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 처음이신 분 계세요?"

 

강사가 묻는다. 조심스럽게 손을 들었다. 하나, 둘...여섯 명 중 두 명이 생초짜. 생초짜는 70센티미터 초보자 풀의 라인 한편으로 안내되었다. 라인 저편은 초보분들의 영역이다. 같은 물을 공유하지만 차이는 어마어마하다.

 

"지금부터 음 파 할거에요. 물속에서 숨을 내쉴 때는 코로 음 하고 물밖에서 파 하고 입으로 마시는 거에요."

 

강사가 풀에 시범을 보여준다. 그래, 숨 쉬는 것은 자신이 있지. 하고 생각했다. 음 파 음 파 음 파를 연습했다. 여기까지는 할 만했다.

 

다음에 한 것은 앉아서 물장구 치는 것이다.

 

"앉아서 손은 뒤를 짚고요. 무릎을 펴고 힘차게 물장구를 치면 되요."

 

역시나 시범을 보이며 강사가 알려준다. 몇번 따라해보니 물장구를 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다음에는 물속에서 물장구를 할게요. 난간을 잡고 몸을 편안하게 뻗는 다음 허벅지를 움직인다는 생각으로 물장구를 치세요."

 

강사의 시범대로 해봐도 좀처럼 잘 되지 않는다. 나의 여자동료는 곧잘 따라한다. 다리를 막 휘저으니 몸이 물에 떠. 질 수 없다는 마음으로 다시 해봐도 실패. 어느새 발은 바닥을 차고 있다.

 

"남자분들은 몸에 너무 힘을 줘서 많이들 그래요. 근육도 많고. 어깨에 힘을 빼고 해봐요. 다리를 너무 꽉꽉 누르지 말고 다리가 빠지면 들어올린다는 생각으로 하면 되요."

 

여자동료에게 부러움의 시선을 던지고 있을 때 옆에서 '니 마음 다 알아'라는 시선을 던지던 강사의 말이다. 말은 쉽지. 몸은 가라앉는다. 몇번 몸을 잡아주던 강사의 한마디,

 

"남자회원님, 바닥에 엎드리시고 허벅지만 물에 내놓고 물장구쳐 보세요. 힘드시면 음 파 하시고요. 여자회원님은 이쪽으로 오세요."

 

여자동료는 생초짜에서 초보로 신분이 상승되었다. 그리고 나는 사실상 '땅짚고 헤엄치기'를 한다. 의미는 '아주 하기 쉬운 일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에서 '아주 쉬운 일을 능히 해야지 못하는 것을 이르는 말'로 바뀐다.

 

사실 부끄러울 만도 한데 그런 생각은 들지 않았다. 원래 못한다고 인정해버리니 바닥에 엎드려 물장구치는 걸 즐길 수 있었다.

 

초등학교 체육시간에 수영을 배울 때도 좀처럼 뜨질 못했다. 부표는 나의 친구. 진작에 뜰 줄 알았으면 수영할 줄 알았겠지. 하고 중얼거렸다.

 

"많이 좋아졌어요. 근데 아직도 어깨에 힘이 들어가네요. 그리고 구석에서 하지 마시고 가까이 오세요."

 

혼자 있는 것이 안쓰러웠던 모양이다. 라인 가까이로 조금 다가서 연습을 한다. 강사가 이제는 팔을 쭉 펴고 음 파와 함께 물장구를 치게했다. 음 할 때 몸이 조금 뜨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그러다가 파 하려고 고개를 들면 다시 가라앉았다.

 

"......이 분이 안 뜨는 것은 발장구를 어느 정도 쳐야 뜨는지 잘 몰라서에요......"

 

물로 전달되는 말소리가 꿈같다. 초보분들의 시선을 느끼고, 생초짜의 쿨한 모습을 보여주려 했다. 나는, 전혀 개의치 않아. 나는 초보인 걸. 초보니까 더 열심히 해야지. 이런 느낌을 보여주려 했으나. 현실은, 어떻게 뜨지도 못하지? 불쌍하다. 이런 느낌이었을까.

 

한시간이 다 되어 다함께 손을 모아 화이팅 하고 끝났다. 감히 예상해보자면 한달내내 바닥짚고 물장구만 칠 것 같다. 물에 대한 두려움이 하루이틀 사이에 고쳐질 게 아니다.

 

새로운 것을 배우는 느낌이 나쁘지 않다. 그리고 몸에 느껴지는 새로운 감촉. 다 내려놓고 처음부터 차근차근히 배우는 것이 얼마 만인지. 지금껏 너무 아는 척만 하고 있었는다. 물에 뜨지도 못하면서.

 

written by 잠수부


Posted by 해적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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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제목이 톰과 제리다. 70년대중반~80년대초반에 태어난 사람이라면 누구나 보고 듣고 자란 친숙한 만화 주인공들이다. 2011년, 그들을 다시 캔버스 위에 올려놨다. 이런 그림이 아주 잘 그린 것이라고 생각한다. 작가가 그림을 보는 감상자에게 무한한 해석의 세계를 열어주고 있다. 현대미술의 묘미에 아주 충실한 작품이다. 

 

제리가 테이블 가운데 놓인 그릇 위에 맘편히 걸터 앉아 치즈의 맛에 흠뻑 취해있다. 그 옆에 톰이 보인다. 눈을 부라리며 날카로운 발톱으로 당장이라도 제리를 낚아챌 기세다. 매번 골려주는데 재미붙인 제리와 늘 잡아먹지 못해 안달이 난 톰의 심리상태가 그림 속에 잘 나타나 있다. 

 

그런데 이 둘을 사이에 두고 검은 액자틀 하나가 놓여져 있다. 문제는 그 검은 액자틀이 진짜인지 아니면 가짜인지의 여부다. 어찌보면 뚫려 있는 액자틀 속에 톰이 고요히 잠복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또 다른 한편으로 보면 톰을 그린 그림에 불과한 것 같기도 하다.

