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12.16 20:34



“겨울이면 무엇이 생각나세요?” 이렇게 누군가 나에게 묻는다면 Wham의 ‘Last christmas’가 가장 먼저 생각난다고 대답할 것이다. 내 나이만큼이나 오래된 노래지만 내가 처음 들었을 땐 나의 첫 스무 살의 겨울이었다. 

내가 가장 빛나던 시절이었고 성인으로서 발돋움의 설렘과 겨울의 푸근함이 만나 한껏 들떠있던 때였다. 오는 눈만 봐도 두근거림에 밖을 뛰다닐 정도로 풋풋함이 남아있던 시절이었다. Last christmas를 처음 들었을 당시에도 그 풋풋함과 두근거림 그리고 설렘이 함께했다. 


눈 오던 스무 살 겨울. 내가 좋아하는 누나와 함께 탄 버스에서 난 누나의 이어폰을 통해 Last christmas를 들었다. 누나가 듣고 있던 이어폰 한쪽을 뺏어 내 귀에 꽂자 처음이지만 참으로 따듯한 멜로디가 나오고 있었다. 잘 알아듣지도 못하는 영어지만 그래도 똑똑히 잘 들리는 단어는 ‘Last christmas’라는 단어. 고개를 돌려고 나는 누나에게 물었다. “아직 크리스마스도 아닌데 왜 캐럴을 듣고 있어?” 누나는 어린아이 달래듯 “이 노래는 캐럴이 아니고 팝송이란다.” 팝은커녕 국내 가요도 잘 안 듣던 나로선 크리스마스가 들어가니 당연히 캐럴인줄 알았던 것 같다. 


그 해 겨울. 그 사람과 난 연인이 됐고 함께 오고가는 버스 안에서 Last christmas를 함께 듣고는 했다. 지금 생각해도 스무 살 밖에 안 된 나로서는 가장 따뜻한 겨울을 보내고 있었던 것 같다. 첫 성인으로 맞는 겨울, 첫 여자 친구 그리고 첫눈. 하는 대부분이 처음이어서 인지 모든 것이 새롭고 신기하고 설랬다. 그리고 행복했다.

그 해 겨울이 끝날 때쯤 나는 그 사람과 이별을 했다. 수원 어딘가에 있는 커피숍에서 이별을 통보 받았다. “우리 그냥 누나 동생사이로 지냈으면 좋겠어.” 아이러니하게도 이별통보를 받은 그 커피숍에서도 Last christmas가 따뜻하게 흘러나오고 있었다. 


음악이 한 바퀴 돌아 다시 그 노래 나올 때쯤 우리는 자리에서 일어났고 나와 그 사람은 이별을 했다. 첫 이별인 만큼 많이도 아팠다. 죽을 만큼. 이별 후 나는 Last christmas를 듣지 않았다. 

다음 해 더운 여름날 나는 입대를 했다. 이별에 대한 홧김은 아니었지만 예정보다 빠른 입대였다. 입대 후 선임 절반 정도를 전역시켰을 때 쯤 Last christmas를 다시 들을 수 있었다. 겨울은 아니었지만 그 노래를 듣고 있자니 그리움에 잠시 먹먹했다. 그 사람에 대한 그리움인지 통칭 싸제의 겨울에 대한 그리움인지는 잘 몰랐지만 아무튼 노래엔 그리움이 가득했다.


상당히 선임이 된 후에도 나는 줄곧 Last christmas를 듣고는 했다. 잘 때도, 내무실에서 쉴 때도. 그러자 어느 날 한 후임이 내게 물었다. “겨울도 아닌데 왜 이렇게 캐럴을 들으십니까?” 나는 어린아이 달래듯 말했다. “이 노래는 캐럴이 아니고 팝송이란다.” 


예비역이 끝난 지금에도 내 이어폰에는 여지없이 Last christmas가 흘러나오고 있다. 그 사람 이어폰에서 따사로이 흘러나왔던 멜로디처럼 올 해 겨울도 여전히 흘러나오고 있다. 그 해 겨울처럼.


written by 선의


Posted by 해적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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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좀읽자] 1. 서른살엔 미처 몰랐던 것들/ 김선경 지음


요즘 우리 세대를 격려하는 수많은 글들을 접하고 있다. 대부분의 글이 '실패해도 괜찮다', '용기를 잃지 마라',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가라', '불굴의 의지로 나아가라, '자신만의 강점을 최대한 살려라' 등등 자신들이 헤쳐나간 역경의 스토리를 열심히 펼치는 데 열을 올린다. 책의 주인공은 이미 그 역경을 이겨내고 사회적으로 크게 성공한 이들이다. 결국 실패의 늪에서 최후까지 살아남아 성공한 몇몇의 사람들이 말해주는 실패의 아픔과 극복의 스토리인 셈이다.


모두들 이렇게 해야 성공한다. 저렇게 해야 성공한다, 나만의 비법을 알려주마 등등 모두들 '성공해라 그리고 성과를 내라' 외치며 우리를 끊임없이 독려한다. 완곡하게 얘기해주는 글도 있고, 승질내며 얘기해주는 글도 있다. 내 입장에서 보기엔 그 얘기가 다 그 얘기로 보이는데, 결론은 어쨌든 '성공해라'다.


그러나 우리가 여기서 분명히 알아두어야 할 사실은 '그 성공자의 지침과 메뉴얼'대로 해서 성공한 사람은 어림잡아 10만분의 1도 채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우리가 의지가 부족해서도 아니고, 우리의 전략이 잘못되어서도 아니다. 또한, 게을러서도 아니고 멍청해서도 아니다. 단지, 우리는 '우리'일 뿐이기 때문이다. 각자가 타고난 기질과 성향은 천차만별로 다를 수 밖에 없다. 마치 숲속에 핀 수백수천만의 풀들이 제각기 다른 위치에서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는 이치와 같다. 지금의 세태를 비유하자면, 라일락으로 예쁘게 피어난 사람이 고목나무 밑에서 할미꽃으로 핀 사람에게 더욱더 예쁜 라일락으로 성장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과 다르지 않다. 라일락은 라일락이고, 할미꽃은 할미꽃일 뿐인데도 말이다.


