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루먼 대령 : 다 끝났어 존!!! 다 끝났다구!!!

람보 : 아무것도 끝나지 않았어요!!! 아무것도!!! 대령님은 절대 끝낼 수 없어요!!! 이건 내가 시작한 전쟁이 아니라구요!!!

 

람보는 총을 냅다 집어던졌다. 그리고 주저앉아 흐느껴 울었다. RAMBO FIRST BLOODⅠ의 마지막 명대사 명장면이다.

 

람보는 베트남 참전용사다. 그 중에서도 적 주요인물 암살, 중요시설 폭파와 같은 고도의 게릴라 임무를 수행하는 그린베리 특수요원 중 단연 에이스로 손꼽히던 군인이었다. 전쟁이 끝나고, 그는 제대 후 전우가 살고 있는 록키산맥의 어느 한적한 마을을 찾아갔다. 그러나 전우는 만나지 못했고, 그가 고엽제로 인해 생긴 피부암으로 끝내 숨을 거두었다는 소식만 전해 듣고 온다. 그래도 거기까진 괜찮았다. 오는 길이 문제였다. 그는 그 지역일대 모두를 그야말로 초토화시켜 버렸다. 그것도 수천 명의 미국 군경을 상대로 말이다.

 

람보Ⅰ의 가장 흥미로운 발상은 전쟁 장소와 대결 방식이다. 베트남 격전지에서의 미군 대 현지군의 대결이 아닌, 미국 내에서 벌어진 아군 대 아군의 전쟁을 주제로 다룬 것이다. 게릴라 특수요원 한 명과 떼거지 군경이 록키 산맥에서 대치하는 상황을 그려냈다. 람보가 마을을 쑥대밭으로 만들어버린 배경은 간단하다. 베트남전에서 겪은 극심한 고통과 트라우마, 돌아온 조국으로부터의 철저한 소외와 냉대 이 두 가지다. ‘세계평화수호’라는 조국의 대의명분을 걸고 목숨 내 놓고 싸운 참전용사 람보 존 제이에게 돌아온 보상은 아무것도 없었다. 오히려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살인마’라는 피켓을 든 자국민의 우글우글한 시위현장을 지켜봐야 했고, 친구를 만나기 위해 찾아간 한 마을에서는 ‘갈 곳 없는 더러운 부랑자’라는 개 취급을 받아야만 했다.


조국에서 그는 참전용사가 아니었다. 참전용 소모품이라고 ‘쿵!’ 낙인찍힌 오고 갈 데 없는 쓸쓸한 ‘괴물’이었다. 전쟁에서 겪은 고통을 어느 누구에게도 호소할 수 없는 극심한 외로움에 벌벌 떠는 한 인간이었다. 그런 그를 작은 마을의 보안관 윌 티즐이 건드렸다. 그것도 매우 비인격적인 가혹행위를 통해서 말이다. 윌은 람보를 얕봤고, 결국 그의 뿌리깊은 트라우마를 일깨워 록키산맥의 새로운 ‘참전용사’로 만들어버렸다. 람보를 계속 자극하면 전쟁이 벌어질 것이라 경고한 트루먼 대령의 충고를 무시하고 윌은 결국 람보를 끝까지 잡아내겠다는 무모한 결심을 한다. 결국 윌에게 돌아온 것은 ‘괴물 포획’의 기쁨이 아닌 ‘괴물’로부터의 총알 세례였다. 그가 람보의 포획망에 걸려들어 죽기 일보직전, 트루먼 대령이 나타나 람보를 말리지 않았다면 대갈통이 산산조각 났을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람보 영화 한 편의 대흥행으로 인해 미국에서 베트남 참전용사에 대한 인식이 바뀌기 시작했다고 한다. 원래 이 영화의 마지막 앤딩은 두 가지였다. 람보가 자살하는 것 하나, 대령의 설득을 받아들이고 묵묵히 교도소로 가는 것 하나. 시사회에서 두 가지 장면을 보여준 결과, 람보를 살려줘야 한다는 대중의 의견이 압도적이었다고 한다.

 

당시 대중들이 주인공 람보를 살려야 한다고 입을 모아 이야기한 것은, 단순히 실버스타 스텔론이 보여준 화려한 액션과 육중한 근육, 현란한 무기술 때문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이 영화에서 ‘베트남 참전용사’라는 타이틀은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군인으로서가 아닌 한 개인, 한 인간이 겪었을 사회로부터의 소외와 외로움의 아픔을 대중도 똑같이 느꼈던 것이다. ‘사회가 요구해서, 사회가 이렇게 하면 된다고 해서 나는 이렇게 했는데 왜 지금 나는 사회의 소모품, 아니 그보다도 못한 쓰레기 취급을 받아야 한단 말인가’하는 그 가슴저림의 공감 말이다.

