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묘한 동거, 막힌 변기로 발각돼

 

 

  2012년 10월 27일

 

  서울 강북경찰서는 26일 수차례 빈집에 침입해 음식물을 무단 취식한 이모(30)씨를 가택침입, 절도 등의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집안으로 침입한 이씨는 마치 자기 집처럼 익숙하게 행동했다. 이씨는 냉장고에서 음식을 꺼내 요리를 하고 소주나 막걸리를 마셨다. 이씨는 마치 주인처럼 집안을 돌아다니며, 라면을 끓여먹고 자장면을 시켜먹는 등 대담한 행각을 벌였다. 배를 채우고 난 후에는 침대에서 태연히 잠을 자다 집주인이 귀가하는 시간에 맞추어 집을 나섰다. 

 

  이씨는 보통 혼자 사는 직장인의 아파트를 범행대상으로 삼았다. 피해자의 생활패턴을 파악하여 피해자가 직장에 출근한 시간을 틈타 집안으로 침입했다. 마음에 든 집에는 반년이 넘게 침입했음에도 피해자들은 알아차리지 못했다고 한다. 이씨는 자신이 사용한 물건을 원래대로 되돌려 놓고 이웃주민에게도 인사를 하는 등 상당히 주도면밀하게 행동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렇게 이어진 이씨의 범행행각은 변기가 막힌 것을 이상하게 느낀 집주인이 경찰에 신고를 하면서 발각되었다. 경찰에 잡힌 이씨는 ‘전날에 많이 먹긴 했지만 그렇게까지 굵게 나올 줄은 몰랐다’면서 ‘흔적을 남기지 않는 것이 같이 사는 사람으로서의 예의인데 그러지 못해 너무 미안하다’며 집주인에게 사과의 말(?)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갈수록 1인 가족이 늘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기묘한 동거’를 방지하기 위한 혼자 사는 시민들의 주의가 요구된다.

 

 

[해적일보 로빈슨 기자(robatsea.tistory.com)]

 

 

to be continued~~

 

 

Written by 요리사


Posted by 해적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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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중에 진짜 특이한 놈이 있다. 각종 동물을 다 따라하는 이상한 재주를 가진 인간이다. 우, 마, 견의 소리는 물론이요, "꺄악꺄악" 까마귀 소리에 "꿔기어~~"하고 닭 울음소리까지 섭렵했다. 어느 수준이냐면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그 흉내소리를 듣는 사람들은 정말 그 동물이 자기 주변에 있는지 이리저리 살필 정도다. 더 대단한 점은 동물의 소리 뿐만 아니라 몸짓, 동작 하나하나까지 정말 똑 닮게 한다는 사실이다. 어슬렁 어슬렁 먹이를 겨냥해가는 표범의 걸음걸이 흉내를 낼 때는 정말 '저 인간 모글리 아냐?' 할 정도로 등골이 오싹하다. 


그런데 그 보다 더 무시무시하게 카피하는 동물이 있다. '동물의 왕국'을 틀면 빠지지 않고 꼭 나오는 단골손님, 바로 미어캣이다. 늘 몇몇의 보초병들이 땅굴 앞에 나와 두 발로 꼿꼿이 버티고 두 손은 꼭 모은채 사방의 동태를 살피는 그 족속들말이다. 이 놈들 몸짓의 포인트는 발, 손, 고개다. 늘 적이 오나 안오나 살피기 때문에 시력과 시야 모두 매우 뛰어난 녀석들이다. 내 친구놈은 그들의 특성을 정확하게 알고 있다. 가끔 내가 심심할 때 "그 미어캣 흉내 좀 내봐!" 하면 갑자기 까치발로 바짝 서서 두 손을 딱붙여 꺾고서는 잽싸르게 고개를 휙휙 돌려대는데, 그 광경을 보고 있노라면 '와...미친놈이다 이놈은!!!'하는 생각밖에 안든다. 그냥 빵 터져 버린다. 적지 않은 시간을 지켜본 나로서 판단컨대, 이건 연습으로 할 수 있는 게 절대 아니다. 이 면밀하고 정확한 관찰력에서 나오는 행동은 지극히 본능적이라고 할 수 밖에 없다. 나는 그 놈이 갖고 있는, 아니 본래 인류 전체가 갖고 있었을지 몰랐을 그 매서운 '눈'의 원초적 본능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다.


