 돈까스 도시락

이 도시락은 국민 대다수가 좋아하는 돈까스를 주력으로 내세운 도시락이다. 돈까스는 남녀노소 싫어하는 사람을 손에 꼽을 정도로 대중적 음식이다. 이를 주력으로 내세운 도시락인 만큼 대중성은 크다. 

살펴보자면 돈까스 다섯 조각, 카레, 볶음 김치로 구성되어 있다. 돈까스를 주력으로 하나 양은 사실 부족한 편이다. 이를 대응으로 밥과 먹을 수 있는 카레가 들어있으며 모든 반찬에 상성이 좋은 볶음김치가 들어있다.

돈까스를 이름을 내세운 만큼 돈까스의 두께는 합격점이다. 생각보다 두껍다. 일반적으로 분식집에서 먹는 돈까스와 비슷하거나 조금 두껍다. 확실히 튀김옷이 감싸고 있는 내용물(고기부분)의 씹는 맛이 있다. 데리야끼 소스와의 궁합도 좋은 편이다. 그러나 단점도 돈까스다. 



일단 비율에 있어서 이름은 돈까스 도시락이라지만 사실 돈까스보다 나중엔 카레에 의존도가 높다. 쉽게 말해 돈까스가 적다. 어렸을 적 어머니는 돈까스를 반찬으로 많이 싸주시고는 했는데 미리 고기를 사와 빵가루에 묻혀서 미리 냉동실에 얼려 놓고 도시락 반찬으로 해주셨다. 그리곤 돈까스를 가장 큰 반찬 통에 싸주셨다. 왜? 돈까스가 주력이었기 때문이다. 


분식집 가서 돈까스를 먹어보자. 그럼 어떻게 나오는 가? 밥은 한 수쿱 정도 나오고 돈까스가 80%를 차지한다. 식사를 마쳤을 때 밥은 위의 20%만 채워야 한다. 나머지는 돈까스가 채워야 ‘돈까스’라는 이름으로 음식을 내 놓을 수 있는 거다. 하지만 이 도시락은 ‘돈까스’를 이름으로 내세웠음에도 불구하고 돈까스보다 카레에 의존도가 높다. 차라리 ‘돈까스와 카레 도시락’이라면 좋았을 것 같다. 


카레도 보면 퍼석퍼석하다. 거기에 도시락에 뭉쳐 들어있어 전자레인지에 전체적으로 데워지지 않는다. 즉, 어느 부분은 따뜻하고, 어떤 부분은 차갑다. 예전부터 말했지만 그렇다고 더 돌리면 돈까스가 눅눅해진다. 


카레의 식감도 좋은 편이 아니다. 아무래도 카레라면 수분이 있어 밥에 비벼먹을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다. 잘못하면 흐를 수 있고 옆 반찬으로 넘어갈 수 있기 때문에 수분을 줄인 것이겠지만 그렇기에 맛이 없다.


레토르트 식품의 한계이겠지만 들어있는 카레로 밥을 비벼먹을 수 있는 상태는 아니다. 그저 밥 위에 올려놓고 같이 먹는 상태다. 식감도 좋지 못한데 퍼석퍼석한 것이 흡사 깎아 논지 오래된 사과 같다. 


이 도시락엔 젓가락이 아닌 포크숟가락이 들어있는데 이것도 사실 좀 불편하다. 돈까스가 부족하기 때문에 여러 번 베어 먹게 되는데 숟가락으로 찍어 베어 먹고 나면 돈까스가 그대로 숟가락에 붙어있다. 그럼 숟가락에 돈까스가 붙어 있기 때문에 김치를 먹을 수가 없다. 그래서 다시 입으로 물어 돈까스를 내려놓고 먹어야한다. 아니면 그냥 돈까스를 한 번에 다 먹는 수밖엔 없다.

왜 젓가락이 없고 포크숟가락이 들어 있는지 잘 모르겠다. 카레 때문이라는 추측이 들지만 이 도시락에 들어 있는 카레는 젓가락으로도 충분이 집을 수 있다. 그만큼 퍽퍽하다. 





