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1.03 19:18



MB정부가 저물어가는 요즘, 정부에서 통 듣지 못한 말이 있으니 바로 ‘인하’라는 단어 같다. 인하라는 단어를 언제 들었는지조차 이제는 가물가물하다. 그 정도로 지금은 기름값뿐만 아니라 생계에 유지하는 기본적인 식료품부터 해서 공공요금, 대중교통 요금 등 다양한 분야에서 치솟아 언제부터인가 만원으로 제대로 된 물건 하나 사기도 쉽지 않다.

만원이라는 돈의 단위는 작은 단위가 아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였을까? 지갑에 달랑 만 원짜리 지폐 한 장이 들어있으면 이보다 가볍게 느껴질 수가 없다. 차라리 천 원짜리 10장이 오히려 더 두둑한 느낌이 든다. 이처럼 만원이라는 단위는 어느새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이 없는 작은 돈 단위가 돼버렸다. 만원으로 버스 10번도 못 탄다. 그것도 광역버스를 탈 시에는 왕복이면 끝이다.


요즘 연일 고공 행진을 자랑 중인 유류를 보면 1리터당 1,920원이라 했을 때 만원으로 고작 5리터 조금 넘게 주유할 수 있다. 그렇다면 12Km/L 연비의 차량으로 운행할 수 있는 거리는 50Km, 이는 서울역에서 출발하여 오산역까지 갈 수 있는 거리다. 사실 이것도 통행료까지 포함한다면 어림도 없다. 고속버스를 타면 동서울터미널에서 대전역까지 갈 수 있다.

대형 마트에서도 만원은 그리 크지 않다. 계란은 60개를 살 수 있고 삼겹살은 반 근 정도 살 수 있다. 쌀은 2kg 정도 구매가 가능하며 소고기는 100g 정도다. 이 정도가 마트에서의 만원의 가치다. 이제는 아이들의 입장에서도 만원은 이제 크지 않은 돈이 됐다.


과자고 아이스크림이고 대부분은 천원이 넘으니 아이들에게 용돈이랍시고 천 원짜리 주던 시절은 지난 것이다. 이젠 길 위의 떡볶이를 먹어도 천 원짜리는 없다. 아이들에게 용돈으로 만 원을 줘도 친구들과 과자 몇 개, PC방 몇 시간, 간식 몇 번 먹으면 순식간이니 아이들도 만원이라는 돈의 단위도 그다지 크지 않게 됐다. 점심시간에도 만원으로는 많은 것을 할 수 없다. 서울권 평균 점심 식사비용은 7~8천 원 선. 식사 후 커피숍에서 판매하는 커피는 엄두도 낼 수 없어 자판기 커피가 고작이다.


요즘 직장인들에게 우스갯소리로 “내 연봉 빼고는 다 올랐다.”라는 말을 종종 듣고는 한다. 분명히 농담인 줄은 알지만, 이것저것 할 것 없이 오르는 물가를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에 하는 소리라 괜스레 씁쓸하다. 


답답함을 달래주던 담뱃값도 선진국 수준으로 인상, 퇴근 후 한숨 쉬며 마시는 소줏값도 인상. 정말 오르지 않는 건 내 연봉과 내 새끼 성적뿐이다. 경제 대통령이라고 구호를 내걸었지만 내리지 못해 올리기만 하는 건지 참으로 답답할 따름이다. 이젠 정말 아무렇지 않게 터져 나오는 인상소식에 저절로 얼굴에 ‘인상’써질 뿐이다.


written by 저격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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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해적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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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입시도 끝나 이른 시간에도 거리에 교복 입은 학생들을 쉽게 찾아 볼 수 있게 됐다. 매일 같이 영하 10도를 오가는 추위라 해도 억압에서 풀려난 젊은 혈기를 꺾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날도 추워 책이나 보자고 시립도서관을 찾았다. 근데 책은 구경도 못했다.  책은커녕 자리에 한번 않아 보지도 못했다. 많은 사람들이 이미 밖에서 대기표를 받아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새삼 놀랐다. ‘아! 우리나라가 이리도 독서에 열을 올렸던가?’하는 생각에 이리저리 둘러보는데 하나같이 공통점이 있다. 책은 책이나 도서가 아닌 문제집을 보고 있었다. 언뜻 보아하니 취업준비생들인 듯 했다. 책도 다양하다. 토익, 토플, 자격증, 공무원시험 교재 등. 아무튼 많은 취업준비생들이 도서관을 찾아 공부를 하고 있었다.


취업준비생이 도서관을 찾는 게 이상한 것은 아니다. 꼭 책을 보기 위한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책을 보려 하는 사람보다 ‘취업’을 위해 도서관을 찾는 사람이 이토록 많다는 사실에 숫자로만 봐오던 청년실업이 몸소 느껴진다.

예전엔 책이나 자료를 찾기 위해 도서관을 찾으면 시험기간을 제외하고는 한가했다. 시험기간에는 오히려 빈자리를 찾기 힘들 정도로 도서관은 만원이었다. 항상 시험기간인 것 마냥 요즘엔 시립도서관을 보면 항상 만원이다. 닭 울기 전에 일어나 도서관을 가지 않으면 한자리 붙이고 않기란 여간 힘든 것이 아니다. MB의 정권의 300만일자리 창출 공약이 무색할 정도다.


