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90년대 만큼 TV에서 외화시리즈를 많이 방영한 시기도 없는 것 같습니다. 그 시절 아이들의 꿈은 아마도 외화 주인공이 되는 것이지 않았을까요? 그들은 힘, 신체능력, 두뇌, 창조력, 정의감, 인간애, 유쾌함, 침착함 등등에서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사람들이었으니까요.

 

  개인적으로 600만불의 사나이[각주:1]와 맥가이버[각주:2]가 기억에 남습니다. 600만불의 사나이가 힘과 신체능력을 대표한다면, 맥가이버는 두뇌와 창조력을 담당한다고 할 수 있어요. 가장 상반되는 캐릭터들이지요.

 

  저는 맥가이버가 꿈이었어요. 어린 마음에도 600만불의 사나이는 비현실적이라고 느꼈는지...아니면 우리 집에는 돈이 없어 '사나이'가 되는 비용인 600만불을 구할 수 없다고 생각했는지...잘 기억은 안나네요. 600만불의 사나이 흉내내며 계단 5칸(놀라워라!!) 위에서 뛰어내리곤 했지만요.

 

  맥가이버가 되는 것은 쉬우면서도 놀라워 보였어요. 일상생활에서 쓰던 물건들을 새롭게 사용하기만 하면 되었거든요. A와 B를 조합해서 새로운 쓰임을 만든다. 특별한 것을 평범한 것에서 찾는다. 근데 이게 쉬운 일은 아니거든요. 물건들의 형태와 성질을 정확하게 알아야 하고, 이것과 저것을 조합해서 다른 그것을 만드는 창조력도 있어야 하는 일이잖아요.

 

  맥가이버의 능력을 동경하기 시작한 이후로 어머니가 골치 꽤나 썩으셨죠. 이런저런 잡동사니들을 모아 댔으니까요. 철제 옷걸이를 구부려 망가뜨리기도 하고, 시한폭탄 만든다고 멀쩡한 시계를 분해하기도 했거든요. 맥가이버칼 사달라고 졸라대기도 했으니까(맥가이버칼만 있었어요...). 아마 이 시절을 살았던 '맥가이버 키드'들도 저와 같지 않았을까요?

 

  집에 도둑이 들 것에 대비해서 갖가지 도구들을 껴안고 잠들기도 하고, 방의 문이 열면 작동하는 부비트랩(!)을 장치하기도 했어요. 그렇게 생각해보면 '나홀로집에'의 케빈도 맥가이버 키드였네요. 그때는 능력을 발휘할 기회를 얻은 케빈이 얼마나 부럽던지 몰라요.

 

  그 시절 많던 맥가이버 키드들은 지금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요? 다들 자신의 자리에서 열심히 살고 있을 겁니다. 그리고 그 시절 익힌 재능을 발휘해 '생활형 맥가이버'가 되어 있을 것 같습니다.

 

  드라이버 없이 가위로 나사를 풀고, 족발 먹을 때 종이컵 1/3을 잘라 쌈장을 담고요. 망치 없이 못을 박고, 스마트폰 액정을 직접 교체할 수도 있고요. 그리고 해돋이 보러 가서 라면을 끓여먹을 때 참치캔 뚜껑으로 햄을 썰고, 참치캔으로 국물을 떠서 먹고 있을지도 몰라요. 주변의 놀라움을 즐기면서요...

 

  맥가이버는 세계평화를 위해 싸웠지만, 우리 '맥가이버 키드'들은 가족과 친지의 행복을 위해 살고 있지 않을까요?

 

  내년, 아니 올해 2013년에 맥가이버가 영화로 리메이크 된다고 합니다. 21세기의 맥가이버는 어떤 모습일까요? 한편으로는 걱정되기도 하네요. 최첨단 기계를 남용하는 요새의 첩보요원 속에서 너무 구식으로 보이는 것은 아닌지...그래도 '맥가이버 키드'로서 기대를 가져봅니다.

 


사진 출처 : http://stargatesg1971.livejournal.com/32534.html

 

* 맥가이버의 만화도 즐기세요. 재미납니다.

맥가이버 패러디 : http://lastplacecomics.com/comics/the-new-adventures-of-macgyver/

생활밀착형 맥가이버 : http://www.pajamaforest.com/2009/10/23/my-macgyver-moment/

 

* 맥가이버에 대한 철학이야기도 있어요. 흥미롭습니다.