이름답지 않게 많은 것이 부족한 도시락이다. 아무래도 ‘돈까스’라는 이름의 기대치가 높다보니 더 그럴 수 있겠지만 세세한 정성이 부족하다. 도시락은 정성인데 말이다. 

돈까스는 최고의 반찬이다. 손도 많이 안가고 맛도 좋다. 케찹에 먹어도, 데리야끼 소스에 먹어도 맛이 좋다. 이보다 상성이 좋은 음식은 없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돈까스를 추억으로 말한다. 좋든 나쁘든 말이다. 그래서 더욱 아쉬운 도시락이다.


Tip. 밥과 함께 비벼 먹을 수 있는 카레나 짜장이 들어있는 도시락은 피하는 게 좋다. 대게 도시락에서는 수분을 제거한 상태기에 식감이 떨어진다. 그리고 주력반찬의 대응할 만한 것이 있다는 것은 반찬의 양이 적다는 소리다. 즉, 재수 없으면 나중에 맨밥을 먹을 수 있다는 것이다. 


written by 선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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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해적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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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는 중국 후한시대 말, 위ㆍ촉ㆍ오가 천하를 두고 치열하게 다툰 전쟁사다. 역사의 시간으로 재본다면 백년이 채 되지 않은 다소 짧은 스토리다. 중국사 전체의 비중에서 따져 봐도 삼국시대가 자치하는 역사적 의의는 사실 그다지 높지 못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국지는 동양의 남자들을 흥분과 열광의 도가니로 빠뜨려버린 고전 중의 ‘TOP’으로 손꼽히고 있다. ‘삼국지를 열 번 읽은 사람과는 논쟁하지 마라’는 말까지 전해져 오고 있다. 여하튼 삼국시대가 실제 어떻게 벌어졌는지 정확히 몰라도, 삼국지가 나에게 미친 파급력이란 매우 깊고 진하다.

 

내가 처음 삼국지를 접한 것은 책이 아니라 게임을 통해서였다. 국민학교 4학년 때 동네친구 집에 놀러갔다가 일본 KOEI사에서 출시한 ‘三國志 Ⅲ’ 게임을 알게 됐다. 11살의 어린 나이였지만, 권모술수와 용병술로 천하를 제압해 나아가는 시뮬레이션 전략에 그만 흠뻑 빠져 버렸다. 그 맛을 잊지 못한 나는 방학만 되면 외할머니 댁으로 부리나케 달려가 길게는 한 달 동안 머물며 삼국지 게임을 마음껏 즐겼다. 그곳에는 삼국지에 열광하는 사촌형과 최신형 컴퓨터, 천혜의 골방이 있었다.

 

당시 삼국지 게임은 한글 번역본이 없었던 탓에 한자로 된 자막을 읽고 눈대중으로 숙독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런 것 따위는 통밥으로 익히면 그만일 뿐 문제될 것이 전혀 없었다. 아니 문제는커녕 도움이 되었다. 그 때 나는 서예학원을 다니고 있었기 때문에 학원에서 익힌 한자를 게임에 대입시킬 수 있었고, 더욱 몰입할 수 있게 되었다. 군사에서 ‘징병’과 ‘모병’의 차이, 인사에서 ‘등용’과 ‘임명’의 의미, 계략에서 ‘이호경식’과 ‘의서의심’이 지닌 각각의 효과는 한자를 이해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몰입의 몰입을 거듭할수록 궁금한 것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유비를 선택군주로 했을 때, 내가 등용하고자 하는 이 인물이 실제 삼국지에서는 어떤 활약을 했던 사람인지, 신야성에 유비가 주둔하고 있는 시나리오를 선택하면 조조는 왜 형주로 내려오지 않고 원소와 그토록 격렬하게 싸우는지, 마지막 시나리오에서 왜 유선의 세력이 삼국 중 가장 미약한지 등등 하나 둘 역사의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기 시작했다. 결국 국민학교 5학년 여름방학이 되자 나는 아버지에게 삼국지를 읽고 싶다고 말했다. 그 때 아버지가 나에게 준 책은 정비석 작가의『三國志』(1982년 발행, 지혜문화사)였다.

