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맞이 해돋이- 동해 추암마을을 가다] 


정동진보다 더 빨리 해가 뜬다고 하는 동해의 작은 마을 추암. 칠흑 같은 어둠을 뚫고 이곳에 도착한 시각은 새벽 4시가 막 지났을 무렵이었다. 육지에 발을 내딛으니 온통 캄캄한 가운데 세찬 파도소리만 사방에서 들려온다. 아무도 없다. 


“아직 잘 알려지지 않은 곳이니 사람들이 많이 없을 거에요.” 


레나스(의사 겸 항해사)의 말이 맞았다. 해는 7시가 넘어야 뜬다고 했다. 그 때까지 충분한 휴식을 취해두지 않으면 안 되겠다. 요리사는 체력이 철철 흐르는지 벌써 배에서 내렸다.  


“선장! 이제 일어나요! 하늘이 열리는 시간이 다 됐어요!”





으음? 레나스가 어깨를 툭툭 친다. 졸린 눈을 비비고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 새 하늘이 물들기 시작하고 있었다. 그러나 진눈깨비처럼 갑작스레 쏟아지는 빗방울에 동해바다의 일출구경에 불안한 먹구름이 끼기 시작했다. 그렇게 걱정 반 기대 반으로 삼십 여분을 넘기니 어느 새 비는 잠잠해지고 구름과 구름 사이에서 희미한 빛이 틈새를 벌려가며 한 뼘 한 뼘 번져 나아가고 있었다. 에메랄드 바다 위에 청아한 구름이 이리저리 뒤섞여 바다와 하늘의 경계를 무색케 했다. 그 속에서 불타오를 그 강렬한 햇덩어리를 모두가 고대하고 있다. 좀 더 해를 멋지게 볼 수 있는 곳이 있다고 요리사가 말했다. 레나스가 길잡이가 되어 주었다. 




나무계단을 오르고 올라 절벽에 이르니 고고한 소나무 숲이 장광하게 펼쳐친다. 나무 사이사이로 이리저리 휘청거리는 바닷물과 기괴한 바윗덩이들이 기대감을 고조시킨다. 소나무 숲을 지나 다음 풍경의 계단으로 오르는 순간,


아. 하고 탄성을 지른다. 




수평선 저 너머에서부터 시퍼런 물결이 바다를 가르며 겹겹이 몰려온다. 쉴새없이 바위들을 몰아친다. 바위와 절벽마디마디에 세월이 흔적이 구구절절하게 묻어있다. ‘어디 와 볼테면 얼마든지 와보라’ 하는 듯. 모두들 초연하게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바다와 꼿꼿하게 싸우고 있다. 파도와 파도가 만나 부딪히는 곳, 파도와 바위가 만나 깨어지는 곳. 좌르르 쏟아진 물결의 파동이 새하얀 거품으로 일고 일어나 당장이라도 내 눈 앞에 떨어질 것만 같다. 기상찬 바람을 이겨내며 천지의 변화를 굽어보는 그야말로 단번에 눈맛이 후련해지는 호쾌한 기분에 젖고 만다. 동해의 겨울 파도란 이런 것이구나. 사나이의 거침없는 기상이고 힘찬 기백이구나. 





그리고 마침내 촛대바위에 오르는 순간, 하늘은 이내 붉게 잠기고 만다. 신비로운 바다새 한 마리가 하늘에서 내려와 촛대의 끝에 자리를 잡고 새로운 세상의 점화를 알린다. 이렇게 2012년 마지막 아침의 경종이 울린다. 한참동안 넋을 잃고 절경 속에 피어난 해돋이의 광경을 바라본다. 밀려오는 흥에 못이겨 ‘와~~’ 하고 소리 한번 내질렀다. 그래, 2013년 이겨보자! 맞더라도, 주저앉더라도, 다시 일어서서 앞으로 나가자! 





절벽의 계단에서 내려왔을 무렵, 이미 온 세상이 빛의 지배를 받고 있었다. 우리는 다시 한번 찬란한 해오름과 마주했다. 그리고 다음 해에는 조금 더 꽉 쥔 주먹손으로 오겠노라고 이곳과 마음의 약속을 했다.  





