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은 곳에 있어
흔한 눈길조차 주지 않아도
산이 좋다.

 

멀리 떨어져 있어
아무런 말 들려주지 않아도
바다가 좋다.

 

산과 바다 같은 그대가
그냥 좋다.

 


산에 오르면 그 웅장함과 숲의 신비함에 마냥 좋습니다. 산에 가면 내가 좋은 것이지요. 바다에 가면 세상 모든 것을 품어줄 수 있는 그 위대한 포용력에 그냥 좋습니다. 덕분에 시야가 탁 트이고 답답했던 마음이 뻥 뚫리며 위안을 받습니다. 하지만 바다는 파도소리만 철썩일 뿐 나에게 아무런 말도 들려주지 않습니다. 그래도 나는 바다가 좋습니다.

 

그 사람은 산과 바다처럼 나에게 아무것도 해주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대에게 다가가면 내가 좋았습니다. 산과 바다는 내가 온 것이 반갑다는 말이 없고, 그녀 역시 내가 다가온 것이 좋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괜찮습니다. 다가갈수록 내가 좋았던 것이니까요.

 

요즘 들어, 나에게 산과 바다 같은 그대가 힘들어 합니다. 아무런 말 하지 않아도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한 사람에게는 드높은 사랑과 드넓은 위안을 주던 위대한 사람이 바로 당신이라는 것을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 당신은 그렇게 누군가에게 산이고 바다입니다. 


Written by 동전오배건

 

Posted by 해적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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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 매서운 겨울 날씨의 연속이다. 기세등등한 동장군 덕분에 옷깃을 여미는데 힘이 들어가서 점퍼 지퍼가 고장이 나 버렸다. 지퍼에 달린 고리가 끊겨져 버린 것이다. 쇠고리였는데…
 
초강력 따뜻한 이 털 점퍼는 ex-girl friend의 선물이다. 보편적으로 오랫동안 연애를 하게 되면 연인들에게는 사시사철의 선물들이 쌓여져 간다. 특히나 한국의 연인들은 철마다 서로 챙겨줘야 할 기념일들이 넘치지 않은가. 하지만 헤어지게 되면 이것들은 처치곤란에 애물단지가 되어 버린다. 버리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남겨두는 사람도 있다. 저마다의 해결법은 다르다.

 

어떻게 헤어졌느냐에 따라, 얼마냐에 따라, 팔 수 있느냐의 여부에 따라(대체로 커플링), 애착에 따라, 추억에 따라 등등등.
 
얼마 전 지인에게 이 잠바에 대해서 얘기를 한 적이 있다. 그녀와의 고만고만한 추억이 깃든 잠바라고 그런데 지금은 가난해서 버릴 수는 없다고, 농담어린 이야기였다. 지인은 기왕 망가진 거 겸사겸사 버리라고 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추억을 버리고 싶지 않았다.
 
생각해 보면 이 옷은 더 이상 내가 주인이 아닐 수도 있다. 무슨 염치로 이 옷을 대할 수 있단 말인가. 그녀와의 만남은 24개월이었다. 그렇다, 약정 기간이 끝났다. 24개월, 그리 짧지도 그리 길지도 않은 시간들. 누가 이러한 기한을 정했을까? 정말 합리적이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기간, 바로 24개월이란다. 그 정도 사귀다 헤어졌으면 나는 나쁜 놈이 아닌 게 된다. ‘자연스럽게 헤어졌죠 뭐.’ 이렇게 주위에 말 할 수 있다,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그럴 수 있다, 그런가보다.
 
여기에서 번호이동을 하거나 신규가입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기존의 통신사로 돌아가는 법은 없다. 가면 손해라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이다. 새로움, 익숙함이 부끄러워져 고개 돌리게 하는 그 말. 새로운 것은 신비롭다. 어쨌든 그녀는 내 탓에 그녀의 잠바주인을 만나는데 2년이나 늦어져 버렸다. 미안하오.
 