맥가이버와 철학 : http://greenbee.co.kr/blog/334

 

 

written by 요리사


  1. 600만불의 사나이는 원래 우주비행사였어요. 임무를 마치고 복귀하던 중에 큰 부상을 당해 시력과 팔다리를 잃을 위기에 처하죠. 그때 특수기관의 도움으로 무쇠팔, 무쇠다리, 매의 눈을 가진 사나이로 다시 태어나게 되요. 사이보그 개조(?) 비용이 600만불이라나요? 그때부터 세계평화를 위협하는 무리들을 '띠.띠.띠.띠.띠.띠.'하는 효과음과 함께 물리치게 되지요. [본문으로]
  2. 맥가이버는 어렸을 때 사고로 부모님와 할머니를 잃고 할아버지 밑에서 비폭력주의 청년으로 자라나요. 그래서 말할 때마다 '우리 할아버지가 말했지.'라고 하는 '그랜파파보이'가 되었나봐요. 우연한 기회로 특수요원이 되어요. 뛰어난 두뇌와 임기응변, 전공인 물리학을 바탕으로 최첨단 무기를 가진 악당들을 고작 칼 하나로 물리치고 다니죠.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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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해적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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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선 요리] 연말 달력 이야기 1


  방금 전에 있었던 일이다. 집을 나와서 지하철을 타고 대여섯 정거장을 지났을까. 나는 자리에 앉아 보고 있던 책을 가방 속에 넣어 버리고 새삼스럽게,

"이젠 정말 연말이군!"

하였다.

  달력의 숫자가 12월 31일이어서가 아니라 지하철에 앉아 있는 사람들의 얼굴을 보았기 때문이다. 다른 포오즈로 앉아 있어도 표정만은 한결 같다. 설렘과 기대가 가득한 표정은 무엇보다도 더 나에게 2012년의 마지막 날이란 느낌을 풍겨주었다.

  반대편 문이 열리며 50대 후반의 아저씨가 탄다. 감색 정장을 곱게 차려입고 머리를 깔끔하게 빗어넘긴 모습이 눈에 뜨인다. 그리고 얼굴 가득한 함박웃음은 처음 보는 사람에게 편안해지는 기분을 돋워주는 것이다.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으신가?"

생각하면서 보니 돌돌 말린 종이뭉치 두 개를 손에 들고 있었다. 그것의 정체가 하도 궁금해 노골적으로 쳐다보고 있자니,

"이거 달력이요. 은행달력."

한다.

  보니 종이몽치를 감싼 노란 포장지에 은행이름이 프린트되어 있다.

"아, 그렇군요. 은행 다녀오시나봐요."

하니,

"그래. 은행 여러 곳을 들렀어."

한다.

"은행에서 무슨 좋은 일이 있었나봐요?"

물으니 아저씨는 얼른 대답하는 말이,

"이제 다시 시작이요."

하면서 이야기를 꺼냈다.

  35년 전 23살의 나이로 상경했다는 것, 처음에는 남의 공장에서 열심히 일해 돈을 모았다는 것, 4년 전에 그동안 모은 돈으로 창업을 했다는 것, 저금하던 은행 한 지점에서 돈을 빌렸다는 것, 장사가 더럽게 안 된 것, 1년도 안되어 은행 빚은 커녕 가게세도 내지 못하는 형편이 되었다는 것, 2년 만에 가게를 접고 이런저런 일을 하며 빚을 갚기 시작했다는 것, 오늘 부로 그 빚을 다 갚고 나오는 길이라는 것을 자랑스럽게 이야기했다.

  "그래서 웃고 계신 거였군요."

하니,

  "빚청산이 좋은 일이기는 하지. 근데 그것만이 아니라오. 그러니까"

하면서 다시 말을 시작하였다.

  나는 처음 보는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것을 좋아한다. 문득 낯선 이에게 하고 싶은 말은 대개 자신에게 소중한 일이다. 누군가의 소중한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기분이 좋았다. 그래서 식당이나 버스, 지하철에서 말을 거는 사람이 있을 때면 특별한 일이 아니면 말을 주고받았다.

  달력아저씨는 소중한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나는 이야기에 진실로 감격했다. 다행히도 이야기는 내가 내려야 할 역에 도착하기 전에 끝났다.

  "좋은 말씀 감사해요. 저는 다음에 내려야 되요."

하니, 달력아저씨는

  "늙은 사람 말 재밌게 들어줘서 내가 고맙지. 이거 가져가."

하면서 내손에 달력 한개를 꼭 쥐어준다. 나는 손사레를 치며 사양하다 못이기는 척 달력뭉치를 받았다. 승강장을 출발하는 열차를 돌아보니 달력아저씨는 여전히 기분 좋게 웃고 있었다.

  나는 집에 도착해서 아내와 함께 새 달력을 채워 나가는 아저씨는 상상하며,

  "이제 정말 새해구나."

하였다. 2013년 달력을 봐서가 아니라 달력아저씨의 사람 좋은 웃음을 보았기 때문이다.



※ 이태준 '달밤'의 일부분을 따라했습니다.

