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모여 부루마블 할 때면 부루마블의 주인이 꼭 가장 먼저 시작을 했다. 뭐 주인장 어드밴티지 같은 거였다. 주인 녀석은 알토란같은 나라에 멈춰 그 나라에 호텔을 지었다. 운이 좋을 땐 더블이 걸려 한 턴에 두 개의 나라를 사기도 했다. 물론 그 나라엔 모두 호텔이 올라갔다.


두 번째로 시작한 녀석은 운도 없이 방금 사논 나라에 걸리곤 했다. 호텔이 올라간 나라에 지불 할 돈은 녀석이 가지고 있던 돈의 절반이다. 나는 그나마 운이 좋아 주인 녀석이 사 놓은 나라엔 걸리지 않았지만 카드를 뽑는 곳에 걸렸다. 나라를 갖지 못한 거다.

초기부터 돈이 가장 많은 주인 녀석은 비싼 유럽 쪽 나라를 사기 시작했다. 스톡홀름, 런던, 뉴욕 등 땅 값만 해도 비싼 이 나라에 호텔을 지었다. 


나도 부지런히 나라를 사 나아갔다. 유럽 같은 좋은 땅은 아니어도 동남아 쪽의 싸고 잘 걸릴 만한 나라도 몇 개도 가졌다. 주인 녀석도, 두 번째로 시작한 녀석도 자주 내 나라에 걸리곤 했다. 유럽처럼 몇 백만 원의 통행료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소소히 돈을 모아가고 있었다.


주사위가 몇 바퀴 돌았을까 나의 말은 주인 녀석의 가장 큰 나라인 유럽 쪽의 한 나라에 서고 만다. 통행료는 무려 400만원. 동남아 쪽 나라와 시작점에서 받는 월급인 20만원을 열심히 모아 유럽 쪽의 한 나라를 산 나는 400만원이라는 돈이 있을 리 만무했다.


나는 녀석에게 지금 가지고 있는 200백만 원만 먼저 받고 나중에 주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주인 녀석은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단칼에 거절했다. 그래도 나는 한 번 더 간곡히 부탁했다. 이번 한번만. 딱 한번만 봐달라고 매달렸다. 소용없는 일이었다. 나는 결국 지금껏 열심히 모아 산 유럽 쪽의 한 나라를 은행에 매각했다. 그리고 나온 돈은 고스라니 주인 녀석에게 넘겨줘야했다. 주사위가 던져진 시작부터 열심히 노력해 얻은 꿈같은 나라를 한순간의 잃은 순간이다. 


다음 턴. 주인 녀석은 내가 좀 전에 은행에 매각한 유럽의 나라를 내가 준 돈과 본인의 돈을 합하여 구매했다. 이로써 유럽 쪽 라인은 주인 녀석의 독점을 이뤄졌다. 이 라인을 지나기 위해선 더블이 걸리지 않는 한 반드시 어떤 곳이든 통행료를 지불해야했다. 운이 좋게는 100만 원, 운이 나쁘게는 400~500만 원 까지. 주인 녀석은 가끔 인심을 베푸는 듯 자투리 돈은 깎아 줬다. 물론 나머지 통행료를 내기위해선 내가 한푼 두푼 모아 얻은 나라를 팔아야 만 했다.


나라를 하나 둘씩 잃은 나에게 가장 큰 소득은 출발지점을 돌면 은행에서 나오는 월급 20만원이었다. 그 소득도 카드 뽑는 자리에서 ‘세금을 내시오’ 한마디면 몇 푼 남지 않았다. 그리곤 예전 유럽 라인 한편에 내 나라가 있었음을 기억하며 또 다시 주사위를 굴린다. 출발점의 월급만을 기다리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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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맨의 전설


패밀리라는 게임기인 하드웨어를 가졌다고 하나 소프트웨어인 게임팩이 한없이 부족한 게 현실이었다. 그렇다고 한 게임만을 계속할 수도 없는 것 또한 현실이었다. 그래서 이것의 대안책이 바로 합본팩이었다. 