현재 우리나라의 청년 실업난은 예년 보다 낮아 졌다고 한다. 청년들이 취업을 많이 해서가 아니라 취업을 포기하고 있어 실업률이 낮아진 것이다. 많은 취업준비생들이 취업보다는 다른 길을 택하고 있는 것이다. 대학원 진학, 공무원 시험, 졸업의 연기 등이 그 예다. 표면적 실업률이 낮아졌다고는 하나 사실적 실업은 예년 보다 높다는 것이 노동지원청의 의견이다. 이러한 취업난은 이공계기피 현상도 한몫을 한다. 


현재 우리나라는 공직자나 금융권, 대기업의 공채시험은 매년 많은 사람들이 몰린다. 그러나 이공계열 연구소나 현장직은 점차 경쟁력을 잃어 요즘의 취업난이 무색하게 사람을 구할 수 없어 힘들다고 한다. 더불어 요즘 아이들의 이공계기피현상까지 더 해져 연구현장 직은 점차 사람이 줄고 사무, 공직 즉, 화이트컬러는 수백, 수천 명씩 몰리는 양극화가 더해가고 있다.

이미 이공계 기피는 사회 전반적으로 큰 문제로 다가왔다. 국내대학의 공대는 사회인문계열에 비해 매년 적은수의 신입생으로 골머리를 썩고 있다. 


기피의 원인을 보자면 어려운 이공계열의 학업도 적잖은 비중을 차지한다. 요즘 어린사람들은 어려운 것은 피하고 이른바 ‘쉽게 쉽게’가 정신이 꽉차있다. 조금만 힘들고 어려우면 쉽게 포기해버리고 어렵다고 생각되면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경우도 주변에서 쉽사리 볼 수 있다. 물론 인문계열이 쉽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단지 이공계열의 빠듯한 학업과 다소 어려운 학업과정은 요즘 아이들이 기피하기에는 충분하다는 것이다. 또한 졸업 후 진로를 따지자면 이공계는 더욱 기피된다.


많은 대학생들은 소위 말하는 삼성맨을 꿈꾸거나 멋진 금융계의 화이트 컬러를 원한다. 이공계에서 밤잠 못자고 공부해 지방 연구소보다는 수도권에 위치하고 초봉과 대우부터 다른 사무직을 선호한다. 급변하는 첨단과학시기에 뒤처지면 퇴출되는 이공계보단 철밥통으로 불리는 공무원을 택하는 것이다. 

표면적으로는 실업난이라고 하지만 정작 이공계열 회사에선 사람을 못 구해서 아우성인 것이 현실이다. 이것이 우리나라 실업난의 현주소다. 그렇다고 이공계를 기피한다고 아이들만 붙들고 흔들 것이 아니라 기술직이라면 우습게 보는 현사회 풍토와 이렇게 만드는 어른의 뇌구조부터 바꿔야할 것이다.


written by 선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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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해적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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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2.10 06:34



얼마 전 참 구미가 당기는 드라마를 발견했다. 주말드라마인 ‘청담동 앨리스’가 그것인데 현재 3화분밖엔 방영되지 않았지만 시작부터 아주 흥미로웠다. 특히 여자의 허영심과 된장녀로 화두를 던져 신랄하게 비난하는 모습은 아주 신선했다.

줄거리는 대략 신데렐라 스토리다. ‘노력이 나를 만든다’라는 신조를 굳게 믿고 사는 한세경(문근영 분)과 세계적인 명품유통회사 아르테미스의 최연소 한국회장인 차승조(박시후 분), 이 두 사람의 사랑이야기다. 그런데 일반적인 신데렐라 스토리라고 하기엔 이 드라마는 너무 현실을 잘 반영하고 있다.


노력형 긍정녀인 세경은 온갖 노력으로 취업에 모든 것을 내건다. 하지만 사회에서 돌아오는 것은 처음부터 가지지 못한 부에 대한 차별이다. 이에 반해 세경보다 못한 고등학교 동창인 윤주(소이현 분)는 남자 잘 만나 스물일곱이라는 나이에 사모님이 됐다. 

드라마 속 지금까지의 결론은 구질구질 노력보단 ‘인생은 한방이다’를 보여주고 있다. 사실 이 말엔 남자인 나로서는 동감할 수 없다. 왜? 이젠 한방도 없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옛말에 ‘개천에서 용 났다’라는 말이 있다. 이젠 이 말도 틀렸다. 예전 소 팔아 대학 다니던 시절엔 가난한 집 장남 공부시켜 사법고시에 합격하면 집안도 살아나고 모든 것이 해결됐다. 개천에서 용이 난 것이다. 


