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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12.16 [책좀읽자]1. 서른살엔 미처 몰랐던 것들
  2. 2012.10.22 남자는 집이다



[책좀읽자] 1. 서른살엔 미처 몰랐던 것들/ 김선경 지음


요즘 우리 세대를 격려하는 수많은 글들을 접하고 있다. 대부분의 글이 '실패해도 괜찮다', '용기를 잃지 마라',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가라', '불굴의 의지로 나아가라, '자신만의 강점을 최대한 살려라' 등등 자신들이 헤쳐나간 역경의 스토리를 열심히 펼치는 데 열을 올린다. 책의 주인공은 이미 그 역경을 이겨내고 사회적으로 크게 성공한 이들이다. 결국 실패의 늪에서 최후까지 살아남아 성공한 몇몇의 사람들이 말해주는 실패의 아픔과 극복의 스토리인 셈이다.


모두들 이렇게 해야 성공한다. 저렇게 해야 성공한다, 나만의 비법을 알려주마 등등 모두들 '성공해라 그리고 성과를 내라' 외치며 우리를 끊임없이 독려한다. 완곡하게 얘기해주는 글도 있고, 승질내며 얘기해주는 글도 있다. 내 입장에서 보기엔 그 얘기가 다 그 얘기로 보이는데, 결론은 어쨌든 '성공해라'다.


그러나 우리가 여기서 분명히 알아두어야 할 사실은 '그 성공자의 지침과 메뉴얼'대로 해서 성공한 사람은 어림잡아 10만분의 1도 채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우리가 의지가 부족해서도 아니고, 우리의 전략이 잘못되어서도 아니다. 또한, 게을러서도 아니고 멍청해서도 아니다. 단지, 우리는 '우리'일 뿐이기 때문이다. 각자가 타고난 기질과 성향은 천차만별로 다를 수 밖에 없다. 마치 숲속에 핀 수백수천만의 풀들이 제각기 다른 위치에서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는 이치와 같다. 지금의 세태를 비유하자면, 라일락으로 예쁘게 피어난 사람이 고목나무 밑에서 할미꽃으로 핀 사람에게 더욱더 예쁜 라일락으로 성장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과 다르지 않다. 라일락은 라일락이고, 할미꽃은 할미꽃일 뿐인데도 말이다.


그렇다면 꼭 라일락으로 피어야만 성공한 삶인 것일까? 조그맣고 소박한 할미꽃으로 살아가는 것은 젊음으로서의 가치를 포기했거나 상실한 것일까? 왜 모두가 성공자의 실패 극복 이야기만 듣는 것일까? 실패자의 실패 이야기는 가치가 없는 것일까? 이는 우리 사회가 겉으로는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다'라고 이야기하고 있긴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성공하지 못한 실패자의 실패담은 가치가 별로 없는 것으로 치부하고 있음을 은연중으로 드러낸 것이라 본다. '실패자는 어디까지나 실패자일뿐이다'라는 패배자 낙인의식이 자리잡혀 있는 것이다. 박주영이 동메달 전에서 그 골을 넣지 못했다면 지금쯤 네티즌 수사대에 의해 SNS 단두대에 올라갔을 것이 틀림없다.


여기에 딴지를 걸고 나온 책 한권이 있다. '서른 살엔 미처 몰랐던 것들'. 군대에서 수도 없이 봤던 [좋은생각]을 출간했던 김선경씨의 회고담이다. 자칭 실패자로서 자신이 겪은 실패담을 너무나도 담담하게 서술하고 있다. 작가는 '도대체 성공의 잣대가 무엇이고 살패의 잣대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에서부터 글을 풀어 나아간다. 저자의 관점은 '생긴대로 사는 것', '수백 번씩 바꾸려 노력해도 바뀌지 않는 나를 용서해주는 것', '있는 그대로의 모습에서 남이 아닌 나의 삶의 바운더리를 만들어 나아가는 것'에 머물러 있다. 이 머물러 있음이 독자로 하여금 너무나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