한 때 나도 '매의 눈'이라는 소리를 들었다. 누군가와 무리지어 버스를 기다릴 때면 그들은 버스가 오고 있는지의 여부를 꼭 나에게 물었다. 내가 가장 시력이 뛰어났기 때문이다. 양쪽 시력 모두 1.5. 컨디션이 좋을 때는 2.0을 찍을 때도 있었다. 좀 과장을 덧붙이자면, 100미터 떨어진 거리에서 오는 버스의 번호도 알아맞출 수 있을 정도다. 친구들은 그런 나를 늘 부러워했다. 특히 안경만 벗으면 장님과 다를 바 없는 그런 아이들은 더더욱 그랬다. 그런 내가 스스로 대견스러워 그런 것인지는 몰라도 나는 거리를 걸을 때나 버스를 타고 창밖을 볼 때 항상 멀리 떨어진 산의 능선이라든지 높은 빌딩 위에 달린 안테나라든지 그런 것들을 주로 보곤 했다. 보니깐 보이는 것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멀리서 달려오는 버스 번호가 흐릿흐릿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우연의 일치인지 몰라도, 스마트폰을 쓰기 시작하면서부터 그런 증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스마트폰에는 참 친절한 기능이 많은데, 그 중의 하나가 바로 교통수단의 현재 위치를 확인해주는 앱이다. 내가 굳이 햇볕을 손으로 가려 가며 멀리서 오는 버스의 번호를 확인하지 않아도, 바로 앞의 손에 들고 있는 스마트폰의 앱에서 알아서 그 위치를 알려준다. 그저 폰만 쳐다보고 있으면 정확히 몇 분 후에 내가 타고자 하는 버스가 도착할지를 알 수 있다. 몸이 고생할 이유가 하나 더 줄어든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또 하나의 포인트는 스마트폰을 씀으로써 자연스레 고개를 숙인다는 점이다. 어느 순간부터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마치 죄 지은 것 마냥 모두들 고개를 푹 숙이고 다닌다. 굳이 그 죄명을 대라면 스마트폰 중독죄라 할 수 있겠다. 특히 최근 애니팡이 전국방방곡곡으로 퍼져 나아가면서 대다수의 국민이 '고개숙인 남자', '고개숙인 여자'가 되었다. 버스를 타든. 지하철을 타든, 자가용을 타든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목을 90도로 꺾고 눈에 힘 빡 주고 연신 폰만 들여다보고 눌러대고 흔들어대고 있다. 그게 어떠한 이유에서건, 우리는 내 코 앞에 닥친 가상의 공간에 더욱 더 몰두함으로써 실체의 주변을 살펴보게 될 기회를 잃게 되었다. 시력의 쇠퇴 뿐만 아니라 시야까지 매우 근시안적으로 좁혀지게 된 것이다. 


스티브 잡스의 획기적인 발상으로 인해 우리는 손바닥 안에서 세상의 무한한 가능성을 보게 되었다고 모두가 입을 모아 그를 칭송한다. 인간이 일일이 손발을 쓰고 눈으로 찾아다니며 해야 할 대부분의 일을 전화통 하나가 아웃소싱으로 한데 묶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아웃소싱의 범위가 점점 넓어질 수록 우리의 오감이 담당해야 할 몫은 점점 좁아지고 줄어든다. 인간 테크놀로지의 진화로 인해 인간 스스로의 퇴화가 급격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 생각해본 적 있는가? 


당신이 직접 넘기고 갈피를 끼워가며 감각적으로 특별한 대목을 기억해 내던 묵직한 책이 가상 공간으로 쏙 들어갔다. 당신의 몸에서 움직일 것은 이제 손가락 하나 뿐이다. 동네 주민들에게 묻고 물어 이쪽 저쪽 사방을 살피며 찾아가던 그 옛길도 이제 폰 하나만 들고 있으면 굳이 묻거나 두리번 거릴 필요조차 없다. 은행도 갈 필요없다. 폰에 은행이 있는데 발이 뭐하러 고생하겠는가. 우리는 그저 폰이라는 사이버 플레이스가 만들어주는 편의의 지침서대로 따라가면 되는 것 뿐이다. 흘러간다. 그리고 인류의 오감은 점점 무뎌진다. 


사과의 한 광고를 본적이 있다. 화면에 쓱싹쓱싹 손가락으로 몇번 끄적대면 멋진 풍경그림이 나오는 그 광고 말이다. 그림 그리는 사람들은 다 안다. 책을 솔솔 넘겨 보는 맛이 있듯 그림을 쓱싹쓱싹 그리는 맛이 있다. 4B연필, 색연필, 물감, 파스텔, 목탄을 집어들고 매서운 눈에 감을 잡아가는 나만의 몸집을 더하고, 거기에 더불어 감성을 불러일으키는 음악의 귀까지 동원하여 이리저리 손을 놀려대면 그 뭉쳐진 촉이 손가락을 타고 종이와 캔버스에 서서히 번져 하나의 꿈틀대는 작품이 이루어지는 모습을 지켜보는 그 특유의 맛 말이다. 그 맛을 사과와 세개의 별이 어느 순간부터 앗아갔다. 멀리 보이는 저 가을의 단풍산을 바라보며 날카롭게 펜을 갈기고 그림을 그려대던 나의 '매의 눈'을 그들이 앗아가 버렸다. 