하지만 요즘은 돈이 없으면 공부를 할 수가 없다. 법조인이 되기 위해선 필수적으로 로스쿨에 가야한다. 로스쿨 중 등록금 가장 싼 곳이 975만원이다. 거기에 이천만원이 넘는 로스쿨도 25곳 중에서 12곳이나 된다. 이천만원. 강남의 30~40평되는 아파트 사는 사람이면 모를까 부엌하나, 방 한 칸에 온가족 모여 사는 집에선 그런 돈을 마련할 수 있을까? 난 불가능하다고 본다. 그래서 차선책으로 학자금 대출에 손을 벌린다. 그리곤 학기동안 잠 아끼며 아르바이트를 한다. 학자금 대출을 갚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음 학비를 위해서. 근데 최저임금 오천 원도 안 되는 나라에서 과연 한 학기 동안 다음 학기 학비를 마련한다는 것은 가능할까? 자기 용돈이나 벌면 다행이다.


학비를 마련 못한 학생은 휴학을 한다. 휴학을 하니 졸업은 늦어지고, 졸업이 늦어지니 취업도 늦어진다. 갚지 못한 학자금 대출은 점점 이자가 불어가고 한번 피어보지도 못한 꽃다운 청춘은 이미 신용불량자가 되어있다. 이젠 개천에서 용 따위는 나지 않는다.


한방의 대명사인 로또도 다를 바 없다. 523회 로또 1등 당첨자는 총 7명. 이들에게 돌아간 1등 당첨금은 17억 8026만원. 17억 가지고는 강남에 아파트 하나 못산다. 한방이라고 말하기에는 집 한 채 못 사지만 그래도 평생 월급쟁이 생활로는 이 돈도 못 모을 거 같으니 그 운수에 감사할 따름이다. 한 평생 놀고먹을 만한 한방도, 방법도 이제는 없다. 드래곤 볼을 모아 소원을 빌지 않는 한 없다.


“한방을 노리지마라. 매사에 최선을 다하고 노력해라. 그럼 인정받고 성공할 수 있다” 어느 책의 이야기처럼 성실히 노력하면 성공할 지도 모르겠다. 나도 그렇게 믿고 싶다. 근데 지금 현실에서 노력은 최선의 선택도 성공의 지름길도 아니다. 가진 것 없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들의 어쩔 수 없는 발악이다. 공든 탑이 안 무너질 것 같은가? 성실과 노력으로 쌓아 올린 공든 탑 따윈 돈 쳐 바른 대기업 굴삭기 한방이면 끝이다. 지금 세상의 노력은 운보다 못한 존재고 노력만으론 아무것도 안 되는 시대다.


그러고 보면 ‘청담동 앨리스’는 현실을 잘 반영하고 있지 않다. 어떤 짓을 하던 노력만으로 주인공은 성공을 이룰 테니까. 오히려 지금 사는 세상이 더 드라마 같다. 노력만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거지같은 시나리오의 막장 드라마.


written by 선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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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해적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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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누구나 무엇인가에 대해 익숙해진다. 이것은 사람이 학습하고 숙달하는 것에 대한 하나의 증명이기도 하다. 낯선 것을 낯설지 않게 만드는 사람의 기능. 익숙해진다는 것은 그만큼 사람이 사는데 참 편리한 것이다. 


담배를 처음 피기 시작한 무렵, 옷에 밴 담배 냄새에 엄마는 매번 잔소리를 하셨다. 방에 들어오실 때마다 “이놈의 담배 냄새 때문에 니 방엘 못 들어오겠다.”라며 핀잔을 놓으셨다. 그런데 이것도 10년 가까이 되자 그 냄새에 익숙해지셨는지 언젠가부터 잔소리가 멈춰섰다. 나쁜 담배에 엄마가 적응한 것이다. 


어디 담배 뿐 만이랴. 통증도 익숙해진다. 얼마 전 운동을 하다 다친 손목이 계속 시큰하다 싶더니 나중에는 움직일 때마다 통증이 왔다. 손을 딛고 일어 설 때마다 신경이 무척 거슬렸는데 그 때 마다 ‘병원가야지’라는 생각보다 그냥 ‘아프구나, 이러다 말겠지.’하며 내버려뒀다. 아픈 손목에 익숙해지니 그것도 원래부터 아팠던 것처럼 치부해버리고 만다. 아픈 손목에 내 자신을 이해시킨 것이다. 


예전 처음 아이폰4를 샀을 때 금이야 옥이야 상처 날까 케이스를 구매하러 다닌 적이 있다. (당시에는 굉장히 초반이라 케이스가 별로 없었다) 케이스 하나 사러 용산까지 갔는데 케이스 하나에 1~2만원을 넘어 비싼 것은 3~4만원까지 했다. 결국 “무슨 케이스하나에 몇 만원이나 하는거야?” 투덜대며 그냥 빈손으로 돌아왔다. 궁여지책으로 액정 필름을 인터넷으로 구매를 했는데 그것도 무려 2만 4천원을 주고 구매했다. 결제 클릭을 누르는 손이 덜덜 떨렸다. 물론 비싸서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흘러 스마트폰이 대중화되었을 때,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 몇 만원씩이나 하는 케이스를 자연스럽게 사서 아무렇지 않게 착용하고 다니고 있었다. 몇 년이 지나고 보니 ‘케이스는 원래 비싸잖아?’로 생각이 굳어졌다. 높은 가격에 내 자신을 맞춘 것이다. 


