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전문점이라는 말이 번지기 시작하던 무렵에도 난 커피 마실 줄을 몰랐다. 동네 서점이 있던 자리에 커피전문점이 들어서고 플라스틱 컵을 든 사람들이 길거리를 장악하고도 한참이 지나서야 커피를 먹기 시작한 듯 하다. 정확히 말하자면, 커피전문점을 다니기 시작한 것이다. 반강제로 들어간 커피전문점의 방대한 메뉴들 앞에서 한참을 고민하다가도 결국엔 아이스초코나 핫초코를 주문하곤 했으니까. 나는 거의 최근까지도 커피와 카페와 친하지 않았다.

 

백수가 마음 편히 내 일(?)을 할 공간이란 많지 않다. 이 사실을 깨닫기 시작한 무렵 나는 카페를 빈번히 드나들고 있었다. 자주 가던 밥집이 카페로 변해버려 점심메뉴를 심각하게 고민하던 무렵이기도 하다.

 

요새는 장난스레 '카페 메이트'라고 부르는 친구와 카페 구석에 쳐박혀 온종일 글을 쓴다. 그러다가 한참동안 영화, 드라마, 소설을 이야기 하곤 한다.

 

문득 카페가 문학과 예술, 철학을 품은 공간이라는 사실을 떠올린다. 고흐,보들레르, 랭보, 헤밍웨이가 활약한 파리의 카페까지 갈 것도 없이 이상, 이태준, 이효석, 박태원들의 아지트도 카페였다. 자유, 열정, 화려함 속의 사람들. 내가 누군가의 환생이라는 환상을 품어본다. 달콤한 꿈은 오래가지 않는다. 현실로 돌아온 나에게 밀려오는 건 권태다.

 

자유와 권태의 중간쯤, 이것이 커피와 카페를 사귀며 얻은 것이다.

 

여기 카페를 방황하는 한 청춘이 또 있다. (또하나의 카페 풍경이 궁금하다면, 스타벅스, 구직의 구천을 맴도는 자의 도피처) 흥미로운 것 중 하나는 같은 대상에 대한 타인의 생각을 아는 일이다. 흥미로움을 더하기 위해 출처를 밝히는 것은 잠시 미룰 것이다. 마음껏 상상력을 발휘하며 읽어보기를 권한다. 혼란을 주기 위해 약간의 트릭을 썼다는 것을 밝혀둔다.

 

 

 

자유인의 애수의 항구, 한 카페 자유인의 체험기, 그 첫번째

 

현대인의 카페 취미는 담배 하나 피우기 위한 휴게소로 또는 친구나 혹은 용건이 있는 사람을 잠시 기다리는 대합실 정도로 이용된다. 공리적 일면이 있는 이런 분들께는 좋은 홍차나 커피나 또는 좋은 음악이 그다지 필요하지 않다. 카페의 세속화라고나 할까? 이런 종류의 카페는 서울로 치면 '명과'나 '금강산'에서 종로의 '올림피아', '아세아'가 이에 속할 것이다.

 

그러나 카페의 존재 또는 의의로 본다면 이렇게 순전히 세속적 공리성에 있다고 볼 수는 없다. 이른바 카페 취미, 카페 풍류란 일종 현대인의 향락적 사교 장소라는 대 공통의 존재이유가 있는 것이다.

 

가령 한 친구(또는 2~3사람)와 더불어 시간의 제약을 받지 않고 문학, 예술, 세상의 기이한 사실, 더 나아가 인생을 이야기하기 위하여 이러한 곳을 선택하는 고급된 카페 애용가도 있을 것이요. 사랑하는 한 이성과 고상한 이야기를 하며 애정의 분위기에 잠기려는 세상의 많은 로맨티스트들도 있을 것이요. 최근과 같이 음악과 영화에 대한 열기가 극도로 팽배한 세대에 있어서는 음악을 듣기 위하여 또는 영화의 세계를 찾아 이 카페를 일종의 공동 아지트로 해서 기분좋고 자유롭게 모여들기도 한다.

 

여기 서울 시내에 산재해 있는 카페 분포도를 그려보자. 그리고 이 분포도 위에 배치된 지리적 방위와 그 카페 카페가 가지는 독자적인 카페의 개성과 공통성을 염두에 상기하라. 지역적으로 보아 명동 일대가 서울 다방의 총 본영인 감이 있다. 이른바 서울의 카페 거리이다. 이중에서 카페 탐방객이 어느 집 입구를 들어서면 거기에는 공통된 카페 분위기-일종의 카페 체취-를 느끼리라.