오직 육체의 철저한 사용에 의해서만 비롯되던 정신적 특혜들이 기계 하나로 인해 하나둘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다람쥐가 이빨을 날카롭게 갈 듯, 인간도 몸을 쓰지 않으면 닳게 되어 있다. 조그마한 기계 하나가 육체를 장악하기 시작한 지금으로부터 10년 후, 아니 당장 5년 후가 궁금하다. 매우 두렵기도 하다.   



Written by 선장

Painted by 사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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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해적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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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0.22 04:39

 

 

 

대학 졸업 후 쉴 틈도 없이 직장을 얻고, 혹 넘어질까 걱정하며 달리니 벌써 이립(而立)이다. 뜻을 세울 나이라는데 정작 뜻 보다는 항상 주머니에 돈이 떨어질까 걱정하며 살았다. 그러니 정작 결혼은 친구 청첩장에서나 보는 단어이자 의미다.

명절이면 이제 결혼해야지라는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듣는 말에 매번 건조하게 아직 할 것도 많고, 돈도 없고요. 아직 아니에요라고 대답한다. 내가 대답을 하고도 이 아이러니에 웃음이 난다.


결혼은 본디 사랑하는 이성과 평생을 약속하는 성스러운 의식. 이 성스런 의식에 대한 대답에 애인이라는 이성은 빠진 체 돈도 없고요로 대답하다니. 결혼을 위한 가장 우선 조건은 평생을 같이 할 애인 아닌가? 그럼 현재 만나는 사람이 없는 내 답도 애인이 없어서 결혼을 못한다는 답이 맞는 거다. 내 답대로 해석하자면 나는 돈이 없어서 결혼을 못하는 거지 돈만 있으면 얼마든지 여자를 만날 수 있어. 근데 이 아이러니한 돈이 없어 결혼을 못 한다라는 대답에 반론을 재기할 30대 미혼 남자들이 몇이나 될까? 구역질나는 현 사회 상태에 대해 분하고 열 받지만 나도, 결혼을 못한 수많은 30대 남자들도 수긍한다.


결혼에 돈이 필요한 것은 예식도 그렇지만 남자는 을 장만해야한다. 이 거지같은 공식이 언제부터 우리사회에 깊게 뿌리 박혔는지는 나도, 우리 엄마도 모르겠지만 남자는 집을 장만해야한단다.

어르신들 이야기로는 단칸방부터 시작해서 하나하나 얻으면 된다고 한다. 참 바보 같을 정도로 훌륭한 말이다. 이 대답에 나는 훌륭히 대답할 수 있다. 그런 여자는 이미 한참 전에 나보다 더 능력 있고 잘생긴 녀석과 결혼 했을 것이라고. 그럼 전세로 시작해보자.


전세? 대한민국 땅 덩어리가 좆만 해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수도권 웬만한 아파트 전세 값은 억대다. . 무슨 판타지 소설에나 나올 법한 단위다. 그럼 내가 지금 판타지 소설의 주인공인가? 차라리 주인공이라면 어떻게는 드래곤을 쳐 잡아 억을 얻어 결혼할지 모르겠지만 대한민국이라는 판타지 소설에서 나는 주인공이 아니다. 그냥 평범한 판타지 속 작은 마을의 여관집 아들, 무기상, 아이템상의 아들일 뿐이다. 판타지 속이라도 나는 을 얻을 수 없다.


남자는 집이다. 남자가 집을 얻지 못하면 결혼도 못한다. 너무 자학적이고 비관적이라고? 근데 좆같이도 사실 아닌가? “미안해. 나는 아직 돈을 많이 모으지 못해 아파트 전세는커녕 작은 단칸방부터 시작해야할 것 같아라고 말하면 여자가 괜찮아. 함께 벌어서 마련하면 되지. 우리가 사랑하는데 집은 중요하지 않아라고 대답해 줄 것 같은가? 군대서 읽은 워크 투 리멤버(Walk to Remember)에서나 나올 듯한 대사다.


대학 시절로 가 나는 대학 학비를 어머니께서 부지런히 일을 해 마련해 주셨다. 그 큰 자혜로운 희생 덕에 나는 졸업 후에도 빚은 없었다. 그러지 않은, 혹은 못한 많은 주변 친구들은 알바를 해서 학비를 벌었을까? 아니다. 대부분 학자금 대출을 통해 등록금 및 학비를 마련했고 정작 알바를 통해서는 개인의 용돈 정도를 썼다.

대학 등록금은 방학을 통해서도 마련할 수 없다. 휴학을 해 학비를 마련하지 않는한 불가능하다. 시간당 오천원도 안 되는 알바비 받으며 500만원이나 되는 학비를 마련한다고? 방학기간인 3개월 동안에 500만원을 버는 곳이라면 나는 대학 때려치우고 지금 그곳에서 일을 했을 거다.


졸업 후 달라지는 것은 없다. 직장인이 된 학생은 몇 년간 학자금 대출을 갚기 위해 땅만 보며 달린다. 그리고 허리 좀 피고 하늘 좀 바라볼 때쯤이면 서른, 결혼할 나이. 모아 논 돈 따위는 없다. 근데 사랑하는 여자와 결혼을 하기위해 집을 마련해야한다. 그래서 다시 은행을 찾아간다.

