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위가 사그러졌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너무 춥다. 시베리아 벌판을 우리 동네 밑장에 깔았나보다. 밤이면 밤마다 울어대던 길 고양이들도 자취를 감췄다. (아마 그들의 아지트에 모여앉아 고래고래 욕을 하고 있을 거다). 그러나 고양이처럼 마냥 춥다고 집에서 웅크릴 수만은 없는 법. 카페라도 나와 앉아있어야 책이라도 한 줄 볼 것 같아 추운 밤 할리스로 향했다. 허허, 역시 연말은 연말이다. 할리스 4층까지 사람들이 바글바글하다. 다행히 4층 가운데 빈자리 하나 남아 있어 냉큼 앉아 가방으로 영역 표시를 하고, 우당탕 내려가 라떼 한잔 시켜 올라왔다. 할리스는 회원카드만 있으면 사이즈 업 또는 샷 추가를 무료로 해준다. 야호, GRANDE 사이즈! 맛있게 냠냠. 





 자리에 앉아 이것저것 공부거리를 펼치고 앉아, 손깍지를 끼고 기지개를 한번 주욱 펴본다. 주위를 둘러보니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모여 A, B, C, D, E, F, G ~ Z까지 다양한 이야기들을 나누고 있다. 굳이 보려고 보는 것은 아니요, 굳이 들으려고 듣는 것은 아닌데, 2시 방향의 커플이 매우 매우 매우 눈에 띈다. 둘의 몸이 찰흙처럼 엉키고 섞여 스크류바를 이루었다. 아나콘다 같기도 하고, 아무튼 죽어 못산다. 두 눈이 마주칠 때마다 번갯불이 번쩍번쩍 일면서 쪽쪽 입맞춤을 나누고, 신났어 아주 그냥 신났어 ㅋㅋㅋㅋㅋ.


 남자가 무얼 발견한 듯 여자의 긴 머리를 손으로 쓸어 넘기며 가만히 그녀의 귀를 들여다본다. 그리고 물어본다. 


“어, 못보던 귀걸이네? 귀걸이 샀어?”

“아냐, 언니가 준거야. 나 별로 악세사리 하는거 안 좋아하잖아.”

“아...난 또, 너 귀걸이 잘 안하는데 웬일로 샀나 했지. 근데 왜 했어?”

“아 몰라 진짜, 아침에 나오는데 언니가 이거 하고 나가라고 하면서 끼워주잖아. 해주는데 또 싫다고 하기도 그렇고 냅뒀어 그냥.”


 그냥 보기에도 휘황찬란한 귀걸이. 수수한 롱코트에 니트와 청바지 차림의 여자. 헐, 귀걸이만 무지하게 튀어 보인다. 브랜드는 스와로브스키. 귀 밑으로 길게 드리워진 깨알 같은 보석들이 반짝 반짝대며 무도회 입장을 준비하고 있었다. 귀걸이만 보면 그녀는 지금 영화제 시상식이라도 갈 기세다. 언밸런스하다는 게 요런 걸 두고 이야기하는 거다. 남자가 꽤나 관심이 가는 모양이다. 





“언니는 되게 화려한 거 좋아하나보다?”

“우리 언니 이런 거 되게 좋아해. 귀걸이, 목걸이, 반지, 팔찌, 반지 다 해. 지가 무슨 클레오파트라인줄 알아. 나 참.”


 여자가 큭큭 대며 웃는다. 무슨 사연이 있나보다. 


“우리 언니 대따 특이해. 어렸을 때 우리 엄마가 언니 때문에 고생 엄청 했어. 하하하. 생각하니까 진짜 욱기다 ㅋㅋㅋ.”

“왜왜, 뭐가 웃기는데?”

“우리 언니가 옛날에 어렸을 때 툭하면 없어졌거든? 그게 다른 애들처럼 길에서 가다 잃어버리고 그러는 게 아냐. 어떻게 잃어버리는 거냐면, 우리 언니가 지금도 진짜 나대거든? 옛날에도 똑같았는데, 집에만 나가서 놀면 다른 집 초인종을 막 누르고 그냥 다짜고짜 ‘안녕하세요 저는 모모모에요’ 꾸벅 인사하고 들어가서 저녁 7시고 8시고 그 집에서 계속 노는거야. 그러니까 집에서는 잃어버렸다고 난리가 나는거지!”

“모르는 집에 그냥 들어가서?”

“어어, 미친거지 ㅋㅋㅋㅋㅋ. 그러니 우리 엄마 속이 안 타들어가겠어? 그래서 우리 엄마가 짱구를 굴렸어. 요 기집애를 어떻게 해야 안 잃어버리나 하다가 생각한 게 악세사린거야.”

“악세사리로 뭘?”

“인제 언니한테는 ‘예쁜 악세사리를 하고 다녀야지 사람들이 이쁘다고 하는 거에요, 길도 안 잃어버리고’ 얘기해주면서, 팔찌랑 목걸이를 해줘. 근데 그 팔찌랑 목걸이에 집 주소랑 전화번호, 엄마 아빠 이름, 애 집에 보내주세요 메시지 딱 적힌 꼬리표를 거기다 같이 붙여주는거야. 찾은 사람이 보라고. 사람들 눈에 잘 띄라고 또 보석 이따 만한거로 해주고, 화려한 거 막 이런 걸로 해주고. 웃기지 않아? ㅋㅋㅋㅋㅋㅋㅋ”

“아~~그래서...언니는 지금도 악세사리 다 하고 다니는 거야?”

“어어, 언니는 진짜 꼬맹이때부터 온 몸에 보석치장 한 거지. 지가 맨날 그러고 다니니까 커서도 이게 버릇이 된거야. 나중엔 엄마가 안 사줘도 자기가 알아서 다 사. 고등학교 때 엄마 몰래 카드 갖고 백화점 가서 50만원 긁어서 뒤지게 맞은 적도 있어.ㅋㅋㅋㅋㅋ”

“아 진짜? 대박이네...”

“지가 하다가 또 질리면 나를 줘. 나보고 하라고. 근데 난 뭐 어렸을 때부터 언니가 그러고다니는 거 보니까 별로 악세사리 하고 싶지가 않더라고.”

“그래서 너가 악세사리 별로 안좋아하는구나. 핫핫.”

“무슨 목걸이가 위치추적 장치도 아니고 그게 뭐야. 그냥 보기에도 답답해. 그래서 안해. 그냥 오늘같이 억지로 끼워주면 해. 해준다는 거 안한다고 그러면 완전 삐지거든. ㅋㅋㅋ”

“진짜 특이하네 하하”





  우와. 악세사리도 다 여자 나름의 구구절절한 사연이 있구나. 스와로브스키에도 ‘세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속담을 넣을 수가 있는 거구나. 


Written by 선장


[스와로브스키 사진: 대림미술관 스와로브스키 展]  


Posted by 해적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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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2.20 02:54

 

 

오늘따라 바람이 잘 분다. 15노트. 그야말로 쾌속선이다. 하늘은 별무리로 가득하고, 파도는 잔잔하다. 바다와 하늘이 검푸른색으로 뒤엉켜 분간하기 힘들다. 하늘에 배가 두둥실 떠가는 것 같다. 심심한 마음에 갑판에 나오니 오늘은 사샤가 없고 요리사가 앉아 있다. 무얼 쥐고 있는지 가만히 손바닥을 쳐다보고 있다. 그리고 하늘을 한번 쳐다본다. 다시 손바닥을 들여다본다.

 

"뭐해 안자고?"

"그냥요."

"그냥 뭐하는데?"

"그냥 있어요."

 

가까이 가서 보니 손에 온통 허연 가루다. 아아, 그제 아침에 마데이라 섬에 들러 샀던 그 설탕이구나. 설탕은 달콤해서 얼른 팔아넘겨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사샤가 차를 마신다, 빵에 발라먹는다 별 핑계로 야금야금 다 갉아먹을 것이다. 그것에 대비해서 요리사에게 잘 지키고 있으라고 했더니 아직까진 큰 문제가 없나보다.

 

"왜 그렇게 그걸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어?"

"하얀 게 신기하네요."

"뭐가 신기한데?"

"별이랑 비슷한 것 같아요."

"그런가?"

"그럼요. 반짝반짝한게 그렇지 않아요?"

"음...썩 그래보이지는 않는데;;;"

"제가 육지에 있을 때였어요. 어떤 할아버지한테서 재미난 이야기를 들었어요."

"재미난 이야기? 뭔데?"

"시장에서 생선을 파는 할아버지였어요. 옷차림은 남루했는데, 눈이 굉장히 맑은 분이었죠. 범상치 않다는 건 당장에 알아볼 수 있었어요. 매일 그 시장에 놀러가곤 했는데, 어느 순간 그 할아버지와 친구가 됐죠. 그 할아버지가 얘기해주기를 별은 사람의 영혼이랬어요. 사람이 죽으면 몸은 썩지만 영혼은 씨앗이 되서 하늘로 올라간대요."

 

"오호, 별이 씨앗이라...그럼 꽃도 피나?"

"그럼요. 그 사람이 살아생전에 얼만큼 훌륭한 일을 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선행을 베푸느냐에 따라서 별의 밝기도 달라진대요. 마음에 드는 별을 몇 개 골라서 매일 같이 살펴보면 별빛이 달라지는 걸 금방 알 수 있어요. 점점 빛의 기운이 세지는 건 별이 꽃을 활짝 피우는 거라고 했어요"

"별꽃이 핀다...꽃이 피면 지기도 하나?"

"물론이죠. 그게 바로 혜성이죠. 저기 봐요. 하나가 떨어지잖아요."

"떨어지면 영혼도 사라지나?"

"아뇨. 거꾸로죠. 별이 떨어진 그 자리에서 새로운 생명이 태어난대요. 별꽃을 활짝 피웠던 사람은 그만큼 좋은 가정과 좋은 환경에서 태어난다고 하네요. 타고난 복이라고 해야하나. 결국엔 모두가 돌고 도는 거죠."

