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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

[보물섬] 가만가만 조곤조곤 소소한 행복 간만에 입은 바지 주머니에서 발견한 동전 500원과 같은, 잠에서 깼는데 기상시간이 30분 더 남았을 때와 같은, 가끔씩 찾아오는 비온 뒤 상쾌한 날씨 같은, 심심한 버스 안에서 무심코 들리던 라디오 소리에 내 십팔번곡이 나올 때와 같은, 포기하고 탔는데 기계가 "환승되었습니다." 할 때와 같은, 정말 듣기 지루한 수업이 휴강될 때와 같은, 직장상사가 출장 갈 때와 같은, 단골집아줌마가 오랜만에 왔다며 음료수서비스를 줄 때와 같은, 가글이 있는 식당화장실 같은, 으스스한 겨울 날씨에 화장실 변기에 앉았는데 비데의 변좌 기능으로 따근따근함을 느낄 때와 같은, 소장하고 싶지만 돈 주고사기에는 아까운 책을 중고서점에서 만났을 때와 같은, 커피쿠폰 적립이 다 쌓여서 공짜로 먹을 때와 같은, 가끔 지인의 지인 덕.. 더보기
[보물섬] 나는 느림보 "네?! 여보세요?" "잘 안 들려요. 왜 그렇게 빠르게 얘기하는 거예요?" "천천히 좀 얘기해 주시겠어요?" "야, 좀 천천히 가~!" "왜 그렇게 빨리 걷니, 쫓아갈 수가 없잖아." "다음 신호에 건너면 안 될까?" 위의 문장은 제가 자주 지인들에게 하는 말이에요. 반대로 지인들에게는 이런 말을 많이 듣곤 한답니다. "넌 좀 답답한 면이 있단 말이야." "넌 꼭 서둘러야 될 땐 여유부리고 필요 없을 땐 성급하더라." "그렇게 살면 불편하지 않니?" 이런 얘기를 들을 때면 저는 대꾸 없이 그냥 씩 웃기만 한답니다. 그리고 속으로는 스스로를 가다듬죠. '그런가? 천천히 하면 되지, 뭐~' 근데 그거 아나요? 우린 생각이 다를 뿐이라는 걸. 여러분, 전 느립니다. 참 느린 아이에요. 뭐가 그리 급하신가요?.. 더보기
[보물섬] 특별한 송년회 십년지기 친구들을 누추한 집으로 초대하였다. 집안 사정이 더 나빠진 것을 잘 알고 있는 친구들이기에 부끄러움 따위는 없었다. 유학시절에 소포까지 보내주며 응원을 해주었던 소중한 친구들이기에 보은의 의미에서 한해를 마무리하고자 특별한 송년회를 열었다. 대학시절에 친구들이 된 ‘우리’는 십년이 지난 지금에도 계속 만남을 유지하고 있다. 그 중에서 취업을 한 친구들이 대부분이고 나처럼 공부를 계속하고 있는 학생도 있다. 예전에는 8명 모두가 모여도 서로의 관심사가 같았기 때문에 이야기보따리가 끝이 없었다. 하지만 서로 다른 일을 시작하게 되고 관심사도 달라지다 보니 함께 모여도 이전만큼의 즐거움과 재미가 사라진 것은 사실이다. 더욱이 결혼을 한 친구와 앞둔 친구, 아직은 결혼 생각이 없는 친구들(대체적으로 남.. 더보기
[보물섬] 고향에서 불어오는 바람 봄바람(東風) 너는 바다 밖에서 새로이 불어와 새벽 창가 시 읊는 나를 뒤숭숭하게 하지. 고마워라. 시절 되면 돌아와 서재 휘장 스치며 내 고향 꽃피는 소식을 전하려는 듯하니. 知爾新從海外來, 曉窓吟坐思難裁. 堪憐時復撼書幌, 似報故園花欲開. 이 시는 통일신라의 천재 문인 최치원의 ‘東風’ 이다. 그가 당나라 유학 중에 지은 시로 알려져 있다. 이는 영국에서 유학생활을 하고 있을 때 나를 위로해 주었던 시들 중 하나이다. 당시 나는 봄을 타고 영국으로 들어왔기에, 추운 겨울을 외롭게 나며 다시 찾아온 따스한 봄기운은 내게는 마치 선물과도 같았다. 이 봄바람은 부푼 꿈을 안고 부지런히 유학준비를 했던 한국에서의 소중한 기억을 일깨워 주었다. 굳게 결심했던 포부가 어려움과 외로움에 슬며시 바래졌을 때, 다시금.. 더보기
[보물섬] 꿈꾸는 연구실 꼬마 주인이 사라지면 잠에서 깨어나 움직이는 장난감 병정들과 같이 교수님께서 퇴근하시면 어김없이 연구실의 책들은 나에게 말을 걸어온다. 마음껏 그들과 함께 상상의 나래를 펼쳐본다. 좁은 연구실에서 드넓은 세상을 만나고, 그렇게 꿈을 키워 간다. 어렸을 적에는 몰랐다, 교수님께서 본인의 연구실에 제자를 들여놓는 그 진정한 의미를. 돌이켜보면 나도 모르게 가장가까이에서 나의 미래를 바라보며 성장할 수 있었던 것 같다. 학생들이 찾아와서 고민을 털어놓으면 따뜻한 차를 타주시며 정성스레 그네들의 고충을 들어주는 교수님의 모습, 논문과 수업 준비를 하느라 컴퓨터 자판을 치는 모습, 교수님이면 세상 모든 것을 다 아는 것 같았지만 끊임없이 책과 싸움하며 고뇌하는 모습, 한강이 바라보이는 창문에 서서 사색하는 모습,..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