합본팩은 팩 하나에 여러 가지 게임이 들어있는 것을 말하는데 작게는 몇 개에서 많게는 백단위의 합본팩도 있었다. 대게 합본팩은 1~2개의 메인 게임과 나머지 잡다한 게임으로 되어 있는데 사실 메인게임을 제외하고 나면 나머지 잡다한 게임은 거의 쓰레기 수준의 게임이었다. 간혹 쓰레기 게임 속에서 조금은 할 만한 게임을 발견할 때도 있지만 그런 일은 드물었다. 


합본팩의 또 하나의 문제점은 팩 겉면에 붙어있는 그림이나 게임명이 실제 게임과 다를 때가 있다는 점이었다. 한번은 겉면에는 상당히 괜찮은 게임이 붙어있어 단숨에 샀더니 정작 게임을 돌렸을 때는 다른 게임이 나오는 것이었다. 헷갈릴 수도 있겠다 싶을 정도도 아닌 게임이 들어있었는데 그 게임하나 보고 산 나로서는 허탈하기 그지없었고 바로 오천원을 주고 팩을 교환했다.


합본팩의 현실이 그렇다보니 대게는 그냥 단일팩을 사는 것이 더 효율적이었다. 다행히 나는 처음 패밀리를 샀을 때 단일팩을 하나 함께 구입 했었는데(물론 어머니가 사주신 거지만) 그 팩이 바로 록맨(Rockman)6였다. 





일본 캡콤(Capcom)사에서 만든 액션게임인 록맨은 지금에서도 명작으로 뽑히는 작품인데 작은 파란색의 로봇인 록맨이 나와 스테이지를 정하고 각 스테이지의 보스를 클리어 하는 방식의 게임이었다. 

록맨의 재미중 하나는 각 보스마다 지닌 속성과 무기가 있는데 록맨이 그 스테이지의 보스를 물리쳤을 때 물리친 보스의 능력을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각 보스마다 상성을 잘 이용하면 보스공략을 쉽게 할 수 있었다. 이런 상성을 찾아내면 쉬웠지만 사실 못 찾을 경우 보스 공략은 지옥이었다.


이밖에도 로봇이라면 최강의 메리트인 합체도 가능했는데 록맨의 친구(?)인 랏슈(개의 모양을 하고 있는 로봇이다)와 합체해 비행모드나 헤비모드로 변형해 비밀통로를 찾아 이동할 수 있었다. 

이 비밀통로를 잘 찾아내는 사람이 동네 아는 형 중엔 꼭 한명씩은 있었는데 나는 그 형이 플레이하는 모습을 유심히 지켜봤다 집에서 내가 직접 해보고는 했다.


록맨은 재미있는 게임이 확실했지만 어려운 게임인 것도 확실했다. 특히 횡스크롤 액션 게임인데도 불구하고 에너지에 굉장히 인색했다. 웬만하면 보스 만나기 전에 큰 에너지 하나 정도는 주는 것이 인지상정이거늘 이 게임은 그런 게 없었다. 에너지 없으면 그냥 보스를 만나서 죽는 게 속편했다. 그러면 보스 바로 앞에서 에너지가 가득 찬 체로 시작했기 때문이다.


사실 에너지가 가득 차있어도 문제였는데 록맨이 가장 무서워하는 것은 강력한 적도 아니고 거대한 적도 아니었는데 바로 ‘가시’였다. 

침모양의 가시던 성게모양의 가시든 닿기만 하면 한방에 죽었다. 에너지가 아무리 많이 차있어도 삐융삐융하며 터졌다. 이게 나는 참 죽을 맛이었는데 컨트롤이 정교하지 못했던 어린 시절이라 게임을 진행하는데 있어 가장 고비는 바로 가시였다. 


한번은 위와 아래 모두 가시로 되어 있는 곳을 지나가야 했는데 적당히 점프버튼을 눌러 넘어가야했다. 근데 이게 쉽지 않았다. 그래서 이곳에서만 수십 번을 죽었고 나중엔 게임팩을 던질 번하기도 했다.