융자와 대출을 끼고 집을 얻는다. 남자는 작은 사회라 불리는 대학에 들어가면서 빚을 지고, 진짜 사회에 나와 부단히도 아끼고 졸라매 빚을 갚고, 2의 인생이라 불리는 결혼을 하면서 다시 빚을 진다.

대한민국에서 대학을 다니려면 학자금 대출을 받아야하는 것처럼 대한민국에서 집을 갖기 위해선 빚을 져야한다. 학비를 부모님이 내 주시는 것처럼, 집도 부모님이 해결해 주시지 않으면 30대에 집을 가질 수 있는 방법은 빚을 내는 것이다.


대학생이 알바로 학비를 마련할 수 없듯이 직장인도 월급을 모아 집을 마련할 수 없다. 역겹게도 대한민국이라는 판타지 속에서는 말이다.


written by 저격수

 

Posted by 해적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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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0.19 03:41


나의 큰집, 큰아빠 큰엄마가 계신 큰집은 대전 석교동에 있다. 마당이 멋들어지게 자리 잡고 있으며 드라마에서나 올 법한 멋진 이층집이었다. 나무 바닥으로 되어있던 넓은 거실은 한 발, 한 발 내 걸을 때마다 삐걱삐걱하며 기분 좋은 소리를 내고는 했다. 내 방하나 없던 작은 집에 살았던 나에겐 큰집은 나에게 정말 큰집답게 커다란 집이었다. 이런 큰집은 갈 때마다 놀이터였다. 특히 온갖 신기한 물건들이 많았던 큰집은 나에게 보물창고였다.


자상하셨던 큰엄마는 항상 정원을 아름답게 꾸미셨는데 흡사 일본식 가옥처럼 너무 과하진 않았지만 절제가 있었던 그런 품위 있는 정원이었다. 이런 정원의 식물들을 신기해하며 바라보기도, 마당의 강아지와도 함께 뛰놀았다.


거실에서 이층으로 이어지는 계단은 한발 한발 옮길 때마다 호기심으로 가득 찬 날 설레게 했다. 물론 이층엔 세를 주어 다른 세대가 살아 끝까지 올라가보진 못했다. 그래서 더 궁금해 했던 거 같다.


넓은 거실에 장식되어 있던 수석들은 항상 빛이 났다. 그중 동물모양을 닮았었던 수석들은 나의 장난감이 되었고, 거실은 세렝게티가 됐다. 출판사에 근무하시던 큰아빠 덕에 집에는 많은 책들이 있었는데 이런 책을 몇 개 들고 나와 윤이 반질반질 나는 나무거실에 앉아 읽으면 거실은 오래된 도서관이 됐다. 조금은 낡았을 지도 모를 집이었지만 워낙 꼼꼼하셨던 큰엄마는 이 집을 품위 있는 보물창고로 만들어 놓으셨다. 멋진 고성 같이.

 

콩알만 한 키에서 대한민국 남자 평균키를 넘겼을 때 큰어머니는 세상을 떠나셨다. 남겨진 집은 사촌형과 큰아버지께서 계속 사셨다. 그 집에서 바뀐 건 큰어머니가 안 계신 것뿐이었다.


내가 호기어린 20대를 넘어 능글맞은 30대가 되었을 때 나의 고성 같고 보물창고였던 큰집은 고성은커녕 아무도 살지 않는 폐허가 되어갔다.


품위 있던 정원의 풀과 나무들은 모두 말라 죽어 얼마 전에 모두 잘라냈다. 하얀 흙만을 드러낸 채 정원은 사막이 되었다.


이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은 온갖 집안의 안 쓰는 물건으로 채워져 한 계단 오르기도 힘들었고 기분 좋은 소리를 냈던 나무 거실은 윤기를 잃어 낡은 나무 판때기를 깔아 놓은 거 같았다.


거실의 수석들은 빛을 잃어 수석이라고 부르기도 아까울 정도로 돌덩이가 되어버렸고 처치 곤란으로 남았다. 집은 흡사 폐허 같았다.


큰집에서 바뀐 것이라곤 큰어머니가 안 계신 것뿐이었다. 그렇게 집을 아끼고 가꾸셨던 큰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집도 죽었다. 집의 주인은 있지만 집의 실질적 주인은 큰어머니였던 것이다.


내가 어릴 적 어머니께 전세에 대해 물어본 적이 있다. 어차피 돌려줄 돈인데 전세는 왜 주는 것이냐고 물었다. 그러자 어머니가 말씀하시길 집을 혼자 그냥두면 죽기 때문에 사람을 들이는 것이란다.”라고 하셨다. 물론 어린 나는 이해 못할 말이었다. 집이 죽는 다는 것이.