 

람보가 마지막에 흐느끼며 트루먼 대령에게 이야기한다. 매일같이 동료들과 함께 전쟁이 끝나면 조국에서 신나게 드라이브를 하기로 했다고, 그런데 하루는 귀여운 꼬마가 와서 구두를 닦지 않겠냐고 재촉하며 물었다고, 동료는 마지못해 승낙을 했고 구두통을 여는 순간 지뢰가 터지며 그의 살점이 다 떨어져 나갔다고, 그의 살점이 내 몸에 튀었을 때 그 느낌을 아느냐고, 나는 지금도 매일같이 그 때의 악몽을 꾸면서 살고 있다고. 그의 마지막 울부짖음은 30년이 지난 지금 이 순간에도 절대 절명의 목소리로 내 귀에 꽂힌다.

 

 

얼마 전 한 친구가 찾아와 밤늦게 술을 청했다. 열심히 공부해서 서울의 좋은 대학을 졸업했고, 기업이 그토록 원하는 외국어 실력과 대학성적, 자원봉사, 갖가지 사회활동을 모두 갖추어 내밀어 봤지만 나에게 진정 손을 내민 기업은 단 한 곳도 없었다고. 자신의 면접 방법에 문제가 있는지 면밀히 살펴보고 있다고 했다. 그래서 요즘은 ‘면접, 이렇게 하면 성공한다’에 관한 책이란 책은 모두 사서 읽어보고 있다고 했다. PPT 프레젠테이션 연습에 목소리 가다듬기, 거울을 보며 억지로 스마일 짓기 등 갖가지 원맨쇼를 준비 중이라고도 했다. 게다가 정신과에서 심리 치료를 통해 근근이 버틴다고, 빌어먹을. 조금만 더 힘내면 될 수 있을 거라고 이야기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그냥 아무 얘기도 하지 않았다. 나까지 거짓말을 할 순 없었기 때문이다. 차라리 엿이나 먹으라고 얘기해 주는 편이 나았을지도 모르겠다.

 

여러분 카톡에 올라와 있는 친구들의 대화명을 유심히 살펴보기 바란다. “내 인생 어디로 가나”, “휴”, “고독의 언덕”, “어디까지 추락하나”, “비에도 쓰러지지 않고, 바람에도 지지 않고”, “이게 사는 건가”, “우울”, “나는 개처럼”, “공부는 스트뤠스”, “암흑기”, “그저 그렇지 않은 사람”. 아주 가관이다. 미니홈피에도 들어가 보라. 당신의 친구들이 남긴 다이어리를 읽어보기 바란다. 우울함과 외로움의 N극S극을 치달려가는 글들이 수면 위에 떠오르고 있다. 어떤가? 정말 그들이 순간적인 감정에 의해 복받쳐 그런 글귀를 남긴 것 같은 그런 느낌이 나는가?

 

최근에 책 하나 나왔더라. 1000번 흔들려야 어른이 된다나? 내가 그 어른에게 묻겠다. 당신 세대들은 정말 천 번 흔들려서 ‘어른’이 되었는가? 내가 알기론 50번, 아니 10번 정도 흔들리고도 좋은 자리, 좋은 환경 잘 찾아간 사람 꽤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묻지마 살인, 말 못할 자살, 무개념 지하철녀와 버스남, 무차별 폭행, 청소년 왕따 등, 그 어른이 청년이던 시절에 보기 힘들었던 비이상적 사회현상들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당신 말대로 1000번 흔들렸기 때문이다. 그 때의 고도 성장기 시절이 아니란 말이다. 굶어죽는 ‘올곧은 어른’. 적어도 나는 거부하겠다. 나는 람보Ⅰ의 마지막 대사가 이렇게 들리더라.

 

권력자 : 모두 끝났어. 자네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어. 모두 자네가 열심히 하지 않은 탓이라고!!!

88만원 세대 : 아무것도 끝난 건 없어요!!! 절대 아무것도!!! 난 조국이 하라는 대로 열심히 공부를 했고, 스펙을 쌓았어요!!! 그런데 내게 돌아오는 건 뭐죠??? 난 괴물이 아니라구요!!!

 

돈에 굶주리고, 사람에 굶주린, 부모님에게 얼굴조차 들지 못하는 수천만 대한민국의 젊은이들아. 조국을 떠나라. 뼈빠지게 일해 준 대가로 소외와 냉대, 100만원 한 장 쥐어주는 그런 나라는 너의 조국이 아니다. 권력을 쥔 그들도 우리와 같은 소모품으로서의 고통을 느껴볼 최고의 기회를 주도록 하자. 대신, 투표는 하고 가라. 그래야 나중에 우리가 행복해질 수 있다. 분명한 자기 의사를 보여주고 지워지지 않을 우리의 족적을 남겨두고 떠나자.

 

우린 해적이니깐. 


