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해적라디오의 DJ 세이렌이었어요.


끝 곡으로 전설 속으로 사라진 밴드 부아나 비디따 술샤 클럽의 노래를 보내드릴게요.


이 노래를 마지막으로 해체하고, 행방이 묘연한 그들을 추모하며 들어볼게요.


어딘지 모를 바다의 밑바닥에 잠들어 있을지도 모를


부아나 비디따 술샤 클럽의 애니팡을 남기고 저는 이만 물러날게요.


난파당하지 말고 좋은 항해 하세요.~~~굿 럭~~~

 



 

오랜세월 모아왔던 논문 파일들을 지워 버리고

목숨같은 나의 책들을 헐값에 팔아버렸지 예~

미안해 멤버들아 나는 더이상 인문학을 하지 않을거야

함께 울며 웃으며 공부한 추억을 가슴속에 남길게

 

돌이켜 생각해보니 나는 쓸데없는 개멋에 취해 (개멋에 취해)

미련하게 청춘을 소모하고 있었던 것 같아

하지만 이제야 깨달았다네

이런 비호감적인 학문을 해봤자 더이상

여자들이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늦지 않았어 그 책들을 팔아버리고 스마트폰을 사 (그리고)

카페에서 연습한 애니팡을 그녀에게 보여줘 레디고~ 팡~

다시는 도서관에서 책을 들고 폼 잡지 않을거야

함께 해봐 애니팡

라스트 파앙

 

아직도 학교 안 도서관 구석에서 피땀 흘려 공부하고있을 (라스트 파앙)

이시대의 모든 학생들에게 이 노래를 바칩니다 (라스트 파앙)

세이 애니팡 (애니팡) 세이 애니팡 (애니팡) (라스트 파앙)

소리 질러 팡~ (팡~) 팡팡팡~ (팡팡팡~)

 

돌이켜 생각해보니 그동안 지켜왔던 신념만 믿고 팡~

다른 학문은 철저한 자본주의 상술이라 믿었지 팡~

하지만 이제야 깨달았다네

모두 부질없는 짓이었다는 것을 나는 지금

구직난에 빠져 있기 때문에

 

늦지 않았어 그 책들을 팔아버리고 스마트폰을 사 (그리고)

카페에서 연습한 애니팡을 그녀에게 보여줘 레디고~

다시는 도서관에서 책을 들고 폼 잡지 않을거야

함께 해봐 애니팡 (애니팡)

라스트 파앙~ 타임오버~

 

 



 

원곡 - 불나방 스타 쏘세지 클럽' 알앤비

http://youtu.be/-bTxmu75tYQ    <<<<<---노래 링크

 

Written by 낡은 라디오


Posted by 해적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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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에는 빵집이 하나 있는데 그 가게에는 아리따운 아가씨가 한 명 있다. 매일 저녁 퇴근길, 동네 어귀에 이르면 빵집 쇼윈도 너머로 항상 그녀를 볼 수 있다. 이 순간만큼은 단순히 내가 퇴근하는 길에 그녀를 본 것인지, 그녀를 보기 위해 일하러 갔다 온 것인지 헛갈릴 때도 있다. 달코롬한 빵 냄새에도 홀려 자연스럽게 눈길이 향할 만도 하니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무리가 아닐 듯하다.
 
언젠가는 턱을 궤고 TV를 보고 있고, 언젠가는 폐장 준비로 막대걸레질을 하고 있고, 언젠가는 그냥 서 있기도 한다.
 
그녀는 몇 살일까? 얼핏 보면 나보다 나이가 있어 보이기도 하다. 주인일까, 주인네 딸일까? 내가 스쳐가는 지금 그녀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날 감지하기는 할까?
 
궁금함도 잠시 내가 그녀를 유리창 너머로 스쳐 지나가는 순간은 단지 1~2초 정도에 불과하다. 다가가려고 노력하지는 않는다. 빵을 사면서 대화도 걸어볼 수 있고 가까이서 얼굴도 볼 수 있지만 그러지 않는다. 단지 지금이 좋아서이다. 쇼윈도 너머에 비친 그녀의 모습이 그냥 좋다. 쇼윈도 얼룩 때문에 선명하진 않지만 어떤 목소리인지 들리진 않지만 그래서 더 좋다. 가게에 들어가서 얼굴을 마주 보거나 이야기를 하게 되면, 왠지 나의 환상은 깨질 것 같기 때문이다. 마치 가게 문을 열 때의 알림종 소리에 환상이 깨어지듯이.

 

짝사랑이라는 게 이런 거 아닐까. 쇼윈도 사이에서 그 사람의 실재가 아닌 단지 ‘상상적 이미지’에서 만들어진 이상(理想)과의 사랑. 하지만 그러한 인식이 더 위력을 가하는지도 모르겠다.

 

유리창 문을 열고 들어가느냐의 여부는 전적으로 나에게 달려있다. 하지만 그 선택이 옳았는지 아닌지의 판단은 내 손에서 벗어나 있다. 아직 나에게 빵집 아가씨는 빵집 아가씨일 때가 좋다. 빵집 아가씨를 완벽한 여인으로(정작 본인은 엄청 부담스러워 할) 만든 것은 내가 만든 것이지 그녀의 잘못은 아니기 때문이다.
 

Written by 동전오배건


Posted by 해적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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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쯤이었을까? 친구한 녀석이 새로 나온 아이폰을 처음 들고 내 앞에 나타났다. 평소 애플사의 아이팟을 애용하던 나는 아이폰이라 하여 별다른 감흥은 없었다. 단지 아이팟 터치에 전화기 기능을 더한 새로운 제품 정도로 인지하는 정도? 그러나 친구 녀석이 나에게 보여준 다양한 어플들은 콜롬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했을 때도 이랬을까? 보지 못했던 새로운 세계를 보는 듯 신기함 그 자체였다. 그중 여자 목소리로 대신 욕을 하던 어플은 지금도 잊을 수 없을 정도로 신기하고 재밌었다. 차후 내가 스마트폰을 구입하자마자 가장 먼저 설치한 어플도 그 욕 어플이 었을 정도다. 거기에 지금은 국민 어플이 된 ‘카카오 톡’은 더욱 신기했다.


친구의 말에 따르면 “이 어플은 전화번호가 있고 상대방도 이 어플이 있으면 자동으로 친구등록이 되지”라고 설명했다. 정말 신기했다. 내가 친구를 찾아서 친구등록을 할 필요가 없고 전화번호만 있으면 친구추가가 된다니? 이건 영화에서나 될법한 일들이 현실에서 이용되는 듯했다. 거기에 문자를 보내는 것도 꽁짜라고 하니 스마트폰이 더욱 더 위대해 보였다. 그 외에도 버스의 도착시간이나 컴퓨터 못지않은 게임 퀄리티 등 스마트폰의 매력은 넘쳐흘렀다.