사람이 곧 집이고 집이 곧 사람이었다. 사람도 혼자 못살 듯이 집도 혼자 살 수 없었다. 큰어머니 애정과 사랑을 잃은 큰집은 지금도 조금씩 조금씩 죽어가고 있다.


Written by 선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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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해적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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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첫 게임기는 패밀리(일본에서는 패미콤이라 불렸다)라는 게임기였다. 어린나이에 힘들게 일하시는 엄마를 졸라 산 게임기였다.

팩이라고 불리는 게임 소프트웨어를 끼워 사용하는 게임기였는데 당시 만해도 패밀리가 있는 친구의 집은 항상 많은 친구들이 모이고는 했다. 사실 지금 생각해보면 패밀리는 친구와 같이 할 게임도 거의 없었는데 뭐 그리 많이들 모여 앉아 있었는지 모르겠다. 옛날 TV있는 집에 사람이 모이는 것과 비슷한 거였을까?


플레이스테이션(이하 플스)도 마찬가지였다. 플스가 있는 친구 집엔 학교 끝나자마자 많은 아이들이 몰려가고는 했다. 그래도 플스는 패밀리와 다르게 함께 할 수 있는 게임이 많았다. 더불어 32비트 최신 게임기답게 패드의 여유만 있다면 멀티탭이라는 액세서리를 사용하면 무려 4인용, 두개를 사용하면 무려 8인용까지도 가능했다. 단지 8인이 함께할 게임이 없어서 문제였지만 그래도 게임은 함께 하는 거라는 이미지는 새긴 것 같다.

멀티탭도 놀라웠지만 플스의 독특한 점이라면 메모리 카드라는 저장장치였다. 메모리 카드는 게임의 전반적인 데이터를 저장하는 장치였는데 주로 게임 세이브 데이터를 저장하고는 했다. 용량이 한정되어 있는 팩과는 달리 메모리카드만 있다면 얼마든지 세이브 데이터를 옮기고, 복사하고, 보관이 가능했다. 툭 하면 세이브 데이터가 공중분해 돼 버리는 팩과는 비할 바가 아니었다.


게임 세이브 데이터가 한번이라도 날아가 본 사람은 알 것이다. 열심히 노력해도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다는 세상의 진리를 어린나이에 알게 해주곤 했다. 내 경우 세이브가 중간에 날아가자 그 게임자체를 접은 적도 더러 있었다. 아무튼 메모리카드는 친구의 데이터를 받을 수도, 내 데이터를 나눠 줄 수 있어서 세이브가 날아간다 해도 처음부터 해야 하는 수고는 덜 수 있었다.

나는 매달 게임 잡지를 사고는 했는데 일어로 된 게임 공략을 위해서였다. 이 게임 잡지에는 복사게임시디에 붙일 수 있는 스티커와 메모리카드에 붙일 수 있는 스티커가 함께 들어있었다. 인기 있는 게임의 스티커가 들어있었는데 때로는 공략을 위해 사는 게 아니라 스티커 욕심 때문에 산적도 더러 있었다.


메모리카드에 스티커를 붙이는 것은 '내 것'이라는 하나의 인식표이자 다른 사람과의 차별화였기에 놓칠 수 없는 게임 생활의 한 부분이었다.


Written by 선의

Posted by 해적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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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학로 혜화로터리를 건너 한성대 입구 사거리에 접어들어 좌회전을 받으면 곧장 성북동 길로 이어진다. 사거리 주변에는 과일장수, 과자장수, 떡장수, 김밥장수 누구 할 거 없이 이런저런 상인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손님들과 흥정을 벌인다. 성북동 길을 따라 조금 더 올라오면 오래된 철물점, 문방구, 사진관, 쌀집, 추어탕집이 보이고 그 뒤로 빽빽하게 살림집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다. 이쪽저쪽에 고등학교, 중학교도 보인다. '서울에 아직도 이런 동네가 있나' 싶을 정도로 7080년대의 냄새가 폴폴나는 그런 동네라고나 할까. 암튼 와보면 '아 여기가 성북동이구나'라는 필이 딱 느껴진다. 


  중간 쯤 올라오면 큰 길가에 조그마한 구멍가게와 당장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매우 올드한 국수집이 눈에 들어온다. 그 앞 횡단보도을 건너 세탁소와 의류점 사이로 난 골목길로 올라오면 아담한 한옥집 한 채가 보인다. 주민들은 이곳을 최 선생님 댁이라고 부른다. 집 대문에는 '최순우 옛집'이라고 쓰여진 현판이 걸려있다. 제 4대 국립중앙박물관장을 역임했던 한국미의 실천자 혜곡 최순우 선생이 살았던 곳으로, 시민들의 따듯한 성원과 모금으로 '시민문화유산 1호'로 되살아난 집이다. 이렇게 설명해도 우리 90-00세대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니 하나 더 붙이겠다. 간혹 교과서와 문제집의 지문으로 나오는 '무량수전 배흘림 기둥에 기대서서'의 저자라고 하면 '아 그 사람!'하고 무릎 칠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다.