그렇다면 꼭 라일락으로 피어야만 성공한 삶인 것일까? 조그맣고 소박한 할미꽃으로 살아가는 것은 젊음으로서의 가치를 포기했거나 상실한 것일까? 왜 모두가 성공자의 실패 극복 이야기만 듣는 것일까? 실패자의 실패 이야기는 가치가 없는 것일까? 이는 우리 사회가 겉으로는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다'라고 이야기하고 있긴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성공하지 못한 실패자의 실패담은 가치가 별로 없는 것으로 치부하고 있음을 은연중으로 드러낸 것이라 본다. '실패자는 어디까지나 실패자일뿐이다'라는 패배자 낙인의식이 자리잡혀 있는 것이다. 박주영이 동메달 전에서 그 골을 넣지 못했다면 지금쯤 네티즌 수사대에 의해 SNS 단두대에 올라갔을 것이 틀림없다.


여기에 딴지를 걸고 나온 책 한권이 있다. '서른 살엔 미처 몰랐던 것들'. 군대에서 수도 없이 봤던 [좋은생각]을 출간했던 김선경씨의 회고담이다. 자칭 실패자로서 자신이 겪은 실패담을 너무나도 담담하게 서술하고 있다. 작가는 '도대체 성공의 잣대가 무엇이고 살패의 잣대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에서부터 글을 풀어 나아간다. 저자의 관점은 '생긴대로 사는 것', '수백 번씩 바꾸려 노력해도 바뀌지 않는 나를 용서해주는 것', '있는 그대로의 모습에서 남이 아닌 나의 삶의 바운더리를 만들어 나아가는 것'에 머물러 있다. 이 머물러 있음이 독자로 하여금 너무나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


사실 살면서 가장 두려운 점은 '지금의 내 방식이 과연 옳은 것일까? 맞게 가고 있는 것일까?'라는 자신만의 뿌리깊은 의구심이다. 늘 우리는 우리가 선택한 길에 개운치 못한 뒷맛을 느끼며 어정쩡하게 앞으로 한 걸음 한 걸음 내딛고 있다. 이에 저자는 그 발걸음의 결과가 사회적 인식에서 본 실패가 되었던 성공이 되었든 그것은 아무런 의미도 없음을 이야기한다. 내가 행복하다면, 내가 가는 길이 정말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원하는 것이라면 또는 그것이 정말 원하는 것인지 확신이 가지 않더라도 지금 나아가고 있는 내 모습 자체를 꾸짖지 말자고 한다. 더 나아가 걷다가 그만둬도 좋고, 돌아가도 좋고, 쉬었다가 나중에 하고 싶으면 또 해도 된다라고 한다.


이것이야말로 아주 리얼함을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성공해라'가 아니라 '니 마음대로 살아라'라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흔히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그 흔해빠진 '성공', 수백만달러를 움켜쥔 나의 모습을 상상하는 불꽃과도 같은 그 '성공'은 어쩌면 매일같이 로또를 손에 쥐고 토요일을 기다리는 허무함 같다는 생각이 든다. 결국 '진짜 성공'이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남이 그어준 잣대로서가 아닌 내 스스로가 계획한 설계도에 의한 '작은 성공'인 셈이다. 저자는 즐겁게 그리고 열심히 해서 얻은 실패의 결과라면 그 역시 나름의 성공이 아니겠느냐라고 위트있게 휘파람을 불어준다.


어려우면 어려운대로 문제를 풀어나가면 된다. 아니, 풀지 않아도 좋다. 단지 내 선택에 대한 책임은 내가 지는 것 뿐이다. 어떤 길을 선택하던 기회비용에 의한 후회는 남기 마련이다. 후회보다는 선택의 스위치를 누르고 문을 열고 앞으로 나아간 나 자신을 북돋아주자. 그리고 위로해주자. 이리저리 치이고 까이다가 차곡차곡 쌓인 아픈 실패와 보류의 축적물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어느덧 계획했던 그 '작은 성공'의 문 앞에 나를 데려다줄지 누가 알겠는가. '성공했다'는 나의 판단에서 성립되는 것이지 남의 판단에서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그저 나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것 뿐이다. 막히면 돌아가고, 험하면 쉬어간다. 다만 나는 그 길의 끝에 무엇이 있는지 꼭 보고 싶은 인간 중 하나일 뿐이다.


Written by 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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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에 왜왔니] 2. 임송희 선생님 댁의 보물구경


“아! 선생님!”

“아이구, 오래간만이네. 여기서 또 만나구.”


올 늦가을 즈음이다. 성북동 최순우 옛집에서 우연치 않게 선생님을 만났다. 동네 산책 나오셨다가 마침 이 곳에 들르신 모양이시다. 내가 석사과정 시절, ‘기본이 튼튼해야 쓸데없는 기교에 빠지지 않는 것’이라며 좋은 말씀을 주셨던 그 분이시다. 툇마루에 앉아 수국차 한잔 기울이시는 모습이 흡사 한 마리 고고한 학이 속세에 잠시 내려와 쉬어가는 한 폭의 그림이다. 오늘도 역시 환한 미소로 맞아주신다. 그 동안에 있었던 이런저런 얘기를 한창 나누던 중 번뜩 생각이 나셨는지 다짜고짜 물으신다. 


“자네, 우리 집 구경 한번 안 갈 텐가?”


거절할 리가 만무하다. 집 구경이라면 환장하는 나인데 하물며 동양화의 대가의 집은 더더욱 구미가 당기는 법. 


“예, 가겠습니다. 언젠가 한 번 꼭 구경하고 싶었어요 선생님.”


옛집을 빠져나와 택시를 타고 성북동 깊숙한 골목으로 올라간다. 보이는 집들이 죄다 으리으리하다. 담장이 무지무지 높다. 옛 봉건영주의 성들이 모여 또 다른 세상을 이룬 것 같다. 그렇게 15분쯤을 들어갔을까. 대리석 계단이 펼쳐진 집 앞에 다다랐다. 


“자네, 우리 집 처음이지?”

“예, 선생님.”

“그럼 우리 집 보물 구경 좀 시켜줄게.”