 

총 1510페이지, 모두 다섯 권으로 이루어진 이 책이었다. 당시 아버지가 소장하고 있던 책들은 가로형식이 아닌 세로형식이 많았는데 이 책 역시 그랬다. 읽기에 다소 생소한 감이 있었지만 크게 개의치 않았다. 나는 3일 만에 모든 내용을 읽었다. 정신없이 몰아치는 격렬한 스토리에 넋을 잃었다. 그렇게 한 번 삼국지 전체의 이야기를 훑고 나니 삼국지 게임에 제시된 시나리오 1~5의 타이틀에 대한 경위를 이해할 수 있었다.

 

한 왕실의 부흥을 기치로 내걸었던 ‘유비의 역사’를 위주로 다시 한번 책을 읽었다. 유비, 관우, 장비 삼형제가 도원결의로 일어난 후 수십 년을 방랑객처럼 떠돌면서 겪게 되는 시련과 고난의 에피소드 하나하나를 집중해서 읽었다. ‘선한 자’의 편에서 사건 위주의 읽기를 한 것이다. 그리고 그것에 입각해서 다시 게임에 임했다. 그렇게 몇 번을 자꾸 반복하자 뒤에서 지켜보던 사촌형이 한 마디 던졌다. “넌 맨날 재미없게 유비만 하냐? 조조가 훨씬 재밌어!”

 

나는 조조의 뭐가 재미있느냐고 되물었다. 형은 조조가 사람도 훨씬 많고 전쟁도 스케일이 다르다고 했다. 형의 대답은 그 때까지 내 머릿속에 온통 악인으로 찍혀 있던 조조라는 인물을 재조명하게 되는 계기가 됐다. 나는 중요 군주들을 중심으로 다시 한번 삼국지를 읽었다. 그리고 그 군주들이 아끼는 측근들과 핵심인물들을 손수 리스트로 작성해보았다. 비로소 삼국지의 균형적 읽기가 성립되었다. 그렇게 게임의 방식도 변해갔다. 

 

이 쯤 읽고 나면 슬슬 삼국지 게임이 지겨워 질 즈음이다. 전쟁에서 이기는 방법도 알고, 사람을 얻는 방법도 안다. 정확하게 말해서 게임을 독파한 시점이다. 이렇게 되면 강자보다는 약자를 골라서 게임을 해보고 싶은 생각이 든다. 장수, 장로, 공융, 유요, 엄백호, 왕랑 등 죄다 한 뙈기 땅만 가지고 있다가 강대국에게 점령당하는 약소국의 군주들이다. 그런데 이 사람들, 주목해서 읽지 않다보니 누군지 잘 모르겠다. 그래서 또 한번 삼국지를 읽게 된다. 삼국지의 미시적 읽기가 이루어진다.

 

이렇게 몇 번을 거듭하여 삼국지를 읽고 나면 인상 깊었던 사건과 인물의 이미지가 머릿속에 각인된다. 그리고 그것들을 중심으로 내용을 재추적하고 재구성한다. 나만의 삼국지 읽기가 시작된다. 사건을 조각조각 내보기도 하고, 떼었다 붙여보기도 하고, 가정과 가설을 세워보기도 한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한 사람의 인물에 빠져 버린다. 점점 그 사람의 삶을 동경하고, 대변해주고 싶어진다. 그리고 그 사람의 상당 부분을 내 인생에 대입시켜 보는 습관이 생긴다.

 

게임 삼국지 Ⅲ를 완파하고, 소설 삼국지를 열 번 이상 읽어본 소감이다.

 

Written by 선장

 

Posted by 해적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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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2.21 22:05



세상엔 참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것들이 많다. 내 경우엔 물건 사고 난 후의 포장 상자와 사용설명서가 꼭 그렇다. 