 

오래되면 익숙해져서 서로 잘 적응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오래되면 쉽게 망가지기도 하는 법이다. 그렇다, 오래되면 망가질 위험성도 높은 것이다. 망가졌을 때 우리는 대처하게 된다. "고치느냐, 버리고 새것을 택하느냐." 어쨌든 약정 기간이 끝났다는 것은 둘 다 알고 있었고, 우리의 선택은 버리는 쪽이었다.

 

또 하나의 선택, 오래되어 망가진 점퍼의 운명. 하지만 이번에 나는 고치는 카드를 선택했다. '뭐, 고치면 되지.' 잠시 점퍼를 버릴까 고민해봤지만 이내 수선집으로 향한다. 나도 추억을 고치는 중이다.

 

그렇게 본다면 추억은 자기목소리로 만들어질 뿐이다. 한 사람은 상처로 남아있을 수도 있는데 한 사람은 아름다운 추억이라고 여기는 것, 아니 여기고 싶은 것. 그것이 추억이다. 그래, 추억은 어떻게 보면 이기적일수도 있는 것 같다.

 

어느덧 시간이라는 약에 취해 그녀와의 지난 사랑은 오후의 낮잠처럼 달콤한 꿈으로만 남아 있다. 그 당시의 오해와 아픔, 그리고 슬픈 감정은 지금 명백히 기억에서 되살릴 수가 없다. 기억력이 나빠서가 아니다. 그 슬픔을 지웠기 때문에 현재를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좋은 것만을 기억하고 싶어서 추억을 수선한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아파할 내 가슴에게 너무 미안할 것 같았다. 
 


+ 사진 : 위 사진은 흑석동의 뉴타운 재개발 전 동네골목의 모습이다. 이제는 동네골목 가로등 아래에서 사랑을 속삭이던 연인의 모습을 영원히 볼 수 없을 것이다. 동네 골목도, 우리도 더 이상 없다.


Written by 동전오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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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년지기 친구들을 누추한 집으로 초대하였다. 집안 사정이 더 나빠진 것을 잘 알고 있는 친구들이기에 부끄러움 따위는 없었다. 유학시절에 소포까지 보내주며 응원을 해주었던 소중한 친구들이기에 보은의 의미에서 한해를 마무리하고자 특별한 송년회를 열었다.

 

대학시절에 친구들이 된 ‘우리’는 십년이 지난 지금에도 계속 만남을 유지하고 있다. 그 중에서 취업을 한 친구들이 대부분이고 나처럼 공부를 계속하고 있는 학생도 있다. 예전에는 8명 모두가 모여도 서로의 관심사가 같았기 때문에 이야기보따리가 끝이 없었다. 하지만 서로 다른 일을 시작하게 되고 관심사도 달라지다 보니 함께 모여도 이전만큼의 즐거움과 재미가 사라진 것은 사실이다. 더욱이 결혼을 한 친구와 앞둔 친구, 아직은 결혼 생각이 없는 친구들(대체적으로 남자애들), 이들이 적당히 섞이고 버무려져 맛깔난 대화를 나누기란 여간 쉽지가 않다. 그렇다, 한마디로 적절한 대화의 소재를 찾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학창시절에는 8명이 항상 함께 했는데, 일자리도 각각 떨어지게 되고 만나도 예전만큼 흥이 없으니, 이제는 모일 때마다 두세 명 빠지는 것은 예삿일처럼 되어 버렸다. 무엇이 그렇게 재미났었는지 만날 때면 늘 ‘까르르르~’ 웃고 자지러지던 우리들의 모습은 온데 간데 사라진지 오래다. 어느 순간부터 회사에서 힘들고 지쳤던 일, 인간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 결혼에 대한 부담 등등등 저마다 어깨에 한 가득씩 짐을 짊어지고 모임에 오게 된다.