선생님 댁에는 갖가지 진귀한 돌들이 이곳저곳에 놓여 있었다. 들어가는 정문에서부터 시작되는 하마석(옛날 말을 탈 때 딛는 돌)에서부터 수석, 동자석, 돌확, 괴석, 석등, 돌상과 돌의자 등 옛 돌이란 돌은 모두 한 자리에 모여 있었다.  


“처음에는 하나둘 모으기 시작한 게 나중엔 이게 아주 재미가 있더라구. 뭐가 재미있느냐하면 돌은 방치의 멋이거든. 그냥 내버려둬도 보기 좋고, 물을 뿌리면 또 뿌린 대로의 멋이 있고. 오래 두고 보기에는 질리지가 않고 아주 좋다구.”






돌 하나하나를 설명하시면서 곱게 쓰다듬는 그 손길에 선생님의 돌 사랑이 느껴진다. 곧이어 선생님이 당신의 작업실로 나를 인도한다. 문을 열자마자 물씬 풍기는 먹의 향. 어렸을 적 서예학원의 문을 열고 들어가면 온 방에서 은은하게 퍼지던 정겨운 향이다. 언제든 작업에 임할 수 있도록 갖추어진 붓과 물감, 문진과 문진 사이에 말끔히 펼쳐진 화선지. 간박한 가구들과 이곳저곳에 붙어 있는 선생님의 작품들. 오랜 세월을 간직한 물건들이 엉키고 섞여 한 화가의 예술세계를 깊고 맑게 보여주고 있었다. 선생님이 커튼을 여니 하얀 빛이 우르르 쏟아진다. 






“자네 커피 마시지?”

“아, 제가 타겠습니다.”

“아냐 아냐, 손님이 커피를 타는 법이 어디 있나. 내가 또 보여줄게 있어서 그래. 이게 내 진짜보물이라구.”


선생님이 꺼내 보여주신 건 작은 일회용 플라스틱 커피 스푼. 이게 진짜보물이라구?





“이게 뭔가 특별한 게 있나요?”

“아, 특별하지 그럼. 내가 예전에 아마...30년 쯤 됐을 거야. 우리 안사람이랑 같이 구라파 여행을 갔었다구.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우리나라에 일회용 커피스푼이란 게 없었을 때란 말이지. 호텔방을 들어갔더니 이게 있더란 말야. 우리 안사람이 이걸 보고 어찌나 신기해하고 좋아하던지 그게 그렇게 마음에 남더라구. 내가 그 때 가져온거야. 하하하, 요즘 사람들이야 이런 거 지천에 널려서 신경도 안 쓰지? 그치?”

“.........그래서 이걸 지금 30년 동안 쓰신 거에요?”





“하하하, 내가 별 얘기를 다 하는구만. 나는 커피 타 마실 때마다 이걸로만 마셔. 돌이나 커피스푼이나 다 마찬가지라구. 내가 아끼는 마음으로 오랫동안 간직하면 맛의 차원이 달라지는거야. 우리 안사람이 좋아하니까 나도 좋고 커피스푼도 좋아지는거구. 하하하, 별 얘기를 다 하는구만 내가.”


나는 한 동안 커피스푼만 바라보고 있었다. 할 말을 잃었다. 

 

Written by 선장

Photo by 선장

 


임송희 선생님은 호는 이석(以石), 심정(心井)으로, 충북 증평 출생이다. 서울대 미술대학 동양화과를 졸업하고, 산수화로 이름을 떨쳤다. 심전 안중식, 심산 노수현, 심경 박세원에 이어 심정이라는 호를 박세원 선생에게 받았다. 제 1회 겸재미술상을 수상하였고, 대한민국 미술대전 운영회원 및 심사위원, 동아미술대전 심사위원. 한국미술협회 고문 지냈다. 덕성여자대학교 예술대학 동양화과 교수 및 학장을 역임하였고, 현재 명예교수로 활동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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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해적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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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로 걸려오는 전화의 양이 줄었다고 한다. 이유인 즉, 스마트폰이 대중화되면서 114의 역할을 스마트폰이 대신하고 있기 때문이란다. 114로 전화하여 전화번호를 물어보기보다는 직접 스마트폰의 애플리케이션이나 인터넷 검색을 이용하여 알아보기 때문이다.


그 전 시절엔 집에 하나씩은 가지고 있던 전화번호부를 이용해 전화번호를 찾고는 했다. 물론 이 전화번호부도 시간이 지나면서 114 때문에 차츰 없어지기 시작한 것 중 하나다. 그런데 전화번호부를 없어지게 만든 114도 스마트폰이라는 최첨단 장비로 인해 서서히 없어져 가는 것이다. 디지털 첨단 장비의 출현으로 인해 점차 사라져가는 것들이 비단 114뿐일까?


집에 한 권씩 가지고 있던 전화번호부에 우리 집 전화번호를 찾아 줄긋던 시절 ‘삐삐’라고 불렸던 무선호출기의 등장은 사회적인 큰 이슈를 낳았을 뿐만 아니라 사회생활에 조금이나마 편리함을 제공해 주었다. 

개인이 소지하고 있는 무선호출기에 연락받을 전화번호를 남겨 연락을 취하는 방식인 무선호출기는 지금 생각하면 아주 불편하고 상상도 못할 방식이지만 그 당시엔 정말 획기적이고 사회에 큰 이슈를 자아낼 만했다.


무선호출기를 이야기하자면 공중전화 또한 빼놓을 수 없다. 지금은 1인 1 휴대폰 시대라 공중전화가 어디 있는지조차 모르지만, 그 당시 없어서는 안 되는 것 중 하나였다. 공중전화의 위치까지 기억하는 사람도 있었고, 무슨 통화를 그리 길게도 하는지 기다리는 사람들을 짜증나게 했던 사람도 있었다. 더불어 공중전화부스 안에는 꼭 쇠사슬에 묶여 있던 전화번호부도 함께 있었는데 사람들이 필요한 부분을 찢어가 항상 너덜너덜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공중전화를 사용하기 위해 동전을 바꾸러 다니는 사람들, 공중전화 위에 지갑을 올려놓고 갔던 사람들 그리고 전화카드. 공중전화에 관한 에피소드를 나열하자면 끝이 없다. 전화번호부나 공중전화, 무선호출기 등 한때는 생활하면서 꼭 필요한 것들이었지만 휴대폰이라는 첨단 장비의 보급으로 점차 잊혀가는 시대의 유물이 되어가기 시작했다.