※ 다음 예고 - 연말 달력 이야기 2


written by 요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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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도 해는 뜬다] 우리 동네 해돋이 명소

 

  자. 2012년도 마지막 날이다. 인간이 인위적으로 만들어놓은 시간의 구분이 뭐 그리 중요할까? 싶기도 하지만, 항상 이때가 되면 어쩐지 경건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이쯤되면 2013년 첫 해돋이 생각을 하게된다. 붉게 떠오르는 해를 보며, 2012년을 돌아보고, 2013년의 각오를 다지고 싶어하는 것이 똑같은 사람의 마음이다.

 

  그렇다고 차를 몰고 세네시간을 달려 바다고 산이고 가는 것은 귀찮은 일이다. 그리고 또 갔다고 치자. 바다나 산에서 해돋이 보는 게 뭐 그리 쉬운 일인가? 해돋이 보는 건 삼대가 덕을 쌓아야 한다고 하는데, 그거 다 핑계다. 인정하자. 운이 없는거다. 당신 운 없는 걸 왜 조상님 탓을 하나?

 

  해돋이를 볼 수 있다고 치자.(조상님께 감사해라. 조상님 덕이다.) 장열히 떠오르는 태양을 보고 각오를 다지고 돌아서는 순간 마주한 광경은 당신을 분노케 한다. 그곳에는 커플이 있다. 깍지 낀 손을 모으고 서로를 바라보고 있다. 해돋이 보러 왔으면 해나 볼 일이지 뭐하는 짓이란 말인가? 남자가 말한다.

 

  "우리 애기 눈에서 해가 뜨네. 소원 빌어야겠다."

 

  상상만으로도 끔찍하다. 그러면 무슨 좋은 방법 없냐고? 그래서 내가 이 글을 쓰는거다. 그래서 당신도 '서울 해돋이', '우리 동네 해돋이'로 검색해서 여기 들어온 것 아닌가?

 

1. 우선 6시 41분에는 일어나야 한다. 7시 41분에 해가 뜨니 한시간 전에는 일어나야 한다. 해돋이 보는 데 중요한 건 시간이지 장소가 아니다.

 

2. 따뜻하게 입고 집밖으로 나간다. 이게 가장 어려운 일이다. 밖은 생각보다 춥고 어둡다. 반드시 극복해야 된다.

 

3. 겨우 나왔다. 이제 캔커피를 사자. 뜨는 해를 보며 마시는 따뜻한 캔커피는 상당하다. 편의점 알바생에게 '새해 복 많이 받아요.'라고 말하는 것도 잊지 말라.

 

4. 이제 해뜨기까지 30분 정도 남았다. 우리 동네의 모습을 상상해보자. 가장 높은 곳이 어딘가? 동네 뒷산이든, 아파트 옥상이든 상관없다. 출입이 가능하면서도, 동쪽에 가리는 것이 없어야 한다. 평소 자기 동네에 애정이 있다면 쉬운 일이다.

 

5. 생각해냈다면 망설이지 말고 가자. 시간이 빠듯하다. 도착했다고 해서 끝난 게 아니다. 나뭇가지가 시야를 가리기도 하고, 심하면 어제까지 없던 건물이 생겼을 수도 있다. 나만의 해돋이 포인트를 찾자. 방향을 모르겠다면 지도 어플을 활용하자. 지도 오른쪽이 동쪽이다.

 

 

  잠시 기다리면 해가 뜰 것이다. 2013년의 첫 해를 보며 소원을 빌며 각오를 다지자. "올해에는 꼭 ㅇㅇ할 것이다." 큰소리로 외쳐보자. 행운을 빈다. 이제 캔커피를 마셔봐라. 꿀맛이지 않은가? 당연하다. 오랜만에 일찍 일어나서 운동했으니 배가 고플만도 하다. 집에 가서 아침밥을 먹자. 2013년 첫 아침밥을 먹고 기운내서 일년을 사는거다.

 

  생각보다 실망스럽다고? 신년 아침에 부지런을 떨었고, 아무도 모르는 나만의 해돋이 포인트를 찾았다. 뭘 더 바라는가?

 

  '우리 동네 해돋이'라는 포스트(http://blog.naver.com/jyleen/60176739058)에 가보자. 왠만한 해돋이 명소 보다도 멋진 광경이지 않은가? 우리 동네에서 이것보다 더 멋진 해돋이를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잘 찾아보라.

 

written by 요리사 지망생

Posted by 해적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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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2012년 12월 끝자락이다. 솔로들에겐 지옥 같았던 크리스마스도 이미 지나가 마음에 평온을 얻었으리라 생각이 든다. 그래도 확실히 올 크리스마스는 솔로들에게도 가슴 설레는 날이었는데 바로 ‘솔로대첩’때문이었다. 솔로남녀가 여의도에 모여 짝을 찾는 SNS 이벤트인 솔로대첩은 크리스마스에 솔로로 보내지 않을 수 있다는 기대감에 시작 전부터 많은 관심을 받았다. 생각해보라.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 크리스마스에 혼자 보내게 될 내가 안타까워 미팅을 주선해 준다니 생각만으로도 감사하지 않은가? 