곧이어 요리사가 아침 준비로 바빠졌다. 아침은 일명 해돋이라면. 휴대용 가스렌지에 불 붙이고, 냄비에 물을 올린다. 물이 끓을 때쯤, 삼양라면에 햄과 참치를 함께 곁들여 넣는다. 보글보글 피어오르는 해돋이면의 스멜이 시장기를 자극한다. 여기서 잠깐. 술이 빠질 수야 없지. 항해사인 레나스를 제외하고, 요리사와 나는 카스 캔을 촤악 까서는 ‘위하여!’를 힘껏 외치며 두둑한 라면식사에 신명을 더했다. 그 때의 맛은, 도저히 표현 불가능이다. 위대한 마무리였다. 


이천십삼년. 해적단 멤버 모두에게 행운이 깃들 것이다. 힘내자! 



Written & Photo by 선장, 선의, 요리사 


Posted by 해적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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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년지기 친구들을 누추한 집으로 초대하였다. 집안 사정이 더 나빠진 것을 잘 알고 있는 친구들이기에 부끄러움 따위는 없었다. 유학시절에 소포까지 보내주며 응원을 해주었던 소중한 친구들이기에 보은의 의미에서 한해를 마무리하고자 특별한 송년회를 열었다.

 

대학시절에 친구들이 된 ‘우리’는 십년이 지난 지금에도 계속 만남을 유지하고 있다. 그 중에서 취업을 한 친구들이 대부분이고 나처럼 공부를 계속하고 있는 학생도 있다. 예전에는 8명 모두가 모여도 서로의 관심사가 같았기 때문에 이야기보따리가 끝이 없었다. 하지만 서로 다른 일을 시작하게 되고 관심사도 달라지다 보니 함께 모여도 이전만큼의 즐거움과 재미가 사라진 것은 사실이다. 더욱이 결혼을 한 친구와 앞둔 친구, 아직은 결혼 생각이 없는 친구들(대체적으로 남자애들), 이들이 적당히 섞이고 버무려져 맛깔난 대화를 나누기란 여간 쉽지가 않다. 그렇다, 한마디로 적절한 대화의 소재를 찾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학창시절에는 8명이 항상 함께 했는데, 일자리도 각각 떨어지게 되고 만나도 예전만큼 흥이 없으니, 이제는 모일 때마다 두세 명 빠지는 것은 예삿일처럼 되어 버렸다. 무엇이 그렇게 재미났었는지 만날 때면 늘 ‘까르르르~’ 웃고 자지러지던 우리들의 모습은 온데 간데 사라진지 오래다. 어느 순간부터 회사에서 힘들고 지쳤던 일, 인간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 결혼에 대한 부담 등등등 저마다 어깨에 한 가득씩 짐을 짊어지고 모임에 오게 된다.

 

서로의 가벼운 안부를 물으며 자연스럽게 이야기꽃은 피어난다. 그러고 나면 누구나 할 것 없이 저마다의 짐 보따리를 푼다. 스트레스와 부정적인 영향들은 눈덩이처럼 불어나 마이너스적인 세균과 독소를 퍼뜨려 모두에게 ‘한숨’이라는 병 유발시킨다. 이렇게 쉴 새 없이 떠든다고 해도 스트레스가 해소되는 것은 아니다. 스트레스란 그렇게 만만한 녀석이 아니기 때문이다. 세균은 전염을 유발할 뿐이다. 우리는 스스로 항체를 만들만큼 성숙하지 못하다. 또한 서로 분야가 다르니 진정으로 이해를 구할 리 만무하다. 이해가 수반되지 않는 대응은 감정적이지 않아 서로에게 무미건조할 뿐이다. 이쯤 되면 내가 더 말해서 무엇 하랴, 란 생각이 든다. 혹은 친구들 이야기만 다 들어주느라 정작 자신이 하고 싶었던 얘기는 꺼내지 못한다. 꽝! 다음 기회에, 다들 힘들어 죽겠단다. 다들 힘든데 내 힘든 것 보태면 무엇하랴. 우리는 서로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 만나는 것인가, 아니면 자신을 말하고 싶어서, 보여주고 싶어서, 어필하고 싶어서 만나는 것인가.

