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食)은 생물이 활동하는 에너지를 만드는 행위로써 단순 생산 활동에 그치지 않고 만남, 대화시간 등 다양 역할을 하고 있다. 특히 맛있는 음식을 먹는 다는 즐거움은 포기하기 힘든 욕구중 하나다. 그럼 거두절미하고 사람이 살아가는데 있어 행복감을 전해주는 식사를 혼자 한다는 것에 대해 한국은 얼마나 관대할까?


누군가 식사를 한다고 한다면 무의식적으로 물어보는 것이 “누구와?”이다. 식사를 한다고 하면 누군가 함께 먹는 다는 인식이 크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식당을 봐도 혼자서 먹기 보다는 여럿이 먹을 수 있게 되어 있다. 식당에서 식사를 하는 사람들도 대부분이 혼자보단 2인 이상으로 오는 경우가 많다. 그게 우리나라의 정서일 것이다. 그럼 여기서 질문 하나 던지자면 ‘혼자 밥을 먹어본 적이 있는가?’이다. 질문 자체도 유치하다. 이 질문에 내 대답은 ‘있다’다. 그러나 사실 혼자서 밥을 먹기 시작한지 오래되지 않았다.


대학 시절만 해도 혼자서 밥을 먹는 다는 것은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학교를 다니다 보니 주변에 항상 사람이 있던 것도 사실이고, 시간을 내기 편하다보니 식사 약속을 잡기도 쉬웠다. 그래서였는지 함께 밥 먹을 이가 없으면 끼니를 거르기도 했다. 이 생각이 바뀌기 시작한건 일본여행 후였다.


친구와 함께 일본여행 중 가장 어색했던 것이 식당에 많은 사람들이 혼자서 식사를 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오히려 친구와 함께 밥을 먹으러 온 우리가 다 어색할 정도로 혼자서 식사를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정말 처음엔 어색 그 자체였다. 한편으로는 ‘왜이리들 혼자서 먹을까?’하는 생각도 들며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나도 사회생활을 하며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지고 누군가와 만나 한 끼 식사를 할 시간을 만들기보단 조금씩이지만 혼자 먹는 것에 익숙해지기로 했다. 정확힌 익숙해졌다.


혼자 먹는 적적함이 익숙해지면 다음으로 가장 신경 쓰이는 것이 주변의 관심이다. 우리나라 사람은 유독 주변에 관심이 많다. 주변에서 무엇을 하는지 누구와 왔는지 많은 관심을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인근 나라인 일본과 비교했을 시 우리나라 주변 관심 수준은 거의 병적으로 높다. 그러니 식당에서 혼자식사를 한다는 건 많은 관심을 끄는 행위일 것이다. 그래도 나는 일본의 무관심적인 정서보단 지나칠 수도 있는 우리나라의 정 많은 관심이 좋다. 이러한 관심이 때로는 주변의 범죄도 막아주며 훈훈한 이야기도 전해주니 말이다.


혼자 생활하며 식사하는 인구가 많은 일본의 경우 혼자서 밥을 먹을 수 있도록 잘 되어있다. 식당엔 혼자 먹을 수 있도록 칸막이가 되어 있는 식당도 있으며, 작은 테이블도 잘 갖춰져 있다. 편의점엔 혼자 먹을 수 있는 도시락이며 레토르트 제품이 가득하다. 거기에 혼자서 밥 먹는 사람을 위한 비디오까지 있을 정도니 혼자 식사하기에는 일본은 천국이라 할 수 있다.

사실 우리나라도 주변관심만 조금 익숙해진다면 혼자 밥 먹기에 좋은 나라다. 웬만한 식당에서 음식은 포장이 가능하고, 배달문화는 세계 최고 수준인지라 주변 신경 쓸 필요도 없다. 또 한솥 도시락을 시작으로 맛도 좋고 저렴한 도시락들도 많이 등장해 혼자 식사하기가 좋아 졌다.


혼자 밥 먹는 것은 핵가족과 골든 미스 등 혼자 사는 사람이 늘면서 생긴 사회적인 문화다. 또한 바쁘게 돌아가는 사회생활에서 누군가와 시간 맞춰 밥 한 끼 먹을 시간이 없는 안타까운 우리현실이기도 하다. 아직은 어색할지 모르지만 이제는 조금씩 익숙해져야할 문화라는 게 아쉬울 따름이다.


written by 선의


Posted by 해적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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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2.10 06:34



얼마 전 참 구미가 당기는 드라마를 발견했다. 주말드라마인 ‘청담동 앨리스’가 그것인데 현재 3화분밖엔 방영되지 않았지만 시작부터 아주 흥미로웠다. 특히 여자의 허영심과 된장녀로 화두를 던져 신랄하게 비난하는 모습은 아주 신선했다.