그 매력에 빠져 차후 스마트폰인 아이폰을 구입했으나 익히는데 꾀나 고생했다. 나는 지금껏 얼리어답터 수준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최신식 전자기기를 다루는데 어려움은 없었다. 그러나 스마트폰은 조금 달랐다. 

처음 아이폰을 접했을 땐 전화를 끊는 것도, 문자를 쓰는 것도 조차 힘들었다. 더군다나 어플을 받기위한 앱스토어의 가입절차가 뭐 이리 복잡한지 한동안 친구의 아이디를 도용하며 살아가기도 했다. 그때 가장 많이 들었던 생각은 ‘나이가 들어서 이제는 새로운 것 하나 알아가는 것도 힘든 건가?’였다. 사실 지금 생각해보면 읽고 이해하는 것이 귀찮았던 것일 뿐이지만 말이다.


스마트폰이 조금 익숙해진 후에는 거짓말 조금 보태서 일한 시간보다 스마트폰을 들여다본 시간이 더 많은 것 같다. 별달리 할 것도 없는데 이것저것 보고 먹이를 찾는 승냥이 마냥 앱스토어를 뒤지고 다니고는 했다. 그렇다보니 배터리의 소모량이 엄청나서 항상 방전될까봐 걱정했었다. 그래서 보조 배터리까지 구입하기도 했다. 그러나 결국 스마트폰도 그냥 핸드폰이었다.


할 일없으면 들어갔던 앱스토어 덕에 밀리지 않았던 업데이트는 이제는 업데이트 하라고 숫자 뜨는 것조차 귀찮고 무섭다. 심심하면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말 걸었던 카카오 톡도, 혹시나 방전될까봐 샀던 보조 배터리도 가방 한 켠에서 먼지만 쌓여 가고 있다. 집에 오면 충전해달라고 빨갛게 들어오던 배터리도 80%이상 남아 있을 때도 있고, 가끔씩 바쁠 때면 90%이상 남아있어 다음날까지 사용해도 무방할 정도로 남아있고는 한다. 한때는 책을 집어던지고 매달렸던 스마트폰도 시간이 지나자 결국 예전에 사용하던 핸드폰이 됐다. 예전보다 조금 영리한(?) 핸드폰 정도랄까?

이런 스마트폰 마냥 나도 언젠간 나이를 더 먹고 서서히 사람들 관심 밖으로 사라질 것을 생각하니 조금 씁쓸하기도 하다.


written by 선의


Posted by 해적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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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 주인이 사라지면

잠에서 깨어나 움직이는 장난감 병정들과 같이

 

교수님께서 퇴근하시면

어김없이 연구실의 책들은 나에게 말을 걸어온다.

 

마음껏 그들과 함께 상상의 나래를 펼쳐본다.

좁은 연구실에서 드넓은 세상을 만나고, 

그렇게 꿈을 키워 간다.




어렸을 적에는 몰랐다, 교수님께서 본인의 연구실에 제자를 들여놓는 그 진정한 의미를. 돌이켜보면 나도 모르게 가장가까이에서 나의 미래를 바라보며 성장할 수 있었던 것 같다. 


학생들이 찾아와서 고민을 털어놓으면 따뜻한 차를 타주시며 정성스레 그네들의 고충을 들어주는 교수님의 모습, 논문과 수업 준비를 하느라 컴퓨터 자판을 치는 모습, 교수님이면 세상 모든 것을 다 아는 것 같았지만 끊임없이 책과 싸움하며 고뇌하는 모습, 한강이 바라보이는 창문에 서서 사색하는 모습, 학회에서 발표를 하는 모습, 대학원생 제자들과 세미나에서 토론하는 모습, 책 출판을 위해서 원고를 쓰는 모습, 동료 교수들과 식사하면서 근래 고민하는 주제에 대해서 대화하는 모습 


모든 것들을 생생하게 곁에서 지켜볼 수 있다는 것, 그만큼 구체적으로 나의 미래를 꿈꿔볼 수 있는 기회였던 것이다. 제자를 아끼는 마음이 담긴 교수님의 최고의 선물이었다. (감사합니다.)


당신이 현재 꿈을 갖고 있다면, 당신이 꿈꾸고 있는 그 일을 현재 하고 있는 그 사람에게 직접 찾아가 보기 바란다. 그 사람의 모습이 바로 미래의 당신이 될 수도 있으니깐 말이다. 그 사람이 당신의 멘토가 되어줄 수 있다면, 그것은 더없는 선물이 될 것이다. 


Written by 동전오배건


Posted by 해적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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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2.16 20:34



“겨울이면 무엇이 생각나세요?” 이렇게 누군가 나에게 묻는다면 Wham의 ‘Last christmas’가 가장 먼저 생각난다고 대답할 것이다. 내 나이만큼이나 오래된 노래지만 내가 처음 들었을 땐 나의 첫 스무 살의 겨울이었다. 

내가 가장 빛나던 시절이었고 성인으로서 발돋움의 설렘과 겨울의 푸근함이 만나 한껏 들떠있던 때였다. 오는 눈만 봐도 두근거림에 밖을 뛰다닐 정도로 풋풋함이 남아있던 시절이었다. Last christmas를 처음 들었을 당시에도 그 풋풋함과 두근거림 그리고 설렘이 함께했다. 


눈 오던 스무 살 겨울. 내가 좋아하는 누나와 함께 탄 버스에서 난 누나의 이어폰을 통해 Last christmas를 들었다. 누나가 듣고 있던 이어폰 한쪽을 뺏어 내 귀에 꽂자 처음이지만 참으로 따듯한 멜로디가 나오고 있었다. 잘 알아듣지도 못하는 영어지만 그래도 똑똑히 잘 들리는 단어는 ‘Last christmas’라는 단어. 고개를 돌려고 나는 누나에게 물었다. “아직 크리스마스도 아닌데 왜 캐럴을 듣고 있어?” 누나는 어린아이 달래듯 “이 노래는 캐럴이 아니고 팝송이란다.” 팝은커녕 국내 가요도 잘 안 듣던 나로선 크리스마스가 들어가니 당연히 캐럴인줄 알았던 것 같다. 