 

 



  대문을 열고 뜰에 들어서면 선생이 생전에 심어 둔 감나무, 밤나무, 모과나무, 소나무, 산수유 나무가 알맞게 자리를 잡고 있으며, 곳곳에는 청죽, 벌개미취, 옥잠화, 바위취와 같은 한국의 야생화가 소담스레 피어있다. 선생이 머물던 사랑방에는 도톰한 보랏빛 보료와 조그마한 서안이 있고, 간결하게 짜여진 사방탁자가 놓여 있다. 서안 위에 놓여진 낡은 원고지가 바람에 펄럭인다, 김환기 선생과 박수근 선생의 그림도 보인다. 선생의 친필이 담긴 사랑방 현판에는 '두문즉시심산'이라 적혀있다. '문을 닫으니 이곳이 곧 산속과 같다'라는 뜻이다. 뒤뜰에 펼쳐진 고동빛깔 툇마루에 앉아 수국차를 마시며 이 고요한 풍경을 마주하고 있자면 도심 속 한복판이라는 사실을 어느덧 잊게 되는 묘한 감정이 싹튼다. 


  언제였던가. 최순우 옛집에 엄마, 딸, 손녀 셋이 놀러왔다. 하얗게 머리가 센 엄마를 부축하고 딸이 모셔온 모양이다. 대여섯살 되어보이는 손녀아이는 벌써 깡총깡총 온 집을 뛰어다니고 있다. 엄마와 딸이 쑥차를 시켜놓고 툇마루에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손녀아이가 무얼 발견했나보다. 막 뛰어가서는 "엄마 이게 뭐야?"를 연신 외쳐댄다. 손녀아이가 손에 들고 있는 건 검정 고무신이었다. 딸이 이야기해준다. 


"요건 옛날 사람들이 신었던 고무신이라는 거야, 고무로 만든 신발!"

"엄마 나 이거 사줘!!!"

"이걸 사서 뭐하게~ 다시 제자리에 갖다두세요~~"

"엄마 나 이거 사줘!!!"

"이거 이제 안 팔아. 못사요. 갖다두세요~~"

딸과 손녀아이가 몇 차례 실갱이를 벌이고 있으니, 엄마도 한 술 거든다. 

"야, 이거 아직도 신고 다니는 사람이 있나부다. 남대문 시장 이런데 가면 아직두 이런거 팔기는 팔텐데..."

"엄마 근데 나도 보기만 했지 그러고 보니까 신어본 적이 없네?"

"야, 내가 너 어렸을 적에 니 딸 마냥 새신발새신발 노래를 불러서 맨날 시장만 가면 신발만 사고 아주 된통 혼났다"

"나두 그랬나? ㅋㅋㅋㅋㅋ"

"난 아주 고무신만 보면 울화가 치민다 야"

"왜 엄마?"

"느의 할아버지 있지? 그 양반이 어디 여자 사람취급이나 해줬냐? 오빠들은 서울가서 공부해야 된다고 구두니 운동화니 장만 가시면 사오는 걸 나는 한번도 신어보지도 못했다 야. 맨날 오빠들이 신던거 떨어지고 그러면 그거 주워다 신고 그랬지뭐. 오빠가 하두 그래보이니까 그래도 나중에 나 부득부득 우겨서 고등학교 갈 때 아빠 몰래 구두 한 켤레 사줘서 내가 그냥 신이 나가지구 온 동네방네 다 신고 다니고 친구들한테 자랑하고 그랬어. 어이구, 난 고무신하면 치가 떨린다."


  가만히 보니 할머니가 지금 신고계신 구두도 예사로워 보이지 않다. 럭셔리한 게 딱 누가봐도 '와우! 명품이네!' 써 있다. 그러고보니 그 딸도, 그 딸의 딸도 죄다 신발이 고급스러워 보인다.  


"넌 아주 행운인 줄 알어. 내가 아주 이 신발에 한이 맺혀가지구 내 딸은 그렇게 안키운다 해서 사달라는 대로 사준거지. 그 때 값으로 구두니 운동화니 다 비쌌다구. 누가 이런 걸 함부로 사줘."

"하하, 알았어알았어 엄마. 내일 백화점이나 갑시다."

"그러지 뭐. 아니 근데 얘는 뭐가 좋다구 이걸 가지고 이런다냐?"


  손녀아이는 고무신이 정말 마음에 들었던지 들었다놨다 신었다 벗었다를 반복하면서 장난감 갖고 놀듯 삼매경에 빠져있다. 손에서 놓지를 못하니 아이엄마가 마지 못해 사무실로 찾아와 묻는다.


"이거 여기서 팔아요?"

"아뇨, 저희들만 신는 겁니다. 한옥 분위기에 맞게 신발도 고무신으로 맞춘 거에요."

