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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싸니깐 집이다

바람 엄마에게는 작은 바람이 있었다.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즈음 우리 집은 방 한 칸, 부엌 하나에 화장실도 딸리지 않은 작은 집이었다. 주인집을 중심으로 세 가구 정도가 함께 사는 공동주택이었는데 우리 것은 아니었지만 마당에 텃밭도 있는 그런 집이었다. 당시 엄마는 돈벌이가 썩 좋지 않았던 아빠를 대신에 근처의 작은 공장에서 일을 하셨다. 아침이면 가족들의 아침을 다 준비하고 출근을 하셨고, 퇴근 후에는 쉬지도 못하고 저녁을 준비하셨다. 그렇게도 엄마를 부지런히 살게 했던 것은 작은 전셋집이라도 얻기 위해서였고, 그것은 엄마의 작은 바람이기도 했다. 나는 어려 전세와 월세의 차이는 몰랐다. 하지만 지금 살고 있는 집이 ‘우리 집’이 아니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살면서 ‘누구누구네 집에 세 들어산다.’라는.. 더보기
공간의 음악, 시간의 미술 - PLAYTIME, 문화역서울284 2012년 가을, 길에서 서울역을 만났다. 거대한 현재의 驛舍가 아닌 舊역사 말이다. 입구가 활짝 개방되어 있었다. 몇달 전까지만 해도 닫혀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歷史에 한자리를 마련하고서 말이다. 호기심을 가지고 기웃거리니 안쪽에서 북소리가 흘러나온다. 북소리에 이끌려 역사 안으로 걸어들어간다. 마지막으로 이 문을 지난 것이 언제였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부모님과 함께 시골에 다녀올 때가 아닌가 싶다. 여행에 지친 몸을 이끌고 문을 나섰을까. 중앙홀로 들어서니 오가는 사람들이 눈에 띈다. 사람들의 행선지에 대해 궁금해 하다가 얼른 정신을 차린다. 홀의 중앙에서 공연자가 큰북을 치고 있다. 천장이 높은 홀에 북소리가 울린다. 홀로 연주하는 북공연은 지루하다는 생각이 든다. 중앙홀을 지나 예전에는.. 더보기
기묘한 동거 1. 베개에서 타인의 향기를 느끼다 앞에서 이어짐 - [비싸니깐 집이다] - 기묘한 동거 0. 막힌 변기로 발각돼 기묘한 동거 1. 베개에서 타인의 향기를 느끼다 자신의 베개에서 타인의 향기를 느껴본 적이 있는가? 가족과 함께 사는 집에서는 있을 법한 이야기이다. 늦은 오후, 집안일에 지친 어머니는 걸레질을 하다 아들녀석 침대에서 깜빡 잠이 든다. 잠시 후 집에 돌아온 아들은 뛰어든 침대에서 타인의 향기를 느낀다. 파마약 냄새가 뒤섞인 아련한 향기. 범인을 알아차린 매정한 탐정은 벌떡 일어서며 소리친다. ‘엄마, 왜 내 침대에서 잤어?’ 발뺌을 해도 소용이 없다. 향기가 명백한 증거다. 베개에서 낯선 향기를 맡았다. 에로틱한 표현이다. 강남의 한 모텔에서 청담동의 아파트까지 가는 동안 줄곧 자신의 여성편력을 과시하던 지난밤의 사장님이 이 .. 더보기
기묘한 동거 0. 막힌 변기로 발각돼 기묘한 동거, 막힌 변기로 발각돼 2012년 10월 27일 서울 강북경찰서는 26일 수차례 빈집에 침입해 음식물을 무단 취식한 이모(30)씨를 가택침입, 절도 등의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집안으로 침입한 이씨는 마치 자기 집처럼 익숙하게 행동했다. 이씨는 냉장고에서 음식을 꺼내 요리를 하고 소주나 막걸리를 마셨다. 이씨는 마치 주인처럼 집안을 돌아다니며, 라면을 끓여먹고 자장면을 시켜먹는 등 대담한 행각을 벌였다. 배를 채우고 난 후에는 침대에서 태연히 잠을 자다 집주인이 귀가하는 시간에 맞추어 집을 나섰다. 이씨는 보통 혼자 사는 직장인의 아파트를 범행대상으로 삼았다. 피해자의 생활패턴을 파악하여 피해자가 직장에 출근한 시간을 틈타 집안으로 침입했다. 마음에 든 집에는 반년이 넘게 침입했음에도 피해자.. 더보기
사람이 집이다 나의 큰집, 큰아빠 큰엄마가 계신 큰집은 대전 석교동에 있다. 마당이 멋들어지게 자리 잡고 있으며 드라마에서나 올 법한 멋진 이층집이었다. 나무 바닥으로 되어있던 넓은 거실은 한 발, 한 발 내 걸을 때마다 ‘삐걱삐걱’하며 기분 좋은 소리를 내고는 했다. 내 방하나 없던 작은 집에 살았던 나에겐 큰집은 나에게 정말 큰집답게 커다란 집이었다. 이런 큰집은 갈 때마다 놀이터였다. 특히 온갖 신기한 물건들이 많았던 큰집은 나에게 보물창고였다. 자상하셨던 큰엄마는 항상 정원을 아름답게 꾸미셨는데 흡사 일본식 가옥처럼 너무 과하진 않았지만 절제가 있었던 그런 품위 있는 정원이었다. 이런 정원의 식물들을 신기해하며 바라보기도, 마당의 강아지와도 함께 뛰놀았다. 거실에서 이층으로 이어지는 계단은 한발 한발 옮길 때마..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