 

남쪽 바다의 열대 식물이 있고, 베토벤의 데쓰마스크와 2~3인의 카페 알바녀 또는 알바남과 가급적 좁은 지면을 실용적으로 이용하여 벌여진 테이블과 의자, 소란한 레코드, 여기저기 널려 있는 그날 그날의 신문과 닳은 그달 그달의 취미 잡지, 영화 잡지, 커텐, 몇 개의 그림, 조각상, 탁상 전등 등 그리고 자욱한 담배 연기와 몇 개의 독립된 대사의 교착, 창백한 인텔리급의 청춘 남녀의 분산된 진영 등.

 

그러나 이 공통된 분위기 속에 반영된 세상의 모습이란? 또 그들의 이 순간적 향락 심리란? 계절을 따라 외부 경계의 변화에 따라 지극히 완만하게 때로는 발작적으로 변모되어 간다. 그리하여 자아의 미미한 형상만을 안고 다니는 카페객의 멸렬된 세계에도 하나의 공통된 심적 현상을 환기할 수 있으니, 가령 겨울에서 갑자기 밝은 봄 햇볕의 총애를 받은 그들이라면 그들은 일제히 경쾌한 보조와 명랑한 미소의 얼굴로 습관적인 그 걸음이 어느 카페 한 집을 찾아들어 가벼운 멜로디에 춤의 한 스텝을 사랑할 것도 같다.

 

이 신경적 외부 세계의 감촉이 이제 멀지 아니하여 우리에게도 이르른 듯 싶다. 명명하여 '춘삼월 카페 정조'란 제목이 나에게 제시된 것도 이러한 곳에 연유한 것이리라. 외투가 무거워지고 스프링코트가 생각나는 때, 오히려 처녀들은 단색의 외투나 코트 속에 간직했던 선명한 색채와 단아한 의상을 거리에 해방하는 기쁨을 맛볼 것이다. 수선화는 시들어 늙었고 커피는 너무나 둔탁한 듯, 향기로운 홍차의 부드러운 김이 웃음 띈 그들의 얼굴과 더불어 하나의 명랑한 노래를 짜낸다.

 

말소리가 가볍고 몸의 율동이 생생하고 탄력성이 있어 봄의 향욕과 꿈과 희망을 품은 흰 구름이 그들의 담배연기와 같이 한 공간 속에 가득 찬다. 어디서 카나리아의 봄하늘을 그리는 노래도 있을 듯, 창을 열면 아코디언의 애수 품은 자유인의 한 전율이 들릴 것도 같으나 불행히 여기는 파리의 뒷골목이 아님에 이런 살 속에 숨어드는 예술적 향취를 찾을 바가 없다.

 

 

 

 * 1938년 5월 1일, 삼천리 제10권 제5호에 실린 이헌구의 「보헤미앙」의 哀愁의 港口, 一茶房 보헤미앙의 手記라는 글입니다.

* 한자어와 옛투의 글을 최대한 읽기 쉽게 바꾸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원래 의미와 상이한 부분도 있다는 점을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원문이 궁금한 이는 http://db.history.go.kr/url.jsp?ID=ma_16_10_05_0460로 가보세요.

* 원래는 '카페'가 아닌 '다방'이라는 단어가 쓰였어요. 수월한 감정의 이입을 위한 것이니 양해바랍니다. 이 시절 글을 읽어보면 '카페'는 술집에 가까워보입니다.

* 어디에서 눈치채셨나요? 70년 전의 카페풍경이 흥미롭지 않았나요? 이 글의 뒷부분은 빠른 시일 내로 소개할게요. 기다리지 못하시는 분은 위의 링크로 가보시고요.

 

written by 모던피플


Posted by 해적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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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진짜 오래간만이다”

 

영풍문고 음반 코너에서 기웃대고 있는데, 누군가 뒤에서 반가운 목소리로 어깨를 툭 친다. 돌아보니 노○○형이다. 안본 사이에 몰라보게 살이 빠진 모습에 조금 놀라긴 했지만 여느 때와 다름없이 반갑게 악수를 나누었다.