또 패스워드도 문제였다. 당시 록맨은 게임 저장방식이 아닌 패스워드 입력방식이었다. 스테이지를 깼을 때나 죽었을 때 패스워드를 보여주는데 이것이 상당히 복잡했다. 나는 도대체 이것을 어떻게 적어 놔야 할지도 걱정이었다. 지금처럼 핸드폰이 있어 사진을 찍을 수도 없었다. 그래서 록맨을 할 땐 항상 공책과 연필을 준비해놓고 스테이지를 깼을 때 마다 공책에 적어놨었는데 이를 보고는 어머니께선 “공부를 그렇게 해봐라!”하며 핀잔을 주시고는 했다. 


게임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우리나라에서 너무 티내며 게임하는 게 볼썽사나운데 좀 더 쉽게 패스워드를 만들었다면 그나마 눈치는 덜 받았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8비트 게임 속에서 진주를 발견하듯이 록맨은 빛나는 역작이었고 재미와 몰입도가 높은 게임이었다. 그 후 슈퍼패미콤, 플레이스테이션 등등 고사양 게임기에서 록맨이 나올 때마다 나는 소프트웨어를 구입해 플레이하고는 했는데 단 한 번도 나를 실망시킨 적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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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밀리


여유롭지 않은 살림에 철없는 투정으로 엄마는 시내 게임점에서 게임기를 사주셨는데 그것이 나의 첫 게임기였다. 저번에도 말했듯이 엄마가 사주신 첫 게임기는 패밀리라는 8비트게임기였다. 정식으론 ‘Family Computer(FC)’로 패미콤이라 불렸는데 대부분 패밀리라고 불렀다. 


당시 기억으로는 게임기만 5만원정도를 주고 구입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지금의 5만원과 당시의 5만원은 가치는 상당히 달랐다. 오락실 게임 한판에 50원, 100원했고, 친구와 나눠먹는 재미가 있던 ‘쌍쌍바’는 200원이었으며, 아빠 자동차 기름값으로 5천원, 만원을 가지고 다니던 시절이었다. 

지금 따지면 그 5만원은 20만원이나 30만원의 가치였던 것 같다. 아무튼 지금 생각하면 왜 그리 철없이 투정부려 엄마를 힘들게 했는지 창피할 따름이다. 그래도 당시 나는 그런 것보다 게임기를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이 중요했고 기뻤을 뿐이다.


게임기를 가졌다고 해도 나의 게임 생활은 여유롭지 못했다. 어렸을 적 우리 집은 소위 말하는 단칸방이었는데 방 하나에 부엌이 딸린 그런 집이었다. 식구가 많지 않았던 터라 사는데 큰 어려움은 없었지만 단지, TV가 하나였기에 항상 아빠의 뉴스 시청으로 인해 만화를 보는 건 꿈도 못 꿨다.

잠깐 방영하는 만화도 못 보는 상황에서 게임을 할 수 있는 시간은 더욱이 없었다. 나에게 게임을 할 수 있는 시간은 빠르게 학교를 다녀와 아빠가 퇴근하기 전까지였다. 아니면 아빠가 주무실 때 하는 수밖엔 없었는데 그것도 시끄럽다며 못할 때가 많았다. 그러다보니 집에서 게임을 하는 시간보다 게임기를 들고 비어있는 친구네 집을 전전하기일수였다. 나름 상호 절충이요 상부상조를 실천한 셈이었다.


한번은 게임은 하고 싶은데 친구네 집도, 우리 집도 여의치 않았다. 그냥 포기할 수도 있었지만 당시 게임을 열망했던 우리에게 포기는 있을 수 없었다. 아마 당시 열정을 우리 엄마가 봤다면 “그렇게 공부를 해봐라. 서울대를 가겠다.”고 하셨을 거다. 아무튼 그 열망과 열정에서 나온 것이 친구네 공장 잠입이었다. 

친구의 아버지는 공장을 운영하셨는데 그곳에는 잠을 잘 수 있는 작은 방이 하나가 있었는데 물론 그 안에는 TV도 있었다. 우리는 그 TV를 노렸고, 더불어 늦은 시간이라 모두 퇴근하고 없을 것도 확실했으며 누구의 간섭도 없을 것이 당연했다. 단지, 고작 초등학생이었던 우리가 담을 넘기에는 담이 너무 높다는 것이 문제였지만.