 

감상자를 갸우뚱하게 하는 데는 뒤에 놓인 액자들도 한몫한다. 화가는 맨 앞에 놓여진 액자틀만 정면으로 제시한 채 나머지 액자는 측면으로 돌려 그것이 어떤 그림인지 정확히 알 수 없게 만들었다. 이것이 탁월한 센스다. 

 

나는 아마 모든 액자에 톰이 그려져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분명 이 화실은 고양이를 좋아하는 화가의 화실일 것이며 그 화가는 자신의 반려자와 다름없는 고양이 톰을 이번 전시 작품의 모델로 삼아 화실 전체를 꾸며 놓았을 것이다.  


'톰의 화실'에 잠입한 제리는 처음부터 이렇게 양반처럼 앉아 느긋하게 승리의 자세를 취했을 것 같진 않다. '이게 진짜 톰이야 아니야?' 하며 슬금슬금 곁눈질로 톰의 액자들을 신중하게 하나하나 짚어 나가면서 결국 '이건 그림이야!' 결론 내린 후에야 마음을 놓았겠지. 

 

제리의 털이 흰색이란 점도 퍽 흥미롭다. 원래 제리의 털 색깔은 붉갈색이다. 일반적인 쥐에 대비되는 존재임을 부각시키려고 한 듯 보이는데, 실험용 쥐처럼 정말 우둔함을 나타내려고 한 것인지 아니면 뭔가 다른 특출난 존재임을 드러내려고 한 것인지, 그것을 감상자의 몫으로 남겨두었다. 


제리가 모든 치즈를 의기양양하게 먹어치울지, 톰이 액자틀에서 튀어나와 제리를 먹어치울지, 일촉즉발의 상황이다. 과연 무엇이 맞는지는 이 그림을 그린 짓궂은 톰의 화가만이 알겠지. 

 

<작품: Tom and Jerry_유민석_2011>

    - 한국미술, 내일을 보다 / 2011 2. 9 WED - 2. 18 FRI / AKA Space 


Written by 사샤


Posted by 해적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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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일 견딜 수 없던 혹한이 계속됐다. 집에 들어 앉아 있어도 추운 날, 이상한 소리에 보일러실에 들어갔더니 태평양 저리가라 물바다 되어 있었다. 보일러가 터졌는지 똑똑 떨어지는 물방울에 물바다가 되어있었다. 뭐 별수 없이 세숫대야를 놓고 퍼 나르기 시작했다. 한여름 장마철도 아닌 한겨울에 때 아닌 물난리라니 정말 귀찮기 그지없었다.


한 시간쯤 퍼 나르자 대충정리가 됐다. 보일러실에 물 한번 고였을 뿐인데 아주 귀찮음의 극을 달리고 있었다. 맨날 물난리가 나는 것도 아닌데 왜 이리도 귀찮나 싶었다. 문득 생각해보니 나 어릴 적 연탄불로 한겨울 나던 시절 엄마는 맨날 연탄불을 갈고 관리하고, 얼마나 귀찮았을까 싶다. 보일러라는 편리한 시설에 너무도 물들어 겨울에 그거 조금 움직였다고 이렇게나 짜증나고 귀찮은데 말이다.


엄마에게 달려가 물었다. “엄마~ 우리 예전에 겨울 준비할 때 연탄 얼마나 준비했어? 백장? 이백장?” 엄마는 잠시 생각하지더니 “계산해봐 하루에 두 장 정도 쓰니깐 얼마나 드는지” 겨울이 대략 3개월이라 쳐서 계산 두두려봤더니 백장은 택도 없었다. 


잘은 기억안나지만 겨울에 연탄을 얼마나 들여놓느냐에 따라 그 집안의 부가 상징됐던 거 같다. 돈이 없어 50장 놓는 집, 돈이 있어 한번에 100장, 200장 씩 들여 놓는 집. 연탄이 차곡차곡 쌓인 모습을 생각하면 지금도 왠지 뿌듯하고 든든해지는 기분이다. 


예전엔 연탄을 빌려주기도 했다. 우리 집도 종종 옆집 아주머니에게 연탄을 빌려주고는 했는데 나중에 아저씨 월급날이 돌아와 연탄을 들여놓을 때 갚아주고는 했다. 지금으로 비교하면 기름보일러 기름 빌려주는 거랑 비슷하다고나 할까? 아무튼 그래서 겨울나기에 연탄은 중요하다는 것을 어린나이지만 조금이나마 깨달았던 거 같다.


사실 나에게 연탄은 노는데 사용한 기억이 대부분이다. 지금처럼 쓰레기 버리는 곳이 정해져 있지 않던 예전에는 대문 옆 담벼락에 주로 연탄재를 쌓아 놓고는 했다. 겨울철이면 골목 곳곳 쉽게 찾아 볼 수 있던 것이 연탄재였다. 

겨울에 놀 것도 없던 애들에게 연탄재는 참 차고 놀기 좋은 장난감이었다. 물론 연탄재 차고 놀다 동네 어르신들에게 많이도 혼났다. 가끔 짓궂은 아이들은 연탄재를 친구들에게 던지기도 해 옷이 먼지투성이가 되기도 했다.



사실 연탄재 재활용의 최고봉은 눈사람 만들 때다. 지금은 연탄재가 없어 그냥 눈을 뭉쳐서 눈사람을 만들지만 예전엔 연탄재를 굴려서 기본 틀을 잡아 눈사람을 만들었다. 연탄재를 몇 바퀴 굴리면 순식간에 커다란 눈덩이가 만들어지고는 했는데 아무래도 안에 연탄재가 들어있다보니 그 눈덩이는 단단하기 그지없었다. 그리고 연탄재가 기본 틀을 단단히 잡아주니 만들기가 편했다. 가끔은 안에 연탄재가 들어있는 줄 모르고 눈사람을 부시다가 다리 아파하는 사람도 종종 있었다. 눈사람을 만들기 위해서 연탄재는 최고의 아이템이었던 셈이다.


