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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전오백원

[500원] 함께 걷는 길에서 그거 아나요? 당신과 함께 길을 걸으면 세상 모든 게 전부 내 것만 같았답니다. 그 어느 누구도 부러울 게 없었죠. 당신과 함께 있어서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내였답니다. 당신은 제게 왜 꼭 사람들이 많이 있는 거리를 잘 가느냐고 툴툴거렸지만, 혹시 그거 아나요? 당신과 함께 길을 걸을 때면 더 더욱 많은 사람들에게 내 옆에 지금 당신이 함께한다고 자랑하고 싶었답니다. 다른 사람이 아니라 바로 당신이요. 오늘도 나와 함께 길을 걸어 주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사진 : 독일의 퀼른 다리 그리고 사랑의 자물쇠 Written by 동전오배건 더보기
[500원] 겨울비, 안개 그리고 따뜻한 차 녹지 않을 것만 같던 눈 더미들이 겨울비에 깨끗이 사라져버렸다. 시린 내 마음도 눈물에 녹으면 좋으련만, 어른이 되니 울어도 소용이 없다. 결국은 이토록 허무하게 사라져 갈 것을 왜 그토록 남기려 했는지… 겨울비가 오는 아침입니다. 겨우내 내린 눈들은 길가 모퉁이에 쌓여져 있었어요. 뽀드득 소복이 쌓여 기분 좋게 만드는 흰 눈이 아니라 골칫덩어리에 더럽게 얼룩진 눈 더미 말이에요, 꼭 마음 한켠에 쌓인 나의 상처들을 보는 것만 같았답니다. 한때는 그렇게 아름다웠었는데 말이죠. 흰 눈, 누구에게는 아름다운 사랑과 추억으로 다가올지 모르지만 제게는 첫사랑의 슬픔입니다. 몸도 마음도 얼어버린 소년에게서 그녀는 떠나가 버렸으니까요. 겨울비에 눈 녹듯이 내 마음의 아픔들이 쉽게 씻겨 나갔으면 좋으련만, 나이가 들.. 더보기
[보물섬] 나는 느림보 "네?! 여보세요?" "잘 안 들려요. 왜 그렇게 빠르게 얘기하는 거예요?" "천천히 좀 얘기해 주시겠어요?" "야, 좀 천천히 가~!" "왜 그렇게 빨리 걷니, 쫓아갈 수가 없잖아." "다음 신호에 건너면 안 될까?" 위의 문장은 제가 자주 지인들에게 하는 말이에요. 반대로 지인들에게는 이런 말을 많이 듣곤 한답니다. "넌 좀 답답한 면이 있단 말이야." "넌 꼭 서둘러야 될 땐 여유부리고 필요 없을 땐 성급하더라." "그렇게 살면 불편하지 않니?" 이런 얘기를 들을 때면 저는 대꾸 없이 그냥 씩 웃기만 한답니다. 그리고 속으로는 스스로를 가다듬죠. '그런가? 천천히 하면 되지, 뭐~' 근데 그거 아나요? 우린 생각이 다를 뿐이라는 걸. 여러분, 전 느립니다. 참 느린 아이에요. 뭐가 그리 급하신가요?.. 더보기
[500원] 산과 바다 같은 사람 높은 곳에 있어 흔한 눈길조차 주지 않아도 산이 좋다. 멀리 떨어져 있어 아무런 말 들려주지 않아도 바다가 좋다. 산과 바다 같은 그대가 그냥 좋다. 산에 오르면 그 웅장함과 숲의 신비함에 마냥 좋습니다. 산에 가면 내가 좋은 것이지요. 바다에 가면 세상 모든 것을 품어줄 수 있는 그 위대한 포용력에 그냥 좋습니다. 덕분에 시야가 탁 트이고 답답했던 마음이 뻥 뚫리며 위안을 받습니다. 하지만 바다는 파도소리만 철썩일 뿐 나에게 아무런 말도 들려주지 않습니다. 그래도 나는 바다가 좋습니다. 그 사람은 산과 바다처럼 나에게 아무것도 해주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대에게 다가가면 내가 좋았습니다. 산과 바다는 내가 온 것이 반갑다는 말이 없고, 그녀 역시 내가 다가온 것이 좋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괜찮습니다.. 더보기
[500원] 옛 애인 선물 처리법 한창 매서운 겨울 날씨의 연속이다. 기세등등한 동장군 덕분에 옷깃을 여미는데 힘이 들어가서 점퍼 지퍼가 고장이 나 버렸다. 지퍼에 달린 고리가 끊겨져 버린 것이다. 쇠고리였는데… 초강력 따뜻한 이 털 점퍼는 ex-girl friend의 선물이다. 보편적으로 오랫동안 연애를 하게 되면 연인들에게는 사시사철의 선물들이 쌓여져 간다. 특히나 한국의 연인들은 철마다 서로 챙겨줘야 할 기념일들이 넘치지 않은가. 하지만 헤어지게 되면 이것들은 처치곤란에 애물단지가 되어 버린다. 버리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남겨두는 사람도 있다. 저마다의 해결법은 다르다. 어떻게 헤어졌느냐에 따라, 얼마냐에 따라, 팔 수 있느냐의 여부에 따라(대체로 커플링), 애착에 따라, 추억에 따라 등등등. 얼마 전 지인에게 이 잠바에 대해서 얘.. 더보기