 

서로의 가벼운 안부를 물으며 자연스럽게 이야기꽃은 피어난다. 그러고 나면 누구나 할 것 없이 저마다의 짐 보따리를 푼다. 스트레스와 부정적인 영향들은 눈덩이처럼 불어나 마이너스적인 세균과 독소를 퍼뜨려 모두에게 ‘한숨’이라는 병 유발시킨다. 이렇게 쉴 새 없이 떠든다고 해도 스트레스가 해소되는 것은 아니다. 스트레스란 그렇게 만만한 녀석이 아니기 때문이다. 세균은 전염을 유발할 뿐이다. 우리는 스스로 항체를 만들만큼 성숙하지 못하다. 또한 서로 분야가 다르니 진정으로 이해를 구할 리 만무하다. 이해가 수반되지 않는 대응은 감정적이지 않아 서로에게 무미건조할 뿐이다. 이쯤 되면 내가 더 말해서 무엇 하랴, 란 생각이 든다. 혹은 친구들 이야기만 다 들어주느라 정작 자신이 하고 싶었던 얘기는 꺼내지 못한다. 꽝! 다음 기회에, 다들 힘들어 죽겠단다. 다들 힘든데 내 힘든 것 보태면 무엇하랴. 우리는 서로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 만나는 것인가, 아니면 자신을 말하고 싶어서, 보여주고 싶어서, 어필하고 싶어서 만나는 것인가.

 

언제부터 우리가 이렇게 변했을까. 너무나도 닮아져 버렸다. 이제는 주변의 다른 모임들과 별반 다르지 않게 되어 버린 것이다.

 

여러 모임들이 있는데 그 중에서도 이 모임은 특별했다. 그 이유는 이 친구들을 만나면 행복 에너지가 가득했고 꿈과 열정이 있었고 만날수록 건설적인 자극으로 돌아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간이 너무 흐른 것일까, 아니면 서로 너무 익숙해져 버린 것일까. 만날 때마다 서로 긍정적인 에너지만을 줄 수는 없다는 것은 잘 안다. 그것은 서로에게 욕심일 뿐이다. 힘든 일이 생기면 이야기도 들어주고 슬픔을 나누는 것이 친구이다. 잘 안다. 하지만 항상 힘들다고 토로하는 만남은 아닌 것 같다. 누가누가 더 힘든가, 경연 식으로 자랑을 하는 것도 아니니 말이다. 하긴 요즘은 뭐든지 경쟁하는 오디션이 트렌드이니 그럴 만도 하겠다.

 

슬픈 일이 생기면 많은 사람들이 모이게 된다. 주로 장례식과 같은 부고를 받았을 때, 예외란 없다. 많은 사람들이 모인다. 반면에 정말 행복한 일이 생겼을 때 정작 그보다 많은 사람들은 모이지 않는다. 기쁨은 함께 하면 배가 되고, 슬픔은 함께 하면 반으로 덜 수 있다고 했던가. 그런데 현실에서는 기쁜 일이 생겼을 때는 꼭 본인이 아니더라도(왜? 나만 엄청 사는 게 바쁘니깐) 축하해줄 다른 이들이 그 사람 곁에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에, 모임의 참석은 필수가 아닌 게 되어 버린다. 아니면 실제는 배가 아플 수도 있는 법일지 모른다. 우리는 칭찬에 인색한 사회가 되어 버렸다. 칭찬을 하는 방법은 잘 모르지만 형식적인 위로의 말을 건네는 것은 누구나 일가견이 있다(마치 진심인양 혹은 세상이 꺼져라 하고). 하지만 정말로 슬픔을 나누기 위해서 그 많은 사람들이 모였을까. 정말 친하다고 생각지 않았는데 뜬금없이 온 사람들은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아니면 심적 깊은 곳에서 다른 사람의 슬픔을 꼭 두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서 모인 것은 아닐까. 나는 사는 게 이렇게 힘든데 저 친구도 나만큼 힘든 것일까, 이렇게 확인으로써 얻어지는 안도감에 모이는 것은 아닐까. 너무 잔인한 생각인가, 인간미라고 느껴지지 않는 생각이다.

 

만남이 있으면 이별이 있는 것이 인간관계에서 자연스러운 법인데 그래도 나는 이 모임을 유지하고 싶었나보다. 사람들 역시 저마다 억지로라도 유지하고 싶은 모임이 있을 것이다. 그것은 그 사람들이 소중해서 일까 아니면 그 관계 속에 담겨있는 나름의 추억을 잃고 싶지 않아서 때문일까.