최근 TV에서 가수 현아를 본적이 있다. 배를 훤히 드러낸 짧은 티에 짧은 핫팬츠를 입고 흡사 성행위를 연상시키는 춤을 격렬하게 추고 있었다. 지금으로부터 12년 전, 2000년도에 가수 박지윤이 성인식으로 가요프로그램에 나왔을 때 배를 드러내는 옷을 입고 나온 장면이 기억난다. 당시 공영방송에서 배를 노출했다는 이유로 시정조치 명령을 받았고 나중엔 천으로 배를 슬며시 가린 채 ‘씁쓸하게’ 노래를 했다. 하의실종이 대세인 지금에서 생각해보면 그때는 무슨 조선시대였나 싶겠지만 노출에 썩 익숙하지 않던 당시는 그랬다. 노출이 익숙한 지금, 우리는 현아의 몸 털기 춤을 봐도 몸짓에서의 야한 느낌은 받아도 그 옷차림에서 예전과 같이 ‘아니 이런 노출을 하다니 말이나 돼?’하는 생각은 별로 들지 않는다. 격렬해져 가는 매스컴에 내 자신의 눈을 맞춘 것이다. 


근래에 있던 내곡동 사저 문제가 터졌을 때 사회는 충격에 휩싸였다. 사실 대통령의 비리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지만 이렇게 집권 중에 그 비리의 온상이 표면으로 솟아오른 것은 처음이다. 그야말로 충격적이었다. 그러나 당연하다는 듯 ‘물타기’가 시작되었다. 이후 대통령 친인척 비리가 줄줄이 표면에 올라왔을 때 나를 포함한 주변 사람들은 ‘충격 또 충격’이라는 느낌으로 연결되기 보다는 오히려 ‘당연하다’라는 말이 떠올랐다. 최근 검찰비리 역시 비슷하다. ‘떡검이 그렇지 뭐’ 하는 생각 먼저 들었다. 고위 간부층의 악랄한 비리에 내 윤리기준을 맞춘 것이다. 


나영이 사건 이후, 초강력 아동성범죄가 아니면 뉴스에 제대로 잡히지도 않는다. 그 정도로는 이슈거리도 안 된다 싶은가보다. 성범죄 뿐 만일까? 이젠 웬만한 살인사건은 ‘저 죽일놈’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세상이 흉흉하니까’로 체념의 선을 긋고 TV 채널을 돌려 버린다. 한 30명 쯤 죽이면 ‘오, 신기록 갱신!’ 감탄하며 뚫어지게 감상하려나? 미국에 버금가는 초강력 연쇄살인은 아직 대한민국 시민에겐 익숙하지 않으니 말이다.


익숙해진다는 것은 편리한 거다. 뇌의 신경을 천천히 무마시켜 가면서 확실히 단순하게 생각하도록 해준다. 그래서 편안해지기 위해 반사회적, 반인륜적 범죄에도 함께 익숙해져버린다. 정확히 말하면 ‘익숙해져야 한다’는 표현이 맞겠다. 그래야만 온갖 나쁜 것들이 판치는 작금을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written by 선장 & 선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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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해적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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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1.27 01:03



우여곡절 끝에 영화 ‘26년’이 곧 개봉을 앞뒀다. 26년은 강풀의 웹툰인 ‘26년’을 영화한 작품이다. 영화 26년은 1980년 광주 민주화운동을 소재로 한 만큼 제작이 쉽지 않았다. 

특히 이 영화는 영화제작에 어려움이 더 많았다. 영화제작을 앞두고 갑자기 투자자들이 등을 돌리는 통에 영화가 무산될 위기였다. 하지만 26년은 시민들의 자발적인 투자인 제작두레를 통해 스크린 상영을 앞두고 있다.


5.18이라는 소재로 처음 영화가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2007년에 개봉한 ‘화려한 휴가’ 역시 광주 민주화운동을 다룬 영화였다. 하지만 아쉽게도 화려한 휴가는 ‘그 사람’에 대한 언지는 없었다.


80년대 생인 나에게 5.18은 한줄 요약이 가능하다. “신군부 세력은 병력을 동원하여 군권을 차지하였고 5.18 민주화 운동을 비롯한 국민들의 민주화 요구를 무력으로 진압한 뒤 통치권을 장악하였다.” 이것이 80년대 생인 내가 책으로 배운 5.18이고 학교에서 배운 광주 민주화운동이다. 정확힌 학교에서 가르친 내용은 이것뿐이다.

내가 처음 5.18을 알게 된 건 사실 굉장히 어린 나이었다. 아마 10살 때였나? 당시 우리 집은 마당이 딸린 집 한 켠에 세 들어 살고 있었다. 주인집의 막내아들이 나와 나이 때가 비슷해 종종 주인집에 가서 놀고는 했는데 주인집답게 우리 집엔 없는 비디오가 있었다. 