[500원] 내장산 백양사의 고불매 호남오매(湖南五梅)라 일컫는 고불매(古佛梅)。 그녀를 보러갔건만 이미 그녀는 가고 없단다. 시들은 꽃잎만이라도 보여 달라고 했건만 지조 있는 그녀는 애써 감추며 허락하지 않는단다. 언젠가 뭇 사내와 조우하자 한송이 매화꽃으로 피었다고 했던가. 하여 홍조(紅潮)를 띤 그녀가 나를 맞이하는 꿈을 꿨건만, 그 자취조차 찾을 길이 없단다. 범인(凡人)에게 매화는 욕심일 뿐이란다. 그렇게 끝내 모습을 보이지 않았던 그 사람。 Written by 동전오배건 더보기
[보물섬] 고향에서 불어오는 바람 봄바람(東風) 너는 바다 밖에서 새로이 불어와 새벽 창가 시 읊는 나를 뒤숭숭하게 하지. 고마워라. 시절 되면 돌아와 서재 휘장 스치며 내 고향 꽃피는 소식을 전하려는 듯하니. 知爾新從海外來, 曉窓吟坐思難裁. 堪憐時復撼書幌, 似報故園花欲開. 이 시는 통일신라의 천재 문인 최치원의 ‘東風’ 이다. 그가 당나라 유학 중에 지은 시로 알려져 있다. 이는 영국에서 유학생활을 하고 있을 때 나를 위로해 주었던 시들 중 하나이다. 당시 나는 봄을 타고 영국으로 들어왔기에, 추운 겨울을 외롭게 나며 다시 찾아온 따스한 봄기운은 내게는 마치 선물과도 같았다. 이 봄바람은 부푼 꿈을 안고 부지런히 유학준비를 했던 한국에서의 소중한 기억을 일깨워 주었다. 굳게 결심했던 포부가 어려움과 외로움에 슬며시 바래졌을 때, 다시금.. 더보기
[500원] 우리 동네 빵집가게에는 아가씨가 이쁘다네 우리 동네에는 빵집이 하나 있는데 그 가게에는 아리따운 아가씨가 한 명 있다. 매일 저녁 퇴근길, 동네 어귀에 이르면 빵집 쇼윈도 너머로 항상 그녀를 볼 수 있다. 이 순간만큼은 단순히 내가 퇴근하는 길에 그녀를 본 것인지, 그녀를 보기 위해 일하러 갔다 온 것인지 헛갈릴 때도 있다. 달코롬한 빵 냄새에도 홀려 자연스럽게 눈길이 향할 만도 하니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무리가 아닐 듯하다. 언젠가는 턱을 궤고 TV를 보고 있고, 언젠가는 폐장 준비로 막대걸레질을 하고 있고, 언젠가는 그냥 서 있기도 한다. 그녀는 몇 살일까? 얼핏 보면 나보다 나이가 있어 보이기도 하다. 주인일까, 주인네 딸일까? 내가 스쳐가는 지금 그녀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날 감지하기는 할까? 궁금함도 잠시 내가 그녀를 유리창 너.. 더보기
[500원] 안부인사 나에게는 그런 사람이 있습니다. 대학에 입학했을 때, 군 입대했을 때, 휴가 나와서, 제대하고, 졸업했을 때, 취업할 때, 친구 결혼식 때, 그리고 상갓집에서…그럴 때마다 어김없이 만나는 사람이 있습니다. 아니, 꼭 만나고 싶어서 불러냈던 사람이 있습니다. 나에게는 그런 사람이 있습니다. 십년을 넘게 알아왔으면서도 만난 횟수가 반년 사귀다 헤어진 지난 여친과의 만남보다도 적은 사람 말이죠. 그러고 보니 그 사람은 저의 연애사를 모두 알고 있네요. 그런 날이 있습니다. 꼭 그 사람을 보고 싶은 날. 그날은 돌이켜 보면 제게는 인생의 통과의례라는 주요관문이었더군요. 저를 보여주고 싶었나 봅니다. 그러나 그보다, 그런 중요한 날이면 그녀를 보고 싶어 하는 제 마음을 들키지 않고 불러낼 수 있었으니까요. “잘 .. 더보기
[500원] Intro。500원 짜리 남자 소녀는 나를 알기에 더더욱 슬퍼지네.. - 회상Ⅲ/김태원 “♬~♫~~♪” 익숙해진 핸드폰 알람음, 가장 귀에 거슬리는 소리로 바꿔 놓았건만 ― iPhone4의 ‘공상과학’ 사운드, 사람 속을 뒤집음과 동시에 달팽이관에서 고막을 거쳐 외이도까지 쭉 긁는 느낌을 줌 ― 그 조차도 어느새 귀에 익어버린다. 평소와 별반 다를 것 없는 하루의 시작과 함께 분주하기만한 어느 아침 날. 여전히 잠에 취해 옷매무새를 가다듬다가 바지 주머니에서 남몰래 숨어 있던 동전 500원과 해후(邂逅)하게 되는 그런 날이 꼭 있다. 그럼 보통 우리는 살며시 미소를 짓게 된다. 딱 그 느낌과 그 타이밍이다. 군더더기가 있으면 안 된다. 적어도 그 사람에게는 말이다. 단지 그 느낌의 남자로만 남아있으면 된다. 크게 신경 쓸 사람도, 마..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