직접적으로 공장의 담을 넘을 수는 없었지만 공장 옆 건물옥상을 통해 넘어넘어 가는 것은 가능해 보였다. 게임기를 넣은 가방은 둘레매고, 일단 옆 건물의 담부터 넘어 옥상으로 올라 공장의 옥상으로 넘어들어 갔다. 떨어지면 다리하나 당연 부러질 것 같은 높이었지만 어린나이 철없음의 용기를 누가 말리겠는가. 다행히 지금까지 내 다리에 깁스를 한 적은 한 번도 없다. 

잠입의 성공은 방해 없는 곳에서 둘 만의 게임세계가 열렸고 밤 깊어가는 줄 모르고 원없이 게임을 즐겼다. 이후 친구 부모님이나 우리 부모님이나 이 사실을 알면 부러지지 않은 내 다리를 부러트렸을 것이기에 다시 공장의 담을 넘은 적은 없었다. 


게임기가 없던 아이들의 최고의 바람은 게임기요 게임기를 가진 아이들 최고의 바람은 게임할 수 있는 TV와 내 방이었을 것이다. 그래도 매번 무엇 하나 부족했던 시절이라 게임기 하나만으로도 난 감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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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저녁. 머리 큰 사내 넷이 오랜만에 대포집에 눌러 앉았다. 모듬전 하나에 놓고 막걸리 몇 잔 돌자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가기 시작했다. 사는 이야기, 결혼, 직장 이야기 등. 그 중 네 명의 남자를 집중 시키는 이야기가 있었는데 바로 불후의 명작인 드래곤볼이었다. 일게 만화책 이야기라 할지 모르지만 드래곤볼은 전설이었고 드래곤볼 없는 어린 시절은 생각하기도 싫다. 어린 시절 이야기였던 것 때문인지 네 남자의 이야기는 사뭇 진지했는데 이유인 즉, 드래곤볼의 등장인물인 크리링 때문이었다.


이 : 드래곤볼 보면 항상 손오공만 쌔서 나는 사실 베지터가 더 좋았어. 특히 마인부우랑 싸우다 자살하잖아. 그때 트랭크스를 안아줄 때 좀 멋졌지.


최 : 확실히 츤데레한 남자였지. 손오공이 쌔서 그러지. 그 뭐야 필살기 있자나. 지구 날리는 기술.


김 : 파이널 플래시!


최 : 맞아! 파이널 플래시. 그거 쓸 때 지구 날라 갈까봐 온 힘을 다하지 않잖아. 그게 멋있는 거야.


임 : 그러보면 드래곤볼은 지구인들은 다 약하고 외계인이 쌔. 보면 손오공도 베지터도 다 다른 별에서 온 외계인이야. 크리링은 지구인인데 약하잖아.


최 : 야! 너 크리링 무시하냐?!


이 : 맞아! 그래도 크리링이 지구인 중엔 최강이다.


임 : 아니야. 걔 있잖아. 누구야 눈 세 개 달린 애. 걔가 더 쌔지 않아?


김 : 천진반. 눈 세 개 달린 애.


임 : 왜 그 기술 있잖아. 손 모아서 쓰는 거.


이 : 기공포.


임 : 그래. 기공포. 그거 짱 쌔잖아.


최 : 크리링에겐 그 뭐냐(손바닥을 하늘로 보이며) 그 기술 있잖아. 그거.


이 : 기원참!


최 : 그래!! 기원참. 그걸로 옛날에 쿠우라 아들 걔 누구야. 프리져. 걔 꼬리 자르는 거 너 모르냐? 나메크 별에서 싸울 때 크리링이 기원참 두 개 만들어서 던져서 프리져 꼬리 자르잖아. 천진반은 뭐한 게 없잖아!


이 : 천진반은 셀한테 기공포 쏘다 죽지. 죽으면 아무 소용없어 살아야되. 그래야 의미가 있는 거니깐.


임 : 천진반은 태양권도 있어!


이 : 야! 그건 크리링도 써. 크리링은 내용상 항상 손오공과 함께하며 고생이란 고생은 다한 녀석이야. 죽기도 오지게 죽고 말이야. 아마 살아난 횟수로 따지면 크리링이 젤 많을걸? 아마 지구인이 아니고 사이어인이었으면 최강이었을 거야. 부활만 여러 번 했으니깐.