 

형과 나는 한 학년에 1반, 반 인원수 30명, 전교생을 합쳐도 180명이 채 되지 않는 사립학교 출신의 동문이다. 당시 방송매체의 용어를 빌려 말하자면 ‘열린 교육 1세대’다. 형은 ○○국민학교 3회 졸업생, 나는 4회 졸업생이다. 조그마한 건물 한 채에 매일같이 오고가며 서로의 얼굴을 익히고 함께 생활해 온 까닭에 오늘처럼 서로 갈 길 가다 마추져도 별로 어색하지 않은 그런 정도라 보면 되겠다. 그리고 형과 나는 오랜 시간 같은 동네에 살면서 이곳저곳 골목길에서 마주칠 때마다 그럭저럭 인사를 주고받은 전력이 있어 이런 우연찮은 만남도 결코 부담스럽지는 않다.

 

“오랜만에 봤는데 커피라도 한잔 할래?”

평소처럼 그럭저럭 인사를 주고받고 지나갈 줄 알았는데 오늘은 예외인가보다.

“좋죠. 마침 커피도 땡겼는데!”

곧장 서점 지하 1층에 있는 스타벅스에 자리를 잡았다.

“뭐 마실래?, 메뉴 불러. 내가 너한테 얻어먹을 수는 없잖냐”

잘 빠진 얼굴에 수줍은 미소가 돈다. 허허, 그러고 보니 이 정도 얼굴값이면 여자 여럿 따라붙을 상이다. 달걀형 얼굴에 오똑한 콧날, 안정적인 눈매와 시커먼 숯 눈썹에 쌍꺼풀까지 졌다. 머리도 이래저래 잘 만지고, 옷걸이에 옷발도 제법 받네 그려. 살이 쏙 빠지니 새삼스레 그의 외모를 다시 보게 된다.

 

가방 놓고, 짐 놓고 하는 사이에 따뜻한 아메리카노 한잔, 라떼 한잔이 나왔다. 머그잔으로 시킨 걸 보니 금방 헤어질 생각은 아닌 듯싶다. 후후 불어가며 한 모금 넘기기 무섭게 동시에 서로의 안부를 묻는다. 찌찌뽕. 내가 먼저 썰을 풀었다. 전공은 인문학을 했고(어차피 세부전공 이야기해봐야 대부분 알아듣지 못한다), 재미없는 직업에 염증을 느껴 이탈을 시도했고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라는, 너무 무겁지도 그렇다고 너무 가볍지도 않은 미디엄 수준의 이야기로 그 동안의 라이프 스토리를 노릇노릇 구워줬다.

“그렇지, 우린 부속품이 될 수 없어!”

말이 끝나기 무섭게 던진 형의 단호한 한 마디다. (뭐 꼭 그런 의도로 이야기한 것은 아니었는데...) 어쨌든 형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형 역시도 그 동안의 애환, 방황, 고민의 웅덩이에서 한참을 허우적댔고, 나름대로 그곳에서 빠져나오려 애쓰고 있는 노력이 역력해 보였다. 그 역력함의 흔적이 눈가에 진 검은 그늘과 빼쪽 마른 형의 몰골에서 드러난다. 우리나라 3대 대학 안에 손꼽히는 그 학교에서 경제학을 전공했는데, 취직은 건축회사로 했단다. 그것도 모두가 회피하는 현장직으로 말이다. 이력서를 내다내다 안되다 보니 결국 그 진로를 선택한 모양이다. 뭔가 처음부터 단추를 잘못 꿰었다는 느낌에 반년도 채우지 않고 사표를 냈다고 했다. 그리고 나서 8개월 동안 로스쿨을 준비했는데, 점점 공부를 하면 할수록 자신의 진로와는 맞지 않다는 사실을 느끼고 그의 마지막 무기인 ‘일본어 능통자’로서의 능력을 살려 통번역 대학원 쪽도 알아보고 있다고 했다.

 

“여자 친구는 있어?”

형의 두 번째 질문이었다.

“예, 있어요.”

물어보는 투가 왠지 모르게 ‘난 없는데 넌 있니?’로 들린다. 역시나 예상은 맞았다.

“야, 그래도 넌 여자 친구 있으니까 살만하겠다. 난 공부한답시고 친구들이랑 다 연락 끊고...그렇다고 집에 자꾸 있기도 미안하고, 그래서 이렇게 학원 끝나면 카페오고, 카페에서 공부하다 또 학원가고 그냥 그렇게 지낸다.”

“그건 맞아요. 저도 여자 친구 없었으면 병원에서 살고 있었을지도 몰라요. 에이 그리고 형, 형 정도면 여자가 줄줄이 따라 붙을 것 같은데요. 얼른 여자 친구 만드세요. 제가 어떻게 소개팅 해드려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던졌다.

