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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Remember 美]2.빛의 신전, 이영길의 세계 정독도서관 옆 소격동 길을 지나다가 이 그림을 마주쳤을 때, 생전 처음 '그림을 사고 싶다'는 감정을 느꼈다. 날씨가 제법 쌀쌀했던 12월의 겨울. 추위도 까맣게 잊은 채 자리를 떠날 줄 몰랐다. 그림이 그림같지 않았다. 새로운 차원의 신세계로 나를 인도하는 듯 했다. 내가 무의식 중에 꿈꾸던 진짜 이상향의 안식처에 다다른 듯한 완벽한 환상을 맛보았다. 온 빛이 세상을 감싸고 있다. 온 빛이 산과 바다에 내려 앉았다. 이곳은 물결도 바람도 존재하지 않는 곳. 모든 것이 멈추었다. 빛과 그림자로 빚어낸 이 담박하고도 신비한 능선을 따라 차근차근 걸어가본다. 움직이는 것은 오직 나 뿐이다. 산 중턱에 잠시 걸터앉아 바다를 바라본다. 바닷 속 세상이 훤히 보인다. 팔깍지를 끼고 그 자리에 누워버린다. 나도 이.. 더보기
[힐링 클래식]1.아침엔 멘델스존을 들어라 MENDELSSOHN [첼로와 피아노를 위한 두 개의 소나타: 2 Sonata for Cello and Fortepiano] 누군가의 음악을 들을 때 나는 ‘그 사람의 기운을 받는다’는 말을 즐겨 쓴다. 다소 우스꽝스러운 표현일 수도 있겠지만, 그만큼 음악에는 그 사람의 인생관과 열정, 기쁨, 슬픔, 고뇌, 좌절, 초탈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이것은 음악의 장르를 가리지 않고 모두 해당되는 얘기다. 생각해보라. 우리가 매일같이 아침에 출근해서 밤늦게까지 컴퓨터를 두드리고, 서류를 정리하고, 보고서를 쓰는 동안 그들은 아침에 일어나서 밤늦게까지 피아노를 치고, 바이올린을 켜고, 온 몸에 잉크를 묻혀가며 악보를 썼다. 평생을 그렇게 말이다. 그들이 마신 수천 잔의 커피, 숨소리, 움켜쥔 머리칼, 환희에 찬 손.. 더보기
[Remember 美]1.톰과 제리, 현대미술로 만나다 그림 제목이 톰과 제리다. 70년대중반~80년대초반에 태어난 사람이라면 누구나 보고 듣고 자란 친숙한 만화 주인공들이다. 2011년, 그들을 다시 캔버스 위에 올려놨다. 이런 그림이 아주 잘 그린 것이라고 생각한다. 작가가 그림을 보는 감상자에게 무한한 해석의 세계를 열어주고 있다. 현대미술의 묘미에 아주 충실한 작품이다. 제리가 테이블 가운데 놓인 그릇 위에 맘편히 걸터 앉아 치즈의 맛에 흠뻑 취해있다. 그 옆에 톰이 보인다. 눈을 부라리며 날카로운 발톱으로 당장이라도 제리를 낚아챌 기세다. 매번 골려주는데 재미붙인 제리와 늘 잡아먹지 못해 안달이 난 톰의 심리상태가 그림 속에 잘 나타나 있다. 그런데 이 둘을 사이에 두고 검은 액자틀 하나가 놓여져 있다. 문제는 그 검은 액자틀이 진짜인지 아니면 가짜.. 더보기
공간의 음악, 시간의 미술 - PLAYTIME, 문화역서울284 2012년 가을, 길에서 서울역을 만났다. 거대한 현재의 驛舍가 아닌 舊역사 말이다. 입구가 활짝 개방되어 있었다. 몇달 전까지만 해도 닫혀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歷史에 한자리를 마련하고서 말이다. 호기심을 가지고 기웃거리니 안쪽에서 북소리가 흘러나온다. 북소리에 이끌려 역사 안으로 걸어들어간다. 마지막으로 이 문을 지난 것이 언제였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부모님과 함께 시골에 다녀올 때가 아닌가 싶다. 여행에 지친 몸을 이끌고 문을 나섰을까. 중앙홀로 들어서니 오가는 사람들이 눈에 띈다. 사람들의 행선지에 대해 궁금해 하다가 얼른 정신을 차린다. 홀의 중앙에서 공연자가 큰북을 치고 있다. 천장이 높은 홀에 북소리가 울린다. 홀로 연주하는 북공연은 지루하다는 생각이 든다. 중앙홀을 지나 예전에는.. 더보기
할리스에서 만난 '언니의 스와로브스키' 추위가 사그러졌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너무 춥다. 시베리아 벌판을 우리 동네 밑장에 깔았나보다. 밤이면 밤마다 울어대던 길 고양이들도 자취를 감췄다. (아마 그들의 아지트에 모여앉아 고래고래 욕을 하고 있을 거다). 그러나 고양이처럼 마냥 춥다고 집에서 웅크릴 수만은 없는 법. 카페라도 나와 앉아있어야 책이라도 한 줄 볼 것 같아 추운 밤 할리스로 향했다. 허허, 역시 연말은 연말이다. 할리스 4층까지 사람들이 바글바글하다. 다행히 4층 가운데 빈자리 하나 남아 있어 냉큼 앉아 가방으로 영역 표시를 하고, 우당탕 내려가 라떼 한잔 시켜 올라왔다. 할리스는 회원카드만 있으면 사이즈 업 또는 샷 추가를 무료로 해준다. 야호, GRANDE 사이즈! 맛있게 냠냠. 자리에 앉아 이것저것 공부거리를 펼치고 앉아, 손.. 더보기