 

언제부터 우리가 이렇게 변했을까. 너무나도 닮아져 버렸다. 이제는 주변의 다른 모임들과 별반 다르지 않게 되어 버린 것이다.

 

여러 모임들이 있는데 그 중에서도 이 모임은 특별했다. 그 이유는 이 친구들을 만나면 행복 에너지가 가득했고 꿈과 열정이 있었고 만날수록 건설적인 자극으로 돌아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간이 너무 흐른 것일까, 아니면 서로 너무 익숙해져 버린 것일까. 만날 때마다 서로 긍정적인 에너지만을 줄 수는 없다는 것은 잘 안다. 그것은 서로에게 욕심일 뿐이다. 힘든 일이 생기면 이야기도 들어주고 슬픔을 나누는 것이 친구이다. 잘 안다. 하지만 항상 힘들다고 토로하는 만남은 아닌 것 같다. 누가누가 더 힘든가, 경연 식으로 자랑을 하는 것도 아니니 말이다. 하긴 요즘은 뭐든지 경쟁하는 오디션이 트렌드이니 그럴 만도 하겠다.

 

슬픈 일이 생기면 많은 사람들이 모이게 된다. 주로 장례식과 같은 부고를 받았을 때, 예외란 없다. 많은 사람들이 모인다. 반면에 정말 행복한 일이 생겼을 때 정작 그보다 많은 사람들은 모이지 않는다. 기쁨은 함께 하면 배가 되고, 슬픔은 함께 하면 반으로 덜 수 있다고 했던가. 그런데 현실에서는 기쁜 일이 생겼을 때는 꼭 본인이 아니더라도(왜? 나만 엄청 사는 게 바쁘니깐) 축하해줄 다른 이들이 그 사람 곁에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에, 모임의 참석은 필수가 아닌 게 되어 버린다. 아니면 실제는 배가 아플 수도 있는 법일지 모른다. 우리는 칭찬에 인색한 사회가 되어 버렸다. 칭찬을 하는 방법은 잘 모르지만 형식적인 위로의 말을 건네는 것은 누구나 일가견이 있다(마치 진심인양 혹은 세상이 꺼져라 하고). 하지만 정말로 슬픔을 나누기 위해서 그 많은 사람들이 모였을까. 정말 친하다고 생각지 않았는데 뜬금없이 온 사람들은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아니면 심적 깊은 곳에서 다른 사람의 슬픔을 꼭 두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서 모인 것은 아닐까. 나는 사는 게 이렇게 힘든데 저 친구도 나만큼 힘든 것일까, 이렇게 확인으로써 얻어지는 안도감에 모이는 것은 아닐까. 너무 잔인한 생각인가, 인간미라고 느껴지지 않는 생각이다.

 

만남이 있으면 이별이 있는 것이 인간관계에서 자연스러운 법인데 그래도 나는 이 모임을 유지하고 싶었나보다. 사람들 역시 저마다 억지로라도 유지하고 싶은 모임이 있을 것이다. 그것은 그 사람들이 소중해서 일까 아니면 그 관계 속에 담겨있는 나름의 추억을 잃고 싶지 않아서 때문일까.

 

항상 톱니바퀴가 완벽하게 맞물려 돌아가면 좋겠지만 한두 명 어긋난다고 해서 모임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으리라는 법은 없다. 항상 8명 모두가 모여야 한다는 것은 욕심이다. 그동안 잘 참여하지 않던 친구가 오랜만에 온다고 하더라도 웃으며 맞이할 수 있다면, 그게 친구고 그렇게 모임이 유지되는 것이 아닐까.  

 

이런 저런 생각이 들면서 안타까운 마음에 처음으로 우리 모임에 테마를 만들어 보았다. ‘2022년, 10년 뒤 당신의 모습으로 참석하는 파티’가 이번 테마였다. 식사를 하며 모이는 것은 여느 파티 때와 같았지만, 이번 모임에는 꼭 10년 뒤 꿈을 이룬 자신의 모습으로 참석하여야 했다. 참석자들은 돌아가면서 꿈을 이룬 자신의 성취에 대해서 발표하고, 그 꿈을 이룬 비결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주어야 했다.

