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우리를 열광하게 했던 것들'에 해당되는 글 14건

  1. 2012.11.09 [플레이스테이션 그리고 새턴#5] 패밀리
  2. 2012.11.01 크리링은 지구 최강 사나이다 (2)
  3. 2012.10.30 플레이스테이션 그리고 새턴 vol.4
  4. 2012.10.18 플레이스테이션 그리고 새턴 vol.3



패밀리


여유롭지 않은 살림에 철없는 투정으로 엄마는 시내 게임점에서 게임기를 사주셨는데 그것이 나의 첫 게임기였다. 저번에도 말했듯이 엄마가 사주신 첫 게임기는 패밀리라는 8비트게임기였다. 정식으론 ‘Family Computer(FC)’로 패미콤이라 불렸는데 대부분 패밀리라고 불렀다. 


당시 기억으로는 게임기만 5만원정도를 주고 구입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지금의 5만원과 당시의 5만원은 가치는 상당히 달랐다. 오락실 게임 한판에 50원, 100원했고, 친구와 나눠먹는 재미가 있던 ‘쌍쌍바’는 200원이었으며, 아빠 자동차 기름값으로 5천원, 만원을 가지고 다니던 시절이었다. 

지금 따지면 그 5만원은 20만원이나 30만원의 가치였던 것 같다. 아무튼 지금 생각하면 왜 그리 철없이 투정부려 엄마를 힘들게 했는지 창피할 따름이다. 그래도 당시 나는 그런 것보다 게임기를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이 중요했고 기뻤을 뿐이다.


게임기를 가졌다고 해도 나의 게임 생활은 여유롭지 못했다. 어렸을 적 우리 집은 소위 말하는 단칸방이었는데 방 하나에 부엌이 딸린 그런 집이었다. 식구가 많지 않았던 터라 사는데 큰 어려움은 없었지만 단지, TV가 하나였기에 항상 아빠의 뉴스 시청으로 인해 만화를 보는 건 꿈도 못 꿨다.

잠깐 방영하는 만화도 못 보는 상황에서 게임을 할 수 있는 시간은 더욱이 없었다. 나에게 게임을 할 수 있는 시간은 빠르게 학교를 다녀와 아빠가 퇴근하기 전까지였다. 아니면 아빠가 주무실 때 하는 수밖엔 없었는데 그것도 시끄럽다며 못할 때가 많았다. 그러다보니 집에서 게임을 하는 시간보다 게임기를 들고 비어있는 친구네 집을 전전하기일수였다. 나름 상호 절충이요 상부상조를 실천한 셈이었다.


한번은 게임은 하고 싶은데 친구네 집도, 우리 집도 여의치 않았다. 그냥 포기할 수도 있었지만 당시 게임을 열망했던 우리에게 포기는 있을 수 없었다. 아마 당시 열정을 우리 엄마가 봤다면 “그렇게 공부를 해봐라. 서울대를 가겠다.”고 하셨을 거다. 아무튼 그 열망과 열정에서 나온 것이 친구네 공장 잠입이었다. 

친구의 아버지는 공장을 운영하셨는데 그곳에는 잠을 잘 수 있는 작은 방이 하나가 있었는데 물론 그 안에는 TV도 있었다. 우리는 그 TV를 노렸고, 더불어 늦은 시간이라 모두 퇴근하고 없을 것도 확실했으며 누구의 간섭도 없을 것이 당연했다. 단지, 고작 초등학생이었던 우리가 담을 넘기에는 담이 너무 높다는 것이 문제였지만.


직접적으로 공장의 담을 넘을 수는 없었지만 공장 옆 건물옥상을 통해 넘어넘어 가는 것은 가능해 보였다. 게임기를 넣은 가방은 둘레매고, 일단 옆 건물의 담부터 넘어 옥상으로 올라 공장의 옥상으로 넘어들어 갔다. 떨어지면 다리하나 당연 부러질 것 같은 높이었지만 어린나이 철없음의 용기를 누가 말리겠는가. 다행히 지금까지 내 다리에 깁스를 한 적은 한 번도 없다. 

잠입의 성공은 방해 없는 곳에서 둘 만의 게임세계가 열렸고 밤 깊어가는 줄 모르고 원없이 게임을 즐겼다. 이후 친구 부모님이나 우리 부모님이나 이 사실을 알면 부러지지 않은 내 다리를 부러트렸을 것이기에 다시 공장의 담을 넘은 적은 없었다. 