"죽어서 별이 되고, 꽃을 피운다...그리고 꽃잎이 지면 혜성으로 떨어져 다시 살아난다...저기 활짝 핀 꽃들 중엔 내 조상님들도 있겠군. 그치?"

 

"있을 거에요. 언젠가 선장도 저기 어딘가의 별이 되겠죠. 얼마나 빛이 날진 모르겠지만 ㅎㅎㅎ"

"그렇겠군. 그럼 저기 어딘가엔 내 할아버지 할머니 별도 있겠구만."

"그럼요. 그래서 옛날 사람들은 저 별들이 자신의 조상들의 영혼이라고 믿었대요. 왜 밤 12시에 제사를 지내는지 아시겠죠?"

"별이, 아니지. 조상님들이 가장 잘 보이는 때라서?"

"그렇죠. 죽은 영혼들의 기운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때라고 하네요. 영혼과 교감을 나눌 수 있는 가장 좋은 시간."

"나름 일리가 있군."

 

그렇게 생각을 해보니 웬지 신비로운 느낌이 든다. 나의 조상들을 별꽃의 모습으로 만날 수 있는 밤이라...요리사 옆에 우두커니 앉아 몇 시간이고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요리사 손에는 작은 메모가 적혀 있었다.

 

 

<별>

 

                                        박영신

 

지상에서 심은 씨앗 중에

가장 멀리에 심은 것이 별이다.

 

떡잎 자라는 가슴이 푸릇푸릇해지는 밤.

 

오늘도 어느 별에서는 꽃이 피고 있다.

 

 

Written by 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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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좀읽자] 1. 서른살엔 미처 몰랐던 것들/ 김선경 지음


요즘 우리 세대를 격려하는 수많은 글들을 접하고 있다. 대부분의 글이 '실패해도 괜찮다', '용기를 잃지 마라',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가라', '불굴의 의지로 나아가라, '자신만의 강점을 최대한 살려라' 등등 자신들이 헤쳐나간 역경의 스토리를 열심히 펼치는 데 열을 올린다. 책의 주인공은 이미 그 역경을 이겨내고 사회적으로 크게 성공한 이들이다. 결국 실패의 늪에서 최후까지 살아남아 성공한 몇몇의 사람들이 말해주는 실패의 아픔과 극복의 스토리인 셈이다.


모두들 이렇게 해야 성공한다. 저렇게 해야 성공한다, 나만의 비법을 알려주마 등등 모두들 '성공해라 그리고 성과를 내라' 외치며 우리를 끊임없이 독려한다. 완곡하게 얘기해주는 글도 있고, 승질내며 얘기해주는 글도 있다. 내 입장에서 보기엔 그 얘기가 다 그 얘기로 보이는데, 결론은 어쨌든 '성공해라'다.


그러나 우리가 여기서 분명히 알아두어야 할 사실은 '그 성공자의 지침과 메뉴얼'대로 해서 성공한 사람은 어림잡아 10만분의 1도 채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우리가 의지가 부족해서도 아니고, 우리의 전략이 잘못되어서도 아니다. 또한, 게을러서도 아니고 멍청해서도 아니다. 단지, 우리는 '우리'일 뿐이기 때문이다. 각자가 타고난 기질과 성향은 천차만별로 다를 수 밖에 없다. 마치 숲속에 핀 수백수천만의 풀들이 제각기 다른 위치에서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는 이치와 같다. 지금의 세태를 비유하자면, 라일락으로 예쁘게 피어난 사람이 고목나무 밑에서 할미꽃으로 핀 사람에게 더욱더 예쁜 라일락으로 성장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과 다르지 않다. 라일락은 라일락이고, 할미꽃은 할미꽃일 뿐인데도 말이다.


그렇다면 꼭 라일락으로 피어야만 성공한 삶인 것일까? 조그맣고 소박한 할미꽃으로 살아가는 것은 젊음으로서의 가치를 포기했거나 상실한 것일까? 왜 모두가 성공자의 실패 극복 이야기만 듣는 것일까? 실패자의 실패 이야기는 가치가 없는 것일까? 이는 우리 사회가 겉으로는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다'라고 이야기하고 있긴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성공하지 못한 실패자의 실패담은 가치가 별로 없는 것으로 치부하고 있음을 은연중으로 드러낸 것이라 본다. '실패자는 어디까지나 실패자일뿐이다'라는 패배자 낙인의식이 자리잡혀 있는 것이다. 박주영이 동메달 전에서 그 골을 넣지 못했다면 지금쯤 네티즌 수사대에 의해 SNS 단두대에 올라갔을 것이 틀림없다.


여기에 딴지를 걸고 나온 책 한권이 있다. '서른 살엔 미처 몰랐던 것들'. 군대에서 수도 없이 봤던 [좋은생각]을 출간했던 김선경씨의 회고담이다. 자칭 실패자로서 자신이 겪은 실패담을 너무나도 담담하게 서술하고 있다. 작가는 '도대체 성공의 잣대가 무엇이고 살패의 잣대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에서부터 글을 풀어 나아간다. 저자의 관점은 '생긴대로 사는 것', '수백 번씩 바꾸려 노력해도 바뀌지 않는 나를 용서해주는 것', '있는 그대로의 모습에서 남이 아닌 나의 삶의 바운더리를 만들어 나아가는 것'에 머물러 있다. 이 머물러 있음이 독자로 하여금 너무나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


사실 살면서 가장 두려운 점은 '지금의 내 방식이 과연 옳은 것일까? 맞게 가고 있는 것일까?'라는 자신만의 뿌리깊은 의구심이다. 늘 우리는 우리가 선택한 길에 개운치 못한 뒷맛을 느끼며 어정쩡하게 앞으로 한 걸음 한 걸음 내딛고 있다. 이에 저자는 그 발걸음의 결과가 사회적 인식에서 본 실패가 되었던 성공이 되었든 그것은 아무런 의미도 없음을 이야기한다. 내가 행복하다면, 내가 가는 길이 정말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원하는 것이라면 또는 그것이 정말 원하는 것인지 확신이 가지 않더라도 지금 나아가고 있는 내 모습 자체를 꾸짖지 말자고 한다. 더 나아가 걷다가 그만둬도 좋고, 돌아가도 좋고, 쉬었다가 나중에 하고 싶으면 또 해도 된다라고 한다.


이것이야말로 아주 리얼함을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성공해라'가 아니라 '니 마음대로 살아라'라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흔히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그 흔해빠진 '성공', 수백만달러를 움켜쥔 나의 모습을 상상하는 불꽃과도 같은 그 '성공'은 어쩌면 매일같이 로또를 손에 쥐고 토요일을 기다리는 허무함 같다는 생각이 든다. 결국 '진짜 성공'이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남이 그어준 잣대로서가 아닌 내 스스로가 계획한 설계도에 의한 '작은 성공'인 셈이다. 저자는 즐겁게 그리고 열심히 해서 얻은 실패의 결과라면 그 역시 나름의 성공이 아니겠느냐라고 위트있게 휘파람을 불어준다.


어려우면 어려운대로 문제를 풀어나가면 된다. 아니, 풀지 않아도 좋다. 단지 내 선택에 대한 책임은 내가 지는 것 뿐이다. 어떤 길을 선택하던 기회비용에 의한 후회는 남기 마련이다. 후회보다는 선택의 스위치를 누르고 문을 열고 앞으로 나아간 나 자신을 북돋아주자. 그리고 위로해주자. 이리저리 치이고 까이다가 차곡차곡 쌓인 아픈 실패와 보류의 축적물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어느덧 계획했던 그 '작은 성공'의 문 앞에 나를 데려다줄지 누가 알겠는가. '성공했다'는 나의 판단에서 성립되는 것이지 남의 판단에서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그저 나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것 뿐이다. 막히면 돌아가고, 험하면 쉬어간다. 다만 나는 그 길의 끝에 무엇이 있는지 꼭 보고 싶은 인간 중 하나일 뿐이다.


Written by 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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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에 왜왔니] 2. 임송희 선생님 댁의 보물구경


“아! 선생님!”

“아이구, 오래간만이네. 여기서 또 만나구.”


올 늦가을 즈음이다. 성북동 최순우 옛집에서 우연치 않게 선생님을 만났다. 동네 산책 나오셨다가 마침 이 곳에 들르신 모양이시다. 내가 석사과정 시절, ‘기본이 튼튼해야 쓸데없는 기교에 빠지지 않는 것’이라며 좋은 말씀을 주셨던 그 분이시다. 툇마루에 앉아 수국차 한잔 기울이시는 모습이 흡사 한 마리 고고한 학이 속세에 잠시 내려와 쉬어가는 한 폭의 그림이다. 오늘도 역시 환한 미소로 맞아주신다. 그 동안에 있었던 이런저런 얘기를 한창 나누던 중 번뜩 생각이 나셨는지 다짜고짜 물으신다. 


“자네, 우리 집 구경 한번 안 갈 텐가?”


거절할 리가 만무하다. 집 구경이라면 환장하는 나인데 하물며 동양화의 대가의 집은 더더욱 구미가 당기는 법. 


“예, 가겠습니다. 언젠가 한 번 꼭 구경하고 싶었어요 선생님.”


옛집을 빠져나와 택시를 타고 성북동 깊숙한 골목으로 올라간다. 보이는 집들이 죄다 으리으리하다. 담장이 무지무지 높다. 옛 봉건영주의 성들이 모여 또 다른 세상을 이룬 것 같다. 그렇게 15분쯤을 들어갔을까. 대리석 계단이 펼쳐진 집 앞에 다다랐다. 


“자네, 우리 집 처음이지?”

“예, 선생님.”

“그럼 우리 집 보물 구경 좀 시켜줄게.”





선생님 댁에는 갖가지 진귀한 돌들이 이곳저곳에 놓여 있었다. 들어가는 정문에서부터 시작되는 하마석(옛날 말을 탈 때 딛는 돌)에서부터 수석, 동자석, 돌확, 괴석, 석등, 돌상과 돌의자 등 옛 돌이란 돌은 모두 한 자리에 모여 있었다.  


