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11.30 09:02



한적한 일요일 초저녁. 초등학교 동창 녀석 결혼식 다녀온 남자 셋은 헤어지기 아쉬워 당구장에 들어섰다. 당구 한 게임이야 1시간이면 충분하고 다시 길을 나선 세 남자는 번화가 한 커피숍에 들어갔다. 다 큰 사내 셋이 모이면 당연하듯 술자리가 마련되는 것이 상정이겠지만 잔 기울이기엔 이른 시간이요 저녁을 먹자니 아쉬운 시간이었다. 

사내 셋이라 해도 자리가 없어 말 못했지 자리만 있다면 여자들 못지않은 수다다. 이 날 오랜만에 모인 세 남자의 화두는 음식이었다.


: 요즘 장사는 어떠냐? 손님은? 


: 자꾸 나이가 있으신 손님들이 와서 걱정이다. 우리 집 컨셉은 젊은 여성인데 말이야. 연세가 있으신 분들이 와서 이러쿵저러쿵 말이 많아. 보쌈에는 왜 김치가 없냐? 찌개는 너무 달다. 아무래도 어르신들에게 우리 집 음식은 입맛에 안 맞는데 말이야.


: 확실히 너희 가게는 젊은 층 입맛이지. 보쌈만 봐도 쌈보다는 샐러드 형식으로 나오니깐 어른들에게는 안 맞겠지.


: 그러고 보면 요즘 나가도 음식점은 많은데 먹을 만한 곳은 없어. 예전에 여자 친구가 한번 빕스를 가자고 한 적이 있는데 그 많은 음식 중에서 손이 가는 음식이 없는 거야. 그래서 그냥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나왔는데 며칠 뒤에 여자 친구가 빕스를 또 가자고 하는 거야! 그래서 내가 그랬어 “너 혼자 올라가서 먹고 와. 난 밑에 순대국밥 집에서 먹을게. 먹고 이 앞에서 만나자.”라고.


: 크. 그건 좀 심하다!


: 어쩔 수 없는 게 도저히 못 먹겠는데 어떻게 해. 난 스파게티 먹기 시작한지도 얼마 전이야. 확실히 국밥이 최고인거 같아. 하긴 이걸 젊은 애들이 보면 우리더러 늙었다고 하겠지. 입맛도 그렇고.


: 얼마 전에 보니깐 옛날통닭이라고 해서 배달해주는 집이 있더라고. 다 잘라서 나오는 것도 아니고 그냥 통째로 튀겨서 배달해 주더라. 신기했어.


: 옛날이었으면 그냥 거기에 신문지 싸서 줬겠지. 예전에 나 서울 살았을 때 아버지가 퇴근길에 종종 사다주셨어. 다른 것도 없이 튀긴 닭만 신문지에 싸서 가져오셨지. 그 치킨 집이 아직도 있어 이수에 가면. 그리고 이사 와서도 우리 집 바로 옆에서 닭을 튀겼는데 거기도 통째로 주는 식이었어.


: 왜 기억 안나? 그 약국 건너편에 정육점에서 옛날에 닭 튀겨 줬었잖아. 거기가 그렇게 해 줬어. 기억 안 나냐?


: 난 왜 기억이 하나도 안 나냐? 어쨌든 우리가 어릴 적에 먹던 것이 벌써 ‘옛날’이라는 수식어를 붙이게 될 줄이야. 아무튼 이래저래 요즘은 먹거리 풍요시대야. 먹을게 얼마나 많냐? 


: 그래도 먹을 것은 없어. 


: 어릴 때 사실 외식이라는 게 있었냐? 거의 없었지. 해봐야 그냥 나가서 밥 한 끼 먹는 거지.


: 갈비. 돼지 갈비! 아니면 삼겹살. 이거 아니면 없었지. 


: 맞아. 지금처럼 회가 있어 레스토랑이 있어 그냥 외식이면 고기 집이었지. 너네 혹시 갱시기이 아냐? 


: 갱시기가 뭐야?!


: 나는 종종 어렸을 때 집에서 끓여 먹었는데. 갱시기라고 아버지 어렸을 때 드시던 건데 국에 이것저것 나물 넣고 끓인 거야. 그 뭐냐 꿀꿀이 죽 비슷한 건데 우리 집은 종종 끓여 먹고는 했어.


: 혹시 그거 옛날에 배고파 먹던 음식이냐?


: 그렇지. 지금에서야 그냥 겨울철 별미지만 아버지 어릴 적만 해도 배고파서 먹을 거 없어 먹었던 음식이지. 근데 지금 먹어도 맛있어.


: 그런 음식이 한둘이냐. 옛날에 보리밥도 보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먹은 음식이었지 지금처럼 건강 챙기려 먹는 음식 아니잖아. 잡곡밥도 마찬가지고.


: 우리 엄마 어릴 적만 해도 겨울이면 먹을 게 없어서 산에게서 이것저것 캐 와서 먹고는 했데. 밥 할 때 가운데는 쌀밥 주변은 보리를 넣어서 했데. 그리고 할아버지는 쌀밥으로 드리고 나머지 삼촌이나 이모들은 가운데 조금만 쌀밥을 넣어주고 주변은 보리밥으로 채워주고. 그래서 밥그릇 보리를 조금 뒤적뒤적하면 그 안에 쌀밥이 조금 나오곤 했다나.


: 하긴 우리도 보릿고개 세대는 아닌데 요즘 애들은 어떻겠어. 우리보다 더 심하겠지. 


: 그러니깐 고도 비만이 판치는 거야. 음식도 다 기름진 것만 있으니깐.


: 그건 먹는 것도 그렇지만 요즘 애들이 놀이 문화도 문제지. 우리는 아침 먹고 나가 구슬치기하고, 점심 먹고 축구하고, 저녁 먹고 망까기, 팽이치기하고 그러니 살이 찔 세가 없지. 항상 몸으로 뛰어 노니깐. 요즘 애들은 맨날 붙어서 게임만 하니깐 더 그럴 거야.


: 근데 아마도 우리 먹는 거 보면서 어른들도 먹을 게 없다고 그랬을 거야. 그래봐야 햄버거 피자가 고작이었지만.


: 우리에겐 그게 최고였으니깐. 우리처럼 어른들도 다방에 모여서 그랬겠지. “요즘 애들은 무슨 맛에 그걸 먹는지 모르겠다. 니글니글 빵조가리 뭐가 좋다고 그리 먹나. 그러니깐 살이 찌지”라고 말이야.


: 맞다. 아마도 그랬겠지. 아, 먹는 거 이야기 하니깐 슬슬 배고프다. 가자 매장으로. 불고기나 해먹자.



추억이 담긴 갱시기는 맛있다. 우리는 오늘도 추억을 먹고 살아간다. 그래서 갱시기도 옛날통닭도 잡곡밥도 맛있다. 추억이어서.