어느 날 여느 때와 다름없이 주인집 막내와 나는 방에서 놀고 있는데 공 비디오테이프가 하나 있어 별 생각 없이 비디오를 틀었다. 지금 나이에서 그런 테이프를 발견했다면 뭐 좋은(?)게 들어있을 수 있다는 기대감으로 열어 봤겠지만 그런 것도 모르던 시절이라 단순 호기심이었다. 그 테이프엔 광주 민주화 운동의 영상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탱크 옆으로 지나가는 시민에게 총격을 가하는 군인, 이미 군인에게 맞아 피 흘리는 시민, 적붉은색으로 얼룩진 하얀 천을 덥고 누워 있는 사람들, 인정사정없이 군화발로 찍어 내리는 계엄군들. 그 테이프엔 이런 장면들이 여과 없이 담겨 있었다.


보는 내내 무서웠다. 어릴 적 가장 무섭게 봤던 나이트메어보다 더 무서웠다. 어린나이라도 나이트메어는 허구요 진실이 아니란 걸 알았지만 지금 보는 건 현실이고 지금이라는 게 무서웠다. 나에겐 민주주의를 외치는 것보다 총 칼에 찔려 쓰러지는 장면만 보였고 이런 게 있을 수 있나 싶었다. 불법인 것처럼 가지고 있으면, 알고 있으면 안 될 거 같았고 당시는 그랬을지도 모른다. 이것이 내가 처음 접했던 광주 민주화 항쟁이었다.



테이프는 끝까지 다 보지는 못했다. 아마 어린나이에 주구장창 그런 장면만 나오니 재미가 없었던 거 같았다. 그 후 잊고 지냈다. 이후 나도 세상도 5.18은 그냥 보통 날이었다. 

아무것도 아닌 날. 그냥 예전 광주에서 민주화 운동이 일어났던 날. 그렇게 사회는 치부해왔다. 오죽했으면 어릴 적 노태우 전 대통령이 굉장히 훌륭한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고 ‘그 사람’은 코미디의 대상이었을 뿐이었다. 항상 그렇게만 떠들었기 때문이다.


학교에선 “수능에서 근현대사는 중요하지 않다”라며 가르친 적이 없다. 특히 5.18에 대해선 더욱 그랬다. 예전엔 그래야 했고, 지금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수능에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 현실도 예전과 별반 다를 바 없다. 


하지만 언젠가는 다시 역사를 바로 세울 수 있는 기회가 오리라 생각된다. 그래야만 우리는 억울하게 죽어간 5월의 영령들에게 부끄럽지 않을 수 있다. 그리고 그 시절이 올 때까지 반드시 기억하고 있어야한다. 바로 세우고 단죄시키기 위해서 말이다.


written by 선의


Posted by 해적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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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0.22 04:39

 

 

 

대학 졸업 후 쉴 틈도 없이 직장을 얻고, 혹 넘어질까 걱정하며 달리니 벌써 이립(而立)이다. 뜻을 세울 나이라는데 정작 뜻 보다는 항상 주머니에 돈이 떨어질까 걱정하며 살았다. 그러니 정작 결혼은 친구 청첩장에서나 보는 단어이자 의미다.

명절이면 이제 결혼해야지라는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듣는 말에 매번 건조하게 아직 할 것도 많고, 돈도 없고요. 아직 아니에요라고 대답한다. 내가 대답을 하고도 이 아이러니에 웃음이 난다.


결혼은 본디 사랑하는 이성과 평생을 약속하는 성스러운 의식. 이 성스런 의식에 대한 대답에 애인이라는 이성은 빠진 체 돈도 없고요로 대답하다니. 결혼을 위한 가장 우선 조건은 평생을 같이 할 애인 아닌가? 그럼 현재 만나는 사람이 없는 내 답도 애인이 없어서 결혼을 못한다는 답이 맞는 거다. 내 답대로 해석하자면 나는 돈이 없어서 결혼을 못하는 거지 돈만 있으면 얼마든지 여자를 만날 수 있어. 근데 이 아이러니한 돈이 없어 결혼을 못 한다라는 대답에 반론을 재기할 30대 미혼 남자들이 몇이나 될까? 구역질나는 현 사회 상태에 대해 분하고 열 받지만 나도, 결혼을 못한 수많은 30대 남자들도 수긍한다.


결혼에 돈이 필요한 것은 예식도 그렇지만 남자는 을 장만해야한다. 이 거지같은 공식이 언제부터 우리사회에 깊게 뿌리 박혔는지는 나도, 우리 엄마도 모르겠지만 남자는 집을 장만해야한단다.

어르신들 이야기로는 단칸방부터 시작해서 하나하나 얻으면 된다고 한다. 참 바보 같을 정도로 훌륭한 말이다. 이 대답에 나는 훌륭히 대답할 수 있다. 그런 여자는 이미 한참 전에 나보다 더 능력 있고 잘생긴 녀석과 결혼 했을 것이라고. 그럼 전세로 시작해보자.