그러나 안타깝게도 솔로대첩은 실패로 돌아갔다. 왜? 남. 자. 만. 나왔기 때문이다. 인터넷에서 떠도는 말에 따르면 여자의 수가 비둘기보다 적었다니 뭐 할 말 다한 것 아닌가?

사실 솔로대첩이야기를 접했을 때 친구들과의 술자리에서 농담 삼아 “뭐 크리스마스에 할 거 없으면 솔로대첩이나 가지 뭐”라며 농담을 하기도 했다. 사실 조금은 ‘가볼까?’하는 생각도 들었다.(크리스마스를 혼자 보낼까봐서는 아니었다) 근데 이런 생각은 아주 잠시였다. 왜? 아무리 생각해봐도 솔로대첩은 실패할 수밖엔 없었기 때문이다. 남자와 여자는 태생적으로 다른 동물이기 때문이다.


우선 여자는 솔로대첩에 나올 이유가 없었다. 여자는 남자만큼 이성에 환장한 동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남자야 ‘지금 손을 잡으면 될까?’, ‘어떻게 하면 손을 잡을까?’, ‘어깨동무를 먼저해야하나?’, ‘키스는 언제하지?’ 시종일관, 처음부터 끝까지 스킨십, 스킨십, 스킨십이다.(정색하고 아니라 반박하면 할 말은 없다) 오랫동안 연애를 못한 남자는 주구장창 여자, 여자, 여자를 왜치고 다닌다. 왜? 태생이 그렇다. 남자는. 하지만 여자는 그렇지 않다. 남자보다 백배는 이성적이다. 그리고 감성적이다. 남자와 다르게 솔로라고 어디서 남자를 꼬시고 돌아다니지는 않는다는 얘기다. 그러니 아직 확실하게 검증되지 않은 SNS 이벤트에는 소극적이 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크리스마스에 여자는 남자와 다르게 여자들끼리도 잘 논다. 


남자는 남자끼리 못 논다는 것이 아니다. 남자들도 남자들끼리 잘 논다. 단지, 남자들의 노는 자리엔 항상 술이 낀다. 아니면 당구치고 술 마시고, PC방 갔다가 술을 마신다. 어쨌든 술이다. 어떻게 가든 술자리로 이어지는 자리에서 남자들은 여자이야기를 한다. 나이어린 놈이나 먹은 놈이나 여자이야기다. 특히 크리스마스에 솔로들끼리 모였을 땐 절정이다. 그리고 그 술자리의 결론은 ‘우울’이다. 


아름다운 크리스마스에 시커먼 사내놈들끼리 만나면 우울하다. 잘 놀지만 우울하다. 그래서 남자는 솔로대첩에 열광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여자들끼리의 크리스마스는 다르다. 소위 말하는 파티를 벌인다. 예쁘장한 펜션을 빌려 솔로 친구들과 함께 와인을 마시며 우아하게 보낸다든지 룸 형식의 술집에서 케익과 함께 즐겁게 보낸다. 

케익에 촛불을 붙이고는 연신 카메라로 사진을 찍고 SNS에 올려 “우리는 크리스마스에 이렇게 보냈어요”하고 인증을 한다. 자랑스러운 것이다. 남자는 남자들끼리 놀았다고 SNS에 올리면 대답은 십중팔구 “ㅋㅋㅋㅋ”다. 그러니 크리스마스를 우울하게 보낼 이유가 없는 여자에게 솔로대첩은 무의였던 것이다.


다음으로 남자는 충동적이고 여자는 계획적이다. 남자는 술을 먹다 갑자기 “스키장 갈까?”하면 “그래. 가자!” 이게 된다. 정확히는 대부분이 이런다. 많은 행동들이 충동적으로 움직인다.(물론 나도 그렇다) 하지만 여자들은 사전에 미리 만나 철저한 계획을 통해 행동을 이행하는 편이다. 남자처럼 “가자!”하면 “콜!”하는 시스템은 극히 드물다. 사전에 미리 만나 크리스마스에 어떻게 보낼지 계획을 짜다보면 커플이 될지 안 될지도 모르는 솔로대첩보다는 우리끼리 화려한 싱글을 자처하며 노는 게 더 효과적이란 계산이 떨어지기 마련이다. 그리고 미리미리 계획을 짜고 약속을 미리 정하니 솔로대첩에 참가할 시간은 따위는 없는 것이다. 


남자처럼 급하게 만나 “뭐하지? 할 거 없는데 솔로대첩이나 가자”이러지 않는 다는 것이다. 혹여 친구들과 약속이 없는 여자라도 남자들보다 가족적이라 가족들과도 함께 잘 보내기 마련이다. 남자와는 다르게 말이다.