줄거리는 대략 신데렐라 스토리다. ‘노력이 나를 만든다’라는 신조를 굳게 믿고 사는 한세경(문근영 분)과 세계적인 명품유통회사 아르테미스의 최연소 한국회장인 차승조(박시후 분), 이 두 사람의 사랑이야기다. 그런데 일반적인 신데렐라 스토리라고 하기엔 이 드라마는 너무 현실을 잘 반영하고 있다.


노력형 긍정녀인 세경은 온갖 노력으로 취업에 모든 것을 내건다. 하지만 사회에서 돌아오는 것은 처음부터 가지지 못한 부에 대한 차별이다. 이에 반해 세경보다 못한 고등학교 동창인 윤주(소이현 분)는 남자 잘 만나 스물일곱이라는 나이에 사모님이 됐다. 

드라마 속 지금까지의 결론은 구질구질 노력보단 ‘인생은 한방이다’를 보여주고 있다. 사실 이 말엔 남자인 나로서는 동감할 수 없다. 왜? 이젠 한방도 없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옛말에 ‘개천에서 용 났다’라는 말이 있다. 이젠 이 말도 틀렸다. 예전 소 팔아 대학 다니던 시절엔 가난한 집 장남 공부시켜 사법고시에 합격하면 집안도 살아나고 모든 것이 해결됐다. 개천에서 용이 난 것이다. 


하지만 요즘은 돈이 없으면 공부를 할 수가 없다. 법조인이 되기 위해선 필수적으로 로스쿨에 가야한다. 로스쿨 중 등록금 가장 싼 곳이 975만원이다. 거기에 이천만원이 넘는 로스쿨도 25곳 중에서 12곳이나 된다. 이천만원. 강남의 30~40평되는 아파트 사는 사람이면 모를까 부엌하나, 방 한 칸에 온가족 모여 사는 집에선 그런 돈을 마련할 수 있을까? 난 불가능하다고 본다. 그래서 차선책으로 학자금 대출에 손을 벌린다. 그리곤 학기동안 잠 아끼며 아르바이트를 한다. 학자금 대출을 갚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음 학비를 위해서. 근데 최저임금 오천 원도 안 되는 나라에서 과연 한 학기 동안 다음 학기 학비를 마련한다는 것은 가능할까? 자기 용돈이나 벌면 다행이다.


학비를 마련 못한 학생은 휴학을 한다. 휴학을 하니 졸업은 늦어지고, 졸업이 늦어지니 취업도 늦어진다. 갚지 못한 학자금 대출은 점점 이자가 불어가고 한번 피어보지도 못한 꽃다운 청춘은 이미 신용불량자가 되어있다. 이젠 개천에서 용 따위는 나지 않는다.


한방의 대명사인 로또도 다를 바 없다. 523회 로또 1등 당첨자는 총 7명. 이들에게 돌아간 1등 당첨금은 17억 8026만원. 17억 가지고는 강남에 아파트 하나 못산다. 한방이라고 말하기에는 집 한 채 못 사지만 그래도 평생 월급쟁이 생활로는 이 돈도 못 모을 거 같으니 그 운수에 감사할 따름이다. 한 평생 놀고먹을 만한 한방도, 방법도 이제는 없다. 드래곤 볼을 모아 소원을 빌지 않는 한 없다.


“한방을 노리지마라. 매사에 최선을 다하고 노력해라. 그럼 인정받고 성공할 수 있다” 어느 책의 이야기처럼 성실히 노력하면 성공할 지도 모르겠다. 나도 그렇게 믿고 싶다. 근데 지금 현실에서 노력은 최선의 선택도 성공의 지름길도 아니다. 가진 것 없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들의 어쩔 수 없는 발악이다. 공든 탑이 안 무너질 것 같은가? 성실과 노력으로 쌓아 올린 공든 탑 따윈 돈 쳐 바른 대기업 굴삭기 한방이면 끝이다. 지금 세상의 노력은 운보다 못한 존재고 노력만으론 아무것도 안 되는 시대다.