“에이 내가 뭘 딱히 직업이 있는 것도 아니고, 이렇게 지내고 있는데 만들면 뭐하냐. 나중에 자리 잡으면 그 때 가서 만들던지 해야지.”

‘자리 잡으면’이란 if형의 그 말이 비수에 꽂힌다. ‘자리를 잡으면 무엇 무엇을 하겠다’. 어딜 가나 내 또래와 그 주변에서는 남녀누구 구분할 것 없이 사방팔방에서 남발하는 말이다. 무슨 얼마나 대단한 자리가 있길래 우리는 에브리데이 ‘자리를 잡겠다’고 외치는 것인지 이제 뭐가 뭔지 정말 모르겠다. 그리고 ‘자리’라는 용어가 아예 우리 88만원 세대의 고정멘트에 녹아버린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겹친다.

“자리를 잡는다...자리를 잡는 게 뭘까요 형?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 자리 찾다가 좋은 거 다 놓치겠다 싶기도 해요. 그래서 전 요새 그냥 자리고 뭐고 다 제쳐두고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아요.”

씁쓸하게 웃어대니 형도 따라 웃는다.

“그래, 하고 싶은 대로 뭘 하고 사냐?”

“음...일도 하고, 여행도 다니고, 글도 쓰고 하죠.”

“글? 글은 무슨 글을 쓰는데?”

“그냥 전공 따라 논문도 쓰고요, 지금까지는 논문 위주였죠. 우리 쪽 분야로다가 좀 쓰다가 보니까...근데 공급을 해도 수요가 없으니 휴지조각이랑 다를 바가 없더라구요. 그래서 방향을 좀 틀어서 문화콘텐츠 쪽으로다가...아, 형 로스쿨 준비하셨다면서요? 문화산업이랑 관련해서 법도 좀 아세요? 제가 요번에 그 쪽으로 논문 하나 썼는데.”

논문 얘기에 문화산업이 어쩌구저쩌구 떠들어대니 형의 눈빛이 빛난다.

“논문이면 너 지금 대학원 다니니?”

“졸업은 했구요. 그냥 이젠 실험삼아 반 취미삼아 반 그렇게 논문은 계속 내고 있어요.”

“혹시 그 글 볼 수 있냐?”

마침 가방에 논문 하나 갖고 있었던 게 다행이었는지 모르겠다.

“야, 니가 이런 글도 쓰고...이런 일 했구나 너. 고학력자네!”

“석사가 무슨 고학력자인가요. 그냥 어중간한 나부랭이 정도죠. 어디가서 이거 가지고 명함 내밀면 웃어요.”

“야, 그래도 나보다 너가 훨씬 전문적이고 가능성 있어 보인다.”

“전, 형이 더 그래 보이는데요.”

“너 이 책 딱 한 권 갖고 있는 거야?”

“아뇨. 필요하시면 갖고 가세요.”

“야 고맙다. 내가 학원 끝나고 진지하게 한번 읽어볼게. 너 재밌는 일 하는구나.”

“하하, 글쎄요.”

형이 학원 수업이 있다 길래 우리는 곧 잔을 마저 비우고 일어섰다. 영풍문고를 빠져나와 연락처를 주고받는데 형이 무거운 말 한 마디 남긴다.

“야, 이 커피숍 생활도 얼른 때려 치고 싶다.”

“아 그럼요. 조금만 더 고생하시면 형 정도면 분명히 좋은 자리 잡으실 거에요.”

“집에서는 잠만 자고 나오는데도 눈치 보이고, 학원에 가면 다 나보다 어린 사람들이고, 카페 오는 것도 한 두 번이지 정말 못해먹겠다. 하하, 내가 나중에 자리 잘 잡고 한번 제대로 밥 살게. 아니, 야 술이나 한잔 하자”

“술도 좋죠 형. 조심해서 가세요. 연락드릴께요.”

 

얼마나 외로웠으면 지나가다 마주친 동네 동생을 데려다가 커피 시켜 놓고 이런 얘기를 했을까 싶다. 형이 하루 빨리 커피숍을 벗어나 우뚝 그 ‘자리’에 서기를 바랄 뿐이다. 나 역시 커피숍에 오는 횟수를 줄여야 하는 것도 마찬가지만 말이다. 어느 순간부터 우리에게 커피숍은 마음과 현실의 도피처가 된 것일까. 


Written by 선장

Painted by 사샤


Posted by 해적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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