Written by 선장

Painted by 사샤


Posted by 해적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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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진짜 오래간만이다”

 

영풍문고 음반 코너에서 기웃대고 있는데, 누군가 뒤에서 반가운 목소리로 어깨를 툭 친다. 돌아보니 노○○형이다. 안본 사이에 몰라보게 살이 빠진 모습에 조금 놀라긴 했지만 여느 때와 다름없이 반갑게 악수를 나누었다.

 

형과 나는 한 학년에 1반, 반 인원수 30명, 전교생을 합쳐도 180명이 채 되지 않는 사립학교 출신의 동문이다. 당시 방송매체의 용어를 빌려 말하자면 ‘열린 교육 1세대’다. 형은 ○○국민학교 3회 졸업생, 나는 4회 졸업생이다. 조그마한 건물 한 채에 매일같이 오고가며 서로의 얼굴을 익히고 함께 생활해 온 까닭에 오늘처럼 서로 갈 길 가다 마추져도 별로 어색하지 않은 그런 정도라 보면 되겠다. 그리고 형과 나는 오랜 시간 같은 동네에 살면서 이곳저곳 골목길에서 마주칠 때마다 그럭저럭 인사를 주고받은 전력이 있어 이런 우연찮은 만남도 결코 부담스럽지는 않다.

 

“오랜만에 봤는데 커피라도 한잔 할래?”

평소처럼 그럭저럭 인사를 주고받고 지나갈 줄 알았는데 오늘은 예외인가보다.

“좋죠. 마침 커피도 땡겼는데!”

곧장 서점 지하 1층에 있는 스타벅스에 자리를 잡았다.

“뭐 마실래?, 메뉴 불러. 내가 너한테 얻어먹을 수는 없잖냐”

잘 빠진 얼굴에 수줍은 미소가 돈다. 허허, 그러고 보니 이 정도 얼굴값이면 여자 여럿 따라붙을 상이다. 달걀형 얼굴에 오똑한 콧날, 안정적인 눈매와 시커먼 숯 눈썹에 쌍꺼풀까지 졌다. 머리도 이래저래 잘 만지고, 옷걸이에 옷발도 제법 받네 그려. 살이 쏙 빠지니 새삼스레 그의 외모를 다시 보게 된다.

 

가방 놓고, 짐 놓고 하는 사이에 따뜻한 아메리카노 한잔, 라떼 한잔이 나왔다. 머그잔으로 시킨 걸 보니 금방 헤어질 생각은 아닌 듯싶다. 후후 불어가며 한 모금 넘기기 무섭게 동시에 서로의 안부를 묻는다. 찌찌뽕. 내가 먼저 썰을 풀었다. 전공은 인문학을 했고(어차피 세부전공 이야기해봐야 대부분 알아듣지 못한다), 재미없는 직업에 염증을 느껴 이탈을 시도했고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라는, 너무 무겁지도 그렇다고 너무 가볍지도 않은 미디엄 수준의 이야기로 그 동안의 라이프 스토리를 노릇노릇 구워줬다.

“그렇지, 우린 부속품이 될 수 없어!”

말이 끝나기 무섭게 던진 형의 단호한 한 마디다. (뭐 꼭 그런 의도로 이야기한 것은 아니었는데...) 어쨌든 형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형 역시도 그 동안의 애환, 방황, 고민의 웅덩이에서 한참을 허우적댔고, 나름대로 그곳에서 빠져나오려 애쓰고 있는 노력이 역력해 보였다. 그 역력함의 흔적이 눈가에 진 검은 그늘과 빼쪽 마른 형의 몰골에서 드러난다. 우리나라 3대 대학 안에 손꼽히는 그 학교에서 경제학을 전공했는데, 취직은 건축회사로 했단다. 그것도 모두가 회피하는 현장직으로 말이다. 이력서를 내다내다 안되다 보니 결국 그 진로를 선택한 모양이다. 뭔가 처음부터 단추를 잘못 꿰었다는 느낌에 반년도 채우지 않고 사표를 냈다고 했다. 그리고 나서 8개월 동안 로스쿨을 준비했는데, 점점 공부를 하면 할수록 자신의 진로와는 맞지 않다는 사실을 느끼고 그의 마지막 무기인 ‘일본어 능통자’로서의 능력을 살려 통번역 대학원 쪽도 알아보고 있다고 했다.

 

“여자 친구는 있어?”

형의 두 번째 질문이었다.

“예, 있어요.”

물어보는 투가 왠지 모르게 ‘난 없는데 넌 있니?’로 들린다. 역시나 예상은 맞았다.

“야, 그래도 넌 여자 친구 있으니까 살만하겠다. 난 공부한답시고 친구들이랑 다 연락 끊고...그렇다고 집에 자꾸 있기도 미안하고, 그래서 이렇게 학원 끝나면 카페오고, 카페에서 공부하다 또 학원가고 그냥 그렇게 지낸다.”