 

우리는 각자의 꿈을 이룬 멋진 모습으로 모이게 되었다. 모대학 겸임교수이자 고용노동부 자문위원, 한국 국민들이 가장 사랑하는 학자, 세계적 베스트셀러 작가, 노벨상 수상자, 모 컨설턴트 회사 이사, 해외 민박 사업가, 사회적 기업가 등 정말 쟁쟁한 사람들이 우리 집에 초대된 것이다. 그 중에는 만들어온 명함을 나눠주는 친구도 있었고, 본인이 집필할 책 표지를 갖고 온 친구, PPT를 통해서 어떻게 성공했는지를 보여준 친구도 있었다. 우리는 때로는 교수님의 제자가 되어서 몇 가지 질문을 하기도 했고, 작가의 팬이 되어서 질문을 하기도 했고, 노벨상 수상자의 어머니에게 어떻게 자식교육을 시켰는지 질문을 하기도 했다. 멘토 사업에 성공을 한 사회적 기업가는 연신 성공한 친구들을 본인의 사업에 끌어들이려 노력을 보였다.

 

십년 뒤 성공의 여부는 중요하지가 않았다. 이 중에서는 자신이 말하고 꿈꾸고 설계한 것처럼 성공하는 친구도 있을 것이고 그렇지 않은 친구들도 있을 것이다. 우리들의 특별한 송년회는 꿈을 꾸라고, 아프니깐 청춘이니 희망을 가지라고, 한계를 벗어나 도전하라고, 실패해도 괜찮다고, 여느 자기계발서처럼 지친 친구들을 위로하고자 만든 자리는 아니었다. 그렇게까지 뜻 깊게 생각을 해 본적도 없다. 그들 나름의 성공 방식을 찾는 법, 그러기 위해서 본인을 정말 이해하는 것이 자기 계발서들의 지침을 따르는 것보다 선행해야 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자기계발이라는 큰 뜻보다는 오히려 이 작은 모임을 지켜보고 싶었다. 사회에 찌들어 상처받고 날개가 꺾인 친구들에게, 그대들은 꿈을 갖고 있는 소중한 존재라고 칭찬해주고 싶었을 뿐이다. 사랑하는 친구들에게.  


Written by 동전오배건

 

Posted by 해적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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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맞이 둘 - 새 필통, 병사의 재편성]


필통을 잃어버렸다. 얼추 3주 전부터 보이지 않기 시작했으니까 12월 초순에 분실한 게 틀림없다. 어디서 잃어버린 건지도 모르겠다. 집안 곳곳 다 찾아봐도 없으니 이건 ‘실종사고’로 마무리 지어도 크게 문제 없으리라 본다. 


그 녀석은 나의 글쓰기에 거의 5년을 넘게 종사했다. 그러니까 내가 쓴 대부분의 글들은 그 필통 속에서 시작되었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밝은 황토색을 지닌 비닐류의 원통형 필통이었다. 쟈크도 튼튼해서 쓰는 내내 단 한 번도 고장 난 적이 없다. 믿음직한 친구였다. 슬프다. 이젠 그가 없다. 그리고 그를 포함한 나의 듬직했던 펜과 기타도구 등 각자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던 병사들 상당수를 잃었다. 깊은 애도를 표하는 바이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애도만 표하고 있을 수는 없는 법. 글쟁이는 글을 써야 한다. 우연인지 필연이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그들과 나는 2012년 12월을 마지막으로 인연을 마감했다. 언젠가 훗날 길거리에서 마주칠 수도 있겠지만, 그런 기대는 하지 않는다. 부디 쓰레기통에 폐기처분되지 않고 글을 쓰는 새 주인을 만나 새로운 임무를 부여받기를 바랄 뿐이다. 