최 : 손오공 초사이어인 만들어준 것도 크리링이다. 프리져가 크리링 죽여서 그거 보고 손오공이 빡쳐서 초사이어인 된 거 아냐. 아무튼 크리링 무시하면 안 된다.


김 : 크리링은 보면 진짜 만화 초반부터 나오긴 해. 무천도사랑 손오공이 수행할 때 같이 하잖아. 거의 나오는 등급은 주조연급이야.


이 : 맞아. 그리고 크리링은 코도 없다.


최 : 그거랑 코 없는 거랑 뭔 상관이야! 


이 : 아, 뭐 그렇다고. 아무튼 셀 잡고 나중에 천하제일 무도회에서 야무치가 그러자너. 크리링은 지구인에서는 최강이라고. 그래서 크리링이 최강이지.


최 : 야무치는 역시 낭아풍풍권이지!(나름 비슷하게 모양을 취하면서)


이 : 크리링은 나중에 18호랑 결혼도 하잖아. 내가볼 땐 드래곤볼에서 18호가 가장 예쁜데. 근데 크리링이 꼬셨어! 인생의 승리자는 역시 크리링이야! 난 아직 애인도 없는데 말이야. 


최 : 넌 크리링보다 못한 새끼라서 그래. 그리고 천진반은 결혼 못하고 계속 수행하더라. 인생으로나 무술로나 크리링이 한 수 위야. 아무튼 크리링은 프리져의 꼬리를 잘랐기 때문에 지구인중 최강이라고! 




처음 시켰던 막걸리가 동나고 다시 한 병을 더 시켰을 때 네 남자의 진지한 드래곤볼에 대한 토론은 끝이 났다.

아, 결론은 프리져의 꼬리를 자른 크리링이 ‘지구 최강의 사나이다’로 났다. 뭐, 사실일지 아닐지는 모르겠지만 사소한 것에 목숨 거는 네 남자들에게는 크리링이 지구 최강의 사나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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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해적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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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5.08.15 05:46

    음 그래 그렇구나~

  2. 2016.01.20 20:55

    아쉽게도 지구최강은 우부에요.. 그래도 크리링이 더 상징적이죠..




세상에는 많은 민간요법들이 존재한다. 배 아픈 아이에겐 배탈 약보다 빠른 할머니나 엄마의 따뜻한 손이 있듯이 게임 세계에서도 여러 민간요법들이 존재한다.

나의 첫 게임기였던 패밀리 경우 이라는 소프트웨어를 사용했는데 슬롯에 팩을 끼워 넣는 형식이었다. 지금의 SD카드랑 비슷한 형식인데 지금 생각해보면 굉장히 원시적인 느낌이다. 때로는 팩의 케이스, 즉 플라스틱이 부셔져서 PCB보드 체로 게임에 꽂아 넣을 때도 있었는데 그래도 게임은 팔팔 잘만 돌아가곤 했다. 이런 점이 팩의 장점이기도 했다.


패밀리의 이야기를 조금 더 하자면 패밀리 최고의 민간요법은 바람이었다. 게임기에 팩을 꽂아 넣을 때 유독 인식이 안 되는 게임들이 있었다. 다시 꽂아도 인식이 안 되는 건 똑같았는데 이럴 때 최고의 방법은 팩과 게임기에 입을 대고 후후바람을 불어 넣는 것이었다.

바람을 불고 다시 꽂으면 이상하리만큼 인식이 갑자기 되고는 했다. 원인을 따지자면 그냥 먼지가 쌓여서 안 되던 게 바람을 불어서 먼지가 제거되어 인식이 됐다고는 밖엔.


여담으로 대학시절 여자 친구와 함께 당시 최고의 휴대용 게임기인 닌텐도DS를 같이 산적이 있다. 당시 닌텐도DS는 국내에 정식 유통되어 한글로 만나 볼 수 있었는데 내가 게임 팩을 넣기 전에 입으로 후후불자 여자 친구는 오빠 여기 입으로 불면 안 된다고 쓰여 있는데 왜 자꾸 바람을 부는 거야?”라며 핀잔을 주는 것이었다.