"아, 네 근데 참 한옥이랑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 저랑 딸이랑 신고 사진 찍어도 되죠?"

"아 그럼요. 그리고 이거 남대문 시장에서 팔아요. 가시면 아마 따님 사이즈도 있을 거에요"

"아네, 잘 알았습니다. 고맙습니다."


  고무신 두 켤레를 딸과 손녀아이가 신더니 나에게 사진 좀 찍어달라 부탁을 한다. 고무신이랑 한옥이랑 잘 좀 나오게 찍어달란다. 나름대로 그림이 잘 나오는 자리에 앉혀놓고 찍으니 제법 그럴싸해 보인다. 두 사람도 모두 만족한 얼굴이다. 딸이 엄마에게 묻는다. 


"엄마도 한 번 신고 찍어. 언제 또 신어보겠어?"

"아이구 난 됐다. 니들이나 많이 찍어라. 쟤 좀 이쪽저쪽 가서 많이 찍어줘 예쁘게 꽃이랑 나무랑 같이."


  그렇게 세 모녀는 고무신을 두고 한참을 이리저리 옮겨다니다가 해 질 무렵이 되서야 돌아갔다. 정말 할머니는 끝까지 고무신을 신지 않았다. 딸은 사진만 찍어댔다. 손녀아이는 신고 놀기에 바빴다. 엄마에게 고무신이란 '다시는 보기 싫은 헌 신', 딸에게는 '기념으로 남길 추억거리'. 손녀아이에게는 '꼭 갖고 싶은 신발 장난감'이었다. 그 날 헌 고무신이 세 모녀에게 제대로 헌신했다. 



Written by 선장

Painted by 사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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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해적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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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가을에 접어들고 있는 10월의 첫째 주 일요일. 아침공기가 제법 쓸쓸해진데다가 창으로 내리쬐는 햇살도 한결 차분해졌다. 이글이글 아스팔트 기운에 맥을 추지 못하던 담쟁이들도 때를 만났다는 듯 슬그머니 잎새 끝에 물을 들이기 시작했다. 늦여름 태풍이 쓸고 간 하늘 판에는 푸른 물감만 잔뜩 뿌려져 있고, 실낱같은 흰 구름들은 있는 듯 없는 듯 무심히 지구 반대편으로 흘러가고 있다. 창밖 프레임 속 풍경을 구경하고 있노라면 어느덧 1회용 플라스틱 잔에 얼음 꽉꽉 채운 아메리카노 보다는 하얀 머그잔에 따끈한 달콤 라떼 한잔을 내려 마시면서 몸 안의 생기를 북돋아 주고 싶어진다.


  공기가 얼어붙고 태양빛이 멀어져 간다는 것은 그만큼 일상생활의 뜨거움도 한층 식어간다는 것을 뜻한다. 싸이의 강남 스타일 공연의 열기로 붉게 달구어졌던 시청광장에는, 푸른 셔츠를 커플룩으로 맞추어 입은 연인과 아빠 엄마 손을 잡고 초록잔디밭을 노니는 꼬마들이 자리를 채웠다. 분수대의 물대포를 맞아가며 뛰놀기에 분주했던 여학생들은 어느 새 도톰한 춘추복 차림으로 변신하여 잔디밭에 모여앉아 겨울용 코트나 피부건조 방지용 화장품 이야기로 대화의 수를 놓는다. 멀찌감치 나무의자를 두고 앉아 슬금슬금 곁눈질로 그녀들의 스케치를 완성해가고 있는 사과모자 아저씨를 보고 있자면 이내 가을이 오긴 왔나보다 하는 생각도 든다. 우리들의 옷차림도, 생각도, 사랑도 가을의 나침반에 따라 키의 방향을 차츰차츰 바꿔가고 있다.


  온도계가 내려갔다고 해서 우리들의 마음까지 덩달아 식어버린 것은 아니다. 오히려 우리들은 그 동안 더운 열기로 인해 제각각 미루어두었던 시시콜콜한 소망거리들을 하나둘씩 끄집어내고, 표현하고, 공유하고, 소비하고 있다. 그런 것들은 아침 산책길에서도 쉽게 볼 수 있다. 공원 평상에 단체로 모여 앉아 기를 수련하는 사람들이라든지 또는 배낭을 메고 서울성곽 정상을 향해 오르는 노인 부부의 걸음걸이는 한여름 쨍 내리쬐는 불볕 속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풍경이다. 공원 숲에 숨어 들어가 달콤한 혀를 섞고 있는 남녀 지간의 모습은 앞으로 외부에서의 애정 행각이 더욱 뜨겁게 달아오를 것을 예고하고 있다. 떨어진 숲의 온도를 연인들이 알아서 맞춰 주고 있는 것이다. 또 다른 한편에서는 삼삼오오 줄을 지어 자전거의 페달을 돌리고 있는 레이서들의 숨 가쁜 질주가 점점이 스쳐간다. 이 모두가 계절의 색깔을 바꾸어 나아가는 풍경들이다.