그러고 보면 ‘청담동 앨리스’는 현실을 잘 반영하고 있지 않다. 어떤 짓을 하던 노력만으로 주인공은 성공을 이룰 테니까. 오히려 지금 사는 세상이 더 드라마 같다. 노력만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거지같은 시나리오의 막장 드라마.


written by 선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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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해적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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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에 왜왔니] 1. 거문도 고도민박.


거문도는 200여만평의 서도와 그 절반정도 크기의 동도, 가운데 약 33만평의 고도, 이렇게 3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3개의 섬이 둥글게 모여 외부의 거친 파도와 풍랑을 막아주고 있어 예부터 천혜의 항만으로 불리워진 곳이다. 이 세 섬 가운데에 100만평의 바다가 펼쳐져 있고, 남북으로 뱃길이 트여있다. 


한반도 뿐만 아니라 오도열도, 대마도와 매우 가깝고, 홍콩과 블라디보스토크의 중간지점에 위치하고 있어 아시아 진출의 교두보로서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는지라 근대 열강국들이 호시탐탐 노렸던 섬이다. 실제로 영국이 1885년부터 1887년까지 약 3년간 이곳을 불법 점거한 사건은, 거문도가 지정학적, 군사학적으로 매우 긴요한 위치에 자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영국군이 떠난 직후에 고종황제가 거문도에 거문진을 설치하고 수군 주둔을 위한 관청을 세운 것도 그러한 이유에서이다. 


              ▲ 거문도의 전경 


일제가 거문도에 눈독을 들이기 시작한 것은 러-일 전쟁이 벌어지던 당시부터다. 일제가 러시아 함대를 격파하기 무섭게 1904년 서도의 수월산에 일본인에 의해 등대가 설치되었고, 일본해군이 주둔하면서 해저통신시설을 갖추어졌다. 그리고 1905년 한일협약이 체결된 후 일제 민간인이 본격적으로 마을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1906년 일본인 우편전신소가, 1910년에는 순사주재소가, 1914년에는 일본인 소학교가 문을 열었다. 특히 학교가 세워졌다는 것은 일본인의 거문도 이주가 얼마나 활발했는가를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예라 하겠다. 1918년 일본인 어업조합 설립, 1923년 거문항 세관출장소 건립에 이어 1920년대부터는 세 섬 중 고도에 아예 일본인 집단촌이 대거 형성되면서 그들의 신사까지 세워졌다. 거문도는 해방직전까지 일제의 주요 군사요충지로서, 그리고 어업전진기지로서 철저하게 기능했다. 고도 선착장에 내려 거리 주변을 둘러보면 일본식 근대주택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 일본식 주택이 즐비하게 들어서 있는 고도의 모습

         

               ▲ 상단 왼쪽부터 1. 거문도 등대 2. 일제 신사터 3-4. 영국군 묘소 


고도민박은 선착장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다. 1층은 부부가 사는 살림집으로, 2층은 민박용 공간으로 사용하고 있다. 특히 2층의 경우, 일제시기에 지어진 건축형태와 구조의 원형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이 집은 1925년에 지어진 전형적인 일본식 근대주택이다. 집주인의 아버지 생전 말씀에 의하면,  이 집은 어업 무역상으로 활약하던 일본 여성 나가기치에 의해 지어졌다. 집에 쓰인 모든 목재는 일본에서 공수해 온 것으로, 일체의 못을 사용하지 않고 목재결구방식을 통해 세워졌다. 그녀의 부친은 일제의 고위급 장성이었으며, 그녀의 어업무역 활동을 적극적으로 지원해주었다고 한다. 후문에 따르면, 그 여성의 집안은 거문도, 여수, 목포, 부산 등을 오가며 어업 중개무역을 통해 엄청난 돈을 벌어들여 한 때 전라남도 10대 갑부에 손꼽히기도 했다. 현재 집주인의 조부가 당시 그 무역상의 서기로 활동하면서 어업중개 무역을 익혀 나아갔고, 해방이 되고 나서 자연스레 이 집을 인수받았다. 건물 면적은 총 88평으로, 일제강점기 상류층 일본인 가옥양식의 전형적인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 거문도 고도민박 외관의 모습(현재)


              ▲ 거문도 고도민박 과거의 모습(1960년대 추정): 동그라미 표시가 되어 있는 집이 오늘날의 고도민박이다. 



가파른 박달나무 계단을 올라 2층에 다다르면 마치 일본 본토의 전통가옥에 방문한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가운데 큰 방 2개를 중심으로 하여 총 11개의 방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공간 곳곳에 일본문화의 건축양식과 소품들이 비치되어 있다. 모든 방에는 다다미가 깔려 있다. 