[갱죽]

지역 : 충북, 경북

이칭 : 갱시기, 갱싱이죽(충북), 콩나물갱죽(경북), 갱이죽(제주도)


밥과 김치 등을 넣고 끓여 죽처럼 만든 음식이다. 찬밥에 고구마, 감자, 기침, 콩나물, 물을 붓고 끓이다가 풋고추, 붉은 고추, 대파를 넣어 한소끔 더 끓이며, 된장을 푼 물이나 멸치장국국물을 이용하고 수제비를 떠 넣기도 한다. 갱죽은 갱시기라도 불리며, 충북에서는 갱싱이죽, 경북에서는 콩나물갱죽이라고도 한다.  - 네이버 백과사전 -


written by 선의


Posted by 해적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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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1.30 01:29



  몇 시쯤 되었을까. 해가 뜨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지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다. 파도소리가 멀리서부터 밀려온다. 누구의 명령으로 육지에 내렸던 말인가. 당장 눈앞에는 먼지자국이 가득히 쌓인 허름한 벽과 바람 치는 소리에 덜컹대는 나무 창틀이 들어온다. 하늘엔 기러기 떼가 줄지어 날아가고 있다. 도무지 어딘지 가늠할 수 없다. 뒷골이 뻑적지근하다. 귀도 먹먹하다. 해머로 뒤통수를 실컷 두드려 맞은 기분이다. 아마 극심한 두통에 시달리다 실신하듯 잠든 것 같다. 몸을 일으켜 보려 했으나 머리를 드는 순간 포기한다. 아직 두통기가 뇌를 지배하고 있다. 


“그냥 누워 있어요.”


문을 열고 레나스가 들어온다. 평소와 다름없이 잘 다려진 검은 가운을 입고, 머리에는 검은 두건을 깔끔하게 접어 올렸다. 어둑어둑한 곳에서 제법 큰 검은 남자를 마주하고 있자니, 이 놈이 의사인지 저승사자인지 쉽게 구분되지 않는다. 의자를 끌고 와 앉더니 이내 손과 발에 뜨거운 수건을 감아준다. 


“며칠이나 누워 있었지?”

“이틀, 아니 오늘로 3일째군요. 좋은 아침입니다.”

“왜...이렇게...?”

“선장이 직접 느껴지지 않아요? 두통입니다. 선장의 가장 큰 적이죠.”

“그렇군. 다른 사람들은?”

“멀쩡해요. 요리사는 과일 씻고 있고, 사샤는 마을에 이것저것 사러 내려갔어요. 이번 전투에서 얻은 수확이 많지 않아요. 다들 사기가 떨어져 있어요. 더구나 선장까지...”

“여기는...?”

“세빌리아 인근 마을이에요. 기억 안 나죠?”

“글쎄...알제리항에서 나와서...이스탄불 함대 1척과 붙었고, 배의 전리품을 확인하는 중이었는데...거기까지야.”

“거기부터 선장의 두통이 심해졌죠. 늘 달고 다니는 두통이라고 해도 이렇게 심해지는 경우는 극히 드물죠. 나중엔 헛소리도 하더군요. 어쩔 수 없이 긴급 상륙을 명령했어요. 당분간 선장은 쉬어야 돼요. 가짜로 쉬는 거 말고.”

“가짜든 진짜든 쉴 틈이 어디 있나.”

“그 생각에서부터 두통을 차곡차곡 쌓아온 거에요. 뇌가 일방적인 명령을 내리고서 한 방에 보낸 거죠. 생각을 정지시켜 버린 겁니다.”

“뭐 그렇다고 해도...다들 기분이 좋지 않겠군.”

“기분들이야 각자 알아서 챙길 거에요. 그런 건 의사인 나로서도 충분히 챙길 수 있으니 지금은 신경 꺼요. 선장이 죽으면 다 무슨 소용이죠? ㅋㅋㅋ 약초를 달였어요. 이 물부터 마셔요.”


  물이 뜨겁고, 쓰다. 마신지 10분 정도 지나니 차가웠던 손과 발에 점점 열기가 돈다. 꽉 막혔던 뒷머리와 위장이 서서히 풀려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가파른 숨이 점점 고르게 흐른다. 두통에 못 이겨 채 뜨지 못했던 왼쪽 눈꺼풀이 서서히 문을 연다. 살 것 같다. 


“이 때가 가장 기분이 좋아.”

“어떤 때요?”

“고통에서 회복할 때, 몸에서 열이 풀리고, 손끝과 발끝에 촉감이 뱅글뱅글 돌 때가 가장 몸의 오감이 잘 느껴져.”

“두통의 맛을 제대로 보여줄까요?”

“너도 사샤 닮아가는 거냐? 아무튼...괜한 지병에 모두에게 피해만 줬군.”

“선장의 그 피해의식에서부터 벗어나는 게 피해를 주지 않는 겁니다.”

“피해의식?”

“두통의 원인이 뭔지 아세요?”

“여러 가지가 있겠지. 난 지병이니 유전이라고 할 밖에.”

“두통이 났다는 건 지나치게 신경을 썼다는 거죠. 그런 면에서 두통은 게으른 사람들에게는 절대 나타나지 않는 증상입니다.”

“성실한 나를 칭찬해줘야겠군.”

“그런 뜻이 아니구요. 두통을 겪는 사람들의 특징은 두 가지로 압축됩니다. 정리정돈과 편식입니다.”

“내가 평소에 음식을 가려서 먹었나?”

“내가 말한 편식은 음식만 해당되는 게 아니에요. 사람 편식, 기호 편식, 술 편식, 등등.”

“그래서?”

“선장 같은 사람들은 순결주의자란 말입니다. 사람을 사귀고 꾸리는 데서 잘 나타나죠. 체력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니에요. 선장은 더러운 것, 특히 본인이 생각하는 개 같은 인간들을 보았을 때 1차적으로 충격을 받고, 그것을 정리하거나 제거하지 못했을 때 2차 충격의 잔해가 남죠. 그리고 그와 같은 인간들의 행동범위에 선장의 행동이 겹쳤다고 판단했을 때 가장 큰 3차의 충격으로 이어지죠. 3차 충격에 휩싸이고 이것이 해소되지 않은 채 응어리로 남으면 바로 이런 두통의 결과로 이어지는 것이구요. 제가 지켜 본 관찰결과입니다.”

“순결주의자라는 소리는 처음 듣는군.”

“너무 그렇게 순결, 고결을 고집하지 말아요. 물론 그 생각이 저를 배에 타게 만든 이유이기도 합니다만. 그렇다고 해서 그 생각을 늘 유지하고 살면 본인의 삶이 힘들어져요. 너무 무언가를 정리하려고도, 그렇다고 너무 사람을 가리고 챙길 필요도 없어요. 기본에만 충실하면 그 뿐입니다. 기본을 완전으로 가져가려고 하지 마시구요. 완전이라는 것은 단어 상에만 있지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단어라구요.”

“이젠 심리테스트도 하는군.”