휴대폰의 대중화는 진정한 디지털 시대의 시작이라고 해도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사회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휴대전화의 등장은 전화번호를 휴대폰에 저장함으로써 더 이상 개인적으로 전화번호부를 가지고 다니지 않게 됐고, 공중전화는 비바람을 피하는 용도 정도로 사용되고 있으며, 무선호출기는 ‘아! 내가 이걸 사용하던 시절도 있었지’하고 추억을 되짚어볼 만한 물건이 됐다.


휴대전화가 보급되고 나서 우리 생활에 가장 많은 변화를 가져온 것 중 하나가 바로 ‘약속장소의 결정’이 아닐까 한다. 휴대전화가 보편화되면서 약속장소를 미리 정하지 않아도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게 됐다. 하루 전 혹은 미리 연락해 “어디서 몇 시에 만날까?”라고 했던 것들이 이제는 휴대폰을 통해 바로바로 정하고는 한다. 그러나 이런 변화와 함께 실종된 것도 있으니 바로 ‘약속 시간’이다.


명확히는 ‘잘 지켜지지 않는 약속시간’이겠지만 언제부터인가 약속시간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던 것 같다. 오죽하면 코리아 타임이라는 말까지 있을까? 휴대전화가 없던 시절은 약속시간에 늦게 되면 상대방이 마냥 기다려야 한다는 책임감 덕뿐인지 약속시간이 잘 지켜졌다. 휴대폰의 보급된 후부턴 늦더라도 연락이 가능하니 조금은 늦어도 된다는 생각이 약간은 생겼나 보다. 물론 휴대폰으로 인해 엇갈리고 답답한 마음도 사라졌다고는 하나 핸드폰이라는 최신식 기기 덕에 사람이 지켜야할 기본적인 것조차 잊고 사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휴대폰의 진화는 멈추지 않고 계속되어 작고 휴대하기 편하게 발전하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부터는 전화기의 개념을 떠나 사진, 동영상 촬영 등 어느새 생활필수품으로 자리 잡아갔다. 휴대폰이 손에 없으면 불안하기도하고 허전하기도 하며 휴대폰도 없는데 괜히 문자소리가 귀에 맴도는 경우를 한 번쯤은 느껴봤으리라…


오늘날 휴대폰과 스마트폰으로 인해 많은 것들이 편해졌다. 그러나 지하철이나 친구들끼리 만나서도 스마트폰만 쳐다보고 있는 것을 보자면 삭막한 느낌이 들 때도 있다. 그래서인지 배고파 끓였던 라면의 받침이었던 그을린 전화번호부가 그립고 따뜻했음을 느낄 때가 있다.


written by 선의


Posted by 해적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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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12.14 15:04

    kbs에서 인간의 조건이라는 예능하는데 그거 보면서 핸드폰 없애고 싶다는 생각 많이 했어요. 전화번호부까지는 몰라도 ㅋㅋ 요즘 '기억', '감성' 이런게 핫이슈인듯요.

2012.12.13 16:50



나에게는 그런 사람이 있습니다. 

대학에 입학했을 때, 군 입대했을 때, 휴가 나와서, 제대하고, 졸업했을 때, 취업할 때, 친구 결혼식 때, 그리고 상갓집에서…그럴 때마다 어김없이 만나는 사람이 있습니다. 아니, 꼭 만나고 싶어서 불러냈던 사람이 있습니다. 


나에게는 그런 사람이 있습니다.

십년을 넘게 알아왔으면서도 만난 횟수가 반년 사귀다 헤어진 지난 여친과의 만남보다도 적은 사람 말이죠. 그러고 보니 그 사람은 저의 연애사를 모두 알고 있네요. 


그런 날이 있습니다. 꼭 그 사람을 보고 싶은 날.

그날은 돌이켜 보면 제게는 인생의 통과의례라는 주요관문이었더군요. 저를 보여주고 싶었나 봅니다. 그러나 그보다, 그런 중요한 날이면 그녀를 보고 싶어 하는 제 마음을 들키지 않고 불러낼 수 있었으니까요.

    

“잘 지내?”

“…(잘 지내냐고? 너는 지금 내 얼굴을 보면서 그런 말이 나오지? 네가 그 사람과 웃고 행복하게 지내니깐, 야윈 내 모습 따위는 보이지 않는 거겠지. 뭐, 잘 지내냐고? 그동안 보고 싶어서 혼났지, 임마. 페이스북이랑 미니홈피 글 보면서 참았다. 글은 또 왜 그렇게 뜸하게 올리니? 사진은 참 행복해보이더라. 그 사람이 너한테 아주 잘 해주는 것 같네. 야, 너만 잘 살았는지 알지? 나도 열심히 살았어. 너한테서 성공한 모습 보여주려고 이를 아득바득 갈면서 산다, 내가 아주. 야, 그리고 나도 요즘 여자 만나. 불쌍한 눈빛으로 쳐다보지 마. 너 아니래도 나 멋지다고 하는 여자 많아…참…보고 싶었다, 많이. 여전히 예쁘구나, 너란 여자.)”

“뭐 해? 잘 지냈냐니깐?”

“응…그…그냥.”          

 

그동안 그녀에게 들려주고 싶은 수천수만 가지 이야기 대신, 그녀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은 한 단어뿐이었습니다.

 

Written by 동전오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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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해적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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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모씨, 이리와서 좀 먹어요. 왜 이렇게 안먹어요?"

"아...저, 점심 먹은지가 얼마 안되서 간식은 그냥 그러네요."

"에이~남자가 되가지고 점심가지고 되겠어요? 이리 와서 이거 빵이랑 뻥튀기도 좀 먹어요."


지난 약 4년 동안 일을 하면서 주구장창 들었던 이야기다. 현재 시간 오후 2시 30분, 사무실의 여성 한 분이 조용히 나가더니 이내 빵봉지와 뻥튀기를 산더미 만큼 들고 들어온다. 간식이 도착하면 순식간에 우르르 달려가 와글와글 떠들면서 이걸 먹는건지 흡수하는건지 알아채지 못할 정도로 먹어치운다. 참고로 점심은 12시 30분에 다 먹은거다. 


