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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장

할리스에서 만난 '언니의 스와로브스키' 추위가 사그러졌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너무 춥다. 시베리아 벌판을 우리 동네 밑장에 깔았나보다. 밤이면 밤마다 울어대던 길 고양이들도 자취를 감췄다. (아마 그들의 아지트에 모여앉아 고래고래 욕을 하고 있을 거다). 그러나 고양이처럼 마냥 춥다고 집에서 웅크릴 수만은 없는 법. 카페라도 나와 앉아있어야 책이라도 한 줄 볼 것 같아 추운 밤 할리스로 향했다. 허허, 역시 연말은 연말이다. 할리스 4층까지 사람들이 바글바글하다. 다행히 4층 가운데 빈자리 하나 남아 있어 냉큼 앉아 가방으로 영역 표시를 하고, 우당탕 내려가 라떼 한잔 시켜 올라왔다. 할리스는 회원카드만 있으면 사이즈 업 또는 샷 추가를 무료로 해준다. 야호, GRANDE 사이즈! 맛있게 냠냠. 자리에 앉아 이것저것 공부거리를 펼치고 앉아, 손.. 더보기
별과 영혼 오늘따라 바람이 잘 분다. 15노트. 그야말로 쾌속선이다. 하늘은 별무리로 가득하고, 파도는 잔잔하다. 바다와 하늘이 검푸른색으로 뒤엉켜 분간하기 힘들다. 하늘에 배가 두둥실 떠가는 것 같다. 심심한 마음에 갑판에 나오니 오늘은 사샤가 없고 요리사가 앉아 있다. 무얼 쥐고 있는지 가만히 손바닥을 쳐다보고 있다. 그리고 하늘을 한번 쳐다본다. 다시 손바닥을 들여다본다. "뭐해 안자고?" "그냥요." "그냥 뭐하는데?" "그냥 있어요." 가까이 가서 보니 손에 온통 허연 가루다. 아아, 그제 아침에 마데이라 섬에 들러 샀던 그 설탕이구나. 설탕은 달콤해서 얼른 팔아넘겨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사샤가 차를 마신다, 빵에 발라먹는다 별 핑계로 야금야금 다 갉아먹을 것이다. 그것에 대비해서 요리사에게 잘 지키고 .. 더보기
[책좀읽자]1. 서른살엔 미처 몰랐던 것들 [책좀읽자] 1. 서른살엔 미처 몰랐던 것들/ 김선경 지음 요즘 우리 세대를 격려하는 수많은 글들을 접하고 있다. 대부분의 글이 '실패해도 괜찮다', '용기를 잃지 마라',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가라', '불굴의 의지로 나아가라, '자신만의 강점을 최대한 살려라' 등등 자신들이 헤쳐나간 역경의 스토리를 열심히 펼치는 데 열을 올린다. 책의 주인공은 이미 그 역경을 이겨내고 사회적으로 크게 성공한 이들이다. 결국 실패의 늪에서 최후까지 살아남아 성공한 몇몇의 사람들이 말해주는 실패의 아픔과 극복의 스토리인 셈이다. 모두들 이렇게 해야 성공한다. 저렇게 해야 성공한다, 나만의 비법을 알려주마 등등 모두들 '성공해라 그리고 성과를 내라' 외치며 우리를 끊임없이 독려한다. 완곡하게 얘기해주는 글도 있고, 승.. 더보기
간식거리, 여자의 원초적 본능. "모모씨, 이리와서 좀 먹어요. 왜 이렇게 안먹어요?""아...저, 점심 먹은지가 얼마 안되서 간식은 그냥 그러네요.""에이~남자가 되가지고 점심가지고 되겠어요? 이리 와서 이거 빵이랑 뻥튀기도 좀 먹어요." 지난 약 4년 동안 일을 하면서 주구장창 들었던 이야기다. 현재 시간 오후 2시 30분, 사무실의 여성 한 분이 조용히 나가더니 이내 빵봉지와 뻥튀기를 산더미 만큼 들고 들어온다. 간식이 도착하면 순식간에 우르르 달려가 와글와글 떠들면서 이걸 먹는건지 흡수하는건지 알아채지 못할 정도로 먹어치운다. 참고로 점심은 12시 30분에 다 먹은거다. "아, 너무 배부르다~~~이제 못 먹겠다. 다이어트 해야되는데 아놔 미치겠네~~""맞아맞아, 우리 요거까지만 먹고 오늘은 끝하자!" 말만 그렇지 ㅠㅠ. 그렇게 .. 더보기
[우리집에 왜왔니] 1. 거문도 고도민박 [우리집에 왜왔니] 1. 거문도 고도민박. 거문도는 200여만평의 서도와 그 절반정도 크기의 동도, 가운데 약 33만평의 고도, 이렇게 3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3개의 섬이 둥글게 모여 외부의 거친 파도와 풍랑을 막아주고 있어 예부터 천혜의 항만으로 불리워진 곳이다. 이 세 섬 가운데에 100만평의 바다가 펼쳐져 있고, 남북으로 뱃길이 트여있다. 한반도 뿐만 아니라 오도열도, 대마도와 매우 가깝고, 홍콩과 블라디보스토크의 중간지점에 위치하고 있어 아시아 진출의 교두보로서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는지라 근대 열강국들이 호시탐탐 노렸던 섬이다. 실제로 영국이 1885년부터 1887년까지 약 3년간 이곳을 불법 점거한 사건은, 거문도가 지정학적, 군사학적으로 매우 긴요한 위치에 자리하고 있음을 보여준.. 더보기