그 해 겨울. 그 사람과 난 연인이 됐고 함께 오고가는 버스 안에서 Last christmas를 함께 듣고는 했다. 지금 생각해도 스무 살 밖에 안 된 나로서는 가장 따뜻한 겨울을 보내고 있었던 것 같다. 첫 성인으로 맞는 겨울, 첫 여자 친구 그리고 첫눈. 하는 대부분이 처음이어서 인지 모든 것이 새롭고 신기하고 설랬다. 그리고 행복했다.

그 해 겨울이 끝날 때쯤 나는 그 사람과 이별을 했다. 수원 어딘가에 있는 커피숍에서 이별을 통보 받았다. “우리 그냥 누나 동생사이로 지냈으면 좋겠어.” 아이러니하게도 이별통보를 받은 그 커피숍에서도 Last christmas가 따뜻하게 흘러나오고 있었다. 


음악이 한 바퀴 돌아 다시 그 노래 나올 때쯤 우리는 자리에서 일어났고 나와 그 사람은 이별을 했다. 첫 이별인 만큼 많이도 아팠다. 죽을 만큼. 이별 후 나는 Last christmas를 듣지 않았다. 

다음 해 더운 여름날 나는 입대를 했다. 이별에 대한 홧김은 아니었지만 예정보다 빠른 입대였다. 입대 후 선임 절반 정도를 전역시켰을 때 쯤 Last christmas를 다시 들을 수 있었다. 겨울은 아니었지만 그 노래를 듣고 있자니 그리움에 잠시 먹먹했다. 그 사람에 대한 그리움인지 통칭 싸제의 겨울에 대한 그리움인지는 잘 몰랐지만 아무튼 노래엔 그리움이 가득했다.


상당히 선임이 된 후에도 나는 줄곧 Last christmas를 듣고는 했다. 잘 때도, 내무실에서 쉴 때도. 그러자 어느 날 한 후임이 내게 물었다. “겨울도 아닌데 왜 이렇게 캐럴을 들으십니까?” 나는 어린아이 달래듯 말했다. “이 노래는 캐럴이 아니고 팝송이란다.” 


예비역이 끝난 지금에도 내 이어폰에는 여지없이 Last christmas가 흘러나오고 있다. 그 사람 이어폰에서 따사로이 흘러나왔던 멜로디처럼 올 해 겨울도 여전히 흘러나오고 있다. 그 해 겨울처럼.


written by 선의


Posted by 해적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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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좀읽자] 1. 서른살엔 미처 몰랐던 것들/ 김선경 지음


요즘 우리 세대를 격려하는 수많은 글들을 접하고 있다. 대부분의 글이 '실패해도 괜찮다', '용기를 잃지 마라',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가라', '불굴의 의지로 나아가라, '자신만의 강점을 최대한 살려라' 등등 자신들이 헤쳐나간 역경의 스토리를 열심히 펼치는 데 열을 올린다. 책의 주인공은 이미 그 역경을 이겨내고 사회적으로 크게 성공한 이들이다. 결국 실패의 늪에서 최후까지 살아남아 성공한 몇몇의 사람들이 말해주는 실패의 아픔과 극복의 스토리인 셈이다.


모두들 이렇게 해야 성공한다. 저렇게 해야 성공한다, 나만의 비법을 알려주마 등등 모두들 '성공해라 그리고 성과를 내라' 외치며 우리를 끊임없이 독려한다. 완곡하게 얘기해주는 글도 있고, 승질내며 얘기해주는 글도 있다. 내 입장에서 보기엔 그 얘기가 다 그 얘기로 보이는데, 결론은 어쨌든 '성공해라'다.


그러나 우리가 여기서 분명히 알아두어야 할 사실은 '그 성공자의 지침과 메뉴얼'대로 해서 성공한 사람은 어림잡아 10만분의 1도 채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우리가 의지가 부족해서도 아니고, 우리의 전략이 잘못되어서도 아니다. 또한, 게을러서도 아니고 멍청해서도 아니다. 단지, 우리는 '우리'일 뿐이기 때문이다. 각자가 타고난 기질과 성향은 천차만별로 다를 수 밖에 없다. 마치 숲속에 핀 수백수천만의 풀들이 제각기 다른 위치에서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는 이치와 같다. 지금의 세태를 비유하자면, 라일락으로 예쁘게 피어난 사람이 고목나무 밑에서 할미꽃으로 핀 사람에게 더욱더 예쁜 라일락으로 성장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과 다르지 않다. 라일락은 라일락이고, 할미꽃은 할미꽃일 뿐인데도 말이다.


그렇다면 꼭 라일락으로 피어야만 성공한 삶인 것일까? 조그맣고 소박한 할미꽃으로 살아가는 것은 젊음으로서의 가치를 포기했거나 상실한 것일까? 왜 모두가 성공자의 실패 극복 이야기만 듣는 것일까? 실패자의 실패 이야기는 가치가 없는 것일까? 이는 우리 사회가 겉으로는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다'라고 이야기하고 있긴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성공하지 못한 실패자의 실패담은 가치가 별로 없는 것으로 치부하고 있음을 은연중으로 드러낸 것이라 본다. '실패자는 어디까지나 실패자일뿐이다'라는 패배자 낙인의식이 자리잡혀 있는 것이다. 박주영이 동메달 전에서 그 골을 넣지 못했다면 지금쯤 네티즌 수사대에 의해 SNS 단두대에 올라갔을 것이 틀림없다.


여기에 딴지를 걸고 나온 책 한권이 있다. '서른 살엔 미처 몰랐던 것들'. 군대에서 수도 없이 봤던 [좋은생각]을 출간했던 김선경씨의 회고담이다. 자칭 실패자로서 자신이 겪은 실패담을 너무나도 담담하게 서술하고 있다. 작가는 '도대체 성공의 잣대가 무엇이고 살패의 잣대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에서부터 글을 풀어 나아간다. 저자의 관점은 '생긴대로 사는 것', '수백 번씩 바꾸려 노력해도 바뀌지 않는 나를 용서해주는 것', '있는 그대로의 모습에서 남이 아닌 나의 삶의 바운더리를 만들어 나아가는 것'에 머물러 있다. 이 머물러 있음이 독자로 하여금 너무나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


사실 살면서 가장 두려운 점은 '지금의 내 방식이 과연 옳은 것일까? 맞게 가고 있는 것일까?'라는 자신만의 뿌리깊은 의구심이다. 늘 우리는 우리가 선택한 길에 개운치 못한 뒷맛을 느끼며 어정쩡하게 앞으로 한 걸음 한 걸음 내딛고 있다. 이에 저자는 그 발걸음의 결과가 사회적 인식에서 본 실패가 되었던 성공이 되었든 그것은 아무런 의미도 없음을 이야기한다. 내가 행복하다면, 내가 가는 길이 정말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원하는 것이라면 또는 그것이 정말 원하는 것인지 확신이 가지 않더라도 지금 나아가고 있는 내 모습 자체를 꾸짖지 말자고 한다. 더 나아가 걷다가 그만둬도 좋고, 돌아가도 좋고, 쉬었다가 나중에 하고 싶으면 또 해도 된다라고 한다.