"아, 너무 배부르다~~~이제 못 먹겠다. 다이어트 해야되는데 아놔 미치겠네~~"

"맞아맞아, 우리 요거까지만 먹고 오늘은 끝하자!"


말만 그렇지 ㅠㅠ. 그렇게 말하면서도 계속 먹는다. 한편으로 재미난 것은 서로 그렇게 먹어대면서도 누가 더 많이 먹고, 누가 더 적게 먹는지를 끊임없이 견제하고 관찰한다. 그녀들 마음 속엔 '어우, 쟨 뭔데 저렇게 안먹어? 아 재수없어, 나도 그만 먹어야지' 하는 묘한 감정이 또 하나 있다. '먹지 말아야지 먹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반대로 상대 여성에 대해서는 '더 먹어요 그것가지구 되겠어~요것도 먹구 저것도 먹어요 호호호' 위해주는 척 하면서 서로가 서로를 계속 매긴다. 여기서 덜 먹은 사람은 '튕기네 어쩌네' 구설수에 오르기 마련이고, 가장 잘 먹는 사람은 '마음씨 좋은 푼수'로 통한다. 그렇게 30분 미친듯이 먹고 나면 잠시 동안 잠잠해진다. 남자인 나는 먹는 둥 마는 둥 애먼 커피만 들이키다가 다시 자리로 돌아온다. 


여자가 많은 부서에서는 어떤 직장에서건 반드시 간식을 따로 먹을 수 있는 전용 코너가 있다. 적어도 내가 경험한 바에 따르면 말이다. 각종 유명브랜드의 과자들과 음료, 가끔 외부인이 방문했을 때 선물로 주고가는 고급식품들로 한 구간이 완전히 꽉 차있다. 입이 심심하거나 스트레스가 올라갈 때, 어김없이 찾아가 먹을 수 있도록 해 둔 것이다. 그녀들은 그 구간이 비지 않도록 늘 신경쓴다. 그래서 서로 품앗이처럼 월요일은 누가, 화요일은 또 다른 누가, 수요일은 또또 다른 누가 간식을 가져와 서로에게 보여주면서 자랑한다. "우와, 맛있겠다. 역시...XX씨는 간식센스가 보통이 아니야!" 하면서 칭찬해주고 격려해준다. 기분 좋아진 XX씨는 그 다음주 더 좋은 간식으로 여자직원들에게 화답한다. 박수세례가 쏟아진다. 





그것도 잠시...현재 시간 4시 30분. 간식 먹은지 두 시간 지났다. 이쯤 되면 서서히 여자들의 간식 본능이 일어난다. "아...그새 출출해지네. 모 먹을까?" "아 배고파 나 미쳤나봐 과자 하나 먹어야지~~""제가 커피 내려서 올께요~!" 하며 슬슬 또 간식 먹을 준비를 한다. 


"우리 가운데에 놓고 한 개씩만 집어가서 먹어요" 


말만 그렇지 ㅠㅠ. 한 개씩이 뭐냐. 기다란 뻥튀기 봉지를 간식 먹는 책상에 놓는다. 처음에야 한 개지. 두 번째는 세 개, 세 번째는 다섯 개, 네 번째는 10개...뭐야 이거? 가서 보면 이미 다 먹고 없다;;; 서로 하나씩만 먹자고 약속해 놓고 다 먹었으니...서로 민망해서 다음 간식을 꺼내기가 어려워진다. 그래서 실험을 해봤다. 초코과자봉지 하나 꺼내 한 두어 개만 먹고 책상에 둔 채 내 자리로 돌아갔다. 아니나 다를까, 서로 바톤 터치를 해가면서 한 움큼씩 집어간다. 계속 먹는다. 또 먹는다. 또 먹는다. 또 먹는다. 또 먹는다. 5분만에 봉지 털렸다. 어느덧 퇴근 시간이다. 오늘은 회식이다.


회식...말이 회식이지. 술은 애시당초 관심도 없다. 이미 뭘 먹으러 갈진 그녀들이 다 정해놨다. 그저 소수로 밀린 남자 몇 명은 회식자리 귀퉁이에 쭈구려 앉아 밥 겸 술 겸해서 먹는다. 가운데에선 이미 로마의 대향연이 벌어졌다. 꽃게탕의 게는 이미 다 뜯겨져 있고, 뼈와 국물이 낭자하게 흩어져 있다. 그 다음주로 파전~~~. 그 다음으로 회무침~~~. 마무리로 냉면. 젓가락 휙휙 날아다닌다. 막막 뜯어먹는다. 서로간에 뭐라뭐라고 속사포 랩으로 '블라블라블라블라블라 깔깔깔깔깔 하하하하하' 도저히 연관성 없어보이는 주제들도 알아서 막 이어가며 수다 천국을 만든다. 안주는 벌써 5번이 돌았다. 난 먹은 것도 별로 없는데...돈은 N분의 1로 낸다. 


"소화도 시킬 켬 커피라도 한잔 하지"





커피만 먹냥? 케잌도 먹지 ㅠㅠ. 초코케잌, 치즈케잌, 고구마케잌, 초코머핀에 마카롱. 자자자잠깐만...몇 개를 시키는거야 도대체? 로마의 대향연 시즌 2가 벌어진다. 집 얘기, 애인 얘기, 돈 얘기, 뒷담 얘기, 조카 예쁘다는 얘기, 너무 먹어서 옷이 안맞는다는 얘기, 우리 엄마랑 어제 쇼핑을 갔다는 얘기, 동생이랑 대판 싸운 얘기, 바바바바바바바 두두두두두두두두두 계속 얘기한다. 그러면서 또 재촉한다. 


"허허, 모모씨 오늘따라 왜이렇게 안먹어요? 자 이것도 먹고 요것도 먹고 좀 먹어요. 먹어야 내일 기운내서 일도 하지"


얘들아...저녁 먹었잖니? 지들이 다 먹고 남은 거 남자 몇 명 앞으로 다 밀어넣는다. 슬슬 집에 가고 싶어진다. 배터져서 내일 출근 못할 것 같다. 9시 반 쯤 되니 그녀들의 폭풍간식흡입행사가 막을 내렸다. 