“선장이 생각한 완전의 범주에서 놓쳤다고 판단되는 것들, 놓칠 수 있지 않을까라고 걱정하는 것들, 다 주우고 정돈하려 하지 마세요. 여기 선장 말고도 여러 사람들이 있습니다. 나눠 갖고, 같이 가는 거에요. 이렇게 누워 있어도 되는 거라구요. 면도도 당분간 하지 말아요. 사샤처럼 턱수염도 더부룩하게 내버려둬야 얼굴도 숨을 쉽니다.”


  잠시 떠든 사이, 창가에 해가 걸렸다. 따스한 햇볓이 내려앉으니 한결 낫다. 요리사가 오더니 레모네이드를 건네주고 간다. 레나스가 몸을 부축해 일으키더니 컵을 입에 물려준다. 새콤한 물이 들어오니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난다. 사샤가 왔나보다. 마을에서 무슨 요리를 봤는데 그걸 해달라고 요리사에게 계속 조르고 있는 것 같다. 그렇다. 알아서 조르고, 알아서 만들고, 알아서들 잘 하고 있다. 나는 회복하는 데에 주력하면 되겠다. 조만간 레나스에게 배의 역사에 대해 설명해 주지 않으면 안되겠다. 다시 이불을 깊게 감고, 눈을 덮는다. 


Written/Photo by 선장

Photo: 인천역 카페 팟알


Posted by 해적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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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1.27 01:03



우여곡절 끝에 영화 ‘26년’이 곧 개봉을 앞뒀다. 26년은 강풀의 웹툰인 ‘26년’을 영화한 작품이다. 영화 26년은 1980년 광주 민주화운동을 소재로 한 만큼 제작이 쉽지 않았다. 

특히 이 영화는 영화제작에 어려움이 더 많았다. 영화제작을 앞두고 갑자기 투자자들이 등을 돌리는 통에 영화가 무산될 위기였다. 하지만 26년은 시민들의 자발적인 투자인 제작두레를 통해 스크린 상영을 앞두고 있다.


5.18이라는 소재로 처음 영화가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2007년에 개봉한 ‘화려한 휴가’ 역시 광주 민주화운동을 다룬 영화였다. 하지만 아쉽게도 화려한 휴가는 ‘그 사람’에 대한 언지는 없었다.


80년대 생인 나에게 5.18은 한줄 요약이 가능하다. “신군부 세력은 병력을 동원하여 군권을 차지하였고 5.18 민주화 운동을 비롯한 국민들의 민주화 요구를 무력으로 진압한 뒤 통치권을 장악하였다.” 이것이 80년대 생인 내가 책으로 배운 5.18이고 학교에서 배운 광주 민주화운동이다. 정확힌 학교에서 가르친 내용은 이것뿐이다.

내가 처음 5.18을 알게 된 건 사실 굉장히 어린 나이었다. 아마 10살 때였나? 당시 우리 집은 마당이 딸린 집 한 켠에 세 들어 살고 있었다. 주인집의 막내아들이 나와 나이 때가 비슷해 종종 주인집에 가서 놀고는 했는데 주인집답게 우리 집엔 없는 비디오가 있었다. 


어느 날 여느 때와 다름없이 주인집 막내와 나는 방에서 놀고 있는데 공 비디오테이프가 하나 있어 별 생각 없이 비디오를 틀었다. 지금 나이에서 그런 테이프를 발견했다면 뭐 좋은(?)게 들어있을 수 있다는 기대감으로 열어 봤겠지만 그런 것도 모르던 시절이라 단순 호기심이었다. 그 테이프엔 광주 민주화 운동의 영상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탱크 옆으로 지나가는 시민에게 총격을 가하는 군인, 이미 군인에게 맞아 피 흘리는 시민, 적붉은색으로 얼룩진 하얀 천을 덥고 누워 있는 사람들, 인정사정없이 군화발로 찍어 내리는 계엄군들. 그 테이프엔 이런 장면들이 여과 없이 담겨 있었다.


보는 내내 무서웠다. 어릴 적 가장 무섭게 봤던 나이트메어보다 더 무서웠다. 어린나이라도 나이트메어는 허구요 진실이 아니란 걸 알았지만 지금 보는 건 현실이고 지금이라는 게 무서웠다. 나에겐 민주주의를 외치는 것보다 총 칼에 찔려 쓰러지는 장면만 보였고 이런 게 있을 수 있나 싶었다. 불법인 것처럼 가지고 있으면, 알고 있으면 안 될 거 같았고 당시는 그랬을지도 모른다. 이것이 내가 처음 접했던 광주 민주화 항쟁이었다.



테이프는 끝까지 다 보지는 못했다. 아마 어린나이에 주구장창 그런 장면만 나오니 재미가 없었던 거 같았다. 그 후 잊고 지냈다. 이후 나도 세상도 5.18은 그냥 보통 날이었다. 

아무것도 아닌 날. 그냥 예전 광주에서 민주화 운동이 일어났던 날. 그렇게 사회는 치부해왔다. 오죽했으면 어릴 적 노태우 전 대통령이 굉장히 훌륭한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고 ‘그 사람’은 코미디의 대상이었을 뿐이었다. 항상 그렇게만 떠들었기 때문이다.


학교에선 “수능에서 근현대사는 중요하지 않다”라며 가르친 적이 없다. 특히 5.18에 대해선 더욱 그랬다. 예전엔 그래야 했고, 지금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수능에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 현실도 예전과 별반 다를 바 없다. 


하지만 언젠가는 다시 역사를 바로 세울 수 있는 기회가 오리라 생각된다. 그래야만 우리는 억울하게 죽어간 5월의 영령들에게 부끄럽지 않을 수 있다. 그리고 그 시절이 올 때까지 반드시 기억하고 있어야한다. 바로 세우고 단죄시키기 위해서 말이다.


written by 선의


Posted by 해적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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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남자의 커피를 마신 기억은 군대를 기점으로 나뉜다.


A(31세): 글쎄, 군대 전에 뭘 마셨는지 기억이 전혀 안나요. 그냥 믹스커피 정도는 마신것 같기도 하고. 그만큼 별 생각이 없던 거겠죠.


B(30세): 대학동기 두 사람과 어딜 놀러가던 중 동료 한 사람이 마트에서 음료수를 사겠다며 뭘 마실지를 물었어요. 그 때 두 사람은 캔커피를 택했고, 저는 베지밀을 선택했죠. 전 군대가기 전까지 한번도 안 마셔본 것 같아요.


두 남자의 커피와의 인연은 군대에서부터 시작된다.


A: 특수한 보직이었죠. 적기를 레이더로 감시하고 보고하는 뭐 그런 보직이라. 새벽12시부터 아침 7시반까지 근무하는 일이 잦았죠. 그 때 마침 에스프레소 정도를 마실만한 육군호랑이가 그려진 컵을 누군가가 줬죠. 아마도 간부였던 것 같은데. 그리고 그 땐 에스프레소가 뭔지도 몰랐고. 일단 그 컵에 믹스커피를 진하게 타서 마시면 효과가 있을 것 같아서 마셔봤어요. 실제로 대단하더라구요. 적어도 12시부터 3시반까지는 말똥말똥하게 버틸 수 있게 해줘요. 단 한잔으로 말이죠. 전 사실 카페인의 효과 때문에 마셨어요. 커피라기보다는 각성제의 기능에 더 끌렸다고 해야 하나요?