“그건 맞아요. 저도 여자 친구 없었으면 병원에서 살고 있었을지도 몰라요. 에이 그리고 형, 형 정도면 여자가 줄줄이 따라 붙을 것 같은데요. 얼른 여자 친구 만드세요. 제가 어떻게 소개팅 해드려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던졌다.

“에이 내가 뭘 딱히 직업이 있는 것도 아니고, 이렇게 지내고 있는데 만들면 뭐하냐. 나중에 자리 잡으면 그 때 가서 만들던지 해야지.”

‘자리 잡으면’이란 if형의 그 말이 비수에 꽂힌다. ‘자리를 잡으면 무엇 무엇을 하겠다’. 어딜 가나 내 또래와 그 주변에서는 남녀누구 구분할 것 없이 사방팔방에서 남발하는 말이다. 무슨 얼마나 대단한 자리가 있길래 우리는 에브리데이 ‘자리를 잡겠다’고 외치는 것인지 이제 뭐가 뭔지 정말 모르겠다. 그리고 ‘자리’라는 용어가 아예 우리 88만원 세대의 고정멘트에 녹아버린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겹친다.

“자리를 잡는다...자리를 잡는 게 뭘까요 형?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 자리 찾다가 좋은 거 다 놓치겠다 싶기도 해요. 그래서 전 요새 그냥 자리고 뭐고 다 제쳐두고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아요.”

씁쓸하게 웃어대니 형도 따라 웃는다.

“그래, 하고 싶은 대로 뭘 하고 사냐?”

“음...일도 하고, 여행도 다니고, 글도 쓰고 하죠.”

“글? 글은 무슨 글을 쓰는데?”

“그냥 전공 따라 논문도 쓰고요, 지금까지는 논문 위주였죠. 우리 쪽 분야로다가 좀 쓰다가 보니까...근데 공급을 해도 수요가 없으니 휴지조각이랑 다를 바가 없더라구요. 그래서 방향을 좀 틀어서 문화콘텐츠 쪽으로다가...아, 형 로스쿨 준비하셨다면서요? 문화산업이랑 관련해서 법도 좀 아세요? 제가 요번에 그 쪽으로 논문 하나 썼는데.”

논문 얘기에 문화산업이 어쩌구저쩌구 떠들어대니 형의 눈빛이 빛난다.

“논문이면 너 지금 대학원 다니니?”

“졸업은 했구요. 그냥 이젠 실험삼아 반 취미삼아 반 그렇게 논문은 계속 내고 있어요.”

“혹시 그 글 볼 수 있냐?”

마침 가방에 논문 하나 갖고 있었던 게 다행이었는지 모르겠다.

“야, 니가 이런 글도 쓰고...이런 일 했구나 너. 고학력자네!”

“석사가 무슨 고학력자인가요. 그냥 어중간한 나부랭이 정도죠. 어디가서 이거 가지고 명함 내밀면 웃어요.”

“야, 그래도 나보다 너가 훨씬 전문적이고 가능성 있어 보인다.”

“전, 형이 더 그래 보이는데요.”

“너 이 책 딱 한 권 갖고 있는 거야?”

“아뇨. 필요하시면 갖고 가세요.”

“야 고맙다. 내가 학원 끝나고 진지하게 한번 읽어볼게. 너 재밌는 일 하는구나.”

“하하, 글쎄요.”

형이 학원 수업이 있다 길래 우리는 곧 잔을 마저 비우고 일어섰다. 영풍문고를 빠져나와 연락처를 주고받는데 형이 무거운 말 한 마디 남긴다.

“야, 이 커피숍 생활도 얼른 때려 치고 싶다.”

“아 그럼요. 조금만 더 고생하시면 형 정도면 분명히 좋은 자리 잡으실 거에요.”

“집에서는 잠만 자고 나오는데도 눈치 보이고, 학원에 가면 다 나보다 어린 사람들이고, 카페 오는 것도 한 두 번이지 정말 못해먹겠다. 하하, 내가 나중에 자리 잘 잡고 한번 제대로 밥 살게. 아니, 야 술이나 한잔 하자”

“술도 좋죠 형. 조심해서 가세요. 연락드릴께요.”

 

얼마나 외로웠으면 지나가다 마주친 동네 동생을 데려다가 커피 시켜 놓고 이런 얘기를 했을까 싶다. 형이 하루 빨리 커피숍을 벗어나 우뚝 그 ‘자리’에 서기를 바랄 뿐이다. 나 역시 커피숍에 오는 횟수를 줄여야 하는 것도 마찬가지만 말이다. 어느 순간부터 우리에게 커피숍은 마음과 현실의 도피처가 된 것일까. 


Written by 선장

Painted by 사샤


Posted by 해적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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