물건을 꺼내고 그냥 버려도 되는 상자를 이상하게 나는 잘 버리지 못한다. 이유는 별다른 게 없다. 꼭 어딘가에 쓸 수 있을 거 같기 때문이다. 그렇게 매번 방에 한 구석에 두었다 나중에 엄마의 잔소리를 한차례 듣고 나서야 버린다.

버린다고 버려도 아직도 방 한구석엔 많은 상자들이 있다. 얼마 전에 정리하다 안 사실인데 스마트폰 이전의 휴대폰 상자부터 처음 산 스마트폰의 상자, 얼마 전 새로이 바꾼 상자까지 다 있었다. 누가 보면 대리점 하냐고 할 것 같다. 물론 이 상자들은 활용성보단 예뻐서 남아있었지만 지금도 ‘버려야하나?’하고 고민한다. 상자도 상자지만 함께 있는 설명서도 상황은 비슷하다.


나름 ‘언젠간 보겠지’하고 두는데 지금까지 살면서 단 한 번도 설명서를 찾아본 적은 없다. 그러니 책상 서랍은 지금 있지도 않은 물건의 설명서로 한 가득이다. 이것도 어느 날인가 날 잡아서 싹 다 버렸지만 언제 다시 가득찰지 모르겠다. 이해는 못하겠지만 나에게 있어 물건의 설명서와 상자는 참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물건이다. 그러다보니 신발을 사올 때 마다 참 곤욕이다. 매번 크고 예쁜 상자에 담겨 있어 ‘아, 이걸 어떻게 하나?’하고 고민하기 때문이다.


못 버리는 게 또 있는데 바로 어릴 적 풀던 문제집이다. 지금 책 꽂아 놓을 자리가 부족해 책들이 슬금슬금 방바닥으로 밀고 나오는 판국에 내 방 책장에는 예전에 풀던 문제집이 책장을 한 칸이나 차지하고 있다. 물론 절대 보지 않는다. 엄마의 잔소리도 심하다.


“그놈의 문제집 좀 버려! 볼 거야?! 안 볼 거면 좀 버려” 계절 바뀔 때마다 듣는 소리다. 내가 생각해도 문제의 문제집들은 절대 안 본다. 앞으로도 물론 안볼 거 같다. 근데 못 버리겠다. 이건 상자나 설명서보다 심한데 버려야지 하면서도 왠지 어릴 적 물건을 버리면 내 추억 한 부분을 찢어 버리는 거 같아 쉽지 않다. 마음 같아선 평생 끌어안고 가고 싶다. 


이런 물건, 물질적인 것들 말고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것들도 참 많다. 우선 라면에 밥 말아 먹기가 그런 편이다. 그냥 라면만 먹으면 뭔가 허전하다. 그렇다고 밥을 말아 먹으면 너무 배불러 속이 안 좋다. 그래서 매번 고민한다. ‘말아야하나?’하고.


자정 가까이 된 시간에 오는 친구 전화도 비슷하다. 피곤한 하루를 마치고 보람찬 내일을 위해 일찌감치 씻고 이불속에 들어갔더니 울리는 친구의 전화한통. 받자니 왠지 지금 나가야 할 거 같고, 안 받자니 친구녀석에서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닌가 걱정이 된다. 특히 애인이 있는 녀석 전화의 경우 그게 더 심하다. ‘여자친구랑 헤어졌나?’하는 생각과 함께 별의별 생각이 다 든다. 참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겠다.


외근 후 4시 30분에도 많은 고민을 한다. 회사로 가자니 자리에 앉자마자 퇴근할 거 같고, 그냥 퇴근하자니 뭔가 불안하고 아무튼 참 미치겠다. 그래서 나는 그 절충안으로 커피숍을 택했는데 커피숍에 가서 일을 한다. 그리고 퇴근시간에 집에 간다. 뭐 나름의 합리화이자 절충안이었다.