이것이야말로 아주 리얼함을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성공해라'가 아니라 '니 마음대로 살아라'라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흔히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그 흔해빠진 '성공', 수백만달러를 움켜쥔 나의 모습을 상상하는 불꽃과도 같은 그 '성공'은 어쩌면 매일같이 로또를 손에 쥐고 토요일을 기다리는 허무함 같다는 생각이 든다. 결국 '진짜 성공'이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남이 그어준 잣대로서가 아닌 내 스스로가 계획한 설계도에 의한 '작은 성공'인 셈이다. 저자는 즐겁게 그리고 열심히 해서 얻은 실패의 결과라면 그 역시 나름의 성공이 아니겠느냐라고 위트있게 휘파람을 불어준다.


어려우면 어려운대로 문제를 풀어나가면 된다. 아니, 풀지 않아도 좋다. 단지 내 선택에 대한 책임은 내가 지는 것 뿐이다. 어떤 길을 선택하던 기회비용에 의한 후회는 남기 마련이다. 후회보다는 선택의 스위치를 누르고 문을 열고 앞으로 나아간 나 자신을 북돋아주자. 그리고 위로해주자. 이리저리 치이고 까이다가 차곡차곡 쌓인 아픈 실패와 보류의 축적물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어느덧 계획했던 그 '작은 성공'의 문 앞에 나를 데려다줄지 누가 알겠는가. '성공했다'는 나의 판단에서 성립되는 것이지 남의 판단에서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그저 나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것 뿐이다. 막히면 돌아가고, 험하면 쉬어간다. 다만 나는 그 길의 끝에 무엇이 있는지 꼭 보고 싶은 인간 중 하나일 뿐이다.


Written by 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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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해적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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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방에서] 지구 멸망과 동지 팥죽의 관계


1221? 세상이 망하는 날이잖아. 지구 종말, 마야사람들 똑똑해요. 진짜로 멸망할거야? 사과를 심을까? 여긴 배잖아. 그럼 배를 심어야지.”

 

요리사가 불안해하네요. 선장이라는 사람이 한소리 하니 요리사가 아까부터 저러고 있습니다. 어쩌면 오늘은 요리사에게 밥 얻어먹기 힘들 수도 있겠어요. 나쁜 선장 같으니라고.

 

2012 1221일이 무슨 날인줄 알아?

 

선장이 이렇게 말했는데요. 그날에 요리사에게 무슨 큰일이 벌어지는 걸까요? 걱정입니다. 요리사가 없어지면 제가 굶어 죽을 수도 있거든요.

 

옆에서 숙취를 이기기 위해(?) 해장술을 마시고 있던 선의가 끙끙거리면서 물어보네요. 그리고 선장은 대답을 하고요.

 

선의 선장이 지구 멸망 같은 거 기다릴 사람 같지는 않고. 그럼 20121221, 그날이 무슨 날인데요?”

 

선장 밤이 가장 길고, 낮이 가장 짧은 날, 해가 다시 길어지기 시작하는 날, 팥죽 먹는 날!!!!

 

선의 맞다. 그날이 동지(冬至)군요. 그래서 아까 요리사한테 팥을 씻으라고 했군요. 그런데 의미심장하네. 지구 종말과 해가 가장 짧은 날이라. 뭔가 연관이 있나 봐요?

 

 저는 치즈 먹는 것을 그만두고 싱크대에 있는 요리사를 봤어요. 아까부터 달콤한 냄새가 풍겨 나오고 있더라니, 팥죽이라는 것이 뭔지 모르지만 굉장히 맛있을 것 같아요. 제가 그러거나 말거나 둘은 대화를 계속 합니다. 누구보고 들으라는 건지.

 

선장 동지를 한해의 끝으로 보기도 해. 해가 가장 짧은 날이니까.”

 

선의 , 그래서 마야사람들이 그 날을 지구 멸망의 날로 생각했던 거군요. 어둠이 제일 긴 날이니 그럴 법도 하네요.”

 

선장 부활에 더 의미를 두지 않았을까? 해가 가장 짧다는 것은 다시 길어진다는 말이니까. 크리스마스가 말야, 크리스마스랑 동지랑 며칠 차이 안 나잖아, 원래는 페르시아, 유럽 등지에서 태양신, 농경신 등을 기리는 축일이었다고 해. 말하자면 태양의 생일이라는 거지. 나중에 예수의 생일이라는 의미가 덧씌워진 거거든.”

 

선의 그러면 왜 사람들은 마야 사람들이 지구 멸망을 예언했다고 하는 거죠? 선장 말대로 라면 1221일은 멸망의 걱정하는 날이 아니라 시작을 축하하는 날이잖아요. 새해처럼

 

선장 지금 마야에서 지구멸망을 예언 했니 어쩌니 하는데 사실 그건 다 구라야. 마야사람들은 멸망을 예언한 게 아니야. 그냥 자기들이 쓸 달력을 20121221일까지만 만들었던 거지. 달력 만드는데 93일까지 만들겠어? 아니면 한해 넘어가서 112일까지 만들겠어? 12 31일까지 만들지. 마야에서는 20121221, 올해 동짓날이 자기들이 생각하는 한 시대의 마지막 날인거야. 그리고 새 시대의 시작이기도 하고.

 

선의 . 기술력이 대단하네요. 몇 백 년 뒤 태양 위치도 계산하고. 그래도 이상하네요. 왜 굳이 2012년인 거죠. 2013년도 아닌.”

 

선장 마야 사람들 기준으로 한 시대가 5125년 정도였다고 해. 세상이 창조된 날, 즉 한 시대의 시작부터 5125년이 흐른 날이 바로 서기로 20121221일인거지.

 

선의 , 1365일도 길다고 생각한 적이 있는데, 그쪽은 말하자면 1년이 5125년이라는 말이군요. 그 사람들은 정말 엄청나게 긴 세월을 생각하는 사람들이군요.”

 

선장 우리가 새해부터 새 달력을 쓰는 것처럼 마야 사람들도 그때부터 새로운 달력을 쓰려고 했겠지. 500년 뒤의 달력을 뭐 하러 미리 만들겠어. 그 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고.”

 

선의 . 말하자면 내년에 한글날이 휴일인지 아닌지 확정되지 않아서 달력제작업자가 2013년 달력을 늦게 인쇄하는 거나 마찬가지네요.”