B: 그 때 처음 커피를 마셨죠. 근데 정확히 말하면 커피를 마신 건 사실 아니에요. 우유에 달달한 무언가를 타서 마신다는 그 자체가 저한텐 더 중요했죠. 그렇게 커피우유는 마셨어도 믹스커피만 즐겨 마셨던 것 같진 않아요.


믹스커피에서 벗어나 프렌차이즈의 커피를 마시게된 배경도 들어보자.


A: 매일 같이 한잔한잔 새벽마다 마셔대니 부사수가 커피 이야기를 해주더군요. "요새 밖에서는 에스프레소 전문점에서 아메리카노 이런 커피들이 유행하기 시작했으니까 휴가 나가시면 꼭 드시고 오십시요." 이렇게 말이죠. 하 그런데 왠걸요. 에스프레소, 아메리카노 이 두 개만 기억하고 있던 저는 그만 일병 휴가를 나가서 에스프레소를 시켜버렸어요ㅠㅠ 사이즈도 작은 것이 왠지 모르게 군대에서 먹던 것과 비슷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들더군요. 마셨는데 엄청나게 쓰더군요. 물릴수도 없고, 쪽팔리기도 하고 그냥 앉아서 먼 창밖을 보면서 최대한 우아하게 마셔보려고 노력했어요. 아메리카노 마셔볼 생각은 하지도 않고 그냥 부대를 복귀해버렸어요. 그 때가 2004년 4월 정도가 되겠네요.


B: 딱히 이유는 기억도 안나고 모르겠어요. 그냥 제대하고 복학하니 후배들이 우르르 커피 전문점 가길래 따라가서 마셨고. 아, 그 기억이 나요. 후배 한명과 커피숍을 가서 무얼 먹겠냐고 물어서 달달한 것 없냐 물었더니 캬라멜 마키아또를 시켜주더군요. 그게 아마 처음으로 커피숍에서 커피를 마시게 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네요.


A: 전 달달한 맛보다는 카페인이 얼마나 쎈가를 더 따졌던 것 같아요. 그래서 진한 아메리카노 이런 것들을 제대 후부터 즐겨마셨던 것 같아요. 근데 자꾸자꾸 마셔보고 여기저기 가보니 똑같은 아메리카노라도 맛이 다른 것도 알겠더라구요. 그때부터 진짜 커피맛을 따지기 시작하고 호불호가 세졌어요. 요새 그 M사가 최근에 자기네들 커피랑 스/커/할과 같은 회사의 커피를 비교해서 맛의 차이 없다라고 말하는데 그건 쌩뻥이에요. 적어도 제 입장에선 말이죠. 분명히 커피 자체를 즐겨마시지 않는 샘플을 데려다가 시음을 시킨거에요. 사람들이 왜 스 회사에서 할인행사한다하면 길게 줄을 서서 끝까지 기다려 마시고 가는 이유가 뭔지. 그건 커피 좋아하는 사람들만 알죠.


Written by 선장

Painted by 사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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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해적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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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해일지 - 그림으로 말하는 남자.]


요리사가 즉석에서 잡은 물고기를 내동댕이치더니 곧바로 슥슥 회를 떠버린다. 멍때리던 선원들이 고기를 보니 저글링처럼 달려든다. 물고기 크기가 엄청크다. 허리만큼 오는 정도의 길이에 늘씬하게 빠진 몸매. 프리즘이 빛나는 비늘이 온 몸을 덮고 있는 녀석인데, 힘이 그야말로 장사다. 펄떡펄떡 뛰더니 꼬리로 요리사 엉덩이를 힘껏 후려친다. 요리사도 지지 않고 물고기의 몸뚱이를 힘껏 내동댕이친다. 저편으로 떨어져 나간다. 물고기 이름이 뭐냐고 물어봤더니 자기도 모른다고 그냥 먹으랜다. 적어도 독은 없으니까 맘 편히 먹으라는 말에 삽시간에 몸뚱이 살점이 사람들의 입으로 흡수된다. 자연은 돌고 도는 법. 초고추장이 모자르다. 나가사키산 와사비가 물고기의 눈가에 점점이 번져 있다. 이 녀석의 눈은 아직도 껌뻑대고 있다. 눈물을 흘리는 것 같다. "맛 있냐?" 최후의 한 마디를 던지고 끝내 눈을 감지 못한 채 저 세상으로 떠났다. 마음씨 고운 사샤가 녀석의 눈을 가만히 감겨준다. 뭐라고 중얼중얼 기도를 한다. 종교도 없으면서. 그냥 곱게 먹지 않는다. 


"왜 살려줬어요?"

"뭐?"

"왜 살려줬냐구요?"

"누구?"

"그 때 있잖아요. 그 남자, 멀쩡하게 생긴 허연 사람."

"아."


괜한 질문으로 또 시비를 건다. 딱히 할 말도 없거니와 뭔가 대응하기도 꺼림직한 마음에 입을 잠근다. 질문을 한 건 맞는건지, 그새 손으로 회를 집어 입 안에 가득 넣는다. 또 지껄인다. 


"선장은 그런 사람 싫어하잖아요. 왜 살려줬어요?"

"그러게, 나보고 치료는 또 왜 해주라고 했지? 우리 약품도 별로 없어요. 다음 번 육지 때 사야돼요."


의사 레나스도 거든다. 파도가 잔잔해지니 입도 살아났다. 몸이 안좋은건지, 먹는게 불편해서인지 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땀을 비오듯이 흘리면서도 쩝쩝 잘 먹는다. 몸져 누워있던 시체가 살아나 활동을 하니 보기에도 좋다. 좀비 같다. 웃긴 마음에 갑자기 대답을 해주고 싶다. 


"아, 그 사람. 재밌더라구."

"뭐가?"

"그냥, 말하는 게 꽤 흥미로웠어. 아니지, 말은 별로 안했지. 그 사람 직업이 교사더라구."

"교산데 왜 이런데 잡혀오고 그러지? 교사 구라아냐?"

"글쎄, 자세한 건 모르겠는데 고향에 갈 모양이었던 것 같아. 배를 갈아타고 가는 길에 우리한테 걸린 것 같아."

"그래서 뭐가 잼있었어요?"


요리사도 묻는다. 손이고 몸이고 온통 시뻘건 피투성이다. 야생적인 인간. 


"먹으면서도 잘도 묻는구만. 뭐 딱히 집어 말하면...음..."

"뭔데요 빨리 말해요!!!"


셋이서 일제히 달려든다. 


"뭐야 이 분위기는;;; 그래, 그 놈. 대화를 그림으로 하더라고."

"그림??? 무슨 그림???"


사샤의 눈이 빛난다. 왜 나에게 진작 말하지 않았냐고 묻는 것 같다. 


"아, 보통 잡혀들어오는 놈들은 눈도 제대로 못마주치고 늘 땅만 보잖아? 근데 그 놈은 아니었어. 나를 편하게...지긋이...바라보더라구."