추운 겨울 10분 빨리 도착한 약속, 걷기엔 멀고 택시나 버스를 타기엔 가까운 거리, 엄마와 아내가 싸울 때 등 정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것들이 세상엔 참 많다. 이런 것들에 비하면 짜장, 짬뽕의 선택은 쉬운 거 같다. 짬짜면이 있으니 말이다.


written by 선의


Posted by 해적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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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02.22 05:26

    공감가네요 힘내요 ㅋㅋㅋㅋㅋ



우연한 기회에 동대문 의류 도매상인과 친해졌다. 그에게서 이러저러한 이야기를 들었는데 듣다보니 이거 나도 한번 시작해볼까 싶다. 물론 초반에 엄청난 대출과 신체적 고통이 있겠지만 감수할 만하다.

 

전 세계적으로 동대문 같은 의류시장은 없다. 동대문시장에서 원단, 부자재부터 완성품까지 한 번에 다 볼 수 있고, 다 만들 수 있다. 게다가 지하부터 지상10층 이상에 달하는 패션몰이 몰려있고, 패션몰 매장마다 신상 옷으로 미어터진다. 동남아는 물론이고 유럽까지 소문나서 외국 사람들이 물건을 사러 몰려온다. 매일매일 신제품이 나오는 이곳은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동네다.


지금도 잘 되지만 한창 잘되던 80, 90년대에는 이런 전설이 있다. ‘돈을 포대자루에 담아서 집에 가져가면 세어보지도 못하고 다음날까지 쌓아둔다.’ 도매시장은 백 프로 현금장사고 한 번에 한두 벌에서 수백 벌까지 판매하니 잘만하면 캐쉬가 막 들어온다는 거다. 어떤 상인 분은 일마치고 집에 갔는데 호주머니마다 돈뭉치가 꽉꽉 들어차 있었단다. 이거 완전 딴 세상 얘기 아니냐고.


동대문 의류시장은 대부분 젊은 여성층을 타깃으로 하기 때문에 상인들도 대부분 20대에서 30대다. 이들은 본인이 옷 디자인에서 생산, 판매까지 다하는 ‘만능인’이다. 물론 최신 트렌드를 반영한 디자인들이다. 유명 브랜드 옷을 약간 참고하고 거기에 창의성을 가미한다고나 할까? 인기가 예상되는 제품들은 하루만에 만들어 내고는 한다.


이들 중에는 본인 가게를 운영하는 사람도 있지만 상당수가 종업원이기도 하다. 이곳에서 일하지만 점포가 없는 사람들의 최종 목표는 내 점포마련이다. 이곳 도매 쇼핑몰 안 2~3평짜리 매장 한 칸의 권리금은 억대를 호가한다. 좋은 자리는 점주의 마음대로 쫓아내기도 한다. 월세도 매년 올라서 버티기가 점점 어렵다고 한다. 그런데도 점포를 가지려고 하는 건 남다른 전설이 있기 때문이다.


  한 사입자(옷을 대신 사고 파는 중간업자)가 말하기를


“여기가 밤새고 몸 쓰면서 일해서 막노동 같죠? 이래봬도 여기 알부자들 많아요. 잘되는 점포 하나 가지면 일 년 만에 서울에서 집 사고, 차도 사요. 과장이 아니고 정말 그런 부자들이 있어요.”


입이 떡 벌어진다. 잘된다는 전제하에 일 년만 고생하면 내 집 마련의 꿈을 이룰 수 있다는 거다. 한 번은 친해진 도매상인 가게에서 하룻밤 일을 도운 적이 있다.(사실 나는 도운 거고 그분은 한 번 시켜준거다...) 여하튼 소매점에서 주문 들어온 옷들 포장하는 대만 두 시간 홀딱, 혼자서 하면 서너 시간을 넘기기도 한단다. 그리고 중간 중간 몰려드는 손님들 응대하는 것도 일이다. 