 

 

선장 오 괜찮은 비유. 마야문명이 침략자들을 물리쳤다면 올해부터 새로운 달력을 만들어 사람들한테 나눠준다고 부산을 떨었겠지. 아니면 기존에 쓰던 달력을 그대로 사용하지 않았을까? 마야달력은 해, , 행성의 운행을 모두 고려해서 만들었다고 하자나. 그러니까 마야사람들은 5125년마다 정확히 반복되는 천체운행의 비밀을 알았던 거지. 믿거나 말거나.”

 

선의 쓸 자리가 모자랐을 수도 있겠네요. 아쉽네요. 마야문명이 남아있었으면 5125년 만에 오는 새 시대를 맞이하는 축제를 크게 했을 텐데. 우리도 가서 신년음식 먹으면서 축제를 즐겼을 거고, 술도 먹고......아침 먹고 술, 점심 먹고 술, 저녁 먹고 술, 창문을 열어보니 술이 오네요. 술고래 세 마리가 비틀거리는데 아이구 좋아라 술꾸러기.”


선장 그놈의 술타령 그만 해라. 안 그래도 우리끼리 동짓날 축제라도 벌이자고 하던 참이었어. 팥죽도 먹고, 선의가 좋아하는 술도 먹고. 그만 둘까보다.”

 

선의 반드시 해야해요. 술 때문이 아니라 마야인들을 추모하기 위해서, 술을 먹, 아니 축제를 해야 해요. 그들이 못다한 축제를......”

 

선장 어쩌다보니 마야 이야기만 길게 했는데. 우리나라에서도 동지를 한해의 시작으로 생각하기도 했어. 동지를 작은설이라고 부르고, 동짓날에 다음해 달력을 나눠주기도 했대. 떡국같은 새해음식인 팥죽도 쑤어먹고. 팥죽은 겨우내 허해진 기운을 보충해준대. 또 팥죽이 악귀를 쫓아서 죽음이나 나쁜 일도 예방 한다고 하고.”

 

지루한 연극 같은 대화를 이제야 끝났어요. 누가 쓴 대본인지 진짜 연극이었으면 망했을 걸요. 적어도 저는 저런 이야기에 관심 없거든요. 팥죽이라는 음식에는 조금 관심이 가지만요. 이때 지금까지 말이 없던 요리사가 입을 열었어요. 


요리사 그럼. 팥죽 먹으면 지구 멸망 안 해? 안 죽는 거야?”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선장이 대답합니다.

 

선장 그래그래. 팥죽 먹으면 안 죽어. 다 살아. 멸망 안 해.”

 

요리사 신난다. 팥죽 만들어야지. 1221일은 팥죽 먹는 날이다!!!

 

선장 그래그래. 1221일은 멸망하는 날도, 해가 가장 짧은 날도, 동지도 아니다. 그냥 팥죽 먹는 날이야. 팥죽 먹는 날.”

 

착한요리사가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저도 기분이 좋아집니다. 오늘 저녁은 거하게 먹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선장과 선의가 계속 말을 합니다. 저는 관심 없지만요.

 

선의 그나저나 마야사람들 말대로 새시대가 왔으면 좋겠어요.”

 

선장 제발 좀 왔으면 좋겠어. 우리 해적질도 좀 잘되고.”

 

선의 1221일에 다 같이 해 뜨는 거 봐요. 다시 길어지는 태양 보면서 술이나 마시죠. 맛나게.”

 

선장 새시대의 태양이라. 좋지."


요리사가 커다란 솥에 무언가를 끓이고 있어요. 아마도 저게 팥죽이라는 건가 봅니다. 보글보글 끓는 소리가 들리고, 달콤한 냄새가 나네요. 배가 고프네요. 조용히 있던 앵무새가 크게 울음소리를 냅니다. 앵무새도 배가 고픈 모양입니다. 빨리 요리사가 팥죽을 만들었으면 좋겠네요.


-Fin-

 

Written by 주방의 새앙쥐

 

Posted by 해적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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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에 왜왔니] 2. 임송희 선생님 댁의 보물구경


“아! 선생님!”

“아이구, 오래간만이네. 여기서 또 만나구.”


올 늦가을 즈음이다. 성북동 최순우 옛집에서 우연치 않게 선생님을 만났다. 동네 산책 나오셨다가 마침 이 곳에 들르신 모양이시다. 내가 석사과정 시절, ‘기본이 튼튼해야 쓸데없는 기교에 빠지지 않는 것’이라며 좋은 말씀을 주셨던 그 분이시다. 툇마루에 앉아 수국차 한잔 기울이시는 모습이 흡사 한 마리 고고한 학이 속세에 잠시 내려와 쉬어가는 한 폭의 그림이다. 오늘도 역시 환한 미소로 맞아주신다. 그 동안에 있었던 이런저런 얘기를 한창 나누던 중 번뜩 생각이 나셨는지 다짜고짜 물으신다. 


“자네, 우리 집 구경 한번 안 갈 텐가?”


거절할 리가 만무하다. 집 구경이라면 환장하는 나인데 하물며 동양화의 대가의 집은 더더욱 구미가 당기는 법. 


“예, 가겠습니다. 언젠가 한 번 꼭 구경하고 싶었어요 선생님.”


옛집을 빠져나와 택시를 타고 성북동 깊숙한 골목으로 올라간다. 보이는 집들이 죄다 으리으리하다. 담장이 무지무지 높다. 옛 봉건영주의 성들이 모여 또 다른 세상을 이룬 것 같다. 그렇게 15분쯤을 들어갔을까. 대리석 계단이 펼쳐진 집 앞에 다다랐다. 


“자네, 우리 집 처음이지?”

“예, 선생님.”

“그럼 우리 집 보물 구경 좀 시켜줄게.”





선생님 댁에는 갖가지 진귀한 돌들이 이곳저곳에 놓여 있었다. 들어가는 정문에서부터 시작되는 하마석(옛날 말을 탈 때 딛는 돌)에서부터 수석, 동자석, 돌확, 괴석, 석등, 돌상과 돌의자 등 옛 돌이란 돌은 모두 한 자리에 모여 있었다.  


“처음에는 하나둘 모으기 시작한 게 나중엔 이게 아주 재미가 있더라구. 뭐가 재미있느냐하면 돌은 방치의 멋이거든. 그냥 내버려둬도 보기 좋고, 물을 뿌리면 또 뿌린 대로의 멋이 있고. 오래 두고 보기에는 질리지가 않고 아주 좋다구.”