"형이랑 잘해보고 싶었던 거에요."

"닥쳐. 입에 총알 박아 줄까? 그런 게 아니고. 뭔가...뭔가 모르게 별종이었어. 열의 아홉은, 아니지. 열의 열은 다들 살고 싶어 안달을 내잖아? 돈을 주겠다는 둥, 육지에 누구를 안다는 둥, 별 개소리 다 하고, 가족이 아프다느니 누가 어쨌다느니 착 엎드려서 다들 말이 많다구. 나한테 얘기해야 뭐 통하겠어? 근데 그 놈은 달랐어. 눈이 뭔가가..."

"눈깔이?"

"어, 눈깔이 굉장히 편안해 보였어. 넌 파랗잖아? 그 인간은 붉갈색이었는데, 눈이 말해주더라구."
"뭘?"

"억울할 것도 없고, 무서울 것도 없다."

"어떻게 알아요?"


속주머니에 넣고 있었던 그 교사의 그림을 보여줬다. 그가 남긴 작은 노트. 소금기에 그새 눅눅해져 버렸다. 그가 그린 집이며, 사람, 동물, 나무, 편지지, 궁전 등등 단 3일만에 제법 여러 가지를 그리고 떠났다. 


"스페니쉬 계열의 사람이었던 것 같아. 요 쏘이 뭐 어쩌고 하는 거 보니까. 가까이 가서 얼굴을 쳐다봤더니 웃더라고."

"웃어요? 선장을 보고?"

"깔깔 웃는 거 말고, 그냥 희미하게 웃더라구. 근데 어쩐지 정겨운 느낌이 들더라구. 그래서 손을 풀어줬더니 주머니에서 노트랑 펜을 꺼내던데?"

"그냥 보기엔...뭐 별거 없는데?"


사샤가 기분이 나빠진 모양이다. 그림의 실력도 형편 없거니와 뭔가 자신과 비교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아서인지 눈썹 가운데에 한자로 '내 천'자가 뚜렷하게 나타난다. 


"그림이 잘났다는 건 아니고 ㅋㅋ.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걸 진작에 알고는 그냥 그림을 그리더라고. 근데 신기한 건 그림 하나 가지고도 이 놈이 어디 사람이고 가족이 누구고, 누구를 가르쳤는지 다 알겠는거야."

"그래서, 어딜 가던 길이었대요?"

"리스본, 아테네에서 10년 정도 무슨 귀족 아들을 가르쳤던 모양이야."

"그걸 그림을 보고 알았어요?"

"그러니까 신기하단 거야."

"그래서???"


물고기는 이미 끝장이 나 있는 상태였다. 요리사가 일어나더니 포도주를 가져온다. 다들 목이 탔는지 벌컥벌컥 마셔댄다. 다들 얘기에 관심이 많다. 


"아...그래서. 리스본이 지 고향인데, 결혼하러 가는 길이었대."

"그래서 놔준거에요?"

"아니, 우낀 건 결혼한 사람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대. 단 한번도."

"........"

"우연한 기회에 편지를 주고 받았는데, 그게 인연이 되어서 거진 8년 동안 편지만 주고 받았다는거야."

"희한한 사람도 있네요."

"그 편지 하나를 보여줬어. 근데 편지지에 별 얘기도 없어. 글씨 몇 자 없는거야. 그게 뭘 의미하는 줄 알아?"

"이미 서로 마음이 통했다는 거잖아요."

"그래, 나중엔 둘이서 글을 쓰지 않고 그림을 그려서 마음을 전했다 그러더라고. 정말 별 게 없어. 그냥 단순한 드로잉이야. 그 녀석이 산 새 책장. 여자가 가꾸는 화분, 화장대. 그냥 일상의 이런저런 것들을 간단하게 그려서 서로 그림으로 대화를 나누더라고. 그 그림을 보여주는데...그 사람의 얼굴 표정을 너희들이 봤어야 해."

"나 배에서 내릴까요?"

"어디 헤엄쳐서 가봐. 어쨌든, 한번도 보지 않은 사람을 편지로...더군다나 그림으로 소통하는 그 방법이 꽤 흥미롭더라고. 그게 나한테도 먹혔으니 그 놈은 목숨을 건진거고."

"역시, 남자는 한방이 필요하군요."

"여기 다 한방씩은 갖고 탔잖아?"

"죽빵 한 방 드릴까요?"

"먹었으면 치우고 가서 닥치고 잠이나 자."


날이 슬슬 어둑어둑 저물어 간다. 다 먹고 남은 물고기의 잔해를 햇볕에 널어놨더니 갈매기들이 훨훨 날아와 조근조근 쪼아 먹는다. 그래, 다같이 사는 세상. 너희도 그림같이 아름답구나. 

 Written by 선장

Painted by 사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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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해적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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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새벽일을 한 적이 있다. 새벽일이라면 짐작하겠지만 공사현장에 나가는 거였다. 5시 일어나 차로 부지런히 달리면 7시쯤 현장에 도착한다. 새벽에 일어나본 이라면 알겠지만 씻을 시간도 부족한 아침이다. 

매번 대충 국에 밥 말아 마시듯 먹거나 운 좋게 컨디션 좋아 일찍 일어난 날이면 그나마 밥상 구색 차려 한술 뜨는 게 전부다. 나중엔 체력 딸려 잘 일어나지 못하는 날이 허다해 빈속으로 나가는 게 일수였다. 그래도 나는 부지런한 어머니 덕에 그나마도 잘 챙겨먹은 경우였다.


함께하는 동료들은 대부분 아침을 거르고 출근했다. 전부라는 말이 맞는지도 모르겠다. 현장엔 아침 해결할 함바집도 있었지만 상태가 군대 짬밥보다 못했다. 그러다 보니 조회 후 식사 대부분은 편의점에서 해결했다.

편의점에서 파는 음식들은 생각보다 다양하고 맛도 괜찮다. 인스턴트와 레토르트가 대부분이지만 그래도 한 끼 때우는데 큰 거부감은 없었다.

초반 가장 많이 먹었던 음식은 햄버거였다. 봉지 끝 살짝 뜯어 레인지에 잠깐 돌리면 금방 따뜻한 버거를 먹을 수 있었다. 햄버거가 그렇듯 콜라와 조화가 괜찮았다. 햄버거를 먹으며 가장 좋았던 건 굳이 의자에 앉아 먹을 필요가 없단 것이었다. 돌린 햄버거를 들고 아무 곳이나 앉아 먹으면 그만이었다. 뭐, 땅바닥에 앉아 먹는 경우도 있어 보기는 안 좋았을지 모르지만.


햄버거 종류는 많았다. 흔한 불고기버거부터 치킨버거, BBQ버거. 못해도 8가지는 된 듯하다. 오늘은 이거 내일은 저거, 선택해 먹는 재미가 쏠쏠했다. 개인적인 입맛으로는 불고기버거가 가장 먹을 만했다. 하지만 햄버거의 가장 큰 단점은 먹고 난 후의 니글거림이었다.