전세? 대한민국 땅 덩어리가 좆만 해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수도권 웬만한 아파트 전세 값은 억대다. . 무슨 판타지 소설에나 나올 법한 단위다. 그럼 내가 지금 판타지 소설의 주인공인가? 차라리 주인공이라면 어떻게는 드래곤을 쳐 잡아 억을 얻어 결혼할지 모르겠지만 대한민국이라는 판타지 소설에서 나는 주인공이 아니다. 그냥 평범한 판타지 속 작은 마을의 여관집 아들, 무기상, 아이템상의 아들일 뿐이다. 판타지 속이라도 나는 을 얻을 수 없다.


남자는 집이다. 남자가 집을 얻지 못하면 결혼도 못한다. 너무 자학적이고 비관적이라고? 근데 좆같이도 사실 아닌가? “미안해. 나는 아직 돈을 많이 모으지 못해 아파트 전세는커녕 작은 단칸방부터 시작해야할 것 같아라고 말하면 여자가 괜찮아. 함께 벌어서 마련하면 되지. 우리가 사랑하는데 집은 중요하지 않아라고 대답해 줄 것 같은가? 군대서 읽은 워크 투 리멤버(Walk to Remember)에서나 나올 듯한 대사다.


대학 시절로 가 나는 대학 학비를 어머니께서 부지런히 일을 해 마련해 주셨다. 그 큰 자혜로운 희생 덕에 나는 졸업 후에도 빚은 없었다. 그러지 않은, 혹은 못한 많은 주변 친구들은 알바를 해서 학비를 벌었을까? 아니다. 대부분 학자금 대출을 통해 등록금 및 학비를 마련했고 정작 알바를 통해서는 개인의 용돈 정도를 썼다.

대학 등록금은 방학을 통해서도 마련할 수 없다. 휴학을 해 학비를 마련하지 않는한 불가능하다. 시간당 오천원도 안 되는 알바비 받으며 500만원이나 되는 학비를 마련한다고? 방학기간인 3개월 동안에 500만원을 버는 곳이라면 나는 대학 때려치우고 지금 그곳에서 일을 했을 거다.


졸업 후 달라지는 것은 없다. 직장인이 된 학생은 몇 년간 학자금 대출을 갚기 위해 땅만 보며 달린다. 그리고 허리 좀 피고 하늘 좀 바라볼 때쯤이면 서른, 결혼할 나이. 모아 논 돈 따위는 없다. 근데 사랑하는 여자와 결혼을 하기위해 집을 마련해야한다. 그래서 다시 은행을 찾아간다.

융자와 대출을 끼고 집을 얻는다. 남자는 작은 사회라 불리는 대학에 들어가면서 빚을 지고, 진짜 사회에 나와 부단히도 아끼고 졸라매 빚을 갚고, 2의 인생이라 불리는 결혼을 하면서 다시 빚을 진다.

대한민국에서 대학을 다니려면 학자금 대출을 받아야하는 것처럼 대한민국에서 집을 갖기 위해선 빚을 져야한다. 학비를 부모님이 내 주시는 것처럼, 집도 부모님이 해결해 주시지 않으면 30대에 집을 가질 수 있는 방법은 빚을 내는 것이다.


대학생이 알바로 학비를 마련할 수 없듯이 직장인도 월급을 모아 집을 마련할 수 없다. 역겹게도 대한민국이라는 판타지 속에서는 말이다.


written by 저격수

 

Posted by 해적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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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진짜 오래간만이다”

 

영풍문고 음반 코너에서 기웃대고 있는데, 누군가 뒤에서 반가운 목소리로 어깨를 툭 친다. 돌아보니 노○○형이다. 안본 사이에 몰라보게 살이 빠진 모습에 조금 놀라긴 했지만 여느 때와 다름없이 반갑게 악수를 나누었다.

 

형과 나는 한 학년에 1반, 반 인원수 30명, 전교생을 합쳐도 180명이 채 되지 않는 사립학교 출신의 동문이다. 당시 방송매체의 용어를 빌려 말하자면 ‘열린 교육 1세대’다. 형은 ○○국민학교 3회 졸업생, 나는 4회 졸업생이다. 조그마한 건물 한 채에 매일같이 오고가며 서로의 얼굴을 익히고 함께 생활해 온 까닭에 오늘처럼 서로 갈 길 가다 마추져도 별로 어색하지 않은 그런 정도라 보면 되겠다. 그리고 형과 나는 오랜 시간 같은 동네에 살면서 이곳저곳 골목길에서 마주칠 때마다 그럭저럭 인사를 주고받은 전력이 있어 이런 우연찮은 만남도 결코 부담스럽지는 않다.

 

“오랜만에 봤는데 커피라도 한잔 할래?”

평소처럼 그럭저럭 인사를 주고받고 지나갈 줄 알았는데 오늘은 예외인가보다.

“좋죠. 마침 커피도 땡겼는데!”

곧장 서점 지하 1층에 있는 스타벅스에 자리를 잡았다.