백건우, 라벨을 노래하다 라벨 스페셜리스트로서의 백건우. 그의 면모가 가장 잘 드러나는 곡 중의 하나가 바로 '왼손을 위한 피아노협주곡 D장조' 말 그대로 왼손만으로 연주하는 곡이다. 한편으로 갸우뚱했다. ‘한 손으로만 다채로운 음색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감상을 마친 후, 그것은 기우에 불과했다는 것을 알았다. 엄지손가락이 건반을 주도해 나아가면서 카리스마 넘치는 명쾌한 건반 하나하나가 가슴에 거대한 울림을 자아낸다. 라벨은 대단한 고집쟁이였다. 그 고집만큼 자신에 대한 실력과 자부심도 꼿꼿했다. 청년 백건우는 프랑스와 라벨을 사랑했다. 그의 왼손에서 뿌려지는 타건의 신비로움이란 마치 땅거미가 지는 석양의 마지막 어스름을 불러일으킨다. 뉘엿뉘엿 해가 지면 이내 청량한 바람과 고슬고슬 풀벌레 소리가 그 빈 자리를 고독하게 채워.. 더보기
늑대소년, 그 시절을 향한 무한긍정, 그리고... [우리는 이 시대의 해적이다] 늑대소년, 그 시절을 향한 무한긍정, 그리고... 용산에서 늑대소년을 보고 나오는 길이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생각하고 있었다.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리고 있는데 어르신들이 눈에 띄었다. 동창회 부부동반 모임인 듯 했다. 오랜만에 만난 동창들과 반갑게 인사하며 서로의 안부를 묻는 모습이 정겨웠다. 신호가 얼른 바뀌지 않아 어르신들의 대화를 듣게 되었다. 어르신 한 분이 또다른 어르신에게 핀잔를 준다. "뭘 그렇게 두리번거려?" 안그래도 그 어르신이 뭘 그렇게 찾으실까 궁금해하던 중이었다. 자연히 귀를 쫑긋 세웠다. "입대할 때 용산에 모였잖아. 육이오 때. 육십년만에 처음 오는 것 같네." 대답을 하면서도 어르신은 계속 무언가를 찾았다. 핀잔을 줬던 어르신도 이해한다는.. 더보기
Last christmas “겨울이면 무엇이 생각나세요?” 이렇게 누군가 나에게 묻는다면 Wham의 ‘Last christmas’가 가장 먼저 생각난다고 대답할 것이다. 내 나이만큼이나 오래된 노래지만 내가 처음 들었을 땐 나의 첫 스무 살의 겨울이었다. 내가 가장 빛나던 시절이었고 성인으로서 발돋움의 설렘과 겨울의 푸근함이 만나 한껏 들떠있던 때였다. 오는 눈만 봐도 두근거림에 밖을 뛰다닐 정도로 풋풋함이 남아있던 시절이었다. Last christmas를 처음 들었을 당시에도 그 풋풋함과 두근거림 그리고 설렘이 함께했다. 눈 오던 스무 살 겨울. 내가 좋아하는 누나와 함께 탄 버스에서 난 누나의 이어폰을 통해 Last christmas를 들었다. 누나가 듣고 있던 이어폰 한쪽을 뺏어 내 귀에 꽂자 처음이지만 참으로 따듯한 멜로디.. 더보기
'아빠와 아들'로 본 명화시리즈1 [Shine(1996)] "아버지는 없지만, 난 살아있어. 세월은 가고 절대 영원한 건 없지. 하지만 중요한 건 인생은 멈춰 있지 않다는 거야. 포기하지 말고 결국 살아가야 해. 모든 순간에서 이유를 찾아야 해." 현존하는 천재 피아니스트 데이빗 헬프갓의 일대기를 그린 명화, Shine의 마지막 명대사다. 아내 길리언의 도움으로 중년의 나이에 피아니스트로서의 인생을 되찾은 데이빗은 성공적인 콘서트 데뷔 후 고향에 잠든 아버지 피터 헬프갓의 무덤을 찾아간다. 수많은 고통과 시련의 과정을 거쳐 독보적인 피아니스트 한 사람으로 재기하기까지, 그의 혹독하고 아름다운 삶에 대해 이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너무나도 지독하리만큼 '아빠와 아들'의 애증스러운 관계의 틀에서 이야기를 풀어나아가고 있다. 영화의 시작부는 .. 더보기
익스펜더블? 람보의 총은 외로움의 폭발이다. 트루먼 대령 : 다 끝났어 존!!! 다 끝났다구!!! 람보 : 아무것도 끝나지 않았어요!!! 아무것도!!! 대령님은 절대 끝낼 수 없어요!!! 이건 내가 시작한 전쟁이 아니라구요!!! 람보는 총을 냅다 집어던졌다. 그리고 주저앉아 흐느껴 울었다. RAMBO FIRST BLOODⅠ의 마지막 명대사 명장면이다. 람보는 베트남 참전용사다. 그 중에서도 적 주요인물 암살, 중요시설 폭파와 같은 고도의 게릴라 임무를 수행하는 그린베리 특수요원 중 단연 에이스로 손꼽히던 군인이었다. 전쟁이 끝나고, 그는 제대 후 전우가 살고 있는 록키산맥의 어느 한적한 마을을 찾아갔다. 그러나 전우는 만나지 못했고, 그가 고엽제로 인해 생긴 피부암으로 끝내 숨을 거두었다는 소식만 전해 듣고 온다. 그래도 거기까진 괜찮았다. 오는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