고로, 나는 본의 아니게 새해맞이 차원에서 새로운 필통을 구해야 했고, 나의 글 작업을 도와줄 필기구 병사들을 다시 소집해야만 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교보문고 핫 트랙스에서 엄정한 나의 평가 하에 새로운 필통을 등용했다. 색깔은 기존의 황토색보다 더 어두운 고동색의 필통. 한 쪽 면에 초록색 바탕의 ‘STUDY HARD ■BASIC STYLE■'이 표기되어 있다. 한 눈에 보기에도 딱 촌스럽다. 한국 출신이다. 


그래서 골랐다. 글이 예술의 큰 범주에 포함된다고 해도 글은 어디까지나 글이다. ‘나 대단한 글 쓰는 모모모 작가라는 사람이요’ 미친놈처럼 떠들고 다닐 것 아닌 바에야 그저 책 읽고 필요한 부분에 줄 하나 뚜렷하게 긋고, 잘못 썼으면 지우면 끝인 거다. 그런 그들을 잘 담아주면 된다. 그 외의 역할은 없다. 묵묵히 그 임무를 수행하면 된다. 


필기구들도 마찬가지다. 우선 다행히 필통 밖에 빼놓은 관계로 목숨을 건진 녀석들부터 소개하겠다. 화이트다. 꽤 비싼 값을 하는 친구다. 일반적으로 액체로 가득찬 ‘수정액 화이트’는 마르기를 기다려야 하므로 기동성이 매우 떨어진다. 빨리 마르라고 ‘후~후~’ 불고 꽤 귀찮은 작업을 요한다. 틀렸다 하면 단번에 죽 그어버리고 그 위에 바로 새로운 내용을 기입할 수 있도록 하는 빼어난 능력의 수정도구다. 이름은 'WHIPER MR5'다. 일본 출신이다. 



검정색 펜을 소개한다. 밴드로 따지면 팀의 베이스다. 이름은 ‘DESK BALL 활’이라고 한다. 글씨 두께가 조금 두껍긴 하지만 부드럽게 써지고 가격도 저렴하다는 면에서 상당히 마음에 든다. 아직도 잉크가 많이 남아있다. 그에게 거는 기대가 매우 크다. 살아줘서 고맙다. 한국 출신이다. 



자, 그 다음엔 색깔 펜이다. 본래의 각 도구에 따른 역할이 있었지만 지금은 일부 없는 관계로 재편성이 불가피하다. 


1. 빨강펜: 반드시 숙독해야 하는 부분을 표기할 때 사용한다. 실종된 관계로 새로 구입했다. 이름은 ‘동아 애니볼 501’이다. 한국 출신이다. 


2. 파랑펜: 찬동하는 글에 표기할 때 사용한다. 원래 사용하던 펜이 있었지만 실종된 관계로 이 ‘STAEDTLER’로 대체했다. 상당히 비싼 친구다. 한 때 사인펜으로 그림을 그릴 때 사용했던 친구인데, 나머지 친구들은 거의 다 잉크를 써서 버렸지만 이 친구만큼은 아직도 잉크가 꽤 많이 남아 있다는 사실이 놀랍기만 하다. 그리고 고맙다. 굉장히 잘 써지고 촉감이 좋다. 독일 출신이다. 


3. 보라펜: 일반적으로 알아두어야 할 상식적인 부분을 표기할 때 사용한다. 이 녀석도 필통과 함께 사라졌다. 당분간 파란펜으로 표기하되, 다른 표식을 하여 구분하는 임시책을 택해야겠다. 


4. 녹색펜: 의문이 들거나 반대하는 글에 표기할 때 사용한다. 이 녀석도 실종되었다. 비판용으로 사용하던 친구이기 때문에 반드시 이 친구를 대신할 도구가 필요하다. 당장 마련하기 어려워 노란색 형광펜으로 대체하였다. 그래도 개인적으로 녹색이 훨씬 보기에 좋다. 이름은 ‘Colorful'이다. 


5. 회색펜: 새롭게 등용한 도구다. 신한에서 만든 것인데, 한 쪽은 굵은 글씨, 다른 한 쪽은 얇은 글씨를 쓸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특히 굵은 글씨는 어떤 특별한 메시지나 문구를 작성할 때 매우 유용하게 쓰일 것으로 기대된다. 거금 2500원을 들였으니 앞으로 돈 값을 톡톡히 해 주어야 한다. 이름은 'TOUCH'로 한국 출신이다. 