              ▲ 거문도 고도민박 내부 전경


거실 전면에 도코노마가 갖추어져 있다. 도코노마는 집안의 부와 권위를 상징하는 공간으로서, 벽 쪽으로 공간이 움푹 들어가 있고, 바닥이 조금 높게 솟아있다. 도코노마 한 가운데에는 향나무 기둥이 서 있는데, 자세히 보면 갖가지 동물 문양이 정교하게 새겨져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일반적으로 제단과 불단을 모시는 공간으로 사용되거나, 진귀한 족자나 병풍, 도자, 다기와 같은 소품들을 비치해두는데, 이 집이 경우 집주인의 모친이 사용하던 반닫이와 일본식 망와와 화로를 장식용품으로 갖추어 두었다. 


일본식 특유의 천정 밑에는 정교하게 짜여진 문양장식이 보인다. 나무결 마디마디 사이가 매우 촘촘하게 연결되어 있다. 장식기능을 하면서도 방과 방 사이의 통풍을 원활히 해 주는 기능을 한다. 이 문양 장식의 수와 종류, 정교함의 수준이 높을 수록 그 집의 위상을 높이 알아주는데, 이 집 안에 벽장과 천정 주변으로 수많은 목재 문양장식이 있는 것을 미루어볼 때 과거 중개무역을 통해 엄청난 부를 획득한 여성 무역상의 기운이 느껴진다. 


미닫이 형식의 문도 볼거리 중 하나다. 쇼지, 후스마와 같은 장지문, 그리고 일본식 유리 장식문이 방 곳곳에 달려 있다. 문을 닫으면 각 공간의 기능이 나뉘고, 문을 열면 집 전체가 하나의 공간으로 통하는 일본인 특유의 공간분할방식을 엿볼 수 있다. 방 안으로 들어가면 오시이레 즉, 붙박이 벽장이 보인다. 지진이 잦은 일본 본토의 특성상 가구보다는 물건의 흔들림을 최소화할 수 있는 붙박이 벽장을 선호한 그들의 생활양식이 담겨있다. 



              ▲ 거문도 고도민박 내부 전경(천정, 천정장식, 붙박이 벽장, 화로, 망와, 후스마 등) 


이 집은 일제강점기 일본인 이주 집단촌의 산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 조선 수탈사의 흔적이 뚜렷이 남아있는 곳으로, 일제강점사의 산 교과서와 다름없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집의 가장 큰 매력은 실제 사람들이 이 곳에 묵어가며 직접 일제역사의 산실을 체험하고 느껴볼 수 있다는 점이다. '박제된 문화재'로서가 아닌 이 집이 갖고 있는 일본문화를 방문객이 직접 만져보고 느껴볼 수 있는 장인 것이다. 





집주인 할아버지와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할아버지가 들려준 이야기 중 가장 가슴에 남았던 것은 이 집의 역사적 가치라든지 건축적 특징에 관한 것보다도, 그가 어렸을 적 이 집에서 겪었던 아주 소소하고도 소중한 추억거리였다. 이야기 끝물에 넌지시 물어봤다. "어렸을 적에 이 집에서 살던 생각은 안 나세요?". 할아버지가 들고 있던 청소기를 가만히 내려놓으시고는 차분히 주위를 둘러보신다. 그리고는 조용히 웃으시면서 말을 이어간다. 


"아...예전에 국민학교다닐 때 말야. 학교 끝나면 내가 2층에서 그렇게 숨바꼭질을 했단 말야. 친구들 데려 와서는 몇 시간이고 그렇게 노는 거야. 그게 그렇게 재미있을 수가 없었어. 여기저기 방문이 많잖아. 저기 숨었따가 문을 살짝 열고 또 다른 데로 얼른 도망가서 숨고 말야. 아...그게 그렇게 재미있을 수가 없었어."


그렇게 재미있을 수가 없었다는 얘기만 몇 번을 반복하신다. 절로 흥이 나서 손짓 발짓 다 해가며 설명을 해주신다. '이 불편한 거 왜 안 바꾸고 사냐' 이래저래 불평불만을 늘어놓는 민박 손님들도 제법 많다고 한다. 아예 집에는 관심조차 두지 않는 손님이 대다수를 차지하는 건 물론이란다. 그래도 할아버지는 2층만은 고칠 수 없다고 못을 박아 말씀하신다. 1층은 살림집으로 바꿔놓고, 유독 2층의 모습만은 끝까지 지키고, 매일같이 쓸고 닦는데에는 중요한 이유가 있는 것 같다. 손님들의 '특별한 민박체험', 그것보다는 할아버지의 '특별한 숨바꼭질의 추억과 애정'이 담겨 있는 곳이니까.  