“처음에는 하나둘 모으기 시작한 게 나중엔 이게 아주 재미가 있더라구. 뭐가 재미있느냐하면 돌은 방치의 멋이거든. 그냥 내버려둬도 보기 좋고, 물을 뿌리면 또 뿌린 대로의 멋이 있고. 오래 두고 보기에는 질리지가 않고 아주 좋다구.”






돌 하나하나를 설명하시면서 곱게 쓰다듬는 그 손길에 선생님의 돌 사랑이 느껴진다. 곧이어 선생님이 당신의 작업실로 나를 인도한다. 문을 열자마자 물씬 풍기는 먹의 향. 어렸을 적 서예학원의 문을 열고 들어가면 온 방에서 은은하게 퍼지던 정겨운 향이다. 언제든 작업에 임할 수 있도록 갖추어진 붓과 물감, 문진과 문진 사이에 말끔히 펼쳐진 화선지. 간박한 가구들과 이곳저곳에 붙어 있는 선생님의 작품들. 오랜 세월을 간직한 물건들이 엉키고 섞여 한 화가의 예술세계를 깊고 맑게 보여주고 있었다. 선생님이 커튼을 여니 하얀 빛이 우르르 쏟아진다. 






“자네 커피 마시지?”

“아, 제가 타겠습니다.”

“아냐 아냐, 손님이 커피를 타는 법이 어디 있나. 내가 또 보여줄게 있어서 그래. 이게 내 진짜보물이라구.”


선생님이 꺼내 보여주신 건 작은 일회용 플라스틱 커피 스푼. 이게 진짜보물이라구?





“이게 뭔가 특별한 게 있나요?”

“아, 특별하지 그럼. 내가 예전에 아마...30년 쯤 됐을 거야. 우리 안사람이랑 같이 구라파 여행을 갔었다구.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우리나라에 일회용 커피스푼이란 게 없었을 때란 말이지. 호텔방을 들어갔더니 이게 있더란 말야. 우리 안사람이 이걸 보고 어찌나 신기해하고 좋아하던지 그게 그렇게 마음에 남더라구. 내가 그 때 가져온거야. 하하하, 요즘 사람들이야 이런 거 지천에 널려서 신경도 안 쓰지? 그치?”

“.........그래서 이걸 지금 30년 동안 쓰신 거에요?”





“하하하, 내가 별 얘기를 다 하는구만. 나는 커피 타 마실 때마다 이걸로만 마셔. 돌이나 커피스푼이나 다 마찬가지라구. 내가 아끼는 마음으로 오랫동안 간직하면 맛의 차원이 달라지는거야. 우리 안사람이 좋아하니까 나도 좋고 커피스푼도 좋아지는거구. 하하하, 별 얘기를 다 하는구만 내가.”


나는 한 동안 커피스푼만 바라보고 있었다. 할 말을 잃었다. 

 

Written by 선장

Photo by 선장

 


임송희 선생님은 호는 이석(以石), 심정(心井)으로, 충북 증평 출생이다. 서울대 미술대학 동양화과를 졸업하고, 산수화로 이름을 떨쳤다. 심전 안중식, 심산 노수현, 심경 박세원에 이어 심정이라는 호를 박세원 선생에게 받았다. 제 1회 겸재미술상을 수상하였고, 대한민국 미술대전 운영회원 및 심사위원, 동아미술대전 심사위원. 한국미술협회 고문 지냈다. 덕성여자대학교 예술대학 동양화과 교수 및 학장을 역임하였고, 현재 명예교수로 활동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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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해적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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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모씨, 이리와서 좀 먹어요. 왜 이렇게 안먹어요?"

"아...저, 점심 먹은지가 얼마 안되서 간식은 그냥 그러네요."

"에이~남자가 되가지고 점심가지고 되겠어요? 이리 와서 이거 빵이랑 뻥튀기도 좀 먹어요."


지난 약 4년 동안 일을 하면서 주구장창 들었던 이야기다. 현재 시간 오후 2시 30분, 사무실의 여성 한 분이 조용히 나가더니 이내 빵봉지와 뻥튀기를 산더미 만큼 들고 들어온다. 간식이 도착하면 순식간에 우르르 달려가 와글와글 떠들면서 이걸 먹는건지 흡수하는건지 알아채지 못할 정도로 먹어치운다. 참고로 점심은 12시 30분에 다 먹은거다. 


"아, 너무 배부르다~~~이제 못 먹겠다. 다이어트 해야되는데 아놔 미치겠네~~"

"맞아맞아, 우리 요거까지만 먹고 오늘은 끝하자!"


말만 그렇지 ㅠㅠ. 그렇게 말하면서도 계속 먹는다. 한편으로 재미난 것은 서로 그렇게 먹어대면서도 누가 더 많이 먹고, 누가 더 적게 먹는지를 끊임없이 견제하고 관찰한다. 그녀들 마음 속엔 '어우, 쟨 뭔데 저렇게 안먹어? 아 재수없어, 나도 그만 먹어야지' 하는 묘한 감정이 또 하나 있다. '먹지 말아야지 먹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반대로 상대 여성에 대해서는 '더 먹어요 그것가지구 되겠어~요것도 먹구 저것도 먹어요 호호호' 위해주는 척 하면서 서로가 서로를 계속 매긴다. 여기서 덜 먹은 사람은 '튕기네 어쩌네' 구설수에 오르기 마련이고, 가장 잘 먹는 사람은 '마음씨 좋은 푼수'로 통한다. 그렇게 30분 미친듯이 먹고 나면 잠시 동안 잠잠해진다. 남자인 나는 먹는 둥 마는 둥 애먼 커피만 들이키다가 다시 자리로 돌아온다. 


여자가 많은 부서에서는 어떤 직장에서건 반드시 간식을 따로 먹을 수 있는 전용 코너가 있다. 적어도 내가 경험한 바에 따르면 말이다. 각종 유명브랜드의 과자들과 음료, 가끔 외부인이 방문했을 때 선물로 주고가는 고급식품들로 한 구간이 완전히 꽉 차있다. 입이 심심하거나 스트레스가 올라갈 때, 어김없이 찾아가 먹을 수 있도록 해 둔 것이다. 그녀들은 그 구간이 비지 않도록 늘 신경쓴다. 그래서 서로 품앗이처럼 월요일은 누가, 화요일은 또 다른 누가, 수요일은 또또 다른 누가 간식을 가져와 서로에게 보여주면서 자랑한다. "우와, 맛있겠다. 역시...XX씨는 간식센스가 보통이 아니야!" 하면서 칭찬해주고 격려해준다. 기분 좋아진 XX씨는 그 다음주 더 좋은 간식으로 여자직원들에게 화답한다. 박수세례가 쏟아진다. 





그것도 잠시...현재 시간 4시 30분. 간식 먹은지 두 시간 지났다. 이쯤 되면 서서히 여자들의 간식 본능이 일어난다. "아...그새 출출해지네. 모 먹을까?" "아 배고파 나 미쳤나봐 과자 하나 먹어야지~~""제가 커피 내려서 올께요~!" 하며 슬슬 또 간식 먹을 준비를 한다. 


"우리 가운데에 놓고 한 개씩만 집어가서 먹어요" 


말만 그렇지 ㅠㅠ. 한 개씩이 뭐냐. 기다란 뻥튀기 봉지를 간식 먹는 책상에 놓는다. 처음에야 한 개지. 두 번째는 세 개, 세 번째는 다섯 개, 네 번째는 10개...뭐야 이거? 가서 보면 이미 다 먹고 없다;;; 서로 하나씩만 먹자고 약속해 놓고 다 먹었으니...서로 민망해서 다음 간식을 꺼내기가 어려워진다. 그래서 실험을 해봤다. 초코과자봉지 하나 꺼내 한 두어 개만 먹고 책상에 둔 채 내 자리로 돌아갔다. 아니나 다를까, 서로 바톤 터치를 해가면서 한 움큼씩 집어간다. 계속 먹는다. 또 먹는다. 또 먹는다. 또 먹는다. 또 먹는다. 5분만에 봉지 털렸다. 어느덧 퇴근 시간이다. 오늘은 회식이다.


회식...말이 회식이지. 술은 애시당초 관심도 없다. 이미 뭘 먹으러 갈진 그녀들이 다 정해놨다. 그저 소수로 밀린 남자 몇 명은 회식자리 귀퉁이에 쭈구려 앉아 밥 겸 술 겸해서 먹는다. 가운데에선 이미 로마의 대향연이 벌어졌다. 꽃게탕의 게는 이미 다 뜯겨져 있고, 뼈와 국물이 낭자하게 흩어져 있다. 그 다음주로 파전~~~. 그 다음으로 회무침~~~. 마무리로 냉면. 젓가락 휙휙 날아다닌다. 막막 뜯어먹는다. 서로간에 뭐라뭐라고 속사포 랩으로 '블라블라블라블라블라 깔깔깔깔깔 하하하하하' 도저히 연관성 없어보이는 주제들도 알아서 막 이어가며 수다 천국을 만든다. 안주는 벌써 5번이 돌았다. 난 먹은 것도 별로 없는데...돈은 N분의 1로 낸다. 


"소화도 시킬 켬 커피라도 한잔 하지"





커피만 먹냥? 케잌도 먹지 ㅠㅠ. 초코케잌, 치즈케잌, 고구마케잌, 초코머핀에 마카롱. 자자자잠깐만...몇 개를 시키는거야 도대체? 로마의 대향연 시즌 2가 벌어진다. 집 얘기, 애인 얘기, 돈 얘기, 뒷담 얘기, 조카 예쁘다는 얘기, 너무 먹어서 옷이 안맞는다는 얘기, 우리 엄마랑 어제 쇼핑을 갔다는 얘기, 동생이랑 대판 싸운 얘기, 바바바바바바바 두두두두두두두두두 계속 얘기한다. 그러면서 또 재촉한다. 