게임기가 없던 아이들의 최고의 바람은 게임기요 게임기를 가진 아이들 최고의 바람은 게임할 수 있는 TV와 내 방이었을 것이다. 그래도 매번 무엇 하나 부족했던 시절이라 게임기 하나만으로도 난 감사했다.



written by 선의


Posted by 해적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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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저녁. 머리 큰 사내 넷이 오랜만에 대포집에 눌러 앉았다. 모듬전 하나에 놓고 막걸리 몇 잔 돌자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가기 시작했다. 사는 이야기, 결혼, 직장 이야기 등. 그 중 네 명의 남자를 집중 시키는 이야기가 있었는데 바로 불후의 명작인 드래곤볼이었다. 일게 만화책 이야기라 할지 모르지만 드래곤볼은 전설이었고 드래곤볼 없는 어린 시절은 생각하기도 싫다. 어린 시절 이야기였던 것 때문인지 네 남자의 이야기는 사뭇 진지했는데 이유인 즉, 드래곤볼의 등장인물인 크리링 때문이었다.


이 : 드래곤볼 보면 항상 손오공만 쌔서 나는 사실 베지터가 더 좋았어. 특히 마인부우랑 싸우다 자살하잖아. 그때 트랭크스를 안아줄 때 좀 멋졌지.


최 : 확실히 츤데레한 남자였지. 손오공이 쌔서 그러지. 그 뭐야 필살기 있자나. 지구 날리는 기술.


김 : 파이널 플래시!


최 : 맞아! 파이널 플래시. 그거 쓸 때 지구 날라 갈까봐 온 힘을 다하지 않잖아. 그게 멋있는 거야.


임 : 그러보면 드래곤볼은 지구인들은 다 약하고 외계인이 쌔. 보면 손오공도 베지터도 다 다른 별에서 온 외계인이야. 크리링은 지구인인데 약하잖아.


최 : 야! 너 크리링 무시하냐?!


이 : 맞아! 그래도 크리링이 지구인 중엔 최강이다.


임 : 아니야. 걔 있잖아. 누구야 눈 세 개 달린 애. 걔가 더 쌔지 않아?


김 : 천진반. 눈 세 개 달린 애.


임 : 왜 그 기술 있잖아. 손 모아서 쓰는 거.


이 : 기공포.


임 : 그래. 기공포. 그거 짱 쌔잖아.


최 : 크리링에겐 그 뭐냐(손바닥을 하늘로 보이며) 그 기술 있잖아. 그거.


이 : 기원참!


최 : 그래!! 기원참. 그걸로 옛날에 쿠우라 아들 걔 누구야. 프리져. 걔 꼬리 자르는 거 너 모르냐? 나메크 별에서 싸울 때 크리링이 기원참 두 개 만들어서 던져서 프리져 꼬리 자르잖아. 천진반은 뭐한 게 없잖아!


이 : 천진반은 셀한테 기공포 쏘다 죽지. 죽으면 아무 소용없어 살아야되. 그래야 의미가 있는 거니깐.


임 : 천진반은 태양권도 있어!


이 : 야! 그건 크리링도 써. 크리링은 내용상 항상 손오공과 함께하며 고생이란 고생은 다한 녀석이야. 죽기도 오지게 죽고 말이야. 아마 살아난 횟수로 따지면 크리링이 젤 많을걸? 아마 지구인이 아니고 사이어인이었으면 최강이었을 거야. 부활만 여러 번 했으니깐.


최 : 손오공 초사이어인 만들어준 것도 크리링이다. 프리져가 크리링 죽여서 그거 보고 손오공이 빡쳐서 초사이어인 된 거 아냐. 아무튼 크리링 무시하면 안 된다.


김 : 크리링은 보면 진짜 만화 초반부터 나오긴 해. 무천도사랑 손오공이 수행할 때 같이 하잖아. 거의 나오는 등급은 주조연급이야.


이 : 맞아. 그리고 크리링은 코도 없다.


최 : 그거랑 코 없는 거랑 뭔 상관이야! 


이 : 아, 뭐 그렇다고. 아무튼 셀 잡고 나중에 천하제일 무도회에서 야무치가 그러자너. 크리링은 지구인에서는 최강이라고. 그래서 크리링이 최강이지.


최 : 야무치는 역시 낭아풍풍권이지!(나름 비슷하게 모양을 취하면서)


이 : 크리링은 나중에 18호랑 결혼도 하잖아. 내가볼 땐 드래곤볼에서 18호가 가장 예쁜데. 근데 크리링이 꼬셨어! 인생의 승리자는 역시 크리링이야! 난 아직 애인도 없는데 말이야. 