구구절절 설명이 길지만 사실 내가 솔로대첩에 안간 가장 큰 이유는 솔로대첩에는 예쁜 여자는 안 올 것이라는 확신이었다. 예쁜 여자는 이런 날 바쁘기 마련이다. 생각해보라. 주변에 예쁜 여자가 있다.(없더라도 있다고 치자 이번만) 근데 연락해 봤더니 크리스마스이브에 아무런 약속이 없다. 그럼 어떻게 하겠는가? “아, 넌 약속이 없구나.ㅋㅋ 난 약속 있는데” 이러진 않을 거 아닌가? 약속을 깨서라도 예쁜 여자를 만날 것이다.(아니면 아니라고 해봐라) 


좀 더 과장해 이런 의미(?)있는 날을 잘 보내 연인으로 발전할지도 모르는데 그 여자를 그냥 가만히 내버려 두겠냔 말이다. 김태희가 크리스마스에 혼자 보내는 게 상상이 가는가? 그것도 약속이 없어서?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는가? 예쁜 여자는 주변에서 가만 두질 않는다. 혼자일 시간이 없다. 때문에 바쁘다. 고로 한가로이 솔로대첩에 나갈 수 없을 것이다.


남자와 여자는 태생적으로 많이 다르다. 개인적으로 우리나라는 더욱 그런 거 같다. 유교적 사상 때문인지 사회적 풍토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히 다르다. 그러나 남자나 여자나 결국은 인간이다. 좋아하는 이성에게 마음이 끌리는 감성적 동물이란 말이다. 큰 기대의 솔로대첩은 실패로 돌아갔지만 진실은 어디가나 통하는 법. 대한민국 많은 솔로들을 탈출시키기 위한 그 노력만큼은 큰 박수를 보낸다.


written by 저격수


Posted by 해적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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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2.28 20:32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에 ‘말미’라는 작은 시골마을에서 한 소녀가 태어났어요. 요즘과 다르게 집안에 여자아이가 태어난다는 것은 집안의 일 거드는 손 하나 생긴 것이지 경사는 아니었답니다. 지금처럼 학교가 제대로 있던 것도 아니었고 그냥 하루하루 먹고 살기 힘든 나날이었거든요. 그래도 소녀는 큰 병치레 없이 건강히 자랐답니다.


시간이 지나 소녀가 17살이 되었을 때 이웃 마을인 ‘계하’의 한 청년에게 시집을 가게 되었어요. 화려한 예식장은 아니었지만 마을에 조촐한 잔치가 열렸고 많은 마을 사람들이 찾아 두 사람의 화촉을 축하해주었답니다.

조금 시간이 흘러 부부는 머지않아 아이를 갖게 되었어요. 하지만 안타깝게도 뱃속의 아이는 세상의 빛을 보지 못했어요. 아이를 잃은 이유는 잘 알지 못했지만 부부는 슬퍼했어요. 그런데 이 불행이 여기서 끝이 아니었어요. 다음에 생긴 아이도 세상의 빛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에요. 소녀와 청년은 그 누구보다 슬펐답니다. 그래도 둘은 슬퍼도 눈물을 꾹 참았어요.


슬픔을 가슴에 안은 체 1년이 지나자 그 불행은 축복으로 바뀌었어요. 첫아이가 태어난 거예요. 소녀를 빼닮은 여자아이였어요. 축복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어요. 둘째 아이, 셋째아이도 태어나 나중엔 8명의 아이들이 태어났어요. 하늘이 가엽게 여겼는지 아이들은 하나같이 큰 병치레 하나 없이 나날이 커갔답니다. 어려운 일도 많았고 힘든 일도 많았지만 아이들은 누구보다 건강했답니다.


60년 후 12월…

계하마을에는 큰 잔치가 열렸어요. 마을의 가장 연세가 많으신 할머니의 생일잔치가 열렸거든요. 생일잔치에는 할머니의 8명의 자녀들과 많은 손자, 손녀들이 찾아왔어요. 추운 겨울이었지만 할머니의 생일을 축하기위해서 멀리서 다들 찾아 온 것이었어요.


할머니의 자녀들도 나이가 많아 머리에 흰머리가 보이기도 했지만 누구하나 병치레 없이 이곳에 모일 수 있는 것에 할머니는 감사했어요. 그리고 자녀들은 이곳에 계신 할머니가 오래오래 사시는 것에 대해 매우 감사했답니다. 


아직도 계하마을에는 100년 전 말미에서 시집을 온 한 소녀가 살고 있어요. 그리고 많은 자녀들과 손자들을 바라보며 행복하게 살고 있답니다. 아주 오래오래 행복하게 말이죠.



할머니 생신 축하드립니다.

지금보다 더 오래오래 건강히 사세요.


written by 선의


Posted by 해적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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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오매(湖南五梅)라 일컫는 고불매(古佛梅)。

 

그녀를 보러갔건만

이미 그녀는 가고 없단다.

