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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01.04 숨겨진 보물찾기 - 알라딘서점편



숨겨진 보물찾기 - 알라딘 서점편: 서혜경의 라흐마니노프 피아노협주곡 전집


종로에 알라딘 책방이 생겨 종종 들르곤 한다. 헌 물건을 다루어 그런 것이지는 몰라도 교보, 영풍, 반디 이런 윤기 번지르르나는 새책방과는 사뭇 느낌이 다르다. 책이나 음반을 팔러 줄을 서고 있는 사람들, 그 판 물건을 사려고 기웃대는 사람들로 내내 북적인다. 나 역시도 팔기도 하고 사기도 한다. 우글우글 시장통 같다. 사람에 치어 책 한권 제대로 보기 힘들 때도 있지만, 어떤 날은 거의 새책이나 다름없는 찜책을 잡아내기도 한다. 그렇게 기대반, 구경삼아 반 나는 어슬렁댄다. 


며칠 전, 듣지도 않는 씨디 팔아버릴 심산으로 알라딘에 들렀더니 꽤 값을 쳐 줬다. 네 장 팔아 만 오천원. 유행지난 대중가요 팔아 이 정도 이문 남겼으면 족한거다. 그리고는 한편으로, '요걸로 괜찮은 클래식 음반 있음 하나 사봐?' 하는 생각에 음반 코너로 갔다.


이것저것 뒤적대던 중, 아놔 이런 대박 발견!!! 피아니스트 서혜경의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전집 앨범 발견!!! 참고로 나는 다양한 수집벽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누구누구의 라흐마니노프 앨범을 모으는 것이다. 그렇게 하나둘 사 모아서, 똑같은 곡을 각자 어떻게 해석하는가를 비교해보는 것이 하나의 즐거움이다. 중고서점에 서혜경씨의 라흐마니노프 작품의 출현이라니!!!


사실 국내에서 라흐마니노프 피협을 전곡 레코딩한 것은 백건우가 유일무이했다. 그러니까 서혜경은 두 번째의 깃발을 꽂은 피아니스트가 된다. 그리고 대한민국 여성으로서는 최초다. 라흐마니노프 피협 완주는 피아니스트가 대가로 성장하기 위해 반드시 넘어야 할 숙명적인 음악의 대협곡이다. 보통 연주자들은 이 곡의 한 악장만 준비하는데 거의 1년에 가까운 시간을 투자한다. 그만큼 4악장 모두가 기교적으로 매우 난해하고, 해석 자체도 선구자들을 뛰어 넘기에 너무나도 힘에 겹다. 그러나 서혜경은 전곡 레코딩을 단 일주일만에 완주했다.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라고 밖에 할 수 없다. 


서혜경의 20대는 화려했다. 세계를 경악시킨 당돌한 피아니스트였다. '동양인은 테크닉으로 승부한다'는 고정관념을 깨고 건반이 부서질듯 내리꽂는 듯한 파워풀한 연주로 세계인의 주목을 한 몸에 받았다. 세계적인 피아토 콩쿠르 부조니에서 동양인 최초, 최연소 우승, 뮌헨 콩쿠르 2위, 1988년에는 카네기홀 선정 세계 3대 피아니스트에 선정되었다. 그녀의 연주에 반한 세계적 거장 아이작 스턴은 그녀의 집에 찾아가 점심을 같이할 정도였다. 


그런 그녀에게도 암이라는 절대절명의 시련이 찾아온다. 피아노를 칠 수 없다는 의사의 권고, 연주를 강력하게 반대하는 집안사람들, 서른세번의 방사선 치료와 대수술, 여덟번의 항암치료, 점점 깊어가는 우울증에 시달리면서도 결코 그녀는 건반을 놓치 않았다. 마침내 2008년 1월, 그녀는 병마를 떨쳐내고 라흐마니노프 피협 2번과 3번을 완주해낸다. 투병 이후 1년만의 재기였다. 재기무대에서 라흐마니노프는 매우 특별했다. 20대 시절 부조니 콩쿠르 우승 이후 3년 간의 슬럼프를 이겨내고 재기에 성공했을 때에도 그녀는 라흐마니노프 피협 3번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서혜경과 피아노, 그리고 라흐마니노프는 이렇게 지독한 인연을 맺고 있다. 그녀의 손가락에는 이제 열정이라는 숨결에 인생이라는 깊이가 더해졌다. 그리고 한 열성 팬에 의해 100만불의 보험으로 보호받고 있다. 


'이런 앨범을 이렇게 내놓다니...서혜경이 별로였나? 아니면...낭만주의가 싫어서 팔았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이거 제품에 하자 있는 거 아냐?'라는 의구심마저 든다. 씨디를 이쪽저쪽 비추어봤지만 딱히 흠집이나 문제되는 점이 보이질 않는다. 바코드를 보니 값은 만천원. 현재 만오천원을 쥐고 있으니 그래도 사천원 흑자다. 





당장에 사서 집으로 돌아왔다. 컴퓨터를 켜고 아이폰으로 음원을 옮기는 중 더 거한 대박 발견!!! 마지막 세번째 씨디에 서혜경씨의 친필 싸인이 휘갈겨져 있다. 필시, 이 씨디를 손에 넣은 사람은 서혜경씨의 지인 또는 독주회에 참석한 사람이렷다? 


아무래도 이 판매자는 클래식엔 별 관심없지만 사회적 또는 정치적 인간관계에 의해 이 친필 음반을 손에 넣은 듯하다. 그리고 그 사람에게 별 가치를 인정받지 못해 이렇게 매물로 내놓인 것이다. 그 사람이 버린 '폐물'이 '보물'로 내게 온 셈이다. 


책방 이름 알라딘 맞다^^


Written by 사샤


Posted by 해적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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