[숙박 및 교통정보는 거문도 고도민박 홈페이지 http://www.godoinn.com/ 참조] 


Written by 선장

Photo by 선의


Posted by 해적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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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는 나를 알기에 더더욱 슬퍼지네.. 

                                                                - 회상Ⅲ/김태원



~♫~~

익숙해진 핸드폰 알람음, 가장 귀에 거슬리는 소리로 바꿔 놓았건만 ― iPhone4의 ‘공상과학’ 사운드, 사람 속을 뒤집음과 동시에 달팽이관에서 고막을 거쳐 외이도까지 쭉 긁는 느낌을 줌 ― 그 조차도 어느새 귀에 익어버린다. 평소와 별반 다를 것 없는 하루의 시작과 함께 분주하기만한 어느 아침 날. 


여전히 잠에 취해 옷매무새를 가다듬다가 바지 주머니에서 남몰래 숨어 있던 동전 500원과 해후(邂逅)하게 되는 그런 날이 꼭 있다. 그럼 보통 우리는 살며시 미소를 짓게 된다.

 

딱 그 느낌과 그 타이밍이다. 군더더기가 있으면 안 된다. 적어도 그 사람에게는 말이다. 단지 그 느낌의 남자로만 남아있으면 된다. 크게 신경 쓸 사람도, 마음 가는 사람도 아닌, 그냥 바쁜 하루의 일상에서 스쳐 지나가는, 하지만 가벼운 미소 정도는 줄 수 있는 사람 말이다. 


백원은 너무 작고, 천원부터는 너무 크다. ‘왜 이 돈이 주머니에 남겨져 있지?’ ‘무슨 돈이지?’하며 불안해진다. 심지어 대형마트에서 백원을 넣고 카트를 쓰느냐 오백원을 넣느냐에 따라 카트 회수율과 정돈 상태가 달라진다고 한다. 아직 동전오백원은 우리에게 익숙하지만 거슬리지는 않는 존재인 것 같다. 디지털 공상과학 사운드와는 그 차원이 다르다. 


함께 있으면, ‘기적’이라는 단어밖에 생각나지 않던 사람, 이 <동전오백원> 카테고리의 글들은 그 한 명을 감동시키기 위해서 받쳐질 것이다. 10년이란 세월동안 내 마음 속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사람 ―그 세월은 한 남자를 500원이라는 값어치로 흥정을 맺게 만들었지만 ― 그렇다. 바로 당신을 위한 글이다. 


앞으로 해적단 수컷들의 눈물겨운 구애 공세를 기대하시라. 당신은 그저 오백원 만큼의 미소만 지어주면 된다. 



* 작곡가 김태원씨는 작곡을 할 때 첫사랑을 떠올린다고 한다. 그 역시 이뤄지지 않은 아픈 사랑이다.

* 이글의 초안은 2009년 6월 여름날이다. 언젠가부터 한 코미디언이 “궁금하면 500원~”해서, 나의 동전오백원 프로젝트가 희화화 되는 건 아닌지 걱정이다. 


Written by 동전오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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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해적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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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맨의 전설


패밀리라는 게임기인 하드웨어를 가졌다고 하나 소프트웨어인 게임팩이 한없이 부족한 게 현실이었다. 그렇다고 한 게임만을 계속할 수도 없는 것 또한 현실이었다. 그래서 이것의 대안책이 바로 합본팩이었다. 

합본팩은 팩 하나에 여러 가지 게임이 들어있는 것을 말하는데 작게는 몇 개에서 많게는 백단위의 합본팩도 있었다. 대게 합본팩은 1~2개의 메인 게임과 나머지 잡다한 게임으로 되어 있는데 사실 메인게임을 제외하고 나면 나머지 잡다한 게임은 거의 쓰레기 수준의 게임이었다. 간혹 쓰레기 게임 속에서 조금은 할 만한 게임을 발견할 때도 있지만 그런 일은 드물었다. 


합본팩의 또 하나의 문제점은 팩 겉면에 붙어있는 그림이나 게임명이 실제 게임과 다를 때가 있다는 점이었다. 한번은 겉면에는 상당히 괜찮은 게임이 붙어있어 단숨에 샀더니 정작 게임을 돌렸을 때는 다른 게임이 나오는 것이었다. 헷갈릴 수도 있겠다 싶을 정도도 아닌 게임이 들어있었는데 그 게임하나 보고 산 나로서는 허탈하기 그지없었고 바로 오천원을 주고 팩을 교환했다.