 

시들은 꽃잎만이라도 보여 달라고 했건만

지조 있는 그녀는 애써 감추며 허락하지 않는단다.


언젠가 뭇 사내와 조우하자 

한송이 매화꽃으로 피었다고 했던가.

 

하여 홍조(紅潮)를 띤 그녀가 나를 맞이하는 꿈을 꿨건만,

그 자취조차 찾을 길이 없단다.


범인(凡人)에게 매화는 욕심일 뿐이란다.

그렇게 끝내 모습을 보이지 않았던 그 사람。


Written by 동전오배건


Posted by 해적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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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에도 해는 뜬다'

 

  너무도 당연한 이 말이 머리속에 등장했을 때, 자전거를 타고 한강다리를 건너던 중이었다. 해뜨기 직전의 어스푸레하던 하늘을 기억한다. 동쪽 하늘에 붉은 기운이 비치기 시작했다.

 

  바로 전까지 새벽 한강변을 자전거로 달렸다. 새벽 자전거는 처음이다. 밤까지 내리던 비는 어느새 물러가 있었다. 얼굴을 스치는 공기가 상쾌했다. 며칠째 기승을 부리던 더위가 한풀 꺾이기 시작했다.

 

  자전거를 타는 순간은 한번도 같았던 적이 없다. 시간과 계절의 변화를 잘 알 수 있는 곳이 자전거 위이다. 하늘, 공기, 바람, 풍경, 사람, 강물은 때때로 변했다. 그걸 보는 재미가 있다.

 

  페달을 밟는 마음도 수시로 바뀐다. 밖의 풍경에 관심을 가지다가도 어느 순간 안의 풍경을 보고 있었다. 그날도 그랬다. 갑자기 찾아온 생각에 온통 정신이 팔렸다. 화를 내다가도, 후회하고, 원망하다가도, 체념했다.

 

  마음 속을 달리다 지쳐 집에 돌아가던 중이었다. 눈을 돌려 밝아진 밖을 바라봤다. 바로 그때 문장은 조합되었다.

 

  지금 해가 뜨는 것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잘 보일만한 곳을 찾았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페달을 부지런히 밟았다. 해는 볼 수 없었다. 방향은 맞았지만 큰 건물이 시야를 방해했다. 시간이 꽤 흐르고 나서 자리를 떴다.

 

  해를 보지 못해도 날은 밝는다. 주위에 오가는 사람이 많아졌다. 회사나 학교에 가려고 일찍부터 일어난 사람들이리라. 참을 수 없는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서둘러 자전거를 몰아 집으로 돌아왔다.

 

  그 아침 이후로 '서울에도 해는 뜬다'라는 말이 수시로 떠올랐다(늦잠만 자는 주제에). 그리고 최근 들어서 뜨는 해를 보기 위해 나름의 노력을 하고 있다.

 

  - 서울에서 뜨는 해를 보기 시작한 계기를 쓰려다가 이상한 글이 되어버렸다...

 

written by 요리사


Posted by 해적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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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벨 스페셜리스트로서의 백건우. 그의 면모가 가장 잘 드러나는 곡 중의 하나가 바로 '왼손을 위한 피아노협주곡 D장조'


말 그대로 왼손만으로 연주하는 곡이다. 한편으로 갸우뚱했다. ‘한 손으로만 다채로운 음색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감상을 마친 후, 그것은 기우에 불과했다는 것을 알았다. 엄지손가락이 건반을 주도해 나아가면서 카리스마 넘치는 명쾌한 건반 하나하나가 가슴에 거대한 울림을 자아낸다. 라벨은 대단한 고집쟁이였다. 그 고집만큼 자신에 대한 실력과 자부심도 꼿꼿했다.  


청년 백건우는 프랑스와 라벨을 사랑했다. 그의 왼손에서 뿌려지는 타건의 신비로움이란 마치 땅거미가 지는 석양의 마지막 어스름을 불러일으킨다. 뉘엿뉘엿 해가 지면 이내 청량한 바람과 고슬고슬 풀벌레 소리가 그 빈 자리를 고독하게 채워준다. 찬찬히 밀려오는 피아노 음률에 검푸른 호수가 일렁이고, 오케스트라의 향연에 보라빛 하늘이 별꽃으로 물든다. 


백건우 연주의 백미는 역시 견실한 타건과 단단한 음향이다. 기교보다는 과감한 구도설정과 포치에 무게를 둔다. 커다랗고 새까만 거미 한 마리가 건반 위를 둥당둥당 기어가는 것 같다. 리듬미컬하지만 결코 인위적이지 않다. 