"아~~오늘은 자기 전에 꼭 스트레칭해야지~"

"난 러닝머신이나 좀 타야겠다!"

"샤워 오래해도 살 빠진대요!"

"난 운동 싫어. 그냥 살 찌고 말래 호호"


........앞자리의 남자 동료와 눈교환을 한다. 집에 가는 척 하면서 둘 만 다른 길로 빠진다. 호프집으로 들어간다. 안주는 그냥 오징어 땅콩. 맥주만 마신다. 그냥 허허 웃고 마시고 씁쓸하게 이런저런 얘기나 좀 두리뭉실하게 하다가 둘이서 3000cc딱 나눠 마신다. 적당히 술도 올라온게 기분 좋다. 이렇게 집에 가믄 되는 거다. 


흔히 여자들은 밥배, 간식배, 디저트배, 커피배, 술배가 따로 있다고 한다. 그런데 여기에서도 간식배와 디저트배는 엄연히 다르다고 한다. 디저트배는 점심 먹고 나서 먹는거고, 간식배는 출출할 때 쯤 먹는게 간식배란다. 그리고 밥먹으면서 술은 마시지 않으므로, 밥배와 술배는 구분된다고 한다. 음...남자의 입장에서는 크게 와닿지 않는 대목;;; 왜일까? 





여기서 잠깐. 인류가 수렵, 채집 활동으로 먹고 살던 그 시절로 돌아가보자. 


남자가 하는 일은 무어냐? 사냥이다. 사슴이건 노루건 남자는 그거 하나만 쫓아다닌다. 남자의 머릿 속엔 하나 뿐이다. "저 놈 하나만 잡자." 활로 쏘아 맞추어 어깨에 짊어지고 온다. 그걸로 가족에게 할 의무는 끝났다. '오로지 한 놈만 잡는다'다. 종일 돌아다닌지라 피곤하다. 거하게 저녁 한 판 때리고 잠에 든다. 남자에게 중요한 건 든든한 주식이다. 


그렇다면 여자는 노느냐? 그렇지 않다. 채집을 한다. 집 주변에 있는 먹을만한 풀데기를 찾아다닌다.  그 중에는 나물도 있겠고, 버섯도 있겠고, 열매도 있겠고, 꽃도 있겠고, 그냥 풀도 있겠다. 어쨌든 이것이 먹을 수 있는 건지 없는건지부터 선별한다. 그리고 먹을 수 있는 것이라면 이것저것 다 뜯어온다. 그리고 집 한켠에 정성껏 분류해서 오늘 아침엔 이거, 점심엔 저거, 저녁엔 그거 다 정해놓는다. 평소에 하는 일이 '선별과 분류'다. 직접 입맛으로 간별하면서 조금 더 신선한 것, 조금 더 맛있는 것을 꼼꼼하고 면밀하게 따진다. 이미 여자의 뇌 속엔 수십가지 풀데기로 꽉 차 있다. 그리고 이웃집 누구네 것과 비교하면서 우위를 따지기도 하고, 나눠 먹기도 하고, 수시로 이 집 저 집 돌아 다니며 풀데기 정보를 공유하고, 교환한다. 여자에게 중요한 건 주식 외의 다른 것들이다. 그 다른 것들의 획득에 여자의 자존심이 걸려있다. 


김장철이다. 김장철만 되면 아랫집 윗집 옆집 엄마들 서로 바삐 초인종 눌러댄다. 통에 정성껏 담아와 먹어보라고 준다. 엄마는 또 받아서, 먹은 통에 자신이 담근 김치를 건네준다. "누구네 김치래더라. 맛이 좋다. 먹어봐라". 세상에...아침상에 똑같은 겉절이 김친데 우리집꺼 플러스에 안국동네, 옥인동네, 연희동네, 홍제동네, 옆집 할머니네 총출동이다. 김치상인지 밥상인지...먹어보고 비교해보란다. 안 먹으면 직접 손으로 찢어서 밥상에 올려준다. 어디네가 제일 맛있냐고


간식이고 김치고 나물이고 풀데기고 다 따로 노는 것 같지만 결국엔 다 여자의 '선별과 분류' 본능에서 시작하는 것이다. 


그래서 '간식'이 아니고 '간식거리'다. 


Written by 선장


Posted by 해적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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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입시도 끝나 이른 시간에도 거리에 교복 입은 학생들을 쉽게 찾아 볼 수 있게 됐다. 매일 같이 영하 10도를 오가는 추위라 해도 억압에서 풀려난 젊은 혈기를 꺾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날도 추워 책이나 보자고 시립도서관을 찾았다. 근데 책은 구경도 못했다.  책은커녕 자리에 한번 않아 보지도 못했다. 많은 사람들이 이미 밖에서 대기표를 받아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새삼 놀랐다. ‘아! 우리나라가 이리도 독서에 열을 올렸던가?’하는 생각에 이리저리 둘러보는데 하나같이 공통점이 있다. 책은 책이나 도서가 아닌 문제집을 보고 있었다. 언뜻 보아하니 취업준비생들인 듯 했다. 책도 다양하다. 토익, 토플, 자격증, 공무원시험 교재 등. 아무튼 많은 취업준비생들이 도서관을 찾아 공부를 하고 있었다.


취업준비생이 도서관을 찾는 게 이상한 것은 아니다. 꼭 책을 보기 위한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책을 보려 하는 사람보다 ‘취업’을 위해 도서관을 찾는 사람이 이토록 많다는 사실에 숫자로만 봐오던 청년실업이 몸소 느껴진다.

예전엔 책이나 자료를 찾기 위해 도서관을 찾으면 시험기간을 제외하고는 한가했다. 시험기간에는 오히려 빈자리를 찾기 힘들 정도로 도서관은 만원이었다. 항상 시험기간인 것 마냥 요즘엔 시립도서관을 보면 항상 만원이다. 닭 울기 전에 일어나 도서관을 가지 않으면 한자리 붙이고 않기란 여간 힘든 것이 아니다. MB의 정권의 300만일자리 창출 공약이 무색할 정도다.