아침 댓바람부터 빵에 고기를 넣어대니 콜라를 마신다 해도 느끼함은 가시지 않았다. 나중엔 니글거리다 못해 더부룩하기까지 해 그리 오래 먹지 못했다.

차선책으로 선택한 메뉴는 햄버거보단 깔끔한 샌드위치였다. 채소도 많이 들어있고 고기라 해야 베이컨이나 참치 정도라 느끼하지 않을 거란 생각이었다. 샌드위치도 햄버거 못지않게 종류가 많았는데 참치마요네즈 샌드위치, 케이준 치킨샐러드 샌드위치, 빵만 다른 호밀빵 샌드위치 까지. 들어있는 내용물에 따라 맛도 천차만별이었지만 참치마요네즈 샌드위치는 맛이 꽤 훌륭했다. 참치의 담백함에 마요네즈의 부드러움이 식감을 자극했다. 더불어 레인지에 돌릴 필요가 없어 편리했다.


그러나 샌드위치는 햄버거보다도 오래 먹지 못했다. 개인적으로 샌드위치는 신선한 채소와 빵의 조화라는 생각이다. 하지만 편의점 샌드위치 그렇지 못했다.

빵보다 내용물이 적어 한 두입 베어 먹으면 서너 입은 빵만 먹어야했다. 그래서 두어 입 베어 먹고 나머지 빵 자투리는 피자 끝처럼 버렸다. 그래도 햄버거는 빵이 모자라 버린 적은 없었는데 샌드위치는 그렇지 못했다. 

샌드위치에 들어간 계란은 텁텁하기 일 수였다. 전혀 후레쉬함 따위는 없었다. 특히 식빵 테두리를 떼지도 않은 샌드위치는 악몽이었다. 나중엔 샌드위치 하나 다 먹기 싫어 옆 동료와 하나씩 나눠 먹은 적도 다수다.


샌드위치를 포기 후 나의 아침은 주로 간단히 먹을 수 있는 빵과 우유가 됐다. 편의점에서 파는 빵의 종류는 많지 않았지만 옥수수 크림빵과 옛날 크림빵을 뚱땡이 바나나우유에 먹었다. 지극히 개인적 견해로 빵과 바나나우유는 최강의 조합중 하나인 것 같다. 자칫 심심할 수 있는 빵의 식감을 바나나우유가 커버해주며 부드러움은 유지시켜준다. 물론 지극히 개인적 견해다. 빵과 우유는 괜찮은 대안 책이었으나 평범한 대한민국 남자인 연유로 빵과 우유로는 힘쓰기가 참 어려웠다. 

“대한민국 남자라면 아침에 밥을 먹어야지!”라는 고리타분한 이유를 대며 이후 쌀이 들어간 음식에 입을 대기 시작했다. 편의점에서 찾을 수 있는 쌀은 햇반, 삼각김밥, 김밥, 죽 정도였는데 햇반은 반찬이 없어 안됐고, 죽은 무언가 아쉬웠다.

편의점 최고의 제품인 삼각김밥은 내가 아침 먹기 위해 편의점을 방문했을 때는 동이 났을 때가 많았다. 그나마 한두 개 남아있는 것도 별로 내키지 않는 맛이었다. 






삼각김밥의 탑은 참치마요네즈, 소고기 고추장, 전주비빔밥이라 할 수 있다. 물론 개인 취향에 따라 인정 못 할 수도 있지만 삼각김밥이 우리나라 편의점에 등장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살아남은 맛들이다. 그만큼 맛은 인증과 보증을 거친 셈이다. 이것들을 그곳에서 일하는 내내 한 번도 먹어보지 못했다. 그렇다보니 나의 선택도 점차 멀어졌다.

마지막으로 김밥. 편의점 김밥은 진짜 김밥이다. 김과 밥뿐이다. 아! 물론 단무지는 빠지지 않고 잘 들어있어 김과 밥 그리고 단무지와 먹는 것 같았다. 길에 즐비한 천국에서 파는 김밥정도로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천국에서 파는 김밥은 편의점 김밥에 비하면 이름대로 천상의 맛이다. 더불어 비닐 포장이라 전자레인지에 데워먹기도 어딘가 꺼림직 했고 그냥 먹자니 딱딱한 밥을 넘길 수가 없었다. 그 음식을 먹자니 차라리 굶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편의점 김밥은 그냥 쓰레기 수준이다. 같은 김밥인데 삼각김밥과 어쩜 그리 다른지 묻고 싶지도 알고 싶지도 않았고 최악이었다. 음식을 그렇게 만드는 건 죄악이다.


김밥에 충격 받아 더 이상 편의점에 먹지 않았다. 그냥 아침 일찍 일어나 밥을 꼭 챙겨 먹었는데 그렇지 못한 나의 동료들은 편의점 음식을 가지고 여러 조합을 시작했다. 조합은 물론 성공도 실패도 있었지만 대부분 만족할 만한 결과를 가져왔던 것 같다.

한 동료는 굴하지 않고 매일 컵라면을 먹었는데 물론 컵라면 하나만으론 부족했다. 이를 메워줄 무엇인가가 필요했는데 그것이 바로 ‘햇반’이었다. 

라면이 익는 동안 햇반을 레인지에 돌리고 라면을 먹은 후 국물에 햇반을 말아먹었는데 김밥 혹은 삼각김밥 라면 조합보다 궁합이 좋았다.


혼자 먹으면 양이 많기에 항상 옆 동료와 같이 나눠먹었는데 이 조합은 맛도 포만감도 상당히 높았다. 라면을 싫어하는 사람이 아니고서야 라면국물 밥 조합은 못해도 반타작이었다. 나중엔 이 조합도 부족했는지 계란을 하나씩 넣어 먹기 시작했다.

다른 편의점에도 있는진 모르겠지만 그 현장에 있던 편의점은 낱개 계란을 팔았다. 계란하나와 라면을 사 라면 물 부어 익힐 때 같이 계란을 깨 넣어주면 라면 익을 때쯤 계란이 부드럽게 익는다. 생각해보면 시중에 계란라면이 버젓이 왜 이렇게 먹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컵라면과 봉지라면 맛이 다르듯 이 역시 계란라면과는 사뭇 맛이 달랐다. 맛은 물론 계란라면  만큼이나 괜찮았다. 단, 계란 비린내를 싫어하는 사람이라면 따라하지 않는 것이 좋다.





누군가 “도시락은 왜 안 먹었어?”라고 할 수 있지만 늦는 날엔 삼각김밥도 동나는 곳에서 아침에 도시락 먹기란 겨울에 천도복숭아 구하기였다. 아마도 도시락을 먹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면 나름 머리 굴려가며 이렇게 저렇게 먹지 않았을 거다. 세상 모든 거 질려도 밥과 물은 안질릴테니 말이다. 