돌 하나하나를 설명하시면서 곱게 쓰다듬는 그 손길에 선생님의 돌 사랑이 느껴진다. 곧이어 선생님이 당신의 작업실로 나를 인도한다. 문을 열자마자 물씬 풍기는 먹의 향. 어렸을 적 서예학원의 문을 열고 들어가면 온 방에서 은은하게 퍼지던 정겨운 향이다. 언제든 작업에 임할 수 있도록 갖추어진 붓과 물감, 문진과 문진 사이에 말끔히 펼쳐진 화선지. 간박한 가구들과 이곳저곳에 붙어 있는 선생님의 작품들. 오랜 세월을 간직한 물건들이 엉키고 섞여 한 화가의 예술세계를 깊고 맑게 보여주고 있었다. 선생님이 커튼을 여니 하얀 빛이 우르르 쏟아진다. 






“자네 커피 마시지?”

“아, 제가 타겠습니다.”

“아냐 아냐, 손님이 커피를 타는 법이 어디 있나. 내가 또 보여줄게 있어서 그래. 이게 내 진짜보물이라구.”


선생님이 꺼내 보여주신 건 작은 일회용 플라스틱 커피 스푼. 이게 진짜보물이라구?





“이게 뭔가 특별한 게 있나요?”

“아, 특별하지 그럼. 내가 예전에 아마...30년 쯤 됐을 거야. 우리 안사람이랑 같이 구라파 여행을 갔었다구.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우리나라에 일회용 커피스푼이란 게 없었을 때란 말이지. 호텔방을 들어갔더니 이게 있더란 말야. 우리 안사람이 이걸 보고 어찌나 신기해하고 좋아하던지 그게 그렇게 마음에 남더라구. 내가 그 때 가져온거야. 하하하, 요즘 사람들이야 이런 거 지천에 널려서 신경도 안 쓰지? 그치?”

“.........그래서 이걸 지금 30년 동안 쓰신 거에요?”





“하하하, 내가 별 얘기를 다 하는구만. 나는 커피 타 마실 때마다 이걸로만 마셔. 돌이나 커피스푼이나 다 마찬가지라구. 내가 아끼는 마음으로 오랫동안 간직하면 맛의 차원이 달라지는거야. 우리 안사람이 좋아하니까 나도 좋고 커피스푼도 좋아지는거구. 하하하, 별 얘기를 다 하는구만 내가.”


나는 한 동안 커피스푼만 바라보고 있었다. 할 말을 잃었다. 

 

Written by 선장

Photo by 선장

 


임송희 선생님은 호는 이석(以石), 심정(心井)으로, 충북 증평 출생이다. 서울대 미술대학 동양화과를 졸업하고, 산수화로 이름을 떨쳤다. 심전 안중식, 심산 노수현, 심경 박세원에 이어 심정이라는 호를 박세원 선생에게 받았다. 제 1회 겸재미술상을 수상하였고, 대한민국 미술대전 운영회원 및 심사위원, 동아미술대전 심사위원. 한국미술협회 고문 지냈다. 덕성여자대학교 예술대학 동양화과 교수 및 학장을 역임하였고, 현재 명예교수로 활동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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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해적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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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로 걸려오는 전화의 양이 줄었다고 한다. 이유인 즉, 스마트폰이 대중화되면서 114의 역할을 스마트폰이 대신하고 있기 때문이란다. 114로 전화하여 전화번호를 물어보기보다는 직접 스마트폰의 애플리케이션이나 인터넷 검색을 이용하여 알아보기 때문이다.


그 전 시절엔 집에 하나씩은 가지고 있던 전화번호부를 이용해 전화번호를 찾고는 했다. 물론 이 전화번호부도 시간이 지나면서 114 때문에 차츰 없어지기 시작한 것 중 하나다. 그런데 전화번호부를 없어지게 만든 114도 스마트폰이라는 최첨단 장비로 인해 서서히 없어져 가는 것이다. 디지털 첨단 장비의 출현으로 인해 점차 사라져가는 것들이 비단 114뿐일까?


집에 한 권씩 가지고 있던 전화번호부에 우리 집 전화번호를 찾아 줄긋던 시절 ‘삐삐’라고 불렸던 무선호출기의 등장은 사회적인 큰 이슈를 낳았을 뿐만 아니라 사회생활에 조금이나마 편리함을 제공해 주었다. 

개인이 소지하고 있는 무선호출기에 연락받을 전화번호를 남겨 연락을 취하는 방식인 무선호출기는 지금 생각하면 아주 불편하고 상상도 못할 방식이지만 그 당시엔 정말 획기적이고 사회에 큰 이슈를 자아낼 만했다.


무선호출기를 이야기하자면 공중전화 또한 빼놓을 수 없다. 지금은 1인 1 휴대폰 시대라 공중전화가 어디 있는지조차 모르지만, 그 당시 없어서는 안 되는 것 중 하나였다. 공중전화의 위치까지 기억하는 사람도 있었고, 무슨 통화를 그리 길게도 하는지 기다리는 사람들을 짜증나게 했던 사람도 있었다. 더불어 공중전화부스 안에는 꼭 쇠사슬에 묶여 있던 전화번호부도 함께 있었는데 사람들이 필요한 부분을 찢어가 항상 너덜너덜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공중전화를 사용하기 위해 동전을 바꾸러 다니는 사람들, 공중전화 위에 지갑을 올려놓고 갔던 사람들 그리고 전화카드. 공중전화에 관한 에피소드를 나열하자면 끝이 없다. 전화번호부나 공중전화, 무선호출기 등 한때는 생활하면서 꼭 필요한 것들이었지만 휴대폰이라는 첨단 장비의 보급으로 점차 잊혀가는 시대의 유물이 되어가기 시작했다.

휴대폰의 대중화는 진정한 디지털 시대의 시작이라고 해도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사회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휴대전화의 등장은 전화번호를 휴대폰에 저장함으로써 더 이상 개인적으로 전화번호부를 가지고 다니지 않게 됐고, 공중전화는 비바람을 피하는 용도 정도로 사용되고 있으며, 무선호출기는 ‘아! 내가 이걸 사용하던 시절도 있었지’하고 추억을 되짚어볼 만한 물건이 됐다.


휴대전화가 보급되고 나서 우리 생활에 가장 많은 변화를 가져온 것 중 하나가 바로 ‘약속장소의 결정’이 아닐까 한다. 휴대전화가 보편화되면서 약속장소를 미리 정하지 않아도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게 됐다. 하루 전 혹은 미리 연락해 “어디서 몇 시에 만날까?”라고 했던 것들이 이제는 휴대폰을 통해 바로바로 정하고는 한다. 그러나 이런 변화와 함께 실종된 것도 있으니 바로 ‘약속 시간’이다.