현재 우리나라의 청년 실업난은 예년 보다 낮아 졌다고 한다. 청년들이 취업을 많이 해서가 아니라 취업을 포기하고 있어 실업률이 낮아진 것이다. 많은 취업준비생들이 취업보다는 다른 길을 택하고 있는 것이다. 대학원 진학, 공무원 시험, 졸업의 연기 등이 그 예다. 표면적 실업률이 낮아졌다고는 하나 사실적 실업은 예년 보다 높다는 것이 노동지원청의 의견이다. 이러한 취업난은 이공계기피 현상도 한몫을 한다. 


현재 우리나라는 공직자나 금융권, 대기업의 공채시험은 매년 많은 사람들이 몰린다. 그러나 이공계열 연구소나 현장직은 점차 경쟁력을 잃어 요즘의 취업난이 무색하게 사람을 구할 수 없어 힘들다고 한다. 더불어 요즘 아이들의 이공계기피현상까지 더 해져 연구현장 직은 점차 사람이 줄고 사무, 공직 즉, 화이트컬러는 수백, 수천 명씩 몰리는 양극화가 더해가고 있다.

이미 이공계 기피는 사회 전반적으로 큰 문제로 다가왔다. 국내대학의 공대는 사회인문계열에 비해 매년 적은수의 신입생으로 골머리를 썩고 있다. 


기피의 원인을 보자면 어려운 이공계열의 학업도 적잖은 비중을 차지한다. 요즘 어린사람들은 어려운 것은 피하고 이른바 ‘쉽게 쉽게’가 정신이 꽉차있다. 조금만 힘들고 어려우면 쉽게 포기해버리고 어렵다고 생각되면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경우도 주변에서 쉽사리 볼 수 있다. 물론 인문계열이 쉽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단지 이공계열의 빠듯한 학업과 다소 어려운 학업과정은 요즘 아이들이 기피하기에는 충분하다는 것이다. 또한 졸업 후 진로를 따지자면 이공계는 더욱 기피된다.


많은 대학생들은 소위 말하는 삼성맨을 꿈꾸거나 멋진 금융계의 화이트 컬러를 원한다. 이공계에서 밤잠 못자고 공부해 지방 연구소보다는 수도권에 위치하고 초봉과 대우부터 다른 사무직을 선호한다. 급변하는 첨단과학시기에 뒤처지면 퇴출되는 이공계보단 철밥통으로 불리는 공무원을 택하는 것이다. 

표면적으로는 실업난이라고 하지만 정작 이공계열 회사에선 사람을 못 구해서 아우성인 것이 현실이다. 이것이 우리나라 실업난의 현주소다. 그렇다고 이공계를 기피한다고 아이들만 붙들고 흔들 것이 아니라 기술직이라면 우습게 보는 현사회 풍토와 이렇게 만드는 어른의 뇌구조부터 바꿔야할 것이다.


written by 선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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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해적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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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과천에 살고 있는 평범한 직장인 주부이자 두 아이의 엄마. 몇 주 전부터 대형 프로젝트에 올인하며 밤낮없이 분주한 남편이 마냥 안쓰럽기만 한 요즘이었다. 다행히 성공리에 프로젝트를 맞추고 꿀맛 같은 휴식을 기다리고 있는 그가 마냥 부러웠단다.

“자기야, 근데 월요일엔 뭐 할 거야?”

다가오는 월요일이 그의 휴가인지를 지난주부터 알고 있던 그녀다.

“나? 민정이 만나기로 했는데?”

“민정이?!”


하마터면 ‘그게 어떤 X이야?’하고 반자동으로 나올법한데, 아니 진심 나올 뻔 했단다. ‘민!정!이!’ 오랜만에 자신의 이름이 남편에게서 불렸던 것이 참 낯설었고 한편으론 설렜단다. 이 이야기를 해줄 때 그녀의 표정을 상기시켜 보면 굉장히, 무지하게, 더없이 설렜던 것 같다. 


40대 아줌마의 얼굴에서도 이런 표정을 볼 수 있구나, 하고 잠시 생각했던 나였다. 그렇다, 여기서 잠시 내가 또 잊었던 것이 있는데 아줌마도 여자인 것이다(내가 나의 엄마를 객관적인 여자로 보게 된 계기를 조만간 번외로 올리도록 하겠다). 그녀가 평소 들었던 호칭을 나열해 보면 대략 다음과 같다. 아줌마, ○○이 엄마, 안성댁(친정이 안성이다), 김 실장님, 김 집사님…어디에서도 그녀의 아름다운 이름을 불러주는 곳은 없었더란다. 대한민국 보편적인 아줌마들도 이와 비슷한 처지이지 않을까. 


하지만 그녀들이 본인의 이름을 잊어버릴 수가 없는 것은 참 친절하게도 세금 고지서, 각종 지로용지와 카드 명세서에 정확하게 기재 되어 있는 이름, 그리고 인터넷 쇼핑몰 할 때의 실명 확인과 각종 소비 상담에 관련된 통화들 때문일 것이다. 물론 안전한 거래를 위해서 실명 확인은 필수지만 어딘가 씁쓸한 마음도 든다. ‘언제부터 소비자 각각 개인에게 관심이 있었다고, 그 정체성의 상징인 그녀의 이름을 반갑게 낭랑한 목소리로 ○○○고갱님! 하고 부를 수 있다니‘, 이렇게 생각한다면 배알이 너무 꼬인 건가.


같은 그녀의 이름 석 자인데, 남편에게서 불리는 그 이름. 무뚝뚝하기만 하고 이제는 너무 아저씨 같기만 한 그에게서 뜻밖에 불린 그 이름으로 인해서, 그녀는 20대 그들의 사랑스럽던 연애시절이 떠올랐고, 그동안 시누이와 시어머니께 쌓였던 남모를 감정, 남편과 아이들에게 치이며 쌓인 속상함이 눈 녹듯이 사라졌다고 한다. 하루 종일 그녀에게서는 웃음이 사라질 수가 없었더란다. 도통 알 수 없는 것이 여자의 마음이라지만 이 얼마나 단순한가.

