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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적단

백건우, 라벨을 노래하다 라벨 스페셜리스트로서의 백건우. 그의 면모가 가장 잘 드러나는 곡 중의 하나가 바로 '왼손을 위한 피아노협주곡 D장조' 말 그대로 왼손만으로 연주하는 곡이다. 한편으로 갸우뚱했다. ‘한 손으로만 다채로운 음색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감상을 마친 후, 그것은 기우에 불과했다는 것을 알았다. 엄지손가락이 건반을 주도해 나아가면서 카리스마 넘치는 명쾌한 건반 하나하나가 가슴에 거대한 울림을 자아낸다. 라벨은 대단한 고집쟁이였다. 그 고집만큼 자신에 대한 실력과 자부심도 꼿꼿했다. 청년 백건우는 프랑스와 라벨을 사랑했다. 그의 왼손에서 뿌려지는 타건의 신비로움이란 마치 땅거미가 지는 석양의 마지막 어스름을 불러일으킨다. 뉘엿뉘엿 해가 지면 이내 청량한 바람과 고슬고슬 풀벌레 소리가 그 빈 자리를 고독하게 채워.. 더보기
아이템풀 한때 공사현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다. 소위 노가다라는 것을 한 것인데 새벽 5시 30분에 출발해 오후 5시에 작업이 마무리 되고는 했다.어느 날 오후 5시가 되어 집에 가기 위해 마무리 작업을 하던 중이었다. 멀리서 같이 일하는 형님이 날 보며 갑자기 “아이템풀 좀 줘”이러는 거다. 순간 ‘이양반이 날도 안 더운데 더위를 먹었나? 한참 일하는 사람한테 왜 아이템풀을 달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근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질 않았다. 공사현장에서 아이템풀이라니? 그런 이름의 공구가 따로 있었나 싶었다. 결국 내가 “뭐요?”라고 되묻자 그 형님은 다시 한 번 “아이템풀 달라고!!”하는 것이다. 아이템풀이 무엇이던가? 90년대 초등학교도 아닌 국민학교 시절 구슬치기, 팽이치기, 땅따먹기 하며 놀던 .. 더보기
새해맞이 하나 - 색연필 깎기, 그리고 꿈 [새해맞이- 색연필 깎기, 그리고 꿈] 새해맞이 카운트 다운에 들어갔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새해가 오고 있다고 느낀 것은 이번이 생전 처음이다. 그 동안의 연말에는 "크리스마스에 뭘하지?"만 고민했지, "새해는 어떻게 준비하지?"가 늘 빠져 있었다. 그만큼 나에겐 '새해'라는 것이 무의미했고, '새해맞이'라는 것이 무색했다. 어렸을 적에는 그저 명절되면 일가친척한테 새배하고 새뱃돈 두둑히 받으면 그게 새해인가보다 했다. 조금 더 커서는 1월 1일이 되면 일찌감치 일어나 반쯤 뜬 눈으로 안방으로 엉금엉금 기어가서는 전화기를 귀에 걸고 집안어른들에게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하고 안부인사 1~2분 묻고 끊는 것이 예사였다. 새뱃돈 받기는 뭐한 나이고, 나이값 한답시고 의례적으로 하는 새해를 위한 일종의 .. 더보기
해는 기다리지 않는다 [서울에도 해는 뜬다] 해는 기다리지 않는다 윽....어윽! 변기에 앉아 힘을 준다. 쾌변이다. 잠시 행복감을 느낀다. 며칠 규칙적인 생활을 했더니 장운동이 좋아진 모양이다. 물을 내리고 옷매무새를 추스르다 문득 생각한다. '잠깐 내가 지금 뭐하고 있는거지...아, 맞다. 해돋이 보러 하늘공원에 온거지.' 그렇다. 나는 해가 뜨는 것을 보려고 하늘공원에 왔다. 시계를 본다. 오전 7시 53분이다. 새벽에 휴대폰 알람소리에 잠이 깼다. 몇 번을 고민하다 '일.어.나.자.'라고 중얼거리며 정신을 차렸다. 잠이 덜 깬 상태에서도 용케 옷을 찾아 입고 집을 나섰다. 녀석의 기운을 느낀 것은 그때였다. 용트림을 하는 녀석을 달랬다. 괜찮아, 라며 녀석을 잠재웠다. 그게 어떤 결과를 불러오는지 그때는 미처 알지 못.. 더보기
[보물섬] 고향에서 불어오는 바람 봄바람(東風) 너는 바다 밖에서 새로이 불어와 새벽 창가 시 읊는 나를 뒤숭숭하게 하지. 고마워라. 시절 되면 돌아와 서재 휘장 스치며 내 고향 꽃피는 소식을 전하려는 듯하니. 知爾新從海外來, 曉窓吟坐思難裁. 堪憐時復撼書幌, 似報故園花欲開. 이 시는 통일신라의 천재 문인 최치원의 ‘東風’ 이다. 그가 당나라 유학 중에 지은 시로 알려져 있다. 이는 영국에서 유학생활을 하고 있을 때 나를 위로해 주었던 시들 중 하나이다. 당시 나는 봄을 타고 영국으로 들어왔기에, 추운 겨울을 외롭게 나며 다시 찾아온 따스한 봄기운은 내게는 마치 선물과도 같았다. 이 봄바람은 부푼 꿈을 안고 부지런히 유학준비를 했던 한국에서의 소중한 기억을 일깨워 주었다. 굳게 결심했던 포부가 어려움과 외로움에 슬며시 바래졌을 때, 다시금.. 더보기