아이들뿐만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연탄재는 겨울철 꼭 필요했는데 눈이 녹지 않고 얼어버린 골목길 제설(?)용이었다. 제설이라는 단어는 사실 어울리지 않지만 빙판길에 연탄재 몇 개 부셔 놓으면 어르신들도 언덕길 오르는데 문제없었다. 지금도 우리 집 앞에는 아직도 눈이 그대로 얼어붙어 빙판길인데 연탄재라도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간절하다. 가스보일러가 생기면서 집에서는 편리해졌지만 골목길 입장에서는 오히려 불편해진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연탄이 없어지면서 연탄재는 사라졌다. 사라진 것은 연탄재만은 아니었는데 연탄에 꼭 필요한 번개탄과 연탄집게도 볼 수 없게 됐다. 번개탄은 연탄불을 피우는데 있어 없어서는 안 될 꼭 필요한 물건이었다. 종종 엄마의 심부름으로 동네 구멍가게에 가서 사오고는 했는데 그렇게도 불이 안 붙던 연탄이 번개탄 하나면 순식간에 불이 붙고는 했다. 어린나이에 번개탄의 능력은 거의 해리포터 수준이었다.


연탄집게에 대해서는 사실 좋은 기억이 없다. 맨날 잘못하면 엄마한테 연탄집게로 맞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좋은 기억이 있을 리가 없다. 그냥 사라진 편이 나는 좋다.(웃음) 그게 쇠로 만들어진 거라 생각보다 맞았을 때 많이 아프다. 그래서 연탄 갈 때 잘못한 걸 엄마에게 걸리지 않는 편이 좋다. 대부분의 엄마들은 자식이 잘못했을 경우 들고 있는 물건으로 때리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연탄은 없어졌다. 그 덕에 연탄가스 중독 같은 사고도 없어졌다. 보일러는 꺼질 염려 없어 많은 어머니들, 며느리들의 걱정을 덜어 줬고 늦은 밤 연탄불이 꺼져 발을 동동 구를 필요도 없어졌다. 지금의 연탄은 구시대의 유물이 됐고 번화가 간판에서나 볼 수 있는 단어가 됐다. 그래서 은은했던 연탄불에 구워 먹던 가래떡도, 달고나도 연탄과 함께 아련한 추억이 됐다.


written by 선의



Posted by 해적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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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01.08 09:17

    비밀댓글입니다

 

 

영국하면 떠오르는 것은 무엇이 있을까요? 빅벤(Big Ben), 타워브리지(Tower Bridge), 웅장한 대성당들, 영국 차(tea), 빨간색 2층 버스, 축구, 펍, 셰익스피어, 해리포터 등등. 역사의 한 페이지를 화려하게 장식한 제국이었던 만큼 다양한 이야깃거리가 많겠지요. 그런데 음식 얘기는 빠졌네요. 영국에서 조금이라도 지내셨던 분들은 잘 아시겠지만 음식이 좀 그렇긴 하지요. 하지만 오늘은 ‘영국의 음식’이라고 이름붙일 수 있는 몇 되지 않을 요리들 중에서 대표인 피쉬앤칩스에 대해서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피쉬 앤 칩스의 역사와 문화

 

피쉬앤칩스는 19세기 후반 영국 북해의 트롤어업의 발전과 항구와 주요 거점 산업도시를 이어주는 열차의 발전과 함께 노동자계층의 배고픔을 해결해주는 음식으로 부상하게 됩니다. 신선한 생선이 인구가 집중된 도시로 빠르게 운송될 수 있었기 때문이죠. 이렇게 1860년에 첫 번째 피쉬앤칩스 가게가 런던에 문을 열게 됩니다.

 

감자튀김은 프랑스에서, 반죽한 생선을 튀겨 먹는 문화는 유태인 이주민들에 의해 전해졌다고 합니다. 현재 미국에서는 감자튀김을 프라이(fries)나 프렌치프라이(French fries)라고 부르지만, 영국에서는 칩스(chips)라고 합니다. 그 맛과 만드는 방법은 똑같지만 칩스가 좀 더 크고 두껍다고 볼 수 있습니다.

 

감자튀김 역시 19세기 후반 같은 시기에 영국으로 들어온 것으로 보입니다. 스코틀랜드 지역에서부터 내려온 감자튀김 문화와 잉글랜드 남부에서 올라온 생선튀김 문화가 결합되어 피쉬앤칩스라는 독특한 형태의 음식이 탄생되었다고 합니다. 당시 유럽 전 지역에서는 이미 튀김식의 요리들이 일반화되었지만, 생선과 감자의 조합으로 요리가 된 것은 영국에서 시작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참고로 첫 번째의 감자튀김 가게는 Oldham의 현재의 Tommyfield Market 자리에서 문을 열었다고 합니다. 이곳을 바로 영국 패스트푸드의 기원지라고 볼 수 있는 것이죠.

 

제2차 세계대전 중 피쉬앤칩스는 배급받는 물품을 제외하고 영국 국민들의 허기를 달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음식이었습니다. 그리고 20년 전만해도 이것을 신문에 싸서 주곤 했습니다. 요즘에는 흰 종이 ― 기름이 먹는 특별한 종이 ― 에 싸서 먹기 편하게 종이상자에 담아줍니다. 식당 안에서도 먹기도 하지만 take-away 식으로 길가나 공원 벤치에 앉아 먹곤 합니다. 지역마다 피쉬앤칩스 식당도 있고, 전국적으로 유명한 체인점도 있고, 길가 트럭에서 파는 행상인들도 있습니다. 가게 이름도 다양한데요. 예를 들어서, "A Batter Plaice", "Salmon to Watch Over Me", "A Salt and Battery", "The Codfather","The Frying Scotsman","Oh My Cod", "Mullet Over", "Chip Off The Old Block" 등과 같이 재미있는 이름의 가게들이 있습니다. 