몇 달이라는 짧을 수도 길 수도 있는 시간에 편의점 먹을 수 있는 온갖 음식을 먹어봤고 이것저것 섞어가며 먹어봤다. 누군가 편의점에서 추천을 원한다면 라면과 햇반, 삼각김밥 조합을 추천하고 싶다. 그나마 가장 끼니답고 간단하다. 매일 먹을 게 아니라면 말이다. 그리고 웬만하면 부지런해져 집밥 먹는 게 최고라 말하고 싶다. 세상의 최고의 음식은 어머니의 수와 동일하니까.


written by 선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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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해적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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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해일지 - 적이 있다는 것, 적이 된다는 것.] 


파도가 거세졌다. 배가 꽤 출렁인다. 이제서야 비교적 먼 바다로 나온 것 같다. 우리의 이동경로에 여러 적함대가 출현할 가능성이 있으므로 전쟁이 일어나지 않기 위해서는 가급적 밤을 이용해서 항해하는 것이 좋다. 끝도 없이 펼쳐진 검은 바다. 밤하늘에는 호빵만한 하얀 달이 둥그러니 떠 있고, 주위에는 깨알같은 별들이 흩뿌려져 있다. 배를 둘러본다. 아침에 실은 함포가 묵직한 것이 든든해 보인다. 손으로 가만히 쓰다듬어 본다. 우리도 어느 정도 규모가 커 지면 좀 더 내구성이 강하고 노트가 좋은 갤리온급의 배로 바꿔야 한다. 지금의 배로서는 앞으로의 애로사항들을 헤쳐나아가기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이런저런 잡생각이 하나둘 겹친다. 갑판대에 나와 앉아있는데, 저편에서 사샤가 걸어온다. 


"선장, 추워죽겠는데 밖에서 뭐해요?"

"넌 뭐 하고 있냐?"

"난 이것저것 그려보려는데 쉽지 않아서, 그리다 관뒀어요. 술 좀 남은 거 있어요?"


사샤 입에서 포도주 냄새가 진동을 한다. 이 놈이 배에 있는 술의 족히 반은 먹어치우는 것 같다. 옷 이곳저곳에 온통 물감 투성이에 술 자국 천지다. 배에 있으면서 단 한번도 깨끗한 옷을 입고 있는 걸 본 적이 없다. 그러고 보니 그리 씻는 것도 좋아하지 않는 것 같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더러워보이지 않는다. 냄새도 딱히 나지 않는 것 같고. 눈이 파래서 그런가? 잠시 훑어보고 있자니 더럽게 트림을 연거푸 해댄다. 


"요리사한테 가면 술을 왕창 줄 거야. 저번 전쟁에서 어디 불타고 있는 배에 들어가더니 포도주 스무통 정도 건져서 들고 오는 걸 내 눈으로 봤어."

"그거 다행이군."

"의사는 뭘하고 있지?"

"파도가 심하다고 멀미 중이라 못 움직인데요."

"으휴, 의사가 멀미를 하다니, 병이 나면 간호를 해줘야할 지경이군."

"의사에게 술을 주고 올까요?" 

"사샤."

"왜요?"

"저번 육지 때 머리좀 자르지 그랬어. 영 거지꼴인데?"

"누가 볼 것도 아닌데 뭘 신경써요?"

"그럼 누가 볼 것도 아닌데 그림은 왜 그리지?"

"같은 질문이잖아요. 그럼 선장은 누구 보라고 약탈질 해요?"

"하하, 따는 그렇기도 하군. 넌 그런 도발적인 면이 아주 해적스러워."

"해적보고 해적스럽다고 하는 건 어이가 없군요."

"사샤."

"아, 그렇게 진지하게 부르지 좀 마요. 그냥 어이! 이렇게 부르던가."

"내 맘이다 이 자식아."

"알게 뭐야. 젠장."


투덜투덜대면서도 가라고 하지 않는 이상 옆에 붙어 있는 놈이다. 그건 또 특이한 이 놈만의 성격 중 하나다. 내가 싫지는 않은 모양인데, 말투는 틱틱 내뱉는게 영 재수가 없는 게, 그게 이 놈의 문제다. 뭐 그렇다고 그게 큰 문제는 아니지만. 


"난 왜 해적이 됐을까를 생각해봤어."

"또 어이없는 철학적인 세계로 빠져들었군요. 그래서...답을 냈어요?"

"아니, 돌이켜 봤는데 정확히 이유는 모르겠어."

"그게 답이에요."

"응?"

"왜 태어났냐고 물어보면, 태어났으니까 태어난거지 다른 이유는 없잖아요? 선장은 해적이 됐고, 그 과정에서 뭐 여러가지 일들은 있었겠죠. 자 봐요, 내가 걸치고 있는 앞치마가 참 깨끗하죠?"

"너 만큼 깨끗하다."

"이렇게 이 색 저 색 묻히다 보면, 어느 샌가 나도 모르게 무언가를 그리고 있고 마음에 든다 싶으면 그 때부턴 달려들어서  마구 이것저것 더 넣어보기도 하고, 파도가 심하면 잠시 붓을 놨다가도 또 그려대고...그러다가 어느 순간이 되면 내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하나의 그림이 완성되어 있는거라구요. 선장도 그런 식으로 따지면 하나의 그림이죠."

"사샤 니가 더 철학적인 것 같다."
"웃기는 소리. 난 그런거 몰라요. 그냥 물어보니까 술 취한 김에 아무 소리나 지껄이는 거지."


이 놈 말에도 일리는 있다. 내가 왜 육지에 분노하고, 바다를 택해 이렇게 망망대해로 나와 선원들을 이끌고 이곳저곳을 떠도는지, 그 원인을 따지자고 들면 한도 끝도 없을 터. 사샤가 떠들어대는 말은 그냥 아무거나 다 갖다 붙이는 것 같은데 이상하게 어느 한 구석엔가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그런 면이 있는 것 같다. 


"그럼 하나 또 물어보지."

"아, 이 양반 술을 안먹어서 그런가 참 질문도 많네."

"그럼 적이란 건 왜 있지? 어느 새부터인가 보이지 않던 적이 수면 위로 올라오기 시작한 것 같아서."

"어느 새부턴가? 늘 있던 게 아니구?"

"아, 적은 늘 있었을 수도 있겠지. 그런데 이제는 누가 적이고 누가 아군인지 눈에 띄게 식별되는 것 같아서."

"여봐요, 선장. 선장!"

"왜?"

"적포도주는 무슨 색깔이죠?"

"옷에 묻은 색깔보니 대충 보라색 아닌가?"

"보라색은 뭔데요?"

"보라색이 뭐냐니?"

"보라색은 파랑과 빨강이 만나서 이루어진 색이라구요. 파랑과 빨강을 섞어쓰면 그림에서 불이 나요."

"불이 난다구?"

"그냥, 내가 즐겨 쓰는 표현이라고 생각해둬요. 상극과 상극이 만나니 그림이 상대적으로 자극적이고 강한 인상을 주게 되죠. 중간에 어떤 색깔들이 끼어들어서 분위기를 희석시켜주지 않으면 안되요. 만약 둘이 만나 부딪히면 보라색이 되는 거구요. 그거 알아요? 보라색은 죽음의 색이라는거?"

"누가 그래?"