“뭐 마실래?, 메뉴 불러. 내가 너한테 얻어먹을 수는 없잖냐”

잘 빠진 얼굴에 수줍은 미소가 돈다. 허허, 그러고 보니 이 정도 얼굴값이면 여자 여럿 따라붙을 상이다. 달걀형 얼굴에 오똑한 콧날, 안정적인 눈매와 시커먼 숯 눈썹에 쌍꺼풀까지 졌다. 머리도 이래저래 잘 만지고, 옷걸이에 옷발도 제법 받네 그려. 살이 쏙 빠지니 새삼스레 그의 외모를 다시 보게 된다.

 

가방 놓고, 짐 놓고 하는 사이에 따뜻한 아메리카노 한잔, 라떼 한잔이 나왔다. 머그잔으로 시킨 걸 보니 금방 헤어질 생각은 아닌 듯싶다. 후후 불어가며 한 모금 넘기기 무섭게 동시에 서로의 안부를 묻는다. 찌찌뽕. 내가 먼저 썰을 풀었다. 전공은 인문학을 했고(어차피 세부전공 이야기해봐야 대부분 알아듣지 못한다), 재미없는 직업에 염증을 느껴 이탈을 시도했고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라는, 너무 무겁지도 그렇다고 너무 가볍지도 않은 미디엄 수준의 이야기로 그 동안의 라이프 스토리를 노릇노릇 구워줬다.

“그렇지, 우린 부속품이 될 수 없어!”

말이 끝나기 무섭게 던진 형의 단호한 한 마디다. (뭐 꼭 그런 의도로 이야기한 것은 아니었는데...) 어쨌든 형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형 역시도 그 동안의 애환, 방황, 고민의 웅덩이에서 한참을 허우적댔고, 나름대로 그곳에서 빠져나오려 애쓰고 있는 노력이 역력해 보였다. 그 역력함의 흔적이 눈가에 진 검은 그늘과 빼쪽 마른 형의 몰골에서 드러난다. 우리나라 3대 대학 안에 손꼽히는 그 학교에서 경제학을 전공했는데, 취직은 건축회사로 했단다. 그것도 모두가 회피하는 현장직으로 말이다. 이력서를 내다내다 안되다 보니 결국 그 진로를 선택한 모양이다. 뭔가 처음부터 단추를 잘못 꿰었다는 느낌에 반년도 채우지 않고 사표를 냈다고 했다. 그리고 나서 8개월 동안 로스쿨을 준비했는데, 점점 공부를 하면 할수록 자신의 진로와는 맞지 않다는 사실을 느끼고 그의 마지막 무기인 ‘일본어 능통자’로서의 능력을 살려 통번역 대학원 쪽도 알아보고 있다고 했다.

 

“여자 친구는 있어?”

형의 두 번째 질문이었다.

“예, 있어요.”

물어보는 투가 왠지 모르게 ‘난 없는데 넌 있니?’로 들린다. 역시나 예상은 맞았다.

“야, 그래도 넌 여자 친구 있으니까 살만하겠다. 난 공부한답시고 친구들이랑 다 연락 끊고...그렇다고 집에 자꾸 있기도 미안하고, 그래서 이렇게 학원 끝나면 카페오고, 카페에서 공부하다 또 학원가고 그냥 그렇게 지낸다.”

“그건 맞아요. 저도 여자 친구 없었으면 병원에서 살고 있었을지도 몰라요. 에이 그리고 형, 형 정도면 여자가 줄줄이 따라 붙을 것 같은데요. 얼른 여자 친구 만드세요. 제가 어떻게 소개팅 해드려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던졌다.

“에이 내가 뭘 딱히 직업이 있는 것도 아니고, 이렇게 지내고 있는데 만들면 뭐하냐. 나중에 자리 잡으면 그 때 가서 만들던지 해야지.”

‘자리 잡으면’이란 if형의 그 말이 비수에 꽂힌다. ‘자리를 잡으면 무엇 무엇을 하겠다’. 어딜 가나 내 또래와 그 주변에서는 남녀누구 구분할 것 없이 사방팔방에서 남발하는 말이다. 무슨 얼마나 대단한 자리가 있길래 우리는 에브리데이 ‘자리를 잡겠다’고 외치는 것인지 이제 뭐가 뭔지 정말 모르겠다. 그리고 ‘자리’라는 용어가 아예 우리 88만원 세대의 고정멘트에 녹아버린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겹친다.

“자리를 잡는다...자리를 잡는 게 뭘까요 형?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 자리 찾다가 좋은 거 다 놓치겠다 싶기도 해요. 그래서 전 요새 그냥 자리고 뭐고 다 제쳐두고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아요.”

씁쓸하게 웃어대니 형도 따라 웃는다.

“그래, 하고 싶은 대로 뭘 하고 사냐?”

“음...일도 하고, 여행도 다니고, 글도 쓰고 하죠.”

“글? 글은 무슨 글을 쓰는데?”

“그냥 전공 따라 논문도 쓰고요, 지금까지는 논문 위주였죠. 우리 쪽 분야로다가 좀 쓰다가 보니까...근데 공급을 해도 수요가 없으니 휴지조각이랑 다를 바가 없더라구요. 그래서 방향을 좀 틀어서 문화콘텐츠 쪽으로다가...아, 형 로스쿨 준비하셨다면서요? 문화산업이랑 관련해서 법도 좀 아세요? 제가 요번에 그 쪽으로 논문 하나 썼는데.”