 

 

 

 

근래 들어 건강을 생각하는 사람들은 패스트푸드인 피쉬앤칩스를 잘 먹지 않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만개 이상의 가게가 영국 나라 안에 있고, 250,000개의 그릇이 작년에 팔렸다고 합니다. 영국국민 중 50%가 한 달에 한번, 14%가 일주일에 한번 먹는다고 합니다. 이것은 여전히 피쉬앤칩스가 다른 식당에서 한 끼 식사하는 것보다 저렴하기 때문이죠. 합리적인 가격에, 노동자계층의 역사가 깃들어있고, 그리고 한 끼 배불리 먹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 것이죠. 피쉬앤칩스는 음식을 떠나 그들에게는 문화 그 자체인 것입니다.

 

로만가톨릭에는 금요일에 고기를 안 먹는 전통이 있습니다. 특히 사순절기간에 말이죠. 그래서 생선 요리를 다른 고기에 대체해서 먹곤 했습니다. 심지어 이러한 전통이 신교도의 프로테스탄트에게 영향을 주었습니다. 그리하여 전통적으로 금요일에는 피쉬앤칩스를 먹는 경향이 아직도 남아있습니다. 동전오배건이가 다녔던 영국의 대학 College 식당에서도 금요일마다 피쉬앤칩스가 나왔다고 하네요. 지겹게 먹었다고 합니다(동전오배건, 그의 글이 궁금하시면, [동전오백원] - Intro。500원 짜리 남자로 고고~). 

 

만드는 방법

 

감히 집에서 해 드시라고 추천하지는 않기에 간단하게 소개하겠습니다. 영국에서도 가정에서 피쉬앤칩스를 만들어 먹지는 않는답니다. 주로 피쉬앤칩스로 codhaddock (대구의 일종), 이 두 생선을 가장 많이 사용된다고 합니다. 생선을 밀가루 반죽 입히고 식물성 기름에 튀깁니다. 영국에서는 두 생선을 다르게 비교하지만 한국에서는 대구와 대구의 일종으로 사전에 검색되네요. 칩스, 즉 감자튀김도 똑같은 방식으로 만듭니다. 먹을 때에는 기호에 맞게 소금이나 식초를 뿌려 먹습니다.
 
이 두 생선은 영국해안 근처에서 많이 잡히던 생선입니다. 하지만 가장 인기 있는 생선종류인 cod(대구)는 요즘에는 잘 잡히지 않아서 가격이 많이 올랐다고 합니다. 그래서 다른 종류의 생선으로 대체하려고 하나 사람들이 맛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나요. 역시 뭐니 뭐니 해도 피쉬앤칩스는 'cod and chips'입니다.

 

앵무새의 맛 평가

 

 영국에 놀러갔을 때 잉글랜드 동북부, Yorkshire주의 항구 도시인 위트비(Whitby)를 들렸습니다. 이곳에는 영국에서 가장 맛있는 피쉬앤칩스를 파는 식당이 있다고 해서 갔었죠. Magpie‘s Cafe라는 이름의 식당입니다. 바닷가에서 먹는 것이라 그런지 신선한 느낌도 들고요. 도시에서 사먹었을 때보다 느끼한 맛이 덜해서 다 먹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가격은 비쌉니다. Haddock and chips가 레귤러(340g)로 £11.95이고, Cod and chips가 레귤러(310g)로 같은 가격입니다. 물론 takeaway는 £4.95로 비슷한 가격입니다. 동북부에 가실 일이 있으신 분들은 위트비에 들려서 맛보는 것도 좋은 추억이 될 것입니다. 

 

홈페이지: www.magpiecafe.co.uk

 

그러니깐, 맛이 어떠냐구요? 맛으로만 드신다고 하지 마시고, 영국 문화를 접해본다고 생각하시는게 좋을꺼 같네요 :) 


Written by 앵무새

 

Posted by 해적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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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탐정 코난은 1994년부터 일본 ‘주간 소년 선데이’에서 연재를 시작으로 아직까지 연재되고 있는 추리만화다. 코난은 어릴 적 보던 ‘소년탐정 김전일’에 뒤를 이어 우리나라에서도 꾸준히 인기를 얻고 있는 작품인데 어린모습을 한 남도일(쿠도 신이치)이 추리를 통해 사건을 해결하는 내용이다.


재미있는 코난을 한번 삐뚤어지게 보면 참 무섭다. 우선 코난은 물론 함께 다니는 아이들은 멘탈이 甲이다. 코난이 여행을 가든, 어디에 있든 사건은 터진다. 그 사건은 일반 범죄도 아닌 치밀한 계획에 의한 살인 사건이다. 생각해보라. 코난이 있는 자리에선 누군가 항상 죽는다. 그리고 그 아이들은 항상 살인 현장에 있다. 한 번에 안 와 닿는가? 그럼 이렇게 생각해보자.


내가 여행을 갔다. 근데 그 자리에 코난이 나타났다. 그 말은 즉, ‘누군가 죽는다’이다. 이것보다 무서운 일이 있을까? 차라리 시걸 형님이 나타났다면 사람이 죽는 것을 최소화해 구해줄테니 그나마 안심이다. 근데 코난은 무조건 누군가 죽는다. 누군가 죽어야 사건을 해결한다. 한 명의 죽음으로 끝 날 때도 있지만 가끔은 연쇄살인으로 이어질 때도 있다. 끔찍하다. 여행지에서 코난이 나타나는 것은 죽음을 의미하는 거다. 문득 코난이 있는 자리에는 항상 살인 사건이 일어나니 이쯤하면 살인범보다 코난이 더 나쁜 놈 같다는 생각이 든다.