어릴 때 팩을 꽂을 때면 바람을 불던 것이 익숙한 나로썬 당연한 절차였는데 그 아이에겐 이숙하지 않은 행동이었던 것 같다. 그것도 그럴 것이 게임기에 보면 주의 사항으로 입으로 바람을 불지 마세요라고 적혀있었기 때문이었다.


사실 나는 이해가 잘 안 되는 부분이었는데 게임기를 오래 만들어 온 닌텐도에서 이런 민간요법도 모르고 그런 주의 사항을 적어 놓는 게 이해가 안됐다. 그럼 도대체 닌텐도 직원들은 그 주의사항을 지키며 어떻게 팩을 인식시키는지 참으로 궁금하기까지 했다. 그래도 나는 그 후로도 아랑곳 안고 계속 입으로 바람을 불고 팩을 넣고는 했다.


근데 나중에 보니 여자 친구도 나랑 똑같이 입으로 후후불더니 팩을 넣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 아이의 말로는 게임이 인식이 안 되서 오빠가 하는 대로 바람을 후후 불었더니 인식이 아주 잘돼는 거야라고 말하며 웃었다. 그 후로 그 아이도 나처럼 팩을 꽂을 때 최고의 민간요법인 바람을 불어 넣고 게임을 하곤 했는데 손녀딸의 배를 낫게 한 할머니처럼 볼 때마다 흐뭇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플스에도 여러 민간요법이 존재했다. 게임이 인식이 안 되기로는 패밀리 저리가라였던 플스는 툭하면 시디가 인식이 안 되서 메모리카드 관리 화면으로 넘어가기 일수였다. 그래도 패밀리의 경우 게임하던 도중 멈추는 일이 그나마 없었는데 플스는 게임 중에 수시로 시디를 읽다가 못 읽어 다음 화면으로 넘어가지 않고 하루 종일 시디를 읽는 경우도 있었다.

이럴 때 하는 민간요법이 있었는데 바로 플스 본체에 무거운 책 올리기, 뒤집어 놓기, 옆으로 세워 놓기 등이었다. 나는 주로 본체 뒤집기를 사용했는데 성공률은 대략 80% 이상이었다. 이정도의 성공률이니 누구든 안하려 해야 안할 수 없는 민간요법이었다. 내 친구는 주로 옆으로 세우는 방법을 취했는데 그래서 나중에 플스2가 나왔을 땐 옆으로도 세울 수 있게 만들어졌는지도 모르겠다.


시디를 못 읽는 경우는 시디의 표면에 스크래치가 많을수록 심했는데 이 스크래치를 해결하는 방법으로 한 친구는 시디에 치약을 바른 적이 있다. 치약이 시디의 표면을 얇게 벗겨내어 스크래치를 없어준다는 이유였는데 나도 해본 적 있지만 효과는 그다지 눈에 띄지 않아 후로 사용해 본적은 없다.


플스는 초창기 시디플레이어 마냥 조금의 충격만으로도 게임이 멈추기 일 수였다. 그래서 각자의 노하우인 민간요법으로 해결했고 플스를 가진 사람이라면 방법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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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첫 게임기는 패밀리(일본에서는 패미콤이라 불렸다)라는 게임기였다. 어린나이에 힘들게 일하시는 엄마를 졸라 산 게임기였다.

팩이라고 불리는 게임 소프트웨어를 끼워 사용하는 게임기였는데 당시 만해도 패밀리가 있는 친구의 집은 항상 많은 친구들이 모이고는 했다. 사실 지금 생각해보면 패밀리는 친구와 같이 할 게임도 거의 없었는데 뭐 그리 많이들 모여 앉아 있었는지 모르겠다. 옛날 TV있는 집에 사람이 모이는 것과 비슷한 거였을까?


플레이스테이션(이하 플스)도 마찬가지였다. 플스가 있는 친구 집엔 학교 끝나자마자 많은 아이들이 몰려가고는 했다. 그래도 플스는 패밀리와 다르게 함께 할 수 있는 게임이 많았다. 더불어 32비트 최신 게임기답게 패드의 여유만 있다면 멀티탭이라는 액세서리를 사용하면 무려 4인용, 두개를 사용하면 무려 8인용까지도 가능했다. 단지 8인이 함께할 게임이 없어서 문제였지만 그래도 게임은 함께 하는 거라는 이미지는 새긴 것 같다.