늑대소년, 그 시절을 향한 무한긍정, 그리고... [우리는 이 시대의 해적이다] 늑대소년, 그 시절을 향한 무한긍정, 그리고... 용산에서 늑대소년을 보고 나오는 길이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생각하고 있었다.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리고 있는데 어르신들이 눈에 띄었다. 동창회 부부동반 모임인 듯 했다. 오랜만에 만난 동창들과 반갑게 인사하며 서로의 안부를 묻는 모습이 정겨웠다. 신호가 얼른 바뀌지 않아 어르신들의 대화를 듣게 되었다. 어르신 한 분이 또다른 어르신에게 핀잔를 준다. "뭘 그렇게 두리번거려?" 안그래도 그 어르신이 뭘 그렇게 찾으실까 궁금해하던 중이었다. 자연히 귀를 쫑긋 세웠다. "입대할 때 용산에 모였잖아. 육이오 때. 육십년만에 처음 오는 것 같네." 대답을 하면서도 어르신은 계속 무언가를 찾았다. 핀잔을 줬던 어르신도 이해한다는.. 더보기
가장 어두운 밤의 위로 [서울에도 해는 뜬다] 가장 어두운 밤의 위로 07:15 남산을 오르는 버스에 있다. 아마 첫차인 듯하다.. 함께 하는 이들은 네다섯명 정도. 다들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창밖만 바라본다. 아직 주위가 어둡다. 저멀리 도시의 풍경이 펼쳐져 있다. 여전히 남아있는 가로등 불빛과 하나둘 켜지기 시작하는 아침의 불빛이 교차하고 있다. 어둠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불빛의 경쟁. 승리자는 없다. 반복만이 있을 뿐... 그런 날이 있다. 랜덤으로 틀어놓은 노래가 지금 내 상황과 우연히 겹치는 날. 뮤직비디오의 주인공이 된 듯한, 지금이 바로 그런 순간이다. 슬픔은 날 가로질러 저 멀리 또 흘러가는데 허무했던 숱한 밤을 지나서 또 다시 돌아오는 공허한 공기들 태양이 뜨기 전이 가장 어둡다고 하지 기회는 언제고 반드시 찾.. 더보기
솔로를 위한 성탄허비지침서 어느새 연말. 주말 저녁거리는 이미 커플들로 가득 차 솔로들은 설 자리가 없다. 연말은 솔로들에게 더욱 가혹하다. 왜? 바로 성탄! 크리스마스가 있기 때문이닷!! 내 생일도 아닌 날에 왜 이렇게 우리는 우울해야하나? 하지만 걱정마라. 크리스마스에 비가 내리길 기원하는 이 순간 세상의 모든 솔로를 위한 본격 솔로지침 제1장 ‘성탄허비 지침서’를 공개하겠다. 제1절 잠들라. 꿈이 너를 평안케 하리라 잘 생각해보라. 크리스마스는 별것인가? 내 생일도, 내 친구 생일도 아니다. 여자 친구처럼 있다고 믿으나 보이지는 않는 예수의 탄생일이다. 우리에겐 아무런 기념이 되지 않는 날이란 말이다. 그저 검정 숫자 가득한 12월 달 한줄기 희망 같은 빨간 날일뿐이다. 정말 꿀 같은 휴일이란 말이다! 연말이라고 친구 망년회.. 더보기
[플레이스테이션 그리고 새턴#7] 남자라면 열혈이다 남자라면 열혈이다 패밀리가 비록 8비트 게임기이기는 하나 사실 전설적인 게임이 많았다. ‘스퀘어’의 파이널 판타지 시리즈도 그렇고 ‘에닉스’의 드래곤 퀘스트가 좋은 예다. 이 둘은 나중에 게임계의 큰 획을 긋는 대작인데 이후로 계속적으로 시리즈가 출시되어 전설을 계속 이어나갔다. 이처럼 잘 찾아보면 대작의 시초이거나 괜찮은 작품이 패밀리에 많았는데 특히 ‘게임은 협동이다’를 보여준 작품이 있으니 바로 ‘열혈 시리즈’였다. 패밀리를 가졌던 유저라면 한번쯤은 해봤을 정도로 유명하고 패밀리의 대중적인 게임이었다. 일단 친구와 함께 2인 협동 플레이가 가능했다는 점은 우리들이 열광하기에는 충분했다. 물론 기존에 2인 플레이가 되는 게임이 없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2인 플레이기는 하나 먼저 게임을 하는 사람이 .. 더보기
별과 영혼 오늘따라 바람이 잘 분다. 15노트. 그야말로 쾌속선이다. 하늘은 별무리로 가득하고, 파도는 잔잔하다. 바다와 하늘이 검푸른색으로 뒤엉켜 분간하기 힘들다. 하늘에 배가 두둥실 떠가는 것 같다. 심심한 마음에 갑판에 나오니 오늘은 사샤가 없고 요리사가 앉아 있다. 무얼 쥐고 있는지 가만히 손바닥을 쳐다보고 있다. 그리고 하늘을 한번 쳐다본다. 다시 손바닥을 들여다본다. "뭐해 안자고?" "그냥요." "그냥 뭐하는데?" "그냥 있어요." 가까이 가서 보니 손에 온통 허연 가루다. 아아, 그제 아침에 마데이라 섬에 들러 샀던 그 설탕이구나. 설탕은 달콤해서 얼른 팔아넘겨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사샤가 차를 마신다, 빵에 발라먹는다 별 핑계로 야금야금 다 갉아먹을 것이다. 그것에 대비해서 요리사에게 잘 지키고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