 

항상 톱니바퀴가 완벽하게 맞물려 돌아가면 좋겠지만 한두 명 어긋난다고 해서 모임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으리라는 법은 없다. 항상 8명 모두가 모여야 한다는 것은 욕심이다. 그동안 잘 참여하지 않던 친구가 오랜만에 온다고 하더라도 웃으며 맞이할 수 있다면, 그게 친구고 그렇게 모임이 유지되는 것이 아닐까.  

 

이런 저런 생각이 들면서 안타까운 마음에 처음으로 우리 모임에 테마를 만들어 보았다. ‘2022년, 10년 뒤 당신의 모습으로 참석하는 파티’가 이번 테마였다. 식사를 하며 모이는 것은 여느 파티 때와 같았지만, 이번 모임에는 꼭 10년 뒤 꿈을 이룬 자신의 모습으로 참석하여야 했다. 참석자들은 돌아가면서 꿈을 이룬 자신의 성취에 대해서 발표하고, 그 꿈을 이룬 비결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주어야 했다.

 

우리는 각자의 꿈을 이룬 멋진 모습으로 모이게 되었다. 모대학 겸임교수이자 고용노동부 자문위원, 한국 국민들이 가장 사랑하는 학자, 세계적 베스트셀러 작가, 노벨상 수상자, 모 컨설턴트 회사 이사, 해외 민박 사업가, 사회적 기업가 등 정말 쟁쟁한 사람들이 우리 집에 초대된 것이다. 그 중에는 만들어온 명함을 나눠주는 친구도 있었고, 본인이 집필할 책 표지를 갖고 온 친구, PPT를 통해서 어떻게 성공했는지를 보여준 친구도 있었다. 우리는 때로는 교수님의 제자가 되어서 몇 가지 질문을 하기도 했고, 작가의 팬이 되어서 질문을 하기도 했고, 노벨상 수상자의 어머니에게 어떻게 자식교육을 시켰는지 질문을 하기도 했다. 멘토 사업에 성공을 한 사회적 기업가는 연신 성공한 친구들을 본인의 사업에 끌어들이려 노력을 보였다.

 

십년 뒤 성공의 여부는 중요하지가 않았다. 이 중에서는 자신이 말하고 꿈꾸고 설계한 것처럼 성공하는 친구도 있을 것이고 그렇지 않은 친구들도 있을 것이다. 우리들의 특별한 송년회는 꿈을 꾸라고, 아프니깐 청춘이니 희망을 가지라고, 한계를 벗어나 도전하라고, 실패해도 괜찮다고, 여느 자기계발서처럼 지친 친구들을 위로하고자 만든 자리는 아니었다. 그렇게까지 뜻 깊게 생각을 해 본적도 없다. 그들 나름의 성공 방식을 찾는 법, 그러기 위해서 본인을 정말 이해하는 것이 자기 계발서들의 지침을 따르는 것보다 선행해야 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자기계발이라는 큰 뜻보다는 오히려 이 작은 모임을 지켜보고 싶었다. 사회에 찌들어 상처받고 날개가 꺾인 친구들에게, 그대들은 꿈을 갖고 있는 소중한 존재라고 칭찬해주고 싶었을 뿐이다. 사랑하는 친구들에게.  


Written by 동전오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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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오매(湖南五梅)라 일컫는 고불매(古佛梅)。

 

그녀를 보러갔건만

이미 그녀는 가고 없단다.

 

시들은 꽃잎만이라도 보여 달라고 했건만

지조 있는 그녀는 애써 감추며 허락하지 않는단다.


언젠가 뭇 사내와 조우하자 

한송이 매화꽃으로 피었다고 했던가.

 

하여 홍조(紅潮)를 띤 그녀가 나를 맞이하는 꿈을 꿨건만,

그 자취조차 찾을 길이 없단다.