 

그렇다면 이번 주말에는 그대의 아내 손을 지그시 잡고 그녀의 아름다운 이름을 한 번 불러보자. 아니, 시도해보자(그대를 위한 적절한 표현인가?) 그동안 참 고마웠다고. 하지만 개인차에 따라 역반응이 나올 수도 있다는 점을 간과하지는 말자(너무 안 그러던 사람이 갑자기 그러면 오해를 살 수도 있는 법)


Written by 앵무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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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해적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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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국민학교를 다녔다. 지금은 모두들 초등학교를 다니지만 내가 초등교육을 받을 시기엔 초등학교가 아닌 국민학교였다. 

요즘 초등학생들에게 “국민학생이니?”라고 물어보면 “네?”하고 반문이 돌아온다. 아마 생전 처음 듣는 단어일 테니 되묻는 것도 이상할 것도 없다.


초등학교로 바뀐 건 1996년 이후다. 일제강점기 일본왕의 칙령으로 ‘황국신민의 학교’라는 의미인 ‘국민학교’로 불렸는데 광복이후에도 그대로 사용했다. 이후 민족정기회복차원에서 명칭을 국민에서 초등학교로 변경했다.

물론 나는 그 변경사항 없이 그대로 국민학교라는 이름으로 초등교육을 마쳤다. 내가 졸업한 이후 아이들은 초등학교 졸업일지 몰라도 난 어쨌든 초등학교를 다닌 적은 없다.


처음엔 초등학교라는 게 입에 착착 붙질 않아 주구장창 국민학교라고 말하곤 했다. 근데 이것도 시간이 지나고, 나이를 먹고 익숙해지니 국민학교라는 말이 더 어색하고 이상하게 느껴지고 있다. 지금 쓰고 있는 한글 프로그램만 해도 국민학교라는 단어만 써도 알아서 초등학교로 척척 바꿔주고 있어 일일이 고치는 것이 여간 번거로운 게 아니다. 컴퓨터도 국민학교라는 단어가 어색한 것이다.


아픈 의미를 지니고 시대 속에 잊혀 진 단어지만 나에겐 그냥 어린 시절이다. 국민학교를 나왔다고 내가 일본의 정신을 이어 받은 것도 아니고 일본의 교육을 받은 것도 아니었다. 그냥 철없는 어린 시절이었다. 그리고 어느 때보다 풋풋하고 때 묻지 않았던 때다. 다시는 돌아갈 수 없어 그립고 아쉬운 그런 시절. 넉넉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았고 부러울 것도, 두려울 것도 없었다. 꿈으로 가득하던 시절, 그 꿈 많던 시절의 나는 마지막 국민학교 졸업장을 받았다.


written by 선의


Posted by 해적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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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모여 부루마블 할 때면 부루마블의 주인이 꼭 가장 먼저 시작을 했다. 뭐 주인장 어드밴티지 같은 거였다. 주인 녀석은 알토란같은 나라에 멈춰 그 나라에 호텔을 지었다. 운이 좋을 땐 더블이 걸려 한 턴에 두 개의 나라를 사기도 했다. 물론 그 나라엔 모두 호텔이 올라갔다.


두 번째로 시작한 녀석은 운도 없이 방금 사논 나라에 걸리곤 했다. 호텔이 올라간 나라에 지불 할 돈은 녀석이 가지고 있던 돈의 절반이다. 나는 그나마 운이 좋아 주인 녀석이 사 놓은 나라엔 걸리지 않았지만 카드를 뽑는 곳에 걸렸다. 나라를 갖지 못한 거다.

초기부터 돈이 가장 많은 주인 녀석은 비싼 유럽 쪽 나라를 사기 시작했다. 스톡홀름, 런던, 뉴욕 등 땅 값만 해도 비싼 이 나라에 호텔을 지었다. 


나도 부지런히 나라를 사 나아갔다. 유럽 같은 좋은 땅은 아니어도 동남아 쪽의 싸고 잘 걸릴 만한 나라도 몇 개도 가졌다. 주인 녀석도, 두 번째로 시작한 녀석도 자주 내 나라에 걸리곤 했다. 유럽처럼 몇 백만 원의 통행료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소소히 돈을 모아가고 있었다.


주사위가 몇 바퀴 돌았을까 나의 말은 주인 녀석의 가장 큰 나라인 유럽 쪽의 한 나라에 서고 만다. 통행료는 무려 400만원. 동남아 쪽 나라와 시작점에서 받는 월급인 20만원을 열심히 모아 유럽 쪽의 한 나라를 산 나는 400만원이라는 돈이 있을 리 만무했다.


나는 녀석에게 지금 가지고 있는 200백만 원만 먼저 받고 나중에 주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주인 녀석은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단칼에 거절했다. 그래도 나는 한 번 더 간곡히 부탁했다. 이번 한번만. 딱 한번만 봐달라고 매달렸다. 소용없는 일이었다. 나는 결국 지금껏 열심히 모아 산 유럽 쪽의 한 나라를 은행에 매각했다. 그리고 나온 돈은 고스라니 주인 녀석에게 넘겨줘야했다. 주사위가 던져진 시작부터 열심히 노력해 얻은 꿈같은 나라를 한순간의 잃은 순간이다. 


다음 턴. 주인 녀석은 내가 좀 전에 은행에 매각한 유럽의 나라를 내가 준 돈과 본인의 돈을 합하여 구매했다. 이로써 유럽 쪽 라인은 주인 녀석의 독점을 이뤄졌다. 이 라인을 지나기 위해선 더블이 걸리지 않는 한 반드시 어떤 곳이든 통행료를 지불해야했다. 운이 좋게는 100만 원, 운이 나쁘게는 400~500만 원 까지. 주인 녀석은 가끔 인심을 베푸는 듯 자투리 돈은 깎아 줬다. 물론 나머지 통행료를 내기위해선 내가 한푼 두푼 모아 얻은 나라를 팔아야 만 했다.


나라를 하나 둘씩 잃은 나에게 가장 큰 소득은 출발지점을 돌면 은행에서 나오는 월급 20만원이었다. 그 소득도 카드 뽑는 자리에서 ‘세금을 내시오’ 한마디면 몇 푼 남지 않았다. 그리곤 예전 유럽 라인 한편에 내 나라가 있었음을 기억하며 또 다시 주사위를 굴린다. 출발점의 월급만을 기다리면서 말이다.


written by 선의


Posted by 해적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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