도매 점포는 옷을 입어보는 건 불가능하다. 다들 전문가들이라 걸려있는 모양새만 봐도 다 알더라. 디자인 보고 색상, 사이즈 종류 보고 맘에 들면 바로 사간다. 거래하는데 5분도 안 걸린다. 길어야 10분? 우선 만들어 걸어놓으면 파는 건 금방이다.(디자인이 기본은 된다는 전제 하에!) 소매보다 팔기는 확실히 쉽다.

영업을 마칠 때쯤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가 상인 분이 나에게 한마디 툭 던졌다.


 “oo씨, 나 내년에 점포 하나 더 낼 건데, 거기 와서 알바 해! 같이하자, 지금 일 때려 쳐!”

 “그럴까요?? 언제쯤이요?”


1초도 망설이지 않았다. 오히려 그 상인 분 잠시 당황한 것 같다. 웃으면서 “그래그래 여름쯤에~”하는데 나는 예사로 들리지가 않더라. 아직 난 연락을 기다리고 있고 시간은 1년 반이 지났다. 나도 내 집 마련의 꿈을 실현하고 싶은데, 오랜만에 염치없이 전화 한 번 해야 하나...(물론 함부로 덤볐다가 수억 날린 전설도 있으니까. 함부로 덤비진 맙시다.)


written by 돌고래


Posted by 해적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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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이나 미술관에 가면 늘 아이들을 위한  체험코너가 있습니다. 그곳은 늘 엄마와 아이들로 북적북적대죠. 뭔가를 만들기도 하고, 그리기도 하고, 스탬프를 찍기도 하고 기타 등등 요새는 체험놀이도 부쩍 발전해서 별의 별 것이 다 있습니다. 그런데 어머님들. 여기서 하나 팁을 드리도록 하죠. 아이들이 체험놀이할 때 뒷전에서 쉬지 말고 아이들을 유심히 살펴보세요. 거기에 아이들의 지금의 성향과 앞으로의 미래를 엿볼 수 있습니다. 실제 예를 하나 드리도록 하죠 후후. 


군산근대역사박물관에서 쌍천 이영춘 박사를 기리는 전시회를 하고 있습니다. 지역사회 농촌위생운동에 크게 이바지한 군산의 대표적인 위인이죠. 내용을 아는 친구들도 있겠고, 모르는 친구들도 있을 겁니다. 그런데 그런건 크게 중요하진 않아요. 중요한 건 아이들이 전시회를 보고 나서 하는 체험놀이의 결과물입니다. 마침 그곳에서는 이영춘 박사의 밑그림을 주고 색칠놀이를 할 수 있도록 해 두었더군요. 





아니나 다를까. 그림도 아이들마다 천차만별입니다. 이 점을 잘 보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은 겁니다!!! (이 그림들을 모두 아이들이 그렸다는 전제 하에서 얘기합니다) 수백장의 그림 중에서 특징으로 얘기할 수 있는 것들만 보여드리도록 하죠 후후. 




아주 스탠다드한 학생입니다. 원래 사진을 그냥 따라 그린 케이스라고 할 수 있죠. 반듯하고 말 잘듣는 아이의 전형적인 케이스입니다. 정해진 메뉴얼에 맞추어 살 가능성이 높습니다. 자기 개성이나 그런 것들은 그림에서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냥 주어진 여건에서 개척없이 순응할 스타일이라는 얘기죠. 어머니가 원하신다면 그렇게 하시고, 아니라고 하신다면 무언가 일상에서 할 수 없는 다른 교육이 필요한 그런 아이입니다. 다음 그림 보시죠. 





네. 이 친구 불만이 있습니다. 리본은 그렇다 치고 입을 보십시오. 시뻘건 색으로 입을 아예 뭉개버렸군요. 왼쪽 눈썹이 아예 코 밑으로 내려 앉았습니다. 굉장히 화가 나 보여요. 배트맨 다크나이트의 조커가 생각나네요. "Why so serious???" 이런 친구들의 경우 어머니는 지속적으로 관찰하면서 아이가 어떤 점이 불만이 있는 것인지 확인해야 합니다. 다음 보시죠. 