명확히는 ‘잘 지켜지지 않는 약속시간’이겠지만 언제부터인가 약속시간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던 것 같다. 오죽하면 코리아 타임이라는 말까지 있을까? 휴대전화가 없던 시절은 약속시간에 늦게 되면 상대방이 마냥 기다려야 한다는 책임감 덕뿐인지 약속시간이 잘 지켜졌다. 휴대폰의 보급된 후부턴 늦더라도 연락이 가능하니 조금은 늦어도 된다는 생각이 약간은 생겼나 보다. 물론 휴대폰으로 인해 엇갈리고 답답한 마음도 사라졌다고는 하나 핸드폰이라는 최신식 기기 덕에 사람이 지켜야할 기본적인 것조차 잊고 사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휴대폰의 진화는 멈추지 않고 계속되어 작고 휴대하기 편하게 발전하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부터는 전화기의 개념을 떠나 사진, 동영상 촬영 등 어느새 생활필수품으로 자리 잡아갔다. 휴대폰이 손에 없으면 불안하기도하고 허전하기도 하며 휴대폰도 없는데 괜히 문자소리가 귀에 맴도는 경우를 한 번쯤은 느껴봤으리라…


오늘날 휴대폰과 스마트폰으로 인해 많은 것들이 편해졌다. 그러나 지하철이나 친구들끼리 만나서도 스마트폰만 쳐다보고 있는 것을 보자면 삭막한 느낌이 들 때도 있다. 그래서인지 배고파 끓였던 라면의 받침이었던 그을린 전화번호부가 그립고 따뜻했음을 느낄 때가 있다.


written by 선의


Posted by 해적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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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12.14 15:04

    kbs에서 인간의 조건이라는 예능하는데 그거 보면서 핸드폰 없애고 싶다는 생각 많이 했어요. 전화번호부까지는 몰라도 ㅋㅋ 요즘 '기억', '감성' 이런게 핫이슈인듯요.



"모모씨, 이리와서 좀 먹어요. 왜 이렇게 안먹어요?"

"아...저, 점심 먹은지가 얼마 안되서 간식은 그냥 그러네요."

"에이~남자가 되가지고 점심가지고 되겠어요? 이리 와서 이거 빵이랑 뻥튀기도 좀 먹어요."


지난 약 4년 동안 일을 하면서 주구장창 들었던 이야기다. 현재 시간 오후 2시 30분, 사무실의 여성 한 분이 조용히 나가더니 이내 빵봉지와 뻥튀기를 산더미 만큼 들고 들어온다. 간식이 도착하면 순식간에 우르르 달려가 와글와글 떠들면서 이걸 먹는건지 흡수하는건지 알아채지 못할 정도로 먹어치운다. 참고로 점심은 12시 30분에 다 먹은거다. 


"아, 너무 배부르다~~~이제 못 먹겠다. 다이어트 해야되는데 아놔 미치겠네~~"

"맞아맞아, 우리 요거까지만 먹고 오늘은 끝하자!"


말만 그렇지 ㅠㅠ. 그렇게 말하면서도 계속 먹는다. 한편으로 재미난 것은 서로 그렇게 먹어대면서도 누가 더 많이 먹고, 누가 더 적게 먹는지를 끊임없이 견제하고 관찰한다. 그녀들 마음 속엔 '어우, 쟨 뭔데 저렇게 안먹어? 아 재수없어, 나도 그만 먹어야지' 하는 묘한 감정이 또 하나 있다. '먹지 말아야지 먹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반대로 상대 여성에 대해서는 '더 먹어요 그것가지구 되겠어~요것도 먹구 저것도 먹어요 호호호' 위해주는 척 하면서 서로가 서로를 계속 매긴다. 여기서 덜 먹은 사람은 '튕기네 어쩌네' 구설수에 오르기 마련이고, 가장 잘 먹는 사람은 '마음씨 좋은 푼수'로 통한다. 그렇게 30분 미친듯이 먹고 나면 잠시 동안 잠잠해진다. 남자인 나는 먹는 둥 마는 둥 애먼 커피만 들이키다가 다시 자리로 돌아온다. 


여자가 많은 부서에서는 어떤 직장에서건 반드시 간식을 따로 먹을 수 있는 전용 코너가 있다. 적어도 내가 경험한 바에 따르면 말이다. 각종 유명브랜드의 과자들과 음료, 가끔 외부인이 방문했을 때 선물로 주고가는 고급식품들로 한 구간이 완전히 꽉 차있다. 입이 심심하거나 스트레스가 올라갈 때, 어김없이 찾아가 먹을 수 있도록 해 둔 것이다. 그녀들은 그 구간이 비지 않도록 늘 신경쓴다. 그래서 서로 품앗이처럼 월요일은 누가, 화요일은 또 다른 누가, 수요일은 또또 다른 누가 간식을 가져와 서로에게 보여주면서 자랑한다. "우와, 맛있겠다. 역시...XX씨는 간식센스가 보통이 아니야!" 하면서 칭찬해주고 격려해준다. 기분 좋아진 XX씨는 그 다음주 더 좋은 간식으로 여자직원들에게 화답한다. 박수세례가 쏟아진다. 





그것도 잠시...현재 시간 4시 30분. 간식 먹은지 두 시간 지났다. 이쯤 되면 서서히 여자들의 간식 본능이 일어난다. "아...그새 출출해지네. 모 먹을까?" "아 배고파 나 미쳤나봐 과자 하나 먹어야지~~""제가 커피 내려서 올께요~!" 하며 슬슬 또 간식 먹을 준비를 한다. 


"우리 가운데에 놓고 한 개씩만 집어가서 먹어요" 


말만 그렇지 ㅠㅠ. 한 개씩이 뭐냐. 기다란 뻥튀기 봉지를 간식 먹는 책상에 놓는다. 처음에야 한 개지. 두 번째는 세 개, 세 번째는 다섯 개, 네 번째는 10개...뭐야 이거? 가서 보면 이미 다 먹고 없다;;; 서로 하나씩만 먹자고 약속해 놓고 다 먹었으니...서로 민망해서 다음 간식을 꺼내기가 어려워진다. 그래서 실험을 해봤다. 초코과자봉지 하나 꺼내 한 두어 개만 먹고 책상에 둔 채 내 자리로 돌아갔다. 아니나 다를까, 서로 바톤 터치를 해가면서 한 움큼씩 집어간다. 계속 먹는다. 또 먹는다. 또 먹는다. 또 먹는다. 또 먹는다. 5분만에 봉지 털렸다. 어느덧 퇴근 시간이다. 오늘은 회식이다.