사실 살면서 가장 두려운 점은 '지금의 내 방식이 과연 옳은 것일까? 맞게 가고 있는 것일까?'라는 자신만의 뿌리깊은 의구심이다. 늘 우리는 우리가 선택한 길에 개운치 못한 뒷맛을 느끼며 어정쩡하게 앞으로 한 걸음 한 걸음 내딛고 있다. 이에 저자는 그 발걸음의 결과가 사회적 인식에서 본 실패가 되었던 성공이 되었든 그것은 아무런 의미도 없음을 이야기한다. 내가 행복하다면, 내가 가는 길이 정말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원하는 것이라면 또는 그것이 정말 원하는 것인지 확신이 가지 않더라도 지금 나아가고 있는 내 모습 자체를 꾸짖지 말자고 한다. 더 나아가 걷다가 그만둬도 좋고, 돌아가도 좋고, 쉬었다가 나중에 하고 싶으면 또 해도 된다라고 한다.


이것이야말로 아주 리얼함을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성공해라'가 아니라 '니 마음대로 살아라'라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흔히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그 흔해빠진 '성공', 수백만달러를 움켜쥔 나의 모습을 상상하는 불꽃과도 같은 그 '성공'은 어쩌면 매일같이 로또를 손에 쥐고 토요일을 기다리는 허무함 같다는 생각이 든다. 결국 '진짜 성공'이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남이 그어준 잣대로서가 아닌 내 스스로가 계획한 설계도에 의한 '작은 성공'인 셈이다. 저자는 즐겁게 그리고 열심히 해서 얻은 실패의 결과라면 그 역시 나름의 성공이 아니겠느냐라고 위트있게 휘파람을 불어준다.


어려우면 어려운대로 문제를 풀어나가면 된다. 아니, 풀지 않아도 좋다. 단지 내 선택에 대한 책임은 내가 지는 것 뿐이다. 어떤 길을 선택하던 기회비용에 의한 후회는 남기 마련이다. 후회보다는 선택의 스위치를 누르고 문을 열고 앞으로 나아간 나 자신을 북돋아주자. 그리고 위로해주자. 이리저리 치이고 까이다가 차곡차곡 쌓인 아픈 실패와 보류의 축적물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어느덧 계획했던 그 '작은 성공'의 문 앞에 나를 데려다줄지 누가 알겠는가. '성공했다'는 나의 판단에서 성립되는 것이지 남의 판단에서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그저 나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것 뿐이다. 막히면 돌아가고, 험하면 쉬어간다. 다만 나는 그 길의 끝에 무엇이 있는지 꼭 보고 싶은 인간 중 하나일 뿐이다.


Written by 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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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해적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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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0.22 04:39

 

 

 

대학 졸업 후 쉴 틈도 없이 직장을 얻고, 혹 넘어질까 걱정하며 달리니 벌써 이립(而立)이다. 뜻을 세울 나이라는데 정작 뜻 보다는 항상 주머니에 돈이 떨어질까 걱정하며 살았다. 그러니 정작 결혼은 친구 청첩장에서나 보는 단어이자 의미다.

명절이면 이제 결혼해야지라는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듣는 말에 매번 건조하게 아직 할 것도 많고, 돈도 없고요. 아직 아니에요라고 대답한다. 내가 대답을 하고도 이 아이러니에 웃음이 난다.


결혼은 본디 사랑하는 이성과 평생을 약속하는 성스러운 의식. 이 성스런 의식에 대한 대답에 애인이라는 이성은 빠진 체 돈도 없고요로 대답하다니. 결혼을 위한 가장 우선 조건은 평생을 같이 할 애인 아닌가? 그럼 현재 만나는 사람이 없는 내 답도 애인이 없어서 결혼을 못한다는 답이 맞는 거다. 내 답대로 해석하자면 나는 돈이 없어서 결혼을 못하는 거지 돈만 있으면 얼마든지 여자를 만날 수 있어. 근데 이 아이러니한 돈이 없어 결혼을 못 한다라는 대답에 반론을 재기할 30대 미혼 남자들이 몇이나 될까? 구역질나는 현 사회 상태에 대해 분하고 열 받지만 나도, 결혼을 못한 수많은 30대 남자들도 수긍한다.