"허허, 모모씨 오늘따라 왜이렇게 안먹어요? 자 이것도 먹고 요것도 먹고 좀 먹어요. 먹어야 내일 기운내서 일도 하지"


얘들아...저녁 먹었잖니? 지들이 다 먹고 남은 거 남자 몇 명 앞으로 다 밀어넣는다. 슬슬 집에 가고 싶어진다. 배터져서 내일 출근 못할 것 같다. 9시 반 쯤 되니 그녀들의 폭풍간식흡입행사가 막을 내렸다. 


"아~~오늘은 자기 전에 꼭 스트레칭해야지~"

"난 러닝머신이나 좀 타야겠다!"

"샤워 오래해도 살 빠진대요!"

"난 운동 싫어. 그냥 살 찌고 말래 호호"


........앞자리의 남자 동료와 눈교환을 한다. 집에 가는 척 하면서 둘 만 다른 길로 빠진다. 호프집으로 들어간다. 안주는 그냥 오징어 땅콩. 맥주만 마신다. 그냥 허허 웃고 마시고 씁쓸하게 이런저런 얘기나 좀 두리뭉실하게 하다가 둘이서 3000cc딱 나눠 마신다. 적당히 술도 올라온게 기분 좋다. 이렇게 집에 가믄 되는 거다. 


흔히 여자들은 밥배, 간식배, 디저트배, 커피배, 술배가 따로 있다고 한다. 그런데 여기에서도 간식배와 디저트배는 엄연히 다르다고 한다. 디저트배는 점심 먹고 나서 먹는거고, 간식배는 출출할 때 쯤 먹는게 간식배란다. 그리고 밥먹으면서 술은 마시지 않으므로, 밥배와 술배는 구분된다고 한다. 음...남자의 입장에서는 크게 와닿지 않는 대목;;; 왜일까? 





여기서 잠깐. 인류가 수렵, 채집 활동으로 먹고 살던 그 시절로 돌아가보자. 


남자가 하는 일은 무어냐? 사냥이다. 사슴이건 노루건 남자는 그거 하나만 쫓아다닌다. 남자의 머릿 속엔 하나 뿐이다. "저 놈 하나만 잡자." 활로 쏘아 맞추어 어깨에 짊어지고 온다. 그걸로 가족에게 할 의무는 끝났다. '오로지 한 놈만 잡는다'다. 종일 돌아다닌지라 피곤하다. 거하게 저녁 한 판 때리고 잠에 든다. 남자에게 중요한 건 든든한 주식이다. 


그렇다면 여자는 노느냐? 그렇지 않다. 채집을 한다. 집 주변에 있는 먹을만한 풀데기를 찾아다닌다.  그 중에는 나물도 있겠고, 버섯도 있겠고, 열매도 있겠고, 꽃도 있겠고, 그냥 풀도 있겠다. 어쨌든 이것이 먹을 수 있는 건지 없는건지부터 선별한다. 그리고 먹을 수 있는 것이라면 이것저것 다 뜯어온다. 그리고 집 한켠에 정성껏 분류해서 오늘 아침엔 이거, 점심엔 저거, 저녁엔 그거 다 정해놓는다. 평소에 하는 일이 '선별과 분류'다. 직접 입맛으로 간별하면서 조금 더 신선한 것, 조금 더 맛있는 것을 꼼꼼하고 면밀하게 따진다. 이미 여자의 뇌 속엔 수십가지 풀데기로 꽉 차 있다. 그리고 이웃집 누구네 것과 비교하면서 우위를 따지기도 하고, 나눠 먹기도 하고, 수시로 이 집 저 집 돌아 다니며 풀데기 정보를 공유하고, 교환한다. 여자에게 중요한 건 주식 외의 다른 것들이다. 그 다른 것들의 획득에 여자의 자존심이 걸려있다. 


김장철이다. 김장철만 되면 아랫집 윗집 옆집 엄마들 서로 바삐 초인종 눌러댄다. 통에 정성껏 담아와 먹어보라고 준다. 엄마는 또 받아서, 먹은 통에 자신이 담근 김치를 건네준다. "누구네 김치래더라. 맛이 좋다. 먹어봐라". 세상에...아침상에 똑같은 겉절이 김친데 우리집꺼 플러스에 안국동네, 옥인동네, 연희동네, 홍제동네, 옆집 할머니네 총출동이다. 김치상인지 밥상인지...먹어보고 비교해보란다. 안 먹으면 직접 손으로 찢어서 밥상에 올려준다. 어디네가 제일 맛있냐고


간식이고 김치고 나물이고 풀데기고 다 따로 노는 것 같지만 결국엔 다 여자의 '선별과 분류' 본능에서 시작하는 것이다. 


그래서 '간식'이 아니고 '간식거리'다. 


Written by 선장


Posted by 해적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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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에 왜왔니] 1. 거문도 고도민박.


거문도는 200여만평의 서도와 그 절반정도 크기의 동도, 가운데 약 33만평의 고도, 이렇게 3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3개의 섬이 둥글게 모여 외부의 거친 파도와 풍랑을 막아주고 있어 예부터 천혜의 항만으로 불리워진 곳이다. 이 세 섬 가운데에 100만평의 바다가 펼쳐져 있고, 남북으로 뱃길이 트여있다. 


한반도 뿐만 아니라 오도열도, 대마도와 매우 가깝고, 홍콩과 블라디보스토크의 중간지점에 위치하고 있어 아시아 진출의 교두보로서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는지라 근대 열강국들이 호시탐탐 노렸던 섬이다. 실제로 영국이 1885년부터 1887년까지 약 3년간 이곳을 불법 점거한 사건은, 거문도가 지정학적, 군사학적으로 매우 긴요한 위치에 자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영국군이 떠난 직후에 고종황제가 거문도에 거문진을 설치하고 수군 주둔을 위한 관청을 세운 것도 그러한 이유에서이다. 


              ▲ 거문도의 전경 


일제가 거문도에 눈독을 들이기 시작한 것은 러-일 전쟁이 벌어지던 당시부터다. 일제가 러시아 함대를 격파하기 무섭게 1904년 서도의 수월산에 일본인에 의해 등대가 설치되었고, 일본해군이 주둔하면서 해저통신시설을 갖추어졌다. 그리고 1905년 한일협약이 체결된 후 일제 민간인이 본격적으로 마을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1906년 일본인 우편전신소가, 1910년에는 순사주재소가, 1914년에는 일본인 소학교가 문을 열었다. 특히 학교가 세워졌다는 것은 일본인의 거문도 이주가 얼마나 활발했는가를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예라 하겠다. 1918년 일본인 어업조합 설립, 1923년 거문항 세관출장소 건립에 이어 1920년대부터는 세 섬 중 고도에 아예 일본인 집단촌이 대거 형성되면서 그들의 신사까지 세워졌다. 거문도는 해방직전까지 일제의 주요 군사요충지로서, 그리고 어업전진기지로서 철저하게 기능했다. 고도 선착장에 내려 거리 주변을 둘러보면 일본식 근대주택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 일본식 주택이 즐비하게 들어서 있는 고도의 모습

         

               ▲ 상단 왼쪽부터 1. 거문도 등대 2. 일제 신사터 3-4. 영국군 묘소 


고도민박은 선착장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다. 1층은 부부가 사는 살림집으로, 2층은 민박용 공간으로 사용하고 있다. 특히 2층의 경우, 일제시기에 지어진 건축형태와 구조의 원형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이 집은 1925년에 지어진 전형적인 일본식 근대주택이다. 집주인의 아버지 생전 말씀에 의하면,  이 집은 어업 무역상으로 활약하던 일본 여성 나가기치에 의해 지어졌다. 집에 쓰인 모든 목재는 일본에서 공수해 온 것으로, 일체의 못을 사용하지 않고 목재결구방식을 통해 세워졌다. 그녀의 부친은 일제의 고위급 장성이었으며, 그녀의 어업무역 활동을 적극적으로 지원해주었다고 한다. 후문에 따르면, 그 여성의 집안은 거문도, 여수, 목포, 부산 등을 오가며 어업 중개무역을 통해 엄청난 돈을 벌어들여 한 때 전라남도 10대 갑부에 손꼽히기도 했다. 현재 집주인의 조부가 당시 그 무역상의 서기로 활동하면서 어업중개 무역을 익혀 나아갔고, 해방이 되고 나서 자연스레 이 집을 인수받았다. 건물 면적은 총 88평으로, 일제강점기 상류층 일본인 가옥양식의 전형적인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 거문도 고도민박 외관의 모습(현재)


              ▲ 거문도 고도민박 과거의 모습(1960년대 추정): 동그라미 표시가 되어 있는 집이 오늘날의 고도민박이다. 



가파른 박달나무 계단을 올라 2층에 다다르면 마치 일본 본토의 전통가옥에 방문한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가운데 큰 방 2개를 중심으로 하여 총 11개의 방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공간 곳곳에 일본문화의 건축양식과 소품들이 비치되어 있다. 모든 방에는 다다미가 깔려 있다. 




              ▲ 거문도 고도민박 내부 전경


거실 전면에 도코노마가 갖추어져 있다. 도코노마는 집안의 부와 권위를 상징하는 공간으로서, 벽 쪽으로 공간이 움푹 들어가 있고, 바닥이 조금 높게 솟아있다. 도코노마 한 가운데에는 향나무 기둥이 서 있는데, 자세히 보면 갖가지 동물 문양이 정교하게 새겨져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일반적으로 제단과 불단을 모시는 공간으로 사용되거나, 진귀한 족자나 병풍, 도자, 다기와 같은 소품들을 비치해두는데, 이 집이 경우 집주인의 모친이 사용하던 반닫이와 일본식 망와와 화로를 장식용품으로 갖추어 두었다. 


일본식 특유의 천정 밑에는 정교하게 짜여진 문양장식이 보인다. 나무결 마디마디 사이가 매우 촘촘하게 연결되어 있다. 장식기능을 하면서도 방과 방 사이의 통풍을 원활히 해 주는 기능을 한다. 이 문양 장식의 수와 종류, 정교함의 수준이 높을 수록 그 집의 위상을 높이 알아주는데, 이 집 안에 벽장과 천정 주변으로 수많은 목재 문양장식이 있는 것을 미루어볼 때 과거 중개무역을 통해 엄청난 부를 획득한 여성 무역상의 기운이 느껴진다. 