최 : 넌 크리링보다 못한 새끼라서 그래. 그리고 천진반은 결혼 못하고 계속 수행하더라. 인생으로나 무술로나 크리링이 한 수 위야. 아무튼 크리링은 프리져의 꼬리를 잘랐기 때문에 지구인중 최강이라고! 




처음 시켰던 막걸리가 동나고 다시 한 병을 더 시켰을 때 네 남자의 진지한 드래곤볼에 대한 토론은 끝이 났다.

아, 결론은 프리져의 꼬리를 자른 크리링이 ‘지구 최강의 사나이다’로 났다. 뭐, 사실일지 아닐지는 모르겠지만 사소한 것에 목숨 거는 네 남자들에게는 크리링이 지구 최강의 사나이였다.


written by 선의



Posted by 해적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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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5.08.15 05:46

    음 그래 그렇구나~

  2. 2016.01.20 20:55

    아쉽게도 지구최강은 우부에요.. 그래도 크리링이 더 상징적이죠..




세상에는 많은 민간요법들이 존재한다. 배 아픈 아이에겐 배탈 약보다 빠른 할머니나 엄마의 따뜻한 손이 있듯이 게임 세계에서도 여러 민간요법들이 존재한다.

나의 첫 게임기였던 패밀리 경우 이라는 소프트웨어를 사용했는데 슬롯에 팩을 끼워 넣는 형식이었다. 지금의 SD카드랑 비슷한 형식인데 지금 생각해보면 굉장히 원시적인 느낌이다. 때로는 팩의 케이스, 즉 플라스틱이 부셔져서 PCB보드 체로 게임에 꽂아 넣을 때도 있었는데 그래도 게임은 팔팔 잘만 돌아가곤 했다. 이런 점이 팩의 장점이기도 했다.


패밀리의 이야기를 조금 더 하자면 패밀리 최고의 민간요법은 바람이었다. 게임기에 팩을 꽂아 넣을 때 유독 인식이 안 되는 게임들이 있었다. 다시 꽂아도 인식이 안 되는 건 똑같았는데 이럴 때 최고의 방법은 팩과 게임기에 입을 대고 후후바람을 불어 넣는 것이었다.

바람을 불고 다시 꽂으면 이상하리만큼 인식이 갑자기 되고는 했다. 원인을 따지자면 그냥 먼지가 쌓여서 안 되던 게 바람을 불어서 먼지가 제거되어 인식이 됐다고는 밖엔.


여담으로 대학시절 여자 친구와 함께 당시 최고의 휴대용 게임기인 닌텐도DS를 같이 산적이 있다. 당시 닌텐도DS는 국내에 정식 유통되어 한글로 만나 볼 수 있었는데 내가 게임 팩을 넣기 전에 입으로 후후불자 여자 친구는 오빠 여기 입으로 불면 안 된다고 쓰여 있는데 왜 자꾸 바람을 부는 거야?”라며 핀잔을 주는 것이었다.

어릴 때 팩을 꽂을 때면 바람을 불던 것이 익숙한 나로썬 당연한 절차였는데 그 아이에겐 이숙하지 않은 행동이었던 것 같다. 그것도 그럴 것이 게임기에 보면 주의 사항으로 입으로 바람을 불지 마세요라고 적혀있었기 때문이었다.


사실 나는 이해가 잘 안 되는 부분이었는데 게임기를 오래 만들어 온 닌텐도에서 이런 민간요법도 모르고 그런 주의 사항을 적어 놓는 게 이해가 안됐다. 그럼 도대체 닌텐도 직원들은 그 주의사항을 지키며 어떻게 팩을 인식시키는지 참으로 궁금하기까지 했다. 그래도 나는 그 후로도 아랑곳 안고 계속 입으로 바람을 불고 팩을 넣고는 했다.


근데 나중에 보니 여자 친구도 나랑 똑같이 입으로 후후불더니 팩을 넣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 아이의 말로는 게임이 인식이 안 되서 오빠가 하는 대로 바람을 후후 불었더니 인식이 아주 잘돼는 거야라고 말하며 웃었다. 그 후로 그 아이도 나처럼 팩을 꽂을 때 최고의 민간요법인 바람을 불어 넣고 게임을 하곤 했는데 손녀딸의 배를 낫게 한 할머니처럼 볼 때마다 흐뭇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플스에도 여러 민간요법이 존재했다. 게임이 인식이 안 되기로는 패밀리 저리가라였던 플스는 툭하면 시디가 인식이 안 되서 메모리카드 관리 화면으로 넘어가기 일수였다. 그래도 패밀리의 경우 게임하던 도중 멈추는 일이 그나마 없었는데 플스는 게임 중에 수시로 시디를 읽다가 못 읽어 다음 화면으로 넘어가지 않고 하루 종일 시디를 읽는 경우도 있었다.