결혼에 돈이 필요한 것은 예식도 그렇지만 남자는 을 장만해야한다. 이 거지같은 공식이 언제부터 우리사회에 깊게 뿌리 박혔는지는 나도, 우리 엄마도 모르겠지만 남자는 집을 장만해야한단다.

어르신들 이야기로는 단칸방부터 시작해서 하나하나 얻으면 된다고 한다. 참 바보 같을 정도로 훌륭한 말이다. 이 대답에 나는 훌륭히 대답할 수 있다. 그런 여자는 이미 한참 전에 나보다 더 능력 있고 잘생긴 녀석과 결혼 했을 것이라고. 그럼 전세로 시작해보자.


전세? 대한민국 땅 덩어리가 좆만 해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수도권 웬만한 아파트 전세 값은 억대다. . 무슨 판타지 소설에나 나올 법한 단위다. 그럼 내가 지금 판타지 소설의 주인공인가? 차라리 주인공이라면 어떻게는 드래곤을 쳐 잡아 억을 얻어 결혼할지 모르겠지만 대한민국이라는 판타지 소설에서 나는 주인공이 아니다. 그냥 평범한 판타지 속 작은 마을의 여관집 아들, 무기상, 아이템상의 아들일 뿐이다. 판타지 속이라도 나는 을 얻을 수 없다.


남자는 집이다. 남자가 집을 얻지 못하면 결혼도 못한다. 너무 자학적이고 비관적이라고? 근데 좆같이도 사실 아닌가? “미안해. 나는 아직 돈을 많이 모으지 못해 아파트 전세는커녕 작은 단칸방부터 시작해야할 것 같아라고 말하면 여자가 괜찮아. 함께 벌어서 마련하면 되지. 우리가 사랑하는데 집은 중요하지 않아라고 대답해 줄 것 같은가? 군대서 읽은 워크 투 리멤버(Walk to Remember)에서나 나올 듯한 대사다.


대학 시절로 가 나는 대학 학비를 어머니께서 부지런히 일을 해 마련해 주셨다. 그 큰 자혜로운 희생 덕에 나는 졸업 후에도 빚은 없었다. 그러지 않은, 혹은 못한 많은 주변 친구들은 알바를 해서 학비를 벌었을까? 아니다. 대부분 학자금 대출을 통해 등록금 및 학비를 마련했고 정작 알바를 통해서는 개인의 용돈 정도를 썼다.

대학 등록금은 방학을 통해서도 마련할 수 없다. 휴학을 해 학비를 마련하지 않는한 불가능하다. 시간당 오천원도 안 되는 알바비 받으며 500만원이나 되는 학비를 마련한다고? 방학기간인 3개월 동안에 500만원을 버는 곳이라면 나는 대학 때려치우고 지금 그곳에서 일을 했을 거다.


졸업 후 달라지는 것은 없다. 직장인이 된 학생은 몇 년간 학자금 대출을 갚기 위해 땅만 보며 달린다. 그리고 허리 좀 피고 하늘 좀 바라볼 때쯤이면 서른, 결혼할 나이. 모아 논 돈 따위는 없다. 근데 사랑하는 여자와 결혼을 하기위해 집을 마련해야한다. 그래서 다시 은행을 찾아간다.

융자와 대출을 끼고 집을 얻는다. 남자는 작은 사회라 불리는 대학에 들어가면서 빚을 지고, 진짜 사회에 나와 부단히도 아끼고 졸라매 빚을 갚고, 2의 인생이라 불리는 결혼을 하면서 다시 빚을 진다.

대한민국에서 대학을 다니려면 학자금 대출을 받아야하는 것처럼 대한민국에서 집을 갖기 위해선 빚을 져야한다. 학비를 부모님이 내 주시는 것처럼, 집도 부모님이 해결해 주시지 않으면 30대에 집을 가질 수 있는 방법은 빚을 내는 것이다.


대학생이 알바로 학비를 마련할 수 없듯이 직장인도 월급을 모아 집을 마련할 수 없다. 역겹게도 대한민국이라는 판타지 속에서는 말이다.


written by 저격수

 

Posted by 해적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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