스타벅스는 가격을 내리지 않는다 [스타벅스는 비싸다, 그리고 맛있다.] 친구와 함께 식사를 한 후 커피를 마시기 위해 스타벅스에 들렀다. 나는 카라멜 마끼아또, 친구는 프라프치노를 시켰다. 뭔가 입이 심심해서 디저트로 초코 케익도 하나 주문했다. 커피 두 잔에 케잌 하나의 가격은 대략 1만 7천원. 참고로 이날 친구와 먹은 점심은 6천 원짜리 냉면이었다. 나는 대학시절 내내 커피숍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보냈다. 단순 서빙이 아니라 직접 커피를 만드는 일을 했다. 그래서 커피 맛이라면 간 정도는 제법 볼 줄 안다. 내가 커피 만들던 당시까지만 하더라도(제대 무렵이니 2005년 쯤이다) 커피숍은 그리 많지 않았다. 고작해야 작은 영세 브랜드가 동네에 몇 군데 있었을 뿐이다. 커피숍을 찾는 사람도 그렇게 많지 않았다. 커피 문화라는 자체가.. 더보기
'아빠와 아들'로 본 명화시리즈1 [Shine(1996)] "아버지는 없지만, 난 살아있어. 세월은 가고 절대 영원한 건 없지. 하지만 중요한 건 인생은 멈춰 있지 않다는 거야. 포기하지 말고 결국 살아가야 해. 모든 순간에서 이유를 찾아야 해." 현존하는 천재 피아니스트 데이빗 헬프갓의 일대기를 그린 명화, Shine의 마지막 명대사다. 아내 길리언의 도움으로 중년의 나이에 피아니스트로서의 인생을 되찾은 데이빗은 성공적인 콘서트 데뷔 후 고향에 잠든 아버지 피터 헬프갓의 무덤을 찾아간다. 수많은 고통과 시련의 과정을 거쳐 독보적인 피아니스트 한 사람으로 재기하기까지, 그의 혹독하고 아름다운 삶에 대해 이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너무나도 지독하리만큼 '아빠와 아들'의 애증스러운 관계의 틀에서 이야기를 풀어나아가고 있다. 영화의 시작부는 .. 더보기
나쁜 것도 익숙해진다 사람은 누구나 무엇인가에 대해 익숙해진다. 이것은 사람이 학습하고 숙달하는 것에 대한 하나의 증명이기도 하다. 낯선 것을 낯설지 않게 만드는 사람의 기능. 익숙해진다는 것은 그만큼 사람이 사는데 참 편리한 것이다. 담배를 처음 피기 시작한 무렵, 옷에 밴 담배 냄새에 엄마는 매번 잔소리를 하셨다. 방에 들어오실 때마다 “이놈의 담배 냄새 때문에 니 방엘 못 들어오겠다.”라며 핀잔을 놓으셨다. 그런데 이것도 10년 가까이 되자 그 냄새에 익숙해지셨는지 언젠가부터 잔소리가 멈춰섰다. 나쁜 담배에 엄마가 적응한 것이다. 어디 담배 뿐 만이랴. 통증도 익숙해진다. 얼마 전 운동을 하다 다친 손목이 계속 시큰하다 싶더니 나중에는 움직일 때마다 통증이 왔다. 손을 딛고 일어 설 때마다 신경이 무척 거슬렸는데 그 때.. 더보기
지하철 현장 르포 1. '공'과 '사'의 구분 [지하철을 타다] '사'가 '공'을 이기다. 4호선 당고개행 열차에 중년 남자 넷에 여자 한 분이 지하철에 들어섰다. 족히 50대가 넘어보이는 분들로, 동창모임인지 굉장히 시끌법적하다. 노약자석칸을 모두 점령했다. 껄껄대며 뭐라뭐라 고래고래 큰 소리로 이야기를 주고 받는다. 10대 무개념 청소년 무리처럼 장난식으로 욕을 주고받더니 급기야는 남자 대 남자 시비로 이어진다. 지하철에 스피커를 달아놓은냥 쩌렁쩌렁 울린다. 여자까지 나서서 말리지만 어림도 없다. 불쾌해진 사람들이 하나둘씩 내리고 옆칸으로 옮겨간다. 멱살을 잡고 싸우기 직전, 한 사람이 제대로 약점 잡혔다. 공격자가 친구가 체육교사라는 점을 이용, 대중에게 '이놈이 체육교산데 이렇고 있다'며 대외적으로 욕을 한다. 체육교사 친구가 그때서야 흠칫하.. 더보기
두통의 원인 몇 시쯤 되었을까. 해가 뜨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지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다. 파도소리가 멀리서부터 밀려온다. 누구의 명령으로 육지에 내렸던 말인가. 당장 눈앞에는 먼지자국이 가득히 쌓인 허름한 벽과 바람 치는 소리에 덜컹대는 나무 창틀이 들어온다. 하늘엔 기러기 떼가 줄지어 날아가고 있다. 도무지 어딘지 가늠할 수 없다. 뒷골이 뻑적지근하다. 귀도 먹먹하다. 해머로 뒤통수를 실컷 두드려 맞은 기분이다. 아마 극심한 두통에 시달리다 실신하듯 잠든 것 같다. 몸을 일으켜 보려 했으나 머리를 드는 순간 포기한다. 아직 두통기가 뇌를 지배하고 있다. “그냥 누워 있어요.” 문을 열고 레나스가 들어온다. 평소와 다름없이 잘 다려진 검은 가운을 입고, 머리에는 검은 두건을 깔끔하게 접어 올렸다. 어둑어둑한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