라벨의 화려하고 색채 띤 음의 구현을 수용하되, 결코 극단의 낭만에 치닫지 않는다. 그리고 모든 음률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버릴 것은 과감하게 쳐내고 살릴 부분만 확실히 살린다. '라벨은 라벨이고 나는 나니까 듣고 싶으면 들어라'하고 배짱부리는 것 같다. 과연 배짱부릴만한 피아니스트다.


Written by 사샤




[추천] 백건우를 원한다면?
▶ 백건우 / Gary Bertini - 라벨: 피아노 협주곡 (Ravel: Piano Concertos), ORFEO, 1991. 

[추천] 라벨을 원한다면?
▶ This Is RAVEL, SONY, 2002. 
  (CD1: <죽은 황녀를 위한 파반느>, <어미 거위> 모음곡, <밤의 가스파르>, <우아하고 감상적인 활츠>)
  (CD2: <소나티네>, <피아노 협주곡 G장조>, <스페인 광시곡>, <쿠프랭의 무덤>)
  (CD3: <볼레로>, <물의 희롱>, <어릿광대의 아침 노래>, <라 발스>, <현악사중주 F장조>)

Posted by 해적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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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2.26 15:38



한때 공사현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다. 소위 노가다라는 것을 한 것인데 새벽 5시 30분에 출발해 오후 5시에 작업이 마무리 되고는 했다.

어느 날 오후 5시가 되어 집에 가기 위해 마무리 작업을 하던 중이었다. 멀리서 같이 일하는 형님이 날 보며 갑자기 “아이템풀 좀 줘”이러는 거다. 순간 ‘이양반이 날도 안 더운데 더위를 먹었나? 한참 일하는 사람한테 왜 아이템풀을 달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근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질 않았다. 공사현장에서 아이템풀이라니? 그런 이름의 공구가 따로 있었나 싶었다. 결국 내가 “뭐요?”라고 되묻자 그 형님은 다시 한 번 “아이템풀 달라고!!”하는 것이다.


아이템풀이 무엇이던가? 90년대 초등학교도 아닌 국민학교 시절 구슬치기, 팽이치기, 땅따먹기 하며 놀던 때 적당히 있는 집 자식들이 풀던 가정용 학습지 아니던가.

나는 해본 적 없지만 주변 친구들은 일주일에 한 두 번씩 찾아오는 아이템풀 선생님 때문에 항상 스트레스였다. 잘 놀다가 갑자기 엄마의 “아이템풀 선생님 오셨다”라는 한마디에 함께 놀던 친구들을 뒤로한 체 집으로 향해야 했으니 말이다. 뭐 지금의 ‘빨간펜 선생님 오셨다’ 이런 거였다.


부족하진 않지만 넉넉지 않은 집 아들이었던 나는 나름 부러움의 한 대상이었다. 그래서 친구의 학습지를 대신 풀어 준적도 더러 있다. 여기서 조금 설명을 더하면 요즘 아이들 학습지야 그림도 있고 컬러풀하지만 당시 아이템풀은 정말 주구장창 수학문제가 있었다. 첫 페이지부터 끝까지 문제만 말이다. 지금 하라고 해도 난 못할 것을 내 친구들은 그나마 잘 참고 했던 거 같다.


문득 케이블 방송에서 방영하는 ‘응답하라 1997’을 보니 ‘이젠 내 어린 시절이 복고가 됐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아이템풀을 추억이라 말할 수 있는 시기도 됐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예전 80년대에도 사람이 태어났냐고 나를 약 올리던 형들처럼 말이다.

아, 참고로 그 형님이 찾던 건 ‘아이템풀’이 아닌 ‘라인 테이프’였다.


written by 선의


Posted by 해적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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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맞이- 색연필 깎기, 그리고 꿈]


새해맞이 카운트 다운에 들어갔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새해가 오고 있다고 느낀 것은 이번이 생전 처음이다. 그 동안의 연말에는 "크리스마스에 뭘하지?"만 고민했지, "새해는 어떻게 준비하지?"가 늘 빠져 있었다. 그만큼 나에겐 '새해'라는 것이 무의미했고, '새해맞이'라는 것이 무색했다. 


어렸을 적에는 그저 명절되면 일가친척한테 새배하고 새뱃돈 두둑히 받으면 그게 새해인가보다 했다. 조금 더 커서는 1월 1일이 되면 일찌감치 일어나 반쯤 뜬 눈으로 안방으로 엉금엉금 기어가서는 전화기를 귀에 걸고 집안어른들에게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하고 안부인사 1~2분 묻고 끊는 것이 예사였다. 새뱃돈 받기는 뭐한 나이고, 나이값 한답시고 의례적으로 하는 새해를 위한 일종의 '기계적 행동'이었다. 


그러나 그것들은 엄밀히 말해 '새해맞이'가 아니었다고 믿는다. 내가 시켜서 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저 때가 되면 세상 사람 누구나 다 하는, 그런 뻔한 스토리의 한 단락을 장식하는 그 정도의 느낌이랄까. 그만큼 나에게 있어 '새해'란 늘 계속되는 일상에서 잠시 쉬어가는 휴일 정도에 그치는 그저그런 날의 하나에 불과했다. 