마지막으로 포스트 잇. 이 친구 빼놓고 글을 이야기할 수가 없다. 색깔이 파, 녹, 빨, 주, 노로 이루어졌다. 각 학자들, 작가들의 견해를 구별하거나, 어떤 다채로운 이야기들을 나누어 놓거나, 또는 서로 반대되는 의견에 대해 구분할 때 사용한다. 포스트 잇 색깔 끝에 글씨만 간단하게 표기하고 책 갈피갈피마다 붙여 놓으면 나중에라도 발췌할 때 까먹지 않고 온전하게 작업할 수 있어 굉장히 좋다. 일본 3M 출신이다. 현재 빨간색을 다 썼다. 고로, 삼성에서 나오는 빨간 포스트 잇이 달린 펜과 병용할 계획이다. 




지금까지 글쓰기에 필요한 필기도구들의 재편성을 알아보았다. 새해에는 좀 더 강력한 병사들을 소집하여 나의 글쓰기 전선에 절대 무리가 가지 않도록 만전을 기할 예정이다. 이상. 


Written by 사샤


Posted by 해적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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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06.04 16:32

    이거어디서샤셨어요??제발가리켜주세요

  2. 2013.06.04 16:33

    필통



 추위가 사그러졌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너무 춥다. 시베리아 벌판을 우리 동네 밑장에 깔았나보다. 밤이면 밤마다 울어대던 길 고양이들도 자취를 감췄다. (아마 그들의 아지트에 모여앉아 고래고래 욕을 하고 있을 거다). 그러나 고양이처럼 마냥 춥다고 집에서 웅크릴 수만은 없는 법. 카페라도 나와 앉아있어야 책이라도 한 줄 볼 것 같아 추운 밤 할리스로 향했다. 허허, 역시 연말은 연말이다. 할리스 4층까지 사람들이 바글바글하다. 다행히 4층 가운데 빈자리 하나 남아 있어 냉큼 앉아 가방으로 영역 표시를 하고, 우당탕 내려가 라떼 한잔 시켜 올라왔다. 할리스는 회원카드만 있으면 사이즈 업 또는 샷 추가를 무료로 해준다. 야호, GRANDE 사이즈! 맛있게 냠냠. 





 자리에 앉아 이것저것 공부거리를 펼치고 앉아, 손깍지를 끼고 기지개를 한번 주욱 펴본다. 주위를 둘러보니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모여 A, B, C, D, E, F, G ~ Z까지 다양한 이야기들을 나누고 있다. 굳이 보려고 보는 것은 아니요, 굳이 들으려고 듣는 것은 아닌데, 2시 방향의 커플이 매우 매우 매우 눈에 띈다. 둘의 몸이 찰흙처럼 엉키고 섞여 스크류바를 이루었다. 아나콘다 같기도 하고, 아무튼 죽어 못산다. 두 눈이 마주칠 때마다 번갯불이 번쩍번쩍 일면서 쪽쪽 입맞춤을 나누고, 신났어 아주 그냥 신났어 ㅋㅋㅋㅋㅋ.


 남자가 무얼 발견한 듯 여자의 긴 머리를 손으로 쓸어 넘기며 가만히 그녀의 귀를 들여다본다. 그리고 물어본다. 


“어, 못보던 귀걸이네? 귀걸이 샀어?”

“아냐, 언니가 준거야. 나 별로 악세사리 하는거 안 좋아하잖아.”

“아...난 또, 너 귀걸이 잘 안하는데 웬일로 샀나 했지. 근데 왜 했어?”

“아 몰라 진짜, 아침에 나오는데 언니가 이거 하고 나가라고 하면서 끼워주잖아. 해주는데 또 싫다고 하기도 그렇고 냅뒀어 그냥.”


 그냥 보기에도 휘황찬란한 귀걸이. 수수한 롱코트에 니트와 청바지 차림의 여자. 헐, 귀걸이만 무지하게 튀어 보인다. 브랜드는 스와로브스키. 귀 밑으로 길게 드리워진 깨알 같은 보석들이 반짝 반짝대며 무도회 입장을 준비하고 있었다. 귀걸이만 보면 그녀는 지금 영화제 시상식이라도 갈 기세다. 언밸런스하다는 게 요런 걸 두고 이야기하는 거다. 남자가 꽤나 관심이 가는 모양이다. 