미닫이 형식의 문도 볼거리 중 하나다. 쇼지, 후스마와 같은 장지문, 그리고 일본식 유리 장식문이 방 곳곳에 달려 있다. 문을 닫으면 각 공간의 기능이 나뉘고, 문을 열면 집 전체가 하나의 공간으로 통하는 일본인 특유의 공간분할방식을 엿볼 수 있다. 방 안으로 들어가면 오시이레 즉, 붙박이 벽장이 보인다. 지진이 잦은 일본 본토의 특성상 가구보다는 물건의 흔들림을 최소화할 수 있는 붙박이 벽장을 선호한 그들의 생활양식이 담겨있다. 



              ▲ 거문도 고도민박 내부 전경(천정, 천정장식, 붙박이 벽장, 화로, 망와, 후스마 등) 


이 집은 일제강점기 일본인 이주 집단촌의 산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 조선 수탈사의 흔적이 뚜렷이 남아있는 곳으로, 일제강점사의 산 교과서와 다름없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집의 가장 큰 매력은 실제 사람들이 이 곳에 묵어가며 직접 일제역사의 산실을 체험하고 느껴볼 수 있다는 점이다. '박제된 문화재'로서가 아닌 이 집이 갖고 있는 일본문화를 방문객이 직접 만져보고 느껴볼 수 있는 장인 것이다. 





집주인 할아버지와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할아버지가 들려준 이야기 중 가장 가슴에 남았던 것은 이 집의 역사적 가치라든지 건축적 특징에 관한 것보다도, 그가 어렸을 적 이 집에서 겪었던 아주 소소하고도 소중한 추억거리였다. 이야기 끝물에 넌지시 물어봤다. "어렸을 적에 이 집에서 살던 생각은 안 나세요?". 할아버지가 들고 있던 청소기를 가만히 내려놓으시고는 차분히 주위를 둘러보신다. 그리고는 조용히 웃으시면서 말을 이어간다. 


"아...예전에 국민학교다닐 때 말야. 학교 끝나면 내가 2층에서 그렇게 숨바꼭질을 했단 말야. 친구들 데려 와서는 몇 시간이고 그렇게 노는 거야. 그게 그렇게 재미있을 수가 없었어. 여기저기 방문이 많잖아. 저기 숨었따가 문을 살짝 열고 또 다른 데로 얼른 도망가서 숨고 말야. 아...그게 그렇게 재미있을 수가 없었어."


그렇게 재미있을 수가 없었다는 얘기만 몇 번을 반복하신다. 절로 흥이 나서 손짓 발짓 다 해가며 설명을 해주신다. '이 불편한 거 왜 안 바꾸고 사냐' 이래저래 불평불만을 늘어놓는 민박 손님들도 제법 많다고 한다. 아예 집에는 관심조차 두지 않는 손님이 대다수를 차지하는 건 물론이란다. 그래도 할아버지는 2층만은 고칠 수 없다고 못을 박아 말씀하신다. 1층은 살림집으로 바꿔놓고, 유독 2층의 모습만은 끝까지 지키고, 매일같이 쓸고 닦는데에는 중요한 이유가 있는 것 같다. 손님들의 '특별한 민박체험', 그것보다는 할아버지의 '특별한 숨바꼭질의 추억과 애정'이 담겨 있는 곳이니까.  



[숙박 및 교통정보는 거문도 고도민박 홈페이지 http://www.godoinn.com/ 참조] 


Written by 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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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벅스는 비싸다, 그리고 맛있다.]


친구와 함께 식사를 한 후 커피를 마시기 위해 스타벅스에 들렀다. 나는 카라멜 마끼아또,  친구는 프라프치노를 시켰다. 뭔가 입이 심심해서 디저트로 초코 케익도 하나 주문했다. 커피 두 잔에 케잌 하나의 가격은 대략 1만 7천원. 참고로 이날 친구와 먹은 점심은 6천 원짜리 냉면이었다.


나는 대학시절 내내 커피숍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보냈다. 단순 서빙이 아니라 직접 커피를 만드는 일을 했다. 그래서 커피 맛이라면 간 정도는 제법 볼 줄 안다. 내가 커피 만들던 당시까지만 하더라도(제대 무렵이니 2005년 쯤이다) 커피숍은 그리 많지 않았다. 고작해야 작은 영세 브랜드가 동네에 몇 군데 있었을 뿐이다. 커피숍을 찾는 사람도 그렇게 많지 않았다. 커피 문화라는 자체가 사실상 전무했던 시절이다. 


2007년, 2008년 쯤 부터였을까. 스타벅스, 커피빈, 할리스, 엔젤리너스, 투썸플레이스 등 유명브랜드 커피숍이 대로변 곳곳에 두각을 내기 시작하더니 나중에는 동네 PC방 생겨나듯이 동네 온 천지에 우후죽순 퍼져 나갔다. 동네길 한 구간에 스타벅스만 4곳이 몰려 있는 것도 봤다. ‘이 정도면 경쟁이 아니고 같이 망하자는 건데...’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내 예상과는 반대의 결과가 나타났다. 찾아오는 사람들은 점점 늘어나기만 했다. 평일에 가나 주말에 가나 한 자리 차지하고 앉아 있기가 그렇게 힘들었다. 


멈출 줄 모르고 전국 각지로 무섭게 번져가는 커피숍 열풍. 이쯤해서 경쟁사를 물리치기 위해 가격을 내리거나 파격적인 혜택을 줄 법도 한데 여전히 그들은 가격에서만큼 요지부동의 자세를 취하고 있다. 오히려 최근 몇 달 사이 모든 유명브랜드 커피숍이 가격을 인상했다. 언론의 공격을 피해갈 수는 없는 법. 공영방송을 비롯한 각종 매체에서 ‘커피가 이유없이 비싸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들끓기 시작했다. 


시사프로에서는 커피 원가와 해외 브랜드의 가격을 비교하면서 우리나라 커피가격에 거품이 지나치게 크다는 점을 지적했고, 교양프로그램에서는 각양각색의 커피브랜드를 놓고 브랜드를 뗀 상태에서 맛을 비교하여 사실상 가격과 상관없이 ‘맛에서 큰 차이가 없다’는 결론을 내리기도 했다. 결국 ‘맛의 변별성도 없으면서 브랜드 값만 취하고 있다’는 점을 비판한 거다. 


이제는 직장인 점심 한 끼보다 프라프치노 한잔이 더 비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점심시간만 되면 커피숍은 직장인들로 늘 북적 북적댄다. 언젠가 스타벅스 50% 할인행사를 했던 날이 생각난다. ‘그래도 비교적 한적한 스벅에 가면 사람들 별로 없겠지?’라는 생각에 직장인이 몰리지 않을 3시쯤을 노리고 버스 타고 시청 쪽 구석탱에 있는 스타벅스로 향했다. 나의 엄청난 오산.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는 줄이 꼬리를 물고 물어 건물 밖까지 이어지고 있는 광경에 그만 넋을 잃었다. 모두들 1시간이건 2시간이건 기다려서 반드시 먹고간다는 그 불타는 의지하나로 한여름의 땡볕을 견디고 있었다. 그들의 머릿속에 ‘기왕에 먹는 거 유명브랜드에서 먹지뭐’ 이런 간단한 생각이었다면 벌써 줄을 이탈하고도 남았을 것이다. 이 모습을 지켜보며 나는 대중이 반드시 브랜드의 품격만을 따져 커피를 마신다고 볼 수 없다는 결론을 냈다. 


각종매체에서의 거듭된 가격 공격, 거품 마케팅의 이슈화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끊임없이 스타벅스를 찾아간다. ‘퇴근하고 7시 스타벅스에서 만나’, ‘영화보고 스타벅스가서 커피한잔 마실까’, ‘집에 가면서 스타벅스 들러 테이크아웃하자’. 길거리 여기저기에서 쉽게 들려오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왜일까? 왜 스타벅스를 이렇게도 고집하는 걸까? 한방에 정리할 수 있다. 맛있으니까.


스타벅스가 우리 동네에 처음 들어섰을 때, 그리고 친구로부터 스타벅스의 프라프치노가 그렇게 맛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속으로 ‘그게 맛있어봐야 커피지 뭐 별거 있겠냐?’ 내심 비웃었다. 하지만 직접 먹고 난 후 사정이 달라졌다. 생각 그 이상으로 너무 맛이 좋았다. 감탄의 감탄을 하면서 ‘그래, 이 정도는 만들어야 마실만하지’라는 맛의 감동이 혀에 각인됐다. 그 후 나는 달달한 게 생각날 때마다 스타벅스를 찾아가 프라프치노를 시켜놓고 천천히 그 맛을 즐기는 취미가 생겼다. 


스타벅스 뿐만 아니라 다른 대형 프랜차이즈 커피숍들도 각자만의 개성 있는 맛을 갖고 있는 것은 마찬가지. 내 생각과 지인들의 생각을 조합하여 몇 개 회사의 캐릭터를 얘기해보면 이렇다. 




[스타벅스] 거의 다 맛있다. 프라프치노는 기본이고, 한 여름철의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원두가 좋고, 맛의 기복이 덜하다. 어떤 메뉴든 레시피가 안정적이어서 일단 길에서 눈에 띄면 들어간다. 따듯한 아메리카노는 핸드드립으로 마실 것을 추천한다. 


[커피빈] 뜨거운 아메리카노는 스타벅스보다 낫다는 평이다. 카페모카도 대표적인 심볼이다. 스타벅스의 바닐라라떼를 먹느니 커피빈 카페모카를 마시는 편이 더 낫다는 평도 많다. 


[폴 바셋] 카페라떼는 이 이상으로 맛있을 수 없다. 어떤 레시피를 썼는지 정말 궁금하다. 두 말할 필요가 없다. 스타벅스와 커피빈을 모두 능가한다. 