"내가 그래요."

"그럴 줄 알았어."

"파랑이 있고, 빨강이 있어요. 파랑이 있으니까 빨강이 있고, 빨강이 있으니까 파랑이 있죠. 둘 보고 왜 있냐 물어보면 할 말은 없는 거에요. 원래부터 있는 거에요 아군 적군은. 수면 위에 적이 올라와서 무서워요?"

"조금 무섭기도 해. 그런데 뭐 별 건 없지."

"좋은 자세군요. 조금 무서워 할 줄도 알아야죠. 그래야 우리도 죽지 않고 살아남지. 근데 너무 심각하게 적에게 곤두세우지 마요. 원래부터 빨강과 파랑은 있었던 거고, 앞으로도 없어지지 않아요."

"시원한 답이군."

"추운데 들어가요. 술이나 먹어요 같이."


초겨울의 밤이 깊고 검게 흘러간다. 출렁출렁대는 배의 움직임이 좋다. 주말에 또 한번의 풍랑이 예고된다. 그 때를 대비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오늘 충분히 휴식을 취해둬야 한다. 좋은 밤이라고 해두자.  


Written by 선장

Painted by 사샤


Posted by 해적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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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에게 드리는 글. 


선생님, 글은 중독인가 봅니다. 


쓰면 쓸수록 힘에 겨우면서도, 논리의 틀을 만들고 그 안에서 이야기를 몰아가는 과정 하나하나가 너무 신이 나고 재미가 있습니다. 


내가 그 사람을 직접 보지 않아도 그 사람의 글을 통해 그 사람을 만나고, 그 생각을 공유하고, 비판하고, 내 시각에서 그 사람을 바라보는 이런 것들이 결국 사람과의 진정한 만남이 아닌가, 인문학이 궁극적으로 존재하는 이유가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배가 고파야, 상황이 절실해야 글이 써진다는 말은 사실입니다. 배가 고픈만큼 글에 대한 열정도 고픕니다. 그리고 설사 나중에 배가 불러도 글에 대한 열정이 식히 않기를 기도해봅니다. 


슬램덩크에서 정대만이 감독님에게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 떠오르네요. 

"선생님, 농구가 하고 싶어요".


지금의 제 심정입니다. 


Written by 선장


Posted by 해적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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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종일 책을 읽었다. 심신이 지쳤다. 너무 많이 먹어서 뇌에 배탈이 난 듯하다. 지근지근한 느낌이 "오늘은 여기까지"라는 신호로 느껴진다. 내일의 일정도 아마 이로 인해 지장을 받을 것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계속 읽어나아가야 한다는 점이 슬프고, 무겁다. 


글을 읽는 것도 그렇지만 쓰는 것도 문제다. 시상이 떠올랐을 때, 지금 당장 머리에서 영상이 후르륵 지나가는 그 때를 바로 포착했을 때 쓰지 않으면 안된다. 그 때를 놓치면 글을 써도 시들시들하다. 마치 3~4일 물에 넣어둔 꽃을 보는 느낌이랄까. 


이것은 논문, 보고서, 소설, 수필, 잡문 가리지 않고 모두 적용되는 문제다. 글은 어느 정도의 논리 정립의 수순을 밟아야 그 다음의 단계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이지만, 그 논리 정립의 수순에 앞서 선행되는 것은 감각적 포착의 단계다. 감각적으로 '아, 이렇게 흘러가면 되겠다'라고 하는 전구의 번쩍임, 바로 그것이 필요하다. 번쩍번쩍하기 위해서는 늘 싱싱한 마음과 체력이 뒷받침 되어 주어야 한다. 그래서 글쟁이일수록 자기 컨트롤이 절실이 요구된다. 그러나 대부분의 글쟁이들이 이것에 실패한다. 그래서 술을 찾는다. 


내려놓고 쓴다고 하지만, 결코 쉽지 않다. 그러나 쉽지 않기에 한편으로의 재미도 느껴진다. 쉬우면 재미가 없다. 약간 모순된 점이 없지 않아 있다. 이게 글쟁이의 양면성이다. 벌써 한시구나. 오늘 하루도 수고한 거다. 그렇게 위로하고 자야 피곤이 덜 한거다. 우리 모두 수고했다. 밤바다를 보고 싶다.


 Written by 선장

 

Posted by 해적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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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방 입동이 지났다. 지났다고 표현할 정도로 긴 날도 아니지만 겨울이라고 달력에서 먼저 알려준다. 동결. 겨울은 확실히 모든 것이 멈춘다. 2학기 기말고사가 끝난 학교도 얼어가는 물 마냥 조심스럽게 흐른다. 회사도 한해 마무리라며 의기투합보단 훈훈한 기운이 돈다.


가을 내 화려하게 수놓았던 나무들의 가지에는 앙상함만 가득해 처량하기 그지없다. 그래도 조금 있으면 하얀 눈꽃이 필 나무가 불쌍하기까지는 않다. 세탁소 들러 여름 내 맡겨 두었던  외투들 찾아오며 다시 느낀다. ‘겨울이 왔구나’하고.

입에서 피어나는 하얀 입김 호호 불며 겨울을 입감한다. 하얀 눈 올 때면 알 수 없는 설렘에 집에 붙어 있을 수가 없다. 기대감도 가득하다. 새 학기 준비하며 새 공책, 새 연필, 새해. 설렘 가득하지만 그래도 돌아보면 아쉬운 게 겨울이다.

한해 마무리한다는 나름 자기합리화적인 변명으로 수만은 술자리에 참여한다. 연일 이어지는 술자리로 속은 속대로 아파 ‘아, 내년에는 술 좀 줄여야지’라는 부질없는 다짐도 해본다. 속은 아프지만 그래도 빠질 수 없다. 나름 중요한 연내 행사기 때문이다.


아무리 추운 날에도 길가의 허름한 포장마차 오뎅 국물이면 따뜻하다. 옷깃 사이로 스멀스멀 넘어오는 겨울바람도 두툼한 목도리 하나면 따뜻하다. 누군가의 체온도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다. 사람이 따뜻하다는 건 겨울만이 알려준다. 그러고 보면 오히려 겨울이 꼭 추운 것만은 아니다.


겨울은 살아온 날, 지나온 날의 추억이다. 지나온 날 들에 대해 돌아보고 다시 돌아보고 다짐하고 기대하고. 웃기도 울기도, 힘들던 기억도 한 번에 쏟아 나온다. 무언가 아쉽고, 누군가 그립고… 새 것의 설레임과 지나간 날에 대한 아쉬움이 항상 공존했다. 매번 나의 겨울은 그래왔다.


올해 겨울도 그리 큰 변화 없이 왔다. 거리 포장마차의 오뎅도 다시 김을 모락모락 내기 시작했고 서랍 속 목도리 꺼내 나름 겨울준비도 했다. 단지, 달라진 거라면 나이가 나이인지라 술자리만큼 늘어난 결혼식에 다니는 것뿐이다. 그렇게 또 내 앞에 찾아왔다.


written by 선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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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해적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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