코난과 함께 다니는 ‘어린이 탐정단’은 인간이 살아감에 있어 한번 겪을까 말까한 일들을 자주 당한다. 일단 살인현장에 자주 있는 것은 기본이고 납치범에 의한 납치 감금, 폭탄 범죄로 인한 불타는 건물에 고립, 폭주기관차 안에 있는 등 나열하면 수십 개는 된다.(이 아이들 전생에 나라를 팔았나보다) 아이들의 멘탈도 멘탈이지만 이쯤 하면 이 아이들의 부모는 제명에 못 죽을 거 같다. 



코난이 가는 곳은 살인사건도 있지만 차량폭파, 건물폭파, 다리폭파, 방화 등 다양한 시설물 파괴도 일어난다. 이정도면 다이하드의 민폐형사 존 맥클레인보다 더 심한 것 같다. 생각해보면 명도 참 길다는 생각도 든다. 그런 살인 현장에서 꼭 살아남으니 말이다. 내가 살인자라면 일단 코난부터 죽일 것이다. 왜? 코난을 살려둬 계속 살인사건이 일어나게 함은 물론 꼭 코난에게 꼭 덜미가 잡히기 때문이다. 완전범죄를 하려면 일단 코난부터 죽이면 되는 것이다.


남도일의 여자 친구로 나오는 유미란(모리 란)도 문제다. 이 아이도 코난 만큼이나 트러블메이커인데 꼭 사건현장 코난과 함께 한다. 거기다 약간의 무모함까지 겸비해 코난을 피곤하게 만들 때도 있다.(납치 된다든지 범인의 표적이 된다든지) 

그래도 유미란 이 아이의 대단한 점은 남도일에 대한 무한 사랑이다. 남도일은 사라진지(?) 무려 9년이나 지났다. 그래도 얼굴한번 안 비추는 남도일을 기다리고 좋아하고 있다. 물론 가끔 코난이 음성을 변조해 전화를 하지만 무슨 고무신도 아니고 그렇게 까지 하는지 모르겠다. 쌍팔년도에도 이러지는 않았을 거다. 이쯤하면 남도일을 잊고도 남을 시간이다.


그리고 방금 말한 것 처럼 남도일이 7살 코난이 된지 9년이 지났다. 근데 아직도 초등학생이다. 코난은 물론이고 어린이 탐정단 아이들 모두는 9년째 초등학교를 다니고 있다는 소리다. 크지도 않는다. 대단한 아이들이다. 


코난의 사건해결방식은 특이한데 일단 사건을 추리한다. 그리고 단서를 잡고 범인을 알아내면 유명한(유미란 아버지) 탐정을 마취시켜 잠들게 하고 음성변조를 가능하게 하는 나비넥타이를 이용해 사건을 해결한다. 그렇다면 유명한 탐정은 무려 9년 동안 코난의 사건해결을 위해서 마취총을 맞았다. 동물도 이렇게 까지는 안한다. 





이쯤하면 약물중독으로 중간에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거 같다. 이밖에도 어리바리한 형사도 유명한 탐정만큼은 아니지만 많이도 마취당한다. 만독불침이라도 습득한 건지 대단하단 말밖엔 나오지 않는다.


코난의 인기는 9년 동안 계속되고 있다. 코난의 인기가 계속됨으로 인해 늘어나는 건 코난 주변인의 피해다. 아마 9년 동안 죽은 사람 수를 헤아리면 대략 천명은 되지 않을까 싶다. 이미 코난이 사는 동네는 고담시보다 더 암울할 뿐이다.


written by 저격수


Posted by 해적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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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01.16 00:00

    ㅋㅋㅋ어느카페에서 안건데 코난지금까지 사망자가 약200명이래요 몇천명아님 ㅋㅋㅋ 결국 코난이 저거 다막고 해결하는데;;;그래도 목숨이 위험할것같김함 ㅋㅋ

    • 2013.01.16 01:41

      아, 200명 정도군요. 아무튼 코난이 있는 곳에 계시다면 우선 자리를 피하세요. 당신이 위험합니다.

  2. 2013.03.09 21:44

    사진에 딸려있는글귀 쩐닼ㅋㅋ 현상수배 포스터인가?ㅋㅋㅋ

  3. 지나가다지나간 수정/삭제 댓글쓰기 댓글주소
    2014.06.08 21:03

    맨 위에 있는 캡처, 고양이 분양 게시물에 써도 괜찮은지요?
    집사를 찾는다, 라는 멘트와 함께 이미지로 넣을 예정입니다.
    출처는 정확하게 표기하겠습니다. 문제가 된다면 삭제하겠습니다.
    댓글 부탁드립니다! ^^

    • 2014.06.08 22:22

      사용하셔도 상관없을 거 같습니다. 그리고 출처는 안적으셔도 상관없을 거 같습니다. 워낙 사진 자체가 유명해서 인터넷에도 많이 돌아다니고 있기도 하고요. 중요한 것도 하니니.

      문제가 될만 한 것들은 없는 거 같네요^^

  4. 지나가다지나간 수정/삭제 댓글쓰기 댓글주소
    2014.06.09 01:42

    감사합니다! 그래도 감사해서 출처는 표기했습니다! ^ ^
    덕분에 야옹이 분양글에 조회수가 꽤 올라갔습니다.
    코난 덕분입니다!!!!!!!! (^ ^)/ 복 마니마니 받으세요!!!!

아무개가 엎드려 아룁니다. 당선이 되셨다는 소식을 저 멀리 바닷가에서 듣게 되었나이다. 그 은혜에 어찌할 줄 모르겠사오며, 황송스럽고 감격함을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하여 미약하나마 그림과 꽃씨를 공물로 올리옵나이다. 