범인(凡人)에게 매화는 욕심일 뿐이란다.

그렇게 끝내 모습을 보이지 않았던 그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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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바람(東風)

 

너는 바다 밖에서 새로이 불어와
새벽 창가 시 읊는 나를 뒤숭숭하게 하지.
고마워라. 시절 되면 돌아와 서재 휘장 스치며
내 고향 꽃피는 소식을 전하려는 듯하니.

 

知爾新從海外來, 曉窓吟坐思難裁. 堪憐時復撼書幌, 似報故園花欲開.

 

이 시는 통일신라의 천재 문인 최치원의 ‘東風’ 이다. 그가 당나라 유학 중에 지은 시로 알려져 있다. 이는 영국에서 유학생활을 하고 있을 때 나를 위로해 주었던 시들 중 하나이다.

 

당시 나는 봄을 타고 영국으로 들어왔기에, 추운 겨울을 외롭게 나며 다시 찾아온 따스한 봄기운은 내게는 마치 선물과도 같았다. 이 봄바람은 부푼 꿈을 안고 부지런히 유학준비를 했던 한국에서의 소중한 기억을 일깨워 주었다. 굳게 결심했던 포부가 어려움과 외로움에 슬며시 바래졌을 때, 다시금 마음을 가다듬게 만들어준 시이다.

 

당대 천재로 유학을 떠나 목숨을 걸고 나라의 미래를 걸고 공부에 임했을 최치원과는 감히 비교할 수 없으나, 배운 지식을 통해 사회에 기여하고자 품은 큰 뜻은 천 년도 더 지난 천재와의 시를 통해 교감을 나눌 수 있었다. 이 시를 현재 집 떠나와 외로이 공부하고 있을 모든 유학생들에게 선물한다.

 

‘동(東)’은 사계절 중 봄을 의미한다. 또한 신라가 당나라의 동쪽에 위치하였기에, 동풍은 ‘고향에서 불어온 바람’이라는 의미도 내포하고 있다.


 

* 사진은 유학생활 중 산책을 하면서 한국을 떠올렸던 Durham Wear강의 새벽 모습이다.  

 
Written by 동전오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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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에는 빵집이 하나 있는데 그 가게에는 아리따운 아가씨가 한 명 있다. 매일 저녁 퇴근길, 동네 어귀에 이르면 빵집 쇼윈도 너머로 항상 그녀를 볼 수 있다. 이 순간만큼은 단순히 내가 퇴근하는 길에 그녀를 본 것인지, 그녀를 보기 위해 일하러 갔다 온 것인지 헛갈릴 때도 있다. 달코롬한 빵 냄새에도 홀려 자연스럽게 눈길이 향할 만도 하니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무리가 아닐 듯하다.
 
언젠가는 턱을 궤고 TV를 보고 있고, 언젠가는 폐장 준비로 막대걸레질을 하고 있고, 언젠가는 그냥 서 있기도 한다.
 
그녀는 몇 살일까? 얼핏 보면 나보다 나이가 있어 보이기도 하다. 주인일까, 주인네 딸일까? 내가 스쳐가는 지금 그녀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날 감지하기는 할까?
 
궁금함도 잠시 내가 그녀를 유리창 너머로 스쳐 지나가는 순간은 단지 1~2초 정도에 불과하다. 다가가려고 노력하지는 않는다. 빵을 사면서 대화도 걸어볼 수 있고 가까이서 얼굴도 볼 수 있지만 그러지 않는다. 단지 지금이 좋아서이다. 쇼윈도 너머에 비친 그녀의 모습이 그냥 좋다. 쇼윈도 얼룩 때문에 선명하진 않지만 어떤 목소리인지 들리진 않지만 그래서 더 좋다. 가게에 들어가서 얼굴을 마주 보거나 이야기를 하게 되면, 왠지 나의 환상은 깨질 것 같기 때문이다. 마치 가게 문을 열 때의 알림종 소리에 환상이 깨어지듯이.