  작년 이맘때쯤엔 그림 그리기에 미쳤는데, 올해는 펜과 키보드가 손맛을 자극하고 있다. 손가락 지문에 가을의 형상이 도돌도돌 새겨져 묘한 생각의 자기장에 이끌려 펜을 끄적 대고 키보드를 연신 두드리고 있다. 모니터 앞에는 따듯한 테이터스 초이스 아메리카노 한잔, 무라카미 하루키의 [노르웨이의 숲], 그리고 막 연인과 문자를 끝낸 달달한 아이폰이 놓여 있다. 커피를 마시며 사랑을 즐기고, 책을 끼고 앉아 나만의 잡동사니 글을 풀어내고 있는 꼴이란 흡사 된장남을 연상케 한다.


  독서란 무릇 글을 쓴 자와 글을 받는 자의 진지하고 차분한 대화이다. 작가와 독자의 커피 한잔의 대화에 남이 함부로 끼어드는 것을 나는 제일 싫어한다. 여기서 ‘남’은 나를 알고 있는 타인 모두를 지칭한다. 그래서 집안에서 진지하게 책을 읽는 경우는 거의 없다. 화장실 청소하는 소리, 쓰레기통 비우라는 엄마의 잔소리, TV 속 걸그룹의 숨 넘어갈 듯한 라이브 소리의 하모니는 마치 나에게 ‘니가 좋아하는 그 쓰레기 책 따위 개나 줘버려’하고 비웃는 것만 같다. 가족들이 잠옷 차림으로 퍼질러 앉아 깔깔대며 쇼 프로를 보고 있는데 나는 한 쪽에서 와타나베와 나오코가 뜨겁게 섹스하는 대목을 읽는다고 해보자. 이건 도저히 말이 되지 않는 것이다.


  적막함이 느껴지는 넉넉한 공간에 숨어들어가 책과의 대화를 시작한다. 너무 시끄럽지도 그렇다고 너무 쓸쓸하지도 않은 카페의 한 구석자리라든지 운동장의 먼 함성소리가 창가를 가볍게 두드리는 학교 연구실의 책상 이런 곳이 딱 제격이다. 나는 책에게 무엇을 가르쳐 줄 수 있냐고 묻고 책은 나에게 무엇을 찾고 있느냐고 되묻는다.


  끊임없는 대화가 이루어지는 가운데 커피와 초콜릿 간식은 필수 아이템이다. 특히 대화의 내용이 점점 깊어지고 높은 고열량의 지식을 짜내야 할 때 초콜릿의 농도는 점점 더 달아오르고 카페인은 고독하게 깊어진다. 달콤한 설탕과 카페인의 마취성분으로 뇌를 달래주면서 나는 옷장 속을 뒤지듯 흥미로운 이야기 거리를 끄집어낸다.


  독서를 넘어 글쓰기로 이어질 때 카페인과 초콜릿 소비는 최고점을 찍는다. 특히 데드라인을 턱밑에 두고 논문이나 보고서 따위의 딱딱한 내용을 쓸 때 나는 보통 1일 기준 오리지널 콜라 5캔, 아메리카노 3잔, 자판기 믹스커피 2잔, 트윅스 3개, 기타 초콜릿 과자류 3봉지 이상을 먹어치운다. 무한한 카페인을 소비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씩씩대는 증기기관 열차 속에 시커먼 석탄 덩이를 탈탈 부어가며 불구덩이의 기세를 올리는 것과 같다.


  카페인 과다 중독으로 이상 증세가 나타나지 않느냐고 묻는 사람도 있는데 꼭 그렇지만은 않다. 아직까지 이런 인스턴트 생활로 인해 곤욕을 치러본 경험은 없다. 다만 카페인 수준이 일정량 수준을 넘으면 조금씩 피로감이 몰려오고 집중력이 떨어진다는 단점은 있다. 하지만 먹지 않고 마시지 않은 채 초조한 긴장감을 이어가는 것보다는 훨씬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점에서 나는 이 생활이 좋다. 데스노트에서 L이 설탕류 과자를 탑처럼 쌓아두고 밤낮으로 먹어가며 범인 키라를 추적하는 그런 짓거리와 비슷하다고도 할 수 있겠다.


  해가 지니 바람이 서늘하다. 창문을 닫고 스탠드 불을 켠다. 또 다시 입안에 초콜릿을 살짝 머금고, 딸그락 딸그락 머그잔을 구슬리며 커피를 솔솔 마셔댄다. 그리고 한량 놀음하듯 이글 저글을 이리썼다 저리썼다를 몇 번이고 반복한다. 그러다 간혹 내 앞에 놓인 아이폰으로 연인과 문자를 주고받으며 다음 만날 데이트 날짜를 정해본다.

 

  커피, 초콜릿, 독서, 사랑은 이렇게 묘한 동거를 이루고 있다.


Written by 선장

Painted by 사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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