 

 

 

 

소인네 해적들 사이에서는 님을 마리앙뜨와그네로 칭송한답니다. 뵙기를 기약하기 어려우매 사모함이 그지없으니 다만 거센 바닷바람을 만나 멀리 님의 단아한 용모를 상상하고, 매양 달 아래서 새벽빛을 읊조리며 속절없이 꿈속에서 그리워할 뿐입니다.

 

소인은 바닷가에 있는지라 달려가 알현하지 못하옵나이다. 애오라지 편지로써 만나 뵙는 걸 대신하옵니다. 자세히 말씀드리지 못함이 한스럽습니다. 제 본분을 헤아리지 못하고 위엄을 범한 듯싶사오나 은혜와 연모의 마음을 견디지 못하겠나이다. 황송스러울 뿐입니다. 삼가 감사드리며 편지 올립니다.

  

+사진 출처 : http://flara_flami.blog.me/


Written by 앵무새


Posted by 해적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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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 매서운 겨울 날씨의 연속이다. 기세등등한 동장군 덕분에 옷깃을 여미는데 힘이 들어가서 점퍼 지퍼가 고장이 나 버렸다. 지퍼에 달린 고리가 끊겨져 버린 것이다. 쇠고리였는데…
 
초강력 따뜻한 이 털 점퍼는 ex-girl friend의 선물이다. 보편적으로 오랫동안 연애를 하게 되면 연인들에게는 사시사철의 선물들이 쌓여져 간다. 특히나 한국의 연인들은 철마다 서로 챙겨줘야 할 기념일들이 넘치지 않은가. 하지만 헤어지게 되면 이것들은 처치곤란에 애물단지가 되어 버린다. 버리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남겨두는 사람도 있다. 저마다의 해결법은 다르다.

 

어떻게 헤어졌느냐에 따라, 얼마냐에 따라, 팔 수 있느냐의 여부에 따라(대체로 커플링), 애착에 따라, 추억에 따라 등등등.
 
얼마 전 지인에게 이 잠바에 대해서 얘기를 한 적이 있다. 그녀와의 고만고만한 추억이 깃든 잠바라고 그런데 지금은 가난해서 버릴 수는 없다고, 농담어린 이야기였다. 지인은 기왕 망가진 거 겸사겸사 버리라고 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추억을 버리고 싶지 않았다.
 
생각해 보면 이 옷은 더 이상 내가 주인이 아닐 수도 있다. 무슨 염치로 이 옷을 대할 수 있단 말인가. 그녀와의 만남은 24개월이었다. 그렇다, 약정 기간이 끝났다. 24개월, 그리 짧지도 그리 길지도 않은 시간들. 누가 이러한 기한을 정했을까? 정말 합리적이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기간, 바로 24개월이란다. 그 정도 사귀다 헤어졌으면 나는 나쁜 놈이 아닌 게 된다. ‘자연스럽게 헤어졌죠 뭐.’ 이렇게 주위에 말 할 수 있다,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그럴 수 있다, 그런가보다.
 
여기에서 번호이동을 하거나 신규가입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기존의 통신사로 돌아가는 법은 없다. 가면 손해라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이다. 새로움, 익숙함이 부끄러워져 고개 돌리게 하는 그 말. 새로운 것은 신비롭다. 어쨌든 그녀는 내 탓에 그녀의 잠바주인을 만나는데 2년이나 늦어져 버렸다. 미안하오.
 

 

오래되면 익숙해져서 서로 잘 적응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오래되면 쉽게 망가지기도 하는 법이다. 그렇다, 오래되면 망가질 위험성도 높은 것이다. 망가졌을 때 우리는 대처하게 된다. "고치느냐, 버리고 새것을 택하느냐." 어쨌든 약정 기간이 끝났다는 것은 둘 다 알고 있었고, 우리의 선택은 버리는 쪽이었다.

 

또 하나의 선택, 오래되어 망가진 점퍼의 운명. 하지만 이번에 나는 고치는 카드를 선택했다. '뭐, 고치면 되지.' 잠시 점퍼를 버릴까 고민해봤지만 이내 수선집으로 향한다. 나도 추억을 고치는 중이다.

 

그렇게 본다면 추억은 자기목소리로 만들어질 뿐이다. 한 사람은 상처로 남아있을 수도 있는데 한 사람은 아름다운 추억이라고 여기는 것, 아니 여기고 싶은 것. 그것이 추억이다. 그래, 추억은 어떻게 보면 이기적일수도 있는 것 같다.

 

어느덧 시간이라는 약에 취해 그녀와의 지난 사랑은 오후의 낮잠처럼 달콤한 꿈으로만 남아 있다. 그 당시의 오해와 아픔, 그리고 슬픈 감정은 지금 명백히 기억에서 되살릴 수가 없다. 기억력이 나빠서가 아니다. 그 슬픔을 지웠기 때문에 현재를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좋은 것만을 기억하고 싶어서 추억을 수선한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아파할 내 가슴에게 너무 미안할 것 같았다. 
 


+ 사진 : 위 사진은 흑석동의 뉴타운 재개발 전 동네골목의 모습이다. 이제는 동네골목 가로등 아래에서 사랑을 속삭이던 연인의 모습을 영원히 볼 수 없을 것이다. 동네 골목도, 우리도 더 이상 없다.


Written by 동전오배건


Posted by 해적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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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겨진 보물찾기 - 알라딘 서점편: 서혜경의 라흐마니노프 피아노협주곡 전집


종로에 알라딘 책방이 생겨 종종 들르곤 한다. 헌 물건을 다루어 그런 것이지는 몰라도 교보, 영풍, 반디 이런 윤기 번지르르나는 새책방과는 사뭇 느낌이 다르다. 책이나 음반을 팔러 줄을 서고 있는 사람들, 그 판 물건을 사려고 기웃대는 사람들로 내내 북적인다. 나 역시도 팔기도 하고 사기도 한다. 우글우글 시장통 같다. 사람에 치어 책 한권 제대로 보기 힘들 때도 있지만, 어떤 날은 거의 새책이나 다름없는 찜책을 잡아내기도 한다. 그렇게 기대반, 구경삼아 반 나는 어슬렁댄다. 