논문 얘기에 문화산업이 어쩌구저쩌구 떠들어대니 형의 눈빛이 빛난다.

“논문이면 너 지금 대학원 다니니?”

“졸업은 했구요. 그냥 이젠 실험삼아 반 취미삼아 반 그렇게 논문은 계속 내고 있어요.”

“혹시 그 글 볼 수 있냐?”

마침 가방에 논문 하나 갖고 있었던 게 다행이었는지 모르겠다.

“야, 니가 이런 글도 쓰고...이런 일 했구나 너. 고학력자네!”

“석사가 무슨 고학력자인가요. 그냥 어중간한 나부랭이 정도죠. 어디가서 이거 가지고 명함 내밀면 웃어요.”

“야, 그래도 나보다 너가 훨씬 전문적이고 가능성 있어 보인다.”

“전, 형이 더 그래 보이는데요.”

“너 이 책 딱 한 권 갖고 있는 거야?”

“아뇨. 필요하시면 갖고 가세요.”

“야 고맙다. 내가 학원 끝나고 진지하게 한번 읽어볼게. 너 재밌는 일 하는구나.”

“하하, 글쎄요.”

형이 학원 수업이 있다 길래 우리는 곧 잔을 마저 비우고 일어섰다. 영풍문고를 빠져나와 연락처를 주고받는데 형이 무거운 말 한 마디 남긴다.

“야, 이 커피숍 생활도 얼른 때려 치고 싶다.”

“아 그럼요. 조금만 더 고생하시면 형 정도면 분명히 좋은 자리 잡으실 거에요.”

“집에서는 잠만 자고 나오는데도 눈치 보이고, 학원에 가면 다 나보다 어린 사람들이고, 카페 오는 것도 한 두 번이지 정말 못해먹겠다. 하하, 내가 나중에 자리 잘 잡고 한번 제대로 밥 살게. 아니, 야 술이나 한잔 하자”

“술도 좋죠 형. 조심해서 가세요. 연락드릴께요.”

 

얼마나 외로웠으면 지나가다 마주친 동네 동생을 데려다가 커피 시켜 놓고 이런 얘기를 했을까 싶다. 형이 하루 빨리 커피숍을 벗어나 우뚝 그 ‘자리’에 서기를 바랄 뿐이다. 나 역시 커피숍에 오는 횟수를 줄여야 하는 것도 마찬가지만 말이다. 어느 순간부터 우리에게 커피숍은 마음과 현실의 도피처가 된 것일까. 


Written by 선장

Painted by 사샤


Posted by 해적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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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 좋은 10월의 가을, 높으신 두 양반이 삼청동 무슨무슨 카페에서 느긋하게 커피를 마시며 시민들에게 다정하게 손을 흔드는 장면이 포착됐다. 대중을 의식하듯 창가 쪽에 앉아 선글라스에 '브이'자까지 펼쳐 보여주는 여유와 다정함도 보여주신다. 오랜만에 답답한 파란집을 벗어나 두 내외 분께서 오붓하게 커피 한 잔의 여유를 즐기며 토요의 오후를 만끽함이란 충분히 경쾌하고 맑게 다가온다.

 

같은 시간 때, 구미시 산동면 봉산리의 주민들의 분노는 마치 시커먼 커피물이 부글부글 넘쳐 흘러 온 바닥을 적시듯 했다. 정체불명의 괴이한 가스에 2천500백명의 주민이 치료를 받고 있으며, 주변기업의 피해만 94억이 넘어갔다. 멀쩡하게 살던 우리집을 팽개치고 급작스레 이주를 해야 하는 상황에 온 주민들이 불안과 노여움에 가득 찼다. 이에 구미의 '왕'은 '피해 액수가 나와야 보상을 해 줄 것 아니냐'하는 엉뚱한 볼멘 소리만 늘어놓고 있다. "절대 피해시민에게 손해입히지 않을 겁니다"라는 말은 마치 보험회사 영업사원이 막 사고를 입은 피해자에게 다가와 '돈으로 보상할 테니 엄살 부리지 마라'고 꾸중하는 느낌이다. 하나 덧붙이면, 불산 한 방울이면 뼈가 녹고, 공기 중에 노출되면 노약자의 호흡계에 치명적인 악영향을 준다고 한다. 돈으로 그들의 건강과 생활과 집을 고스란히 돌려줄 수 있다면 한 번 그렇게 해 보라.

 

당신이 사는 동네에서 커피 한잔의 여유를 맛보는 동안, 당신이 책임져야 할 밑 동네 주민들은 끔찍한 멸망영화의 주인공인 된 듯한 서늘한 공포감을 맛보고 있다. 그 커피를 마시는 '간만'의 때가 매우 좋지 않다. 아니, 상당히 불쾌하고 어둡게 다가온다. 지금 두 분은 커피 마실 때가 아니다. 내려가서 불산의 현장을 마실 때다.

 


Written by 선장



Posted by 해적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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