 

짝사랑이라는 게 이런 거 아닐까. 쇼윈도 사이에서 그 사람의 실재가 아닌 단지 ‘상상적 이미지’에서 만들어진 이상(理想)과의 사랑. 하지만 그러한 인식이 더 위력을 가하는지도 모르겠다.

 

유리창 문을 열고 들어가느냐의 여부는 전적으로 나에게 달려있다. 하지만 그 선택이 옳았는지 아닌지의 판단은 내 손에서 벗어나 있다. 아직 나에게 빵집 아가씨는 빵집 아가씨일 때가 좋다. 빵집 아가씨를 완벽한 여인으로(정작 본인은 엄청 부담스러워 할) 만든 것은 내가 만든 것이지 그녀의 잘못은 아니기 때문이다.
 

Written by 동전오배건


Posted by 해적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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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 주인이 사라지면

잠에서 깨어나 움직이는 장난감 병정들과 같이

 

교수님께서 퇴근하시면

어김없이 연구실의 책들은 나에게 말을 걸어온다.

 

마음껏 그들과 함께 상상의 나래를 펼쳐본다.

좁은 연구실에서 드넓은 세상을 만나고, 

그렇게 꿈을 키워 간다.




어렸을 적에는 몰랐다, 교수님께서 본인의 연구실에 제자를 들여놓는 그 진정한 의미를. 돌이켜보면 나도 모르게 가장가까이에서 나의 미래를 바라보며 성장할 수 있었던 것 같다. 


학생들이 찾아와서 고민을 털어놓으면 따뜻한 차를 타주시며 정성스레 그네들의 고충을 들어주는 교수님의 모습, 논문과 수업 준비를 하느라 컴퓨터 자판을 치는 모습, 교수님이면 세상 모든 것을 다 아는 것 같았지만 끊임없이 책과 싸움하며 고뇌하는 모습, 한강이 바라보이는 창문에 서서 사색하는 모습, 학회에서 발표를 하는 모습, 대학원생 제자들과 세미나에서 토론하는 모습, 책 출판을 위해서 원고를 쓰는 모습, 동료 교수들과 식사하면서 근래 고민하는 주제에 대해서 대화하는 모습 


모든 것들을 생생하게 곁에서 지켜볼 수 있다는 것, 그만큼 구체적으로 나의 미래를 꿈꿔볼 수 있는 기회였던 것이다. 제자를 아끼는 마음이 담긴 교수님의 최고의 선물이었다. (감사합니다.)


당신이 현재 꿈을 갖고 있다면, 당신이 꿈꾸고 있는 그 일을 현재 하고 있는 그 사람에게 직접 찾아가 보기 바란다. 그 사람의 모습이 바로 미래의 당신이 될 수도 있으니깐 말이다. 그 사람이 당신의 멘토가 되어줄 수 있다면, 그것은 더없는 선물이 될 것이다. 


Written by 동전오배건


Posted by 해적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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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2.13 16:50



나에게는 그런 사람이 있습니다. 

대학에 입학했을 때, 군 입대했을 때, 휴가 나와서, 제대하고, 졸업했을 때, 취업할 때, 친구 결혼식 때, 그리고 상갓집에서…그럴 때마다 어김없이 만나는 사람이 있습니다. 아니, 꼭 만나고 싶어서 불러냈던 사람이 있습니다. 


나에게는 그런 사람이 있습니다.

십년을 넘게 알아왔으면서도 만난 횟수가 반년 사귀다 헤어진 지난 여친과의 만남보다도 적은 사람 말이죠. 그러고 보니 그 사람은 저의 연애사를 모두 알고 있네요. 


그런 날이 있습니다. 꼭 그 사람을 보고 싶은 날.

그날은 돌이켜 보면 제게는 인생의 통과의례라는 주요관문이었더군요. 저를 보여주고 싶었나 봅니다. 그러나 그보다, 그런 중요한 날이면 그녀를 보고 싶어 하는 제 마음을 들키지 않고 불러낼 수 있었으니까요.

    

“잘 지내?”

