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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방에서

수영 입문기 - 반면교사가 새옹지마로 변하다 수영을 배우기 시작한지 일주일이 지났다. 실력은 개미 콧구멍 크기만큼씩 나아지고 있다. 갑자기 개그 코너의 유행어가 생각난다. '그건 니 생각이고.' 벼룩 콧구멍 크기만큼씩 좋아지는 걸로 합의를 보자. 개미, 벼룩한테 콧구멍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래도 새벽에 빠짐없이 나오는 것이 대견하다. 심지어 남들보다 10분이나 먼저 풀에 나와 혼자 연습을 한다. 이제 킥판을 잡고 물위에 떠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경지는 된다. 물론 숨을 쉬러 물밖으로 머리를 들면 어김없이 가라앉는 문제는 있다. 나의 사전에 완벽이란 없으니까. 오늘 수영을 처음 배우는 남자 한 명이 새로 왔다. '음 파' 와 물장구를 배우는 모습을 보며 '나도 저랬겠구나.'란 생각을 했다. 저 단계에서 포기하지는 않을지 걱정이 되었다. .. 더보기
특선요리 - 연말 달력 이야기 2 앞 이야기 - 특선요리 - 연말 달력 이야기 1 감색양복을 멋지게 입은 사람이 은행창구에 앉아 있어. 맞아. 아까 봤던 달력아저씨야. 이때도 함박웃음을 짓고 있었네. 은행직원이 마주 웃으며 말을 건네고 있어. 우리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 들어볼까? "상환이 완료되었어요. 축하합니다. A고객님" 이름을 듣지 못해서 급하게 A라고 했어. 괜찮지? 우리 아저씨는 여전히 웃고 있어. 지하철에서의 아저씨가 해준 이야기를 생각해보면, 아마 이때가 은행대출을 모두 갚은 시점인 모양이야. 아저씨 축하해요. 앞으로 탄탄대로만 남았네요. "덕분에 아주 빨리 갚은 것 갚아요. 고마워요." 하고 아저씨는 자리에서 일어섰어. 이제 집으로 달려가 아내에게 기쁜 소식을 알려주는 일만 남은 거지. 근데 아저씨는 문득 무언가 생각난 듯.. 더보기
수영입문기. 땅짚고 헤엄치기의 새로운 의미 "수영 처음이신 분 계세요?" 강사가 묻는다. 조심스럽게 손을 들었다. 하나, 둘...여섯 명 중 두 명이 생초짜. 생초짜는 70센티미터 초보자 풀의 라인 한편으로 안내되었다. 라인 저편은 초보분들의 영역이다. 같은 물을 공유하지만 차이는 어마어마하다. "지금부터 음 파 할거에요. 물속에서 숨을 내쉴 때는 코로 음 하고 물밖에서 파 하고 입으로 마시는 거에요." 강사가 풀에 시범을 보여준다. 그래, 숨 쉬는 것은 자신이 있지. 하고 생각했다. 음 파 음 파 음 파를 연습했다. 여기까지는 할 만했다. 다음에 한 것은 앉아서 물장구 치는 것이다. "앉아서 손은 뒤를 짚고요. 무릎을 펴고 힘차게 물장구를 치면 되요." 역시나 시범을 보이며 강사가 알려준다. 몇번 따라해보니 물장구를 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라.. 더보기
특선요리 - 연말 달력 이야기 1 [특선 요리] 연말 달력 이야기 1 방금 전에 있었던 일이다. 집을 나와서 지하철을 타고 대여섯 정거장을 지났을까. 나는 자리에 앉아 보고 있던 책을 가방 속에 넣어 버리고 새삼스럽게, "이젠 정말 연말이군!" 하였다. 달력의 숫자가 12월 31일이어서가 아니라 지하철에 앉아 있는 사람들의 얼굴을 보았기 때문이다. 다른 포오즈로 앉아 있어도 표정만은 한결 같다. 설렘과 기대가 가득한 표정은 무엇보다도 더 나에게 2012년의 마지막 날이란 느낌을 풍겨주었다. 반대편 문이 열리며 50대 후반의 아저씨가 탄다. 감색 정장을 곱게 차려입고 머리를 깔끔하게 빗어넘긴 모습이 눈에 뜨인다. 그리고 얼굴 가득한 함박웃음은 처음 보는 사람에게 편안해지는 기분을 돋워주는 것이다.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으신가?" 생각하면.. 더보기
문장은 행동의 결과물이다, 그리고 행동은 문장의 결과물이다 '서울에도 해는 뜬다' 너무도 당연한 이 말이 머리속에 등장했을 때, 자전거를 타고 한강다리를 건너던 중이었다. 해뜨기 직전의 어스푸레하던 하늘을 기억한다. 동쪽 하늘에 붉은 기운이 비치기 시작했다. 바로 전까지 새벽 한강변을 자전거로 달렸다. 새벽 자전거는 처음이다. 밤까지 내리던 비는 어느새 물러가 있었다. 얼굴을 스치는 공기가 상쾌했다. 며칠째 기승을 부리던 더위가 한풀 꺾이기 시작했다. 자전거를 타는 순간은 한번도 같았던 적이 없다. 시간과 계절의 변화를 잘 알 수 있는 곳이 자전거 위이다. 하늘, 공기, 바람, 풍경, 사람, 강물은 때때로 변했다. 그걸 보는 재미가 있다. 페달을 밟는 마음도 수시로 바뀐다. 밖의 풍경에 관심을 가지다가도 어느 순간 안의 풍경을 보고 있었다. 그날도 그랬다. 갑자.. 더보기
부아나 비디따 술샤 클럽 - 애니팡 지금까지 해적라디오의 DJ 세이렌이었어요. 끝 곡으로 전설 속으로 사라진 밴드 부아나 비디따 술샤 클럽의 노래를 보내드릴게요. 이 노래를 마지막으로 해체하고, 행방이 묘연한 그들을 추모하며 들어볼게요. 어딘지 모를 바다의 밑바닥에 잠들어 있을지도 모를 부아나 비디따 술샤 클럽의 애니팡을 남기고 저는 이만 물러날게요. 난파당하지 말고 좋은 항해 하세요.~~~굿 럭~~~ 오랜세월 모아왔던 논문 파일들을 지워 버리고 목숨같은 나의 책들을 헐값에 팔아버렸지 예~ 미안해 멤버들아 나는 더이상 인문학을 하지 않을거야 함께 울며 웃으며 공부한 추억을 가슴속에 남길게 돌이켜 생각해보니 나는 쓸데없는 개멋에 취해 (개멋에 취해) 미련하게 청춘을 소모하고 있었던 것 같아 하지만 이제야 깨달았다네 이런 비호감적인 학문을 해..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