[할리스] 커피빈 만큼은 아니지만 카페모카가 꽤 맛있다. 아메리카노도 중상 정도의 점수를 줄 수 있다. 


[이디야] 역시 카페모카다. 조금 인스턴트한 맛이 나긴 하지만 ‘달달한 어린이 입맛’을 추구하는 사람들에게 제격이다. 


[투썸 플레이스] 어떤 커피음료든 굉장히 진하다. 카페인 섭취에 역점을 두는 사람은 좋아하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싫어한다. 뭣 모르고 에스프레소 시켰다가 호되게 당한 외국인도 본 적이 있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투썸 커피를 ‘독약커피’라고 부르기도 한다. 개인의 성향에 따라 평가의 호불호가 명확히 갈리는 곳이다. 


언젠가, 맥도날드에서 한 때 자사의 2000원 짜리 커피와 유명브랜드 커피를 비교하는 광고를 엄청나게 때린 적이 있다. 한편으로 궁금하기도 해서 햄버거는 입에 대지 않은 채 맨 입으로 한번 마셔봤다. 하하, 맛이 그야말로 가관이었다. 보리차도 아니고 숭늉도 아닌 것이 일종의 ‘숭늉커피’ 같았다. ‘구수하다’라는 표현이 딱 맞다. ‘소비자를 물로 아나?’라는 생각도 들었다. 커피의 수요가 많지 않던 당시에는 그런 가격 마케팅이 일부 먹혀들어가기도 했겠지만 이제는 사정이 다르다. 커피 소비자 역시 바리스타 만큼 맛에 대한 분별수준이 상당히 높아졌다. 더 이상 낮은 가격으로의 ‘뻥’ 마케팅은 안 통한다는 거다. 





어느 사이 커피 가격을 문제시 삼는 기사와 뉴스들이 하나 둘 고개를 숙이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거론조차 되지 않는다. 대중이 기꺼이 그 가격을 감수하고 먹는데 언론이 가타부타 이야기를 해 봐야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언론보다 똑똑한 것은 대중이다. 굳이 여기서 언급하지 않았지만 대형 프렌차이즈 가운데에서도 몇 군데는 '최악의 맛‘으로 소문이 난 곳도 있다. 어디 대형뿐이랴. 유명 바리스타가 큰 꿈을 가지고 만든 커피숍들도 채 1년을 버티지 못하고 주저 않는 사례들도 즐비하다. 마케팅 면에서 압도적으로 밀리는 것이 사실이지만 결국 대중이 원하는 ’보편적인 맛‘의 레시피를 강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선물의 포장지도 중요하지만 선물의 내용이 말짱 꽝이면 대중의 시선에서 멀어진다는 사실부터 알아야 한다. 일단 맛이 좋고 볼 일이다.  


Written by 선장 & 선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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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해적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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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12.14 15:10

    맞아요. 먹는 건 맛이 1번입니다ㅋㅋㅋ 비싼고 맛난 걸 내돈주고 사먹을 때의 쾌감 ㅋㅋㅋ


[Shine(1996)]


"아버지는 없지만, 난 살아있어. 세월은 가고 절대 영원한 건 없지. 하지만 중요한 건 인생은 멈춰 있지 않다는 거야. 포기하지 말고 결국 살아가야 해. 모든 순간에서 이유를 찾아야 해."


현존하는 천재 피아니스트 데이빗 헬프갓의 일대기를 그린 명화, Shine의 마지막 명대사다. 아내 길리언의 도움으로 중년의 나이에 피아니스트로서의 인생을 되찾은 데이빗은 성공적인 콘서트 데뷔 후 고향에 잠든 아버지 피터 헬프갓의 무덤을 찾아간다. 수많은 고통과 시련의 과정을 거쳐 독보적인 피아니스트 한 사람으로 재기하기까지, 그의 혹독하고 아름다운 삶에 대해 이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너무나도 지독하리만큼 '아빠와 아들'의 애증스러운 관계의 틀에서 이야기를 풀어나아가고 있다. 


영화의 시작부는 8살의 데이빗이 마을에서 열린 어린이 연주대회에 참여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사람들의 박수를 받으며 입장하는 데이빗이 혼잣말로 중얼거린다. "I'm gonna win, gonna win, win, win, win..." 반드시 이겨야 한다는 다짐의 다짐을 머릿속에 각인시키며 차분히 피아노에 앉아 쇼팽의 폴로네이즈를 연주하기 시작한다. 아이들의 형편없는 연주실력에 지쳐 떨어진 심사위원 벤 로덴이 데이빗의 놀라운 연주에 감고 있던 눈을 번쩍뜬다. 뒤이어, 데이빗이 연주하는 피아노의 바닥바퀴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피아노가 앞으로 점점 밀려간다. 연주 중 불상사가 일어난 것이다. 그러나 데이빗은 당황하지 않고 의자에 왼발을 걸어 죽죽 앞으로 끌고 나가면서 연주하더니 나중엔 아예 일어서서 곡을 끝까지 완주해낸다. 사회자가 "완벽해요. 완벽한 연주입니다." 감탄을 하자. 데이빗의 아버지 피터는 자랑스러운 얼굴로 읊조린다. "제 아들입니다. 제 아들."






그러나 데이빗은 그 연주회에서 우승하지 못했다. 집에 돌아와 아빠와 아들은 조용히 체스를 두기 시작한다. 아들이 체스에서 수세에 몰리자 아버지는 체스판을 쾅쾅 내리치며 이야기한다.  


"또 지겠구나 또 지겠어. 항상 이겨야 돼! 이겨야 된다구! 데이빗, 내가 너만한 나이 때였단다. 아주 예쁜 바이올린을 샀단다. 참 아꼈는데 그게 어떻게 된 줄 아니?"

"네, 박살났어요."

"그래! 박살났지!. 데이빗, 넌 운이 매우 좋은 녀석이야. 할아버진 음악을 싫어하셨단다. 넌 아주 운이 좋은 애야. 말해봐."

"전 아주 운이 좋아요."

"그래, 아주 좋아. 이거나 치워라."


아버지 피터는 거실 끝에 조용히 앉아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의 연주를 듣기 시작한다. 데이빗에게 피아노 연주를 가르치는 피터의 마음 한 켠에 자신이 아버지에게 받았던 음악에 대한 냉대와 멸시의 아픔이 깊게 깔려 있음을 서두에서부터 비춰준다. 그날 밤, 데이빗은 새벽에 피아노 앞에 앉아 낮에 들었던 라흐마니노프 피협 3번을 조그마한 손으로 떠듬떠듬 연주한다. 그 소리에 깬 아버지가 나와서는 아들을 자랑스럽게 쳐다본다. "아빠, 저도 이 곡을 칠 수 있을까요?" "물론이지, 언젠간 칠 수 있을거다." 아들을 꼬옥 껴앉는 아버지의 모습. 라흐마니노프의 위대함을 데이빗을 통해 완수해 내겠다는 피터의 보상심리가 짙게 드리워져 있는 장면이다.  


피터는 연주회 당일에 특별상을 주러 집까지 찾아왔던 심사위원 벤 로덴을 떠올린다. "우승이 아니니 패자가 된거죠."라고 일축하여 그를 돌려보내긴 했지만, 데이빗이 라흐마니노프를 연주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실력을 뛰어넘는 교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찾아간 벤 로덴은 데이빗을 따듯하게 맞아준다. 벤은 데이빗의 천재성을 감지하고, 어떤 레슨 비용도 받지 않고 그의 기본기부터 차근차근 완성시켜 나아간다. 피터는 라흐마니노프를 계속 요구했지만 벤은 일언지하에 거절하며 기본기인 모차르트부터 가르친다. 그리고 천재의 탄생. 데이빗은 각종 피아노 대회에서 수도없는 상을 거머쥐며 클래식계의 단연 스타덤에 오르게 된다. 이런 데이빗을 세상이 그냥 놔둘리가 없다. 한 대회에서 미국 장학금 유학의 기회가 찾아오고야 만다. 그러나 데이빗은 여기서 아버지의 강력한 반대라는 난관을 만나게 된다. 피터는 데이빗에게 이야기한다. "미국엔 갈 수 없다. 우린 한 가족이야. 가족은 함께 있어야 돼. 이게 가장 현명한 길이란 걸 안다." 단호한 아버지에 무릎을 꿇을 수 밖에 없었던 데이빗은 큰 시름에 빠지게 된다. 




곧이어 영국 왕립학교 전액 장학금 입학이라는 또 한번의 기회가 찾아온다. 두 번째는 달랐다. 데이빗은 아버지의 혹독한 반대를 뿌리치고 집을 떠난다. 무작정 문을 박차고 나가는 데이빗에게 피터는 소리친다. "지금 나가면 다시는 못돌아 온다. 데이빗, 가지마라 부탁이다." 그 말을 뒤로 한 채 데이빗은 떠났고, 자신을 버렸다고 생각한 피터는 그동안 아들의 수상에 관한 기사 스크랩을 꺼내 모두 불태워 버린다. 


천재에게는 천재를 알아주는 스승이 있다고 했다. 영국 왕립학교에서 새로운 음악의 삶을 연 데이빗은 제 2의 아버지 파크스 교수를 만난다. 만남의 시작은 Franz Liszt의 La Campanella의 연주로 열린다. 피아노 건반을 땅!땅! 누르며 파크스가 외친다.  


"잘봐, 데이빗! 공격적으로 쳐봐! 악마처럼!" 

"줄이 끊어지기라도 하면 어쩌죠?" 

"리스트도 줄을 끊어먹었지." 

"네 맞아요"

"딴 데를 보지 말고 악보에 시선을 고정시켜."




파크스가 데이빗에게 '악마의 연주'를 요구한다. 기본의 단계에서 이제는 한 단계 더 나아가 한 인간의 개성을 폭발적으로 뿜어내는 격상의 단계임을 암시한다. 위대한 스승 파크스의 지도 하에 데이빗은 점점 천재 본연의 기질을 뿜어내기 시작하고, 그는 곧이어 다가올 오디션 연주회의 곡을 결심하게 된다. 그의 아버지 피터가 그렇게도 간절히 원했던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제 3번. 