“…(잘 지내냐고? 너는 지금 내 얼굴을 보면서 그런 말이 나오지? 네가 그 사람과 웃고 행복하게 지내니깐, 야윈 내 모습 따위는 보이지 않는 거겠지. 뭐, 잘 지내냐고? 그동안 보고 싶어서 혼났지, 임마. 페이스북이랑 미니홈피 글 보면서 참았다. 글은 또 왜 그렇게 뜸하게 올리니? 사진은 참 행복해보이더라. 그 사람이 너한테 아주 잘 해주는 것 같네. 야, 너만 잘 살았는지 알지? 나도 열심히 살았어. 너한테서 성공한 모습 보여주려고 이를 아득바득 갈면서 산다, 내가 아주. 야, 그리고 나도 요즘 여자 만나. 불쌍한 눈빛으로 쳐다보지 마. 너 아니래도 나 멋지다고 하는 여자 많아…참…보고 싶었다, 많이. 여전히 예쁘구나, 너란 여자.)”

“뭐 해? 잘 지냈냐니깐?”

“응…그…그냥.”          

 

그동안 그녀에게 들려주고 싶은 수천수만 가지 이야기 대신, 그녀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은 한 단어뿐이었습니다.

 

Written by 동전오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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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는 나를 알기에 더더욱 슬퍼지네.. 

                                                                - 회상Ⅲ/김태원



~♫~~

익숙해진 핸드폰 알람음, 가장 귀에 거슬리는 소리로 바꿔 놓았건만 ― iPhone4의 ‘공상과학’ 사운드, 사람 속을 뒤집음과 동시에 달팽이관에서 고막을 거쳐 외이도까지 쭉 긁는 느낌을 줌 ― 그 조차도 어느새 귀에 익어버린다. 평소와 별반 다를 것 없는 하루의 시작과 함께 분주하기만한 어느 아침 날. 


여전히 잠에 취해 옷매무새를 가다듬다가 바지 주머니에서 남몰래 숨어 있던 동전 500원과 해후(邂逅)하게 되는 그런 날이 꼭 있다. 그럼 보통 우리는 살며시 미소를 짓게 된다.

 

딱 그 느낌과 그 타이밍이다. 군더더기가 있으면 안 된다. 적어도 그 사람에게는 말이다. 단지 그 느낌의 남자로만 남아있으면 된다. 크게 신경 쓸 사람도, 마음 가는 사람도 아닌, 그냥 바쁜 하루의 일상에서 스쳐 지나가는, 하지만 가벼운 미소 정도는 줄 수 있는 사람 말이다. 


백원은 너무 작고, 천원부터는 너무 크다. ‘왜 이 돈이 주머니에 남겨져 있지?’ ‘무슨 돈이지?’하며 불안해진다. 심지어 대형마트에서 백원을 넣고 카트를 쓰느냐 오백원을 넣느냐에 따라 카트 회수율과 정돈 상태가 달라진다고 한다. 아직 동전오백원은 우리에게 익숙하지만 거슬리지는 않는 존재인 것 같다. 디지털 공상과학 사운드와는 그 차원이 다르다. 


함께 있으면, ‘기적’이라는 단어밖에 생각나지 않던 사람, 이 <동전오백원> 카테고리의 글들은 그 한 명을 감동시키기 위해서 받쳐질 것이다. 10년이란 세월동안 내 마음 속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사람 ―그 세월은 한 남자를 500원이라는 값어치로 흥정을 맺게 만들었지만 ― 그렇다. 바로 당신을 위한 글이다. 


앞으로 해적단 수컷들의 눈물겨운 구애 공세를 기대하시라. 당신은 그저 오백원 만큼의 미소만 지어주면 된다. 



* 작곡가 김태원씨는 작곡을 할 때 첫사랑을 떠올린다고 한다. 그 역시 이뤄지지 않은 아픈 사랑이다.

* 이글의 초안은 2009년 6월 여름날이다. 언젠가부터 한 코미디언이 “궁금하면 500원~”해서, 나의 동전오백원 프로젝트가 희화화 되는 건 아닌지 걱정이다. 


Written by 동전오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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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해적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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