“언니는 되게 화려한 거 좋아하나보다?”

“우리 언니 이런 거 되게 좋아해. 귀걸이, 목걸이, 반지, 팔찌, 반지 다 해. 지가 무슨 클레오파트라인줄 알아. 나 참.”


 여자가 큭큭 대며 웃는다. 무슨 사연이 있나보다. 


“우리 언니 대따 특이해. 어렸을 때 우리 엄마가 언니 때문에 고생 엄청 했어. 하하하. 생각하니까 진짜 욱기다 ㅋㅋㅋ.”

“왜왜, 뭐가 웃기는데?”

“우리 언니가 옛날에 어렸을 때 툭하면 없어졌거든? 그게 다른 애들처럼 길에서 가다 잃어버리고 그러는 게 아냐. 어떻게 잃어버리는 거냐면, 우리 언니가 지금도 진짜 나대거든? 옛날에도 똑같았는데, 집에만 나가서 놀면 다른 집 초인종을 막 누르고 그냥 다짜고짜 ‘안녕하세요 저는 모모모에요’ 꾸벅 인사하고 들어가서 저녁 7시고 8시고 그 집에서 계속 노는거야. 그러니까 집에서는 잃어버렸다고 난리가 나는거지!”

“모르는 집에 그냥 들어가서?”

“어어, 미친거지 ㅋㅋㅋㅋㅋ. 그러니 우리 엄마 속이 안 타들어가겠어? 그래서 우리 엄마가 짱구를 굴렸어. 요 기집애를 어떻게 해야 안 잃어버리나 하다가 생각한 게 악세사린거야.”

“악세사리로 뭘?”

“인제 언니한테는 ‘예쁜 악세사리를 하고 다녀야지 사람들이 이쁘다고 하는 거에요, 길도 안 잃어버리고’ 얘기해주면서, 팔찌랑 목걸이를 해줘. 근데 그 팔찌랑 목걸이에 집 주소랑 전화번호, 엄마 아빠 이름, 애 집에 보내주세요 메시지 딱 적힌 꼬리표를 거기다 같이 붙여주는거야. 찾은 사람이 보라고. 사람들 눈에 잘 띄라고 또 보석 이따 만한거로 해주고, 화려한 거 막 이런 걸로 해주고. 웃기지 않아? ㅋㅋㅋㅋㅋㅋㅋ”

“아~~그래서...언니는 지금도 악세사리 다 하고 다니는 거야?”

“어어, 언니는 진짜 꼬맹이때부터 온 몸에 보석치장 한 거지. 지가 맨날 그러고 다니니까 커서도 이게 버릇이 된거야. 나중엔 엄마가 안 사줘도 자기가 알아서 다 사. 고등학교 때 엄마 몰래 카드 갖고 백화점 가서 50만원 긁어서 뒤지게 맞은 적도 있어.ㅋㅋㅋㅋㅋ”

“아 진짜? 대박이네...”

“지가 하다가 또 질리면 나를 줘. 나보고 하라고. 근데 난 뭐 어렸을 때부터 언니가 그러고다니는 거 보니까 별로 악세사리 하고 싶지가 않더라고.”

“그래서 너가 악세사리 별로 안좋아하는구나. 핫핫.”

“무슨 목걸이가 위치추적 장치도 아니고 그게 뭐야. 그냥 보기에도 답답해. 그래서 안해. 그냥 오늘같이 억지로 끼워주면 해. 해준다는 거 안한다고 그러면 완전 삐지거든. ㅋㅋㅋ”

“진짜 특이하네 하하”





  우와. 악세사리도 다 여자 나름의 구구절절한 사연이 있구나. 스와로브스키에도 ‘세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속담을 넣을 수가 있는 거구나. 


Written by 선장


[스와로브스키 사진: 대림미술관 스와로브스키 展]  


Posted by 해적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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