이 친구 보십시오! 돈을 돌같이 보고 살아오신 이영춘 박사님께 "돈 좀 있냐!"는 멘트를 과감하게 갖다 붙였습니다! 네. 전형적인 무법자 스타일이네요. 그런데 돈 좀 있냐고 묻는 사람이 안경도 깨지고 쌍코피까지 터졌습니다. 학교 내에서 개구쟁이인데다가 싸움이 잦은 아이일 가능성이 높겠네요. 위 학생들과는 달리 이름도 쓰지 않았습니다. 활발 그 자체겠죠. 이런 모습이 좋으시면 그냥 두셔도 관계는 없습니다만...자 다음 갑니다. 





꽤 재미있는 친구입니다. 영화 혹성탈출을 봤던 걸까요? 아니면 멋진 턱수염을 그려넣은 걸까요? 아무튼 뭐하나 일반적인 것이 하나 없는 판을 깨버린 친구입니다. 그리고 학위모 위에 자신의 이름을 커다랗게 써 넣었습니다. 자아도 굉장히 강한 것 같구요. 자기 세계가 굉장히 독특하고 강한 아이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러나 예술적 기질은 없습니다. 예능으로 가면 가능성이 별로 없으니 이 아이는 잘 잡아주어야겠죠. 다음요. 





화려한 인생을 꿈꾸고 있군요. 머리부터 상의까지 알록달록에 체크무늬까지 스펙터클합니다. 색안경도 빨강과 파랑의 대비색을 썼습니다. 아래 위로 자신의 이름을 분명하게 적어 넣었구요. 반과 번호도 넣었습니다. 커서...밤문화...자세히 말하면 클럽과 나이트를 좋아할 수 있겠습니다. 아이가 춤이나 노래에 관심이 있는지 살펴보는 것도 좋겠군요. 넥스트!





..........네...박사님을 여자로 만들었군요. 실명을 밝혀드릴 순 없지만 남자이름은 확실합니다. 긴 노랑머리를 늘어뜨리고 있어요. 이어폰으로 음악을 듣고 있습니다. 왜 남자를 여자로...했을까요? 좋아하는 여자가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하지는 마십시오. 남자의 심리상 정말 좋아하는 여자를 이런 식으로 폄하하지는 않습니다. 굉장히 독창적일 수도 있겠고, 아니면...네. 그만두도록 하죠. 다음요!





네..드래곤볼에 나오는 사이어인 베지터를 그렸습니다. 한쪽 눈가에는 상대의 전투력을 측정하는 스카우터를 장착했군요. 측정결과 상대의 전투력이 6,000,000인 것으로 나왔습니다. "대단하군" 한마디 날리는 것으로 보아, 그리고 눈이나 입이 굉장히 냉정함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상대보다 전투력에서 우위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우람한 팔뚝까지 그려넣은 것을 보십시오. 이 아이는 만화에 일단 미쳤습니다. 드래곤볼은 적어도 90년대 만화이거든요. 어떤 매체를 통해서 접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실로 대단합니다. 그저 평범하게 자랄 스타일은 아니네요. 오늘의 레전드로 임명합니다.


자, 어떻습니까? 똑같은 밑그림을 주어도 아이들은 제각기 자신이 그리는 세상에 비추어 그림을 재해석했습니다. 획일적인 삶을 살고 있는 어른들과는 전혀 차원이 다른 사고방식을 갖고 있는 것이죠. 당신의 아이는 어떻습니까? 내일부터 유심히 체험놀이하는 당신의 자녀를 지켜보십시오. 그리고 체험놀이의 결과물과 아이의 행동을 비교해서 관찰해보십시오. 아이의 현재와 미래가 보입니다. 미술치료는 별 다른 것이 아닙니다. 아이의 무궁한 발전을 소망하겠습니다!


P.S. 그런데 이분...최근 나는 가수다에 나왔던 가수 김○○ 닮지 않았나요???


Written by 사샤

 

Posted by 해적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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