회식...말이 회식이지. 술은 애시당초 관심도 없다. 이미 뭘 먹으러 갈진 그녀들이 다 정해놨다. 그저 소수로 밀린 남자 몇 명은 회식자리 귀퉁이에 쭈구려 앉아 밥 겸 술 겸해서 먹는다. 가운데에선 이미 로마의 대향연이 벌어졌다. 꽃게탕의 게는 이미 다 뜯겨져 있고, 뼈와 국물이 낭자하게 흩어져 있다. 그 다음주로 파전~~~. 그 다음으로 회무침~~~. 마무리로 냉면. 젓가락 휙휙 날아다닌다. 막막 뜯어먹는다. 서로간에 뭐라뭐라고 속사포 랩으로 '블라블라블라블라블라 깔깔깔깔깔 하하하하하' 도저히 연관성 없어보이는 주제들도 알아서 막 이어가며 수다 천국을 만든다. 안주는 벌써 5번이 돌았다. 난 먹은 것도 별로 없는데...돈은 N분의 1로 낸다. 


"소화도 시킬 켬 커피라도 한잔 하지"





커피만 먹냥? 케잌도 먹지 ㅠㅠ. 초코케잌, 치즈케잌, 고구마케잌, 초코머핀에 마카롱. 자자자잠깐만...몇 개를 시키는거야 도대체? 로마의 대향연 시즌 2가 벌어진다. 집 얘기, 애인 얘기, 돈 얘기, 뒷담 얘기, 조카 예쁘다는 얘기, 너무 먹어서 옷이 안맞는다는 얘기, 우리 엄마랑 어제 쇼핑을 갔다는 얘기, 동생이랑 대판 싸운 얘기, 바바바바바바바 두두두두두두두두두 계속 얘기한다. 그러면서 또 재촉한다. 


"허허, 모모씨 오늘따라 왜이렇게 안먹어요? 자 이것도 먹고 요것도 먹고 좀 먹어요. 먹어야 내일 기운내서 일도 하지"


얘들아...저녁 먹었잖니? 지들이 다 먹고 남은 거 남자 몇 명 앞으로 다 밀어넣는다. 슬슬 집에 가고 싶어진다. 배터져서 내일 출근 못할 것 같다. 9시 반 쯤 되니 그녀들의 폭풍간식흡입행사가 막을 내렸다. 


"아~~오늘은 자기 전에 꼭 스트레칭해야지~"

"난 러닝머신이나 좀 타야겠다!"

"샤워 오래해도 살 빠진대요!"

"난 운동 싫어. 그냥 살 찌고 말래 호호"


........앞자리의 남자 동료와 눈교환을 한다. 집에 가는 척 하면서 둘 만 다른 길로 빠진다. 호프집으로 들어간다. 안주는 그냥 오징어 땅콩. 맥주만 마신다. 그냥 허허 웃고 마시고 씁쓸하게 이런저런 얘기나 좀 두리뭉실하게 하다가 둘이서 3000cc딱 나눠 마신다. 적당히 술도 올라온게 기분 좋다. 이렇게 집에 가믄 되는 거다. 


흔히 여자들은 밥배, 간식배, 디저트배, 커피배, 술배가 따로 있다고 한다. 그런데 여기에서도 간식배와 디저트배는 엄연히 다르다고 한다. 디저트배는 점심 먹고 나서 먹는거고, 간식배는 출출할 때 쯤 먹는게 간식배란다. 그리고 밥먹으면서 술은 마시지 않으므로, 밥배와 술배는 구분된다고 한다. 음...남자의 입장에서는 크게 와닿지 않는 대목;;; 왜일까? 





여기서 잠깐. 인류가 수렵, 채집 활동으로 먹고 살던 그 시절로 돌아가보자. 


남자가 하는 일은 무어냐? 사냥이다. 사슴이건 노루건 남자는 그거 하나만 쫓아다닌다. 남자의 머릿 속엔 하나 뿐이다. "저 놈 하나만 잡자." 활로 쏘아 맞추어 어깨에 짊어지고 온다. 그걸로 가족에게 할 의무는 끝났다. '오로지 한 놈만 잡는다'다. 종일 돌아다닌지라 피곤하다. 거하게 저녁 한 판 때리고 잠에 든다. 남자에게 중요한 건 든든한 주식이다. 


그렇다면 여자는 노느냐? 그렇지 않다. 채집을 한다. 집 주변에 있는 먹을만한 풀데기를 찾아다닌다.  그 중에는 나물도 있겠고, 버섯도 있겠고, 열매도 있겠고, 꽃도 있겠고, 그냥 풀도 있겠다. 어쨌든 이것이 먹을 수 있는 건지 없는건지부터 선별한다. 그리고 먹을 수 있는 것이라면 이것저것 다 뜯어온다. 그리고 집 한켠에 정성껏 분류해서 오늘 아침엔 이거, 점심엔 저거, 저녁엔 그거 다 정해놓는다. 평소에 하는 일이 '선별과 분류'다. 직접 입맛으로 간별하면서 조금 더 신선한 것, 조금 더 맛있는 것을 꼼꼼하고 면밀하게 따진다. 이미 여자의 뇌 속엔 수십가지 풀데기로 꽉 차 있다. 그리고 이웃집 누구네 것과 비교하면서 우위를 따지기도 하고, 나눠 먹기도 하고, 수시로 이 집 저 집 돌아 다니며 풀데기 정보를 공유하고, 교환한다. 여자에게 중요한 건 주식 외의 다른 것들이다. 그 다른 것들의 획득에 여자의 자존심이 걸려있다. 


김장철이다. 김장철만 되면 아랫집 윗집 옆집 엄마들 서로 바삐 초인종 눌러댄다. 통에 정성껏 담아와 먹어보라고 준다. 엄마는 또 받아서, 먹은 통에 자신이 담근 김치를 건네준다. "누구네 김치래더라. 맛이 좋다. 먹어봐라". 세상에...아침상에 똑같은 겉절이 김친데 우리집꺼 플러스에 안국동네, 옥인동네, 연희동네, 홍제동네, 옆집 할머니네 총출동이다. 김치상인지 밥상인지...먹어보고 비교해보란다. 안 먹으면 직접 손으로 찢어서 밥상에 올려준다. 어디네가 제일 맛있냐고


간식이고 김치고 나물이고 풀데기고 다 따로 노는 것 같지만 결국엔 다 여자의 '선별과 분류' 본능에서 시작하는 것이다. 


그래서 '간식'이 아니고 '간식거리'다. 


Written by 선장


Posted by 해적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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