대학교를 졸업하기 무섭게 일터에 뛰어들고, 그 일터에 병행하여 또 공부를 하겠다고 아둥바둥댔던 지난날의 시절, '새해'가 들어갈 틈은 어디에도 없었다. 아니, 오히려 나는 새해를 비웃었다. 


"새해? 새해가 오면 뭐가 달라져? 그냥 사는거지."

"새해가 밥먹여 주냐? 호들갑들은 쯧쯧."

"해피뉴어는 무슨...해피하냐? 에라이 새드무비다."


내가 새해를 무시하니, 새해도 나를 무시하는 게 느껴졌다. 늘 새해없는 새해를 맞이하니 그날이 그날이고, 이날이 이날같았다. 쳇바퀴 인생의 터닝 포인트라는 내 스스로의 권리를 포기한 셈이다. 


2012년을 정리해보면, 꽤 격동의 시기였다고 생각한다. 나는 쳇바퀴 인생에서 탈출하고자 내 밥그릇 울타리의 밖을 넘어섰다. 넘어서 걸어가보니 꽤 새로운 것들이 많았다. 접해보지 못했던 세계에서 나는 많은 것을 얻었다. 그리고 그만큼 기존에 쥐고 있던 많은 것을 잃었다. 잃은 것도 있지만, 스스로 버린 것도 많았다. 모든 것을 다 짊어지고 갈 수는 없는 법. 뭐든지 기회비용이라는 건 존재하는 거니까. 


그리고 그렇게 2012년의 겨울이 내 앞에 닥쳤다. 나는 잠시 멈추어섰다. 그리고 그루터기에 앉아 심호흡을 했다. 


"내가 행복한 삶이란 과연 무엇일까?". 


서른 즈음에서, 나는 스스로가 일어서면 해낼 수 있는 것들이 정말 많다는 걸 알았다. 그리고 혜민스님 말씀대로 멈추어 보니 비로소 새해가 오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새해에는 올해보다 조금 더 보지 못했던 것들, 겪지 못했던 것들에 대해 겪고 성장하는, 그리고 작지만 내실있는 열매를 맺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2013년'이 아닌 '나만의 새로운 2013년'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나만의 색다른 새해 준비작업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새해맞이 첫 작업으로 나는 색연필을 깎았다. 두 다스를 깎으니 한 시간이 조금 넘게 걸렸다. 노랑, 빨강, 파랑, 보라, 연두, 초록, 황갈, 주황, 검정 등등 여러가지 색깔이 많았다. 여기서 색연필을 예쁘게 다듬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 색연필이 필요할 때 언제라도 쓸 수 있도록 길고 뭉뚝하게 깎는 것이 중요하다. 다 깎고 나면 이면지에 각각의 색연필을 돌려가면서 뭉뚱그리는 작업이 꼭 필요하다. 이렇게 해야 그림을 그릴 때 날카로운 선이 나오지 않는다. 색연필 그림에서 삐져나오거나 두리뭉실한 건 아무래도 상관없다. 그러나 날카로운 선은 그림에 해가 되기 때문에 가급적 그런 선이 나오지 않도록 사전에 예방을 해두는 것이 중요하다. 


새해맞이라고 해서 기대했더니 기껏 색연필이냐라고 웃음치는 사람들 있을 것이다. 변명아닌 변명을 하자면, 단순히 평소에 하지 않은 비일상적 행동으로 막연히 내년의 희망을 걸겠다는 것은 아니다. 나는 신을 믿지 않는다. 그러나 세상사람 모두에게 각각 주어진 어떤 특별한 재능, 그리고 사명감 정도는 있다고 믿는다. 이것을 생각할 때 소름이 돋고, 심장이 쿵쾅대고, 하지 않으면 평생 후회할 것 같은 그런, 불길같이 솟아오르고 있는 그 무언가가 있기 때문에, 그래서 색연필을 깎는 것이다. 내 마음이 나에게 간곡히 부탁하고 있지 않은가. 너는 전방위 아티스트가 될 운명이라고. 





전방위 아티스트에게 필요한 것 중 하나는 조용한 아지트다. 시칠리아 섬에 나는 조그마한 정원이 딸린 2층 집을 지을 것이다. 시칠리아 섬은 가보지도 않았고, 제대로 알지도 못한다. 그러나 그곳에 지으라고 내 마음이 나에게 말한다. 40대의 나는 그곳에서 휴가를 보내며 사랑하는 아내와 예술활동을 하고 있을 것이다. 아니, 하고 있다. 


새해맞이 기념으로 나에게 아담한 집을 선물한다. 

 

Written by 사샤

Painted by 사샤

 

Posted by 해적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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