이럴 때 하는 민간요법이 있었는데 바로 플스 본체에 무거운 책 올리기, 뒤집어 놓기, 옆으로 세워 놓기 등이었다. 나는 주로 본체 뒤집기를 사용했는데 성공률은 대략 80% 이상이었다. 이정도의 성공률이니 누구든 안하려 해야 안할 수 없는 민간요법이었다. 내 친구는 주로 옆으로 세우는 방법을 취했는데 그래서 나중에 플스2가 나왔을 땐 옆으로도 세울 수 있게 만들어졌는지도 모르겠다.


시디를 못 읽는 경우는 시디의 표면에 스크래치가 많을수록 심했는데 이 스크래치를 해결하는 방법으로 한 친구는 시디에 치약을 바른 적이 있다. 치약이 시디의 표면을 얇게 벗겨내어 스크래치를 없어준다는 이유였는데 나도 해본 적 있지만 효과는 그다지 눈에 띄지 않아 후로 사용해 본적은 없다.


플스는 초창기 시디플레이어 마냥 조금의 충격만으로도 게임이 멈추기 일 수였다. 그래서 각자의 노하우인 민간요법으로 해결했고 플스를 가진 사람이라면 방법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written by 선의


Posted by 해적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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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첫 게임기는 패밀리(일본에서는 패미콤이라 불렸다)라는 게임기였다. 어린나이에 힘들게 일하시는 엄마를 졸라 산 게임기였다.

팩이라고 불리는 게임 소프트웨어를 끼워 사용하는 게임기였는데 당시 만해도 패밀리가 있는 친구의 집은 항상 많은 친구들이 모이고는 했다. 사실 지금 생각해보면 패밀리는 친구와 같이 할 게임도 거의 없었는데 뭐 그리 많이들 모여 앉아 있었는지 모르겠다. 옛날 TV있는 집에 사람이 모이는 것과 비슷한 거였을까?


플레이스테이션(이하 플스)도 마찬가지였다. 플스가 있는 친구 집엔 학교 끝나자마자 많은 아이들이 몰려가고는 했다. 그래도 플스는 패밀리와 다르게 함께 할 수 있는 게임이 많았다. 더불어 32비트 최신 게임기답게 패드의 여유만 있다면 멀티탭이라는 액세서리를 사용하면 무려 4인용, 두개를 사용하면 무려 8인용까지도 가능했다. 단지 8인이 함께할 게임이 없어서 문제였지만 그래도 게임은 함께 하는 거라는 이미지는 새긴 것 같다.

멀티탭도 놀라웠지만 플스의 독특한 점이라면 메모리 카드라는 저장장치였다. 메모리 카드는 게임의 전반적인 데이터를 저장하는 장치였는데 주로 게임 세이브 데이터를 저장하고는 했다. 용량이 한정되어 있는 팩과는 달리 메모리카드만 있다면 얼마든지 세이브 데이터를 옮기고, 복사하고, 보관이 가능했다. 툭 하면 세이브 데이터가 공중분해 돼 버리는 팩과는 비할 바가 아니었다.


게임 세이브 데이터가 한번이라도 날아가 본 사람은 알 것이다. 열심히 노력해도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다는 세상의 진리를 어린나이에 알게 해주곤 했다. 내 경우 세이브가 중간에 날아가자 그 게임자체를 접은 적도 더러 있었다. 아무튼 메모리카드는 친구의 데이터를 받을 수도, 내 데이터를 나눠 줄 수 있어서 세이브가 날아간다 해도 처음부터 해야 하는 수고는 덜 수 있었다.

나는 매달 게임 잡지를 사고는 했는데 일어로 된 게임 공략을 위해서였다. 이 게임 잡지에는 복사게임시디에 붙일 수 있는 스티커와 메모리카드에 붙일 수 있는 스티커가 함께 들어있었다. 인기 있는 게임의 스티커가 들어있었는데 때로는 공략을 위해 사는 게 아니라 스티커 욕심 때문에 산적도 더러 있었다.


메모리카드에 스티커를 붙이는 것은 '내 것'이라는 하나의 인식표이자 다른 사람과의 차별화였기에 놓칠 수 없는 게임 생활의 한 부분이었다.


Written by 선의

Posted by 해적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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