"라흐마니노프...정말인가? 3번은 불멸의 곡이야. 미치지 않고서야 연주할 수 없네."

"전 충분히 미쳤다고 생각하는데요 선생님, 그렇지 않나요?"




끝없는 노력의 노력, 연습의 연습. 쉬지 않고 반복되는 악보와의 사투, 건반과의 전쟁.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반미친사람의 모습으로 라흐마니노프 곡을 완성해가는 데이빗의 마음 한 켠에는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있었다. 연습하는 피아노 앞에는 아버지와 다정하게 피아노 연습을 하고 있는 신문기사 스크랩이 붙어있다. 데이빗은 이 불멸의 곡을 완주함으로써 아버지를 떠난 죄스러움을 만회하겠다는 의지 하나로 연주회 당일을 맞게 된다. 그리고 파크스는 음악적으로 자신의 대를 계승할 최고의 제자 데이빗에게 말한다. "내일은 없다고 생각하고 연주하게." 스승과 제자가 연주하는 라흐마니노프 곡의 카텐차 부분이 흘러나온다. 이 곡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사람에겐 그야말로 소름 그 자체의 씬이다. 




오디션 연주회에서의 데이빗의 환상적인 손놀림은 이 명작의 하이라이트다. 이 곡은 데이빗 헬프갓이 직접 녹음한 것을 내보낸 것인데, 대단히 특출하다고까진 말할 수 없겠지만 유명 연주가들과 비교했을 때 적어도 내공면에서는 결코 부족함이 없다. 보드랍게 건반을 어루만지며 선율의 능선을 넘어가다가도 급히 꺾어지는 협곡을 만난 것처럼 굽이굽이 쉴새없이 몰아치는 연주로 이 곡이 가지고 있는 악마와 천사의 대비성을 면밀하게 그려낸다. 오케스트라의 화려한 협연으로 타건의 정점을 찍은 데이빗. '브라보', '앵콜'. 사방천지에서 갈채박수가 쏟아진다. 지구 한편에는 아버지 피터가 서 있다. 아들의 완벽한 연주를 듣고 끝내 눈물 한 방울을 떨어뜨린다. 그의 손엔 아들의 어렸을 적 수상메달과 녹음곡이 꼭 쥐어져 있다. 




그러나 데이빗은 연주 직후 심각한 정신분열에 빠져 천재 청년으로서의 꽃을 제대로 피워보지도 못한 채, 정신병원에서 갇혀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파탄의 지경에 이른다. 유아기로의 퇴행. 피아노를 쳐서는 안된다는 의사의 경고에 그는 매일같이 피아노가 있는 쉼터 앞에 가서 차마 들어가진 못하고 그저 하염없이 바라보기만 한다. 하지만 데이빗은 병원의 피아노 재능기부로 온 한 여교사에 의해 발견되어, 곧장 퇴원수속을 밟게 되고 병원 인근의 한적한 마을의 한 집에서 생활하게 된다. 그리고 그의 두 번째 인생의 서막을 알리는 절대절명의 기회가 찾아온다. 


'길잃은 개'로 마을사람들에게 홀대받던 데이빗. 집안의 피아노를 연주할 수 없게 되자, 인근의 피아노가 있는 작은 레스토랑을 찾아간다. 사람들의 멸시어린 눈빛과 비난을 뒤로 하고 피아노 다리에 왼발을 걸고 앉는다. "데이빗, 제발." 만류하는 레스토랑 주인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피아노 전체를 단숨에 훑어내듯 림스키코르사코프의 '왕벌의 비행'을 연주하여 대중을 격렬의 도가니로 몰아넣는다. (이 곡은 데이빗 역을 맡은 레프리 러쉬가 직접 연주하여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 때부터 레스토랑은 데이빗 헬프갓의 명연주를 들으러 오는 관객들로 언제나 만원을 이루게 된다. Liszt의 '탄식'이 흘러나온다. 모두 숨을 죽이고 곡에 빠져있다. 차분히 내려앉는 마지막 건반에 관객은 모두 마음을 내려놓는다.  




한편, 신문기사에서 데이빗의 소식을 접하게 된 피터는 그날 밤 레스토랑을 찾아간다. 수십년만의 아버지와 아들의 재회. 여전히 아버지는 달라지지 않았다. "무슨 일이 있었는 줄 아니? 어떻게 된 줄 알지?" 어린 시절 그 때의 데이빗에게 매일같이 던졌던 그 질문으로 자신과 아들과의 관계를 확인하려 한다. 하지만 아들을 달라졌다. "아뇨, 어떻게 됐어요? 어떻게 됐는지 몰라요." 애써 아버지의 간곡한 질문을 외면한다. 아버지의 아들 데이빗으로서가 아닌, 인간 데이빗으로 살고자 하는 심정이 바로 이 장면에 잘 나타나 있다. 




아버지의 틀을 벗어나 새로운 인생을 꿈꾸고 싶어하는 데이빗. 그에게 혜성같은 여성이 나타났다. 휴가 차 친구의 레스토랑에 놀러온 점성술사 갈리안은 데이빗을 만나게 되고, 그의 순수한 열정과 감성에 푹 빠지고 만다. 짧았던 휴가 동안, 그녀는 그 대신 편지를 써주기도 하고, 데이빗의 라이벌 로저 우드의 연주회에 데이빗을 데려가기도 하고, 바닷가에 그를 데려가서 마음껏 뛰놀게 해주었다. 고심끝에 결국 그녀는 자신의 손가락에 끼어있던 약혼자의 선물반지를 뺀다. 그리고 평생 데이빗의 반려자로 살기로 결심하고, 그의 피아니스트 재기를 알리는 콘서트를 후원한다. 





연주회 마지막 곡은 자신의 스승 파크스와 처음 호흡을 맞췄던 그 곡,  Franz Liszt의 La Campanella로 장식한다. 청년시절 라흐마니노프 피협 3번을 완주했을 때 쏟아졌던 그 갈채의 환호가 다시 터져나온다. 세상을 떠난 아버지는 그 자리에 없었다. 마음의 안식처인 자신의 아내, 오랜 세월을 묵묵히 기다려 준 그의 어머니와 형제들, 자신의 기본기를 닦아준 벤 로덴이 힘찬 박수를 보내주고 있었다. 가족과 스승이 그를 다시 일으켜 주었다. 


"당신 잘못이 아니에요" 


정신질환 후 데이빗이 늘 중얼거리던 말이다. 아버지에게 냉대받은 그 아들 밑에서 자란 아들의 삶은 결코 행복하지 못했다. 아버지, 나아가 자신의 가족을 버리고 떠났다는 죄책감의 반대급부로 인해 데이빗의 뇌 속에는 '나의 잘못이다'라는 명제가 깊게 뿌리박힌 한 인간의 모습이 서 있다. 우리의 삶에서 가족이 차지하는 비중과 그 영향력이라는 것이 얼마나 한 사람의 인생을 좌우하는지 돌아보게 만든다. 그는 거꾸로 '나의 잘못이 아니에요'라는 말을 너무나 듣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피아노를 통해 세상과 소통하고 싶었던 데이빗 헬프갓. 결국 그는 가족과 그의 소중한 지인의 도움으로 새 삶을 얻었다. 


라흐마니노프 제 3번은 아무나 칠 수 있는 곡이 아니다. 이 불멸의 곡이 탄생하기까지 라흐마니노프 역시 작곡 실패에 대한 뼈아픈 기억에서 붉어진 트라우마를 벗어나기 위해 온 힘을 다했다. 결국 그 곡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여전히 감동과 즐거움으로 다가온다. 혹독한 시련을 겪고, 그것의 아픔과 절실함을 곡에 쏟아붓지 못하면 이 곡은 주저앉아 버린다. 모두들 애초에 연주하지 않을 것을 권고한다. 하지만 결국 데이빗은 아버지에 대한 트라우마를 극복했고, 트라우마에서 허우적댔던 지난날의 외로움과 고통, 자아분열의 응어리를 혼신을 다해 연주에 담아냈다.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는 그렇게 만만히 볼 성질의 것이 아니다. 나의 인생 전반에서, 나의 마음 어딘가에서 꿈틀대고 있는 그 무언가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되는 되돌아봄의 시간이 필요할 때다.  


Written by 선장



Posted by 해적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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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누구나 무엇인가에 대해 익숙해진다. 이것은 사람이 학습하고 숙달하는 것에 대한 하나의 증명이기도 하다. 낯선 것을 낯설지 않게 만드는 사람의 기능. 익숙해진다는 것은 그만큼 사람이 사는데 참 편리한 것이다. 


담배를 처음 피기 시작한 무렵, 옷에 밴 담배 냄새에 엄마는 매번 잔소리를 하셨다. 방에 들어오실 때마다 “이놈의 담배 냄새 때문에 니 방엘 못 들어오겠다.”라며 핀잔을 놓으셨다. 그런데 이것도 10년 가까이 되자 그 냄새에 익숙해지셨는지 언젠가부터 잔소리가 멈춰섰다. 나쁜 담배에 엄마가 적응한 것이다. 


어디 담배 뿐 만이랴. 통증도 익숙해진다. 얼마 전 운동을 하다 다친 손목이 계속 시큰하다 싶더니 나중에는 움직일 때마다 통증이 왔다. 손을 딛고 일어 설 때마다 신경이 무척 거슬렸는데 그 때 마다 ‘병원가야지’라는 생각보다 그냥 ‘아프구나, 이러다 말겠지.’하며 내버려뒀다. 아픈 손목에 익숙해지니 그것도 원래부터 아팠던 것처럼 치부해버리고 만다. 아픈 손목에 내 자신을 이해시킨 것이다. 


