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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해일지

새해맞이 해돋이- 동해 추암마을을 가다. [새해맞이 해돋이- 동해 추암마을을 가다] 정동진보다 더 빨리 해가 뜬다고 하는 동해의 작은 마을 추암. 칠흑 같은 어둠을 뚫고 이곳에 도착한 시각은 새벽 4시가 막 지났을 무렵이었다. 육지에 발을 내딛으니 온통 캄캄한 가운데 세찬 파도소리만 사방에서 들려온다. 아무도 없다. “아직 잘 알려지지 않은 곳이니 사람들이 많이 없을 거에요.” 레나스(의사 겸 항해사)의 말이 맞았다. 해는 7시가 넘어야 뜬다고 했다. 그 때까지 충분한 휴식을 취해두지 않으면 안 되겠다. 요리사는 체력이 철철 흐르는지 벌써 배에서 내렸다. “선장! 이제 일어나요! 하늘이 열리는 시간이 다 됐어요!” 으음? 레나스가 어깨를 툭툭 친다. 졸린 눈을 비비고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 새 하늘이 물들기 시작하고 있었다. 그러나 진눈깨비처럼 .. 더보기
별과 영혼 오늘따라 바람이 잘 분다. 15노트. 그야말로 쾌속선이다. 하늘은 별무리로 가득하고, 파도는 잔잔하다. 바다와 하늘이 검푸른색으로 뒤엉켜 분간하기 힘들다. 하늘에 배가 두둥실 떠가는 것 같다. 심심한 마음에 갑판에 나오니 오늘은 사샤가 없고 요리사가 앉아 있다. 무얼 쥐고 있는지 가만히 손바닥을 쳐다보고 있다. 그리고 하늘을 한번 쳐다본다. 다시 손바닥을 들여다본다. "뭐해 안자고?" "그냥요." "그냥 뭐하는데?" "그냥 있어요." 가까이 가서 보니 손에 온통 허연 가루다. 아아, 그제 아침에 마데이라 섬에 들러 샀던 그 설탕이구나. 설탕은 달콤해서 얼른 팔아넘겨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사샤가 차를 마신다, 빵에 발라먹는다 별 핑계로 야금야금 다 갉아먹을 것이다. 그것에 대비해서 요리사에게 잘 지키고 .. 더보기
두통의 원인 몇 시쯤 되었을까. 해가 뜨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지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다. 파도소리가 멀리서부터 밀려온다. 누구의 명령으로 육지에 내렸던 말인가. 당장 눈앞에는 먼지자국이 가득히 쌓인 허름한 벽과 바람 치는 소리에 덜컹대는 나무 창틀이 들어온다. 하늘엔 기러기 떼가 줄지어 날아가고 있다. 도무지 어딘지 가늠할 수 없다. 뒷골이 뻑적지근하다. 귀도 먹먹하다. 해머로 뒤통수를 실컷 두드려 맞은 기분이다. 아마 극심한 두통에 시달리다 실신하듯 잠든 것 같다. 몸을 일으켜 보려 했으나 머리를 드는 순간 포기한다. 아직 두통기가 뇌를 지배하고 있다. “그냥 누워 있어요.” 문을 열고 레나스가 들어온다. 평소와 다름없이 잘 다려진 검은 가운을 입고, 머리에는 검은 두건을 깔끔하게 접어 올렸다. 어둑어둑한 .. 더보기
그림으로 말하는 남자 [항해일지 - 그림으로 말하는 남자.] 요리사가 즉석에서 잡은 물고기를 내동댕이치더니 곧바로 슥슥 회를 떠버린다. 멍때리던 선원들이 고기를 보니 저글링처럼 달려든다. 물고기 크기가 엄청크다. 허리만큼 오는 정도의 길이에 늘씬하게 빠진 몸매. 프리즘이 빛나는 비늘이 온 몸을 덮고 있는 녀석인데, 힘이 그야말로 장사다. 펄떡펄떡 뛰더니 꼬리로 요리사 엉덩이를 힘껏 후려친다. 요리사도 지지 않고 물고기의 몸뚱이를 힘껏 내동댕이친다. 저편으로 떨어져 나간다. 물고기 이름이 뭐냐고 물어봤더니 자기도 모른다고 그냥 먹으랜다. 적어도 독은 없으니까 맘 편히 먹으라는 말에 삽시간에 몸뚱이 살점이 사람들의 입으로 흡수된다. 자연은 돌고 도는 법. 초고추장이 모자르다. 나가사키산 와사비가 물고기의 눈가에 점점이 번져 있다.. 더보기
적이 있다는 것, 적이 된다는 것 [항해일지 - 적이 있다는 것, 적이 된다는 것.] 파도가 거세졌다. 배가 꽤 출렁인다. 이제서야 비교적 먼 바다로 나온 것 같다. 우리의 이동경로에 여러 적함대가 출현할 가능성이 있으므로 전쟁이 일어나지 않기 위해서는 가급적 밤을 이용해서 항해하는 것이 좋다. 끝도 없이 펼쳐진 검은 바다. 밤하늘에는 호빵만한 하얀 달이 둥그러니 떠 있고, 주위에는 깨알같은 별들이 흩뿌려져 있다. 배를 둘러본다. 아침에 실은 함포가 묵직한 것이 든든해 보인다. 손으로 가만히 쓰다듬어 본다. 우리도 어느 정도 규모가 커 지면 좀 더 내구성이 강하고 노트가 좋은 갤리온급의 배로 바꿔야 한다. 지금의 배로서는 앞으로의 애로사항들을 헤쳐나아가기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이런저런 잡생각이 하나둘 겹친다. 갑판대에 나와 앉..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