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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힐링 클래식] 2.쇼팽의 정석, 폴리니

 


기교가 무엇인지 보여주마- 쇼팽 연습곡

 

쇼팽 이전에도 연습곡은 존재했다. 오늘날까지도 피아노 학원의 바이블로 우뚝 서 있는 체르니가 대표적인 선구자다. 쇼팽과 피아노에서 양대산맥을 이루고 있는 '피아노의 귀신' 리스트도 어렸을 적 체르니에게 탄탄한 기본기를 사사했다. 피아니스트에게 연습곡은 다소 지루한 과정이지만 반드시 넘어가야 하는 필수 코스다. '피아노의 시인' 쇼팽은 연습곡의 수준이 어디까지 나아갈 수 있는지 단단히 보여주었다. 그야말로 연습곡의 끝판을 완성한 것이다. 그의 연습곡은 결국 공연장 연주곡의 반열에 올라섰다.

 

쇼팽이 활약하던 시기는 낭만주의 시대로, 피아노가 독립된 악기로 인정받아 이제 막 기악으로서 꽃을 피우던 시기였다. 쇼팽과 리스트의 초절정 기교의 곡들을 들어보면 딱 그 생각 밖엔 들지 않는다. '어디 쳐볼 수 있으면 쳐봐라'. 락으로 따지면 잉위 맘스틴과 임페리테리의 끝을 모르는 속주를 듣는 느낌이다. 가공할만한 속도감, 그 가운데에서도 씨알머리하나 엇나가지 않는 정교함. 이 정점에서 쇼팽은 생각한 것 같다. '어? 그러고 보니 피아노 기본기 교재는 있어도, 피아노 기교 교재는 없네?' 

 

총 24곡으로 이루어진 작품이다. 이 곡들이 작곡된 시기는 정확치 않지만 작품 10은 1829년~1936년 사이에, 작품 25는 1832년에서 1936년 사이에 작곡된 정도로 추정하고 있다. 그는 1810년에 태어났다. 그러니까 다 20대에 쓰여진 곡이다. 이미 그는 청년 시기에 피아노의 꼭대기에 올라서서 후학을 염두한 연습곡을 지은 것이다. 리스트가 그랬던 것처럼 쇼팽 역시 파가니니의 영향을 크게 받아 이 연습곡을 완성했다. 화려한 연주기교에 더해 '피아노의 시인' 특유의 시적 표현을 톡톡히 담아냈다. 당대 보수파들에게 '예술의 파괴'라고 욕 꽤나 먹었지만, 슈만과 리스트에게는 오히려 극찬받았다. 낭만주의가 무엇인지 교육적으로 몸소 보여준 쇼팽의 결정체라 하겠다.

 

냉철한 해석, 연습곡은 연습곡으로 끝나야 한다- 마우리치오 폴리니

 

'클래식 초보자'도 들어보면 어디서 들어본 듯한 곡들이 여러 개 걸릴 것이다. 그만큼 대중들에게 사랑을 받아왔다고 보면 되겠다. 작품의 명성에 걸맞게 수많은 음반이 출시되어 있다. 그 중에서도 전문가들이 단연 탑클래스로 손꼽는 명반이 있다. 마우리치오 폴리니의 연주다.  

 

1942년 출생, 올해 나이 일흔 하나, 백발이 성한 할아버지다. 이 분도 천재다.(세상엔 참 천재도 많다;;;) 불과 15살에 제네바 콩쿠르에서 2위로 입상하는 기염을 토한다. 그렇다면 그 때 1위는 누가 했을까? 혜성처럼 등장한 '피아노의 여신' 마르타 아르헤리치다. 이 두 사람이 공식적으로 '우리는 라이벌이다'라고 이야기한 적은 한번도 없다. 그러나 대중의 시선은 이미 그와 그녀를 세기의 라이벌로 정의내렸다.

 

아르헤리치가 열정의 심볼이라면, 폴리니는 냉철의 아이콘이다. 똑같은 쇼팽을 연주해도 완전히 다른 해석이 나온다. 아르헤리치가 연주한 쇼팽 피아노협주곡 2번 3장을 들어보라. 듣는 사람이 제압당한다. 엄청난 카리스마로 시작부터 좌석에 앉아있는 청중을 꽁꽁 묶어버린다. 폴리니는 다르다. 열정으로 대중을 휘어잡기보다는 표준적인 감성으로 작품의 실체를 밝고 명확하게 이끌어낸다. 그가 서른살에 녹음한 쇼팽의 연습곡도 다르지 않다.

 

한 치의 오차 없이 톱니바퀴처럼 딱딱 맞아 굴러간다. 손이 기계같이 느껴질 정도다. 음량 배분에서도 절대적인 안정감을 추구하고 있고, 핑거링 역시 냉정함을 고수하고 있다. 앨범 쟈켓의 표정을 봐도 알 수 있다. 주어진 곡을 주어진 대로 칠 뿐이라는 담담한 얼굴을 짓고 있다. 혹자는 의구심을 품어 볼 수도 있다. '감성과 서정을 중시했던 쇼팽도 과연 이렇게 연주했을까요?' 폴리니의 연주를 듣고 난 나의 대답은 이렇다. '연습곡은 연습곡일 뿐이다'. 

 

폴리니는 '쇼팽'의 연습곡보다는 쇼팽의 '연습곡'에 초점을 둔 것이다. 아무리 쇼팽이라고 해도 기교와 시적 감정의 표현을 담아내는 교재에서는 표현의 중립을 지켰을 것이라는 확신이 폴리니의 곡에 그대로 담겨있다. 이렇게 얘기해도 이건 너무 차갑고 이성적이지 않냐고 불평하는 혹자 있을지 모른다. 그래도 할수없다. 아무리 따져봐도 이 이상 쇼팽 연습곡을 바이블의 관점에서 해석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 같다. 마음이 갈피를 못잡고 싱숭생숭할 때 중립과 냉정을 찾고 싶다면 이 곡 한번 들어봐라.

 

[쇼팽 에튀드 Op. 10/25/DG 413794-2]

 

Written by 사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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