예전 처음 아이폰4를 샀을 때 금이야 옥이야 상처 날까 케이스를 구매하러 다닌 적이 있다. (당시에는 굉장히 초반이라 케이스가 별로 없었다) 케이스 하나 사러 용산까지 갔는데 케이스 하나에 1~2만원을 넘어 비싼 것은 3~4만원까지 했다. 결국 “무슨 케이스하나에 몇 만원이나 하는거야?” 투덜대며 그냥 빈손으로 돌아왔다. 궁여지책으로 액정 필름을 인터넷으로 구매를 했는데 그것도 무려 2만 4천원을 주고 구매했다. 결제 클릭을 누르는 손이 덜덜 떨렸다. 물론 비싸서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흘러 스마트폰이 대중화되었을 때,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 몇 만원씩이나 하는 케이스를 자연스럽게 사서 아무렇지 않게 착용하고 다니고 있었다. 몇 년이 지나고 보니 ‘케이스는 원래 비싸잖아?’로 생각이 굳어졌다. 높은 가격에 내 자신을 맞춘 것이다. 


최근 TV에서 가수 현아를 본적이 있다. 배를 훤히 드러낸 짧은 티에 짧은 핫팬츠를 입고 흡사 성행위를 연상시키는 춤을 격렬하게 추고 있었다. 지금으로부터 12년 전, 2000년도에 가수 박지윤이 성인식으로 가요프로그램에 나왔을 때 배를 드러내는 옷을 입고 나온 장면이 기억난다. 당시 공영방송에서 배를 노출했다는 이유로 시정조치 명령을 받았고 나중엔 천으로 배를 슬며시 가린 채 ‘씁쓸하게’ 노래를 했다. 하의실종이 대세인 지금에서 생각해보면 그때는 무슨 조선시대였나 싶겠지만 노출에 썩 익숙하지 않던 당시는 그랬다. 노출이 익숙한 지금, 우리는 현아의 몸 털기 춤을 봐도 몸짓에서의 야한 느낌은 받아도 그 옷차림에서 예전과 같이 ‘아니 이런 노출을 하다니 말이나 돼?’하는 생각은 별로 들지 않는다. 격렬해져 가는 매스컴에 내 자신의 눈을 맞춘 것이다. 


근래에 있던 내곡동 사저 문제가 터졌을 때 사회는 충격에 휩싸였다. 사실 대통령의 비리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지만 이렇게 집권 중에 그 비리의 온상이 표면으로 솟아오른 것은 처음이다. 그야말로 충격적이었다. 그러나 당연하다는 듯 ‘물타기’가 시작되었다. 이후 대통령 친인척 비리가 줄줄이 표면에 올라왔을 때 나를 포함한 주변 사람들은 ‘충격 또 충격’이라는 느낌으로 연결되기 보다는 오히려 ‘당연하다’라는 말이 떠올랐다. 최근 검찰비리 역시 비슷하다. ‘떡검이 그렇지 뭐’ 하는 생각 먼저 들었다. 고위 간부층의 악랄한 비리에 내 윤리기준을 맞춘 것이다. 


나영이 사건 이후, 초강력 아동성범죄가 아니면 뉴스에 제대로 잡히지도 않는다. 그 정도로는 이슈거리도 안 된다 싶은가보다. 성범죄 뿐 만일까? 이젠 웬만한 살인사건은 ‘저 죽일놈’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세상이 흉흉하니까’로 체념의 선을 긋고 TV 채널을 돌려 버린다. 한 30명 쯤 죽이면 ‘오, 신기록 갱신!’ 감탄하며 뚫어지게 감상하려나? 미국에 버금가는 초강력 연쇄살인은 아직 대한민국 시민에겐 익숙하지 않으니 말이다.


익숙해진다는 것은 편리한 거다. 뇌의 신경을 천천히 무마시켜 가면서 확실히 단순하게 생각하도록 해준다. 그래서 편안해지기 위해 반사회적, 반인륜적 범죄에도 함께 익숙해져버린다. 정확히 말하면 ‘익숙해져야 한다’는 표현이 맞겠다. 그래야만 온갖 나쁜 것들이 판치는 작금을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written by 선장 & 선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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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해적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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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을 타다] '사'가 '공'을 이기다. 

4호선 당고개행 열차에 중년 남자 넷에 여자 한 분이 지하철에 들어섰다. 족히 50대가 넘어보이는 분들로, 동창모임인지 굉장히 시끌법적하다. 노약자석칸을 모두 점령했다. 껄껄대며 뭐라뭐라 고래고래 큰 소리로 이야기를 주고 받는다. 10대 무개념 청소년 무리처럼 장난식으로 욕을 주고받더니 급기야는 남자 대 남자 시비로 이어진다. 지하철에 스피커를 달아놓은냥 쩌렁쩌렁 울린다. 여자까지 나서서 말리지만 어림도 없다. 불쾌해진 사람들이 하나둘씩 내리고 옆칸으로 옮겨간다.


멱살을 잡고 싸우기 직전, 한 사람이 제대로 약점 잡혔다. 공격자가 친구 체육교사라는 점을 이용, 대중에게 '이놈이 체육교산데 이렇고 있다'며 대외적으로 욕을 한다. 체육교사 친구가 그때서야 흠칫하고 주위를 둘러본다. 이를 부득부득갈지만 몸짓은 좀전같지 않다. 교사는 상대 친구에 대해 사회적 지위로 공격할 건덕지가 없는지 딱히 그에 맞는 대응은 못하고 "으이구, 띠띠자식 너!!!"만 반복비트로 돌린다. 그리고 사람들이 혹여나 자신을 영상이나 사진으로 담고 있는지 예의주시한다.

상대는 '너 이 놈 잘 걸렸다' 쾌재를 부르며 "여러분! 이 체육 교사라는 인간이 자기보고 양아치니까 덤벼보랍니다. 덤벼! 한판뜨자 여기서! 이 띠띠띠야!!! 예라이 이 띠띠띠야! 하하나원참!" 반복비트를 돌린다. 이제는 여유롭게 주머니에 손을 넣고 치려면 쳐보라는 식의 느긋한 제스처를 취해보이며 싱긋 웃기까지 한다.

친구들이 뜯어 말리고 말려 결국 약 올리는 친구를 질질끌고 먼저 하차한다. 교사는 못내 찝찝한 듯 내리지는 못하고 결국 노약자석에 다시 주저앉아 씩씩댄다. 몇 분 가지 않아 서서히 정신을 차린다. 그리고는 일어나서 "죄송합니다 여러분! 실례가 많았습니다!" 큰 목소리로 90도로 허리숙여 사죄의 인사를 한다. 이쪽 저쪽에서 "그러게 죄송할 짓을 왜 해요!", "나이 먹고 왜 저래 쯧쯧...", "아 그냥 내려요!" 볼멘 소리가 터져 나온다. 

어른들 세계의 최대 공격 포인트는 갈등이 생겼을 때 상대의 공적, 사회적 지위를 대중에 노출시켜 전의를 상실케 하는 것이다. 무엇이든 소식이라면 나누어 갖는 한국사회에서는 매우 유효한 전략이다. 단순한 싸움 하나가 일단 SNS에 번지면 입소문으로 이야기에 살이 붙고 붙어 나중에 돌이킬 수 없는 설화가 되어 돌아온다. 그리고 그의 신변과 가족의 안위에 심각한 타격을 준다. 공인인 그는 그게 가장 두려웠던 것이다. 


[지하철에서 내리다] '공'이 '사'를 이기다. 

안국역 지하철에서 인사동 방향으로 나가는 출구길목에 무려 네 명의 거지가 앉아있다. 가장 안쪽의 거지는 할아버지다. 선비처럼 흰 수염을 길게 늘어뜨렸다. 낡은 베낭과 몇 개의 비닐봉지, 여정에 필요한 지팡이도 있다. 통조림 철통 하나를 덩그러니 던져두고 느긋하게 깍지를 끼고 누워 휴식을 취하고 있다. 구걸보다는 노숙에 비중을 뒀다. 


두 번째 거지는 50대가 좀 넘어보이는 중년 남자다. 옷으로 온 바닥을 휘젓고 다녔는지 지하철 바닥과 옷 색깔이 비슷해졌다. 사람이라기보다 조형물 같다. 모자를 벗어 사람들에게 "도와주세요~도와주세요~"를 계속 외친다. 그러나 구호소리가 절실해 보이진 않는다. 대충대충 한다. 쓸쓸하게 사람들이 그 앞을 지나간다. 


세 번째 거지는 할머니다. 상대적으로 바깥에 앉아있어 추울 법도 하다. 두터운 외투에 모자를 꾹 눌러 쓴 채 잠이 들었다. 작고 하얀 그릇 하나만 갖고 나왔다. 동전 500원짜리 한 개, 백 원 짜리 한 개만 덩그러니 들어있다. 


마지막 거지는 비교적 젊어보이는 중년 남자다. 공장에서 입을 법한 엔지니어 작업복을 입고 있다. 원래 직업이 그것인지, 아니면 어디서 주워입었는지는 알 수 없다. 엄동설한의 바깥쪽 계단에 착 엎드려서는 두 손을 정성스레 모아 하늘로 치켜 올렸다. 그러나 그의 손에 올려져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칼바람이 쌩쌩분다. 언제까지 저 자세로 견딜 수 있을지 궁금하다. 


그들 모두 12월 대목을 알고 있고 이곳에 모였다. 그리고 인사동에서 삼청동을 오가는 사람들을 공략해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렇지만 한 길목에 네 명은 너무 많다. 이래서는 사람들에게 호소하기 어렵다. '고객'은 누굴 선택해야 할지 난감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제각기 다른 포즈와 다른 옷을 입고 있어도 대중의 입장에서는 변별력이 느껴지지 않는다. 부랑자건 노숙자건 거지건 사기꾼이건 알길이 없다. 육해공 군인이 휴가 때 모두 군복에 칼 다리미질로 말끔히 다려입고 나와도 대중의 눈에는 그냥 '군인' 두 글자로 통하는 것과 같다.  


결국 사람들은 맨 끝자락에 서서 종을 흔들고 있는 아저씨에게 다가가 공인구호기관의 구세군 함에 지폐를 넣는다. 지금은 불경기다. 두 번 돈을 넣지 않는다. 경쟁이 아니라 공멸이다. 


Written by 선장


Posted by 해적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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