멀티탭도 놀라웠지만 플스의 독특한 점이라면 메모리 카드라는 저장장치였다. 메모리 카드는 게임의 전반적인 데이터를 저장하는 장치였는데 주로 게임 세이브 데이터를 저장하고는 했다. 용량이 한정되어 있는 팩과는 달리 메모리카드만 있다면 얼마든지 세이브 데이터를 옮기고, 복사하고, 보관이 가능했다. 툭 하면 세이브 데이터가 공중분해 돼 버리는 팩과는 비할 바가 아니었다.


게임 세이브 데이터가 한번이라도 날아가 본 사람은 알 것이다. 열심히 노력해도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다는 세상의 진리를 어린나이에 알게 해주곤 했다. 내 경우 세이브가 중간에 날아가자 그 게임자체를 접은 적도 더러 있었다. 아무튼 메모리카드는 친구의 데이터를 받을 수도, 내 데이터를 나눠 줄 수 있어서 세이브가 날아간다 해도 처음부터 해야 하는 수고는 덜 수 있었다.

나는 매달 게임 잡지를 사고는 했는데 일어로 된 게임 공략을 위해서였다. 이 게임 잡지에는 복사게임시디에 붙일 수 있는 스티커와 메모리카드에 붙일 수 있는 스티커가 함께 들어있었다. 인기 있는 게임의 스티커가 들어있었는데 때로는 공략을 위해 사는 게 아니라 스티커 욕심 때문에 산적도 더러 있었다.


메모리카드에 스티커를 붙이는 것은 '내 것'이라는 하나의 인식표이자 다른 사람과의 차별화였기에 놓칠 수 없는 게임 생활의 한 부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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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 경이적인 물건을 갖기 위해 가장 먼저 한일은 은행에 간 것이다. 국민학교 내내 모아왔던 돈은 뽑기 위함인데 플레이스테이션(이하 플스)의 가격은 대략 20만원 선. 싼 가격은 아니었다. 더군다나 정식 수입이 안 되서 돈이 있어도 물건이 없다면 못 살 수도 있었다. 꼭 불법적인 물건을 사는 것만 같았다. 뭐 그렇다고 합법적이지도 않았지만.


플스 구입과 함께 정식 절차처럼 행해졌던 것이 플스에 복사칩을 다는 것이었다. 몇 만원만 더 주면 달 수 있었던 복사칩은 불법으로 복사한 게임시디를 돌리기 위함이었는데 원활한 게임생활을 즐기기 위해서는 반드시 행해야하는 절차였다. 그리고 복사시디를 사용하는 이유는 단 하나. 싸기 때문이었다.


플스를 갖고 있다 해도 10만원 가까이하는 정품시디를 구입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 화장실 5개쯤 달린 집에 살고 있으면 또 모를까 일주일 용돈 오천원을 받는 나로서는 불가능했다. 이런 나에게 복사칩은 불법이 아니라 오히려 합법이었고 구세주였다.

시디를 구입 할 때도 보면 진열대의 시디는 정품이었고 복사시디는 직접 볼 수 없었다. 클리어파일에 프린트된 시디커버를 정리한 리스트를 보여주고는 했다. 조직의 은밀한 뒷거래 같은 느낌으로 말이다.


은밀한 뒷거래가 성립되면 주인아저씨는 알 수 없는 보물창고에 다녀오시더니 시디를 가져다주고는 했다. 만원 선이었던 불법복사시디는 게임을 하고자하는 이에게는 합법이었고 정품이었다. 더불어 복사시디라 할지라도 나중에 5천원만 내면 다른 시디로 교환이 가능했다. 이 얼마나 나눔이 뿌리 깊게 박힌 사회란 말인가.

복사시디는 불법이었으나 그것이 없었다면 과연 우리나라에서 플스가 얼마나 팔렸을까? 나름 숨은 공모자라 생각된다. 나 역시 그 혜택을 누리며 많은 게임을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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