합본팩의 현실이 그렇다보니 대게는 그냥 단일팩을 사는 것이 더 효율적이었다. 다행히 나는 처음 패밀리를 샀을 때 단일팩을 하나 함께 구입 했었는데(물론 어머니가 사주신 거지만) 그 팩이 바로 록맨(Rockman)6였다. 





일본 캡콤(Capcom)사에서 만든 액션게임인 록맨은 지금에서도 명작으로 뽑히는 작품인데 작은 파란색의 로봇인 록맨이 나와 스테이지를 정하고 각 스테이지의 보스를 클리어 하는 방식의 게임이었다. 

록맨의 재미중 하나는 각 보스마다 지닌 속성과 무기가 있는데 록맨이 그 스테이지의 보스를 물리쳤을 때 물리친 보스의 능력을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각 보스마다 상성을 잘 이용하면 보스공략을 쉽게 할 수 있었다. 이런 상성을 찾아내면 쉬웠지만 사실 못 찾을 경우 보스 공략은 지옥이었다.


이밖에도 로봇이라면 최강의 메리트인 합체도 가능했는데 록맨의 친구(?)인 랏슈(개의 모양을 하고 있는 로봇이다)와 합체해 비행모드나 헤비모드로 변형해 비밀통로를 찾아 이동할 수 있었다. 

이 비밀통로를 잘 찾아내는 사람이 동네 아는 형 중엔 꼭 한명씩은 있었는데 나는 그 형이 플레이하는 모습을 유심히 지켜봤다 집에서 내가 직접 해보고는 했다.


록맨은 재미있는 게임이 확실했지만 어려운 게임인 것도 확실했다. 특히 횡스크롤 액션 게임인데도 불구하고 에너지에 굉장히 인색했다. 웬만하면 보스 만나기 전에 큰 에너지 하나 정도는 주는 것이 인지상정이거늘 이 게임은 그런 게 없었다. 에너지 없으면 그냥 보스를 만나서 죽는 게 속편했다. 그러면 보스 바로 앞에서 에너지가 가득 찬 체로 시작했기 때문이다.


사실 에너지가 가득 차있어도 문제였는데 록맨이 가장 무서워하는 것은 강력한 적도 아니고 거대한 적도 아니었는데 바로 ‘가시’였다. 

침모양의 가시던 성게모양의 가시든 닿기만 하면 한방에 죽었다. 에너지가 아무리 많이 차있어도 삐융삐융하며 터졌다. 이게 나는 참 죽을 맛이었는데 컨트롤이 정교하지 못했던 어린 시절이라 게임을 진행하는데 있어 가장 고비는 바로 가시였다. 


한번은 위와 아래 모두 가시로 되어 있는 곳을 지나가야 했는데 적당히 점프버튼을 눌러 넘어가야했다. 근데 이게 쉽지 않았다. 그래서 이곳에서만 수십 번을 죽었고 나중엔 게임팩을 던질 번하기도 했다.



또 패스워드도 문제였다. 당시 록맨은 게임 저장방식이 아닌 패스워드 입력방식이었다. 스테이지를 깼을 때나 죽었을 때 패스워드를 보여주는데 이것이 상당히 복잡했다. 나는 도대체 이것을 어떻게 적어 놔야 할지도 걱정이었다. 지금처럼 핸드폰이 있어 사진을 찍을 수도 없었다. 그래서 록맨을 할 땐 항상 공책과 연필을 준비해놓고 스테이지를 깼을 때 마다 공책에 적어놨었는데 이를 보고는 어머니께선 “공부를 그렇게 해봐라!”하며 핀잔을 주시고는 했다. 


게임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우리나라에서 너무 티내며 게임하는 게 볼썽사나운데 좀 더 쉽게 패스워드를 만들었다면 그나마 눈치는 덜 받았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8비트 게임 속에서 진주를 발견하듯이 록맨은 빛나는 역작이었고 재미와 몰입도가 높은 게임이었다. 그 후 슈퍼패미콤, 플레이스테이션 등등 고사양 게임기에서 록맨이 나올 때마다 나는 소프트웨어를 구입해 플레이하고는 했는데 단 한 번도 나를 실망시킨 적은 없었다.


written by 선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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