며칠 전, 듣지도 않는 씨디 팔아버릴 심산으로 알라딘에 들렀더니 꽤 값을 쳐 줬다. 네 장 팔아 만 오천원. 유행지난 대중가요 팔아 이 정도 이문 남겼으면 족한거다. 그리고는 한편으로, '요걸로 괜찮은 클래식 음반 있음 하나 사봐?' 하는 생각에 음반 코너로 갔다.


이것저것 뒤적대던 중, 아놔 이런 대박 발견!!! 피아니스트 서혜경의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전집 앨범 발견!!! 참고로 나는 다양한 수집벽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누구누구의 라흐마니노프 앨범을 모으는 것이다. 그렇게 하나둘 사 모아서, 똑같은 곡을 각자 어떻게 해석하는가를 비교해보는 것이 하나의 즐거움이다. 중고서점에 서혜경씨의 라흐마니노프 작품의 출현이라니!!!


사실 국내에서 라흐마니노프 피협을 전곡 레코딩한 것은 백건우가 유일무이했다. 그러니까 서혜경은 두 번째의 깃발을 꽂은 피아니스트가 된다. 그리고 대한민국 여성으로서는 최초다. 라흐마니노프 피협 완주는 피아니스트가 대가로 성장하기 위해 반드시 넘어야 할 숙명적인 음악의 대협곡이다. 보통 연주자들은 이 곡의 한 악장만 준비하는데 거의 1년에 가까운 시간을 투자한다. 그만큼 4악장 모두가 기교적으로 매우 난해하고, 해석 자체도 선구자들을 뛰어 넘기에 너무나도 힘에 겹다. 그러나 서혜경은 전곡 레코딩을 단 일주일만에 완주했다.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라고 밖에 할 수 없다. 


서혜경의 20대는 화려했다. 세계를 경악시킨 당돌한 피아니스트였다. '동양인은 테크닉으로 승부한다'는 고정관념을 깨고 건반이 부서질듯 내리꽂는 듯한 파워풀한 연주로 세계인의 주목을 한 몸에 받았다. 세계적인 피아토 콩쿠르 부조니에서 동양인 최초, 최연소 우승, 뮌헨 콩쿠르 2위, 1988년에는 카네기홀 선정 세계 3대 피아니스트에 선정되었다. 그녀의 연주에 반한 세계적 거장 아이작 스턴은 그녀의 집에 찾아가 점심을 같이할 정도였다. 


그런 그녀에게도 암이라는 절대절명의 시련이 찾아온다. 피아노를 칠 수 없다는 의사의 권고, 연주를 강력하게 반대하는 집안사람들, 서른세번의 방사선 치료와 대수술, 여덟번의 항암치료, 점점 깊어가는 우울증에 시달리면서도 결코 그녀는 건반을 놓치 않았다. 마침내 2008년 1월, 그녀는 병마를 떨쳐내고 라흐마니노프 피협 2번과 3번을 완주해낸다. 투병 이후 1년만의 재기였다. 재기무대에서 라흐마니노프는 매우 특별했다. 20대 시절 부조니 콩쿠르 우승 이후 3년 간의 슬럼프를 이겨내고 재기에 성공했을 때에도 그녀는 라흐마니노프 피협 3번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서혜경과 피아노, 그리고 라흐마니노프는 이렇게 지독한 인연을 맺고 있다. 그녀의 손가락에는 이제 열정이라는 숨결에 인생이라는 깊이가 더해졌다. 그리고 한 열성 팬에 의해 100만불의 보험으로 보호받고 있다. 


'이런 앨범을 이렇게 내놓다니...서혜경이 별로였나? 아니면...낭만주의가 싫어서 팔았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이거 제품에 하자 있는 거 아냐?'라는 의구심마저 든다. 씨디를 이쪽저쪽 비추어봤지만 딱히 흠집이나 문제되는 점이 보이질 않는다. 바코드를 보니 값은 만천원. 현재 만오천원을 쥐고 있으니 그래도 사천원 흑자다. 





당장에 사서 집으로 돌아왔다. 컴퓨터를 켜고 아이폰으로 음원을 옮기는 중 더 거한 대박 발견!!! 마지막 세번째 씨디에 서혜경씨의 친필 싸인이 휘갈겨져 있다. 필시, 이 씨디를 손에 넣은 사람은 서혜경씨의 지인 또는 독주회에 참석한 사람이렷다? 


아무래도 이 판매자는 클래식엔 별 관심없지만 사회적 또는 정치적 인간관계에 의해 이 친필 음반을 손에 넣은 듯하다. 그리고 그 사람에게 별 가치를 인정받지 못해 이렇게 매물로 내놓인 것이다. 그 사람이 버린 '폐물'이 '보물'로 내게 온 셈이다. 


책방 이름 알라딘 맞다^^


Written by 사샤


Posted by 해적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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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 시인의 생애 첫 커피。

 

“전쟁 때는 여기 선착장 바로 앞까지 미군 부대 헌병이 있었어. 그때는 헌병이 휘발유 몇 드럼을 파도에 떨어뜨려서 팔아먹었어. 내가 본부 운수과에 있을 때 조사하러 나온 적이 있었거든. 여기까지가 미군 부대였으니까. 그때 처음으로 커피를 마셔 봤어. 미군 헌병이 큰 깡통에 들어 있는 커피를 주는 거야. 그야말로 원두커피지. 먹어 보니까 고소하더라고. 그런데 배가 고프니까 그걸 꿀떡꿀떡 다 먹었어. 그게 몇 리터더라? 무척 큰 거였는데 그걸 다 먹고 정신이 이상하게 됐어. 그래서 야전 병원에 실려 갔잖아. 그때 커피 병에 걸려서 혼이 났어.”[각주:1]

