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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02.10 [우리집에 왜왔니] 3. 최순우 옛집 눈구경 (2)


선생님.


선생님 댁에도 눈이 내렸습니다.

 

성북동 길에는 차도 사람도 다니지 않습니다. 밤사이 내린 함박눈으로 번잡했던 서울의 거리가 잠시 고요한 휴식을 누리듯합니다. 사람의 발길이 잠시 끊긴 사이 골목이며 지붕이며 집 앞에 늘어선 자전거와 화분까지 하얀 눈의 손길이 미치지 아니한 곳이 없습니다. 검푸른 밤하늘을 수놓던 수천수만의 하얀 알갱이들이 대지에 내려앉아 온 사물을 분간하기 어렵습니다. 오늘따라 선생님 댁 뒤뜰의 달 항아리가 떠오르는 것은 텅 빈 밤하늘에 무심히 걸려있는 둥근 달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화려하게 몸치장을 하던 대로변의 네온사인과 간판들이었건만 이렇게 자연의 강림 앞에서는 한 낱 어린아이 색칠거리에 불과한 것인가 봅니다. 하늘이 자아낸 천연한 흰 물감을 풀어버리면 순간 그것들은 다시 무(無)로 돌아간다는 것을 새삼 느낍니다. 하얀 빛깔의 이 희한하고도 신비로운 도심의 수채화는 선생님이 늘 말씀하셨던 순리의 아름다움, 백색의 아름다움이 아닌지요. 선생님이 살아 계시다면 사랑방 창가에 앉아 지금의 풍경을 대견스러운 마음으로 지켜보시지는 않았을까 흐뭇한 상상도 지어봅니다. 선생님 댁을 올라가는 이 길이 그저 즐겁기만 한 것도 이와 같은 마음입니다.

 

정적이 감도는 선생님 댁 마당에는 밤나무와 감나무 낙엽이 그림처럼 깔려있고, 그 위에는 차분하게 함박눈이 내려앉았습니다. 선생님이 심어둔 나무 잔가지 마디마디에는 구슬보다 더 영롱한 눈 이슬이 맺혀서 이 스산스럽고도 호젓한 뒤뜰의 풍경을 한층 아름답게 빛내주고 있습니다. 용자살 창문에 비친 조용한 달빛과 그 빛깔에 더욱 확연한 맵시를 드러내는 장독대 옹기들은 생전 선생님의 넉넉한 마음씨를 비춰주는 것만 같습니다.

 

선생님 댁에는 아직도 푸르른 소나무와 향나무가 특유의 청렴함을 간직하고 있고, 산수유와 자목련, 생강나무는 있는 듯 없는 듯 집과 한 덩이를 이루고 있습니다. 박석 사이사이마다 겨울 숨을 고르고 있는 맥문동과 벌개미취의 잎사귀들은 따스한 봄날을 꿈꾸고 있습니다. 예술에 의중을 두었지만 그 미의 결과는 어디까지나 자연의 뜻에 맡겨두는 당신의 안목이 잔잔히 밀려오는 까닭입니다.

 

생전에 두고 즐기셨다는 뒤뜰의 둥그런 달 항아리가 묵묵히 달빛을 받아내고 있습니다. 넉넉한 자태로 질박함과 순후함을 충만하게 담아내고 있습니다. 수묵화를 그려내듯 온 집을 병풍처럼 둘러친 청죽은 집과 정원의 아름다움이 둘이 아닌 하나로 느껴지게 하는 본바탕이 되어 주고 있습니다. 바로 이것이 선생님이 말씀하셨던 뽐내지도 않고, 번쩍이지도 않는, 그리고 수다스럽지 않는 우리네 아름다움이 아닌지요.

 

함박눈 내린 겨울밤, 선생님의 옛집에 기대서서 맛보는 이 즐거움을 모두와 함께 나누고자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지금의 풍경을 마음의 소중한 갈피로 간직할 수 있다면 이 순간은 영원할 수 있겠지요. 칠흑같이 어두운 밤, 달빛과 선생님과 이 집을 그리는 이유입니다.

 

나는 지금 행복합니다.


Written by 선장

Painted by 사샤



최순우 옛집(등록문화재 제268호)


  최순우 옛집은 한국 문화재에 대한 깊은 애정과 뛰어난 안목으로 그 아름다움을 찾고 보존하는데 일생을 바쳤던 최순우 선생(1916~1984)을 기리고, 한국 미(美)의 정신을 널리 알리고자 설립되었다. 최순우 선생은 제4대 국립중앙박물관장이자 미술사학자로, 저서에는 [무량수전 배흘림 기둥에 기대서서], [최순우 전집(1~5권)]등이 있다. 

  이 집은 1930년대 지어진 튼 'ㅁ'자 형태 한옥으로 선생이 1976년부터 돌아가실 때까지 살던 곳으로 선생의 미학이 고스란히 살아있는 공간이다. 2002년 겨울, 문화유산 보전의 뜻을 가진 시민들이 성금으로 이 곳을 매입하여 내셔널트러스터 시민문화유산 1호로 지정하였다. 

  현재 (재)내셔널트러스트 문화유산기금에서 보전, 운영하고 있으며, 2004년에 개관하여 4월부터 11월까지 시민들에게 무료 개방한다. 봄과 가을에 시민과 함께 하는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과 특별 전시회를 열고 있다. 


       공식 홈페이지www.nt-heritage.org  

공식 블로그: http://cafe.naver.com/ntchfu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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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해적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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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02.12 09:53 신고

    저도 동감 입니다.누추하지만 내집이 제일 편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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