 

 

위의 짤막한 글은 고은 시인의 인터뷰 내용이다. 선생님이 33년생이시니까 그의 20대는 1950년대, 그리고 한국전쟁 때를 말하겠다. 미군 군수물자에서 얻은 커피, 그 맛이 쓰기도 하고 한편으론 고소하기도 하고, 선생님은 당시에 알고 계셨을까? 훗날 우리 국민들이 그 커피 맛에 지독하게 중독될 것을…  

 

 

 

 

내 생애 첫 커피。

 

 

나는 80년대 생이다. 그리고 내 생에 첫 커피는 초등학교에 막 들어갔던 시절 막내이모가 타준 아이스커피였다. 무려 아이스커피! 커피 둘에 투게더 바닐라 아이스크림 크게 두 스푼을 넣어서 타준 커피였다. 그 맛을 잊을 수가 없어서 명절 때마다 이모를 만나면 그때의 커피 이야기를 한다. 요즘에도 가끔 그 맛이 생각나서 타 먹어 보지만 그때의 맛을 도저히 따라갈 방법이 없다. 맛있다고 소문 난 아메리카노에도 시도해봤지만 그 맛을 따라갈 수가 없다.

 

단순히 커피가 맛있었던 것일까. 아니면 잠깐의 일탈을 맛볼 수 있어서일까. 당시 어른들 사이에서는 커피가 아이들 건강에 좋지 않다고 회자되어 못 먹게 하곤 했다. 반면 아이들 사이에서는 그 맛있는 것을 어른들끼리 몰래 먹기 위해서 우리들한테는 주지 않는다는 설이 있었더랬다. 진위여부는 차치하고, 첫째인 엄마와 막내이모는 15년 터울이기에 나름 당시의 X세대였던 막내이모는 나에게 맛난 이모표 아이스커피를 타주었던 것이다, 그것은 나에게 혁명이었다.   



사진 출처
https://t1.daumcdn.net/cfile/tistory/13390E424E2D265735?original
http://res.heraldm.com/content/image/2011/12/19/20111219000533_0.jpg

 

Written by 앵무새

 

  1. 『여행, 그들처럼 떠나라』, 동양북스, 2012, 488-489쪽에서 발췌. [본문으로]
Posted by 해적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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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1.03 19:18



MB정부가 저물어가는 요즘, 정부에서 통 듣지 못한 말이 있으니 바로 ‘인하’라는 단어 같다. 인하라는 단어를 언제 들었는지조차 이제는 가물가물하다. 그 정도로 지금은 기름값뿐만 아니라 생계에 유지하는 기본적인 식료품부터 해서 공공요금, 대중교통 요금 등 다양한 분야에서 치솟아 언제부터인가 만원으로 제대로 된 물건 하나 사기도 쉽지 않다.

만원이라는 돈의 단위는 작은 단위가 아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였을까? 지갑에 달랑 만 원짜리 지폐 한 장이 들어있으면 이보다 가볍게 느껴질 수가 없다. 차라리 천 원짜리 10장이 오히려 더 두둑한 느낌이 든다. 이처럼 만원이라는 단위는 어느새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이 없는 작은 돈 단위가 돼버렸다. 만원으로 버스 10번도 못 탄다. 그것도 광역버스를 탈 시에는 왕복이면 끝이다.


요즘 연일 고공 행진을 자랑 중인 유류를 보면 1리터당 1,920원이라 했을 때 만원으로 고작 5리터 조금 넘게 주유할 수 있다. 그렇다면 12Km/L 연비의 차량으로 운행할 수 있는 거리는 50Km, 이는 서울역에서 출발하여 오산역까지 갈 수 있는 거리다. 사실 이것도 통행료까지 포함한다면 어림도 없다. 고속버스를 타면 동서울터미널에서 대전역까지 갈 수 있다.

대형 마트에서도 만원은 그리 크지 않다. 계란은 60개를 살 수 있고 삼겹살은 반 근 정도 살 수 있다. 쌀은 2kg 정도 구매가 가능하며 소고기는 100g 정도다. 이 정도가 마트에서의 만원의 가치다. 이제는 아이들의 입장에서도 만원은 이제 크지 않은 돈이 됐다.


과자고 아이스크림이고 대부분은 천원이 넘으니 아이들에게 용돈이랍시고 천 원짜리 주던 시절은 지난 것이다. 이젠 길 위의 떡볶이를 먹어도 천 원짜리는 없다. 아이들에게 용돈으로 만 원을 줘도 친구들과 과자 몇 개, PC방 몇 시간, 간식 몇 번 먹으면 순식간이니 아이들도 만원이라는 돈의 단위도 그다지 크지 않게 됐다. 점심시간에도 만원으로는 많은 것을 할 수 없다. 서울권 평균 점심 식사비용은 7~8천 원 선. 식사 후 커피숍에서 판매하는 커피는 엄두도 낼 수 없어 자판기 커피가 고작이다.


요즘 직장인들에게 우스갯소리로 “내 연봉 빼고는 다 올랐다.”라는 말을 종종 듣고는 한다. 분명히 농담인 줄은 알지만, 이것저것 할 것 없이 오르는 물가를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에 하는 소리라 괜스레 씁쓸하다. 


답답함을 달래주던 담뱃값도 선진국 수준으로 인상, 퇴근 후 한숨 쉬며 마시는 소줏값도 인상. 정말 오르지 않는 건 내 연봉과 내 새끼 성적뿐이다. 경제 대통령이라고 구호를 내걸었지만 내리지 못해 올리기만 하는 건지 참으로 답답할 따름이다. 이젠 정말 아무렇지 않게 터져 나오는 인상소식에 저절로 얼굴에 ‘인상’써질 뿐이다.


written by 저격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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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해적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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